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불안한 계절

 10

 

상춘은 채남과 약속대로 대학병원구내로 가보았다.

그날 생긴 일들로 해서 영화를 볼 기분까지 아니였고 잠간만 만나보고 헤여질 예정이였다. 시간보다 늦었다. 채남은 이미 와있었다. 상춘을 보고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늦었다고 그럴 사이도 아니고 무엇인가 혼자 생각에 잠긴 얼굴이였다. 상춘을 보는 눈만은 부드럽고 다정하려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무엇인가 호소하고싶은듯 초점을 잃은 눈으로 되였다.

《늦어서 미안해.》

그도 정신이 드는듯 새삼스레 놀라며 《내가 미안해요. 이렇게 멍하고 앉아서…》 하고 말했다.

의자에 놓아두었던 가방을 들며 일어났다.

《아인 입학이 됐어요?》

상춘은 머리를 저었다.

《그럼 또 어떻게 하나요?》

《뭘?》

《아네요.》

그 녀자는 도리질을 해가며 자기 말을 급히 부정했다.

《또 어떻게》라는 말에는 상춘이나 상춘네 식구들 못지 않게 많은 그의 걱정이 포함되여있었다. 그러나 로골적으로 그것을 나타낸 자신을 경솔했다고 그는 뉘우친다.

상춘이 학기마다 등록금때문에 곤난을 당하는 양을 매번 보아왔고 도와주지 못하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겨왔다.

요행 상춘이 가르친 아이가 합격이라도 되였으면 축하 겸 영화라도 함께 가볼것이나 그는 그대로 낮에 겪은 일로 영화를 볼 기분이 아니였다.

《무슨 일이 있었어?》

상춘이 물어보았다.

《아네요.》

그는 아니라고만 하다가 상춘이 유심히 보는 눈을 속일수가 없어서 말하게 되였다. 만나서 유쾌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너무나 침울한것이여서 망설였던것이다.

《저기 눈을 팔러 온 사람이 있어요.》

병원 안과실을 가리켰다.

창에는 오후의 해빛이 비꼈다. 상춘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눈을 팔러온 사실이 놀랍지 않다는것이 아니라 그날 겪은 일들만으로도 개탄도 비분도 포화상태에 있었다. 새로운 사실은 그의 등을 더 찍어 누를따름이였다. 채남이 애처롭게 전하는 내용을 듣고만 있었다. 들으면서 그가 전하는 내용이상의 무게를 감당해내느라고 얼굴은 굳어져 화난 사람같았다. 그날 낮에 병원에는 눈을 팔러 온 청년이 있어서 큰 화제를 던지였다. 채남의 동급생들은 너무나 끔찍한 일에 그를 동정하기보다는 모멸이 앞서서 가보려 하지들 않았다. 감정도 없는, 자신뿐아니라 인간을 모독하는, 오직 돈만을 탐내는 돌의 심장을 소유한 사람일것이라고.

녀의대생들은 그렇게 미지의 청년을 경멸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호기심이 강한 녀학생도 있어서 가보고 와서는 의외의 말을 전했다.

얌전하고 단정한 사람으로 처녀같이 눈도 똑바로 뜨지 못하며 눈만 사달라고 애원하더라는것이였다.

채남도 안과실에 가보았었다. 채남은 지금도 상춘앞에서 그것을 후회하고있었다.

의학적인 일도 아닌 일에 호기심을 일으켰던 경솔을 뉘우쳤다.

스물대여섯살의 단정한 얼굴의 내성적인 사나이였다.

그는 의사들이 묻는 돈의 용처를 말하지 않았다.

《구태여 그걸 말해 뭘 합니까. 비참한 사연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북할테지요. 압니다. 각오합니다. 그러나 두눈으로 보는 현실보다 한눈으로 보는 그것은 그만큼 적어질수도 있다고 스스로 자위도 하고있습니다. 더 묻지 마세요. 잔인합니다. 생활고이외에 누가 눈을 팔 사람이 있겠습니까. 죽어가는 내 누이를 하나 살리려고 그럽니다.》

그러더니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좌르르 쏟아졌다는것이다.

《눈물을 안 흘리기 위해서도 이 눈이 소용없습니다. 사만 주십시오.》

이야기를 다 듣고도 상춘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채남과의 사이가 아니라면 그것은 실례라고도 할수 있다. 언제부터 생긴것인지 학생들사이에는 부단히 말하고 부단히 감동하고 부단히 놀라는 풍습이 있다. 그것을 상대방에 대한 례의 혹은 인사라고 한다.

《기분이 나빠요?》

채남은 노한듯 한 상춘에게 사과하듯 묻고 혼자서 후회도 했다.

《정말 기분나쁜 얘기예요. 그래서 아니하려고 했는데 용서해요.》

《날은 왜 이렇게 좋을가, 천둥번개라도 치지 않고.》

《무서운 소리두.》

《무섭긴, 뭐 이보다 더 무서울라구.》

그들은 걸어서 병원정문으로 나왔다. 창경원에서 호랑이우는 소리가 들렸다. 산중왕으로서 뭇짐승들을 습복시키는 장쾌한 울음인것이 아니라 우리에 갇혀 오후의 봄날을 슬퍼하는 울음이였다.

정문을 나선 상춘은 발걸음의 방향을 도심지대로가 아니라 창경원쪽으로 돌렸다. 채남도 아무말없이 그를 따랐다. 그들의 영화구경약속은 무언으로 포기한것이다.

《얼굴빛이 좋지 않아요.》

상춘은 낮에 집에 왔던 장자울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채남이 생활에서 그때그때 받는 심적충격을 상춘에게 호소하고싶은것 마찬가지로 상춘도 그에게 자신의 느낌을 나누고싶은것이다.

채남은 아무말없이 걷기만 했다.

초례청에서 신부가 졸도했다가 일어난 일, 그 녀자가 입술을 깨물고 꼿꼿이 례식을 끝낸 매운 정신, 다시 신방을 습격당하고 신랑이 랍치된 이야기- 계속되는 심적충격앞에서 즉각적인 소감은 일어나지 않았다. 슬프다거나 분하다거나 더우기 동정이 간다거나 하는 그런것은 아니였다.

답답하고 무겁고 암담한 심정뿐이였다. 상춘이 그 맑은 날에 천둥번개를 갈망하는 심리를 알만 했다.

상춘은 민녀인과의 이야기도 했다. 준호의 퇴학처분도 알려주었다. 어느덧 혜화동로타리를 지나 리화동 채남의 집 앞골목까지 왔다.

《들어가요.》

상춘은 걸음을 멈추고 채남이 골목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 사건들을 가지고 더 할 말도 없었다. 느낌은 너무나 커서 전혀 없는거나 마찬가지였다. 두고두고 혼자서 생각할 일들이였다. 상춘은 거기까지 온김에 낙산을 넘어 숭인동에 있는 동무에게 가서 전번에 빌리지 못한 책이나 빌려올 생각이였다.

《들어가요.》

한번 더 들어가기를 재촉하고 발길을 돌렸다. 채남은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를 따라왔다.

그들은 또 걸었다. 대화는 단절되였다. 두사람은 싸우지도 않았건만 자기 생각들에만 잠기여 땅만 보고 걸었다.

산에 오르자 해빛과 바람은 좋았다. 바위밑 양지에는 풀싹이 돋고 다박솔에는 자주빛 콩알만 한 햇솔방울이 생기기 시작했다. 도봉산줄기가 저녁노을비낀 불그스레한 파란 금을 선명하게 긋고 기복하면서 투명한 공기속에 훨씬 가까이 안겨왔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은 상춘과 채남도 역시 자기들과 같이 행복한 청춘으로만 아는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녀자가 남자의 손끝을 잡았다가 놓기도 하고 코소리로 교태를 부리기도 하며 지나간다.

상춘은 아무데나 바위를 등지고 기댔다. 채남은 조금 떨어진 곳에 치마로 무릎을 싸며 앉았다.

상춘은 계속 혼자 생각의 미궁을 헤매였다.

경태는 공부를 잘하라는 부탁이다. 공부를 잘해서 천대받는 자기들을 어떻게 해달라는 막연하면서도 인사만도 아닌 말을 했다. 상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공부를 계속해서 대학을 나올것이다. 그러나 그후는?

선배졸업생들의 생활을 둘러본다. 그들도 대학시절에는 포부가 컸다. 민족을 위하여 비분강개도 했으며 좋은 론문도 썼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서는 학창에서 꿈꾸었던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더라면서 현실과 타협하고 량심에 때가 끼기 시작하며 평범한 월급쟁이가 아니면 시정인으로 자족한다. 그러면서 술이나 마시며 사회를 조소하는게 고작이다.

그들과 장자울사람들, 또 그 신부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경태가 공부를 잘하라는 부탁은 그런것만은 아니리라. 오늘 밤 장자울의 그 신부는 신랑없는 방에서 무엇을 생각할가. 미국놈들과 같은 하늘을 쓰고사는 운명을 한탄할것이며 벼락을 치지 않는 하늘을 저주할것이다. 하늘도 미국놈편인가 하고 말이다.

교수가 된다. 어머니의 부탁이였다. 학생들은 무수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진리의 문을 두드린다. 교수는 정확한 대답을 회피한다. 그들도 압력에 떠는것이다. 진리앞에 갈릴레오와 같은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교수라면 그를 어찌 학자라고 하겠는가. 상춘이 교수가 됐다고 가정해서 말이다.

《먼저 내려가요. 날도 저무는데…》

상춘이 채남에게 말을 했다.

서쪽하늘은 찬란하게 물들었다. 남쪽으로 멀리 보이는 남한산성 성벽에 저녁해가 밝게 비쳤다가 서서히 누른빛으로 변해간다.

《공연히 따라와서 방해만 되는것 같아요.》

그는 한숨섞어 말하며 일어섰다. 상춘도 따라 일어났다.

《옆에 있어줘서 조용히 생각할수 있었어. 그렇잖더라면 아마 거리를 헤매다가 누구와 싸웠을지도 몰라.》

《상춘씨답지 않게…》

채남의 눈에는 믿음과 원망이 함께 서려 곱게 반짝이였다. 상춘은 와락 그를 끌어안고 풀리지 않는 가슴을 털어놓고싶었다.

《이런 땐 마음이 공연히 거칠어져서 그렇게 되기 쉬운거야. 아까 대학에서도 하찮은 말에 충돌을 하구…》

《누구와?》

《시시한 얘기야. 어서 내려가봐. 난 여기서 성을 끼고 집으로 갈테니까.》

상춘의 집이 있는 성북동은 그렇게 가면 되였고 그 길이 더 가까웠다. 채남의 집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네에 있었다.

《그럼 난 가요. 상춘씬 집으로 곧장 가야 돼요. 부탁이예요.》

그러면서도 채남은 얼른 돌아서서 걷지를 못했다. 무엇인가 미진하고 그대로 헤여져선 안될것 같은 불안과 공허감이 있었다.

상춘은 그의 어깨를 억세게 잡았다. 그리고 넘치는 힘을 억제하며 그를 돌려세워 가볍게 앞으로 밀어주었다.

채남은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듯 산을 내려갔다. 상춘은 그의 뒤모양을 지켜보고있다가 시야에서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별안간 마음은 허전했다. 채남이 옆에 있어주었기때문에 조용히 생각할수도 있었지만 떠난 다음에는 무수한 그와의 대화가 미진한것 같아서 그 자리를 떠날수가 없었다. 방금 채남의 그림자가 사라진곳에서 누구들인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채남의 목소리도 섞여있었다. 혹시 부랑자들이라도 만났나싶어 상춘은 급히 내려가보았다.

가축병원마당에서였다. 채남은 어떤 중년녀인에게 열심히 사과를 하고있었으며 흰 위생복을 입은 수의는 채남에게 또 그렇게 사과를 하고있었다.

《무슨 일이죠?》

상춘은 채남에게로 가까이 가서 조심스레 물었다.

《모두 제 잘못이였어요.》

상춘에게보다 중년녀인과 수의에게 몰아서 용서를 비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그들이 산에서 말없이 서로 앉아있을 때의 몇갑절로 얼굴은 절망과 당황에 파랗게 질려있었다.

《왜 이다지도 사람이 모독을 당해야 돼요?》

채남은 울먹거렸다. 상춘은 영문을 몰랐다. 채남이 모독을 당한줄 알았으나 사과하는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수의가 상춘의 손을 잡았다.

《이 학생에겐 조금도 잘못이 없습니다. 의례 할수 있는 말이였습니다. 또 해야 되는 말이였고…》

그러나 채남을 아니꼽게 노려보고있는 중년부인의 눈은 무서웠다.

《남의 사정을 모르거든 본체만체 지나갈거지 무슨 참견이야, 건방지게! 남이야 개가 되든지 소가 되든지… 나도 돈만 있어봐… 어떤 년이…》

채남은 기겁을 해서 중년녀인의 손을 잡고 매달리며 그 녀자의 입을 막을듯이 애원을 했다.

《아주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그 말씀만은…》

그제서야 중년녀인도 화를 늦추고 푸념끝에 침을 뱉으며 돌아서고 모였던 사람들도 흩어졌다.

가축병원마당에는 채남과 상춘 그리고 수의만이 남았다. 날은 어두워 현관에 매달린 전등이 흐리게 비치였다. 채남은 너무나 괴로와 절망한 나머지 몸을 제대로 가눌 힘이 없어서 상춘에게 의지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난 모르겠어요. 인간이 왜 이렇게도 모독을 당해야 돼요?》

방금 한 말을 또 되풀이하는 그는 가까스로 울음을 참았다.

상춘은 의문의 눈길로 수의를 보았다.

《아무의 잘못도 없습니다. 녀학생의 순진과 정의감이 혹시 그런 말을 할수 있다면 잘못일가요? 허긴 순진과 정의가 용납 안되는 사회지만 말입니다. 가난이 죄지요. 내가 수의로서 방금 간 부인의 유종을 수술해주었습니다. 가축을 눕히는 수술대에 사람을 눕히고 말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녀학생의 말대로 인간의 존엄을 모독한 행위였죠.》

채남은 몸을 떨며 참지를 못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제가 몰랐습니다. 선생님은 훌륭하세요. 제가 경솔했어요.》

유종을 앓는 녀인은 돈없어 병원에 가려고 해도 가지 못하고 고생하다가 수의에게 수술을 간청했던것이다. 수의는 인정이 많은 사람이였다. 근처의 가난한 사람들의 병을 많이 보아준다. 유종은 간단한 수술로 되는것이여서 칼을 대고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채남이 그것을 보았던것이다.

채남은 정말로 그럴수 없었다. 세상에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그대로 지나칠수가 없었다. 장래의 의사로서 수의에게 항의를 했던것이다.

그것이 오히려 가축병원을 찾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던 녀자의 참았던 자존심을 폭발시키고말았고 큰소리가 나게 되였다.

잘못은 정말 아무에게도 없었다. 수의의 설명그대로 아무에게도 없었다.

잘못은 오직 가난에 있었고 사회에 있었다.

채남은 그것을 상춘의 정도로나마도 아직은 모른다.

《어떻게 해요? 난 누구한테 사과를 해요?》

채남은 상춘에게서 옳은 대답을 기다렸다. 상춘은 가슴만 답답했다. 사랑하는 녀자에게 옳은 대답을 주지 못하는것은 더욱 비참한 일이다.

《선생님, 정말 누구에게 사괄해야 됩니까?》

상춘이 수의에게 물었다.

《모릅니다. 오히려 젊은 학도들인 당신들에게 묻고싶은 말입니다.》

수의는 무슨 까닭인지 주의를 경계하는 눈으로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현실에 면역이 돼서 분노할줄 모르며 또 분노했다 하더라도 행동하지 않는 우리들에게 죄가 있는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상춘은 의사에게 머리를 숙여보이며 채남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아직 한번도 상춘에게 오래도록 손을 주지 않던 그였지만 지금은 그렇게라도 이끌려가야 했다. 제힘으로는 그 자리를 떠날수가 없었다.

상춘에게만 의지하고싶은 절망감이였다.

밤의 골목은 어둡고 큰길에서 들리는 선거선전은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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