제3장 새로운 성좌

6

 

윤도도 퇴원을 하게 되였다. 완전히 아물기 전에는 침대에서 한발자국도 떠나지 못하고 안정할수밖에 없었던 조건이 비교적 한발로나마 빨리 땅을 밟게 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다리가 아니고 다른데였다면 그 급한 성질로 4. 19후에 국내정세의 돼가는 꼴을 보고 참지 못하여 병원에서 마음대로 뛰여나오느라고 그렇게 속히 낫지는 못했을것이다. 자기의 성질을 아는 그는 다리의 부상이기를 잘했다고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무튼 퇴원은 반가운 일이였다.

마침 그의 생일이 그때였다. 지금까지는 아들의 생일을 차려줄만 한 살림형편이 아니여서 그대로 눈감아버리군 했으나 이번에는 어떤 의미로 봐서든 자식을 새로 하나 얻은것이나 다름없어 어머니 홍씨는 가념삼아 간단한 음식을 장만하고 윤도가 제 부르고싶은 친구들을 부르게 했다. 전에는 아들에게 덮어놓고 조심만 하라며 밖에 나가 조금만 늦어도 걱정, 사회에 대해서 조그마한 불평을 해도 큰일난다고 한갖 소심하기만 하던 홍씨가 이제는 자식의 부상을 오히려 자랑으로 아는데 윤도는 놀랐다. 어머니의 그 새로운 변화를 고맙게 여겼다. 어머니의 정에 그대로 안겨보고싶어서 생일을 차려준다는대로 그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기회에 준호의 감옥에서의 고생도 위로해줄겸 동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싶었다.

상춘과 조광래, 허강 모두 불렀다. 허강은 마산학생들사이에 무슨 회합이 있어 못 온다는 기별만 보내고 오지 않았다. 조광래는 어디를 가나 그 손재간과 근로정신에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한다. 잘 닫기지 않는 윤도네 집 대문짝을 떼다가 마당에 놓고 톱과 장도리로 손질을 해주고있었다. 부엌에서는 기름내가 풍기고 마당에서는 뚝딱거리고 무엇인가 집안이 오래간만에 풍성한 느낌과 활기를 띤다. 윤도는 아직 의족이 되지 않았다. 조그마한 동작에도 앙감질을 하게 되는것이 상춘은 보기가 딱해서 앉아있으라 하고 부엌의 잔심부름, 점포에 가서 사오는것 모두를 그가 맡아한다.

《술도 좀 있어야겠지?》

《술없는 잔치가 어디 있어요?》

상춘이 윤도대신 대답했다.

《여기 얜 술고랜데요.》

윤도가 건너방 퇴마루에 앉아서 책만 보고있는 준호를 가리켰다.

《고래?》

홍씨는 놀란다. 윤도 아버지가 횡액을 당한것도 술을 좋아했기때문이기도 하였다.

《괜한 소립니다.》

준호는 약간 얼굴을 붉히며 조금 자라기 시작한 까까중머리에 손이 올라간다. 준호는 그 집이 처음이여서 손님같이 한편에서 책만 보고있다. 그는 대학에 복교도 되고 대학신문편집위원으로 피선되였다. 1년가까이 보지 못한 책들도 많았다. 그동안 국내외정세, 대학내 학생들의 동향 특히 4. 19에 대한 자료, 공부할것이 하도 많아서 시간을 쪼개 어디를 가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 저 학생이 복원언니 오빠라나봐.》

윤도의 누이동생 윤애가 홍씨에게 알려주었다. 홍씨는 놀란다.

아직 그런줄을 몰랐었다. 상춘을 손짓해 가만히 부엌으로 불러들였다.

《저 학생이 복원이 오빠유?》

《외척으로 그렇게 됩니다.》

홍씨는 희한한 발견을 한것처럼 고개를 끄덕이였다.

《복원이도 오늘 올가?》

《글쎄올시다. 왔음 좋겠는데 저희들 두사람 문제니까 알수 없군요.》

《저게 고집이 세서 그래.》

홍씨는 부엌에서 드나들며 아들과 준호의 눈치를 살핀다. 복원의 이야기를 해보자는것이다. 한편 채남을 기다렸다. 총알이 비발치는 속에서 그가 쓰러지는 윤도를 끌어내여 차에 태운 4. 19의 그날을 잊지 못할뿐아니라 혹시 그가 복원을 데리고 오지나 않을가, 그래서도 기다리는것이다. 홍씨는 견딜수 없는 마음을 기어이 조심스럽게 비치고말았다.

《이 학생이 복원이 오빠되는 학생이라며?》

준호앞에 가서 서며 묻기는 아들을 보고 물었다.

《녜.》

준호는 보던 책을 놓고 일어났다. 아까는 다만 윤도의 친구로만 인사를 했던것이다.

《왜 누이동생과 같이 오지 않구.》

준호는 어떻게 대답할지를 몰라서 머뭇거리고있는데 윤도가 화를 냈다.

《누구와 같이 오라구 그러세요?》

《복원이지 누구냐?》

《그 얘긴 마시라는데 어머닌 왜 자꾸…》

《좋은 날이 돼 그런다.》

《좋은 날이니까 친구들이 이렇게 와있잖아요.》

홍씨는 다시 더 할 말이 없어서 부엌으로 들어가고말았다. 복원을 기다리는 마음도 마음이지만 아들의 기분도 봐주어야 했다.

상춘은 지금까지는 둘의 일이라고 해서 깊이 개입하지 않았지만 정말 윤도의 본의가 알고싶어졌다. 준호도 그 문제로 해서는 말하기가 거북할것이고 어차피 상춘이 알아볼수밖에 없었다.

《윤도, 난 그 맘을 모르겠다. 복원씨와 멀어진 까닭을…》

《또 쓸데없는 소리.》

《그렇게만 말할게 아냐. 두사람의 관계는 괜히 주위를 우울하게 만들어. 지금도 봐. 집의 어머니가 저러시고… 준호도 유쾌하진 않을거구. 나도 사실은 네가 못마땅해.》

《말이 났으니말이지…》 하며 준호도 책을 놓고 참견을 했다.

《사랑이란 복잡하고 미묘한거니까 남이 개입할 문젠 못되지만 친구의 아름다운 사랑은 보고싶은거지. 상춘과 채남씨 같이… 그런데 두사람의 경우는 좀 납득이 가지 않거던. 복원이도 울기만 하고 말은 않더군. 무슨 말 못할 사정들이 있는지.》

《말 못할 사정도 없어. 복원씨가 4. 19에 참가 안했다 그건데, 난 좀 리해하기 어려워. 4. 19정신은 가장 인간적인거야. 그래 복원씨가 참가 못한게 미움으로 될수 있나? 그 대학에선 전체가 참가 못했는데.》

상춘이 기탄없이 하는 말에 윤도는 얼굴만 붉히고있다가 《모르는 소리야.》 하고 격정을 누르며 조용히 자기 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의 어머니가 듣지나 않나 부엌을 조심하면서…

《나도 괴롭네. 처음엔 4. 19에 참가 안한게 미웠던게 사실이야. 몹시 미웠어. 무슨 배신을 당한것 같은… 그러나 그건 오래가진 않았다. 학교 전체가 참가 안했으니까 리해도 되는 일이였고 그러나 난 이제 동정도 받고싶지 않네. 내 자존심이…》

《무슨 동정?》

상춘이 급히 물었다.

《이걸 봐.》

윤도는 자기의 한쪽다리를 가리켰다.

《불구다.》

상춘과 준호는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에잇, 이 못난 친구!》

상춘은 윤도를 떠밀었다. 허물없는 우정의 표시였다. 윤도는 방바닥에 쓰러져 한참 일어나지 않고 엎드려있었다. 상춘은 그우에다 대고 타박을 했다.

《이 자리만의 비밀로 해줄테니 아예 누구헌데 그런 소리 말게. 만약 복원씨가 듣는다면 얼마나 괴로워하겠나? 그렇게도 자기를 모욕하고 또 상대방을 괴롭히는 법도 있나? 어째서 네가 불구며 또 불구면 어떻단 말이냐?》

윤도는 한참만에 일어났다. 심각한 얼굴이였다.

《기분이야. 만약 처지가 바뀌였다면 나도 너와 똑같은 말을 할거다. 그러나 기분이야, 난 역시 그와 헤여지는게 마음 편해.》

상춘은 비로소 윤도의 본심을 알았다. 흔히 말하는 사랑이기때문에 잊어버리려는 그러한 감상이 과격하다고만 믿은 윤도에게도 있었던가. 웃기는 일이였다. 상춘은 자꾸 웃으며 놀려주고싶었으나 윤도의 표정은 심각했다.

《넌 내 괴로움을 몰라. 나도 오래동안 생각했어.》

《얼른 의족을 해야겠다. 정상과 같이 걷게 되면 그런 사고도 정상으로 돼. 지금은 네가 잘못 생각하고있어. 그 문제에 한해선…》

어머니들이 오기 시작했다. 상춘 어머니도 왔다. 5~6명, 그들가운데는 아들의 시체앞에서 울지 않던 로부인도 있었다.

흰 옥양목치마, 적삼, 다듬이질한 모시옷, 어머니들이 입은 옷의 흰빛들이 따가운 여름해빛에 깨끗도 했지만 그보다 슬픔과 불행을 초월하려는 얼굴들에서 풍기는 기풍이 더 숭고한 맛을 자아내게 했다.

《사는게 이렇답니다.》

홍씨는 인사삼아 가난이 배여있는 살림을 부끄러워한다.

《그런 소리 마세요. 우리가 뭐 선보러 왔어요?》

로부인은 지팽이에 의지하여 허리를 펴며 말했다.

《… 선이나 보러 왔음 가난이 걱정일가. 가난하기때문에 4. 19는 일어났다 하잖아요? 아무 걱정말고… 차리긴 뭘 차린다고… 우린 댁의 아들 손이나 잡아보죠.》

윤도가 앙감질로 그앞에 가서 로부인의 손을 잡았다.

《앉아있게. 우린 다 같은 어머니이고 같은 아들이야. 4. 19가 우릴 그렇게 한집안으로 만들었어.》

학생들은 어머니들앞에 머리를 숙일뿐 적당한 인사의 말을 찾지 못했다. 많은 세파를 겪어온 어머니들앞에서는 말이 무의미했다.

어머니들은 조금이라도 손님들을 더 잘 대접하려고 이것저것 애쓰는 홍씨를 도와 손을 나누어 상을 차렸다.

마루에는 어머니들이, 건넌방에는 학생들이 자리를 잡았으나 방문을 열어놓아 한자리나 다름없었다. 젊은 애들이 저희끼리 마음대로 놀라고 상을 따로 갈라놓았을뿐이다.

홍씨는 아무것도 차린게 없다고 자꾸 안심찮아했으나 상은 성찬이였다.

무턱대고 돈을 들여 만든 음식이 아니고 남새일망정 초여름계절의 미각에 맞게 깨끗하고 조촐하게 차린 상이였다. 오이소박이, 앵두화채, 청포묵이 시원해서 구미를 돋구었다. 원래 홍씨는 서울태생인데 상에는 서울솜씨가 아닌 몇가지 색다른 음식도 놓여서 그것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아들 주라고 이웃에서 이렇게…》

도시의 이웃이란 각 도의 사람이 모여살기마련이지만 그들은 윤도가 퇴원을 해서 집에 돌아오자 이것저것 토산물이라고 음식을 보내주었다.

《신세를 다 어떻게 갚을지.》

홍씨는 고마운 이웃들을 두고 이야기했다.

《전에는 수도칸에 나가도 서로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르게 지내던 사람들이 저게 저렇게 된 다음부턴 모두 날 그렇게 안 보는군요. 모두 저애 걱정을 해주잖아요. 살다가 이렇게 대접을 받을줄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홍씨는 그것이 자랑이였다.

《그게 인심이라우.》

로부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인심이란 돈 주고도 사지는게 아니고 묘한거지. 세상 옳은 일은 인심이 모여드나 봅디다. 나도 그래요. 어찌나 많은 학생들이 찾아오는지 그걸로 설음이 가라앉는다우. 접땐 어떤 모를 학생이 죽은 우리 그놈의 그림을 커다랗게 그려다가 걸어주는그려. 저들끼리 찍었던 사진을 그렸대나. 밤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웃으면서 말하는것처럼 그놈(초상)이 내게 말을 해요. 어머니, 난 동무들 품에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속으로 대답하지요. 오냐, 어미도 그렇게 안다, 집에 오는 학생들이 모두 너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이래서 사람은 살기마련 안예요.》

슬픔을 초월하려는 마음의 그 깊은 속에서 울려나오는 말이였다.

《어미된 사람들의 마음은 다 같군요.》

어린 딸을 잃은 어머니가 차분한 목소리로 심중을 펴보인다.

가실줄 모르는 아들딸의 추억으로만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저절로 학생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따로 하게 되지 않았다. 각자가 어떻게 하면 어머니들의 그 자랑을 오래 간직할수 있도록 하느냐, 자신들의 사명감을 생각하며 말없이 맥주를 마시였다.

홍씨는 자주 와서 뭐 부족한것이 없느냐고 애썼지만 상에 차려놓은것도 아직 많이 남았다.

어머니들이 건넌방으로 오기도 하고 학생들이 어머니들에게 맥주도 권하기도 하여 자리는 파탈이 되여 나중에는 어머니들과 학생들이 한데 섞이고말았다.

《어서 자네들은 자네들 이야기를 하게. 우리도 듣게시리. 우린 이렇게 죽은 자식들 자랑이나 한참 하고나면 속이 후련해져. 헌데 세상은 이걸로 다된건 아니겠지?》

로부인이 물었다.

상춘은 벌써 그런 질문을 수백번도 더 들은것 같다. 장자울고향사람들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후부터는 영 그 말이 귀전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거리에서 목격하는 사태, 집에서 겪는 생활, 그 어디에서나 그 질문은 되살아나는데 어머니들도 또 그 말이였다.

《아닙니다.》

상춘은 거의 기계적으로 아니라고 했다.

《저들이 바란건 이런 세상이 아니였습니다.》

《우리 애가 늘 하던 말도 골고루 살수 있는 세상, 통일이 되는 세상, 늘 글읽듯 하더니… 그렇게 돼가는 세상인지는 모르겠네만 내 눈에는 아직 까마득한것 같아. 저기 또 손님이 왔군.》

거지가 온것이다.

《밥 좀 줍쇼.》

대문틈으로 조그마한 손이 하나 들어와 빗장이라도 벗기려는듯 휘젓고있다. 벌써 윤도네 집대문을 거쳐간 거지들은 그 짧은 동안에도 여러명이였다. 그들은 눈치가 빨라서 남의 집 크고작은 잔치를 다 안다. 앉아서 당하는 편은 그들을 일일이 다 받아줄수도 없는노릇, 인심사나운 일이지만 몇사람 겪어보다가는 대문을 걸어 잠그기마련이다.

《밥 좀 주세요.》

이번에는 계집애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애처롭게 들리며 대문에 몸을 부딪는다. 차마 모르는체 할수가 없었다. 먹는 음식이 목구멍에 걸린다.

《윤애야, 문 열어줘라.》

윤도가 누이동생을 시킨다. 대문안으로 남매인듯 한 열살이 채 못돼보이는 두 아이가 팔에 하나씩 깡통을 들고 들어왔다.

홍씨는 거지애들에게 지짐쪼각과 떡쪼각을 들려보낸다. 로부인은 혀를 찬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거지들을 두고 한탄하는것이지만 어찌 거지들만이겠는가. 4. 19후 두달이 지나가고있는 동안에 세상은 너무나 달라지는것이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어머니들의 자녀들이 흘린 피가 헛되게 될지도 모른다. 어머니들은 마음 한구석이 허공으로 날아나는듯 멍하고있을 때 지금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던 채남이 들어왔다.

꽃묶음을 가지고 왔다. 홍씨가 속으로 기다리던 복원은 데리고 오지 않았다. 뜨거운 해빛에 급히 걸었는지 타는듯 상기된 얼굴과 흰빛의 신선한 나리꽃이 조화되여 그를 더욱 젊고 발랄하게 만들었다.

《축하합니다.》

윤도에게 꽃을 주었다. 윤도는 황송한듯 꽃을 받아 상에 놓았다가 《어머니, 이걸 꽃병에 꽂아두세요. 귀중한 아가씨가 주는건데…》 하며 지금까지 꽃을 주고받는 풍속에 익숙치 않아서 조금 장난조로 얼버무렸다.

《이 꽃은 내가 드리는게 아니고 정말 귀중한 아가씨가 보내는거예요. 그런줄이나 아세요.》

채남은 그렇게 말하고나서 모인 어머니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아들한테서 꽃을 받아든 홍씨는 어리둥절하여 채남에게 물었다.

《귀중한 아가씨가 누구냐?》

채남의 입에서 복원의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채남은 웃고만 있었다.

《윤도씨가 꽃병에 꽂아두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세요. 어머니.》

윤애가 꽃을 꽃병에 꽂아 윤도앞에 갖다놓았다. 꽃은 윤도의 얼굴을 환하게 만들었다.

(누가 보냈지?) 하는 눈으로 상춘은 채남을 보았다. 그러나 채남은 그에도 대답하지 않고 《뭐 토론들 하는가본데 계속하세요. 나도 듣겠어요. 늦어서 미안합니다.》 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들은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제는 어쩔수없이 변하지 않는 사회로 자꾸 되돌아오고만다. 어디를 가나 가난의 계속과 부정과 모순의 연장이였다.

어머니들의 죽은 아들들이 희망하던 사회와는 너무나 먼거리에서 허덕인다. 비슷하게라도 변해간다는 기쁜 소식을 어머니들에게 전할수 있으면 작히나 좋으련만 슬프게도 사태는 그렇지가 않았다.

《잘돼간다는 소리만은 못하지만 자네들이 잘해주면 되지 않나? 그것만 우린 믿네.》

로부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있지만 늙은 주름살에는 비애의 그림자가 없지 않았다.

채남은 그것이 보기에 죄송스러웠다. 불명예스러운 딸을 두고 슬퍼하는 복원의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머니들은 자기들의 자랑을 얼마든지 느껴도 좋으련만 그것을 다는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들께선 오래도록 아드님들의 자랑을 간직하셔야 됩니다. 그 자랑은 아무리 많이 느끼셔도 오히려 부족할거예요.》

채남은 그 말을 하고나서 자기 감정에 눈이 뜨거워져서 얼굴을 돌렸다.

《고마와라.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입니다. 제가 괜히 이런 말씀드리는거 안예요. 시골사는 어떤 슬픈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어요.》

채남은 제스스로 흥분하면서 복원 아버지의 애끓는 심정과 딸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을 좋은 기억력으로 인용하면서 이야기했다.

누구라고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편지는 그들 둘만의 비밀로 해두었다. 그래서 채남은 아직까지 상춘에게조차 이야기한 일이 없으며 복원은 출옥한 준호에게도 그것을 알리지 않았다.

《죄인과 같은 부끄러움과 겸손한 태도로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그 젊은 영웅들앞에 네 피를 아낌없이 쏟아라.》

아버지의 부탁대로 복원은 채남의 알선을 받아 응분의 일을 해왔다.

한번 잘못한 복원이 민족앞에 속죄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채남은 여러번 보았다. 복원은 피도 제공했다. 그의 피형은 O형이였다.

병원으로 매일같이 위문도 다녔다. 윤도의 입원실에만은 가지 않았다.

스스로의 량심이 부끄러웠고 윤도의 질책하는 눈이 무서웠다. 윤도는 두번이나 그를 보고 돌아눕지 않았던가. 복원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울고있다. 시골로 내려가려고도 몇번 마음먹었다. 채남이 그를 만류했다. 채남이 대신 복원 아버지에게 편지를 받고난 뒤의 그의 행동을 편지로 써보내기도 했다. 그들의 우정이였던것이다.

오늘은 윤도의 완쾌를 축하하는 자리에 억지로라도 복원을 데리고 오고싶었으나 그는 오지 않고 꽃만 사서 채남에게 주었다.

채남이 슬픈 아버지라 하여 소개한 이야기만으로도 그 주인공이 누군지를 짐작할 사람은 짐작할것이다. 윤도도 심각한 얼굴이였다.

점점 더 고통의 빛을 띠여갔다. 상춘은 지금까지 채남과 자기사이에 조금도 비밀이 없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이야기에 고개를 기웃거렸다.

어머니들만은(홍씨는 아니고) 전혀 모르는 일들이여서 거리에 돌아가는 이야기쯤으로 알면서도 슬픈 아버지의 심정만은 충분히 전달되는 모양이였다.

《그게 누구요?》

로부인이 감동해서 물었다.

《제게 그런 동무가 있습니다.》

《아버지되는 사람이 훌륭하군. 그 이야길 우리헌테 들려준 학생도 기특하고 고마워. 우리들 맘을 무척 든든하게 해주는군. 다 좋은 일이야.

그런 아버지가 세상에 있고, 딸이 있고, 자네들 같은 학생들이 있고… 그렇지 우리 나라는 장차 잘될게야. 그렇고말고… 우리들 슬픔보다 그런 아버지의 괴로움이 더 큰걸 생각하면 학생 말마따나 우린 아들들을 오래오래 자랑해야지. 고마워. 그 녀학생이 누군지 몰라도 너무 울지 말라고 해. 사람이란 고치면 되는거니까 앞으로 또 피흘려 싸울 날이 있을지 누가 아나? 세상은 달라지는게 없다고 자네들이 말하는데…》

채남의 이야기는 어머니들에게 많은 위안으로 되였다. 그들은 해가 설핏해서 돌아갔다. 상춘 어머니만은 홍씨가 유정에게 무엇인가 좀 싸서 주겠다고 붙잡는 바람에 뒤에 남았다.

학생들만 남았을 때 채남은 윤도에게 말했다.

《복원인 지금 울고있어요. 오늘 밤 시골로 가겠다고 했어요. 저 꽃도 그가 보낸거예요.》

윤도는 앞에 놓인 꽃병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그와 난 4. 19 그날 영원히 작별했습니다. 그건 채남씨가 더 잘 알거예요.》

홍씨가 참다못해 아들에게 역정을 내려드는것을 상춘 어머니가 참으라고 했다.

《윤도, 너무 옹졸한것 같군.》

상춘 어머니말에 윤도는 흠칫 놀랐다.

《옹졸이요?》

《남자가 고집을 쓸 땐 써도 좀 너그럽기도 해야지. 남의 처녀 가슴에 못을 치는건 옳지 않아. 그 아버지 얘길 들어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드는군.》

《그 아버진 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만 그 얘기로 봐선 아주 존경할만 한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딸은 별문제죠.》

《그래도 그 녀학생헌테도 이렇다 할 큰 허물이 없으니 하는 말이야.》

《그 문젠 그만해두세요.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채남씨, 미안합니다.》

윤도는 채남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이며 말했다.

《가서 말해주십쇼. 자기 아버지 말대로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보는건 좋은 일이라고요.》

《지금까지 그가 병원에 가지 않은줄 압니까? 윤도씨가 받은 수혈가운데 두번은 그의 피라는걸 아세요? 내가 그렇게 하도록 했습니다. 잘못됐음 용서하세요.》

윤도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지 제 부상당한 다리를 한참 보다가 다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홍씨가 참지를 못했다.

《에라, 내가 당장 가서 잘못했다고 빌어야겠다. 같이 가십시다.》

상춘 어머니를 끈다.

《네가 그 색시허구 좋아하든지 말든지 그건 네가 할 일이고 난 어미로서 가 사과를 해야겠다. 남의 집 처녈 죄없이 그렇게 하는 법은 세상에 없어. 녀자가 한번 허물을 잡히는게 어떤건지 네가 알기나 하고 그러니. 옛날같아봐라. 지금은 신식이니까 모르겠다만 난 내가 할 도릴 차려야겠다. 가십시다. 너헌테 피를 뽑아준 사람을 내가 다 모르니까 일일이 다 찾아다니진 못한다만 안 이상엔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자식이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서…》

옷을 갈아입으며 나가는 홍씨를 아무도 잡을수는 없었다.

《윤도, 맥주를 따러라.》

준호가 빈 고뿌를 윤도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윤도는 시무룩해있기만 했다. 채남이 대신 고뿌를 채워주었다.

《채남씨도 한잔 드십시오. 상춘군의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성실을 위하여, 내가 감옥에서 나와 첫눈에 띄는 인상은 4. 19후에 모든 사람들이 성실해진 그것입니다. 윤도의 지금 저 고집도 거기서 나온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가요. 때로 그게 경우가 틀리는 수도 있겠지만 착한 마음에서 출발한것이라면 모두 리해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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