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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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시위계획의 기운은 개학과 함께 어느 대학에서나 성숙되여갔다. 서울의 30여개 남녀대학이 다같이 그것을 모의하고있었다. 동일이
다니는 K대학에서도 진행되였다. 동일을 보는 학생들의 눈은 어딘가 차거웠다. 지금까지 그와 친하던 녀학생이 개학하는 날 인사도 하지 않고 외면을
해버렸다. 동일은 그 까닭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달게 받았다. 자유당의 자식이란 존재가 더 유표하게 드러나는것이였다.
남들은 그를 권세환의 5촌조카로 보지 않고 친자식으로 보기도 했다. 그는 일일이 그것을 변명하지 않았다. 학생들의 차거운 눈길을 응당한것으로
알았다. 동일
동일은 우울했다. 돈도 없거니와 좀체로 다방에 가지 않는 그가 그날만은 우울한 심정을 견디지 못하여 종로2가에 있는 《수정궁》이란 다방에 들어가 차를 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다방에는 뒤방이 있다. 그 뒤방으로 K대학 단과대학들의 학생위원장들이 여러명 들어가는것을 보았다. 직감적으로 무슨 회합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움츠려 눈길을 피해버리고 차도 마시지 않고 나와버렸다. 왜 그런지 자기는 그것을 알아서는 안된다고 느꼈다.
다음날 대학에 가서 무슨 소식이 있는가 기다렸으나 그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았다. 그를 비껴놓고 시위계획이 진행되는 모양이였다. 그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관찰했다. 서로 수군거린다. 련락들을 한다. 다른 자유당의 자식들도 무엇을 감촉했는지 그에게 와서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른다고 해버렸다.
16일에 신입생환영회가 있다는 광고가 발표되였다.
K대학의 시위계획이였던것이다. 계획은 철통같이 째여갔다. 일곱명으로 집행부를 구성하고 세부계획을 세워나갔다.
각 부서를 정했다. 《예비부》라는 부서도 있어서 1차시위에서 주모자급의 학생들이 구속되는 경우에는 제2선, 제3선으로 시위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의 감시를 피하면서 준비를 서두르던 학생들은 16일 낮 1시 신입생환영회를 기해서 전교학생들이 운동장에 집합한 다음 비상고동을 누르면 일제히 교문을 박차고 뛰여나가기로 되였다.
선언문, 호소문의 초안작성.
16일 주모자학생들은 구속될것을 각오하고 두터운 내의를 껴입고 등교했다.
오전 10시 학생들의 머리에 동이고 나갈 수건 2천장을 찾아오기 위해 학생처장실에 결재를 받으러 들어가자 거기에는 벌써 형사들이 십여명 와서 앉아있었다.
그즈음에 서울에 있는 각 대학에서도 시위의 계획이 론의되였다.
S대학에서도 그것이 진행되고있었다. 경찰은 혈안이 되여 감시를 했다. 형사의 눈을 피해가면서 혹은 가까운 산에 혹은 강변에 나가서 주모자학생들이 은밀히 집회를 가졌다.
S대학은 낙산에, T대학은 남산에, Y대학은 금화산에, C대학은 한강변에. 그들은 서울을 내려다보고 혹은 바라보며 서울의 운명을 론의하고있었다.
서울은 지금 폭압자들에게 짓밟히고있다. 이 땅 전역이 무권리에 유린되듯이 서울도 자유당 폭정하에서 신음하고있는것이다.
인민의 원한의 아성들이 여기에 있다. 폭압과 수탈의 총본거들이 모여있다. 외국의 대사관과 그들 군대의 사령부가 여기에 자리잡았다.
건전한 문화가 창조되여 지방으로 흘러가는것이 아니라 외국을 모방한 턱없는 소비성향의 말세기적인 풍속이 여기에 이식되여 민족의 문화를 파괴하며 그 독소를 남조선 각지에 뿜고있다.
실업자의 군상들이 거리에 방황하며 거지들이 우글거린다. 범죄로 가득차있다.
서울은 마귀의 도시로, 병든 도시로 화했다. 본래에 지녔던 제모습을 모두다 상실하고말았다.
서울의 력사는 유구하다.
서울은 일어나느냐?
서울시민들은 학생들을 바라본다.
대학생들은 언제 일어나느냐?
서울이 일어나지 않으면 지방은 무서운 보복을 당하게 되며 서울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S대학 문리과대학에서는 점심시간을 리용하여 각 과의 회장들과 그밖의 학생들이 낙산에 올라가서 토의를 하고있었다.
상춘은 하자영교수의 부탁도 있고 하여 무엇보다도 서울 전 대학들의 행동통일을 주장했다. 산발적으로 일어나면 각개격파를 당할수 있으며 행동을 통일함으로써 시위에도 성공할뿐아니라 금후 학생운동의 통일도 기할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전적으로 찬동을 받았다. 각 대학과 련락을 취할 부서를 두고 그날부터 활동을 개시하도록 결정했다.
K대학에서는 학생들이 낮 1시의 고동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1시가 지났다. 5분, 10분 흘러간다. 고동은 울리지 않는다.
학생대표들은 따로 모였다. 학생처장실에 와있는 십여명 형사로 보아 기밀의 루설이 확실한 이상 신입생환영회와 시위를 무기연기할수밖에 없었다. 고동대신 무기연기지시가 대학생들에게 내려갔다. 학생들은 실망을 하며 집으로 흩어져간다.
동일은 자기도 실망인지 다행인지 마음의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흩어져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있었다. 자유당계통의 학생이 와서 어깨로 치며 코웃음을 쳐보이는 눈으로 운동장을 가리킨다. 꼴들 좋다는 뜻이였다.
동일은 그의 뺨을 후려치고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고 그를 피해 일어섰다.
학생대표들은 그날 오후 종로4가에 있는 다방에 모여서 사후대책을 토의했다. 조직을 풀지 말고 당분간 대기태세를 취하기로 했다.
《발각이 되더라도 그대로 강행하지 왜 중단했느냐?》
맹렬한 추궁도 있었다.
그 자리에 S대학에서 행동통일을 하자는 제의의 련락이 왔다. 전적으로 찬성이였다. 이제는 단독으로가 아니라 전 서울대학들과의 행동통일, 어렵고 복잡한 문제들이기때문에 숙의에 숙의를 거듭했다. 계속 대표들이 모이게 되였다.
어느 려관 구석진 방에서 밤이 늦도록 회합을 하고 나오는데 려관에서는 밤이 깊었으니 숙박비를 내라고 우기고 학생들은 돈이 없어 낼수는 없고 옥신각신하다가 싸움이 커져 경찰이라도 오면 비밀이 루설될가 주인에게 제발 빌고 나오기도 했다.
17일 일요일을 지나 18일에 등교한 학생대표들은 대학주위에 배회하는 사복경찰들의 동향으로 보아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하다는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대학당국에 시위계획을 정식으로 통고했다.
대학당국은 시위를 강경히 만류하면서 학생대표와의 련석회의를 제의했다.
학장과 회장들은 회의실에서도 내다보이는 학교주위와 안암동 큰길쪽을 가리켰다. 교정에는 곳곳에 사복형사가 배치되고 큰길에는 두대의 경찰백차가 다가올 사태를 기다리고있었다.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있는것이다. 학장과 회장들은 학생들의 신변을 걱정했다. 위험하다는것이다.
학생들은 그래도 뛰여나갈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회의는 결렬되였다.
대학은 삽시간에 소란해졌다.
신입생환영회가 있으니 운동장으로 모이라! 체육부 학생들은 식당과 도서관으로 뛰여다니며 빨리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서두른다.
교수들은 어쩔바를 모른다. 무언으로 고무도 해준다. 걱정의 빛도 나타낸다.
운동장에는 프랑카드가 바람을 안으며 학생들을 부른다.
동일은 잔디우에 앉아서 운동장의 광경을 바라본다. 학생들은 운동장에 나서기 전 준비에 바쁘다. 구두끈을 졸라맨다. 훌렁 벗어버린 체격좋은 몸에 가방에 넣어가지고 온 두꺼운 겨울내의를 껴입고 허리띠를 졸라맨다. 책들을 한데 모아 꽁꽁 동인다. 학습장을 배에 차기도 한다.
녀학생들이 《K대》라고 잉크로 찍은 수건을 한장씩 돌아가며 내준다. 학생들은 그것을 받아서 머리에 질끈 동이고 머리를 휘둘러본다. 마치 누구를 받을듯이. 혹은 맵시도 본다. 거기에는 있다. 경쾌한 맵시도, 싸우러 나가는 사람의 의지도 거기에는 있었다.
개학날 동일에게 차거운 눈으로 인사도 하지 않던 녀학생이 수건을 한아름 안고 와서 학생들에게 나누어주면서 동일을 본다.
동일도 그를 똑바로 보았다. 그가 수건을 줄것인가 안 줄것인가. 동일의 운명이 그의 손끝에 달린듯 긴장해서 그를 보았다.
그는 주지 않고 그대로 지나간다. 동일이 벌렁 잔디밭에 누우려 할 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돌아서며 아무 말도 없이 수건을 한장 획 집어던진다. 수건이 동일의 얼굴에 와서 감기고 땅에 떨어졌다. 동일은 그것을 집지 않고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는 정열과 젊음의 선풍이 한바탕 타래를 지어 하늘로 오르고 그것이 땅으로 다시 내려오며 대렬은 구보로 교문을 빠져나간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뒤를 따라 그들을 만류하는것 같이 근심스러운 얼굴들로 나간다.
시위대렬이 나간 뒤 대학전체는 깊은 골같이 너무나 조용했다.
혹간 남아있는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다. 동일의 눈에 그들은 사람인것이 아니라 무슨 등신같이만 보였다.
시위대렬은 먼지를 일구며 점점 멀어져갔으나 그쪽에서 들리는 함성은 자꾸 가까와만 왔다. 경찰의 저지선과 맞부딪친 모양이다.
《가세!》
동일의 앞에 남녀학생이 섰다. 례의 자유당자식들이다.
《…》
《선동의 꼭두각시가 될건 없어.》
《누가 선동했어?》
동일이 그들을 보지 않고 함성에만 귀를 기울이며 물었다.
《선동이 아니면 군중심리에 휩쓸린건 없다고 봐.》
《군중이 옳다면?》
《따라가야지. 그러나 군중은 언제나 어리석은거야.》
《군중이 력사를 창조한다는데.》
《쳇, 그러면 왜 따라가지 않고 이렇게 궁상바가질 떨고 앉았소?》
《…》
《산에 올라가세. 인제 조금 있어봐. 쫓겨들 올거요. 그때 내려와서 아무 말 안하고 자식들의 꼴이나 보려네.》
《혼자들 가게.》
동일은 얼굴을 돌렸다.
《약게 굴겠단 말이군. 시위에도 안 가고 산에도 싫고 중간에 섰다가 어느쪽이든 유리한편에… 그것도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지. 남의 집에서 밥이나 얻어먹는 사람의 거지근성이야. 그러나 생각이 그렇다면 아무도 그 철학을 막지는 않아. 이거나 갖게.》
그는 《K대》라는 수건을 바지주머니에서 꺼내 동일에게 던졌다. 아까의 녀학생이 던질 때처럼 그것은 동일의 얼굴에 와서 감기며 눈동자를 때렸다. 그들은 산을 향해 갔다. 산보하듯 서로 몸을 의지했고 동일이 따라 안 오는것이 더 좋았을지 모른다.
안암동로타리에서는 함성이 더욱 높았다. 아우성이 하늘에 꽉 차는듯 했다.
동일은 일어났다.
(남의 밥이나 얻어먹는 근성, 중간에 섰다가 어느쪽에나 유리한편에.)
안암동로타리쪽으로 급히 걸었다. 아우성소리가 그의 걸음을 달음박질로 몰아준다.
학생들이 경찰저지선에 막히고 그것을 뚫느라고 럭비시합의 스크람(팔을 바싹 끼고 횡대를 이루는것)짜듯 무수한 다리와 다리가 땅을 차며 먼지를 일구며 성벽을 쌓고있다.
동일이 그 성벽가까이로 뛰여 접근했을 때 순경이 그의 꼭두를 잡았다. 동일은 보기 좋게 순경을 멨다꽂았다. 순경이 네활개를 땅에 뻗는다.
두놈의 순경이 그를 추격해왔다. 그는 대렬속으로 뛰여 숨으며 또 뛰여나가며 앞에서 막는 순경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꾸물거리고있던
여기저기서 란투가 벌어지고 마침내 저지선은 뚫렸다. 뚝을 무너뜨린 홍수같이 대렬은 시내로 달린다. 아까의 녀학생이 동일의 옆으로 따라오며 《수건은 어쨌어요?》 하고 묻는다.
동일은 잔디밭에 그것을 두고 왔다.
그는 자기가 썼던것을 벗어 동일에게 주었다. 동일은 주는대로 받아서 머리에 동이며 뛰였다. 녀학생의 친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흥분하고있었다. 자기의 치욕에 찼던 과거와의 결별에서 오는 흥분이였다. 시위대렬이 두번째 저지선에서 주춤거릴 때 수업중이던 대광고등학교학생들이 뛰여나와 《형님들, 잘 싸우라!》고 격려하면서 투석으로 경찰대의 뒤를 때리며 협공하는 바람에 그것도 무사히 뚫렸다.
마침내 그들은 연도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목적지인 《국회》의사당앞에까지 도착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시위학생들이 《국회》의사당앞에서 롱성투쟁을 결의하고있다는 급보를 들었기때문이였다. 권세환도 달려왔다. 경관에게 금빠찌를 보이고 고함을 치는 학생들을 흘끔거리며 쫓기듯 의사당으로 들어갔다.
자유당과 《정부》에서도 긴급회의를 열었다. 시경무국에 명령하여 오직 3. 15의 그 정신, 폭압이 있을뿐이라는 엄격한 지시를 내렸다.
시위학생들은 의사당앞에서 《대통령》출두를 요구하면서 구호를 웨치고있었다.
《마산학생 즉시 석방하라!》
《3. 15부정선거를 취소하라!》
《3. 1정신으로 민주정치 이룩하자!》
시청과 덕수궁앞 보도에는 다른 대학 학생들과 시민들이 3만~4만명 운집하여 학생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K대학 총장과 K대학출신 《국회》의원이 마이크를 통하여 학생들의 해산을 권고했으나 그들은 듣지 않고 《대통령》의 출두를 요구하여 웨쳤다. 이따금씩 경찰의 경비망을 뚫고 시민들과 중, 고등학생들이 의사당앞으로 뛰여들어 합세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성은 터져올랐다.
동일도 열광적으로 환호를 올리다가 문득 의사당 2층을 올려다보았다. 권세환의 노여운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도 적의를 품고 학생들을 내려다보다가 뜻밖에도 동일을 보았던것이다.
권세환은 손을 내저어 《냉큼 나가지 못하겠느냐.》 하는 시늉을 했다.
동일은 못 본체 해버렸다. 조만간 올 때가 오고만것이다. 동일은
날이 어둡기 시작하자 학생들은 후일의 투쟁을 기약하고 대학으로 향하여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민들과 다른 학교 학생들이 그뒤를 따랐다. 그렇듯 시민들의 환호와 지지를 받으며 그들이 을지로4가에서 종로4가로 가는 천일백화점앞에 이르렀을 때 별안간 캄캄한 속에서 갈구리, 몽둥이, 부삽, 벽돌장 등 흉기들이 그들의 머리우에 마구 떨어지기 시작했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것이였다. 대렬은 미처 어쩔 사이없이 공격을 받는대로 뒤로 몰렸다.
눈사태같이 밀리는 바람에 뒤에서는 쓰러지고 밟히고 청계천다리란간이 무너지며 학생들이 무더기로 떨어졌다. 혼란이 일어났다.
완전히 수세에 빠졌다. 머리가 깨진다, 피가 흐른다, 비명이 오른다, 길바닥에 학생들이 여기저기 쓰러진다. 갈구리, 몽둥이가 그우에 떨어진다.
자유당과 시경무국의 지시를 받은 깡패들이였다. 자유당과 경찰이 후일을 위하여 버릇을 떼여놓자는 작전이였다. 죽여도 좋다는 허락이였다. 깡패의 습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자 일시 혼란과 수세에 빠졌던 학생들은 정신을 차리며 반격에로 넘어갔다. 여기저기서 학생들과 깡패간의 격투가 벌어졌다.
대렬을 따라오던 중, 고등학생들이 돌과 가로수의 보호목을 뽑아서 깡패들이 기습하던 그 방식대로 깡패들의 뒤에서 치기 시작했다.
깡패들은 뜻하지 않은 후면공격을 받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찰은 그들을 한놈도 잡지 않았다. 십여명 학생들이 중상과 경상을 입었다. 취재를 왔던 기자들도 부상을 입었다. 그들의 사진기가 길바닥에 딩굴었다. 길에는 구두바닥으로도 끈적거릴만큼 피가 랑자했다.
상춘도 깡패들을 맞받아 싸웠다. 그는 K대학의 시위소식을 듣고 《국회》의사당앞까지 달려가서 K대학 학생대표들을 만나 그날 시위의 성공을 축하도 하고 래일의 행동을 토의하며 거기까지 함께 오다가 습격을 받았던것이다. 길에 쓰러진 학생들을 일으켜 병원으로 보냈다. 뜻밖에도 쓰러져있는 동일을 보았다.
상춘은 놀랐다. 지금까지 혼잡과 어둠속에서 그들은 서로 알아보지를 못했던것이다.
《동일아!》
일으켜안았다. 머리에서는 아직도 피가 멎지 않았다. 동일은 상춘이 힘있게 안는대로 육중한 몸을 맡겼다. 상춘은 동일을 병원으로 운반하는대로 따라가서 그의 처치를 끝까지 봐주었다. 지혈도 되고 혼미했던 정신도 들게 되여 붕대를 감은채로 동일은 병원에서 나왔다.
길에는 《깡패들 나오너라!》 하고 고함을 치며 달려가는 중, 고등학생들의 대렬이 있었다.
《난 그 집에서 나오련다.》
동일이 말했다.
상춘은 동일을 안아주듯 손을 잡았다.
동일은 지금까지 상춘앞에서 느끼던 렬등감도 거리낌없이 사라지고 옛날 그들이 장자울에서 국민학교 다니던 때의 그 우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