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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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비통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람마다 무엇인가 미진한 얼굴들이였다. 거리에 그 피비린내나는 광경을 남겨놓고 집에 가서 잠들수 없었지만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계엄령이 내린것이다. 7시부터 통금시간이 되였다.
고동이 이번에는 정말로 몸부림치듯 길게 울렸다.
저녁하늘에 노을이 비끼였다. 서울 거리거리에 흘린 젊은 학도들의 붉은 피를 비쳐 하늘도 저렇듯 피빛으로 붉게 타는가.
학생들이 찦차로 달리며 웨친다.
《시민 여러분! 우리 학도들이 죽었습니다. 그들은 원한에 사무쳐 눈감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쇼. 우리 젊은 학도들이 이렇게 살아있는 한 이 땅은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시민들은 그 울부짖는 규탄과 절규에 울음같은 환호성을 보낸다.
집에서는 귀선이 어머니를 기다리고있었다. 죽었던 어머니를 만나는듯 반가와 뛰여나오며 맞아주었다.
《어딜 가셨었어요?》
원망이 풍기는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집에 오는 동안 줄곧 아들만을 걱정했지 며느리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은게 미안했다. 그 녀자의 옷은 물감물로 젖어있다.
《어디서 그랬니?》
《경무대앞에서요.》
《경무대?》
어머니는 비로소 놀란다.
며느리는 그날 장에 갔었다. 장사를 하려고 나간게 아니고 그가 집에서 학생들이 하는 시위준비를 보고 그것을 장사하는 몇몇 동료 녀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몇몇 그런 녀인들이 있다.
귀선과 같은 처지에 사는 녀자들, 북이 고향이라는 실향녀인들.
그들은 학생대렬을 따라 시내로 들어가 경무대까지 갔었다. 처음부터 그런걸 예상한건 아니였지만 물도 떠다주고 돌도 날라다 주었다.
그때 귀선은 철조망을 향하여 기여가는 상춘과 윤도를 분명히 보았다. 그러나 그뒤 어떻게 됐는지는 모른다. 콩튀듯 총탄이 날고 사람이 사태같이 밀리는통에 그도 쫓기여 골목으로 피했었다. 간신히 사람들을 비집고 나가서 다시 그곳을 어릿거려보았을 때는 시체가 널려있을뿐이였다.
그 시체가운데 상춘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급히 집에 와보았더니 집에는 어머니도 상춘도 없었다.
영조마저 없었다. 한참 속을 조이던 참이였다.
《분명히 상춘이더냐?》
어머니는 따지듯 물었다.
《안예요, 지금 생각하니까 도련님은 아침에 회색옷을 바꿔입었는데.》
그는 우선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서뿔리 말을 꺼낸
《멀리서 봤다면서 회색인지 검정인지 어떻게 아니? 누가 사람을 옷으로 알아본다던. 뒤에서도 첫눈에 모습으로 아는거지.》
《모습도 아니였어요. 도련님은 뒤통수가 나오잖았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자기대로의 해석이 있었다.
《앞장을 섰을거구… 우리가 보지 못했을뿐이지 거기 있었을건데 이렇게 오지 않는구나.》
어머니는 상춘이 경무대앞 그 위험했던 곳에서 앞장섰을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사하기를 바랐다.
상춘은 오지 않는다. 아침에 나간 학생들가운데 하나도 소식을 모른다.
어머니는 그대로는 밤을 지낼수 있을것 같지 않았다. 집과 주위가 조용하자 낮에 보았던 끔찍한 광경들, 죽어가던 학생들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가까운 채남네 집에라도 가보고 와야 그 답답한 속이 풀릴것 같았다.
혜화동파출소에서 어머니를 불러세웠으나 어머니는 들은체도 않고 갔다. 순경 하나가 따라왔다.
《어딜 가아?》
어머니는 홱 돌아섰다. 경찰에 대한 격분을 참을수가 없었다.
《총맞아 죽은 자식 찾아다니오!》
순경은 기가 질려 한발 뒤걸음질을 치고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더 지체하기가 싫었다. 무시해버리는 태도로 갈길을 갔다.
하교수네 집에서도 돌아오지 않은 딸을 기다려 활짝 문을 열어놓고 그 계모되는분이 조바심을 하고있었다.
서울은 그날 밤 어느 집이나 대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누구나 쫓기는 사람은 마음대로 들어오라는것이였다. 서울의 력사가 생긴이래 처음 보는 일이였다.
특히 도심지대, 낮에 그렇게 싸움이 치렬하던 근방의 집들에서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순경에게 쫓기는 사람, 헌병에게 추격을 받는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감추어주고 모든것을 바쳐 환대를 했다.
밤새도록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신혼에 쓸 비단이불을 덮어준 집도 있다. 영웅들에 대한 인민들의 존경이였다. 적에 대한 미움이였다. 함께 싸우는 시민들의 동지애였다. 들어오는 사람을 남이 아니라 자기 딸, 자기 아들로 맞이하는것이였다. 그 집의 아들딸들도 지금 들어오지 않고있다. 죽었는지, 지금 어느 골목에서 아직도 경찰과 싸우고있는지 모른다.
서울은 그날 모두 한마음이였다. 나라를 바로잡기 위한 불같은 마음에서 너나 나나 다를게 없었다.
어제 18일 밤은 잠자지 않는 밤이였다면 19일 그날 밤은 대문을 활짝 열어 개방한 날 밤, 그들의 심장이 하나로 통한 밤이였다.
물론 서울이 다 그런것은 아니였다.
자유당에 붙어살던자들, 친미보수세력,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 경찰나부랭이, 그 끄나불들, 모리간상배들, 못난 겁쟁이들, 그런 놈, 그런 사람들은 문을 닫고있었으며 처세에 밝은자들은 세상이 장차 어떻게 돌아갈것인지 눈치만 보고있었다.
이날 밤에 남긴 아름다운 일화들도 많다. 전장이란 아름다운 이야기를 낳는 법이다. 격동돼있기때문에 아무러한 가식도 없이 선량한 시민들의 감정이 그대로 발현되기마련이다. 어머니는 낮에 경무대근처에서 보았던 채남의 이야기를 하자영교수 부인에게 해주었다.
교수는 서재에서 학생들 몇사람과 무엇인가 의논을 하다가 어머니의 자식걱정이 그에게도 옮겨가는지 코트를 걸치고 나섰다.
가까운 대학병원에는 순경이 정문을 철옹성같이 지키고 일체 외인의 출입을 금하고있었다. 밤 10시나 된 그때까지 구급차가 부상자를 련속 싣고 왔다.
교수와 어머니는 아들이 분명히 여기 실려왔다는 기별을 받고 왔노라 거짓말을 했으나 무가내로 순경은 한발자국도 그들을 병원에 들여놓지 않았다. 교수가 안 들여놓는 까닭을 따지였으나 순경은 상부의 명령일뿐 자기는 모른다면서 듣지 않았다. 그날 그렇게 병원에 일체 구호의 손길조차도 차단해버린것은 어디까지나 학생들과 시민들의 봉기에 대한 위정자들과 경찰의 보복행동이였다. 그것으로 하여 죽지 않을 생명까지도 구원하지 못한 실례가 얼마든지 있다. 헛걸음만 하고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자리에 누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날이 밝아 통금해제가 되기만 기다렸다. 각 병원을 다니며 찾아볼 작정이였다.
봄의 길지도 않은 밤이 마냥 늘어지게 지루만 했다. 요망한 생각만 자꾸 든다. 아까 병원에서 순경은 부상자들가운데 신원이 판명만 되면 밤에라도 통지해준다고 말하였다.
통지가 오지 않기를 바라다가도 그렇게 아무 소식도 모르고 밤을 밝히는 답답증과 조바심보다는 차라리 아무런 기별이라도 왔으면 하고 기다려지는 모순된 마음.
아들의 강한 책임감으로 봐서도 그렇고 며느리말을 들어봐서도 상춘은 경무대에 뛰여든게 분명했다. 부상을 당했을수도 있고 죽었을수도 있다. 무사하기를 바라는건 허황한 희망이였다.
죽었다면 그의 이름을 모를수도 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채 병원시체실에 혼자 누워있는거나 아닌가.
간밤에 웃목에 개여놓은 상춘의 양복저고리가 눈에 뜨인다. 어떠한 추리에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했다. 새옷을 입고 나가서 주머니세간도 아무것도 없으면 죽은 상춘의 신원을 알아낼 도리가 없을것이다.
양복을 펴보았다. 어제 동일을 안아일으키다가 묻힌 피자국이 손에 꽛꽛하게 감촉되였다. 양복주머니에서 일기용수첩이 나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수첩을 뒤적거렸다. 글씨는 가늘고 작아서 보이지 않았다. 며느리에게 수첩을 주었다.
귀선은 불빛에 바싹 다가앉아 수첩을 폈다. 수첩에는 여러가지 사항들이 기입되여있었다. 귀선이 알아볼수 없는 외국문, 무슨 금전출납, 어떤곳에는 우스운 만화까지 그려놓았다. 귀선은 그것들가운데서 알수 있는 구절들만을 골라가며 읽었다.
X월 X일
어머니는 나를 월급쟁이로 만드실 생각인지도 모른다. 로인의 안정된 생활, 소시민… 그러나 이 땅의 많은 가엾은 어머니들, 그들의 눈물이 없어지는 날 우리 어머니도 함께 웃으실수 있으면 좋겠다.
X월 X일
어머니는 나를 리해해주시는것 같다. 날개를 얻은것 같다.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한다. 내가 수치스러운 일을 하면 그것은 곧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것이다.
X월 X일
채남은 어머니의 처녀시절의 사랑이야기를 어머니에게서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사랑? 나도 모르는 일을 그는 안다. 새암비슷한 마음도 없지 않으나 어쩐지 기쁘다. 고생만 하시는 어머니에게 그런 과거라도 있기를 바란다. 아무때고 어머니한테서 직접 들어보자. 그러나 어머니가 말해주실지.
귀선은 그 구절을 읽고나서 묻는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
《어서 또 넘겨봐라.》
어머니는 일부러 역증을 내는척 했다.
귀선은 다음을 또 읽었다.
X월 X일
채남을 사랑한다. 사랑이란 귀중한것, 어려운것, 참된 사랑에 영광이 있으라. 그보다도 민족의 아들, 민족의 딸에 더 영광을!
X월 X일
김주렬사건, 그의 어머니가 통곡하는 사진, 가슴아프다. 그런 울음이 이 땅에서 없어져야 한다. 선규가 가엾다.
글은 거기서 끝났다.
귀선은 숨을 크게 쉬며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다.
《그끝에 몇자 적어놓아라.》
귀선은 시어머니의 결연한 표정으로 보아 그 뜻을 물을수가 없었다. 불손한것 같아서였다. 어머니는 부르고 귀선은 썼다.
4월 19일 밤
상춘아, 너 어디 있느냐, 어미와 아주멈이 기다린다. 모든 사람들은 오늘 너희들의 시위를 영웅적이라고 한다. 네가 설혹 죽었다 해도 너는 민족의 아들로 어미를 욕되지 않게 하고 죽었다. 네 소원이 민족의 아들이라면 나는 그 아들의 어미가 되련다. 이 길만이 너희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는것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