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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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밤 서울은 잠들수가 없었다.
K대학 시위의 흥분이 온 서울을 덮었다. 학생들의 평화적시위가 깡패들의 습격으로 피에 물든 사건이 서울의 밤을 격분으로 떨게 했다.
라지오는 부산에서도, 청주에서도 학생들이 일어났다고 보도한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그것으로 그만인가. 시민들의 가슴속에 품어오던 울분과 갈망이 그 한차례의 시위로 해결을 보지는 않았을텐데. 통쾌하면서도 어딘가 펴지지 않는 마음의 주름, 집집에서는 철없는 어린애들만이 짧아지는 봄밤을 안식할뿐 뜻있는 사람들은 잠들수가 없었다.
천일백화점앞에서 깡패들의 뒤를 돌과 곤봉으로 습격하여 학생들의 더 큰 위기를 모면시킨 중, 고등학생들은 경찰이 깡패를 잡지 않는것을 보자 격분에 차서 《깡패 나오너라!》, 《우리가 잡겠다!》고 웨치며 종로네거리를 향하여 새로운 시위를 전개했다. 큰길과 골목골목을 누비며 돌아갔다. 그들은 경찰과 정면충돌을 일으켰다가 통금시간이 가까와서야 집으로 흩어져갔다.
그들의 입에서는 저마다 《래일 보자!》, 《전 시내학생들이 시위를 하자!》라는 말들이 튀여나왔다.
그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가며 가까운 동무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다음 일을 약속했다. 18일의 밤은 그러한 학생들의 련락과 래일의 시위준비로 잠들수가 없었다. 경찰도 밤을 자지 않았다.
야간 《국무회의》가 열리였다. 자유당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미국대사관에서도 구수밀의를 했다. 패틀리는 본국에 암호전보를 보냈다. 어두운 밤을 노리는 야수의 철야와 같이 그들도 밤을 자지 않았다.
S대학에서는 초저녁에 정치학과 합동연구실에서 학생대표회의를 긴급히 열었다. 상춘이 《국회》의사당앞에서 만난 K대학 학생대표의 말을 전달했다.
원래 그들은 하자영교수의 《정당론》강의가 있던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위를 모의하기 시작하여 21일로 날자를 정했던것이다. 비밀을 루설치 않을것과 일이 실패하면 공동책임을 진다는 맹약서에 서명까지 한 다음 시위준비를 해왔었다.
다른 대학들과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미리 련락이 취해져있고 학생동원계획도 추진돼오던중 K대학이 그날 시위를 먼저 결정해버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긴박한 사정은 충분히 리해할만 한 일이였다. 경찰의 야만적인 저지선을 뚫고나간 용감성은 학생들의 의지를 과시한것으로 찬양할만 한 일이였으며 깡패의 습격에 대해서 공동의 분노를 참을수 없었다.
21일 시위의 예정을 당기는 문제가 토의되였다.
윤도와 몇몇 학생들은 준비부족에서 오는 실패를 우려해서 예정대로의 21일 거사를 주장했으나 그날 학생들의 기분이나 시민들의 표정으로 보면 준비는 이미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적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도 래일 19일에 봉기하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밤에 정치학과 합동연구실에 모여 시위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경찰의 습격을 받자 비품을 연구실에 감춰놓고 몸을 피해 여러 군데로 분산해서 준비를 갖추기로 했다.
선언문작성, 프랑카드, 삐라를 각각 분담해서 책임지기도 하고 각 대학과의 련락과 동원조직을 맡아서 가는 등 갑자기 계획을 바꿔서 하는 일이라 그것은 매우 어렵고 바빴다.
조광래는 한밤중에 한강 모래사장에 갔다. 한강 건너 흑석동에 있는 C대학 학생대표의 집으로 련락을 가지고 가는데는 룡산에 사는 그가 적임자로 뽑혔던것이다. 떠날 때는 통금시간전에 한강 인도교를 건늘줄 알았더니 삼각지에서 고동이 울리고말았다.
인도교까지는 어찌어찌 순경들의 눈을 피해왔으나 다리는 건늘수가 없었다. 광래는 모래사장에 샤쯔를 벗어서 묻어두고 우에 걸칠것만 꽁꽁 묶어
머리에 인 다음 강물로 들어섰다. 룡산제작소의 오랜 직공인 그의 아버지를 따라 한강변마을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그는 한강물에는
그가 물에 들어 가슴노리서부터 몸을 수평으로 눕혔을 때 조그만 매생이가 한척 소리도 없이 앞으로 미끄러져오더니 배에서는 물귀신의 손같은것이 하나 나오며 목을 찍어눌러 물을 두어모금 꼴깍거리게 했다. 조광래는 필사의 힘으로 물을 푸푸거려 토하고 배전을 잡아당겼다.
《그렇게도 살고싶은걸 뭐라고 이 밤중에…》
늙은 목소리였다.
《죽어봐야 사는게 좋은줄 알지.》
늙은 어부는 조광래를 투신자살자로 알았던것이다. 조광래는 어이도 없고 웃음도 나왔으나 한편 잘됐다고도 생각해서 어부가 하는대로 따랐다. 매생이는 강변으로 나왔다.
《담배 한대 붙여보우. 죽으면 담배도 다야.》
매생이바닥에서는 갓 잡은 고기인지 살아서 뛰는 소리가 들렸다.
《저런 미물도 살려고 저러는데… 그래 무슨 일로 죽으려들었소? 색시때문이요, 빚때문이요? 살기 힘들어 그러우? 살기 힘들어 그렇거들랑 며칠만 참아보지. 인제 대학생들이 일어난대. 누가 아오? 좋은 세상이 될지.》
《누가 그러던가요?》
광래는 늙은 어부의 말에 흥미를 느꼈다.
《다들 그럽디다. 오늘 벌써 일어났대. 왜 안 일어나겠소? 난 벌써 그럴줄 알았어.》
《어떻게요?》
《지난겨울에 이 강에 변괴가 일어났었거던. 립춘이 가까와서야 얼음이 얼었는데 얼어도 이만저만 아니였소. 밤중에 얼음조이는 소리에 잠들을 자지 못했소. 내 나이 70을 바라보지만 처음 보았소. 강물은 이게 이래뵈도 령험이 있는거요. 란리가 나도 나고 세상이 바로잡히지 않을말룸 왜 그렇게 변괴를 부렸겠소. 하긴 당신도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란리가 나도 나고 매돌로 갈아버리듯 세상을 갈아놔야지 못사오. 아마 대학생들이 무슨 일을 치를 모양이오. 며칠만 더 참아보오.》
《할아버지, 우리가 바로 그 학생들입니다.》
늙은 어부는 의외의 말인지 곧이듣지를 않았다. 조광래는 모래사장에 묻어두었던 옷을 보이고 이밤에 강을 건느지 않으면 아니될 사정을 루루이 설명하고서야 어부의 의심을 풀어주었다.
《분명 당신이 학생이요?》
《학생이 아니면 무슨 급한 일이 있기로니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강을 건느려들겠어요.》
《하긴 그렇소만…》
광래는 옷을 다시 입고 배를 탔다.
어부는 노를 저으면서 낚시군이 보는 사회상을 이야기하였다. 그도 역시 세상이 뒤집혀야 된다는것이였다. 하루에도 몇건씩 되는 투신자살, 모두 그 원인을 따지고보면 가난이 죄라는것, 어부는 고기도 고기려니와 죽으려는 사람의 마음을 돌려세우는것이 더 참된 낚시배의 목적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죽지 않으면 안될 사람의 딱한 사정을 막을수야 있소? 늙은 사람의 객적은 생각뿐이지. 부디 학생들이 세상을 바로잡아주게.》
어부는 강 저편에 가서도 낯설은 골목과 순경의 감시를 걱정해주었다. 어부는 흑석동일대에서는 낯이 넓었다. 광래에게 노와 고기바구니를 들리였다. 광래는 어부의 조수로 가장을 하고 목적하는 C대학 학생회장의 집을 찾았다.
거기서도 밖에 망을 세우고 학생들이 모여 래일의 준비를 하고있었다. 광래가 가지고 간 련락에 의하여 그들은 계획을 다시 따지고 일부를 변경했다. 밤중에 그들도 련락을 보내고 받으며 잠들을 자지 않았다.
서울 어디서나 그렇게 밤을 자지 않았다.
윤도의 애인 복원이도 하숙에서 밤 9시에 래일 시위가 있다는 기별을 받았다. 그는 몸이 불편해서 학교에 나가지 못했었다. K대학의 시위소식을 듣고서도 어떤 규모의것인지 몰라서 궁금하던터에 그러한 통지를 받고보니 무엇인가 불안하여 광화문동으로 윤도를 찾아갔다. 그가 도착하기 조금전에 나갔다는 윤도 어머니의 말이였다.
S경찰서에서 아들때문에 그렇게 비명을 올리던 윤도 어머니의 과민한 걱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복원이 찾아왔으나 아들이 없어 그대로 간것이 서운하기도 하며 통금시간이 넘도록 들어오지 않는 아들이 또 걱정되였다. 그는 가까운 곳 아들동무네 집으로 찾아다니며 가만히 문을 두드려보았다. 어느 집이나 모두들 불을 켜놓고 자지 않았으나 윤도는 없었다. 상춘네 집을 찾아가보고도 싶었지만 한번도 가본 일이 없어서 가지는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밝혔다.
상춘네 집에서는 상춘, 윤도, 선규가 삐라를 등사하고있었다. 대학에서 경찰에 쫓겨 집으로 온것이다.
윤도는 등사기의 기능공이였다. 그것으로 학비를 벌어쓴다.
그는 원지를 끊기도 하고 한편 등사로라를 직접 밀기도 했다. 천정에 고무줄을 매서 반자동식으로 판이 올라가게 하여 능률이 나도록 했으나 처음 해보는 선규와 상춘은 암만해도 서툴렀다. 윤도가 기술전습겸 로라를 가볍게 밀고 판을 올리고 민첩하게 종이를 집어내면 인쇄된 종이는 마치 기계에서와 같이 쏟아져나온다.
《재간이 좋구려.》
어머니가 신기해서 칭찬까지 해주었다. 그의 손 노는것을 보면 힘도 들어보이지 않고 재미가 있었다.
《오늘 밤 써먹을려고 배운 재간입니다.》
《뻐기는군.》
선규가 부러운듯 말했다.
《메뚜긴 6월이 한철이라네.》
그들은 래일을 두고 흥분하고있을뿐아니라 신바람도 난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날이기때문이였다.
각지에서 학생들이 일어난다. 얼마나 장쾌한 일이랴! 벌써 일어났어야 될 일이였다. 그렇지 못했기때문에 강도배들에게 주권을 빼앗기고있으며 그래서 학생생활은 우울한 회색빛에 싸여왔다. 그 모든것을 씻어버리는 날을 그들은 지금 준비하고있는것이다.
귀선은 한편에서 가위로 등사돼나온 종이를 자르고있었다. 파란, 빨간, 노란, 흰색갈이 포갬포갬 쌓여올라간다.
래일 아침 서울거리에 눈보라같이 그것이 뿌려질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밖에 나가서 동정을 살피고 들어온다.
얼마후에는 허강이 왔다. 그는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며 몇군데서 벌어지고있는 준비정형을 알아보고 시위지휘부에 보고하는 책임을 맡았다.
《윤도, 니 쌈만 잘하는강 알았더니 등사도 잘하는구나.》
허강은 등사글씨가 곱고 정교한데 놀라며 강한 경상도억양으로 감탄을 했다.
《문둥이친구, 뭐락 하시오?》
허강은 다른데서 진행되고있는 정황을 알려주었다. 어디서나 일들은 잘되고있으며 다른 대학들에서도 계속 련락이 들어오고있다는것이였다.
《온 서울이 지금 자지 않네. 마산에도 오늘 K대학 데모소식 갔을거라. 서울이 일어났닥고 얼마나 좋아할것고!》
그런데 선언문초안이 아직도 다되지 않았다는것이다. 선언문은 짧은 글에 학생들이 봉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까닭과 아울러 그들의 결의와 사명을 함축하여 포괄해야 되기때문에 웅장하고 강한 호소성을 요구했다.
《들어보래.》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같은 력사의 조류에
그는 선언문초안의 첫머리를 감정을 넣어서 읽어보았다.
《그 다음 자꾸 고치고있다.》
그는 가지고 온 초를 몇가락 내놓으며 상춘에게라기보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집에 광목이 없을가요?》
《광목은 왜?》
《프랑카드가 좀 부족해서…》
학생들은 과외비를 꺼내서 광목과 종이를 사다가 준비를 하고는 있으나 암만해도 프랑카드가 부족될것 같았다. 그들은 프랑카드를 많이 들고나가고싶었던것이다.
《집에 광목이 없죠?》
상춘은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광목이 어디 있니?》
어머니는 아들들의 청이 소중했지만 집에는 광목을 끊어다가 둘만 한 형편이 못되였다.
《좋습니더.》
허강은 어머니의 딱해하는양을 보자 공연한 말을 낸듯 일없다고 위안하며 나갔다.
상춘이 조금 실망해하고있는것을 보고 귀선이 말했다.
《광목은 없어도 내 치마가 있수. 접때 어디 갔다가 비말이해온걸 빨아서 아직 꾸미진 않고 대려놨으니 그걸루래두 되겠거든…》
그는 방구석에 있는 보퉁이를 끄르고 개여놓은 치마를 꺼내 상춘앞에 놓았다. 신선한 빨래내가 확 풍기였다.
《그걸 어떻게?》
상춘은 놀란다.
귀선은 그 말은 들은체도 않고 치마를 펼치며 《얼마나 넓음 되우, 이만험 되우?》 하고 물었다. 그도 프랑카드는 여러번 보아서 대강 그 폭을 짐작했다. 치마를 잡은 그의 두손이 힘있게 펴지며 북- 하고 피륙찢어지는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옥양목치마였다.
《잘했다.》
어머니는 자기도 미처 생각 못한걸 며느리가 해내는게 여간만 장해보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잠시 말이 없이 서로 얼굴들만 보았다. 자기들의 책임감을 더욱 무겁게 느낄뿐이였다. 등사가 끝난것은 새벽 3시가 넘어서였다.
이제는 귀선이 말아놓은 프랑카드에 글씨를 쓰면 그들의 일은 다 끝나는것이다. 영조가 학교에 가지고 다니는 먹을 대접에 갈았다.
붓도 영조가 쓰는 습자용 가는 붓밖에 없었다. 그것으로 등사글씨를 잘 쓴다 하여 윤도가 시험삼아 종이에 그리듯 써보았으나 힘찬 기백이 나오지 않았다.
《비켜.》
조용해보이기만 하는 선규가 헝겊을 뚤뚤 말아서 실로 동인 다음 먹을 듬뿍 찍어가지고 나앉았다.
《간격들만 잘 봐줘.》
선규는 제 기분인지 혹은 조용한 성격가운데 그와 같은 강한 의지가 흐르고있는지 획을 북북 힘차게 그어나갔다.
《이놈저놈 다 글렀다! 국민은 통곡한다!》
그는 감탄부호를 콱 찍고나서 혼신의 힘을 넣어 쓴듯 털썩 주저앉았다.
《잘 썼다.》
상춘이 필력이라기보다 그 기백을 칭찬했다.
프랑카드를 먹이 마르게 벽에 걸어놓았다. 그것으로 일은 끝난것이다.
어머니는 밖에 나가보았다. 동쪽하늘에는 새별이 떠있고 서울거리 상공에는 안개가 흐르기 시작했다. 차소리 하나 별로 들리지 않고 고요했다. 그러나 서울의 골목골목 어느 집에서나 어머니네 집에서처럼 밤을 밝혀 잠자지 않고 새날의 준비를 하고있을것이라고 어머니는 짐작했다.
조금 있으면 날이 밝는다. 안개가 걷히고 날이 밝으면 아들은 거리로 뛰여나간다. 그것이 저의 아버지가 간 길이요, 제 형이 간 길이라고 어머니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동쪽하늘에 기도라도 드리듯 한참 바라보고 들어왔다. 아들들은 그새 잠에 곯아떨어졌다. 귀선이 부엌에 나가 밥을 짓기 시작했다.
19일 새벽, 날이 밝았다.
통금해제고동이 울렸다. 새벽공기를 흔들며 멀고 길게 몸부림치듯 울렸다.
저녁통금과 해제의 그 음향은 그날그날에 따라 묘한 의미를 가지고있다. 도대체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사회에서 《통금》이라는것을 상상할수 있을가. 그러면서도 15년동안 저 소리를 계속 내면서도 《한국》에는 자유가 있고 민주주의가 있다고 억지를 써왔다.
그렇다!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떻다는것을 학생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19일 새벽이 밝았다.
고동소리에 선규가 먼저 놀라서 일어나며 상춘과 윤도를 깨웠다.
《아직 조금 더들 자지. 밥이 되는대로 내가 깨워줘요.》
어머니는 밤을 밝힌 그들이 애처로왔다.
《잠간 다녀와야 돼요.》
상춘이 눈을 비비며 서둘렀다.
《다녀오게 되겠니?》
어머니는 조금 랑패스러워했다. 아들에게 꼭 조용히 전할 말이 있었던것이다. 그렇게 일찍 나갈줄 알았더라면 아까 눈붙이기 전에 말해줄것을, 맑고 깨끗한 정신에 말해주고싶어 밝는 아침을 기다렸던것인데…
그들은 대학에 나가보아야 했다. 어제 밤 경찰의 습격을 받고 감춰두었던 준비물들의 자리를 옮겨놓을 필요가 있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연구실문은 굳게 잠겨있고 수위는 학장의 승인이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였다.
대학당국에서는 학생들의 일체 집회를 금지하라는 방침이였다. 결국 윤도가 문을 부시고 들어가 준비물을 꺼내다가 녀학생휴계실에 옮겨놓고 왔던것이다. 뒤미처 허강이 삐라를 가지러 오고 한강을 건너갔던 조광래도 고동이 울리자 흑석동을 떠나 일찍 왔다. 채남은 그의 아버지가 다녀오라고 해서 왔다고 한다.
조광래는 간밤에 물을 삼킨 이야기와 늙은 낚시군의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은 웃지 않고 생각에 잠긴다.
늙은 낚시군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에게 걸어보는 기대.
학생들은 대학으로 나갈 준비를 서둘렀다. 프랑카드를 접어서 허리에 차고 삐라를 가방에 나누어넣었다.
어머니는 그들을 방에 불러앉히였다. 상춘에게 들려주고싶은 말이였으나 지금 어머니의 눈에는 그들이 모두 아들같이만 보였다.
《너도 잠간 들어오너라.》
부엌에서 아직도 조반을 차리는 며느리 귀선까지 불렀다. 아침은 어머니가 바란대로 맑고 밝았다. 동쪽하늘에 해가 솟으려 한다. 붉은 서기가 하늘을 덮고 그 빛이 아들들의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어머니는 시렁에서 고리짝을 꺼냈다. 며느리는 금방 긴장하여 어머니의 손을 얼른 돕지 못한다.
어머니가 지금 무엇을 꺼내는지 알고있기때문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매우 경건한 마음을 표시한다. 며느리는 감히 그 마음에 개입할수 없음을 스스로 느끼고있다.
상춘이나 다른 학생들은 어머니의 뜻을 아직은 모르면서도 어머니와 귀선의 경건한 태도가 몸에 그대로 흘러들어 저절로 엄숙해지며 어머니의 동작 하나하나에 시선들을 모은다.
어머니는 고리짝에 들어있는 옷가지들을 꺼내서 방바닥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그 정성스러운 손이 어머니의 심정을 잘 말해주었다. 하나하나 흐트리지 않고 마구 놓지 않은 심정이 무엇을 꺼내는지 모르나 어머니의 마음은 그토록 정성스레 그 무엇에 접근해가고있음을 알수 있었다.
옷을 다 꺼내자 종이로 바른 바닥이 드러났다. 어머니는 그속에서 사진을 한장 꺼내서 한참동안 보고있었다.
《이 어른이 누구신지 아니?》
상춘은 순간 밝은
그 의의있는 아침에 그분을 뵈옵는다는 감격, 그분의 초상을 보여주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 지금까지 그가 고민하고 모색하던 길이 환히 빛나며 자기가 그앞에 서있는 흥분, 미래를 내다보는 희열.
《녜.》
그러나 어머니는
《
《녜.》
상춘은 6. 25때
《학생들도 모두 알지?》
어머니는 여러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압니다.》
선규가 대답하고 학생들의 머리가 모두 초상에로 모여들었다.
어머니는 다시 초상을 앞에 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상춘이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고 할 때는
학생들은 앉음새를 고쳤다.
《고맙습니다.》
《이 아침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들 해요. 오래도록 잊지 말아요. 상춘 아버지가 내게 남긴 말이 있어. 우리 나라를 건지실분은 김
학생들은 오래도록 초상화만 보며 말이 없었다. 경건한 마음을 담은 얼굴들이였다. 눈들은 빛났다. 어깨들이 눈에 알리게 들먹거렸다. 감격과 흥분을 누르고있는것이였다. 채남이 고운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눈을 감았다가 뜨며 어머니의 손을 꼭 잡는다. 허강이 꿇어앉았다. 조광래는 초상을 앞으로 당겨 반듯하게 놓아본다.
선규는 전쟁때 어린 나이였지만 인민군대들이 민간인집에 들어서 마당을 쓸어주던 기억을 더듬으며 그 수려한 얼굴이 희열로 더 환해진다.
상춘은 무겁게 머리를 들며 말한다.
《어머니, 알았어요.》
그것은 상춘이 어머니에게 좀체로 하는 말투가 아니였다. 어머니의 말을 무언으로 혹은 어깃장도 치면서 실지로는 실행해오는데 습관된 상춘의 그 말은 여간만 중대한 결의를 나타내는것이 아니였다. 그 한마디는 일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숭고한 결심이였다.
학생들은 상춘의 그 결의를 기다린듯 저마다 어머니에게 맹세도 하고 서로들 손을 잡아보며 그것도 부족하여 포옹을 한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은 지금 그
형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의례
《오늘은 일찍들 나올거야.》
엄숙했던 학생들은 서둘러 일어났다.
붉은 해가 솟기 시작했다. 아들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그들은 밝고 힘찬 길을 지금 떠난다.
《어서들 조반을 먹고 가봐요. 난 너한테 하고싶던 말을 했다. 네가 그분의 정신을 따르고 뒤를 따른다면 난 아무 걱정도 안할란다. 때로 아프고 쓰린 일도 있겠지만 그래도 네가 옳은 길을 간다면 난 죽어서도 너아버지 보기가 떳떳할거다. 몸조심해서 잘해라. 해가 떴다.》
학생들은 시간이 늦겠다고 급히 서둘렀다. 어머니는 밤새도록 그들 일을 도와주고
《끝나는대로 집에 꼭 왔다가거라.》
《오죠.》
《네 말은 믿지 못하겠더라. 어미가 집에서 걱정하는건 도무지 생각안해.》
《어머닌 동무들 있는데서 뭘 그러세요. 저들은 간밤에 집에도 안 가잖았어요?》
《얼른 집에들 다녔다 가면 안되나?》
윤도를 보고 물었다.
《늦을겁니다.》
《간밤에 어머니가 또 걱정하셨을거야. 학생 어머닌 내가 알아. 걱정을 많이 하시지. 집이 광화문 어디랬소. 학생이 못 가면 내라도 가서 그렇다는걸 이를게.》
윤도는 마지못해 자기 집 주소를 알려주었다.
《내가 가주리다. 그러니 학생들도 끝나거들랑 집엘 먼저 가보우.》
《가겠습니다.》
어머니는 선규가 새삼 가여웠다. 다른 학생들은 수선거리는데 그만은 슬픔 그것같이 조용하다. 죽은 어머니를 생각해서 그럴것이다.
《선규앞에서 어머니얘길 자꾸 해서 안됐수.》
《안요. 어머니얘긴 언제나 좋은거죠.》
그렇게 말은 하나 선규의 얼굴에는 슬픔의 적막이 없지 않았다.
학생들은 급히 밥을 먹고 문을 나섰다.
어머니는 그들의 뒤를 오래도록 골목에서 바라보았다. 내무부 모고관네 집 담모퉁이에서 선규만이 뒤를 돌아보고 어머니에게 손짓해 들어가라는 시늉을 하는게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