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18

 

그칠줄 모르는 군중의 기분은 그날 밤 땅크가 출동하고 발포로 또다시 사람이 죽고 다쳤다고 해서 가라앉을수는 없었다.

4.19이후 리승만은 교활하게도 그동안 리기붕이 자유당의 실권을 장악하고 얼마나 많은 부정과 탄압을 감행하였는가를 이제 와서 알았다는 담화를 발표하고 자기는 앞으로 자유당과는 인연을 끊겠다고 하면서 과거실정과 매국행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간계를 꾸몄다. 그러나 국민을 계속 기만할수는 없었다.

학생들과 인민들이 바라고 요구하는것은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정치제도였다. 늙은 매국노 리승만 나가라, 그것이였다.

26일의 새벽이 밝았다. 전날 밤 늦게까지 기세를 올렸던 시위군중들은 더욱 결의를 다지고 집을 나섰다.

서울시가에는 어제 밤 수만명의 군중이 단행한 시위의 흥분이 그대로 감돌고있었다. 그 흥분을 안고 벌써 아침부터 세종로와 종로4가 주변에, 미아리방면, 을지로2가, 4가에 수많은 군중이 길가에 늘어선 무장군대의 경비태세도 아랑곳없는듯 웅성대기 시작했다.

어느 틈에 탈취했는지 학생들은 뻐스와 택시들을 잡아타고 거리를 질주하면서 만세를 부르고 구호를 웨쳤다. 군중들은 박수를 보냈으며 경비사병들은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7시 가까이 되자 군중들은 시위태세를 갖추었다.

《리승만<정권> 물러가라!》, 《살인원흉들을 처단하라!》를 웨치면서 을지로에서, 종로에서, 세종로에서 집단적으로 행진하며 거리를 메우고 나갔다.

시위대들은 행진을 하다가 군용트럭이 출동하여 길을 막으면 다른 길로 로정을 바꾸어 참가인원의 수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나왔다.

점차 사병들은 군중의 기세에 압도되여 방관의 태도로 나오거나 상관앞에서 마지못해 하는체 극히 소극적인 경비태세로 되여갔다.

9시, 해는 높이 떠서 광화문네거리에 모인 수만군중의 등을 따스하게 비쳐준다. 군중의 열기와 경무대로 밀고 가려는 사람마다의 초조감은 네거리를 점점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어갔다.

군중은 경비군인을 물리치고 전진하려고 몸부림쳤다.

《경무대로 가자!》

《군인은 우리를 막지 말라!》

그러나 군인들은 대렬을 풀지 않았다. 2렬횡대로 중앙청에 이르는 넓은 차도와 보도를 완전히 봉쇄하고 시시각각으로 불어가는 군중들과 대치상태를 지속하고있었다.

군중이 한걸음한걸음 다가서자 그들쪽으로 맞받아오며 강제로 밀어버리고 총창을 앞으로 겨눈다. 땅크도 군중을 분산시키려고 육중한 차체로 육박해오고있다. 군중과 군대는 완전히 적아로 대치해있는듯 숨가쁜 시각이 흐른다. 이때 군중속에서 한 중년사나이가 가슴을 벌리며 흥분한 어조로 《우리들을 쏘아죽이오, 동포들을 쏘아죽이오.》하면서 지휘관인듯 한 하사관앞으로 다가섰다.

수천군중의 시선들이 중년사나이와 맞선 하사관에게로 쏠리였다.

하사관은 중년사나이를 응시하다가 머리를 들어 군중들을 둘러본 다음 한숨을 쉬였다.

《아저씨요, 거 무슨 말잉기오? 섭섭합니데이. 우리도 같은 피줄기의 국민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총을 쏜다면… 우리는 뒤로 돌아서서 이 아스팔트를 쏠랍니더. 아저씨, 말씀 조심하시이더.》

하사관은 경상도사투리로 이렇게 대답하고는 돌아섰다.

군중들속에서는 박수가 터져올랐다. 하사관의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또한 사병은 방독면을 제끼면서 말했다.

《나도 방독면속에서 여러분과 함께 울고있소. 내 동생도 이속에 끼여있을겁니다.》

거의 울먹이는 말이였다.

그러나 땅크는 여전히 육중한 차체로 군중을 밀어제낀다. 이리저리 땅크를 피했다가 다시 모여들고 하던 군중속에서 갑자기 한 소복녀인이 땅크우에 기여올라 《만세!》를 불렀다. 삽시간에 학생들이 까맣게 기여올라 땅크의 자유를 묶어버렸다.

수만군중속에서 우뢰같은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장관이면서도 가관이였다.

처음에는 지휘장교와 기관총수가 기여오른 학생들을 내려보내려고 애썼으나 도저히 가망이 없는줄 알았는지 환성과 구호를 부르는 학생들을 실은채 행진했다. 나중에는 시위대의 말을 좇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빙빙 돌다가 중앙청을 향하여 구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군중이 경무대를 향하여 다가가고있을 시각에 파고다공원안에 몰려든 군중들은 리승만동상의 목에 쇠바줄을 걸어 쓰러뜨리고말았다.

흥분한 군중들은 쇠바줄에 맨 동상을 죽은 개끌듯 끌며 종로2가에서 화신앞을 거쳐 세종로로 가서 경무대로 향하는 시위대에 들어섰다.

미제의 앞잡이로서 자유당과 《정부》의 상징이였으며 권력의 상징으로서 파고다공원안에 세워졌던 그 동상은 땅에 떨어져 실재인물인 리승만을 내쫓기 위한 시위에 참가하게 된것이다.

《국부》로서 12년동안 무한한 권력과 인민탄압과 매국행위를 일삼던 그의 동상에 대한 시민들의 보복-서울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있다.

리승만의 다음가는 폭압자 리기붕의 집도 군중들에게 포위되였다. 그들은 혼성시위대였다. 학생도 있고 실직자도 있고 4. 19에서 형제와 친우를 잃은 원한에 가득찬 유가족도 있었다. 그들은 경비하던 경찰과 《국군》들을 실력으로 물리치고말았다. 증오와 승리감에 도취한 군중들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인민의 고혈로 이루어진 호화찬란한 가구와 장식품을 하나씩하나씩 들고 전차길로 나와서 불을 질렀다.

금고에서는 몇천환짜리 보증수표가 무더기로 발견되였다. 그의 세도에 아부하여 리권이나 벼슬을 얻으려던자들이 바친 금액과 물품명목을 수록한 증여대장이 나왔다.

백화점 못지 않게 물품이 쌓였던 호화스러운 집은 드디여 처참한 해골과 같이 형태만 남게 되였다. 권력에 아부하는자들이 모두 그앞에 머리를 숙였고 하다못해 깡패, 경찰관, 말단관리들까지도 그 집 문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출세할수 없었던 그 복마전을 때려부신 군중들은 노기를 그대로 지닌채 세종로로 달렸다.

그밖에도 35명의 귀중한 희생을 내가면서 동대문경찰서를 습격소각한 사람들, 4.19에 미처 파괴해버리지 못한 파출소를 소각해버린 군중들이 이제는 자유당의 마지막보루로 남은 경무대를 향하여 모여들었다.

땅크에 개미떼같이 달려붙은 학생들을 선두로 그뒤를 따르는 수만군중의 노도는 《국군》들의 경비 제1선을 돌파, 계엄군사령부 계몽선전반이 국민의 요구가 경무대에서 토의중에 있다고 설명…

그러나 군중은 그것을 믿지 않았다. 계속 돌진, 군대는 후퇴하여 반공회관앞에 바리케드를 구축.

중앙청에서 또다시 땅크가 새로 굴러나오며 군중들에게 포신을 겨눈다. 이번에는 점령되지 않으려는듯 총을 잡은 군인들이 5~6명씩 땅크에 붙어서 군중들을 노리고있다.

그 땅크앞에 열살이 채 못되는 국민학교 아동과 다른 어린이들 2백여명이 어깨를 겯고 달려들었다.

《군인아저씨, 우리 오빠, 누나들에게 총부리를 돌리지 마세요.》

애절한 내용의 프랑카드를 선두에 든 꼬마들은 저마다 웨친다.

《아저씨, 군인아저씨, 우리들에게 총을 쏘지 마세요.》

지칠대로 지쳐 땀을 함빡 흘리며 그들은 웨쳤다.

이 나어린 소년들을 양의 무리로 묘사해서는 안된다. 총탄에 맞고 쓰러져가는 오빠, 언니들의 죽음과 총상을 막아보자는 일념뿐임에는 틀림없으나 자유당과 리승만의 폭압은 그들 어린 몸에도 가차없이 내려졌던것이다. 이 어린이들의 출현에 감격한 군중들은 용기백배하여 바리케드에로 육박해들어갔다.

《국군》들은 공포와 최루탄을 쏘아대며 필사적으로 방어를 폈다.

그 《국군》들가운데 권세환의 아들 권동진이 권총을 추켜들고 사병들을 지휘하고있었다. 그는 서울 동부지역의 경비를 맡고있었으나 중앙청과 경무대일대가 위급해지자 명령을 받고 소대를 인솔하여 급히 그곳으로 달려왔던것이다.

그는 땅크가 군중들에게 점령된 꼴을 보고 극도로 분개했다. 내심 경비사령부가 단호한 명령을 내리지 않는것은 《비애국적》이라고 이를 갈고있었다. 그의 눈에는 땅크는 고사하고 중기관총 하나면 군중을 모두 흩어지게 할것 같은데 공포와 최루탄으로 군중을 막는 처사가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수십만군중이 시체를 넘고넘어 자기한테로 달려들어 몸뚱아리를 짓밟고 달려가는 광경도 상상해보았다. 자기의 배는 이미 터져서 창자가 쏟아져나오고 어느 학생의 구두발에 걸려서 개창자같이 땅에 널린다.

그는 머리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가 뜨며 지척에 선 군중들을 보았다. 군중들속에서 그는 6촌동생 동일을 발견했다. 머리를 처매고 군중들 틈에 끼여 밀고 닥치고 저지선을 뚫어보려고 애를 쓴다.

동진은 부대를 지휘하기보다 동일의 행동을 주시하다가 몇사람뒤에 상춘과 그 어머니 또 채남이 역시 군중속에서 비비고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머리에 피가 오르는것을 느꼈다.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선규의 장례날 상춘에게서 받은 모욕, 그 말을 제 애비에게 전했더니 권세환은 상춘이란 놈은 아무때고 자기들 집의 화근이라고 말했었다.

상춘의 일행과 동일은 함께 온 모양이였다. 군중의 격동이 조금 잦을때는 서로들 아는체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군중이 파도치면 어디로 파묻혔다 또 나타나고 했다.

군대가 최루탄과 공포를 요란하게 쏘았다. 상춘의 어머니가 누구에게 밟혔는지 넘어졌다. 그를 동일이 일으키고 채남과 상춘이 부축하여 사람이 성근 곳으로 데려간다.

동진은 저도 모르게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군대들이 다시 공포를 쏘기만 기다렸다. 그 네사람가운데 누구를 맞혀도 그는 좋은것이다.

쏘기만 하면 명중시킬 자신도 있다. 수만군중에 대한 증오가 이상스럽게 상춘의 가족에게로 집중되며 그는 피를 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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