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새로운 성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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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의 길은 대학생에게 있다.》
학생들은 그러한 프랑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12년 독재자를 맨주먹으로 쫓아낸 학생들이다.
5월의 하늘은 그들의 뜻같이 높고 푸르기만 했다. 신록이 시작되는 계절이였다. 학생들의 리상도 이제는 록음같이 이 땅을 무성하게 덮게 되는것일가.
《과도정부》가 서고 쫓아낸 리승만《정부》의 외무장관이였던 사람이 그 수반이 되였다. 학생들은 별로 그것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학생들눈에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파도가 앞에 넘실거릴뿐 《과도정부》니 하는따위 존재는 그때그때 떠돌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지닌 파도의 물거품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습》이란 개념의 한계가 어디까지이며 또 그 개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은 학생들의 꿈같이 명확치 않았으나 그들은 그러한 구호를 들었던것이다.
그들이 거리를 행진한다. 서울의 모든 거리가 새로웠다. 옥문이 열리고 정치범들이 석방된다고 한다.
옥문을 나서는 준호.
상춘은 채남의 부축을 받아 영천행 뻐스를 탔다. 그의 몸의 회복은 일진일퇴를 보이고있었다. 안정을 모르는 무리한 행동의 련속이 상처를 덧나게 하는 모양이였다. 한달쯤 절대안정을 하라고 의사들은 외출금지를 명령했으나 상춘은 준호의 출옥만은 꼭 자기 눈으로 보고싶었다.
뻐스에서 내다보는 거리에서는 대학생들이 비자루를 들고 청소를 한다.
일어나는 먼지를 마다하지 않고 남녀학생들이 사회의 오물을 쓸어내는 기분인지 깨끗이 쓸고나갔다. 시위때에 학생들에게 돌을 날라다 주던 부인들이 오늘은 더운물을 끓여다가 그들에게 제공한다.
네거리에서는 학생들이 팔에 완장을 두르고 교통정리에 나섰다.
경관들은 시민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버리고 학생들이 자진해나서서 질서를 잡고있는것이다.
《학생들의 세상이 됐어요.》
채남이 뻐스에서 거리를 내다보며 감격해서 말했다.
《준호도 감개무량할거야. 책에서만 배운 민주주의를 실물로 보게 되니까.》
상춘은 거리의 풍경도 준호의 출옥과만 련결시켜보게 되였다.
《나오는 순간 행복할거예요.》
《세상이 새롭겠지. 우리들도 이렇게 새로운데.》
형무소앞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출감하는 정치범들을 기다렸다. 문이 열린다는 오후 1시까지는 아직 서너시간이나 있었다.
사람들은 가지 않고 기다렸다. 형무소앞에는 해방감이 떠돌았다.
그 기분에 젖어서 덥고 지루한줄도 몰랐다.
모두들 수감되여있는 사람들의 《범죄》내용을 이제는 큰소리로 자랑하고있었다. 리승만을 저격하려다가 미결수로 10년형을 받고있다는 로인, 무슨 혁신당조직을 꾀하다가 잡혀서 1년이 되는 그날까지도 미결에 있다는 사람들, 리승만《정권》에 대한 비판기사를 썼다가 필화사건으로 복역중에 있는 신문기자… 그들의 가족들과 기자의 젊은 안해, 그밖의 많은 사람들.
민녀인의 남편 조씨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뚱뚱한 몸을 뚱깃거리며 상춘에게로 다가왔다.
《이번에 부상당했소? 저런!》
그는 상춘의 멘 팔을 보고 놀란다.
《우린 전혀 몰랐구려. 허긴 집(민녀인)이 늘 걱정을 하고있더군. 그런걸 난 요망한 소리말라고 책망을 하지 않았겠소? 그랬더니 정말 이렇게… 불행중 다행이였소. 그러나 영광의 부상이라고 해야지, 집에 놀러 오우. 세상이 이젠 밝았소. 밝은 세상에서 마음껏 공부들을 해야지, 대학생들은 나라의 기둥이니까…》
그는 상춘이 창피해서 견딜수 없을만치 4.19학생들을 찬양했다.
그는 민주당의 선거자금명목으로 사기를 하다가 징역을 사는 모회사 사장을 맞이하러 온것이다.
시간이 가까와오자 S대학 학생들이 많이 모였다. 교기까지 들고 왔다. 시위때나 선규의 장례때나 준호의 출옥을 맞이하는 지금이나 그들은 대학의 명예를 걸고 행동하려는 기분들이였다. 허강도 왔고 조광래도 몸의 한 부분같이 반도체라지오를 메고 왔다. 홍인표의 두터운 안경도 번쩍거리였고 의외로 한왕렬의 건장한 체격도 보이였다. 홍인표는 미리부터 준호가 출옥하는 광경을 상상하며 흥분한다.
《거인같이 옥문을 나올거다. 그 장면이 보고싶어 왔다. 그자체가 하나의 그림이 될수 있지 않는가 말야. 죄수가 파옥을 하고 나와서 발에 달린 족쇄를 돌로 까부시는 장면을 어느 소설에서 보았지만 그 소리가 높은 감옥의 벽돌담을 울린다는거야. 자유의 상징이지. 지금은 족쇄는 없으니까 그런 장면은 없겠지만 준호가 옥문을 나오는 광경은 아무튼 기념할 일이다.》
그는 모든것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나 인상으로 재려들었다. 상춘은 구태여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4. 19는 더욱 그를 민족적으로 각성시켰을것이다. 그는 시위에 참가했었다. 그의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며 미소하고있는데 허강은 그를 핀잔했다.
《넌 밤낮 책에서만 이야길 끌어내지?》
인표는 안경속에서 눈을 가늘게 하며 대들었다.
《그게 뭐가 나쁜가?》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현실은 그보다 더 장엄한게 있는걸 모르고있으니 넌 어떤 안경을 써야 가까운데걸 볼수 있느냐 말이다.》
《자유의 상징으로 그보다 더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으면 말해봐라.》
《선규가 죽어가면서도 부른건 그만 못하냐? 리승만을 쫓아낸 자리에서 학생들이 새 제도, 새 질서의 기발을 들고 행진하는건 그만 못하냐?》
《그건 가치감각으로 봐서 그렇다뿐이지. 자유를 박탈하는 감옥과 족쇄, 그걸 깨뜨리는 음향과는 비교가 안돼. 그 소린 시이고 그림이다!》
인표는 문학적인 상징을 두고 말했다.
《쳇.》
허강은 팔을 홱 내젓고 가히 상대가 안된다는듯 조광래가 라지오를 듣고 앉아있는쪽으로 가며 중얼거렸다.
《넌 밤낮 책이나 그런 환상세계에서나 살아라.》
인표는 피해가는 허강을 보며 자기 말에 몰려 가는줄 알고 어깨를 으쓱하며 상춘에게 동조를 구했다.
상춘은 6.28때(인민군대가 서울을 해방한 날) 그의 형 상백이 바로 그 서대문형무소에서 인민군대들에 의하여 출옥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표는 그만 또 감격하고만다.
《얘 문둥아, 이리 오너라.》
그는 허강을 불러서 바로
《땅크가 와르릉와르릉 저 벽을 바스고 들어온다. 죄수들은 안에서 철창을 마스며 만세를 부르며 드디여 6월의 밝은 대지로 뛰여나온다. 수천수만명이말야. 그들은 땅크병과 포옹을 한다.》
인표는 출옥한 죄수모양 허강의 가슴에 매달려 이리 뛰고 저리 뛴다. 허강은 영문을 몰라서 인표를 떠다밀었다.
《그것도 책에서 본거냐? 문학적환상이냐?》
《이런 무식한 친구, 바로 우리 나라 력살세. 6.28때 인민군이 이 감옥을 그렇게 파괴했단 말이다.》
그는 까맣게 높은 붉은 벽돌담을 가리킨다.
형무소앞에서 출옥, 죄수, 족쇄 그런 낱말은 장소에 어울리는것이여서 인표는 마냥 떠들어댔다. 한편에 서서 어디에 끼여볼가 기웃거리고있던 한왕렬이 다가오며 인표에게 주의를 주었다.
《인민군이야기는 아무리 자유가 됐다 하더라도 삼가하는게 좋을거요.》
왕렬은 사려가 깊은듯 그들 주위에 있는 알지 못할 사람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겁도 팔자요. 리승만이를 내쫓은 우리가 인민군이야기도 못해야 옳은가. 그렇다면 뭣때문에 민권을 찾았다고 우리가 만세를 불렀나? 뭣때문에 지금 학생들이 거리를 행진하나?》
《그럼 맘대로 떠들어봐요.》
왕렬은 학생들의 대세에 못이겨 오기는 왔지만 그런 기회를 리용해서라도 무엇인가 눈치를 채자는것이다. 되도록 홍인표의 분돋음이 되라고 땅에
침까지 뱉으며 돌아섰으나 인표는 인민군에 대해서
시간이 림박했을 때 복원이 택시를 타고 왔다. 출감하는 준호를 태워갈 예정이였다. 준호는 그 녀자의 외가로 먼 친척오빠가 된다.
그가 윤도를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것도 그를 통해서였다. 그는 4.19시위에 참가를 하지 못했다. 효자동종점에서 윤도가 부상당하기 직전 그곳에로 달려온 채남에게 그렇게도 안타깝게 그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은 일이 있었지만 그는 시내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대학의 송림속에서 멀리 총소리만 듣고있었다. 그가 다니는 녀자대학에서는 전체가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었다. 서울의 그 많은 대학들가운데서 유일하게 시위를 외면한 대학이였다.
윤도는 그것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며 그 녀자의 배신이라고까지 생각했다. 어떠한 사정이였는지는 모르나 그 대학이 평소부터 친미적이였다는 점, 자유당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점으로 보아 더우기 불쾌했다.
총알이 비발치는 가운데 채남이 상춘을 찾아와서 부상당한 그를 업어내고 한 그 희생정신이야말로 4. 19학생들의 사랑다운 사랑이라고 높이 찬양하고싶을 때마다 윤도는 복원의 존재가 불투명하고 희미해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윤도의 그 불만은 곧 복원에게 반응되였다. 그가 병원으로 찾아갈 때마다 윤도는 랭담했다.
상춘과 채남의 사랑이 4.19를 통해서 더 굳어졌다면 윤도와 복원의 그것은 4.19를 계기로 금이 간것이다.
복원은 슬픈 녀자로 되였다. 윤도와의 사이는 그만두고라도 세상이 부끄러웠다. 아버지의 질책의 편지도 받았다. 윤도의 랭대도 당연한 일로
알았다. 그러나 윤도를 잊을수가 없었다. 사랑과 존경이 더해가며 그는 고민했다. 고민과 회한이 가장 믿고 허물없는 준호의 출옥을 기다리게
하였다. 준호에게라면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심정을 털어놓을수 있으리라. 윤도에게조차 할수 없는 말도… 그 심리적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격동하는 시기에
상춘은 그들, 윤도와 복원과의 관계를 불행으로 알며 동정한다.
그러나 복원은 자격지심에 스스로 부끄러워 인사만 보내고 학생들과는 따로 한편으로 비켜선다. 뜨거운 해빛아래서도 그 녀자는 가을처럼 쓸쓸해보였다. 채남이 그에게로 가서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녀자들끼리니까.
정치범들이 나올 시간이 되였다. 홍인표는 육중한 철문이 활짝 열리는 장면을 그리고있었으나 그것은 굳게 닫긴채 옆의 작고 좁은 문만 열리고 출감하는 사람들도 7~8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7~8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작은 꾸레미를 들고 나오는 그림자가 철문사이로 보였다. 그들은 벌써 밖에 와있는 가족들이나 친지들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기도 했다.
순간 밖의 사람들은 숨을 죽여 조용해지며 저마다 기다리는 얼굴을 찾았다.
S대학 학생들은 준호의 그림자를 찾았으나 그들가운데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은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치며 달려간다. 악수와 포옹과 환호가 벌어진다. 그러나 너무나 적은 사람들만의 출옥이고 행운이였다.
《또들 나오는 사람이 없습니까?》
《뒤에 또 나옵니까?》
사면에서 그러한 질문이 쏟아진다.
《글쎄요.》
《정치범들만 나오니까요.》
《아마 또 있을겝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정치범들과 마당에서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사이에 애타는 물음과 애매한 대답들이 무수히 가고온다.
우선 그렇게 시초로 몇사람만 먼저 나오고 뒤에 또 계속해서 나오는가. 정치범의 석방이 그렇게 적을수가 없는 일이였다. 《정권》은 무수한 정치범들을 잡아넣었다. 그 많은 정치범들의 가족들은 출감자들을 둘러싸고서 그들끼리 좋아하는 광경을 남의 일로 흘려보며 자기들이 기다리는 사람을 찾아 발돋움으로 형무소안을 기웃거린다. 그러나 나오는 사람이 더는 없었다. 형무소바깥마당에는 환희와 초조와 의아가 한데 어울리여 잠시 혼잡을 이루었다.
70로인인 출감자가 흰 수염을 날리며 나와서 만세삼창을 부르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5월의
가족들이 소동을 일으키며 자동차에 태워가지고 급히 병원으로 달렸다. 리승만을 저격하려던 로인이였다.
출옥한 사람들이 학생들에게로 와서 치하를 한다. 그들의 출옥은 오로지 학생들이 흘린 피의 선물이라고 《학생 만세!》를 부르기도 했다.
민녀인의 남편 조사장이 기다리는 사기한도 정치범이 되여나왔다. 그는 호탕하게 웃었으며 간단한 인사의 연설까지 했다. 학생들에게 손도 흔들어보였다. 형무소안에다 한살림 잘되게 꾸렸던 모양으로 짐도 많았다. 이불, 세면도구, 책, 라지오까지 있어서 자동차에 싣고도 남았다.
복원이 타고 온 택시를 양보해줄수 없느냐 하는 교섭을 거절하자 짐을 한차에 구겨넣었다. 그들일행이 요란스럽게 떠난 다음 형무소밖은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2차로 출옥할지도 모를 정치범들을 기다려보게 되였다.
《준호는 왜 안 나올가?》
인표가 풀이 죽어 상춘에게 물었다. 여러 사람들이 학생들 주위에 모여들었다.
《인제 또들 나오겠죠?》
4.19로 하여 대학생들에게 보내는 시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의 표시로 상춘에게 물었다.
《또 나오지 않을리가 없지 않습니까? 정치범들의 석방이라고 했는데.》
상춘은 준호가 나오지 않는데 대하여 자기도 의문이 생기였지만 실망하고싶지 않아서 《또 나올겁니다.》 하고 단정해버리였으나 아까 《죄수》들이 나오던 좁은 문조차 어느 사이엔가 닫기여버리고 형무소의 안과 밖은 그늘과 양지의 완전히 딴 세계로 차단되고말았다.
상춘은 형무소정문옆 높은 담의 중간에 다락같이 매달려있는 접수구로 올라가보았다. 그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있던 간수는 친절하게 상춘을 맞이해주었다. 대학생들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무서워하고있기때문이였다.
《오늘로 또 출감할 정치범들이 있습니까?》
상춘은 간수가 내여주는 의자에 앉을 생각보다 궁금한 그것부터 먼저 물어보았다.
《없습니다.》
간수는 일어나서 깍듯이 대답한다. 더 물어볼 여지를 주지 않는 분명한 목소리였다.
《정치범들이 그것뿐은 아닐텐데요?》
《그렇습니다. 정치범들이 왜 그것뿐이겠습니까? 그러나 이번에 적용되는 정치범은 <보안법>이 아닌 보통정치범에만 적용되는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어떤 사람들을 맞이하러 오셨던가요? 실례올시다마는…》
《리준호란 우리들 친굽니다. 죄수번호로는 1055번이구요.》
《아, 1055번요, 압니다. S대학생이죠?》
상춘은 간수가 그를 아는게 반가왔다.
《1055번은 검사국에서 하는 일이니까 나도 잘은 모릅니다만 못 나갈겁니다. <보안법>인데다가 조금도 개준의 뜻을 보이지 않으니까요.》
《개준이라니요?》
상춘은 머리를 한대 맞는것 같아서 거칠게 물었다. 앞이 캄캄했다. 4.19혁명을 믿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그였던만치 그것은 너무나 뜻밖의 말이였다.
《사상을 고치는것말입니다. 저도 들은 말입니다만 개준도 현저한 개준이 있어야 되는가 봅니다.》
《누가 그따위 소릴 합디까?》
《우리야 뭘 압니까, 상사의 말을 옮길뿐이죠.》
《상사요?》
《녜.》
간수는 죄송한듯 머리를 숙였다. 그가 선 뒤벽에는 아직도 리승만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상춘은 접수구에서 나오고말았다. 일개 간수를 붙들고 따질 문제가 아니기때문이였다. 그는 높지 않은 계단을 기대와 자존심을 밟고 내려오듯 천천히 내려왔다.
학생들은 준호가 나오지 못하는 까닭을 상춘에게서 듣고 실망하며 혹은 분개했다. 대책이 론의되였다.
상춘은 간수의 말을 듣던 순간부터 혁명이란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그는 4.19를 남들이 부르는대로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로씨야의 1905년 혁명을 《피의 일요일》이라고 부르는것과 같이 4.19 그날을 《피의 화요일》이라고 부르는데도 자랑을 느끼였다.
프랑스대혁명, 로씨야의 10월혁명 등 력사에서 배운 혁명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부르죠아혁명, 부르죠아민주주의혁명, 사회주의혁명 등 술어들도 머리에 스쳐갔다. 혁명이라고 말할 때는 정권이 교체될뿐아니라 제도와 질서도 바뀐다는것을 알고있다. 다만 그는 10월혁명이 온갖 착취관계를 근절한 점에서 그 이전 선행한 혁명들과는 엄격히 구별된다는것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혁명이란 개념에는 제도와 질서가 바뀌여야 한다는것만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리승만《정권》이 제정한 《보안법》이 준호를 계속 억류해둘 힘을 아직도 가질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국민들이 리승만의 멸망을 바란것이 그 경무대에서 리화장으로 옮겨앉는것만을 의미했단 말인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혁명이란 개념으로 봐서도 그렇고 국민들의 감정이나 요구로 봐서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상춘은 또한 며칠전 하자영교수가 병원으로 찾아와서 학생들은 모름지기 4.19의 정신을 끝까지 고수해야 된다고 하던 말도 생각해보았다.
4.19의 정신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였다. 불굴의 의지였다.
학생들은 형무소마당에서 곧장 대법원으로 가서 항의를 하자고 격하게 의논하였다. 시위로 리승만《정권》을 타도한 그들에게 있어 불합리한 현상에 봉착했을 때 우선 항의가 먼저 생각되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거리는 오전보다도 더 많은 시위로 덮이였다. 큰 거리 어디에나 크고작은 시위의 행진은 흘렀다.
네거리에서 교통을 정리하는 학생들은 서투른 솜씨로 시위행렬을 통과시키기에 땀을 빼고있었다. 시위군중들이 추켜든 프랑카드에 쓴 요구조건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주는 로동운동에 간섭치 말라!》
지금까지 폭압에 눌려있던 로동자들이 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로동조합을 조직하는 한편 반동어용로조를 배척하는 운동을 일으키자 기업주들은 벌써부터 간섭해나서고있다. 그것을 반대규탄하는 행렬이였다.
《해고수당을 올리라!》
《XX회장은 물러가라!》
《판자촌철거를 반대한다!》
《년금을 10배로 올리라!》
《정치범사면법을 빨리 통과시켜라!》
《<국회>를 빨리 해산하라!》
지방에서 밤차를 타고 올라와 본사앞에서 련대시위를 벌리다가 《국회》의사당앞으로 몰려가는 어느 로동자들의 행렬, 무단해고로 몇달, 몇해씩 실직해있는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해서 초췌할대로 초췌해진 모습들, 소중한 남편이나 자식을 《국군》에 보내서 미군의 총알받이로 희생시키고 지금까지 년금이랍시고 몇푼씩 받아오는 미망인들 대부분인 군인유가족들의 울먹이는 표정들, 《일자리를 달라!》고 웨치는 제대군인들과 실업자들의 행렬.
그 어느 하나도 절박하지 않은것이 없으며 새 제도, 새 질서를 요구하지 않는것이 없었다. 그들도 모두 4.19에 참가하여 리승만《정권》 타도를 웨쳤다.
그 웨침속에는 절박한 생활을 더는 참을수 없는 생존의 권리를 위한 몸부림이 있었던것이다.
이제는 리승만을 쫓아냈다.
살길을 달라는 웨침이였다. 생활의 냄새가 풍기는 그들의 행렬에 비기면 《질서를!》 하는 학생들의 부르짖음은 어딘가 막연한 느낌이 있다고 상춘은 생각하며 대법원으로 준호의 석방을 요구하러 갔다.
무한한 가능성만이 약속된 4. 19앞에 제1호로 나타난 장애물, 자유와 민주주의의 파도에 떠도는 물거품인지 학생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준호는 그날 그렇게 출옥을 하지 못한것이다.
대법원에서도 책임있는 말을 듣지 못했다.
《어떻게 된노릇이냐?》
홍인표가 알수 없다는 얼굴로 상춘을 보았다.
홍인표는 4.19 그날 무수히 깨져나간 대법원청사의 유리창들을 쳐다보며 분개했다.
《우리들의 심장이 이렇게 분노를 느끼는 한 아직 우리들의 기발은 내린게 아니니까. 또 내릴수도 없고…》
상춘은 중얼거리듯 조용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