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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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울사람들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수십명이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였다. 그들은 그렇게 무리를 지어 시위라도 하는 기분으로 권세환에게 항의를 왔던 길에 어머니를 찾아온것이다.

전쟁기간 그들은 토지를 빼앗겼었다. 불도젤앞에 몸을 던져 반항했으나 총칼을 당할수가 없어서 그들은 땅을 빼앗기고말았다. 그럴지라도 철조망밖의 땅이나마 마음놓고 농사짓도록 내버려두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다. 사격권내에 들었다느니, 미군병영이 보인다느니 혹은 철조망안에 농민들이 들어온다, 물건이 없어졌다 하여 미군은 이러저러한 구실로 철조망 근처에 접근하는 농민들을 질색하며 농사를 방해한다.

실탄사격연습때에 류탄으로 사람이 상하고 죽었다. 농사짓는 사람을 짐승이라 하여 총을 쏜다.

그중에도 제일 곤난한것은 물이였다. 옛날부터 마을의 공유로 되여오던 보를 권세환이 수리조합저수지로 만든 그것이 철조망안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제대로 준다던 물이 매년 제때에 논에 흘러드는적이 한번도 없다. 몇해를 두고 미군부대에 진정도 하고 항의도 하여 그때마다 분규를 거듭해왔다. 권세환은 자동차를 타고 와서 《국회》의원의 이름으로 부대와 교섭도 하는체 농민들을 무마하군 했다.

농민들이 불도젤앞에 눕고 했을 때 발포를 명령하는 미군 대대장의 멱살을 잡고 어쨌다는 자기 자랑을 여러번 한 권세환은 내려올 때마다 그와 비슷한 새로운 공치사를 했지만 마을사람들은 그것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 토지징수가 있은지 반년이 되여 패틀리에 붙은 권세환이 거액의 재산을 잡고있는 사실을 알고있을뿐이다. 장자울농민들과 권세환은 같은 고향이면서 그 토지와 저수지문제로 미군을 중간에 놓고 항상 그렇게 대립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농민들의 속에만 품고있는 불만이였고 그앞에서는 머리를 들지 못해왔다.

지금은 자유당과 리승만이 망했다. 권세환도 의례히 날개가 부러져 전일의 권세도 거만도 없을것이다. 자유당시대에 제정된 법도 무효로 되여야 하지 않느냐, 이 기회에 권세환을 앞세워 만행이나 횡포도 막아놓고 저수지물문제도 해결을 봐야 한다. 더우기 요새는 모내기철이여서 물이 목숨보다도 더 귀중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 시위에 나선 기분으로 서울에 온것이나 권세환을 만나지 못했다.

권세환은 부정선거, 부정축재관계로 체포되여 형무소로 갔다. 가족들도 어데론지 이사를 갔다는 정원관리원의 말이였다.

항의의 대상을 잃은 그들은 상춘 어머니를 찾아와 의논을 해보기로 하고 왔던것이다.

장자울에서는 상춘이 영웅으로까지 소문이 퍼졌다. 비록 농민들자신은 4. 19에 궐기하지 못했을망정 그들의 십몇년동안 쌓인 울분과 지향을 4. 19학생들이 풀어주었기때문에 학생들의 희생에 대해서 그들은 찬양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일행중의 말등바위댁은 어머니를 보자 그만 가슴에 와락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

《성님은 아들들이 살아 좋구려.》

어머니가 고향을 도망쳐나온지 십년만에 그렇게 마음놓고 만나보는 사이였다. 그의 아들 덕용은 6. 25때 경찰놈들의 손에 학살되였다. 아들이 경찰지서로 잡혀가고 뒤미처 권세환이 총메고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말등바위댁은 그의 옷자락에 매달리며 아들을 살려달라고 눈물로 애걸했었다. 권세환은 경찰놈들보다 더 랭정하고 무서웠었다.

말등바위댁은 그 원한을 십년동안 가슴에 길러왔다. 이번에 권세환과의 그 부채를 결산하자고 일행을 따라왔던것이나 권세환은 잡혀가고 없었다. 어머니는 말등바위댁의 슬픔이 그대로 체내에 흘러들어 코마루가 매워왔다.

《참게, 이제 좋은 세상이 된다네.》

그래도 말등바위댁은 오열을 참지 못했다.

그가 우는 바람에 미처 어머니와 인사도 나눌 사이없이 둘레에 서있기만 하던 마을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참으슈.》 하며 어머니와의 수인사로 모자를 벗기도 하고 다가서서 손을 잡으며 허리를 굽히기도 했다.

봄볕에 그을고 윤기없는 바삭바삭한 얼굴들이였으나 어머니를 보는 눈들에는 모두 꾸밈없는 정이 담겨져있었다.

《상춘이가 그래요. 좋은 세상이 될거라고?》

이른봄에 미군이 초례청에 뛰여든 만행때문에 왔던 경태가 그 말이 제일 반가운듯 물었다.

《그게 뭘 알아 그런 말을 하우. 모두 남들이 하는 말이지.》

《왜요. 학생들은 다 알죠.》

어머니는 아들에게 보내는 그들의 신뢰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무겁기도 했다.

《서울선 모두 그랜답니까?》

또 누군가 한사람이 그렇게 물었다.

《그렇다우, 리승만이가 쫓겨났으니까. 인제 좋은 세상이 될거라고 모두들 그런다우.》

그 말을 물어본 사람은 후우- 무겁게 한숨을 쉬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랬음 작히나 좋겠어요만…》

그는 그 말이 너무 주체스러운지 말을 끊고 담배대에 천천히 담배를 담아 불을 붙인 다음 《그런데 우리네 논은 지금 모를 낼 때에 거북잔등같이 갈라만지고있으니 언제 좋은 세상이 올는지…》 하고 한탄했다.

《그뿐입니까. 그놈의 철조망밑의 농사는 또 어떻게 짓고요. …》

다른 사람이 말깃을 단다.

그 말들은 마치 어머니에게 대고 하는 호소나 항변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어머니의 책임있는 대답을 들어보자는듯 조용해지고만다.

어머니는 그동안 고향을 한번도 가볼수가 없어서 미군부대에 린접해있는 마을의 참상을 아직 본 일이 없으나 찾아오는 고향사람들에게 들어서 그들의 고생이 얼마나 심한지는 대강 알고있었다.

말등바위댁의 울음도 진정되였다. 어머니와 마을사람들과의 오래간만에 푸는 회포도 많으련만 올해도 논을 말리고 마음놓고 농사짓지 못하는 땅에 대한 걱정의 중량감때문인지 오가는 말들이 별로 활기를 띠지 못했다.

그들일행가운데는 4. 19때 어머니가 《국군》들가운데서 우연히 만난 태정이도 있었다. 요새 제대되여 집에 와있다가 그도 상춘을 만나러 온것이다.

《그동안 군대서 얼마나 고생을 했니?》

《일없습니다.》

태정은 아직도 군대생활의 습관이 그대로 몸에 배있어서 발을 모아 꼿꼿이 서며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 말이 일없다지만 웬걸 일없겠나요.》

그의 아버지 홍락원이 아들을 대신해서 말했다.

《제 어미 말을 들어볼라침 몸뚱아리에 온통 푸릇푸릇한 멍자국이라는걸요. 기합인가 하는 그것때문이래요. 이젠 그것도 리승만의 법이 없어짐 그만둘라난죠. 원…》

그렇게 지금까지의 온갖 학정과 피해와 군대의 악습까지도 한묶음으로 리승만에게 밀어붙이고 그것이 근절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그들의 희망이였다.

그들은 대학병원으로 상춘을 위문겸 찾아갔다. 상춘은 아직도 퇴원을 못하고있었다. 부상당한 후에 의사들의 지시대로 안정을 했더라면 지금쯤은 완치되였을지 모르나 준호의 석방운동도 있었고 또 그동안 사태발전이 그럴수도 없었다. 무리한 행동이 상처를 덧나게 해서 아직도 침대를 떠나지 못한다. 마을사람들은 권세환을 만나지 못했은즉 금후 그 대책을 상춘과 의논할 생각이였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것인가, 미군은 나가게 되는가, 저수지물이라도 해결을 볼수 있을가, 궁금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병원구내는 아카시아꽃이 한창이였다. 오후의 태양을 받는 아카시아꽃향기로 숨이 막힐듯 했다. 주렁주렁 달린 꽃에는 벌떼들이 엉키여 더욱 무겁게 흐늘어졌다.

마을사람들은 아카시아나무밑에서 상춘을 기다렸다. 그들이 왔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상춘은 팔을 멘채 급한 걸음으로 나왔다.

태정이 먼저 그를 안았다.

《야아, 하마터면 내가 널 쏠번 했다.》

상춘은 미처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태정을 안은채 무슨 말이냐 묻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난 너들 데모를 진압하는 계엄군에 동원됐었어.》

태정은 부상당한 상춘을 보자 동원됐던 그 사실이 어딘가 미안한 모양이였다.

《어머니한테서 들었다. 천천히 얘기하자.》

태정의 어깨를 놓고 상춘은 마을사람들에게 인사도 하고 그들의 인사를 받기도 하며 《시골서도 한번 들고일어나야 될텐데요.》 하고 침대에 누워서 두고두고 생각해오던 문제를 말했다. 앞으로도 그것은 오래오래 계속될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고향사람들을 보자 저절로 그 말부터 튀여나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고향사람들은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어째서 상춘이 그말을 하는지 한번 마음에 둬본적도 없는 문제기때문에 그 말에 대해선 아무러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은 아카시아꽃향기가 진동하는 허공으로 날아가고 다만 그들 입에서는 평범한 인사의 말들인 몸이 어떠냐, 고생 많이 했다, 그러한 인정이 오고갔다. 한돌림 그렇게 인사가 오고간 다음 《상춘이!》 하고 경태가 상춘을 불렀다. 《해라》를 하지 않고 《하게》를 놓는 그자체가 벌써 상춘을 그만큼 높이 보는 심정이였다. 그만큼 또 그에게 하려는 말은 중요하기도 했다. 사활문제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공감하기때문에 별안간 조용해지며 시골사람들의 시선은 상춘의 대답이 나올 입으로만 집중되였다.

《자넨 이젠 보통사람이 아냐. 리승만을 꺼꾸러뜨린 사람이거던. 그러니 세상 돌아가는 리치도 짐작할거라.》

《아암.》

다른 사람들도 엉뎅이를 들어가며 맞장구를 쳤다.

어머니는 그것이 듣기에 거북했다. 어머니자신도 아들에 대한 믿음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달라진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것을 보자 아들의 무슨 과분한 책임감 같은게 앞서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말들 말아요, 저게 뭘 안다구, 아직 애들이라는데두.》

《아주머닌 가만 계세요. 자라는 애들은 그렇잖아요. 우리네 촌무지랭이 같겠나요. 그래 상춘이 어떨가,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돌아가나? 첫째로 그 옘병할 놈의 미군기지가… 그건 어떻게 되나? 우리 마을은 자네도 고향이 아닌가. 땅을 찾아야 사네, 그렇잖아가지군 올해도 동네가 농살 못 지어.》

경태는 앉은자리의 땅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 그래 인젠 리승만도 물러났다니까 그가 만든 법도 무효가 아니겠나, 응?》

경태는 자기 말에 강조를 두느라고 상춘과 어머니를 번갈아가며 호소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상춘이 얼른 대답을 못하자 자기 말을 계속한다.

《그뿐인가, 그 땅들로 말하면 잡혀간 권세환이가 미군부대와…》

그는 마을사람들이 올라온 까닭을 흥분속에 전했다.

그것에 대한 상춘의 대답을 마음을 조여가며 기다리는것은 마을사람들보다도 어머니였다.

세상이 앞으로 어찌되느냐, 땅을 미군부대에서 찾아낼수 있느냐, 어려운 문제들이였다. 그 어려운 문제를 만인이 다 알아듣도록 조리있게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상춘이 대답해준다면 그것은 마을사람들의 기쁨이기 전에 어머니로서의 자랑인것이다.

어머니도 아들의 입만 지켜보았다. 어떠한 말이 나오나. …

그러나 상춘의 입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고 더운 날도 아닌데 이마에서 땀만 흘렀다.

《오래간만에 밖에 나오더니…》

어머니는 손수건을 아들에게 주려고 했다.

《아녜요.》

상춘은 가볍게 어머니의 손을 밀어냈다.

4. 19후에 세상에 아무것도 달라지는것이 없다는 말은 상춘도 자주 듣는다. 들을뿐아니라 사실이 그러하다. 언론, 집회 같은 민주주의적권리가 약간 보장될뿐 기본적인 문제에서는 별로 변동을 볼수 없었다. 4. 19가 배신을 당한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상춘은 그것을 수긍하고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렇다면 학생들의 그 많은 피의 대가는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그는 흘러간 투쟁과 학생들의 힘을 견주어보면서 4. 19에 대한 비관론에 항거해오고있었다. 4. 19는 승리했으며 또 승리해가고있다고, 아직 학생들의 기발은 내리지 않았다고 그런데 고향사람들은 누구의 말보다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그에게 펴보이는것이였다. 땀이 저절로 흐른다.

《힘드나?》

경태가 미안한듯 물었다.

《아닙니다. 그 문제들이 쉬운게 아니여서 그럽니다.》

《그럴테지. 쉬웁겠나? 어렵지. 자네가 그렇게 어려울적에야 우리야 더 말할게 있나. 땅김도 못할 일이지. 그래서 자네한텔 온거네. 안 올수 있나? 목숨이 달린 일인데…》

《한가지 말할수 있는건…》

상춘은 겨우 한숨을 돌리고 갈린 못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학생들이 해보니까 백성들이 들고일어남 안될 일이 세상에 없을것 같아요.》

상춘의 그 말이 떨어지자 홍락원의 입에서인지, 누구에게서인지 《음!》하는 안깐힘 쓰는 소리가 새여나왔다. 잠시후 경태는 상춘의 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백성들이 들고일어남 안될 일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무거운 한숨을 쉬였다.

《그렇습니다. 우리들, 학생들도 처음엔 리승만이가 그렇게 쉽게 나가떨어질줄 몰랐어요. <국군>이 서울로 쓸어들고 하니까 말이죠. 그래도 우리가 계속 일어나니까 되더군요. 농민들도 마찬가질거예요.》

학생들 누구나 4월 26일 그날을 회상하면 흥분되듯 상춘도 제풀에 흥분을 금치 못했다.

《대단했습니다. 들고일어나니까 우리들도 몰랐던 딴힘이 솟더군요. 땅크가 다 뭡니까, 총칼이 뭐구요? 땅크를 맞받아 뛰여올라갔습니다. 새까맣게 뛰여올라가니까 그것도 맥을 못 춰요, <국군>들도 총을 쏘지 못했구요.》

상춘은 팔과 몸짓으로 수십만군중이 땅크의 발목을 묶어놓고 《국군》을 이리 몰고 저리 몰던 시늉을 실감있게 재현해보였다. 상춘의 흥분은 금방 농민들에게 옮겨가며 그들도 4월 26일의 광경을 눈앞에 보는듯 감탄했다.

《그날 <국군>이 총을 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쐈더라면 사태는 어떻게 발전됐을지 모르죠. 태정이, 어떻게 됐을가?》

그는 계엄군에 동원되였던 태정에게 물어보았다. 태정은 얼굴이 약간 굳어지며 대답했다.

《군대란 상관의 명령이면 다지만 그래도 그땐 학생들헌테다 대고 총을 쏘는 사병은 없었을거야. 마지못해 쏜다 해도 공중에 대고 쏘았지. 나부터도 늘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으니까. …》

《보세요. 군대들도 일어나는 군중들앞에선 생각이 달라집니다.

뭣때문에 일어나는지를 알기도 하고 또 생각하면 군중이 바로 자기들 부모형제란것도 모르잖거던요.》

《아암, 그야 모를리 없지.》

홍락원이 자기 아들 태정을 힐끗 보고나서 말했다.

《내가 일어났다치면 저놈이 아무리 군대밥을 먹는다 하더라도 내속을 모르겠나. 나보다 제가 더 잘 알지. 그건 뻔한노릇이야. 그러나 우리 마을 경우는 저편이 <국군>이 아니라 미군일세그려. 그것들이 우리들 사정을 알아준다던가. …》

《원, 당치않은 소리!》

미군의 말이 나오자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펄쩍 뛰였다.

미군과 조선사람-그들은 원쑤지간일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그놈들은 우리 촌사람들을 쏘는 판인데 우리가 일어나보게.》

미군에 대한 분노가 금방 그들사이에 퍼지며 잠시 침묵에 빠지고만다.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졌다. 상춘은 그들에게 당장은 좋은 전망을 줄수 없었고 그들은 위안을 받을수가 없었다. 상춘의 생각해보겠다는 말이 그들에게 겨우 일루의 희망을 주었다.

《생각해보겠나?》

《하겠습니다.》

《믿네.》

경태는 상춘의 손을 잡아보았다. 손을 잡히는 상춘은 무력감때문에 그자리에 쓰러질듯 한 몸을 겨우 지탱했다.

상춘과 작별하고 떠나는 마을사람들은 몇번씩이나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병원구내의 언덕길로 내려갔다. 권세환네 집에 한번 더 가보겠다고도 했다.

어머니보고는 세상이 좋아지거든 고향에 와서 함께 살아보자고 몇번이고 몇번이고 당부를 했다. 전에도 그런 말을 여러번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서글픈 향수만을 되씹어야 했다. 지금은 어쩌면 약속일지도 모르나 실감으로 들렸다.

그러나 상춘이 마을사람들에게 시원한 말을 못한게 어머니는 마음에 걸렸다.

《상춘아, 고향사람들의 그 말이 얼마나 골수에 맺힌 말인지 네가 그걸 알아야 한다.》

《압니다. 어머니…》

《그 소원만 네가 풀어준다면 나는 한이 없겠다. 널 기른 보람도 있겠고…》

《알아요. 그 말씀.》

《네 아버지도 소원이 그거였다. 마을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나라, 네 형이 전에 그랬다만 이북에선 해방되던 이듬해 벌써 땅을 농민들헌테 줬다더라. 그런데 여기선…》

《그랬어요. 토지개혁을 하고 일성장군님께서 무상으로…》

《통일이 어서 돼야 한다.》

《4. 19가 통일의 바탕이 되도록 해얄텐데…》

《어서 들어가봐라. 넌 아직도 땀을 흘리고있구나.》

어머니도 병원에서 나왔다. 신중한 아들의 얼굴로 보아 그가 장차 무엇인가 고향사람들을 위해 하는 일이 있으려니 믿어보는 마음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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