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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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통금해제고동이 들리기 바쁘게 어머니는 집을 나섰다.
며느리와 손을 나누어 여러 시내, 여러 병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세브란스병원앞에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모여섰다. 파랗게 돋아난 잔디우에 흰 홑이불을 덮어 나란히 눕혀놓은 시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시체실이 차고넘친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곳으로 가서 하나하나 홑이불을 들어보았다. 모두 울어주고싶은 얼굴들이였다. 아들은 없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와보았다. 어머니들이 많았다. 모두 수심이 가득찬 얼굴들로 벽에 나붙은 부상자명단을 쳐다본다.
그 명단에 자기들의 자식이름이 없기를 바라는지 있기를 바라는지 자신들도 모르는 야릇한 심정- 자식들의 생사를 모르는 부모들의 안타까움이였다. 자식이나 가족의 이름이 없으면 우선 죽었거나 부상당한게 아니여서 반가운 일이건만 그래도 아직 불안이 해소된것은 아니여서 다시 또다른 병원으로 초조한 걸음을 옮기는 부모들과 가족들.
또 새로운 명단이 나붙는다. 사람들이 밀고 들어선다. 어떤 녀인이 그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한다. 모든 사람들 머리우로 하늘이 무너지며 캄캄한 절망이 짓누른다. 녀인은 땅을 치고 몸부림친다.
어머니도 그 녀인의 울음이 그대로 자기의 울음으로 되는것을 간신히 참으며 명단을 훑어보았다. 몇십명도 넘는 이름들이였다. 떨리고 급한 마음으로 한눈에 훑어본다. 오상춘이라는 아들의 이름은 분명 없다. 무겁게 한숨이 나왔다. 오장이 다 묻어나는듯 한 한숨이였다. 그래도 눈을 믿을수가 없어 다시한번 한자한자 뜯어보았다.
아홉번째에 있는 이름이 눈에 설지 않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신이 흐려지며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들의 동무들을 꼽아본다.
《박윤도.》
윤도도 윤도지만 성북경찰서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어머니, 어제 아침에는 윤도와의 약속도 있어서 광화문동으로 그 어머니를 찾아갔었다. 윤도 어머니는 아들이 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잡아주지 않았다고 원망까지 해서 찾아간 어머니를 섭섭케 했었다.
상춘의 이름을 발견한것이나 다름없이 다리에서 맥이 빠져나갔다. 그가 수용된 입원실로 찾아갔다.
침대마다 그 가족들과 학생들이 몇명씩 붙어있어서 어디에 윤도가 누워있는지 알수가 없었다. 수혈을 하고있는 구석진 침대에서 《마나님!》하고 윤도 어머니가 먼저 상춘 어머니를 알아보고 달려나왔다. 그는 한손에 구두 한짝을 쥐고있었다. 방안의 시선이 일시에 두 어머니에게로 집중되였다.
《이걸 어쩐대요?》
윤도 어머니는 상춘 어머니의 손을 꽉 잡으며 얼굴을 어머니가슴에 묻었다. 그가 손에 든 구두 한짝이 어머니등에서 덜렁거렸다.
어머니는 윤도가 죽어가는줄로만 알았다. 윤도 어머니는 계속 말한다.
《이 못난건 어제 아침에도 마나님 아들만 원망했더니 그 학생이 우리 앨 몸으로 막아 살려주고 저는 그만…》
윤도 어머니는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 일을 모두 어쩐대요? 우리 저앤 이렇게 다리를 잘랐으니 이 구둘 누굴 신겨준대요?》하고 울먹이였다.
어머니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몹시 애를 쓰며 매달리는 윤도 어머니를 안아 이끌며 윤도의 침대로 다가갔다.
윤도는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리고 외면을 했다. 한쪽다리는 잃었으나 생명만은 겨우 건진 모양이였다.
거기 섰던 학생들이, 아니 윤도 어머니가 그 말은 자기가 꼭 해야만 잘못이 속죄나 되는듯 얻어들은 말을 데등대등 옮기였다.
효자동종점 바리케드앞에서의 그들의 부상.
윤도는 감기는 눈으로 상춘이 쓰러지는것을 순간 보았을뿐 그뒤는 모르고있다.
도저히 상춘은 살지 못했을거라고 학생들도 말끝을 흐렸고 윤도 어머니는 울음을 삼키며 흐느꼈다.
어머니앞에는 캄캄한 어둠이 좌르르 내려졌다. 한참동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어둠을 배경으로, 어제
밤 꼬박 새면서 상상해보던 장면들이 조금씩 떠오르며 아들의 죽음이라는 현실에
어머니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무튼 시체를 찾아야 한다.
《마음을 든든히 먹고…》
어머니는 윤도의 침대에 허리를 굽혀 위로했다. 그것은
《아주머니, 상춘인 죽지 않았을거예요. 전 그렇게 믿어요. 용감한 애가 왜 죽어요. 어제 아침에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그 초상화, 그
말씀으로 우리가 얼마나 강해졌기에요. 우리는 온종일
어머니가 어제 한 말을 윤도는 그대로 옮기였다.
《고맙네.》
뜻하지 않게 어머니는 눈물을 흘려 윤도의 얼굴에 떨어뜨렸다.
어머니는 병원을 나오다가 하교수 부인을 만났다. 그 녀자도 간밤에 돌아오지 않은 채남을 찾아나섰다는 불안한 얼굴이였다. 이미 두군데 병원을 들려보는 길이나 알지 못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윤도에게서 들은 채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교수 부인은 채남과 친한 동무의 집이 후암동에 있어서 왔던 길에 거기라도 가보겠다고, 피차에 소식을 알게 되면 기별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여졌다.
서울은 어쩌면 이리 조용하냐? 어제 그렇게도 화산같이 터졌던 학생들의 기세는 모두 어디로 가고 서울거리는 죽은듯 이다지도 조용하냐?
20일 그날도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서 다니기는 했다. 어제만 못지 않게 온 거리를 메우고있다.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고 무거운 침묵과 애도에 잠겨있다.
병원으로 찾아다니는 가족들은 모두 수심에 싸여서 걸음을 옮긴다. 시민들은 무언으로 그들의 뒤를 따른다. 남의 일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러나 계엄군이 병원문을 굳게 막고 들여놓지 않는다.
병원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에 고개만 숙이고있다가 또다시 다른 병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가만히 한자리에 머물러 서있을수가 없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은 그렇게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무리를 지어 이동해다닌다. 파도치듯 그렇게 움직여다니면서도 애도에 잠겨 무언을 지키는것이 더욱 온 서울거리를 검은 조장으로 덮어놓은듯이 조용한 도시로 만든다.
그속을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걸어간다.
채남은 간밤에 의대부속병원에서 밤을 밝혔다. 그 병원에는 거기서 가까운 중앙청앞과 시경찰국 무기고주변의 부상자들이 많이 밀려들었다.
그곳 시위의 격렬성과 참상은 봉기의 성격을 띠였던만큼 부상자들도 많았다.
병원은 피에 잠기고 신음에 찼다. 채남은 세차례나 부상자들을 태워 나른 다음 상춘과 윤도의 일이 궁금해서 그 부속병원을 나오려 했으나 그 참상들을 보고 들으면서는 차마 발길이 돌아서지 않았다. 그가 데리고 온 부상자들의 생명에 마음이 더 끌렸다. 그중에는 나어린 녀학생도 있었다.
채남은 병실들을 돌아보았다. 얼굴, 복부, 대퇴부의 관통, 대장이 로출된 남자, 턱이 떨어진 녀자, 모두가 선혈에 물들고 엎드린채 누운채… 의사들과 간호원들은 각각 외과로, 수술실로 결국은 과를 가릴나위도 없이 부상자들을 급한대로 응급처치만 해서 아무 병실로나 우선 보낸다.
부상자나 시체를 덮어준 하얀 홑이불에도 피는 물들어 병원은 어디를 보나 피의 일색이다. 의사들의 신경은 그들이 잡고있는 메스와 같이 오직 차고 랭정해야 되는것이지만 그날은 그들도 도저히 그럴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며 격동하여 수술을 한다. 피로한줄을 모른다. 그들은 지금 의사가 아니다. 오직 피와 죽음에 항거하는 불사신인것이다. 긴장한 얼굴로 시체의 피를 닦고 사지를 매만져 안치해놓고있는 간호과 학생들.
채남은 그곳 병원이 생소했지만 그런것을 가릴 때가 아니였다.
어느 틈엔가 그도 간호원들속에 끼여 함께 돌아갔다.
그러다가 어느 병실에 누워있는 옥선규를 보았다. 그는 놀라며 그의 침대로 다가갔다. 경상인지 모든 부상자들이 그렇게 신음하는 가운데 그만은 반듯이 누워서 눈을 감고 채남이 앞에 서있는것도 모르고있다. 얼굴은 백지장같이 희였다.
《선규씨!》
고통스러운듯 감고있던 눈을 겨우 떠서 채남을 보고 놀라며 반가와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채남은 그의 손을 잡았다. 얼굴은 그렇게 창백하면서도 손은 불같이 뜨거웠다.
《수술했어요?》
그런 경우 다른것은 물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싸우다 그랬고 경찰의 총에 맞은것을… 수술만이 급하고 생명이 중했다.
그는 그 물음에는 《저 소리를 들어봐요.》하고 애매한 대답을 하였다.
각 병실과 복도에서는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높았다. 그것은 차마 들을수 없는 처절한 소리였다. 그중에는 수술을 독촉하는 각박한 말도 들리였다.
《부상자들은 워낙 많은데 의사들의 손은 부족해요.》
《평화시위에 놈들은 그렇게 총을 쐈단 말예요. 놈들은 사람이 아니고…》
선규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나 채남은 그의 수술여부가 더 궁금했다. 복부에 씌워놓은 홑이불을 들어보았다. 복부관통의 중상, 림시로 처치만 해놓고 수술은 아직 하지 않았다.
채남은 의사들한테로 달려갔다. 의사들도 그 복잡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어서 림시로 그렇게만 해놓고 잊어버리고있는지도 모른다. 의사가 곧 와서 보고 수술대가 나는대로 데려오라고 간호원에게 지시를 주고 갔다.
《이놈의 세상을 끝까지 뒤집어엎지 못하고 난 이렇게 부상이 돼서… 지금도 학생들은 어디서 싸우고있을텐데…》
선규는 무기를 잡지 못한 그것이 암만해도 분한 모양이였다. 선규는 무기고의 담이 뚫리고 그 구멍으로 금속성의 번들거리는 무기가 보이는대로 배밀이하여 기여가다가 정신을 잃고말았던것이다.
《분해. 학생들이 얼마나 용감했어요. 채남씨도 봤죠. 총탄이 비오듯 하는 속을 돌로 대항해나가는 우리 학생들을 말야…》
《너무 말하지 말아요. 지금은 가만히 안정해있어야 돼요.》
《아니, 난 지금은 오히려 우리 학생들의 용감한 얘길 하는게 더 괴롭잖고 편해. 그 용기를 가지곤 그까짓 경찰쯤은 아무것도 아니였는데… 우리는 정의고 저놈들은 고용자거던. 문제도 아닌 대결인데 그걸 못하고 애꿎게 학생들만 죽어갔으니 분하단 말야. 또 저렇게 죽어가고있잖아? 더구나 난 학생들을 그리로 이끌고 간 책임감도 느껴.》
《책임감은 무슨… 다 자각적인 행동이였는데. 그것들이 증오스러울뿐이지.》
《그렇긴 해도 나어린 중, 고등학생들한텐 그걸 안 느낄수 없어.》
얼마후 간호원들이 담가를 들고 왔다.
그러나 선규는 머리를 젓고 신음소리가 높은 옆침대를 가리켰다. 누군지 알지 못하나 그는 무기쟁탈에서의 귀중한 전우, 그를 먼저 수술해주라는것이였다. 간호원들은 그들의 치료생활에서 생명을 다투는 많은 경우를 당해보았으나 자기의 생명을 양보하는 그런 환자는 일찌기 본 일이 없었다. 평소에 침착하던 사람도 최후에는 허둥대기마련이다. 간호원들은 감동하여 채남을 보았다. 채남도 옆에서 보다 못해서 《선규씬 위급해요.》하며 그의 수술을 재촉했다.
《누구나 다 위급할거야. 그러나 난 무기고습격에선 책임이 있어. 전투에서 지휘관이랄가, 지휘관은 공격에선 앞을 서고 후퇴에선 뒤를 서는거야. 그만한 책임감은 있어야 우리가 새세상을 바랄수 있지 않을가?》
얼마후 간호원들이 두번째로 왔을 때 선규도 수술실로 가려 했으나 때마침 담가에 실려 들어오는 다른 학생이 또 있었다.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 학생의 애된 소리가 애처로왔다.
선규는 이번에도 또 그 신음하는 담가를 가리켰다. 간호원이 의사를 데리고 왔다.
《학생은 더 급한데 병원에 와선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죠.》
《난 참을수 있습니다. 저 어린 학생이 더 급한것 같군요.》
《신음과 의학상 소견과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거요. 정신적문제지.》
《난 아직 참을수 있습니다.》
《알았소. 생명앞에 당황하지 않는 정신력이면 모든걸 극복할수 있죠.》
선규의 그 태도는 즉시 병원 전체 성원들에게 알려졌다. 그 정신에 감동된 의사들과 간호원들은 그를 조금이라도 빨리 수술대에 옮기기 위해서도 다른 환자들의 수술과 치료를 서둘렀다.
결국 선규가 세번이나 자기 차례를 다른 환자에게 양보한 다음 수술이 끝났을 때는 밤 9시가 넘었다.
채남은 그옆에 붙어있었다. 의사들과 간호원들도 각별히 그의 수술결과에 대하여 관심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아픔을 참는 강의한 선규의 입에서도 신음소리는 새여나왔다.
《어머니!》
그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낱말이였다.
채남은 듣다못해 일어났다. 그 녀자도 계모가 잘은 해준다 하지만 몸이 아플 때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적이 있다.
병원은 피가 부족했다. 수혈부에 저장해놓은것은 이미 초저녁에 다 떨어졌고 혈액은행에도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거기에도 피는 없었다. 각 병원이 다 그렇다는 그쪽 대답이였다.
낮에 아스팔트보도우에 강물로 흘린 그만한 피가, 그 이상의 피가 요구되는것이다.
부상당한 동무들을 찾아온 학생들이 채혈실로 모여들었다. 저마다 팔소매를 걷고 팔뚝을 내놓았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간호원도 있었다. 선규의 그 희생적정신이 병원을 지배하고있는것이다.
채남도 피를 뽑았다. 그러나 피는 부족했다. 외상환자들에게 외과적최선을 다한 지금에 있어 유일한 구원의 길은 피밖에 없었다. 날은 밝지 않는다. 환자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만이 높았다.
선규도 수술후에 한번 수혈을 했으나 그래도 얼굴은 점점 창백해갔다. 피의 부족이였다.
통금해제의 고동이 길게 울렸다. 간호원들이 밖으로 뛰여나간다. 채남도 뛰여나갔다.
《피가 요구됩니다. 죽어가는 학생들에게 피가 요구됩니다.》
그들은 피가 요구된다는 조그만 프랑카드를 만들어가지고 아직 어스레한 새벽거리로 나섰다. 골목의 밤새껏 열어놓았던 대문들에서 사람들이 뛰여나오며 병원으로 달린다. 시민들도 간밤에 한잠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밝혔던것이다.
선규는 두번이나 수혈을 했다. 그러나 그의 수술후 상태는 악화되여가기만 했다. 시간이 너무 지났던것이다. 의사들이 번갈아 와보며 머리들만 기웃거렸다. 호흡이 점점 잦아진다. 산소흡입도 악화되여가는 상태를 막지는 못했다. 그의 정신상태도 맑았다가 흐려지며 명암을 왕래했다.
《상춘이와 윤도는 경무대로 갔는데 어찌됐는지 몰라?》
채남에게 물었다.
《무사히들 집으로 갔어요.》
《거긴 총을 더 많이 쐈어.》
그의 기력은 점점 쇠잔해가서 말하기도 힘들어했다.
《오늘도 학생들이 일어났는지 알아다줘.》
아직 이른아침인데도 그는 그것을 분간하지 못했다.
채남은 밖으로 잠간 나갔다가 들어왔다.
《학생들이 어제보다도 더 많이…》
그는 꾸며댔다.
《오늘의 집결장소는 미국대사관이래요.》
경무대와 병원은 골짜기를 하나 둔 사이여서 직선거리로는 5백~6백메터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선규는 경무대에서의 총소리를 더 잘 들을것이고 오늘도 그곳이 집결장소라면 거짓말이 금방 드러날것 같아서 채남은 미국대사관이라 해두었다.
《잘해, 채남씨도… 잘들 싸워요. 상춘일 만남 잊지 말고 꼭 무기를 잡으라고 해요.》
그는 눈을 감고있다가 뜨면서 생각난듯 말했다.
《난 지금 이런 구절이 생각나. 조문도석사가라는 말야. 아침에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한이 없다는 뜻 아냐?》
《맘을 단단히 먹어요. 지금 왜 그런걸 생각해?》
《채남씨도 내 기쁨을 알거야.》
《말을 말고 안정해요.》
《어제 아침에 상춘 어머니가 우리헌테…》
《알아요.》
선규는 어제 아침에 어머니가 들려준 말씀에서 받은 감동을 말하고싶었으나 말할 기력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한정된 시야가 아닌 무한대로 펼쳐진 래일의 미래를 황홀감으로 보고있었다. 거기에는 그가 꿈꾸어오던 모든것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오붓하게 꾸미던 설계도도 있었고 통일되는 날의 장엄한 광경도 있었다. 통일된 조국에서 행복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선규는 그것을 말할 기력이 없었다. 말은 하나 목소리는 속으로 잦아들기만 했다.
채남은 림박해오는 그의 최후를 보았다. 싸우다 죽어가는
그는 그 거룩한 죽음을 저 혼자서 지키기에는
채남은 어머니의 손을 이끌고 급히 우로 올라왔다. 그는 울먹거렸다.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눈앞에 전개될 사태를 짐작했다. 그것은 아들의 죽음이였다.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급히 입원실로 들어섰다. 그러나 거기에는 상춘이 아니고 선규가 누워있는데 놀랐고 더 마음 아팠다. 첫눈에 선규가 마지막숨을 모으고있다는것을 알았다.
《선규!》
선규는 눈을 반짝 떴다.
《어머니!》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또다시 뜨며 겨우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일어나기만 해요.》
그러나 그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
그가 남긴 마지막말이였다. 그의 눈감은 얼굴에는 황홀한 미래를 보고간 영원한 만족이 있는듯 했다. 어머니는 선규와 그의 누이동생 유정의 손을 꼭 쥐여주고 운명했다는 선규의 죽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채남은 울었다. 림종을 지켜주던 의사와 간호원들이 위생모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를 생각지 않고
상춘만을 걱정한
선규에게 백포를 씌워주고 채남도 울음을 진정하며 어머니에게 물었다.
《상춘씨, 보셨어요?》
어머니는 채남의 얼굴을 보았다. 채남도 아들의 소식을 모르는게 분명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말을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