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2

 

복원은 출옥하는 준호를 태워가려던 차로 상춘을 대법원을 거쳐 세브란스병원에까지 데려다주었다.

《준호오빠를 기다리는 내 맘이 불순하기때문에 오빠가 아마 못 나오는게야.》

복원은 옆에 앉은 채남에게 그런 말을 했다. 후사경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몹시 상해보였다.

《뭬 네가 그렇게 불순하니?》

채남이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준호오빠가 나오면 내 괴로운 맘을 하소연하고싶은 생각부터 앞서고있으니…》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흘러가는 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넌 뭘 그렇게만 생각해? 윤도씨도 흥분이 가라앉으면 너희 그것쯤 잊어버려.》

《그날의 흥분이 학생들한테서 오래도록 가라앉지 말기를 사람들은 바라는데…》

복원은 윤도와의 사랑이 위기에 처해갈수록 윤도에게서 하나의 영웅주의를 보았다.

차는 세브란스병원앞에 와서 멎었다.

상춘은 그날 준호가 출옥하면 함께 윤도를 찾기로 했었다.

복원은 윤도의 입원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채남이 그렇게 끌어도 막무가내였다.

《만나면 서로 괴롭고…》

그는 채남의 손을 뿌리쳐 저만치 갔다가 돌아서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는 힘없이 걸음을 옮겨 남대문쪽으로 사라졌다.

상춘도 타박타박 걸어가는 그의 뒤모습을 측은해하며 윤도에 대한 알지 못할 불만이 괴여올랐다.

(제가 뭐기에…)

입원실에는 한무리의 녀학생들이 위문을 왔다 나가는 길이였다.

어느 병원이나 위문을 오는 시민들이 그칠 사이가 없었다. 그들 녀학생들을 바래주느라고 나온 가족들가운데 윤도의 어머니 홍씨도 있어 상춘과 채남을 알아보고 반색을 했다.

《이렇게 같이들 다니니 오죽이나 좋을가.》

채남의 손을 잡아주며 가만히 한숨을 쉬였다. 상춘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복원이 윤도를 찾아오지 않는것을(혹은 온다 해도 윤도가 그를 랭대하는것을) 한탄하는것이리라.

상춘은 채남을 먼저 가라 보내놓고 자기만 혼자 입원실로 들어갔다.

그때까지는 그들이 미처 생각 못했으나 윤도앞에 나란히 서면 복원에 대한 윤도의 섭섭한 감정만 더 조장해줄것 같아서였다.

환자들의 머리맡에는 방금 녀학생들이 꽂아놓고 간 꽃들이 장식되여있었고 윤도의 머리맡에도 글라디올라스의 담홍색꽃이 놓여있다. 윤도는 꽃에 눈을 주고있다가 상춘이 들어서자 인사여부없이 물었다.

《준호는?》

윤도도 누구의 위문이나 꽃보다도 출옥하는 준호를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오늘은 안 나왔어.》

《왜?》

준호가 못 나오는 까닭을 들으면서 윤도는 상처의 고통이 더해오는지 얼굴이 험악해지며 신음을 했다. 이마에 땀이 내솟으며 겨우 진정을 하고나서 그는 중얼거렸다.

《그날 적어도 감옥을 습격했어야 되였는데… 이제 와서 그놈들의 <자비>를 빌다니.》

그는 천정에 대고 내뿜듯 길게 한숨을 쉬였다.

《이놈의 내 다리같이 우리의 혁명도 절름발이가 되는가보다.》

《락망할건 없어. 밖은 시위의 홍수다.》

《락망이 아니라 너무 분해서 그래. 게다가 학생들가운덴 학원으로 돌아가자 하는 패들이 있다면서?》

《학생들이 학원으로 돌아가는건 당연하잖어? 요는 그날의 정신을 어떻게 견지하느냐에 있지.》

《그 학원이란게… 어쩐지 상아탑을 의미할가봐 걱정이야. 민주주의기틀이 다 잡힌 다음이라면 또 몰라도 아직은 이 격동기에…》

《공부하면서 사태발전을 주시하자는 그 주장밑에도 4. 19정신이 흐르고있다고 봐야지.》

《주시?》

윤도는 못마땅한듯 돌아눕고만다. 윤도의 회의와 격분은 상춘이 좋아하는바 아니였다. 준호가 출옥하지 못한 그것 한가지를 가지고 미리부터 락망하고싶지 않았다.

상춘은 대화가 끊어진채 한참 앉아있다가 팔도 아프고 피곤도 느껴져 《가겠네.》 하고 일어나며 지나가는 말로 《복원씨도 왔데.》 하고 말을 해보았다.

《누가?》

《복원씨.》

《그의 말은 아예 내앞에서 꺼내지도 말게. 그날 채남씨한테 그를 못봤느냐 묻던 내자신을 생각하면 나까지 미워져.》

《그래도 널 존경하는 마음에 있어 그녀만 한 사람을 난 모른다.》

《그런 말은 걷어치우고 어서 준호나 나오도록… 데모밖에 방법은 없지?》

《암만해도 넌 복원씨 문제에 있어선 자신을 속이고있지 않으면 편협한것 같다.》

《난 도학자가 아니니까.》

상춘은 긴말이 오히려 그의 마음을 자극할것 같아서 입원실에서 나오고말았다. 그들의 사랑은 그들자신의 일이라 하겠지만 도무지 마음에서 떠나지지가 않았다.

 

채남은 복원과 약속한 남대문거리에 있는 다방으로 갔다.

다방은 전이나 다름없이 낮인데도 창을 가려 장식등으로 불을 밝히고 그 어둑침침한 속에 담배연기만 자욱했다. 복원은 구석진 자리에 방심상태로 앉아서 채남이 옆에 오는줄도 몰랐다.

《뭘 그렇게 멍청하고만 있니?》

복원은 놀란다.

《어떻게 벌써?》

《네 뒤모습이 하도 가엾어 쫓아왔어. 제발 이러지 마.》

《병원엔 안 들어가구?》

《아니.》

《요샌 몸이 좀 낫는지.》

《참, 네 맘을 몰랐구나. 난 너만 가엾어서…》

《정말 난 어떡험 좋아?》

《뭘 자꾸 그러니? 그건 의학적으로 보면 일종의 노이로제란거야.》

《넌 몰라 그래. 난 아버지한테서 편지를 받았어.》

《편지?》

《난 이제 아무데도 설자리가 없어. 자식으로도 그렇고 또 어떤 자리도…》

그는 애인이란 말은 차마 하지 못한다.

《편지를 봐도 좋으면 좀 보자. 어떤 아버지이길래 딸의 설자리도 주지 않니?》

《안돼, 이런데선… 그보다 내 너하고 꼭 의논할게 있다. 바쁘냐?》

《바빠도 네 얘기라면…》

복원의 하숙은 소격동이였다. 마당에 우물이 있고 그옆에 조그마한 화단이 있어 각종 화초들이 초여름 해빛에 싹트고있는 조용한 집이였다.

채남은 복원이 아버지의 편지를 하숙에 두고 와서 데리고 온줄 알았더니 하숙방에 들어서자 그는 품에서 그것을 꺼내 《봐.》 하더니 자기는 한편에 개여놓은 이불에 얼굴을 묻어버리고만다.

《복원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이 글을 쓰는것은 너의 학교에 딸을 보낸 7천의 부모, 형제, 자매들이 모두 내 심정과 같은것을 생각하고 이 부끄러움을, 이 고통을 함께 나누자 함이로다.

4. 19시위때에 나서지 않고 빠져버린 대학교는 서울서 너의 대학 하나뿐이였다.

시골에서 어엿하게 외과의사의 개업을 해서 네뒤를 보아온 내가 한사람의 아버지로서, 한사람의 이 나라 국민으로서 이렇게 슬프고 괴로와보기는 내 생애에 있어서 이번이 처음이다.

너의 학교는 5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있으나 학생들이 사치와 방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세평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너의 학교는 깊은 력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수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한 학교로서 그만한 학생수효로 보아 그러한 세평은 리해력이 부족한 견해라고 생각되여 력설도 하고 반박도 하여왔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나는 완전히 할 말이 없게 된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고말았다.

나는 오래동안 신문이란 신문을 모조리 뒤지면서 너의 학교이름을 찾았으나 단 한번도 발견하지 못하고말았다. 이 벅찬 력사적마당에서 그 젊은 대렬가운데 하필이면 내 딸 다니는 학교만 빠졌다는것은 무슨 해괴한 일이냐?

그 숱한 젊은이들가운데 내 딸의 모습이 끼여있지 않고 내 딸의 학우도 끼여있지 않았다는 사실-이것이 오십년의 전통과 력사를 자랑하는 내 딸의 학교가 홀로 보여준 교풍이였단 말이냐?

딸아! 내가 네게 바라는것은 비굴한 행복보다 당당한 불행을 사랑할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간절한 마음이였다.

서울의 거리가 온통 너와 같은 젊은 세대의 불길로 거세게 타오를 때 딸아,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었단 말이냐?

그 <피의 폭동>이 강산을 휩쓸고 마침내 낡고 썩은것들이 너희들 젊음앞에 굴복을 하고만 그 시각에 나의 피를 받은 너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고있었더냐?

그 불덩어리들속에 타오르는 심장의 피빛이 네 피와는 색갈이 다르더란 말이냐?

그 암흑을 밀어나가는 목소리들이 네 목소리와는 다르더란 말이냐?

정녕 그 젊은 기수들속에 네 생명을 바쳐 사랑하는 애인 한사람 없었더란 말이냐?

서글픈 일이다.

분한 일이다.

네 젊음을 스스로 모독한 너는 시대의 고아가 되고말았구나.

어찌 네 가슴에 빠찌를 달고 그 태양아래 활보할수 있으랴!

총탄에 넘어진 아들딸들을 가진 부모들의 비통함보다 털끝 하나, 옷자락 하나 찢기지 않은 너를 딸로 가진 이 애비의 괴로움이 더 깊고 크구나.

딸아! 어서 빠찌를 떼고 교문을 나와 병원으로 달려가거라. 죄인과 같은 부끄러움과 겸손한 태도로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그 젊은 영웅들앞에 네 피를 아낌없이 쏟아라.

그 젊은이들이 너 같은 녀자의 피라도 받아준다면…

너는 진정 그 젊은이들이 어떠한 귀중한 존재라는것을 모르느냐?

맨몸으로 리승만독재자를 몰아낸 그들이 독재자를 몰아내고 민주주의를 되살린 거기에만 영광이 있는것은 아니다. 반공통일이라는 수작으로 통일을 방해한자를 타도한 거기에 더 큰 의의가 있으며 따라서 그들의 손으로 통일의 길을 열어놓으리라는 기대에 최대의 영광이 있는것이다.

그들에게 네 피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이 애비의 기쁨이 어떠하랴. 네 피를 뒤늦게나마 아낌없이 쏟아라.

그리고 그만 시골로 내려오너라.

그 편이 한결 애비된 내 마음에 편할것 같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조용히 생각해보자! 결코 부자집 맏며느리감을 만들기 위해서 너를 대학에 보낸 애비는 아니라는것-네가 잘 알것이다.

이 찬란하고 장엄한 력사의 아침에 이렇게 흥분하지 않고는 못 배길것만 같다.

딸아! 이 늙어가는 애비의 맘을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너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보아라!

사랑하는 딸자식을 위하는 애비의 심중이 어떠할가를…》

편지는 거기서 끝났다.

편지를 읽던 채남은 중간에서 몇번을 쉬며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 읽고나서 《복원아!》 하고 부르자 그것은 그만 울음이 되고말았다.

두 녀학생은 서로 안고 울었다. 복원은 파들파들 떨었다.

《난 어떻게 하면 좋아? 아버지한테도 버림을 받고 세상도 날 용납 안할거고… 어떡험 좋아?》

《용기를 내. 아버지가 어디 널 버렸니? 오히려 난 너의 아버지가 널 지극히 사랑하는 뜨거운 정에 우는거야. 그런데 넌 아버지의 버림이라니…》

《난 지금 아버지의 매가 아파서 다시는 아버지앞에 갈 용기가 없어. 아버지앞에도 갈수 없는…》

복원의 오열은 점점 높아갔다.

《그렇게 생각말래두. 너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하면 되잖니?》

《나도 생각해봤어. 아무 병원에나 가서 내 피를 뽑아달라고 해보고도싶었다니까. 병원에도 갔었어. 그러나 이제 뒤늦게… 그래서 난 너한테 혹시 부탁해서라도 아버지 말씀을…》

두 녀학생은 울음을 진정했다.

채남은 복원 아버지의 편지로 4. 19를 다시한번 돌이켜보았다. 세상이 모두 신성하고 존엄에 차보이기만 하였다.

복원은 채남을 붙들고 그렇게 하소연을 하고나자 속이 조금은 후련했으나 아직은 괴롭고 채남이 부럽기만 했다.

《그런데 준호오빤 왜 또 못 나올가?》

복원은 조금 마음이 진정되자 자기 문제를 떠나서 사회의 돌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관심할만 한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글쎄말야.》

그들은 이것저것 생각해봤으나 모를 일이였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