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불안한 계절

15

 

어머니는 의병의 딸이였다.

경술 《합병》전 이야기니까 오래된 일이다. 어머니는 올해 쉰아홉이다.

어머니가 네살 되던 해 늦은가을 어느날이였다. 엄마가 실성한 사람처럼 울며 어린 깨끄지를 업고 어데론가 갔다.(깨끄지는 어머니의 어릴적 이름이였다.) 그때 벌써 네살 된 깨끄지를 엄마는 업는 일이 좀처럼 없었는데 그날은 업고 가는것이였다. 어린 깨끄지는 엄마가 우는것이 겁이 나서 덩달아 울었지만 동구밖을 나서서부터는 엄마도 울지 않았다.

깨끄지는 등에 업혀가며 동리에서 나무에 달린 감을 보다가 빨간빛에 취한듯 그만 잠들고말았다.

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보여주려고 업고 가던 엄마의 애끊는 심정을 안것은 깨끄지가 철들면서부터였다.

깨끄지의 아버지가 속해있는 의병부대는 백리도 넘는 땅-장자울이란 마을 권생원네 집에 들고있었다. 의병들은 대개 자기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고장들에서 의병활동에 참가하고있었다.

권생원은 겉으로는 의병들을 후히 대하는체 하면서 뒤구멍으로 왜병《토벌대》에 보발을 띄웠다. 왜병《토벌대》들이 양주땅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어왔다. 의병들이 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장자울에서 적을 맞아 싸울것인가 혹은 자리를 옮기느냐 아직 결정을 짓지 못하고있을 때에 적의 기습을 받았다.

의병들은 적은 병력과 변변치 못한 병장기로 대전했다. 중과부적이였다.

몇사람은 전사하고 많은 사람은 피하였으나 깨끄지의 아버지 지서방과 그밖의 네사람은 불행하게도 잡히고말았다.

그들가운데는 그 마을사람으로 오달만이란 힘장수도 있었다.

그는 대장이 잡히게 되는 찰나에 의병도 아닌 몸으로 비호같이 달려들어서 대장을 번쩍 들어 돌담밖으로 던졌다. 장자울싸움에서 의병대장을 생포하지 못한것은 순전히 오달만의 용감한 행동때문이였는데 바로 그것때문에 생포된 사람들가운데서도 그는 중죄에 속하는 사람으로 되였다. 왜병들은 생포된 네사람과 오달만을 한줄에 묶어서 생매장을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무시무시한 행동을 감행함으로써 조선사람의 버릇을 가르친다는것이였다. 소문은 널리퍼졌다. 사람들은 분격과 공포에 떨었다. 깨끄지 엄마는 어린 딸을 업고 죽기 전 남편의 얼굴을 보자고 멀리 백리길을 달리다싶이 갔다.

생매장하는 곳은 장자울 뒤산 골짜기였다. 산에는 사람들이 하얗게 덮이였다. 처음에 왜놈들은 구경을 시키겠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 백성들을 총칼로 내몰 작정이였다. 그러나 막상 당하고보니 사람들의 기세는 매우 험악했다. 도리여 겁을 먹은 왜놈들은 현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을 총검으로 막지 않으면 안되였다.

깨끄지 엄마도 현장에 당도했다. 울음이 터졌다. 총칼앞에서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그 울음의 주인이 누구인줄 알자 좌우로 쫙 비켜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깨끄지 엄마는 왜놈들이 막아선 너머로 보이는 남편을 향하여 허둥지둥 팔을 벌려 안을듯이 달려갔다. 등에서 딸이 흘러내리는것도 몰랐다. 깨끄지는 땅에 떨어져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러면서도 엄마가 달려가는 그곳에 풀상투를 한 다섯사람들가운데서 용하게도 자기 아버지모습을 보았다. 깨끄지는 울음을 딱 그치고 《아버지!》 하고 쇠된 목소리로 불렀다.

아버지 지서방은 안해도 안해려니와 딸의 목소리를 듣자 팔을 추켜들려고 했다. 팔을 뒤로 묶인 그의 몸은 자유롭지 못했다. 중심을 잃고 곤두박질대는 몸을 바로세우느라고 위태로이 주춤거렸다.

그리고 웨쳤다.

《깨끄지야아!-》

어머니는 50여년전의 그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어머니가 자기 부친의 생애에 대해서 기억하는것은 오직 그 한 장면뿐이였다. 사람들이 어린 깨끄지의 신통한 기억력과 또 기억력이 가지는 피줄의 힘이라는것을 강조하여 그후에도 자주 그것을 이야기해보라는대로 외우는 가운데 그것은 세월의 풍화도 모르고 더욱 선명해지기만 했다.

왜병들은 의병들과 그들의 동조자 오달만을 그렇게 생매장했다.

장자울에는 왜놈들의 피묻은 발자국이 그러한 경로를 밟아서 들어왔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이는 왜놈들과의 첫 상봉을 그렇게 하였던것이다.

장자울에서는 의병들의 무덤을 오형제무덤이라고 불렀다.

마을사람들은 왜놈들이 나가는 즉시로 다섯 시체를 다시 파서 고이 감장을 했던것이다.

깨끄지는 어렸지만 엄마를 따라 늦은가을이면 장자울로 아버지무덤에 제사를 지내러 가군 했다.

다섯사람가운데서 두사람은 끝내 무덤의 임자가 나서지 않아서 무주총으로 됐지만 그래도 제사는 꼭같이 지내주었다.

무주총의 상주는 오달만의 아들 원필이라는 아이가 되였다. 깨끄지보다 서너너덧우였는데 그는 그 당시의 풍속대로 계집애처럼 까만 머리를 땋아내린 사내아이였다.

깨끄지는 무덤에 가는것이 좋았다. 장자울사람들이 어린것이 용하게 먼길을 왔다고 칭찬해주며 삶은 밤과 빨간 감을 주는것이 좋았다. 어떤 할아버지는 꽃신도 삼아주었다. 깨끄지 엄마도 그를 아들삼아 해마다 제사때면 반드시 데리고 가려 했다.

《네가 아들이였음 아버지 원쑬 갚으련만…》

엄마의 한숨섞인 말을 자주 들으며 깨끄지는 자랐다.

그러다가 여라문살 되면서부터는 그도 한몫의 일손이 되여 바쁜 가을철에 들에 나가 일을 하고 엄마만 혼자서 가는수가 많았다.

엄마만 혼자 제사에 다녀온 날 밤 깨끄지는 엄마가 가지고 온 삶은 밤을 까먹으며 원필이도 잘 있더냐, 그애는 아직도 머리를 깎지 않았느냐, 그에 대해서 이것저것 거리낌없이 묻군 했는데 그래도 아직 부끄러움이라는것을 모르는 때였다.

수치심이 싹트는 나이가 된 후로는 엄마가 원필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를 기다려야 되는 안타까움에 혼자서 얼굴을 붉혔다. 그것을 기다리는 아쉬운 마음이 그렇게 생각되는것인지 아니면 엄마가 지꿎어서 그런지 좀처럼 원필의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았다.

한편 죽은 남편에 대한 엄마의 정성도 쪼들리는 살림에는 어쩔수 없는 모양이였다. 깨끄지의 엄마는 남편없는 살림이 말 아니도록 되자 늦은가을 그날이 되여도 가지 못하는 해가 있게 되였다. 그러한 날의 엄마의 상심은 딸로서도 옆에서 차마 볼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날 밤의 슬픔도 깨끄지에게 있어서는 엄마가 살아있다는 그것만으로 해서도 오히려 다행한 소녀시절이였다.

어느해 엄마마저 죽고말았다.

《네 아버지무덤을 잊지 말아. 왜놈들 손에 죽은 너희 아버지…》

엄마의 유언이였다.

늦은가을이 되고 아버지의 제사날이 되면 무덤에 가지 못해 가슴뜯던 엄마에 대한 회상으로 밤에 잘수가 없는 깨끄지였다. 뒤울안 밤나무에서 밤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생각했다.

아버지무덤에 가지 못해서 애쓰던 엄마의 걱정이 이제는 자신의 슬픔으로 되였다. 가을 제사날만이라도 아버지무덤에 가야만 엄마의 혼도 위로하게 될것 같았다.

깨끄지는 그런것을 생각할 열일곱나이가 되였다. 엄마의 무덤은 가까운 공동묘지에 있어서 봄, 가을로 벌초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무덤은 백리 밖 장자울에서 무주총으로 잡초에 묻히고있는지도 모른다. 설사 남의 손으로 철을 찾아 벌초가 된다 하더라도 고인은 얼마나 떳떳치 못하랴. 제사는 더 말할것이 없다.

깨끄지는 이모에게 졸라서 제사날 함께 장자울로 떠났다. 이모네는 그때 어떻게 된노릇인지 집도 없이 되고 깨끄지 엄마가 죽은 뒤에 그 집에 와서 살았다. 안방은 이모네 식구가 들고 건넌방은 깨끄지가 제 방으로 썼다.

기미년 만세가 있기 전 그때만 해도 방년의 처녀가 나들이를 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깨끄지는 남복을 했다. 갑사댕기를 두르고 염낭을 찼다. 감발에 굵은 짚신을 신었다. 밤중에 떠나서 갔지만 장자울무덤에 도착한것은 낮이 기운 때였다.

무덤은 깨끗이 벌초가 되여있었다. 원필네 집에서 해준것이 틀림없으리라 깨끄지는 그렇게 생각하고싶었다.

아버지무덤에만 간단한 제물을 놓고 잔을 부어 올리려다가 옆의 무주총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모, 아버질 옮겨다 어머니와 합장을 했음 좋겠어요. 그럼 올 걱정도 없고 이런 거북한 생각을 안해도 될텐데.》

《네 형편에 그게 쉬우냐. 이담 네 남편이나 잘 만나서 그렇게 하렴.》

그때 마을에서 사람이 하나 거불거불 올라오고있었다. 깨끄지는 속으로 불안을 느꼈다. 자식된 도리를 지킨다는 자부심을 다져보았다. 아버지의 가호를 바랐다. 한편 이상한것은 원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였다.

올라온 사람은 정말 원필이였다. 머리를 짧게 깎아서 개명한 총각이 되였으나 눈치빠른 처녀는 어릴 때에 보았던 모습을 대번에 알아볼수 있었다. 그의 소식을 언제나 알고싶어하던 처녀였다.

그래서 단번에 알아보았는지 모른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원필아! 소리라도 치고싶었다. 그러나 모르는체 시치미를 떼여야 했다.

원필은 묘에 이르자 깨끄지를 보고 아무러한 주저도 없이 물었다.

《넌 누구냐?》

깨끄지는 고개를 떨구었다. 암만 태연하려고 해도 그것이 되지 않았다. 얼굴은 홧홧 달았다. 얼굴을 들기만 하면 몸에서 불이 일것만 같아 돌아서고말았다.

《어디서 본 애 같기도 한데.》

원필은 꼼짝 않은 깨끄지를 유심히 보다가 주춤 물러서며 다시 더 묻지 않는다. 남복의 정체를 간파하고도 눈을 감아주는것인지 그는 이모에게 몸을 돌려서 허리를 굽혀 인사까지 하는것이였다.

《깨끄지 어머니가 오신줄 알았더니 다른분들이 오셨군요.》

《그분은 우리 성님인데 간봄에 그만 돌아가셨다우.》

이모가 대답했다.

원필은 깜짝 놀랐다.

《저걸 어쩝니까. 그런걸 우린 조금도 모르고있었군요. 인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말론 남남이라 하지만 아버지들로 봐서 두집이 그런 사이가 아닌데요. 거참, 그럼 저 도령은 어머니도 없이…》

깨끄지는 부끄럽기도 하고 또 웬 일인지 세상에서 처음으로 귀중한 말을 들은것 같아서 속이 흐느껴지며 현기증을 느꼈다.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털썩 물러앉고말았다. 북받치는 울음을 억지로 참으면 참을수록 눈물은 쏟아졌다. 이모는 놀라며 그의 어깨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은근한 말로 걱정을 했다.

《너 왜 이러니, 어지러우냐?》

《괜찮아요.》

조금 있다가 깨끄지는 마음을 매웁게 먹고 일어섰다. 원필도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듯 말을 다시 계속했다.

《어서 제를 지내십소. 아침나절에 우리가 다섯 분장을 꼭 같이 지냈습니다만 그래도 직접 자손의 정성만이야 하겠습니까. 어서 지내세요. 내가 봐드리죠. 혹시 다른 사람들이라도 올라와서 저 도령을 보고 이런 말 저런 말을 시켜도…》

원필은 깨끄지를 알아본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진해서 자기의 정체를 밝힐 용기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원필이 자기를 알아준것이 마음 한구석 기쁘기도 한것은 무슨 까닭인가. 깨끄지는 떨리고 부끄럽기만 하던 속이 차츰차츰 가라앉으며 일의 두서를 가릴수가 있었다.

《이모, 얼른 지냅시다.》

대담하게 목소리를 남자처럼 거칠게 한다고 한것인데 그것은 속으로 기여들기만 하고 제가 들어도 녀자의 방울같이 울리는 고운 목소리로 되고마는것이였다.

보잘것없는 제물이였지만 남이 보는 앞에서 진설하자니 그것도 어떻게 놓을지 가리를 못 잡을 지경이였다.

더구나 원필이앞에서 상스레 아무렇게나 처신하고싶지 않은 처녀였다. 원필의 입에서 글줄이나 배운 사람같이 문자가 나오는것을 보자 더욱 주눅이 들었다.

《얘야, 이걸 저쪽에 놔야잖니?》

이모가 제물들을 어디에 놓을지 몰라서 묻자 깨끄지는 더욱 가리를 못잡고 손은 허공에서만 놀았다.

원필은 그것을 또 눈치챈 모양이였다.

《홍동백서란 문서가 있어 그 대추랑 저쪽으로 놓는거지만 그런 허문욕례만 찾다가 나라가 망한걸요. 아무데나 놨던대로 놓세요. 그리고 정말 속에 있는 말로 아버지, 제가 여기 왔습니다 하고 절이나 세번 하구요.》

깨끄지는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주눅이 들어서 취한 사람같이 어쩔줄을 몰랐다.

그가 남자들이 하듯 무릎을 꿇어 절을 하자 옆에서 원필은 산 사람에게나 고하듯 무덤을 향하여 말했다.

《아저씨, 따님의 앞날이나 굽어봐주십시오.》

원필의 그 목소리는 다정한 손길이 되여 깨끄지의 몸을 안아주는것 같았다. 그는 또 눈물이 쏟아지는것을 아래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어깨는 가늘게 달막거렸다.

그들은 제사를 총총히 끝내고 산을 내려왔다.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행길로 나가는 갈림길에 왔을 때 원필은 이모의 손을 잡다싶이 자기 집에 가서 쉬여가라고 권했다.

이모는 거듭 사양했다. 원필은 한사코 잡았다. 이모는 조카딸의 의향을 묻듯 깨끄지를 보았다. 깨끄지는 다리가 아파서라기보다 어쩐지 그의 집에 가보고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는 원필이 머리를 깎아서 그가 장가를 갔는지, 아직 초립동인지 그것이 궁금해지는 야릇한 마음에 혼자서 얼굴을 붉히며 당황도 하고 자기를 꾸짖기도 했다.

원필은 사리를 따져 권했다.

《집엔 늙은 어머니만 한분 계십니다. 지금 밤길을 가다가 도중에서 누구네 집에서 자구 갑니까. 도령이 남의 내실에서 잘수도 없고 쉬고 밝은 날 새벽에라도 제가 바래다드리죠.》

이모도 그제야 원필의 말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모양이였다.

《얘, 어쩌자니?》

깨끄지는 아무말없이 땅만 내려다보았다. 발밑의 아직 마르지 않은 풀잎이 유난히 싱싱해보였다.

《오세요.》

원필이 굵은 목소리로 산을 내릴 때 처녀는 어쩔수없이 그를 따르게 되는 자신의 대담성에 스스로도 놀랐다.

《괜찮다.》

이모가 슬며시 손끝으로 깨끄지의 잔등을 다치며 안심하라는 눈짓을 했다. 이모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은 저도 모르게 귀뿌리가 홧홧하며 붉었다.

원필과 깨끄지의 혼인은 이듬해 3월로 정했다.

원필의 어머니는 그를 보자 첫마디에 《넌 내 자식이다.》라고 했던것이다.

그의 정혼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깨끄지가 저의 아버지산소에 제사지내러 가더니 어떤 총각과 눈이 맞아서 되는 혼인이라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고운 얼굴을 탐내던 사람들이 돌리는 말이기도 했다. 깨끄지의 외롭고 가난한 신세를 리용하여 민며느리로 기웃거리던 사람도 없지 않았다. 그러한 뒤공론은 깨끄지를 원필에게로 더욱 가까이 밀어주는 힘으로밖에 되지 않았다.

신랑집에서는 깨끄지의 부모없는 가엾은 처지를 생각해서 례를 이루기전부터 왕래를 했다. 의논할 일이 있으면 사람이 오군 했다. 의논이라고 해도 어린 신부의 의견을 묻는다기보다 정해지는 일을 통지해주는 정도의 일이였다. 원필이 직접 오기도 했다. 누구를 전인해서 시킬만큼 두집의 살림이 넉넉한것도 아니여서 당자가 직접 오는것이였지만 그때의 풍습으로는 남의 눈에 띄우는 일이였다.

원필은 어디까지나 체모를 지키였다. 도리여 깨끄지마음에는 원필이 와서 직접 저와 만나 이야기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는 반드시 이모를 상대로 말만 이르고 가는것이였다.

장차 안해될 처녀의 립장을 살펴주는 진중한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어딘가 성에 차지 않는 깨끄지의 마음이기도 했다.

열여덟살 나던 봄이였다.

깨끄지는 베틀에 앉아서 혼인에 쓸 무명을 짜고있었다. 바깥날이 별안간 따뜻해지고 방안이 몹시 답답해서 문을 열어놓았다. 밖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나더니 원필이 안마당에 불쑥 나타났다.

《엄마!》

베틀에서 허둥지둥 내린 깨끄지는 먼저 벗은 맨발이 부끄러웠다. 정신은 거기에만 쏠렸다. 누가 보지나 않는가 그것도 걱정이였다. 전일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라도 해보았으면 하던 아련한 생각은 가뭇없고 당황해지기만 했다. 이모내외는 들에 나가고 없었다.

《지나던 길에 들렸습니다.》

그가 생전처음으로 듣는 존대였다. 주체 못할 벅찬 감정이였다.

《어딜…》

깨끄지는 말이 되질 않았다.

《국상이 나서 읍엘 좀 가던 길인데.》

《국상이요?》

깨끄지는 깜짝 놀랐다.

《예.》

원필은 사이를 두었다가 탄식과 함께 말을 이었다. 고종의 국상이였다.

원필은 매우 침통한 표정이였다.

《그래서 우리들 일도 좀 물려야 할것 같습니다.》

《…》

국상은 부모상과 같다고 했다. 3년은 몰라도 석달은 혼례를 참아야 한다.

깨끄지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입으로 잘근거렸다.

《아무때고 한번 조용히 말하려고 했지만 우리들은 의병의 자손 안예요? 아버지들은 나라를 찾으려다가 그렇게들 되셨는데 우리가 그 뜻을 저버릴순 없죠.

그걸 저버림 짐승만도 못한 인생이죠.》

《…》

깨끄지는 무겁게 한숨을 쉬며 곁눈으로 원필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알겠습니까?》

처녀는 원필의 그 말이 다 옳다고 생각했다. 짐승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무러한 외로움도 고생도 이겨내야 되는 운명같은 체념이 싸늘하게 체내에 감돌았다.

《그렇잖아요?》

《그래요.》

그는 모기소리처럼 가늘게 겨우 대답했다.

《그러니까 조금도 달리 생각말고 혼인에 대해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려요.》

깨끄지는 별로 슬픈 마음도 아닌데 그렇게 자기를 철든 사람으로 믿고 의논삼아 말해주는 원필이 고마와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웬 일인지 어머니생각이 불현듯 났다. 그의 엄마는 입버릇처럼 《저년이 언제 철이 든담.》 하고 걱정하지 않았는가.

《울긴 왜 울어요?》

원필은 깨끄지의 손을 잡을듯 하더니 그만두고 주머니에서 무엇인가 꺼내서 주기만 했다. 가락지였다.

그후 얼마 안 가서 3. 1운동이 일어났다. 깨끄지가 사는 능말에서도 사람이 상했다. 인심이 소란했다. 어디서는 사람이 죽고 어디서는 사람이 잡혀갔다는 소문이 하루도 그치는 날이 없었다. 수원지방에서는 미국선교사가 지어놓은 례배당에 수백명 사람들을 몰아넣고 왜놈들이 석유를 끼얹어서 불태워 죽였다는 끔찍한 소문도 돌았다. 미국놈과 왜놈들은 갈데없이 한통속이라고 했다.

《남의 나라에 기여든것들이야 다 그렇고 그렇지.》

깨끄지는 그 무시무시한 소문을 들을 때마다 언제나 장자울을 생각했다. 그것은 2중의 뜻을 가지고있었다.

하나는 이미 어렸을 때에 목격한 아버지의 최후의 장면이였고 하나는 원필에 대한 궁금한 마음이였다.

원필은 한번 그렇게 다녀간 후에 아무 소식도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믿으려고 했다. 그러한 어느날 소식이 정말로 왔다.

원필이 왜놈들에게 잡혀갔다는것이였다. 깨끄지로서는 주체할수 없는 타격이였다. 몸이 떨리기만 했다. 안으로 방문을 잠그고 이불을 쓰고 누웠다. 이모가 와서 자세한 말을 하라고 해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만 했다.

원필은 그렇게 될것을 각오하고있었기때문에 그렇게 찾아와서 직접 말까지 했던것인가, 앞으로도 제 몸 하나 돌볼 생각, 처자권속을 거느릴 생각은 없는 사람인가? 아버지들의 뜻을 저버리면 짐승만도 못한 인생이라고 한 말은 그렇게 처자권속도 제 몸도 돌보지 않는것을 뜻하는것인가?

깨끄지는 가락지만 남몰래 꺼내보고 울었다.

그러나 결코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를 악물고 살아가리라. 사람들은 그의 고운 얼굴을 공연히 시샘했다. 미인박명이라고도 했고 박덕이라고도 해서 벌써 그의 앞날에 검은구름이 가리기 시작한것이라고 했다. 그의 운명을 동정하는것인지 고소해하는것인지 알수 없는 눈으로 보았다.

그에게서 잠까지 빼앗아가는 밤들이 계속되였다. 그러한 어느날 밤, 깨끄지가 혼자 자는 건넌방 문앞에 와서 문고리를 조심스레 흔드는 기척이 들렸다.

깨끄지는 깊은 잠에 들지 않고있었다.

《누구예요?》

《나요.》

원필의 조심스런 목소리였다. 그러나 깨끄지는 그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자기를 그런 행복과 인연이 있는 계집으로 생각해본 일이 한번도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원필의 목소리였다. 세상이 밝아진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때까지 그것이 어떠한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인지 그는 몰랐다. 정말 그밤 그 순간은 낮보다도 밝았다. 그들은 뒤산 밤나무밑으로 갔다. 별빛에 보이는 원필의 몸은 더 우람해보였다.

깨끄지는 와락 그의 가슴에 안겼다. 원필은 가볍게 그를 밀었다.

그의 덤덤한 태도가 깨끄지의 심장을 돌같이 와서 때렸다. 깨끄지는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거절을 당했다는 수치심은 결코 아니였다.

조금전 밝던 세상과는 달리 깜깜한 그밤을 몇겹으로 겹쳐놓은 암흑이였다.

《난 지금 피하는 몸입니다. 호송하는 왜놈보조군을 멨다꽂고 도망쳐왔소.》

깨끄지는 그것이 장차 자기 운명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는 말인지 똑똑히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럼 인제 어떻게 되나요?》

《모르겠소. 이 고장을 멀리 떠야 될거요.》

《언제까지요?》

《그걸 어떻게 아오. 아무튼 지금 잽힘 왜놈들은 날 죽일거요.》

《엄마!》

깨끄지는 원필의 손을 그 어떤 잡아가는 놈에게서 탈환이나 하듯 힘껏 잡아끌어 자기 가슴에다 대며 말했다.

《잡히지 말아요, 잡히지 말아요.》

《…》

《잡히지 말아요.》

《…》

《내 새벽마다 정한수 떠놓고 빌게 잡히지 말아요. …》

《…》

《성황당에 가서 빌게요.》

깨끄지는 두발을 동동 구르며 원필의 대답을 재촉했다.

《안요, 그런게 안요, 날 잊어주오. 처잘 편히 거느릴 몸이 못되오. 그걸 생각 않고 공연히 혼인을 청했었소. 허긴 그땐 그걸 깨닫지도 못했고요. 이즘 일을 당해보니 그래요. 그래서 우리 두집사이가 더 깊어지기전에 말하는게 좋겠게 이렇게 어디루 멀리 가기 전에 왔으니 날 용서하오. 어서 들어가요.》

깨끄지는 탈싹 주저앉았다.

《엄마!》

울음이 북받쳤다.

《날 부모없다고 세상사람이 모두 업신여겨요. 이걸 어째요. 엄마!》

《이거 밤중에 남이 듣겠소. 저리 더 갑시다.》

원필은 깨끄지의 손을 힘내기로 끌고 뒤산 더 깊이 들어갔다.

소쩍새가 쌍으로 울었다.

《그런게 아니래두요.》

《듣기 싫어요. 뭐 그런게 안예요. 부모의 뜻을 저버림 짐승만도 못하다고 날 가르친건 누구예요. 날더러 짐승만도 못한 녀자가 되라는건가요! 아버지, 엄마!》

《그런게 아니래두, 이거 야단났군. 내가 당신을 업신여길 말룸 모른체 하고 어디루 가버리고말거지 예까지 왜 찾알 왔겠소.누구 가슴은 터지지 않는줄 아오?》

《찾아왔음 나와 의논할게지 그게 무슨 말예요.》

《의논이란게 글쎄 날 잊어주고 달리 생각을 해서 앞이 좋도록 하라는것 아니요.》

《듣기 싫어요. 난 당신 집 가문의 귀신이 되는것밖에 달리는 더 좋은 일이 세상에 없어요.》

《그건 한때 생각이요. 아무튼 내 생각은 그러하니까 그쯤 알고 인젠 들어가봐요. 난 길이 바쁘니까.》

하늘에서는 별찌가 하나 서북방으로 길게 꼬리를 그으며 흘렀다.

소쩍새가 이제는 외짝이 되여 더 애처롭게 울었다.

깨끄지는 가려는 원필의 옷자락을 잡았다.

《못 가요.》

《…》

깨끄지는 격하게 말하고 원필은 말이 없고 그러나 몹시 괴로와했다.

《못 가요. 가도 할 말 하고 가요.》

《지금 내게 할 말이 뭐 있소.》

《난 래일이라두 장자울집으로 갈테야요. 난 여기서 혼잔 못살아요.》

《날 언제까지라두 기다리겠단 말요?》

《기다리잖구요.》

《례도 안 이루고?》

《례가 따로 있나? 천지신명앞에서 내가 당신헌테 이렇게 절하면 그게 례지.》

원필은 자기앞에 머리숙이고 큰절하는 깨끄지를 덥석 껴안았다.

《고맙소.》

깨끄지는 그 품에 얼굴을 부비였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렴치없게 당신을 기다리라고 하겠소.》

《난 인젠 어린애가 안예요. 당신 손으로 귀밑머리를 틀어줘요.》

《귀밑머릴 틀어도 어린애지.》

《안예요.》

원필은 깨끄지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면서 한손으로는 그의 귀밑머리를 틀어주었다.

그의 머리에서는 동백기름도 아니 발랐는데 신선한 향기가 향긋하게 풍기였다.

《망국의 비운이 당신에게까지 슬픔을 주는군.》

《아니예요. 난 나라를 위해 몸바치는 당신을 남편으로 맞는것이 자랑이예요.》

원필은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칼을 꺼내서 깨끄지에게 주었다.

그것을 가지고 장자울로 가서 그들의 혼인을 고하라는것이였다. …

종이봉지붙이기를 거들어주며 그 이야기를 듣고있던 채남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져 종이우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깨끄지와 원필, 자기와 상춘 네사람의 그림자가 시공간을 떠나 나란히 서보는것이였다. 그것은 두렵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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