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청춘의 분수

3

 

미국무성은 선거결과에 대해서 지극히 만족스러운 태도를 표명한바 있었다. 공정하기 이를데없는 민주주의선거였다고.

권세환은 그것을 하늘같이 믿었다. 예수교인들이 성서의 구절을 신성시하듯 그는 그 말을 절대시했다. 이 땅에서 어떠한 사태가 벌어지든지간에 미국이 긍정한 이상 별로 걱정될것은 없다고 자신에게 몇번씩 다짐해보나 학생들의 움직임에서 받는 불안은 불안대로 커가는것이였다.

어느날 권세환은 패틀리가 류숙하고있는 집으로 찾아갔다. 패틀리의 말을 통해서 미국이 요새 《한국》정세를 어떻게 관망하고있는가 알고싶어서였다.

그들 두사람의 관계는 불련속선으로 맺어져있다. 패틀리가 8. 15직후 K군의 군정관으로, 권세환이 그의 통역으로 된 그것을 시발로 하여 권세환은 많은 덕을 보았고 오늘의 출세를 가져왔다.

그로서는 환평제분에서 생기는 리윤의 상당한 부분을 그에게 직접 바치고싶지만 패틀리는 그것을 직접 받지 않는다. 권세환은 그것을 패틀리의 고결한 인격과 청렴으로 알기보다 언제든지 자기와의 관계를 끊을수 있는 일정한 거리로 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이였다. 그는 패틀리와의 관계를 영구히 유착시키기 위해서 환평제분의 결산때마다 마치 패틀리가 주주나 되는듯이 리익금의 일부를 패틀리의 은행구좌에 넣어온다. 패틀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체 한다. 권세환은 그 돈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패틀리가 알기나 하는지 그게 마음에 걸린다. 만약 자기가 넣어주는것을 모른다면 어쩌나 그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흔히 있는 일같이 직접 돈을 받아주었으면 작히나 좋으랴싶었다.

패틀리는 미8군첩보부로 영전해간 다음 여러차례 직위를 바꾸었으나 그때마다 권세환이 알바는 못되였고 궁금하게 몇달 혹은 그 이상 기다리고있으면 저쪽에서 불러주는것이였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가 또 생기고 그것이 얼마동안 지속되다가 단절되고 다시 접속되고 그동안 너더댓차례나 그런 일이 있었다.

그들 관계에서 권세환이 패틀리를 위해 세운 큰 《공》이 있다면 K군 미군기지건설때에 농민들의 반대운동을 무마해나선 그것이였고 그가 받은 은혜가운데는 환평제분에 대한 불하가 제일 컸다.

한번은 패틀리가 본국에 가서 1년가까이 소식이 없더니 대사관 서기관으로 되여왔다. 권세환에게는 자신이 그 자리에 앉은 이상으로 반가운 일이였다.

패틀리는 그때까지 얼굴에다 무슨 훈장같이 달고 다니던 칼자국을 본국에서 정형수술로 매끈하게 없애고 딴 사람같이 되여 나타났으며 권세환을 대하는 태도도 전과 같이 군인의 본색대로 거칠지 않고 은근하고 신사적이였다.

두사람이 만나면 주로 경제사정, 정치정세, 권세환은 자신이 《국회》에서 보고 들은 일의 크고작은것, 《국회》내 기밀에 속하는 문제까지 화제에 올렸다. 패틀리는 매우 만족하게 들어주었고 권세환의 정치적《식견》에 감탄도 아끼지 않았다. 《국회》 문교분과위원이 된 후로는 교육계의 리면, 대학생들의 사상동태에 대하여 일가견을 피력해본다.

그가 패틀리의 집으로 갔을 때 주인은 보석을 내놓고 확대경으로 감상을 하고있었다. 몹시 초조를 느끼고있다는 증거였다. 그는 무엇엔가 불안을 느끼든가 상심이 될 때면 보석을 애무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꾀하는 버릇이 있는것을 권세환은 안다. 그러한 때 그는 매우 까다로와진다. 권세환은 조심조심 가까이 가서 보석을 보았다. 록색다이야몬드였다.

《광채가 령롱합니다. 보석은 그걸 소유하는 주인에 따라 광채도 변화무쌍하다지 않습니까?》

패틀리는 유쾌하게 웃었다.

《권선생은 참으로 좋은 말로 나를 위로해주셨습니다. 사실 난 지금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만 권선생이 오셔서 유쾌해졌습니다.》

《무슨 기분나쁘신 일… 아, 실례했습니다. 제가 알아서 안될 일인지도 모르는데…》

《뭘요, 하찮은 일입니다. 녀자와 신문은 쌍둥이같군요.》

《…》

《처한테서 편지가 왔습니다. 아마 미국서도 일부 신문이 요새 <한국>정세를 비관적으로 보도한 모양입니다. 처가 그걸 봤는지 걱정된다는 편지를 보냈군요. 녀자와 신문은 같습니다. 조금만 뭣하면 큰일이나 난것처럼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멀리 부인에게까지 심려를 끼쳐드려서…》

《천만에요. 우리 미국사람은 한 녀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대해서 친선의 관심을 가진것으로 알아주십쇼.》

《고맙습니다.》

권세환은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러지 말자고 하면서도 일본식이 몸에 배서 그렇게 되고마는것이다.

《권선생, 참 잘 오셨습니다. <한국>의 요새 정세, 전망은 어떻습니까? 가라앉을것 같습니까, 무슨 사건이 일어날것 같습니까? 말씀해주십시오. 처에게 회답을 써야 할텐데 권선생 말씀을 그대로 차용해쓰겠습니다.》

《영광입니다. 부인의 건강을 빈다고 전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꼭 그 말을 쓰겠습니다. 그래 전망은 어떻습니까? 처에게 안심하라고 쓸가요? 밤에 기도를 드리라고 쓸가요?》

《안심하라구 쓰십시오.》

《어째서요?》

《두가지 조건때문인데 첫째는 미국이 있음으로 해서 <한국>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학생들이 소동을 일으킬 위험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방관하지 않으리라는 나의 소신입니다.》

《권선생은 어디까지나 정치가이십니다. 훌륭한 외교관이시구요. 슬며시 미국의 태도를 나한테서 듣자는 말씀이군요.》

《천만에, 그렇게 말씀하심 내가 미국에 대해서 의심하는것으로 되는데 매우 섭섭한 말씀입니다.》

《미국이야 언제나 <한국>의 벗이 아닙니까! 그 점은 새삼스레 말할 필요없구요. 둘째는 무엇입니까?》

《둘째는 마산의 사태는 진압되였고 시위를 하는 학생들은 지방의 철없는 중, 고등학생들입니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아닙니다.》

권세환은 대학생들이 자중하지 않으면 안될 조건을 렬거했다.

《그들은 앞으로 취직이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있거던요. <한국>에서 취직이란게 얼마나 커다란 사활문제란걸 아셔야 합니다. 또 대학생 하나에 기울이는 부모들의 정력이나 재력이 어떻다는걸 아신다면… 일류대학에 넣자고보면 유치원때부터 일류를 찾아다녀야 하는 부형들이고 적어도 국민학교 4학년부터는 가정교사를 둔다, 학교에 뢰물을 먹인다 하는 부형들입니다. 자식들이 한번 데모에라도 참가하는 날엔 십여년 적공(공을 쌓은것)과 수백만 재산이 수포로 돌아가는줄 아는 부형들이 왜 학생들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겠습니까? 부인께 안심하시라고 편지를 쓰십시오.》

권세환은 자기가 늘 매달려보는 생각을 말했다. 패틀리는 흥미있게 듣고나서 탄성을 올렸다.

《권선생의 견해는 사회학적인 성격을 띠여 매우 가치가 있습니다. 록음하지 못한것이 유감입니다. 록음한 테프를 처에게 보냈더라면 권선생의 <한국>적인 악센트의 영어까지 흥미있게 듣고 처가 안심할것을… 나는 권선생의 말씀을 들으니까 평소부터 써보려던 <한국학생론>의 체계가 서는것 같습니다. 아주 유익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리론보다 더 진실에 가까웁다는 말도 있으니까 내가 들은 몇가지 이야기를 해볼가요? 선생의 견해를 더 풍부화하는 의미에서도 그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는 책상서랍에서 서류를 꺼내가지고 가끔 들여다보면서 상당히 세밀하게 각 대학에서의 학생들의 움직임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권세환의 학생봉기불가론을 하나하나 뒤집어엎는것이였다.

《권선생, 많이 도와주셔야겠습니다. <한국학생론>은 매우 흥미있는 책이 될것 같습니다. 선생이 보시는 견해와 내가 들은 이야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 이런것은 책의 내용을 흥미있게 할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렇잖습니까? 서로 모순에 찬 자료를 가지고 거기서 진실을 찾아내는… 원래 저술이란 그런것이니까요. 많이 도와주십시오.》

《제 힘자라는데까진…》

권세환은 패틀리와 자기와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한번도 입에 올려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잘 알고있다. 피차에 《사교》와 《우의》형식을 통해서 정보를 교환하는것이다.

권세환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패틀리는 《한국》의 생활적인 정보를 파악하는것이다. 때로 권세환은 자기가 패틀리의 끄나불이란것을 생각하며 애써 그것을 부인한다. 어디까지나 정보교환이며 정담이다.

따지고보면 《대통령》도 끄나불이다. 미국대사는 옛날 총독이나 다를게 없다. 정치란 그런것이다. 아무도 대사를 총독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외무장관을 끄나불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자기는 패틀리를 통해서 미국의 정책을 탐지해다가 자유당에 리익준다고 높이 돋우고 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을 한번도 사전에 알아낸 일은 없다. 없지만 그는 원대한 환상에 사로잡혀보며 패틀리와의 교우를 무상의 영광으로 안다. 그로 하여 재산을 잡았고 지위를 얻었다.

그는 패틀리와의 교우관계(정보망)에 자기보다 훨씬 적극적인 사람이 망라돼있다는 짐작에 놀랐다. 조금전에 자기의 락관론이 하나하나 패배를 당한것이 그 증거다.

라이벌(경쟁자), 자칫하면 자기의 존재가 희미해질수 있다는 위구가 커다란 위협으로 머리에 확대돼갔다. 패틀리와 자기와의 사이(경제적후원)를 시기하는자들이 적지 않다. 패틀리에게서 받는 후원과 특혜를 탈취해가려는 동업의 제분업자들도 얼마든지 있다.

권세환은 자기의 수완을 과시할 필요를 느꼈다. 문교부를 통하여 각 대학에 시달된 교수들의 개별책임제 학생선도와 S대학 신문을 비롯한 대학신문들의 론조가 온건해진 사실을 이야기했다.

《맥분의 비극》이후 그는 또 그런 기사가 나오지 않는가 념려도 되여서 가끔 동일이나 왕렬을 시켜 신문을 구해다가 제목만이라도 훑어보았다. 《현실직시》라는 란이 없어졌을뿐아니라 과격한 론조의 글도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대학신문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였던것이다.

그는 대학신문들을 체계적으로 연구나 하는듯이 기억나는대로 《맥분의 비극》이란 제목을 하나 입에 올리게 되였고 패틀리가 묻는대로 그 내용을 얼추 이야기했다.

패틀리는 《맥분의 비극》의 필자 XYZ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미국의 잉여농산물투입정책과도 관련되는 문제로 보통 흘려들을 성질의것이 아니기때문이였다. XYZ가 상춘이란 말을 듣고 그는 더욱 놀랐다.

《내가 <한국>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곳이 K군이라 그런지 상춘이란 그 학생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끼게 되는군요. K군은 권선생의 고향이지만 참 경치가 아름다운 곳입니다. 거기 출신의 학생이 미국에 대해서 오해를 가지는 모양인데 내가 처음 군정관으로 있을 때 혹시 인상을 잘못 주지나 않았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천만에, 그럴리가 있습니까. 내 선거구에서 그런 학생이 생긴것은 저의 부덕소치올시다. 용서하십쇼.》

《그런 뜻은 아니구 저와 선생과의 공동책임이라고 해둘가요?》

두사람은 유쾌하게 웃었다.

《지금 그 학생과 선생은 어떤 관계를 갖고있습니까?》

권세환은 지금까지 상춘과 어머니를 위협하고 매수하기 위한 고심담을 반(협박)은 사실대로, 반(매수)은 거짓말로 꾸며댔다.

그 고심을 과장하려니까 그가 묘사하는 상춘은 학생운동에서 열렬하고 어떠한 유혹의 낚시에도 걸리지 않는 의지가 강한 청년으로 되였다. 또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조급해선 안됩니다.》

패틀리는 상춘에 대해서 여러가지를 더 캐여물었다. 학비는 어떻게 얻느냐, 그 어머니는 어떻게 생계를 꾸미느냐.

《어머니와 친하시오. <한국>인들은 아직도 봉건사상이 있어 어머니의 말을 듣습니다.》

《그게 어려울것 같습니다.》

《왜요?》

《그 어미란 로파가 지조가 강합니다.》

권세환은 지난 선거연설때에 국민학교운동장에서 무색했던 기억을 쓰겁게 회상하며 대답했다.

《지조가 무엇입니까?》

권세환은 그 추상명사를 설명하기에 무진 애를 썼다. 지조의 참뜻을 그로서도 모르기때문이였다. 한번 마음에 먹었던 뜻을 돈에 팔지 않는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패틀리는 모르겠다고 머리를 저었다. 장사군들이 신용을 지키는것과 같다고도 말해보았다.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녀자가 남편을 위해서 정조를 지키는것과도 같다고 그런 실례를 들어 보았다. 패틀리는 더욱 모르겠다고 했을뿐아니라 웃음까지 터뜨렸다. 결국 적당한 설명을 줄수가 없었다.

《우리 미국에서는 모든 기존도덕이 파괴됐습니다. 진선미조차도 모호하게 돼갑니다. 도덕을 고집하는 사람은 하나의 촌뜨기로 돼가는데 지조라는게 다 무엇입니까? 지조란 내가 알기에는 고집하는 지향을 의미하는것이겠는데 <한국>사람 고집할것 무엇 있습니까? 뒤떨어진 사상과 관습밖에 없습니다. 그런거 모두 버리고 빨리 미국의 정신을 배워야 근대국가로 될수 있습니다. 선생도 그런 도덕적관념이나 편견을 빨리 버리십시오. 그 편견이 선생의 정치가로서의 판단과 과단성을 흐리게 합니다. 이건 내가 선생한테 드릴수 있는 유일한 충고로 됩니다.》

그는 이 땅의 지식인을 간혹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그들가운데 민족적감정이 농후하다는것을 느끼는 일이 있다. 그것을 그대로 둔다면 미국이 《한국》을 통치하는데 방해로 된다고 믿기때문에 미국식사고방법을 력설하는 일이 있거니와 지금 권세환을 앞에 놓고도 미국의 비이트족에 대해서와 큐 클랙스 클랜(3케이단)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한 다음 자기의 집필상 필요한 자료를 말했다.

《조급해선 안됩니다. 일이란 긴목을 봐야 합니다. 잘 친하시오. 내 의견 같아서는 상춘의 어미도 찾아다니시오. 돈을 주시오. 선생의 성의를 보이시오. 지조란게 다 무엇입니까. 촌뜨기사고를 버리십시오. 돈으로 해결 안되는 일이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글쎄, 돈을 줘도 받질 않더라니까요.》

권세환은 8. 15직후 오원필의 비석을 세웠을 때 물건을 보냈다가 퇴짜를 맞은 까마득한 일을 생각하며 말을 했다.

《많이 주시오. 깜짝 놀라게 많이 줘보시오. 돈앞에 정신을 잃게 말입니다. 세상에 돈으로 해결 안되는 일 우리 미국인은 상상할수 없습니다. 상춘의 어미라고 어찌 그 례외가 될수 있겠습니까? <한국>녀성 그렇게 위대할수 없습니다.》

권세환은 패틀리와의 담화에서 미국이 리승만을 버리지 않는다는 암시를 받아서 그날 회담이 무엇보다도 유쾌했다. 한편 학생들의 동태나 민심이 급격히 사나와지는것때문에 미국인들이 상상이상으로 당황하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어서 다시한번 사태의 엄중성도 통감하게 되였다. 패틀리가 보석을 감상하던 까닭도 처의 편지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집에 돌아오는대로 곧 미국주권시장의 시세를 알아보았다. 《한국》관계의 주가는 폭락을 보이고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것을 안받침하듯 국내방송은 진주에서 학생들이 또 일어났다고 보도한다. 청주에서도 전주에서도 이번에는 지방의 작은 도시들에서 일어난다. 큰 도시에서 작은 도시로, 시위의 파도는 파급되였다가 다시 큰 도시로 파상형을 띠며 점점 확대되여간다.

서울만이 겉으로는 아직 조용한편이다. 그날도 각 대학에서는 무사했는지, 권세환은 전화로 S대학의 원익홍박사를 집으로 부르고 한왕렬에게 다녀가라고 기별을 보냈다.

원익홍박사는 문교부가(자유당이라는것이 더 정확하다.) S대학에 파견한 사람이다. 50살이 아직 채 못된 사회학을 전공한 장년학자로서 권세환이 재작년에 미국 단기려행을 갔을 때 그는 사회학연구로 뉴욕에 머물고있어서 두사람은 며칠동안 객지에서 《의기투합》이 되였던 사이이다. 그야말로 사회학의 연구라 하면서 뉴욕의 밤 뒤거리를 원박사가 안내해주었던것이다.

그 뒤거리라는 곳은 사람의 일체의 위신이나 체면을 모조리 벗어놓고 알몸뚱이로 되는 곳이여서 거기서 《공범》이 되는 사람은 갑자기 친해지기마련이다. 그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며칠밤 추억을 서로 상기시키기만 하면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는 두사람이 만나면 아무리 긴요한 말이 있을 경우에도 우선 그 감미로운 회상으로 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시작하는것이 통례로 되여왔으나 권세환은 그날만은 마음의 문을 열게 되지가 않았다.

《오늘 대학에선 무슨 일이 없었나요?》

《벌써 누구한테 들으셨습니까?》

원박사도 지금까지의 태도를 일변하여 금방 신중해졌다.

《정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권세환은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을 때의 랑패한 얼굴로 원박사를 보았다. 하녀가 차를 가지고 와서 왕렬이 왔다고 전한다.

그는 하녀가 닫고 나간 문을 다시한번 열었다가 굳게 닫으며 그래도 와와 하는 함성의 라지오소리가 새여들리자 복도에 나가 라지오를 끄라고 소리쳤다. 어느 운동장의 축구경기실황을 방송하는것이였으나 그의 귀에는 시위대의 함성같이만 들렸기때문이다.

라지오소리가 끊어지고 조용해지자 2층에서 왕렬이 저 혼자 치는 당구련습인지 상아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음향은 응접실을 더욱 조용하게 만들었다.

《하자영교수가 <정당론>강의에서 말입니다.》

《누가요?》

《하자영교수말이예요.》

《그래서요. 그가 또 무슨?》

《<정당론>강의를 했는데 그게 학생들을 선동하는 내용이였거던요.》

《어떤 내용인데요?》

《별게 아니예요. 교수자신의 말대로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한 그 내용인데 그게 시국이 이런 때니만치 학생들을 흥분시키는 힘이 있더라 그 말씀입니다.》

《내용은 별게 아닌데 선동하는 힘이 있다. 그거 도깨비가 아니요?》

《도깨비란 말씀을 하니 생각납니다만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유럽에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한다고 썼거던요. 그 유령이 지금 전세계를 덮고있지만 지금 말씀하신 도깨비가 요새 대학을 휩쓸고있어요.》

《내용은 별게 없나요?》

《몇학생을 불러서 물어봤습니다만 언질을 잡을게 없거던요. 그게 탈이예요. 있다면 그리스신화를 이야기했는데 그걸 문제시할수도 없구요.》

《학생들이 그 강의를 듣고 과격해진다 그 말씀인가요?》

《꼭 그 강의때문이라고 볼수 없지만 그러나 직접적인 모멘트는 된다고 봐야죠.》

《학생들이 어떻게 될것 같습니까? 박사가 보기에는?》

《그게 알수 없어요.》

《알수가 없다?》

《없습니다.》

권세환은 하자영과 자기와의 관계를 회상해본다. 불쾌한 일들뿐이였다.

오원필이 설립한 학원에서 공부할 때부터 옹구바지를 입고 다니던 하자영은 자기를 몹시 미워했다. 걸핏하면 때리기가 일쑤였다. 권세환은 그한테 꼼짝을 못하고 지내왔다. 그것이 지금까지 지속돼오는것 같았다.

몇번 문교부에다 그의 파면을 권고해봤으나 그의 학자적위치를 봐서 서뿔리 건드릴수 없다는것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면 안될것 같다.

《그래도 잘 캐보면 언질을 잡을 문구들이나 표현들이 있겠죠. 한왕렬이 온 모양인데 물어볼가요?》

《물어보십쇼만 나도 그에게서 들었습니다. 학생들을 몇명 박아놨는데 그놈들도 인제는 설설 뒤들을 빼는 눈치거던요.》

왕렬을 불러내렸다. 그도 하자영교수에 대하여 강의시간에 생긴 일이상은 더 말하지 못했다. 교수와 친한 학생들을 꼽아보았다. 전공하는 과목관계, 교수가 등산을 좋아하기때문에 그것으로 자주 상종하는 학생들, 신문편집관계, 이렇게저렇게 30~40명도 넘는 학생들이여서 그렇게 친다면 학생전체를 의심할수밖에 없었다. 비단 하자영교수뿐 아니였다. 평소의 태도로 보나, 학문적경향으로 보나 반《정부》적경향성을 띤 교수가 적지 않다. 그런 교수들이 이렇게나 저렇게나 학생들과 개별적관계를 갖고있는 형편이니 누구를 의심하고 안하느냐 말이다.

결국 셋이 모였으나 그들도 대학에 심상치 않은 《유령》이 떠돌고있다는것을 확인했을뿐 그 진원을 꼭 집어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더 초조해지고 불안해졌으며 권세환은 아무도 믿을수가 없었다.

만나지 않으니만 못하게 그들은 헤여졌다. 그는 K대학은 어떠한가 동일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동일은 언제나 그의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도대체 응접실을 들어와본 일이 별로 없었다. 발이 빠질듯 푹신한 융단의 꽃무늬만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너희 대학에선 요새 학생들의 공기가 어떠냐, 데모한다는 소리 안하던?》

동일은 대학에 나가면 자유당계통의 학생으로 통해있다. 그가 권세환의 집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 학생들은 모른다. 그렇게 호화로운 집에 살면서 친구들과 한번도 어울리지 않는것을 그의 오만으로 보는수도 있다. 그를 이단시하는 경향이였다.

동일은 대학에 나가서나 집에 와서나 그렇게 박해의식속에서 지내기때문에 그의 신경은 묘하게 발달되여서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특별히 민감한 촉감을 가지고있다.

대학에서 무엇인가 벌어지고있는것을 대강 짐작하고있었다. 이름을 찍어서까지 알수가 있다. 만약 그것을 다 권세환에게 일러바친다면 권세환은 굉장한 자료를 얻게 될것이며 동일은 그날부터라도 대우가 달라질것이다. 그러나 동일은 입을 꽉 다물었다.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냐?》

《모릅니다.》

《이놈아, 내가 벌써부터 말하지 않았니? 좀 눈여겨보라고, 네가 뭐 찾아다니듯 해봐라. 세상없는 일도 다 알아내지 않나.》

《뭐 찾는다》는것은 권세환이 숨어서 첩살림하는 주소를 동일이 알아다가 본처에게 고해바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나 권세환은 그렇게까지밖에는 입에 내지 못했다. 권세환은 조금이라도 비슷한 말만 있어도 꾸며서 패틀리에게 말하게 되련만 동일은 아무것도 말을 못한다.

《보기 싫다. 나가라! 개를 먹여도 주인의 공을 아는 법인데 널 집에다 두고…》

동일은 권세환앞에서 나왔다. 그의 가슴속에서는 자신을 혐오하는 마음이 더욱 굳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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