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불안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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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하자면 한이 없었다. 아들의 방을 치워놓고 온 어머니는 방에서 아무것도 나오는것이 없는것으로 보아 아들의 말을 믿고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상춘은 S대학 정치과 2학년, 래후년이 졸업이다. 집의 기둥이며 희망이였다. 고학으로 어느 이름없는 중, 고등학교를 나오고서도 경쟁률이 심한 지금의 대학에 들어갔다.
작년 가을부터 시간제로 어느 회사 사장집 아들을 가르치고있다. 머리만 커다란 저능아였지만 그 집에서는 아이를 이 봄에 일류 중학교에 넣겠다고 한다. 아이가 입학이 되지 않는 날엔 상춘은 그 집을 나와야 하며 따라서 등록금이 문제로 된다. 봄, 여름이 되면 계절같이 찾아오는 걱정이였다. 어머니의 힘으로 해주는 등록금이라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저 혼자 애를 쓰고 다니는 모양이 차마 보기 더 어려웠다.
어머니는 그런 일, 저런 일을 잊어버리기 위해서도 쌀봉지를 부지런히 붙이였다. 삯벌이로 하는 일이였으나 손이 굼뜨고 마음만 급했다. 래일 아침 며느리 귀선이 장사를 나갈 때 동대문시장 싸전에 갖다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용이 떨어져 그나마 봉지를 맡아오지 못한다. 경쟁이 심하다. 내남없이 한푼이라도 벌려고 악을 쓰는데 싸전에서는 배를 튀긴다. 어머니가 다 붙이지 못하고 남기면 며느리가 밤에 돌아와서 잠을 자지 않고 붙여야 한다.
며느리는 새벽에 뚝섬으로 얼갈이 봄배추를 받으러 나갔다. 배추를 받아다가 소매로 팔아서 요새는 살아간다.
그 녀인의 남편-어머니의 큰아들 상백은 지난 전쟁때 의용군으로 나가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월북했으리라는 추측보다 그렇게 믿는 확신이다. 그 확신과 아무때고 통일이 되면 만난다는 희망에 녀자의 젊음을 걸고 혼자 고생하며 살아가는 며느리가 가엾어서도 어머니는 손을 부지런히 놀리게 되였다. 방은 침침하고 답답했다. 문을 열어놓으면 바깥바람이 아직은 싫었다. 날씨가 그렇게 다 풀린건 아니였다.
그래도 봄은 봄이였다.
판자촌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내무부 모 고관의 집 넓은 정원에 서있는 높은 나무가지에는 연자주색봄빛이 감돌았다. 현관옆에 머물러있는 파란색세단차에도 보일락말락 아지랑이가 하늘거렸다. 그 집 벽돌담밑에서부터 누데기처럼 아무렇게나 다닥다닥 산비탈로 올리뻗친 판자집들, 미군들이 먹다 버린 통졸임통을 두들겨 펴서 덮은 지붕들의 빨갛고, 파랗고 노란빛에도 아지랑이는 가늘게 떨고있었다.
고향에 가 살도록 더 늙지 말라는 아들의 말도 있었지만 봄이 되면 어머니는 고향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고향 장자울을 등진지 벌써 10년이 된다. 한번 가고싶어도 갈수가 없었다. 《부역가족》이라는 표가 붙었기때문이다. 서울생활이 고생스러우면스러울수록 무턱대고 그리워만지는 고향이였다. 아마 자의로 떠난 고향이라면 그렇지도 않을것이다. 마을에 미군군용지가 앉은 이후 그들 등쌀에 살지 못하고 떠난 사람도 많고 그런 사정을 어머니에게 와서 하소연하는 고향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고향도 옛날 같지 않은줄 모르지 않지만 어머니는 그곳이 그립기만 했다.
어머니는 50년 가을 경찰과 미군이 다시 마을에 들어왔을 때 구사일생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도망쳐나왔다. 락엽이 눈보라같이 날리던 날이였다. 그것이 고향을 그리는 향수에 더 짙은 색채를 가하는지도 모른다.
그 향수가 철을 따라 다르지만 깊은 겨울에서 봄으로 옮기는 해토무렵- 평생의 거의를 자연과 흙에서 살아온 어머니는 판자촌골목의 흙일망정 흙냄새에 민감해지며 저렇게 얼음녹는 물소리까지 다정할 때면 젊은 몸이 아니지만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되며 갇힌듯 방안이 답답했다. 좁고 침침한탓만은 아니였다. 마음걱정, 살림걱정이 그렇게 되는것이다.
… 지금 고향에서는 밭갈이가 시작되였으리라. 북한강 강녘들판에는 사람들이 널려있다. 어머니는 식구들을 거느리고- 이북에 가있는 큰아들을 꼭 앞세우고- 동구밖길을 걸어들어가는
이제는 마음놓고 평생을 마을에서 함께 살아보자고 그것은 나라가 통일되는 날을 의미했다. …
해마다 봄이 되면 되풀이해보는 걱정이였고 애타는 꿈이였다.
그 걱정과 꿈으로 해서 어머니는 지금까지 살아왔고 또 살아간다.
저아래 넓은 골목으로 어느 편인지 선거용선전차가 방송을 울리며 요란스레 지나갔다.
10시가 가까왔다. 앞집지붕에 가리웠던 해가 돌며 해살이 문에 들기 시작한다. 정신이 반짝하도록 방이 밝아졌다.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액틀유리에 해빛이 반사되고 다시 광선이 굴절하여 방바닥을 비치였다.
어머니의 쌀봉지를 붙이는 손도 훨씬 속도를 내는것 같았다.
《편지요.》
판자문이 삐걱 소리를 내고 우편배달부가 《오상춘이라고 있소?》 하고 물었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문앞으로 다가서는 모양이 유리쪼각으로 보였다.
어머니는 방문을 열었다.
우편배달원은 일부러 방문앞까지 와서 보기에도 깨끗한 흰 봉투를 어머니에게 정히 전하고 간다. 그만큼 고급봉투기때문에 우편배달원도 감히 땅에 던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머니는 아들이름으로 온 그 편지를 옆에 놓고 봉지를 붙였다.
너무나 깨끗하고 좋은 고급봉투여서 그런지 자꾸만 마음이 그리로 쏠리게 되였다. 발신인의 주소성명은 없었다. 그것이 더욱 어머니의 궁금한 마음을 자극했다. 저런 고급봉투라면 내용도 응당 반가운 소식일가? 아들에 대한 세상어머니들의 소박한 희망이였다.
녀자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낼 때는 흔히 좋은 봉투를 쓰되 발신인의 주소성명은 부끄러워 쓰지 않는다든가, 어머니가 들은 풍월이다.
어떤 녀자일가 짐작해본다. 하자영교수의 딸 채남이 먼저 마음에 짚인다. 하기야 어머니가 아는 녀학생이란 그 정도밖에 없기도 했다. 눈치가 그런것 같다고 언제인가 영등포에서 사는 딸 상란이한테서 들은 일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 녀자라면 더 볼나위 없는 색시감이다. 만나본지가 오래지만 하관이 약간 빠를사한 깨끗한 얼굴은 그 녀자의 총명을 말해주었다. 지금 의과대학에 다닌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러한 편지이기를 바라며 이제는 그만큼 성장한 아들이 마음에 대견스러워 편지를 한옆에 밀어놓고 봉지를 붙였다.
밖에 나가 놀던 손자 영조가 오후반 학교갈 시간이 됐다고 들어와서 고급봉투가 딱지감으로 탐이 나는지 몇번이나 뒤적거리더니 어느 틈엔가 겉봉을 뜯은 모양이였다.
《할머니, 빨간 글씨 봐.》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손자한테서 편지를 빼앗다가 무심코 속장을 보았다. 붉은 잉크로 쓴 글씨였다. 혈서라는 뜻인가, 혈서란 절박한 마음의 전달을 의미한다. 어미 모르는 사이에 아들의 생활에는 무슨 조련치 않은 사연이 생긴것이다. 어머니는 조금당황해지며 내용을 훑어보았으나 붉은 색이 되여서 눈에 얼밋거리기만 하고 내용은 들어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안경을 찾아가지고 다시 편지를 들었다. 오래간만에 글을 읽는 긴장과 불안이 뒤범벅이 된다.
오상춘군에게 경고한다.
최근 군의 행동과 사상동향을 감시하건대 군은 학문의 이름을 빌어 경거망동과 비애국적문필을 일삼고있음을 인정하고 이에 우리는 단호히 경고하는바이다.
《현실직시》, 《진리탐구》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느냐. 네스스로 반성하고 대답하라. 《학문의 자유》요, 《비판의 자유》요 하며 《대한민국》의 현실을 부패, 타락, 비관일변도로만 강조함으로써 마치 《한국》은 썩어가는 나라로, 무법천지로 외곡묘사하여 리승만국부에 대한 민심을 소란케 하고 대외적으로는 국가위신을 훼손시키려고 군은 책동하고있지 않은가.
이는 공산오렬의 책동과 추호도 다름이 없음을 군은 깊이 자각하라.
《정, 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내외 다단한 이 시국에 만약 군이 지금까지의 그릇된 사고와 행동을 뉘우침이 없이 계속 《현실직시》란 제목의 글을 발표한다면 우리는 단호히 선언한다.
군과 군의 가족은 구국열혈의 이름으로 비참하게 몰살되여 까막까치의 밥이 될것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군의 재능을 인정하고 또 군의 모친에 대한 효성을 가상히 여기며 군의 장래를 위하여 반성의 시간적여유로 최후의 기회를 주는바이니 십분 깨달음이 있으라.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니며 곧 우리의 행동을 뜻한다.
1960년 2월
구국열혈청년회
(구국열혈청년회라는 서명아래에는 피묻은 예리한 칼 한자루를 그렸다.)
어머니의 손에서 협박장은 소리를 내며 방바닥에 떨어졌다.
내용을 읽으며 떨리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으로 꼭 쥐여졌으나 명치끝은 꼿꼿해지고 그 몽친 기운이 가슴으로 올리뻗치며 숨이 답답했다.
풀칠하던 쌀봉지들이 모두 붉은 혈서로 환각되였다. 가까스로 숨을 돌리자 순간 땀이 이마에 내솟으며 정신이 맑아졌다.
협박이 협박으로 그치는것이 아니다. 협박장같은 악마는 그대로 현실로 되는 세상이다. 어머니자신이 구사일생으로 학살에서 벗어났고 그와 같은 참상을 눈으로 많이 보기도 해왔다. 편지를 다시 보고 또 보았다. 사연의 앞뒤는 보지도 않고 그 피비린내풍기는 대목만을 찾았다.
《군과 군의 가족은 구국열혈의 이름으로 비참하게 몰살되여 까막까치의 밥이 될것이다.》
상춘, 귀선, 영조, 어머니- 네식구의 피에 젖은 시체가 방바닥에 가로세로…
어머니는 무엇에 저항하듯 방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무심하게도 밖은 봄이였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내무부 모고관의 집 넓은 마당에서는 체격이 늘씬한 개 한마리가 판자촌에 올리대고 짖어댔다. 누구의 집에선지 녀자의 울음소리가 높았던것이다.
《신 깁시다아-》
신길이장수(신발수리공)가 귀신같은 웅글은 목소리로 고객을 부르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직도 겨울모자를 깊숙이 쓴 그가 널쪽문너머로 기웃이 넘겨다보았다. 어머니가
《신 기렵소?》
그 소리에 어머니는 자기 정신으로 돌아왔다.
《신은 무슨 신이요?》
신길이장수는 군말없이 돌아서 저만치 가서는 두덜거렸다.
《재수 더럽군.》
그는 다시 《신길여》소리를 외우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어머니는 공연히 밖으로 나가본다. 아무도 없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휘청거리는 다리를 의식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나 어쩐지 방이 싫었다. 그길로 아들을 찾아 대학으로 가고싶었다. 골목밖으로 걸어나갔다.
이웃집 차복 할머니가 앞에서 손벽을 치며 달려왔다. 세상풍문을 어디서 그렇게 듣고 다니는지 모르는게 없는 판자촌마을의 소식통이다.
《경찰서 서장네 집에 도둑이 간밤에 들었대요. 금줄배기 서장옷을 훔쳐냈답니다. 아이구 세상에…》
차복 할머니는 재미도 있고 통쾌도 한지 허리를 잡고 웃었으나 어머니는 웃음이 나지 않았다. 차복 할머니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어떤 놈인지 그걸 입고 다니면서 서장노릇을 하잖나 보세요. 순경도 손만 벌리면 되는 세상에 서장옷을 입고 나섬 돈벼락을 맞죠. 그놈이 도둑은 도둑이래두 잘난 놈예요. 협잡판으로 사는 세상에 못할게 있나요.》
가짜서장의 출현을 겁내서 그러는지 형사들이 거리에 꽉 덮이고 거지아이들을 보는대로 잡아들인다는 얘기다.
차복 할머니는 어머니의 웃을줄 모르는 핼쑥한 얼굴을 알아보고 놀랐다.
《감길 만나셨나요?》
《녜.》
어머니는 얼뜬한 소리로 그래 둔다.
《조심하세요. 해토는 되고 겨우내 굶은 사람들이 인제 자꾸 죽어나갑니다. 저기 보세요.》
녀자의 울음소리가 나는 곳을 고개짓으로 가리켰다. 움집에서 령감이 죽었다고 한다.
《저눔의 개가 남은 서러워서 우는데 왜 저렇게 짖누? 팔자가 좋아서 사람도 못 먹는 고기국만 먹으니까 기운이 뻗쳐 저렇게 짖어대죠. 저 소릴 언제나 듣지 않고 사누?》
차복 할머니는 개를 멀리서 때리는 시늉을 해보이며 골목을 내려갔다. 또 무슨 소식을 들으러 가는것이다.
어머니는 정신을 가다듬고 발길을 돌렸다. 협박장 하나에 그처럼 당황한
어머니는 마음을 다잡으며 방에 들어서서 큰기침을 하며 기운을 냈다.
일생을 두고 험난한 길을 걸어온 그 정신력이 어머니를 지탱해준다. 편지를 접어서 다시 봉투에 넣어 한쪽으로 비켜놓았다.
그렇게도 공부를 해보겠다고 어려서부터 신문배달을 비롯하여 로동판에 이르기까지 아니해본 일이 없으며 가정교사로 다니는 집 녀편네의 수모를 받으며 밤잠을 자지 못하는 아들에게 무슨 죽을죄가 있단 말인가.
협박장에는 《현실직시》, 《진리탐구》를 하기때문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또 아들이 그것을 한다 하더라도 아들의 평소행동으로 봐서 그것은 응당 좋은 일로 생각되였다.
그러한 아들에게 죽이겠다는 협박장이 온것이다. 벽에는 죽은 남편 오원필의 사진이 걸려있다. 어머니는 고향을 떠나서 여기저기 십년가까이 돌아다니는 동안 다른것은 다 버리고 다녔어도 그 사진만은 가족의 수호신같이 가지고 다녔다.
(이 일을 어떡험 좋아요?)
그렇게 묻듯 사진을 쳐다보았다.
천생 생기기를 그렇게 생겨서 화를 내도 웃는 상이던(그것때문에 일제경찰에 취조를 받을 때도 형사를 조롱하지 않느냐는 오해를 받고 매를 더 맞은 일도 있다.) 남편은 사진틀속에서 여전히 웃고만 있었다.
(상춘일 죽이겠다는 편지가 왔소. 어떻험 좋우?)
사진은 무심했다. 말이 없었다.
상춘을 갖게 된 비밀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남편과 자기밖에 없다. 그렇기때문에 남편은 감옥에서 나와 어린 상춘을 안고 그렇게도 신기하게 여기지 않았던가. 장래에 크게 될 아이라고 두고두고 말한것도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
남편 오원필은 독립운동자였다. 여러차례 형무소생활을 했다.
한번은(상춘을 갖게 되던 때) 경찰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던 끝에 멀리 해외로 뛸 생각이니 필요한 물건과 옷을 가지고 어느 산중 외딴집으로 오라는 기별을 보냈다.
그것을 가지고 지정한 집으로 갔다. 캄캄한 늦가을 밤이였다. 남편을 위하는 일이라 밤길도 무섭지 않았다. 만나서 전할것을 전하고 장차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하라는 남편의 가간사를 듣고 그 집을 떠나려 할 때 그곳 고개를 넘어야 할 앞산에서 산짐승이 울었다. 어머니는 아직 젊은 나이였다.
《여기 앉았다가 가우.》
그 집 할머니는 그들내외를 위하여 방을 하나 내주었다. 산짐승의 울음은 좀체로 그치지 않았다. 내외는 산짐승의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때 어머니는 상춘을 갖게 되였다.
경찰은 그후 1년가까이 지난 때에도 남편의 행방을 대라고 어머니를 데려다가 문초를 했다.
《몰라요.》
어머니의 입에서는 매몰찬 그 대답만 한결같이 나올뿐이였다.
《앙큼스런 년, 집에 다녀간 증거를 우리가 쥐고있는데도 몰라?》
《그런 일 없습니다.》
《그럼 이년아, 이건 어떤 놈의 씨냐?》
형사는 만삭된 어머니의 배를 발길로 걷어차며 소리질렀다.
어머니는 아홉달 된 아이를 경찰서 류치장에서 조산했다.
온갖 정성을 다해서 아이를 길렀다. 아무때고 남편이 오는 날 귀여운 아이를 보이고싶은 안해의 본능이였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이는 잘 자랐다. 저의 아버지모습을 그대로 빼물었다.
나중에 체포되여 징역을 살다가 나온 남편은 짐승이 울던 그날 밤을 생각해서인지 얼굴까지 붉어지며 《허 참, 아이가 잘 생겼소. 이담 커서 당신을 덩을 태울 놈이요.》라고 했다.
상춘은 그렇게 생겼고 그렇게 낳은 자식이다. 기구한 운명이랄가, 이제 그 자식이 어미를 덩을 태우진 못할망정 죽음의 협박을 받고있다. 역시 기구한 출생의 연장이다.
《어떡험 좋우?》
그래도 사진은 웃고만 있었다.
남편이 어머니에게 자식키우는 법에 대해서 가르친 말은 《그분을 따라 나라와 겨레를 위하는 자식으로.》라는 그 말뿐이였다.
남편은 그때 만주와 백두산에서 일제와 싸우시는 김
《어떻험 좋우?》
사진은 말이 없다. 액틀뒤에서 거미가 한마리 기여나와서 줄을 늘이고 내려와 그네를 뛰였다. 아침거미는 좋은 소식을 알리는것이라 하건만-
어머니는 아무래도 혼자서 아들을 죽음으로부터 지키는 선후책을 강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