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12
상춘은 정능리산속 어느 한 언덕우에서 불타는 서울을 바라보고있다.
19일 밤이였다.
경무대앞에서 상춘이 윤도를 밀어내다가 쓰러지자 채남이 적십자표식의 기발을 던지고 뛰여들어 업어냈다.
그의 등에 업히고 학생들의 부축을 받아 끌려나오면서도 그는 진정을 하지 않고 학생들을 저항에로 호소하며 몸을 움직였다. 그래서 출혈은 더 심했다.
효자동종점 뒤골목 어느 집에 들어가서 채남은 구혈대로 상처를 동여매주었다. 상박개방성골절이였다. 겨우 지혈은 되였으나 팔이 너덜거렸다. 채남은 병원으로 가야 된다고 했다. 밖에서는 다시 집결을 호소하는 목메인 휴대용 마이크소리가 들렸다.
《전우들의 시체를 찾아옵시다아!》
학생들의 뛰여가는 소리가 골목을 진동했다.
상춘도 나가려들었다. 채남이 애원하는 눈으로 그를 막았다. 상춘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나만 살란 말야?》
《누가 저만 살랬어요. 움직임 출혈이 되니까 그렇지.》
《더 단단히 동여만 매줘요.》
《동여매지만… 출혈이 계속됨 생명에 관계돼요.》
채남의 음성은 울음에 흐렸다.
《생명만 중해?》
상춘은 내쏘았다.
《의학은 사람의 생명을 먼저 구하는거예요.》
《훌륭합니다. 그러나 난 의학도가 아니니까.》
채남도 다시 전투장으로 나가는 상춘을 잡지 못했다.
구혈대로 팔을 메워주며 걱정했을뿐이였다.
《붕댈 가끔 늦췄다가 다시 매야지 그렇잖음 찌아노오제에 걸리는데…》
《찌아노오제가 뭐야?》
《혈액중의 산소부족으로 저리고 피부가 파랗게 죽는 증세예요.》
《저린것쯤이야 참지.》
《그게 심함 나종엔 썩어요. 그러니까 입원해야 된다지 않아요?》
《싸움이 끝나면 병원에 내 발로 갈테야. 그러나 지금은 저 소리 들어봐.》
밖에서는 계속 집결을 호소하는 목메인 소리.
상춘은 밖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학생들앞에 섰다. 채남은 부상자를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그렇게 그들은 헤여졌던것이다.
그러나 낮에와 같은 대규모의 시위는 되지 않았다. 요소요소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질뿐이였다. 일단 저항을 포기했던 경찰은 경장갑차를 앞세우고 완전무장한 몇개 중대를 산개시켜 소총과 경기관총을 마구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살인작전에 접어들었다.
학생들은 수세에 빠졌다. 상춘은 산발적인 시위대원들을 한곳에 집결시키려고 뛰여다닌다, 찦차에 매달려다닌다 해보았으나 경찰의 화력은 너무도 강했다.
상춘은 어쩔수없이 세종로근처에서 한발한발 밀려나왔다. 7시가 되여 통금을 강요하는 고동이 길게 떨며 울렸다. 낮에 벌어진 비극을 통곡하는 소리같았다. 어둠이 서울시가를 차츰 덮기 시작했다.
통금을 무시하고 시위를 계속하려는 학생군중들과 미처 해산을 못하고 한곳으로 모인 사람들은 고동을 군호로나 삼은듯 시가 동쪽으로 빠지면서 시위를 계속했다. 그들은 낮에 탈취한 뻐스며 택시를 몰고 을지로와 종로를 거쳐 신설동과 돈암동 미아리쪽으로 향했다. 도중에 보이는 파출소마다 뛰여들어 불을 지르고 총을 탈취하여 뒤따르는 경찰과 총격전을 벌리였다. 맨주먹이였던 시위대는 소규모의 장비를 갖춘 무장기동대로 화했다.
동쪽시가일대의 밤거리는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평화적시위를 하다가 전우들의 많은 피를 본 학생군중들은 이제는 총을 잡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밤 10시경 동쪽으로 행진하던 군중들은 륙군 제15사단병력의 계엄군이 서울로 진주해들어오는 바람에 방향을 바꾸어서 일부는 산등을 넘어 고려대학교쪽으로, 일부는 정능리산속으로, 또 다른 한 부대는 뚝섬방향으로 떼를 지어나갔다.
상춘도 전우(알지 못하는 학생들이였으나 그 말이 참으로 실감이 있었다.)의 부축을 받아가며 정능리산속까지 와서 서울시가를 내려다보았다.
《형!》
상춘은 옆의 학생을 불렀다.
《왜요?》
《어딥니까?》
《뭐가요?》
《소속부대.》
《이건 아주 군대같군요, 경희대학교.》
《경희? 오늘 잘 싸우더군요. 난 S, 그런데 이러고만 있을테요?》
《이러고만 있으려면 집의 뜨뜻한 아래목으로 갔지 뭐라고 여길 오우? 산의 밤경치 구경할려고?》
상춘은 그 대답이 유쾌해서 웃었다. 웃는 바람에 팔의 동통이 더 심했다.
《이것 봐.》
경희대학생이 상춘앞에 무엇인가 내밀어보였다. 내미는 그것은 쇠붙이인지 별빛에 반짝이였다. 총이였다.
《난 학도병이였어. 총도 많이 잡아보았지만 그건 무기라기보다 언제나 흉기로밖에 느껴지지 않았거던. 누구를 위한 총이냐, 그런 의문이 늘 떠나지 않더란 말이야. 알겠어?》
상춘은 그 말을 알수 있었다.
《이렇게 총을 잡고 밤에 휴전선 산우에도 많이 있어봤고.》
경희대학생은 《국군》에 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멀리 앞에 보이는것은 이북의 평화스러운 마을들이야. 불이 반짝이거던. 낮에는 뜨락또르가 논밭을 갈았고… 그 마을들의 한밤의 안식을 겨누고있는 총이 그게 무기일수는 없더란 말야. 흉기였지. 무기라는 개념은 그걸 정당하게 쓸 때만 통용되는 말일거야. 그러나 오늘 밤 이 총은 정말로 무기지. 이렇게도 내 몸의 한 부분으로 다정하게 느껴질수가 있을가. 결코 금속성의 차디찬 물질이 아니라 피가 통하는 물건… 돈암동파출소에서 빼앗았어. 이것으로 래일은…》
그는 총을 꼭 껴안고 그래도 사람의 체온이 더 그리운지 상춘에게 기대여왔다. 상춘은 상처를 다치는 바람에 몸을 흠칫했다.
입에서는 저절로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부상당했어?》
경희대학생은 그제서야 상춘의 부상을 알아보고 간호원을 불렀다.
골짜기까지 그들과 함께 온 간호원이 있었다.
그 녀자는 어둠속에서 부상자가 없느냐고 소리쳐 묻고 다녔다. 거리에서 시위를 할 때에 부상자들을 찾아 뛰며 응급치료를 하다가 거기까지 따라온것이다. 간호원이 상춘의 팔을 봐주었다.
《많이 다쳤군요.》
《찌아노오제나 되지 않겠나 그거나 봐주십쇼.》
《의과대학이세요?》
간호원은 물었다. 어둠속이여서 얼굴들은 서로 보지 못하고 묻는 말이였다.
《안요.》
《그런데 찌아노오제걱정은 어떻게?》
《아까 어떤 녀학생이 붕대를 감아주면서 걱정해줄 때 귀동냥으로 들은겁니다.》
상춘은 채남의 걱정하던 얼굴을 눈앞에 떠올리며 간호원이 그가 아님을 아쉬워했다.
《그 란리통에 그런것까지 걱정해주는 녀학생이라면 머리가 비상히 좋든가…》
《좋든가 또 뭡니까? …》
경희대학생이 물었다.
《좋든가 애정이 대단하든가 그 둘중의 하나예요. 그렇지 않고선 그런 걱정까진 안하는 법이예요. 적어도 환자앞에선!》
《이거 왜 이러십니까? 여긴 전장입니다.》
상춘은 금방 채남을 생각하던 자기의 속을 들킨것 같아서 그런 말을 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이였으니망정이지 상춘의 얼굴은 벌개져있었으리라.
《전장에선 그런 말도 못하나요. 오히려 싸움터에선 솔직해진다는데요.》
《좋습니다. 찌아노오젠가 그거나 되지 않게 해주십쇼.》
《출혈이 많이 되긴 했어요. 이 붕대가 다 젖었어요. 팔을 늘 우로 치키고있어야 됩니다.》
그 녀자의 말이 채남의 말과 일치되여서 상춘은 새삼스레 울가망이 돼있던 그의 얼굴이 어둠속에 떠오르며 간호원이 채남같은 착각도 드는것이였다. 채남은 그의 생명을 걱정해주었다. 생명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팔을 절단해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의 불구를 념려했었으리라. 상춘은 어째서 그런 불길한 결론이 나오는지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녀자의 다심과 과민에서 나오는 《방정》쯤으로 귀담아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찌아노오제에 대한 간호원의 설명과 그 고통을 당하고있는 증상으로 미루어보아 그것은 채남의 과민만도 아니였던것 같다. 의학상지식에 기초한 판단이랄가. 채남의 총명이 그대로 애정으로 느껴지며 몸에 젖어든다.
무조건 지혈을 시켜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채남은 그 연약한 팔의 힘을 모아 이를 악물어가면서 구혈대를 단단히 매주었던것이다. 그러나 졸라맨 그 아래부위, 팔굽과 손으로는 신선한 피가 순환되지 못한다. 그 결과는 혈액의 산소부족으로 손끝이 저리고 색이 변하여 썩기 쉬우며 최악의 경우에는 절단해버리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30분에 한번정도로 구혈대를 늦추었다가 매야 된다.
《전투를 할려면 이런 상식은 알아두셔야 해요.》
간호원은 구혈대를 풀었다가 다시 매주면서 허물없이 그런 설명을 해주었다. 그날 전투와 산의 분위기가 그들을 허물없이 만들어놓은것이다.
《팔을 우로 치키고요.》
상춘은 간호원의 말대로 팔을 머리우에 얹었으나 그래도 저려드는 아픔을 참아가며 그날 밤의 일을 경희대학생과 의논했다.
간호원은 또다시 부상자들을 찾아서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 녀자가 부상자들을 찾는 소리에 대답이나 하듯이 누구인가 《상춘! 허강! 선규!》하고 바로 상춘이 부르고싶은 이름들을 부르며 올라왔다. 부르는 이름사이사이에 방송소리가 마치 그의 목소리같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맥락없이 들리기까지 해서 더구나 그가 누구인가를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춘은 속에서 치미는 반가움에 《어이, 나 여기!》하다가 팔의 동통때문에 입을 딱딱 벌리고말았다.
그것은 조광래였다. 그는 상춘을 알아보자 달려들어 어찌나 힘있게 포옹을 하는지 상춘은 또 한번 입을 벌리며 신음을 했다. 조광래는 원래 침착한 성질이지만 그날만은 그도 시위에서 받은 흥분을 그대로 안고 거기까지 온것이다. 많은 사상자를 보고 온 그의 마음에는 상춘의 부상쯤 의례 있을수 있는 일로서 별로 걱정도 않고 자기가 군중들과 함께 방송국을 점령하려던 이야기를 흥분속에 말했다.
《분해. 지금쯤은 우리들, 학생들의 목소리가 전세계에 왕왕 나가야 하겠는데…》
그러면서 조광래는 반도체소형라지오의 눈금판을 조절도 하고 흔들어보기도 하나 기계속의 어딘가 접속이 부실한지 잠간잠간 나오다가 금방 끊어지면서 감질만 나게 했다.
그러나 맥락이 닿지 않는 그 방송이나마 그것은 정능리산속과 외부와의 유일한 접촉으로 되는것이여서 학생들은 상춘과 조광래의 주위에 모이게 되였다.
《고쳐들 봐.》
조광래는 어느 손이 내미는대로 아무에게나 라지오를 맡겨버리고 상춘과 이야기를 계속했다. 시경무국앞에서 허강이 소방차를 탈취하는것을 보았는데 그는 어떻게 되였으며 선규와 윤도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동무들의 이름을 꼽아보았으나 모두 궁금할뿐이였다.
조광래는 평소부터 라지오에 흥미를 가지고있었던만큼 방송국점령의 중요성을 깨닫고 거기로 달려가서 군중들과 함께 내부를 점령하였었다.
그러나 아무도 방송기계를 다룰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무장한 헌병대가 달려들어 마구 총질을 하는 바람에 군중은 거기서 물러나지 않을수 없었다.
나올 때 그는 반도체라지오를 하나 탈취해가지고 나온것인데 헌병과의 결투에서 아마 기계가 고장난 모양이였다.
옆에서 학생들은 라지오를 분해하여 어름더름하며 기계내부를 더듬어보았으나 계속 잡음과 맥락없는 소리가 나올뿐이였다.
조광래는 다시 라지오를 달래가지고 성냥을 그어주는 불빛에 기계를 이렇게저렇게 점검해보았다. 접속나사가 한군데 풀어졌던것이다. 그것을 칼끝으로 조이자 《… 눌리고 눌렸던 남조선인민…》이라는 격한 어조가 별안간 라지오에서 튀여나왔다. 한껏 조용한 산속에 그것은 너무나 큰소리였다. 조광래도 놀라서 스위치를 꺼버리고 학생들도 무르춤하며 물러섰다. 그러더니 환성이 오르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조광래는 먼저 파장을 서울방송에 맞추어보았다.
…이 고요한 밤에 사랑에 취하여
너와 나와 호젓한 거리를…
쟈즈곡이였다. 지금까지도 퇴페적이고 도색적인 저속한 가요로 사람들의 정신을 타락시키려고 집요하게 놀던 방송은 그날 밤조차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개자식들!》
조광래는 파장을 차례차례 옮겨보았다. 전세계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엇갈리여 그 조그만 라지오에서 치렬한 론쟁을 벌리고있었다. 영어, 중국어, 도이췰란드어, 프랑스어, 아랍어, 일본어…
그 모든 언어들을 학생들이 다 리해하지는 못했으나 알아듣는 한에 있어서는 모두 서울의 그날 사태를 반영하고있었다.
서울의 사태는 그날 밤 전세계를 진감시키고있는것이다. 그 세계를 진감시킨 학생들이 지금 정능리산우에서 서울의 밤을 내려다보고있다.
《전세계여! 여기 우리 <한국>의 학생이 있다. 우리를 보라!》
누구인가 소리를 높여 웨쳤다. 북한산의 우람한 산그림자가 공중으로 솟아오르는가싶고 거기 서있는 학생들은 세계를 한눈에 보는 느낌이였다. 그 앙양되는 기분이 노래로 되였다.
일어나라 조국의 젊은이들
영광의 날은 왔도다
포학의 피로 물든 군기가 온다
들리지 않느냐 어디에나
잔인한 군대의 승냥이같은 소리
《마르세예즈》의 노래였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이 흥분해서 있을 때 조광래는 평소의 침착성으로 돌아가 계속 라지오의 음파를 잡고있었다.
《평양방송이다.》
그는 소리를 높였다. 학생들은 또다시 방송에 귀를 모았다.
방송은 《방금 들어온 소식》이라고 하면서 서울뿐아니라 남조선전역에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사태들을 보도하고있었다.
학생들은 그것으로 전국의 사태를 파악하게 되였다. 그날 시위는 서울뿐 아니였다. 대구, 부산, 광주, 전주, 대전, 강릉, 춘천, 청주 남조선전체가 화산같이 폭발한것이다.
놀랍게도 방송은 정능리에 와있는 그들에 대해서도 보도해주었다. 그 보도가 나오자 학생들은 환성이라기보다 울음이 나왔다.
학생들의 옷은 이슬에 축축히 젖어들고 몸은 으스스했다. 학생들은 그렇지 않아 노래도 부르고 어깨도 결으며 낮에 다 풀지 못한 울분을 달래고있던 참이라 방송원의 목소리는 갑절 친절과 고무로 안겨왔다.
《부상자들은 안정이 필요한데 어찌나?》
간호원의 걱정이였다. 상춘외에도 환자가 7~8명이나 되였다.
《휴전선고지는 여름에도 밤이 깊으면 개털외투를 입고도 춥거던. 이제 조금 있으면 여기도 추울거다.》
경희대학생이 총을 안고 보초를 서듯 서성거리며 중얼거렸다. 북한산 검은 산정에 걸렸던 별들이 자리를 옮겨 모두 서쪽으로 흘러갔고 북두칠성도 꼬리를 번쩍 들어 쏟아질듯 북쪽하늘로 기울었다.
《우리의 추위까지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총부리를 겨눈 나의 <국군>살이였네.》
경희대학생은 자기의 웃도리를 벗어서 간호원에게 주었다.
《이것이라도 덮어주소. 난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때 잡혀갈 각오를 하고 두껍게 껴입고 나왔더니 춥진 않습니다. 잡혀갈 각오가 이제 와선 우스운 소리가 됐지만…》
경희대학생이 웃도리를 벗자 그를 본받아 옷을 벗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것들로 부상자들을 덮어주고 눕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 부상자는 계속 떨며 신음했다. 무릎을 다친 학생이였다.
《따끈한 물이 있으면 좋겠는데.》
간호원이 안타까와했다. 저 산밑의 집으로 가볼 의논들도 해보았다. 그러나 위험했다. 경찰과 《국군》이 그들을 추격해 산아래까지 온것을 알고있다. 전우에게 따끈한 한모금 물도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만이 커갈뿐이였다.
조광래가 불을 피웠다. 락엽을 손더듬으로 긁어모아 불길이 일지 않게 돌로 눌러놓고 재불을 만들었다. 간호원이 그 창안에 감탄하면서 주사침그릇에 물을 끓였다.
학생들은 재불과 끓는 물이
《더 마셔요.》
《안요. 이젠 더운물이 들어가서 몸이 후끈해요.》
한사코 그는 사양한다.
《더운물이 들어가 그런것이 안예요. 학생의 맘이 전우애로 뜨거워진거예요. 내 마음도 이렇게 뜨거운데요.》
간호원의 말이다.
학생들은 불씨를 죽이지 않으려고 솔방울이나 삭정이를 주어다가 무드기 쌓아놓았다.
상춘도 벗어준 옷들을 덮었으나 옷들의 중량이 상처의 아픔을 더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간호원이 줄곧 옆에 붙어서 구혈대를 갈아매주고 받들어주어서 다행이였다.
상춘은 되도록 그에게 기대려 하지 않았으나 쇠진해가는 기력은 어쩔길이 없어서 간혹 끄떡하며 기대게도 되였다.
《미안합니다.》
《간호원에겐 그런 인사가 필요없어요. 더구나 오늘 밤은 전우인데요.》
《옳습니다. 전우죠. 어느 병원입니까?》
조광래가 전파방해때문에 잘 나오지 않는 라지오의 눈금판을 조절하면서 물었다.
《수도병원이예요.》
《중앙청옆의?》
《녜.》
《거긴 오늘 부상자들이 많았을텐데.》
《많았을거예요.》
그들은 그 병원에서 선규가 죽어가는줄은 꿈에도 모르고있었다.
《병원에선 오늘같은 일이 일어날줄은 조금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중앙청옆에 학생들이 밀려드는걸 보고 아무래도 무슨 환자들이 있을것 같아서 저는 구호반으로 나왔어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하다못해 허약자의 졸도나 두통이라도 있는거니까요. 그랬더니 이럴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오늘 난 참으로 많은걸 알았습니다. 악마가 누구란것도 알았고 학생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도 알았고요. 또 어떤것이 고귀한 죽음이며 삶이란것도… 병원에 있을 땐 죽음이 한낱 평범한 사실로 보아오던 제가 말예요. 그러니까 삶이란것도 어느 사이에 평범한 현상으로 인식돼왔을지 모르죠. 그러나 오늘부턴 달라질거예요. 이 어둡고 추운 산속의 하루밤이 나의 아직 짧은 생에서 제일 강력한 느낌을 주는건 무슨 까닭일가요?》
간호원의 그 물음에 상춘도 조광래도 경희대학생도 얼른 대답을 못하다가 경희대학생이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학도병때에 오래동안 총을 잡아봤지만 오늘 처음 총의 실감을 느끼는건 무슨 까닭일가요 했더니 간호원에게서도 그런 질문이 나오는군요.》
《간호원이나 <국군>생활에서뿐이겠나. 우리들 학생생활에서도 같은 말을 할수 있지. 언제 우리가 오늘처럼 나라의 젊은 학도란 긍지를 느껴보았는가 말야.》
조광래가 그런 말을 하면서 계속 라지오의 전파를 잡으려고 씨름질하고있었다.
상춘도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역시 같은 감정이였다. 지금까지의 그의 모든 생활, 노력, 공부, 사랑, 우정, 용기 그런것이 그날을 위해서 보존되여왔고 축적되여온것 같았다. 모든 학생들은 그날 자기들의 온갖 지혜와 용기와 우정과 정의감을 아낌없이 발휘하지 않았는가. 사람이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할 때 생의 희열과 보람을 느끼는것이다. 간호원도 그것을 느끼고 지어 행복감에 도취해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아까 그는 전장에서는 솔직해진다고 했지만 감정이나 지성도 싸움에서 가장 고도로 발휘되는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죽을수 있는 장소를 찾는게 가장 힘든 일이라는데 아마 우리들은 오늘 그것을 발견한때문이 아닐가요. 적어도 민족을 위한다는…》
《총 모엿…》
경희대학생이 구령을 내렸다. 엠1도 있었고 카빈도 있다. 그들은 만약의 경우에 대처하는 전술을 짰다. 그리고 불을 놓았다.
불이 활활 타올랐다. 불빛에 비로소 보는 전우들의 얼굴들… 둥글고, 넙적하고, 섬세하고, 투박하고 각각 다른 모습들.
그러나 하나같이 씩씩한 얼굴들, 새삼스레 서로 포옹하며 그날 밤을 축복했다.
불은 엄숙한 기운을 자아낸다. 불빛에 산정이 가까왔다가 멀어지며 밝았다가 어둠으로 떨어지면서 산의 장엄미는 갑절로 학생들을 숭엄한 정신에로 이끌어주었다. 학생들은 자기들이 지금 서있는 지점이 어디인가를 응시하고있다. 이 땅덩어리우에 발을 붙이고 섰다는 자각을 깊게 했다.
밤의 산불은 그것이 또 봉화의 의미도 갖는것이다. 학생들이 불을 놓고싶은 기분도 바로 그 어떤 호소성이였는지 모른다.
멀리서 봉화를 보는 사람들은 마음의 절박감을 느끼기마련이다.
서울시민들이 지금 정능리산에서 타오르는 불을 보고있을것이다. 너나없이 이 땅을 안고 우는 마음-
학생들은 둘러서서 침묵에 잠겨 꺼지려는 불에 나무가지를 던지고있었다.
계엄군이 시내에 진주해들어온 이상 래일은 시내가 군대로 덮일것이다. 그날은 경찰과 학생시민들과의 충돌이였지만 래일은 군대들과의 충돌로 된다. 그들은 땅크까지를 포함한 중무장부대요, 학생들은 시민들이 공급해주는 돌이 유일한 무기다. 돌과 현대무기와의 싸움, 승산이 있느냐 없느냐 그런 문제가 아니다.
과연 군대들이 어떠한 태도로 나오겠느냐, 론의의 초점은 거기 집중되였다. 학생들은 사병들의 량심을 믿었다. 비록 《국군》의 본질은 통수권이 미군에 장악돼있고 미국의 고용군대로 되고있는것은 틀림이 없으나 사병들은 어디까지나 이 땅의 아들들이며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의 자제들이다. 그들의 머리도 사고하는 생명체다.
철갑모는 쓰기 위한 장식물이 아니다. 학생들이 무엇때문에 봉기했는지 알것이다. 그들은 대부분이 농촌출신인데 저들의 부모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가를 생활을 통해서 오히려 학생들보다도 더 잘 알것이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이제는 잠드는 학생들도 있다. 우등불도 꺼져간다. 나무를 더 넣을 생각도 안한다. 깊어가는 밤과 꺼져가는 불이 묘하게 조화되여 산의 기분을 비장하게 만든다. 몸을 서로 의지하고 곤히 잠들어있다. 그사이를 학생들이 왔다갔다하며 보초를 섰다.
상춘은 아픔에 잠도 오지 않았다. 간호원이 구혈대를 풀어주었다.
《어지럽잖아요?》
어지럽지 않을리가 없었다. 팔꿈치아래로는 저리고 정신이 아뜩해지는것을 가까스로 참고있었다. 출혈은 출혈대로 되면서 찌아노오제인가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는것이다.
《참죠.》
간호원은 맥박을 짚어보았다. 백을 넘게 뛰였다.
《어서 날이 밝아야겠어요.》
명랑하던 그의 음성에는 불안이 풍기였다. 그 녀자는 시계를 보았다. 그러나 시계유리에는 하늘의 별이 하나 박혔을뿐 바늘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인가 불찌를 가지고 왔다. 2시 10분. 상춘의 손톱을 보았다. 퍼렇게 죽은 빛이였다.
《저리죠?》
《참죠.》
《어서 날이 밝아야겠어요.》
그의 음성은 앞서보다도 더 불안에 차있었다.
《정말 어서 날이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이 밝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은 서로 같지 않았다. 간호원은 상춘의 팔의 증상을 걱정해서였고 상춘은 래일의 시위를 상상해서였다.
밤은 자꾸 깊어갔다. 라지오는 먼 나라 대륙들,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전파까지 전해주었다.
그 대륙들은 지금 낮일수도 있고 아침일수도 있다. 그 대륙들에서도 지금 자유를 찾는 싸움의 불길은 타오르고있었다.
《어서 날이 밝아 데모를 나가얄텐데.》
상춘은 또 한번 중얼거렸다. 간호원은 학생들의 그 의지에 압도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은 새벽으로 옮겨간다.
민족의 운명도 새벽으로 옮겨가는것일가. 상춘은 그것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