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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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규의 장례날이였다.
사망한 학생들가운데 신원이 판명되는대로 부모들이 병원에서 시체를 인수해가는 관례로 본다면 그도 응당 누가 그렇게 해야 할 일이지만 그는 어린 유정 하나를 남겨놓고 죽었다.
그가 차례를 양보해서 먼저 수술을 받게 된 학생들의 부모들가운데 한사람은 그의 숭고한 정신을 추모하여 선규의 시체를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일체 장례를 자기 아들같이 지내겠다고 하였다. 병원에서도 직원들이
그러나 선규로서야 아무리 죽었기로서니 학생들의 대렬을 어찌 떠나고싶을것이며 또 학생들은 왜 그를 놓아주고싶을것이냐. 장례를 담당하겠다는 병원이나 사람들에게 무수히 치하를 하고 역시 학생장으로 지내기로 했다.
서울시청의 관제로 룡산야구장에서 4. 19희생자합동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여서 의탁할데 없는 선규도 거기 포함시키겠다고 주장했으나 학생들은 단연 그것을 거절해버렸다.
선규를 대학으로 옮기였다. 교정잔디밭에 등산천막을 쳐놓고 거기다가 관을 안치해놓았다. 평소에 학생들이 모여서 그들의 꿈을 나누었고 학원의 자유, 민족의 운명을 론하던 곳, 그들의 요람이였다.
관은 꽃으로 덮이였다. 마지막고별을 하는 학생들이 그의 얼굴이 보고싶다 하여 관뚜껑을 열어놓았다. 학생들은 꽃으로 선규의 몸을 덮어주고 그의 차디찬 손을 오래도록 놓지 못했다. 장례식은 어떤 형식에 맞추지 않고 학생들의 의지와 기분, 그것을 반영하여 파격적으로 되여갔다. 상주는 유정과 어머니가 되였다. 유정에게는 사실을 감추려고 했으나 그 사정을 알게 된 차복 할머니가 유정을 보고 가엾다고 푸념을 하며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총명한 소녀는 모든것을 알고말았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유정을 어머니가 붙들고 관앞에 앉았다. 유정은 제가 아는 학생들이 고별을 하러 올 때마다 《오빠야!》하고 목이 메여 부른다.
학생들은 발인시간을 앞두고 계속 모여들었다. 누가 시킨것은 아닌데 저마다 검은 조장을 팔에 두르고 나왔다.
상춘은 채남의 부축을 받아가며 병원침대에서 억지로 일어났다. 사흘만에 일어나보는것이다. 입원하던 날 어머니가 그렇게 다녀가고 얼마후에 채남이 와서 선규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충격이 컸었다. 그것때문에도 그의 회복은 얼마간 더디였다.
금방 뛰여가고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선규의 사진을 가져오도록 해서 그것을 벽에 걸어놓고 울기도 하고 마음을 달래기도 했으나 마지막 그의 얼굴이 보고싶었다.
다행히 평소에 건강체였고 산속에서의 졸도도 순전히 출혈때문만이 아니고 그 며칠동안 침식을 잃고 뛰여다닌 피로에 출혈까지 가세해서 생겼던 증상이여서 아직도 식욕이 들지 않고 정신이 아뜩아뜩하며 밤에는 헛소리를 하고는 있으나 안정과 여러차례의 수혈로 비교적 빨리 회복되여갔다. 또 어머니가 의사에게 한 부탁까지 있어서 의사들의 성의도 지극했다.
그러나 아직도 탐탁해보이지 않는 동작을 보고 의사는 간호원을 붙여주겠다고 념려를 해주었다.
《제가 있으니까요.》
채남이 옆에서 극히 사무적으로 말했다.
《참, 그렇군요.》
의사는 뜻있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좋습니다. 너무 무리하진 마십시오. 데모야 안하겠죠?》
의사는 시위 그자체보다도 어디까지나 상춘의 건강을 념려해주었다.
《그의 장례가 슬프기만 할수는 없는노릇 아닙니까. 우리의 기발을 아직 내린게 아니니까요. 항거하다가 죽은 사람의 장례가 항거의 연장으로 돼야 합니다.》
《거리엔 군대가 덮였습니다. 아무쪼록 몸을 조심해서…》
부상당한 팔이 놀지 않게 붕대로 감아 가슴에 꼬부려붙이고 그우에 양복을 입었다. 한쪽 팔소매가 흔들거리는게 마치 한팔없는 《상이군인》같았다. 걸음도 부자유스러웠다. 채남이 부축해주었다.
병원후문 언덕길을 내려가자 곧 맞은편이 대학정문이다. 정문에는 찌프린 하늘아래 조기가 축 늘어져 바람에 날렸다.
대학주변에는 전투모를 쓴 군대들이 총을 들고 대학을 포위하듯 서있었다. 상춘이 정문가까이로 가자 어떤 청년장교가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권동진이였다. 그는 계엄군에 편입되여와서 한 중대를 거느리고 S대학근방의 질서를 《보위》하는 책임을 맡고있는것이다.
《오래간만이군.》
상춘보다 6~7살우, 상춘이 어릴 때에 고향에서도 보았고 가끔 어떤 기회에도 만난 일이 있어서 서로 풋낯이나마 아는 사이였다.
권동진은 《강자》의 태도로 손을 내밀려고 하다가 상춘의 부상당한 팔과 또 그보다는 옆의 채남을 보자 내밀던 손을 거두고 허세를 부려 가랭이를 약간 벌려 서며 가슴을 넓게 폈다. 미남에 속할수 있는 얼굴, 당당한 체구, 그는 자기의 우월감을 인식해보려는듯 미소를 띠웠다.
그러나 채남은 옆으로 비껴 그를 보지 않았다. 작년엔가 권세환이 채남을 며느리로 탐낸 일이 있었고 동진도 그에게 고백의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러나 하자영교수는 엄하게 거절을 해보냈고 채남은 묵살로 무시한 일이 있었다.
《부상을 당했나?》
동진은 긴치않게 물었다.
《그랬소.》
상춘은 짧게 대답했다.
《안됐군, 그런데 아까부터 내가 보니까 저기 관앞에 있는 로인이 군의 어머니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가? 난 혹시 군이 잘못됐었는가 생각도 해봤더니… 군을 이렇게 보니까 그런것도 아니고 내가 알기엔 아무도 그럴 사람이 군의 집엔 없을것 같은데…》
동진은 교문으로 보이는 천막앞을 보기도 하고 외면하고 서있는 채남을 곁눈질도 하면서 말했다.
상춘은 그의 물음을 무시해버리고 교정으로 들어갈가 생각하다가 어머니가 선규의 어머니노릇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바로 그 원인의 장본인이 지금 앞에 서있는 동진의 애비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은 높이 뛰였다.
《그것이 알고싶소?》
《내가 경비하는 구역의 일이기도 하고 또 군의 어머니기때문에…》
《좋소. 잘 들어두시오. 저기 저 관속에 들어있는 학생의 어머니를 당신의 아버지가 죽였소. 그래서 그 학생은 어머니가 없기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대신 어머니노릇을 하는거요.》
동진의 얼굴은 대번에 노기로 시퍼래졌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함부로가 아니라 사실이요. 못 믿겠거든 당신 아버지한테 물어보쇼.》
동진도 듣고보니 선거전에 집에 왔다가 들은 희미한 기억이 떠올라서 상춘의 날카로운 말에 미처 반격을 가할 말을 찾지 못하는데 상춘은 교정으로 들어가버린다.
관앞에 온 상춘은 주위가 모두 흐려만 보이고 오직 꽃속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선규의 얼굴만이 똑똑할뿐이였다.
그가 벌떡 일어날것 같은데 일어나지를 않는다. 상춘이 선규의 이마에 입술을 갖다대고 《선규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것이 그대로 통곡이 되고말았다. 그는 오래도록 울었다. 채남이 말려도 그는 그치지 못했다.
《그만해둬라. 얠 봐야지.》
어머니의 엄한 소리에 정신이 들자 유정이 그의 옷깃에 매달려 동동거리고있는것을 알게 되였다. 상춘은 유정을 안고 달래는 동안에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살펴보게 되였다.
많은 학생들이 조장을 팔에 두르고 가늘게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맞으며 운동장 여기저기에 서있고 시위를 조직한 지휘부학생들이 발인준비에 바빴다.
선규를 끝까지 살리려던 수도병원 사람들도 많이 와있었다. 수임의 얼굴도 보였다. 그는 상춘을 알아보고 그 슬픈 가운데서도 반가움을 누르지 못했다. 채남도 그가 누구인지를 곧 알아보았다.
상춘한테서 그의 헌신성을 이미 들은바 있어 한번 만나서 인사를 하려던 참이였다.
선규만 살았더라면 그들은 각각 자기들이 처한 위치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한 이야기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또 명랑하게 나눌수 있으랴마는 지금은 슬프기만 한 자리였다. 그들은 서로 손을 마주잡고 서서 선규의 관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장례식 식순에 따라 영결식을 거행했다. 먼저 장송곡의 주악대신 선규가 생전에 즐겨부르던 노래 《아리랑》을 취주했다. 원래 슬픈 가요지만 선규와 함께 생활하던 학생들은 그가 살아있을 때 그것을 부르던 모습이 안겨와서 장송곡보다도 더 슬프게 들렸다.
상춘이 조문을 읽었다. 관앞으로 나가는 그의 발걸음은 휘청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선규야!
여기 선생님들, 학우들, 유정이 그리고 많은분들이 네앞에 서서 네 이름을 목메여 부른다.
그러나 불러도 너는 대답없고 우리의 슬픔만이 커지는구나.
너는 정녕 우리곁을 떠나느냐, 우리의 투쟁은 이제 시작인데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떠나느냐.
슬프다. 네가 바라던 학원의 민주화, 학문의 자유, 새 사회, 새 제도의 꿈과 설계도는 어디에 두고 가느냐?
그 꿈들이 너무나 절실한것이고 또 원대하며 아무리 그 길이 험난하다 하더라도 그 길밖에는 우리 민족의 살길이 없기때문에, 그것을 두고 갈수는 없는 너이기때문에 우리는 너의 죽음을 믿을래야 믿을수 없다.
선규야, 일어나라! 그 꽃을 헤치고 일어나라. 여기 학우들이 모두 있다. 선생님들이 계신다. 너를 사랑하는 많은분들이 계신다.
네 동생이 있다.
그러나 너는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다.
네 고귀한 희생의 미소를 영원히 담은채 우리의 부름에는 그 입술이 열릴줄 모르는구나.
아, 슬프고 통분하다. 그리고 안다. 너와 우리의 꿈과 지향이 옳고 정당하기때문에 또 아무때고 오고야말것이기때문에 그것을 발악적으로 가로막는자들이 있음을, 그들의 뒤를 밀어주는 외세가 있음을…
우리는 그들에게 선전포고했다. 력사는 민주주의와 자유와 독립이 저절로 오지 않음을 가르치고있다. 그것은 용기와 피를 요구한다.
너는 그것을 위하여 네 용기와 청춘과 생명을 바쳤다. 선규야! …》
상춘은 그만 목이 콱 메고말았다.
그는 처음 선규의 이름을 불러놓고 목이 메였으며 울음으로 범벅이 되여 가까스로 거기까지 읽었던것이다.
주위에서 훌쩍거리는 흐느낌들이 더욱 그를 목메게 했으나 의지의 힘을 가지고 참고참다가 속에서 치받치는 격정을 더는 참지 못했다.
앞으로 넘어지며 관을 안고 탕탕 몸부림쳤다.
《선규야, 일어나라! 일어나라 선규야. 너를 우리모두 안아주마!》
그는 한팔로 관을 잡아일으킨다. 꽃이 관에서 떨어진다. 마치도 선규의 대답같이 모두 울음을 터뜨린다. 유정이 상춘의 허리에 와서 매달리며 엉엉 소리내여 소녀 그대로의 나이로 된다.
《오빠야, 엄마야!》
어머니가 와서 상춘을 관에서 떼여내려 하나 되지 않았다. 조광래가 그를 떼내여 천막밖으로 내왔다. 상춘은 운동장에 서있는 뽀뿌라나무를 안고 겨우 울음을 진정한다.
머리우로 비를 실은 검은구름이 달음박질친다.
분향이 시작되였다.
옆에서 어머니가 시키는대로 향을 꽂은 유정의 작은 손은 떨렸다. 유정이 먼저 향을 피우고 잔에 술을 붓게 했다. 술이 엎질러졌다.
《할머니, 오빤 술 안 먹었어요.》
《그래두 그렇게 하는거란다.》
《엄마가 술 먹지 말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대신 잔에 술을 붓고 유정의 손을 끌어 천막밖으로 나왔다.
교수들, 학생들, 래빈들이 차례차례로 분향을 했다. 향이 타는 연기는 저기압에 곧추 올라가지 못하고 회장자들의 사이를 감돌았다.
발인이 시작되였다. 장강틀에 관을 안치하고 그것을 생화로 덮은 꽃상이였다. 광목을 늘여 앞에서 학생들이 끌고 뒤에서 역시 광목을 그렇게 늘여 학생들이 따른다.
장송곡이 울린다.
상여를 멘 학생들은 선규가 배우던 강의실을 향하여 무릎을 꿇어 상여를 낮추며 대학과 고별을 했다.
생각하면 대학은 무던히도 그를 구박했다. 등록금미납으로 그를 교문밖으로 밀어낸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선규는 대학을 열렬히 사랑했다. 대학의 자유, 학원의 민주화를 위하여 싸웠다.
그가 부르짖고 바라던 그 리상이 실현을 보지 못한 지금 대학은 그를 영원히 보내는것이다.
비방울은 더 굵어졌다.
교문을 나서자 대학주위에서 기다리고있던 시민들이 상여뒤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권동진은 혼자서 흥분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사병들에게 기합을 주듯 꽥꽥거려 경비에 만전을 가하도록 청년장교의 지휘능력을 발휘하고있었으나 애도에 차서 정중하게 나가는 학생들이나 시민들을 어찌할수는 없었다.
그는 공연히 혼자서 열을 올리는것이다. 더우기 그의 열에 비하여 마지못해 천천히 움직이는 사병들의 행동은 그를 한갖 우습게만 만들었다.
장례행렬은 종로 큰 거리로 나섰다. 회장자학생행렬이 길게 큰길을 덮어 천천히 흐르고 장송곡이 슬프게 울렸다.
관앞에는 대학조기가 반으로 숙어가고 그뒤로는 명정(장례를 지낼 때 일정한 길이의 천에다 죽은 사람의 직급과 본 이름을 적은것)과 선규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말을 길게 쓴 프랑카드가 높이 떴다.
선규는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르고 숨을 거두었다. 그가 부른 어머니는 권세환의 제분공장에서 그렇게 불행하게 죽은 어머니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어머니에게서 낳았듯이 모든 사람은 이 땅의 아들딸이다. 그토록 이 땅의 운명에 대하여 걱정하고 론의한 선규가 죽으며 부른 어머니가 어찌 한 어머니만을 의미하였겠느냐. 그것은 사랑하는 이 땅이였으며 동시에 어머니였다.
학생들은 그들의 감정이 그러하듯 선규의 마지막말을 그렇게 해석하고 그러한 프랑카드를 들었다. 그 프랑카드가 이 땅이 처한 운명, 그것같이 비에 젖어 축 늘어졌다.
연도의 통행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모자를 벗으며 우산을 접고 장례의 행렬이 가는 방향으로 발길을 돌려 묵묵히 따라간다. 거리와 연도전체에
슬픔이 흐르는것이다. 그들은 모두
전차운전사들이나 뻐스운전사들까지도 자진해서 차를 멈추고 장례행렬에 길을 비켰다. 승객들은 내려서 연도로 들어서며 머리를 숙이고 프랑카드를 보았다.
때마침 룡산야구장에서 거행하려던 《4. 19희생자합동위령제》를 거부하고 조장이 달린 교기를 감아들고 오던 학생들이 있었다.
서울시 주최로 되는 그 행사에는 유가족들에 대해서는 령구 하나에 4~5명이내로 제한해서 구청장이 인솔하고 시민대표로는 한 동회에서 4명이내로 선발하여 동장이 인솔케 하고 특히 학생대표는 극히 제한한 처사가 그들의 반감을 사고말았다. 하여 교기를 말아들고 퇴장하여오던 길이였다.
그 학생들이 비뿌리는 하늘에 감아들었던 교기를 풀어 반례로 숙이고 행렬에 들어섰다.
행렬이 늘어가고 감정이 고조되면서 군대들과 학생들사이에는 그때마다 충돌이 일어났다. 장례를 주관하는 학생들이 나서서 질서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들의 목적은 충돌에 있지 않고 장중하게 선규를 보내는것이다. 보도기관의 기자들이 프랑카드에 렌즈를 맞추며 따라간다. 더 잘 보이도록 펴달라고 쫓아와 부탁하고 앞질러 가서 비에 젖은 아스팔트에 한쪽무릎을 꿇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행렬로 뛰여들어 장강틀을 잡고 상여소리를 옛날식으로 먹였다.
워헝훠헝
회오리 낭청 워헝
로인은 슬픈 가락에 맞추어 팔을 놀려가며 소리를 먹였다. 로인의 팔짓과 선률은 마치 우주의 슬픔을 한팔에 그러안는듯 했다. 상여소리는 생활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렇듯 즉흥적으로 감정을 표현할줄 아는 민족, 결코 슬픔에 굴할줄 모르는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슬퍼야만 하는지 모를 일이였다.
녀학생들이 계속 행렬로 뛰여나와 꽃을 상여에 던지고 유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들어갔다.
그러나 유정은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오빠에 대하여 표현하는 존경을 미처 다는 리해하지 못했다. 외롭기만 하여 어머니의 손을 꼭 쥐고 다박머리를 타달거리며 걸어갔다.
행렬은 갈수록 점점 늘어만 갔다.
장송곡이 계속 울리고 가는비도 계속 뿌리였다.
온 서울이 슬픔에 잠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