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4

 

채남은 매일같이 대학강의가 끝나는대로 병원에 왔다. 그는 상춘의 상처를 보아주고 팔의 가벼운 굴신운동도 시켜준다. 그것을 의과대학생으로서의 한가지 실습 겸 일과로 삼았다. 자기의 손과 마음이 가야만 상춘의 상처가 더 빨리 그리고 완전히 낫는다고 어느덧 그러한 마음을 가지게 되였다. 사랑하는 녀자의 다심한 마음이였다.

입원실은 학생들의 강의실 같았다. 병원에서 4. 19부상학생들만을 위하여 입원실을 한칸 따로 치우고 거기에 모두 수용해주었다. 전부 외상자들이기때문에 그것이 치료에도 편리했고 또 무시로 찾아오는 학생들로 하여 일반환자들에게 끼치는 안정방해도 막을수 있었다.

채남은 그날그날 대학에서 발생되는 크고작은 일들, 학생들의 동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윤도의 소식, 국내외의 정치동향-모든것을 빼놓지 않고 보고 들은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상춘은 오후가 되면 시계바늘과 싸우며 채남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지 말자면서도 침대머리맡 유리창에 오후의 버드나무그림자가 기여올라가는 시각이 되면 저절로 병원과 의과대학사이 언덕길로 쏠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때로는 하루이틀 그가 오지 않는 수도 있다. 그런 날은 방안의 색채가 모두 빛을 잃어 희미해지고 하루가 무의미하며 옆에서 떠드는 학생들의 말소리도 한갖 소음으로만 들렸다.

그날도 장자울사람들이 다녀간 뒤에 채남은 병원으로 왔다. 방안의 다른 학생들은 그의 변함을 모르는 열성에 감동되여 기뻐했고 혹은 인사로 반겨했다. 그는 조심스레 발자국을 죽여가며 상춘의 침대로 갔다.

《어때요?》

《…》

상춘은 침울한 얼굴이였다.

《열이 나요?》

채남은 맥박을 재여보려 했다. 상춘은 홑이불속으로 손을 끌어당기였다.

그의 침울한 까닭을 얼굴표정에서 읽어보려는듯 책가방을 소녀처럼 앞에 단정히 들고 부동의 자세로 서있었다.

《나가요.》

상춘이 일어서서 먼저 앞섰다. 그들은 밖으로 나왔다. 아까 장자울사람들과 만나던 아카시아나무밑이였다. 그들이 돌을 집어다가 깔고앉았던 자리와 담배재를 털어놓은 자리에는 오후의 그늘이 퍼져간다.

《장자울사람들이 다녀갔어.》

《언제요?》

채남은 반색을 했다.

《아까 한시쯤.》

《나도 만나봤더라면… 내가 아는 사람들도 있을건데, 누가 왔댔어요?》

《경태아저씨서껀 태정이랑.》

《태정이? 군대에 갔다더니…》

그들은 장자울에서 어릴 때 함께 자란 소꿉친구들이였다.

《이즘 제대됐대.》

《만났으면 반가왔을걸.》

《그것보다 만났더람 여러가지 생각되는게 많았을거야.》

《뭐가?》

《난 많은 충격을 받았어. 대단한 시험을 치렀대도 좋고.》

《시험?》

채남은 커다란 눈이 더 커지며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아주 준엄한 시험이였어.》

두사람은 잠시 서로 얼굴만 보았다. 상춘은 심각한 얼굴이였고 채남은 생글거렸다.

채남은 진담 반, 롱담 반으로 상춘의 말을 들었기때문에 그것은 한편으로 흘려넘기며 그날 대학에서 있은 일을 이야기했다.

《오늘 대학에선 <4월혁명학생동지회>결성준비회가 있었는데…》

《4월혁명?》

상춘은 반문했다.

《들어봐요. 난 그걸 얘기할려고 왔는데 뚱딴지같이 시험은 웬 시험이고 락젠 무슨 락제예요. 들어보라니까요. 그 준비회에서는 상춘씨가 이번에 용감하게 싸웠다고 그 위원회후보로 추천되는가봐. 녀학생들은 절대 지지예요. 그런데 락제라니 무슨 시험으로 쳤기에 락제라는거죠? 대학생이 농민들앞에서 락제? 대학생의 명예를 위해서도 섭섭해요.》

아직도 채남은 롱으로 흘려버리려들었다. 상춘은 여전히 신중한 얼굴들이였다.

《4월혁명학생동지회?》

《녜.》

《혁명이란 말은 좀 생각해봐야겠어. 뭐가 혁명이야. 어디 혁명이 있었어?》

《지금까지 상춘씨도 4월혁명, 4월혁명 해오지 않았어요. 또 사실에 있어 12년동안 독재해오던 <정권>을 무너뜨렸으면 혁명이지 다른게 혁명인가요.》

어느덧 채남도 롱담으로 받지 않고 자기 견해를 주장했다.

《바로 그것이야. 나도 바로 그렇게 생각해왔고 또 대부분 학생들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있기때문에 락젤 했다는거야. 문젠 바로 거기 있어. 현훈증.》

마지막말은 채남에게보다 자신에게 하는 내향을 띤 어조여서 채남도 그가 지금 충격끝에 무엇인가 깊이 탐색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난 모를 소리예요. 앉아요. 그렇게 힘들게 서있지 말고.》

《그들에게서 많이 배웠어. 어떻게 생각하면 하선생님한테서 리론적으로 배운 몇갑절 더 배운것 같아.》

《말해봐요. 그 배웠다는걸 나도 좀 알고싶어요. 알아서 함께 생각해봄 안돼요?》

채남도 조금전까지의 그 롱담 비슷한 마음은 싹 가시고 상춘과 항상 같은 위치에서 같은 감정으로 그와 련결되여있고싶은 갈망이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나도 아직 그 충격을 설명할만큼 머리가 정리돼있진 않아. 그러나 무엇인가 중심을 놓치고 겉에서 공전하는 자신과 우리 학생운동을 느끼고있어. 아마 이런 생각은 채남이 그들을 보았더라면 나보다 더 실감있게 느꼈을지 몰라. 그들은 인젠 빼앗긴 토지를 미군헌테서 다시 찾을수 있느냐, 없느냐 그렇게 생활적인 문제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어. 그걸 묻고 내 얼굴을 쳐다보던 눈들… 난 그들에게 아무러한 희망도 줄수 없었잖아. 이마에서 땀만 흐르고…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옆에서 손수건을…》

그동안 준호가 감옥에서 빨리 나오지 못하는 사실때문에 혁명에 대한 약간의 의심도 없지 않았으나 마침내 준호도 나왔고 권세환은 들어가고-다소의 곡선은 있을망정 혁명은 궤도에 들어서 간다고 보아오는데 고향사람들이 제기하는 토지문제에 접하자 또다시 그의 머리에는 풀리지 않는 혼란이 생겼다.

《난 그 토지가 어떻게 된건지 잘 몰라요.》

채남이 말했다.

상춘은 미군부대가 장자울의 농경지를 징발한 경위와 그로 말미암아 고향사람들이 해마다 겪는 고통을 아는대로 설명했다. 그 이야기들의 하나하나는 억울하고 분한 슬픔을 자아내게 하는 내용들이였다.

채남은 고개만 숙이고 듣다가 머리를 들었다.

《알수 없어요. 그렇게 밤낮 억울한 꼴만 당하는 그들이 왜 이번에 일어나지 못했을가?》

《…》

《이번 기회야 얼마나 좋았어요. 학생들이 일어났는데 그들도 일어나서 자신의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 못하고 남의 팔매에 밤줏기로 찾아와서 그게 뭐야요.》

《그들이 미군과 싸우러 일어나지 못했다 그 말야?》

그때 같은 입원실에 있는 다리를 부상당한 학생이 간호원에게 부축되여 오후의 걸음련습을 나왔다. 그는 학원에 돌아가면 래년 대학졸업론문으로 《한미외교사》를 준비하겠다는 력사학과 학생이였다. 어떠한 관점에서 쓰겠는지 모르지만 그의 평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숭미사상으로 꽉 차있었다. 리승만이 그렇게 학정을 했지만 《한국》이 유지되는건 그래도 미국이 있기때문이며 그래서 미국은 은인이라는것이다. 경멸할나위도 없는 그의 지식이였다.

그러나 그는 4. 19에 용감히 싸운 학생이다. 그는 간호원에게 부축되여 이쪽을 돌아보며 천천히 놀다가 들어오라고 팔을 들어주었다. 그 학생이 저쪽으로 사라지고 보이지 않자 상춘은 하던 말을 이었다.

《채남인 그게 진정으로 하는 말야?》

상춘의 음성은 조용했으나 얼굴은 굳었다. 채남은 그가 응시하는 커다란 눈에 기가 눌려서 망설이다가 겨우 변명 비슷하게 말했다.

《진정이 아니면 그렇잖아요. 농민들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야지 누가 해줘요.》

상춘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리쳤다.

《부끄러운줄을 알어요. 그런 말을 하고…》

그는 너무 흥분한 바람에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몸을 비칠거렸다. 채남은 그의 몸을 받들어주었다.

《왜 이래요. 내 말이 잘못됐으면 용서해요. 내가 좀 감정적으로 생각했는지 몰라도…》

《고향사람들을 생각하는 맘이 없기때문이야.》

《어마나!》

그는 놀라며 사슴처럼 몇걸음 상춘의 곁에서 뛰여 물러섰다.

그렇게 그들은 얼마간의 간격을 두고 서로 보고만 있었다.

《고향사람들을 사랑하는 맘이 없다는건 이 땅을 사랑하는 맘이 없다는건데 그건 날 모욕하는거예요.》

그의 가슴은 눈에 띄우게 고동을 치는듯 했다. 상춘은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의자에 가서 앉으며 채남이 옆에 와 앉기를 오래동안 기다렸다.

그들은 한참 말없이 사이를 두고 앉아있었다. 이윽고 상춘은 조금전의 흥분과는 달리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도 처음엔 화가 났어. 채남과 같은 기분이였어. 자기들은 꼼짝도 않고있다가 이제 와서 학생들을 보고 말야. 그래서 일어나야 된다는 말도 해주었어. 그러나 그들의 슬픈 얼굴을 보자 금방 생각은 달라지더군. 학생들의 책임은 중하다고…》

상춘은 장자울농민들한테서 받은 충격으로 자신을 돌이켜보고있었다. 그들이 앉아있는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창경원 잔디밭에는 넘어가는 초여름 긴긴해의 잔광이 길게 그늘을 끌고있었다.

《상춘씨 말이 다 옳은것 같긴 하지만 무언지 허전해요.

아직 그날의 감격과 흥분속의 도취인진 몰라도 이제 공부들을 시작하는 참인데 벌써부터 그런 비관론을 듣게 되니까…》

《천만에.》

상춘은 그의 말을 급히 무질렀다. 그러나 자제하는 빛이였다.

더욱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에 비관의 색조가 있었다면 그건 내 수양이 부족한탓이야.

난 어디까지나 사태를 직시할려는것뿐인데 거기서만 앞으로 옳은 방법이 나오니까 말야.》

《직시하는건 나도 찬성이예요. 그러나 너무 조급할건 없다고 봐요. 어떻게 모든 일이 한꺼번에 되겠어요. 한가지씩 한가지씩 해결되겠지. 민족반역자들이나 선거위반자들도 완만하긴 해도 체포되고있고 앞으로 재판도 한다니까 그 결과를 학생들이 감시하면 돼요.

권세환, 그 사람도 체포돼갔지 않아요. 아무튼 금후 사태발전을 학생들이 감시하면 돼요.》

《어떻게, 무슨 수단으로?》

《그럼 뭐 기성정치인들에게만 다 맡긴단 말예요?》

채남은 어이없는듯 상춘을 보았다.

《싸움은 4. 19의 정신으로 다시 시작돼야 돼.》

채남은 놀랐다.

《또다시 피를 흘려요?》

《피를 흘리는것만이 싸움이 아닐거야.》

《그럼?》

《공부도 싸움이고 더 중요하겐 이런 문제를 연구하는 조직이 필요한것 같아.》

《난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생각지 말아요. 지금은 몸을 완치해야 돼요.》

그때 동일이 병원으로 들어오는 언덕길로 급히 오고있었다. 시위에 참가했다가 부상당한 그는 권세환의 집에서 쫓겨날 처지였으나 자유당이 망하자 그에 대한 그 집의 태도는 일변하여 방임해두는편이여서 그는 권세환의 가족들이 장충동집에서 림시 피해있는 동안에도 정원관리원과 함께 그 집에 머물고있었다. 나무그늘에 있는 상춘을 보지 못하고 입원실로 곧장 들어가는 그를 채남이 불렀다.

《개판이다!》

동일이 그들앞에 와서 밑도 끝도 없이 하는 말이였다.

《개판이야. 살이 이렇게 쪘더라!》

동일은 두손을 벌려 턱을 받치며 살이 쪄서 돌아가지 않는 목을 시늉했다.

《누가요?》

채남이 물었다.

《그가 나왔다니까.》

《누가요?》

채남은 자리에서 뛰여일어나기까지 했다.

《우리 아저씨 권세환씨말입니다. 왜 곧이 안 들려요?》

《며칠이나 됐기에?》

놀라운 일도 놀라운 일이지만 참으로 빠르기도 했다. 소매치기소년도 잡히면 한달 구류 또는 몇해 징역도 사는데 자유당소속 《국회》의원으로 3. 15선거에도 관련되였고 신흥매판자본가로 부정축재도 털면 적지 않으련만 권세환은 불과 한달도 못돼 석방되였던것이다.

《개판이야, 우리 집은 지금 재봉춘이다. 첩까지 와서 희비의 눈물을 짜고…》

《잘한다!》

상춘은 쓰겁게 웃었다.

《어쩌면…》

채남은 그 모든 사태의 책임이 마치 자기에게 있기나 한듯 어쩔줄을 몰라하며 상춘을 얼없는 눈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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