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불안한 계절

 11

  

길은 어딘가에 있고 아직 그것을 발견 못해 괴로운 상춘에게 《누구에게 사과를 해야 되느냐?》고 채남은 또 하나의 짐을 실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짊어주는 짐이기때문에 그것은 더 무거운지도 모른다. 그 짐을 지고서 상춘은 집으로 왔다.

집에는 뜻밖에도 대학 회계원 염씨가 와서 있었다. 묻지 않아도 알수 있는 일이였다. 상춘은 무조건 미안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던 염씨는 자기 편에서 죄라도 지은듯 일어나서 앉지도 못했다.

《오군, 미안하오.》

《죄송합니다. 오시도록까지 해서…》

어머니와 상춘은 앉으라고 끌어당기나 그는 변명부터 해야 되는듯 서서 온 뜻을 분명히도 말 못하고 얼버무렸다.

《오늘 대학에서 만나지를 못해 일은 급하고 오긴 왔는데 지금껏 자당과 걱정을 하고있던 길이야. 와서 보니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는줄은 몰랐소. 용하오, 어떻게든지 졸업을 해서 어머님 편안히 해드리며 옛날얘기하고 사오. 고진감래란 말이 있잖소?》

염씨는 먼저 인품이 안겨오는 사람이였다. 아직 50이 채 못되는 나이건만 돋보기를 끼고 옛날 일제때의 하급공무원의 몸차림그대로 언제나 회계실에 앉아서 장부와만 싸우고있지만 대학내의 일은 휑하니 꿰고있는 사람이다. 일제때부터 있으면서 과장도 못되고 20년이 여일하게 회계원 그대로의 고지식한 반면에 한번 믿는데가 있다고 보는 학생은 끝까지 보아주는 일면이 있었다.

학생을 평가하는 그의 징표의 첫째는 수재였다. 수재는 대학만 졸업하면 출세를 한다는 견해라기보다 오랜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였다. 그 수재들에 대해서 한점 놓고 보는 습성이 생겨 그들에게 편의를 도모해주기도 하며 그것을 하나의 즐거움으로 삼고있다. 상춘도 그의 눈에 든 학생의 하나였다. 지난 학기분의 부족되는 등록금의 일부를 자기의 직권을 리용해서 딴 돈으로 메꾸어주고 지금까지 상춘이 가져오기만 말없이 기다려주었다. 상춘은 아직도 그것을 보충해넣지 못하고있는데 갑자기 래일 회계검열이 있어서 사정이 급하게 된것이다.

《미안하오.》

염씨는 앉아서도 또 그 말을 했다. 상춘의 집에서는 그를 잊을수 없는 고마운 사람으로 일러온다. 벌써 두번이나 그와 같은 비법의 편의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한마디의 싫은소리도 없이 도리여 미안하다고만 한다.

저녁도 아니 먹고 대학에서 곧바로 온 눈치였다. 험한 밥에 찬도 그렇고 귀선은 슬며시 나가서 조그만 소주 한병을 사가지고 왔다.

염씨는 마실줄 모른다고 사양했으나 한병은 할수 있는 애주가였다. 상춘이 따라주는 잔을 받으며 어머니에게 권해보기도 하면서 상춘에게는 학생은 아직 입에 댈 물건이 아니라고 권하지도 않았다.

술이란 허랑한 물건이다. 그 착실한 사람도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부터 혀도 잘 돌아갔다.

《오군, 내 권고하오. 특대생이 되오.》

특대생이란 전대학적으로 성적이 제일 우수한 몇학생에게 일체의 공납금을 면제해주는 제도였다. 그것을 받게 되면 등록금걱정도 없게 된다. 상춘은 그 특대생까지는 못되여 언제나 등록금으로 고생을 한다.

《내가 보기엔 오군은 넉넉히 특대생이 될수 있어. 아, 그까짓것 악을 쓰고 교과서만 파란 말요. 오군같은 재주에 안될게 뭐요? 정말입니다. 아주머니…》

염씨는 어머니에게로 돌아앉으며 상춘을 극구 칭찬한다.

《남의 집 가정교사를 하면서도 그만한 성적을 올리는건 대학 2천명가운데서도 다섯손가락이 될가말가 합니다. 다른 학생들이야 저희 부모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니까 되는거고, 오군같은 학생은 쉽지 않습니다. 자랑으로 여기세요. 그런데 말야…》

이번에는 상춘을 향하여 말을 잇다가 찰찰 넘는 잔을 쏟았다. 그는 잔을 상에 놓고 얼른 옷자락을 들어 거기 묻은 술방울을 흑흑 빨아들였다.

《술은 한방울이 아까운거야. …》

밖에는 이웃녀자들이 마실을 왔다가 손님이 온것을 보고 그대로 돌아갔다. 차복 할머니는 어머니를 불러내서 누구냐고 묻고 갔다.

《그런데 말야, 내가 보건대 오군도 교과서보다 다른 공부를 더하는거 같애. 요새 대학신문에 쓴걸 나도 봤는데 XYZ 그게 오군이지, 그렇지?》

염씨는 물었다.

상춘은 별로 부인도 하지 않고 빙그레 웃었다.

《그건 다 소용없소. 그거 쓸 시간이 있거든 교과서 파란 말요. 교과서를… 알겠소? 그러면 특대생은 떼논 당상이지. 내가 장담해. 또 교과서가 아니고 다른 책을 본다 하더라도 교수가 쓴걸 봐서 점수를 따란 말요. 요령이라고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대학을 나와야지. 등록금만 아님 내가 뭐라고 내 밥 먹고 이런 싱거운 소릴 하겠소. 난 오군을 위해서 하는 말이요. 다른 공부는 그 다음 사회에 나가서 천천히 하고…》

그의 권고는 어디까지나 그의 말대로 상춘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 그는 호의로만 받아들였다. 자기의 의견은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염씨는 점점 더 수다스러워졌다.

《내가 조사해보니까 장학회란것도 많더군. 오군도 그런데나 하나 뚫어보오. 아, 왜 요샌 레스링을 한다는 외교학과의 한왕렬이 있지 않소. 그는 환평육영회인가 하는데서 학비를 곧 많이 얻어쓰는 모양이야. 권세환이란 자유당 <국회>의원이 내는 돈이라나. 오군도 그런데라도…》

그가 권세환과 상춘네와의 관계를 알아서 하는 말은 아니였다. 회계과에 있어 아는것이였다.

그는 일어나면서 자기의 용건은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고 미안하다고만 했다.

《내가 웬만하면 오지 않고 기다릴텐데… 아, 세상 좀 보세요.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걸 넘성거리는 사람도 있군요. 그 악당들은 내가 실수만 있기를 바라고있죠. 참 세상은 말세고 요지경예요. 이 요지경을 살아갈려니 힘이 듭니다. 그럼 오군, 내 사정이 그래서 왔소. 도리가 아니요. 와서 자당이나 형수되시는분이 고생하는걸 보니까 더욱 죄송스럽군. 내 말을 흘려버리지 말고 특대생이 되오.》

염씨는 념려말라고 했지만 그는 거나해서 처음 와본 판자촌에서 제대로 길을 찾아가지 못할것 같았다. 상춘은 그를 저아래 큰길까지 바래주었다.

판자촌은 낮에는 밝은 해빛이 모든 가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주는데서 오는 선명성으로 하여 그래도 밝다고 할가. 그러한대로 지나갈수가 있지만 밤이 되면 어둡고 음산하고 좁기만 한것이 사회에서 완전히 버림받는 지대라는것을 통절히 실감하게 된다.

산으로 올라가는 경사면을 한치의 빈틈도 없이 덮어버린 판자집들은 밤에도 비좁은듯 서로 비비대기를 치고있다. 이밤의 분하고 억울한 무슨 사연이라도 은밀히 주고받듯이 껌벅거리며 엉성한 문틈으로 새여나오는 불빛들이 얼룩지여 오히려 길을 밝히기는커녕 헛갈리게 만들었다. 길이란것은 애당초 있어보지도 못했다.

상춘과 염씨는 추녀밑으로 몸을 꼬부리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남의 집 부엌이여서 양철풍로를 발로 걷어찼다. 누구냐는 쇠된 소리를 등에 들으며 돌아서 나오자 그들은 어느 집 지붕우에 서있는것이다. 눈깔이 빠졌느냐고 땅속에서 거치른 욕설이 터져나온다. 모두 악만 남은 사람들이다. 리승만치하에서 또는 미군정치하에서 15년동안 빼앗기고 들볶이기만 해서 살다살다 못하여 이곳으로 모인 그들에게는 저항심과 울분만이 남았다.

상춘은 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가늠해보았다. 그도 2년을 이 마을에 살지만 하루에도 지형이 바뀌고 집이 헐리우고 새로 들어서며 변화무쌍한 곳이다. 언제나 밤에는 길을 헛갈리게 된다. 어림치고 흰빛도는 땅을 골라 발을 옮기였다. 수채구멍에서 흘러나온 물탕이였다. 흙물이 바지가랭이로 분수같이 뻗쳐 올라왔다. 상관치 않고 앞으로 나갔다. 이마에 거적문이 맞히고 옆에서도 거적문이 열리며 불빛이 새여나왔다.

《뭘 훔칠라고 이러능기요?》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선것이다. 거적문속에서는 땅바닥에 그릇을 벌려놓고 대여섯식구가 이마를 맞대인채 무엇인가 먹고있었다.

다시 돌아나와 어떻게 어떻게 길이란것을 찾아서 겨우겨우 발더듬으로 옮기는데 눈이 밝은지 달음박질로 상춘을 떠다박지르고 검은 그림자가 뛰여가고 뒤미처 잡으라는 소리가 따라온다. 그 가난한 지대에도 도둑이 든 모양이였다. 일시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창문들이 열리며 희미한 불빛이 쏟아져나오고 여기저기 사람들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구질구질하고 불결한 골목을 내려와서 내무부 모고관네 집앞에 밝게 비치는 특선전등불밑에서 상춘은 염씨와 헤여졌다.

《오군! 정말야, 특대생이 돼. 교과서만 파란 말요. 딴 생각 말고…》

상춘이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와 귀선은 큰산같은 걱정을 하며 앉아있었다. 봄이 오기 시작하면서부터 걱정해온 일이지만 그것은 너무나 일찍 찾아왔다. 지름길이라도 알고 먼저 왔다는듯이 말이다.

민녀인네 집에서 받는 사례금으로도 부족했다. 상춘의 생각으로는 이왕 페를 끼쳐 온김에 새 학기 등록금 납부할 때에 깨끗이 청산하려고 했던것이나 지금 당해놓고보면 그것이라도 찾아서 부족한대로 갚으니만 못하게 일은 아주 잘못되였다.

세식구가 이 궁리, 저 궁리에 오래도록 앉아있었으나 별도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구하는 길밖에는.

등록금으로서의 문제만도 아니였다. 남의 모가지를 자르게 되는 문제였다. 부정행위로 몰리면 대학에서 목이 잘리고- 염씨는 식구가 일곱이라고 했다.

상춘은 제 방으로 가서 책을 펴놓았으나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도록 잠도 들지 못하다가 늦게 눈을 붙였고 그래서 아침늦게 일어났다.

집에는 어머니도 없고 귀선은 의례 그럴것이고, 영조 혼자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물장구치듯 발을 놀리며 숙제를 하고있었다.

《할머닌 영등포 고모네 집에 갔어. 밥은 솥에 있고, 삼촌 늦잠쟁이.》

영조는 숙제에 열중해서인지 쳐다보지도 않았다. 연방 연필끝을 입으로 핥았다.

《열두시까지 삼촌 집에 오라고 했어. 할머니가 꼭 와야 한대.》

보나마나 영등포 누이네 집에 간것이다.

어머니는 답답하면 되나 안되나 거기밖에 갈데가 없었다. 가서 또 딸한테 핀잔을 맞을것이다. 상춘은 귀가 가려운것 같았다. 상란이 지금쯤 상춘을 욕하고있을지 모른다. 귀선은 될수만 있으면 장사를 재수있게 하고싶을것이다. 온 집안이 활약을 한다. 상춘은 공연히 마음이 불안했다.

《할머니가 그때까지 꼭 와야 할텐데.》

영조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왜?》

영조까지도 돈걱정에 한깃 드는가 해서 상춘은 실소하여 물었다.

《왜? 왜가 뭐야, 오늘 학교운동장에서 리승만<대통령> 연설해. 학부형들이 꼭 가야 돼. 안 가면 퇴학이야, 뭐 알아?》

그날 오후 3시에 돈암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자유당 선거연설이 있다고 한다. 학부형들을 동원한다.

상춘은 대학에 가서도 강의가 도무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휴식시간에 회계실로 저절로 옮겨지는 발길을 어쩔수가 없었다. 회계실창구안을 기웃거렸다. 염씨가 얼굴에 수심을 담고 멍청히 앉아있었다. 상춘을 보고 반색을 하며 검정사무용토시를 벗어놓고 나와서 상춘의 입을 바라본다. 돋보기안경다리 하나는 실로 잡아매여 그것이 한쪽귀에 걸려 데룽거렸다.

《어젠 자당께 미안해요. 걱정들이시겠지?》

《…》

《모든게 뒤죽박죽인 세상이라 지금까진 하나도 예정대로 되는게 없어서 그놈의 회계검열도 그렇기만 바라고있었더니 말요. 재수없이 그게 오늘 오후에 온다고 지금 과장이 다녀갔구려. 오군, 미안하오. 자당께서 걱정하실거라 어떻게 한다? 오늘따라 뭐 들어오는 돈도 없군. 그랬으면 그걸로 또 어떻게…》

그는 상춘의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회계실로 들어가 아까의 또 그 자세대로 천정을 쳐다보고 앉았다.

상춘은 집으로 왔다. 12시가 조금 지났다. 골목에서는 통장이 바삐 돌아다닌다. 상춘네 집에도 들어서다가 그와 눈이 부딪치자 질겁을 해서 주춤했다가 다시 들어오며 물었다.

《어머니 어디 가셨습니까?》

《녜.》

통장은 아무말없이 돌아서 나가다 밖에서 영조를 보고 다짐을 한다.

《너 할머니 꼭 데리고 가야 한다. 알겠지? 안 그럼 너 학교 못 다녀.》

《알어요.》

《음.》

기특하다는 뜻이다. 동네가 어수선하다.

통장이 돌아다니기만 하면 못된 바람을 일구듯 그렇게 되는것이다.

어머니가 외손자를 업고 들어왔다.

《안 왔니, 누이?》

《아뇨. 힘드신데 걘 왜 어머니가 업고 다니세요?》

《힘들어도 일이 그렇게 되는걸 어쩌니?》

어머니는 그 말은 들은체도 않고 외손자를 내려서 오줌을 거두어주었다.

상란이 들어섰다. 말쑥하게 차렸다. 상춘은 그것이 못마땅했다.

저는 말쑥하게 차리고 다니느라고 아이는 로인에게 업히고 그래서 누님 오느냐 인사도 하지 않고 문지방에 걸터앉아서 상란의 꼴만 지켜보았다.

《얘, 이 못난아.》

상란은 다짜고짜 성을 냈다.

《죽도록 남의 집 애 가르쳐주고 돈도 못 받는게 어디 있니? 그리고도 뭐? 얘 보기 싫다. 그따위 년한테 쩔쩔매서 돈도 못 받고… 입학은 입학이고 사례금은 사례금이지. 그것도 못 받고 나오는 병신이 어디 있어. 내가 그 집에 가봤다. 네가 와야 줘도 준다더라. 아유, 유들유들한 년도 다 봤지. 왜 떳떳하게 받을수 있는 돈이라면 본인이 오잖고 누님이 왔느냐고, 위임장 가지고 왔느냐고 하더라. 어서 그리고 앉았지 말고 갔다오너라. 안 주거든 물건이라도 들고 와. 그 집에 값진것도 많더라.》

어머니가 영등포엘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던것이다. 그러나 거기서도 돈 나올데라고는 없고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민녀인네 집 관계를 듣자 상란은 당장 가서 받아낼듯이 말쑥하게 차리고 갔던것이다. 민녀인이 돈을 줄 까닭이 없었다. 상춘이 받던 모욕이 어떠한것이였던가를 상란이 직접 겪고 왔을뿐이다. 그것은 생각지 않고 화김에 동생에게만 야단치는것이였다.

《뭘 꾸물거리고있니? 어서 가보기나 하지. 남의 고마운 사람 해고되지 않게시리. 그 집식구가 자그만치 몇이랬니? 니가 먹여 살릴테냐? 어서 일어나지 못해?》

상춘은 도저히 그 말을 듣고있을수가 없었다.

《누가 그 집엘 가라고 했수? 다니면서 남의 창피만 시키고…》

《뭐, 창피? 돈 받을거 있어 받으러 가는데 뭐 창피냐? 저런 바보같은거. 아마 저애가 그 집에 딸이라도 있는 모양예요. 어머니, 그래서 위신을 차리는게 아네요?》

상춘은 모욕이나 당한듯 자리를 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들었다. 어머니가 앞을 막았다.

《누이도 걱정이 돼서 그러는걸 뭘 그러니? 누이 아니면 누가 걱정해주니? 앉아있어라. 늬 아주멈이 어디 알아본다고 했다. 곧 올게다.》

상춘은 속으로 울분을 참으며 앉아있었다. 누구에게 보내는 울분인지 모른다. 생각하면 누이에게 하는것은 아니였다. 아까는 차리고 나선것이 못마땅해했지만 녀자가 남의 집을 찾아갈 때는 례의라는것이 있다. 깨끗하게 입고 가서 민녀인따위에게 모욕을 받았을 누이의 모습이 눈에 방불하여 그가 별안간 가엾게 보이였다. 울분은 그것에 대한것이였다.

귀선이 들어왔다. 광주리를 이고 한손에는 피지 않은 진달래를 들고 그것으로 몸의 중심을 잡듯 몸매가 곧게 들어섰다. 그의 존재는 언제나 화려한 옷도 아니건만 주위에 청신한 공기를 뿌린다.

《왜들 그래요?》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영조가 달려들어 진달래를 빼앗았다.

《벌써 진달래가 났어요, 어머니. 옆에 팔러 온 마나님이 주었어요.》

《병에 갖다 꽂아라.》

어머니는 영조에게 이르고 민씨네 집에 갔던 일이 안된것을 며느리에게 이야기한다.

《그런것들이 줄 맘이 있음 어제 줬죠.》

《그러게 말이다.》

《저것이 자선심이 많아서 안 받는데 누가 주우, 언니두.》

상란은 어디까지나 동생이 미웁다는것이다.

《누이, 그러지 마우. 내가 얼른 다녀와요. 도련님, 왜 그러고 앉았수. 뭐 처음 당하는 일이유?》

《어서 넌 네 방으로 들어가있어라.》

어머니가 딸과 아들을 갈라놓고저 상춘을 방으로 쫓았다.

《언니, 그만둬요. 저애가 세상맛이 어떤가를 더 좀 알게.》

《도련님이 뭐 몰라서 그러우?》

귀선은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빨래한 새옷냄새가 그 녀자의 모습같이 신선했다.

《어머니, 얼른 다녀와요. 누이, 밥이 조금 있을거유. 아이 젖빨리는 누이나 한술 뜨구려.》

《내 걱정을랑 말어요.》

상란은 그러면서 손가방에서 얼마의 돈을 꺼내 귀선에게 주며 상춘이 있는 곳을 돌아본다. 상춘은 못 본체 얼른 외면을 해버렸다.

귀선은 나갔다. 상란은 또 잔소리다. 어머니가 조금 엄하게 그만해두라고 해도 그렇지 않고는 민녀인에게서 받은 수모의 분을 가라앉힐수가 없었다. 상춘은 밖으로 나왔다. 형수만 믿고있을 때가 아니였다. 혹시나 하고 몇군데 가보았으나 허사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골목에서는 어디 가지 말라는 통장의 웨침이 지나가고 지나오면서 오후 2시쯤 되여 밖에 나갔던 귀선이 돌아왔다.

어머니도 상란도 일시에 그를 말없이 그러나 한없는 기대를 가지고 맞이한다. 그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는 그날 일의 관건을 의미했다. 너무나 중한 일이여서 입빠른 상란이까지도 먼저 묻게 되지 않는것이다. 귀선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귀선의 얼굴은 창백했다. 비탈길을 바삐 올라오느라고 숨이 찼던것인가. 그는 골목에서 방문앞까지 5~6메터를 겨우 와서 저고리 앞가슴에 손을 넣어 돈뭉치를 꺼내더니 몸이 녹아 흘러내리듯 탁 쓰러졌다.

《언니!》

상란이 외마디로 부른다.

《어멈아!》

어머니가 절망으로 며느리를 부른다. 귀선의 얼굴에서는 피기가 백지를 벗기듯 하얗게 걷히여간다.

《언니!》

《어멈아!》

귀선의 얼굴은 경련이 일뿐 대답은 없다.

어머니가 발을 구르며 쓰러진다. 상란이 동동거린다.

상춘이 상란을 재촉해 가슴을 헤치게 한다. 상란이 정신없이 가슴을 헤치자 닭알 한알과 종이에 싼 고급과자 몇개가 떨어진다.

《아주머니, 피를 팔았구려!》

상춘이 황소같이 웨치며 벽을 친다. 아버지의 사진액틀이 기울어지며 먼지가 날린다.

닭알과 고급과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상춘만이 알았던것이다.

《피를 팔아?》

어머니가 방바닥을 친다.

《이 망할것아, 내가 널 세상에 뭣과 바꿀줄 안다고 피를 팔랬더냐? 이 매운것아!》

귀선은 빈혈로 졸도를 했다. 정신은 있어 주위에 벌어지는 일을 알기는 하나 손발을 꼼짝할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서는 맑은 물이 흘러 귀바퀴를 적시였다.

어머니는 닭알을 집어서 벽에다 던진다. 과자를 쥐여뿌린다.

《어떤 놈들이 이걸 주구 네 피를 뽑았단 말이냐?》

귀선은 조금 손을 놀릴수 있게 되자 풀어졌던 앞을 가리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모로 누우려 했다. 상란이 그를 안아 모로 눕히고 피여나는줄 알자 그대로 안고 울음을 삼킨다.

상춘은 그뒤에 장승같이 서만 있었다. 폭풍으로 휘몰아치는 사태의 의미들을 그는 감당할수가 없었던것이다.

《넌 뭘 이러고 섰느냐, 대학이고 뭐고 다 그만둬라.》

《…》

《왜 이러고 섰어? 의사도 부르고 이런 때 좋다는건 모두 사오너라.》

어머니말에 상춘은 급히 나가려들었다.

《도련님…》

귀선이 가늘게 불렀다.

《그거 가지고 어서 학교에 가요.》

《안된다. 네 피가 어떤거기에 그걸루 학교라니…》

《어머니, 제 말대로 하세요.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어떤건 피 아닌가요, 눈에 보이지 않을뿐인걸요. 도련님, 어서 내 말 들어요.》

상춘은 뜻하지 않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다, 어느 하루하루가 피 아닌 날이 없다.

그가 찾는 길이 거기 어디에 있는것 같았다. 그는 밖으로 나와 민녀인네 집으로 급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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