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불안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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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봄은 불안한 계절이다. 추위가 좀체로 물러가지 않는다. 추위속에서 오는 봄은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또 힘차다.
겨울도 지난해는 엄혹했다. 늦추위로 혹한이 갑자기 닥쳐왔었다.
립춘이 가까웁도록 얼지 않던 한강이 별안간 얼어붙으며 한밤중에 얼음조이는 소리가 쩡 하고 길게 강심깊이, 지심깊이 울렸다. 그 소리가 땅갈피를 타고 우뢰같이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강변에 사는 사람들은 한밤중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서움과 함께 호기심을 느꼈다.
한강이 얼지 않고 겨울을 넘기는줄 알았더니 올것은 기어이 오고야마는것인가, 서울사람들의 마음속에 무엇인지 갈망하는 소원도 그렇게 풀릴 날이 있을것인가.
겨울은 날씨가 그렇게 엄혹했다. 눈이 내릴 계절에 비가 구질거렸다.
한강이 60년이래 처음으로 대한이 지나도록 얼지 않고 푸른 물이 흘렀다. 괴후였다.
사람들은 춥지 않은 겨울을 두고 좋아할 대신에 봄이 오면 무서운 염병이 돌아서 많은 사람이 죽어넘어질것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더니 기온은 별안간 내리고 례년에 없는 혹독한 추위를 휘몰아왔던것이다.
수도가 얼어터졌다. 산비탈에 매달린 판자촌은 온통 얼음판으로 덮였다. 미끄러워 오르내릴수가 없었다. 매일 밤 여기저기에 강시(얼어서 죽은 송장)가 생겼다. 한파는 재난까지 데리고오는지 매일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학교가 타고 판자촌이 불바다로 되여 소방차의 높은 경적이 거리를 누비고 달렸다. 시골에서는 보리가 모두 얼어죽었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어제도 오늘도 폭등일로만을 치닫고있는 쌀값때문에도 불안한 화제는 끊임없이 퍼지고있었다.
늦추위는 풀릴줄을 모르고 기승을 부렸다. 국민학교에서는 겨울방학을 일주일씩이나 연장했는데도 불을 때지 않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떨고 감기를 만났다. 류행성감기가 지독하게 돌았다.
굶고 떨고 앓고 인심이 흉흉한 겨울이였다.
봄이 온다.
공기는 피부에 부드럽다. 아침이면 가로수에 상고대(서리가 나무에 내려 눈같이 되는것.)가 하얗게 피여 꽃같으며 밤에는 고층건물상공에 얼어붙었던 별이 자위가 돌듯 물기를 머금고있다.
그러나 봄은 엄혹했던 겨울의 연장같이 어수선했다.
거리는 3. 15《정, 부통령》선거전의 시작으로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5월 예정이였던 선거를 앞당겨 봄이 다가오기 전에 해버리자는 《조기선거》라 한다. 《정부》에서는 농번기를 피한다는 말이였지만 실상은 굶주리는 봄에 사람들이 모이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민심의 동향을 겁내서 미리 날자를 앞당겨 해버리자는 자유당의 책략이라는 말도 있다.
봄은 여, 야당의 선거선전이 일으키는 바람을 타고 억지로 오는 느낌이였다.
령남, 호남지방에서는 꽃소식대신에 테로, 체포, 협박, 공갈-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왔다.
선거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투쟁과 그에 대한 탄압과의 충돌이였다.
이 땅은 해마다 빼놓지 않고 봄이 되면 춘궁이 앞질러온다.
도시, 농촌 할것없이 이대로는 살수 없다는 15년동안의 울분과 생을 위한 투쟁의 저류가 선거반대라는 외형을 띠고 자유당과 리승만반대의 기운으로 흐르고있다. 여당은 그 기운을 막아보려고 탄압으로 나오고있으며 야당은 민중들의 기운에 편승해서 선거에서 이겨보려고 한다. 마치 자기들은 민중들의 15년동안의 요구를 해결해줄듯이 말이다. 그러나 야당이래야 일신의 리익을 위하여 정치가도를 부단히 헤염치여 한때는 여당에로, 한때는 야당에로 정치적신념도 지조도 없이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는 무리들의 집단에 지나지 않았다. 민중들이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봄은 오건만 봄을 등지는 현실이였다.
서울은 여, 야당의 선거전으로 날이 밝고 해가 저물었다. 고층건물들의 옥상에 설치해놓은 여, 야당의 방송과 방송의 대결.
각종 프랑카드, 선전화, 삐라, 삼인조, 구인조 등 선거의 사전조직, 매표행동, 여론에 대한 탄압, 시민들에 대한 협박과 공갈, 시민들의 불신과 적대감정, 무엇인가 터지고야말듯 한 팽창한 공기속에 그래도 봄은 봄대로 힘차게 오고있었다.
어머니 지씨는 선거라는 놀음이 매양 무엇이란걸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이 땅에서 맨 처음 실시한 5. 10선거는 나라를 지금까지 이렇게 분렬시켜놓았다.
5. 10선거때- 어머니는 십몇년전 고향 K군에서의 일을 어제일같이 몸서리치며 회상하게 된다. 큰아들 상백이 그때 반죽음으로 피투성이가 되여 집에 업혀왔던것이다.
선거와 아들에 대한 테로- 그것은 뗄수 없는 하나의 사건으로 어머니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어 지금까지도 불안감을 자아내게 한다.
그립기는 하나 다행히랄가, 큰아들 상백은 지금 집에 없다.
그후에도 《국회》의원선거, 《정, 부통령》선거를 여러차례 겪었지만 작은아들 상춘은 아직 철모르는 중, 고등학생으로서 큰아들이 당한 테로의 걱정없이 선거를 모른체 외면하고 보낼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사정이 다르다. 상춘이 이제는 대학생이다. 선거권도 있다. 더구나 이즈음은 그의 수상한 태도가 어머니에게 어쩐지 불안한 감정을 가지게 하는것이다.
마침내 2월 28일, 대구학생시위사건이 터지고말았다.
경찰은 총과 곤봉과 구두발길로 폭행을 가했다. 많은 부상자를 냈다. 대구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2. 28대구학생시위를 비롯하여 전역에서 일어나는 학생시위의 특보나 소식들이 신문사 속보판앞에 혹은 거리에 사람들을 모은다. 경찰은 교통방해라는 명목으로 그들을 해산시키고있었으나 군중들은 흩어졌다간 다시 모여들고 모여들어서는 무엇인가 수군거리고, 서울의 봄은 창경원의 벗꽃보다 항쟁의 기운을 더 키워갔다.
어머니가 밖에서 벌어지는 그런 사태들을 다 아는것은 아니였지만 거치른 파도의 여파는 오랜 생활경험을 가진 어머니의 몸에 와서 반응기의 바늘처럼 민감하게 무엇인가를 알게 하였다.
《요새 너희들이 자주 떠드는 말이 뭔지 내가 알면 못쓰니?》
그날 아침 어머니는 밖으로 나가려는 아들을 잡고 그의 기색을 살피며 물었다. 아들의 몸이 새삼스레 커보이며 전같이 명령조로 묻게 되지 않는건 이상스러운 일이였다. 그의 대답에서보다 태도에서 모든걸 알아내려는듯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네?》
상춘은 당황해서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며 되물었다.
《너희들이 가끔 떠드는거 말이다. 대학신문이 어떻구 하는 그거…》
아들의 친구들이 집에 모이면 그런 말을 많이 했다. 선거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여서 어머니는 일단 마음이 놓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들이 흥분하고 걱정도 하는 기색은 엿볼수가 있어서 한번 물어보자던 말이였다.
《그거요?》
상춘은 어물어물 말을 피하더니 《아무것도 아니예요. 학생들이 모이니까 대학신문 얘길 그렇게 하는거죠.》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아들한테서 바른말을 듣기는 벌써 다 그른것으로 단념했다.
《네 형생각이 나는구나.》
상춘은 흠칫 놀라며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눈에는 근심하는 빛이 짙었다. 형의 이야기를 좀체로 입밖에 내지 않는 그들가족이였다. 그것은 어머니나 상춘의 마음을 언짢게도 하지만 형수 귀선의 마음을 공연히 흔들어놓을수 있기때문이였다. 일체 말을 말자, 언제고 통일이 되면 아들이 오고 남편을 만나고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가서 빼앗긴 집을 찾아 살고, 그런 애끓는 희망과 암약속에 살아가는 식구들이였다.
상춘은 형수가 집에 없나 고개를 돌려 안방을 보았다.
《그런 말씀은 지금 왜 새삼스레…》
《선거, 선거하구 밖에서 하두 법석들을 해싸니까 저절로… 벌써 사람이 죽었다면서, 뉘 집 자손인지?》
《보세요. 그러니 가만있을수 있어요?》
조금도 조심이 없는 아들의 큰 목소리였다. 어머니는 밖에서 누가 듣지나 않았는가 무의식중에 골목을 내다보았다.
《말 조심해라. 큰일난다. 첫째 몸을 조심하구.》
상춘은 어이없는 눈으로 어머니를 물끄러미 보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눈을 보자 그만 못할 말을 한것처럼 당황해서 변명비슷이 중얼거렸다.
《네 형이 그때 죽을번 했게 하는 말 아니냐? 너도 잊어버리지 않았겠구나.》
상춘은 형이 테로를 당한 현장으로 달려가던 때의 어머니의 모습을 눈앞에 보는듯 했다.
어머니는 읍내 서북청년회사무실로 가서 유리창을 마구 부시였다. 격노한 어머니에게 서북청년회놈들도 감히 덤벼들지 못했었다.
그때 일을 생각한다면 어머니는 상춘에게 그럴수가 없으련만 몸부터 조심하라는 걱정이였다. 하도 많은 풍상과 험한 세월이 어머니의 몸도 늙게 했지만 정신까지도 약하게 만들었는가. 상춘은 조금 서글퍼졌다.
《걱정마세요.》
상춘은 제가 듣기에도 아무런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였으나
《너 아버지때도 그랬고, 너 형때도 그랬고, 밖에서 무슨 반갑잖은 소문만 나면 그게 내 코에 와서 닥치더구나. 그렇게 놀래버릇한 가슴이 돼서 그런지 요새도 괜히… 저 악다구니 들어봐라.》
삼선교근처에서 왕왕 울리는 어느 편의 선전인지 살기를 띤 방송소리가 성북동꼭대기 판자촌부락에까지 들렸다.
그제야 상춘은 어머니가 선거와 관련해서 자기 걱정을 하는줄 알고 조금 화까지 내며 놀랐다.
《뭐 선거나 잘하자고 하는줄 아세요?》
이번에는 어머니가 어리둥절했다.
《그럼 뭐냐? 사람이 죽는데 가만있어 되느냐고 금방 네가 그랬잖았니?》
《그런 일이 없이 살아가도록 공부도 그런걸 연구해야 된다는거예요. 대학공부라는게 그런거니까요.》
《대학신문이 어떻구 하는것도 그런거냐?》
《어머닌 뭐나 흘려들으시는게 없어 걱정예요. 걱정거릴 일부러 만들고 계시거던요.》
《내가 널 어떻게 믿고있기에 너들 말을 흘려듣니?》
《그럼 제가 바른대로 말씀해드려요. 걱정마세요.》
상춘은 어머니를 안심시키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인지 나가려던 발길을 아주 돌리고 책가방을 퇴에 놓았다.
《지난 겨울방학에 학생들이 지방에들 가서 사람들 사는 실정을 보고 오잖았어요?》
그것은 어머니도 아는 일이였다. 대학에서 현실을 파악한다고 방학기간을 리용하여 학술조사사업을 했던것이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는 표시를 했다.
《그걸 대학신문에 내고있는데 당국은 그게 싫다는거죠. 내지 말라는거예요. 그러나 싫단다고 어떻게 안 내겠어요? 글을 조금씩 모를 죽여가면서 낼려니까 의논도 하게 되는거죠. 학술적으로 쓰는거기때문에 밖(사회)의 신문관 다르기두 하지만요.》
《나종에 말썽이 생기지 않겠니?》
《밖의 신문하군 달라서 괜찮다니까요.》
《넌 괜찮다구만 하지만…》
어머니는 학문연구가 죄가 되여 지금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돼있는 준호의 생각을 하였으나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걱정마시라는데두요.》
《어디 그렇게 되니?》
《어머니가 인젠 정말 늙으셨나봐요. 걱정만 앞세우시고…》
상춘은 어머니얼굴에 거미줄같이 얽힌 주름을 처음으로 발견한듯 바라보며 말했다.
《맘을 편안히 가지구계셔야 더 늙지도 않으시구 통일이 돼서 형도 만나시죠. 그래서 어머니가 늘 바라시는 고향도 가구, 요새 시골선 밭갈이가 시작됐을거예요.》
어머니는 뜻하지 않게 큰아들 얘기가 되고 고향이란 말까지 나오게 되자 공연히 마음이 설레인다.
《모르겠다. 네가 알아서 해라. 공부로 하는 일이램 낸들 말릴수도 없는노릇이고…》
《말리고말고 하실게 뭐 있어요? 학생들이면 의례 연구발표하는 일을요.》
상춘이 나가려할 때 통장이 들어오다 말고 상춘을 보더니 그대로 슬며시 돌아서 나가버린다.
어머니를 찾아왔으나 상춘이 있는걸 보자 거북한 모양이였다.
《요새도 통장이 그 소리예요?》
어머니네 집에 이웃녀자들이 많이 모인다 해서 그걸 시키려드는건지 통장은 어머니더러 구인조 조장노릇을 하라고 여러번 와서 졸라댔다.
《내 걱정을랑 말아. 기를 못 펴고 사니까 그따위 구데기가 쓴다만…》
《선거위반으로 고솔한다고 욕을 콱 해주세요.》
《네 말대로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다면야…》
《난 그래도 동무들 보군 어머닌 녀장부라고 자랑을 하는데요. 사실은 무슨 일을 할려면 첫째로 어머니들이 걱정이라는거예요.》
《어미노릇 하기가 쉬운게 아니란다. 네 형이 언제 올지 몰라도 그동안 니가 학교졸업이나 하고 대학 같은데 취직이라도 해서 이다음 하자영선생님처럼 학자라도 됐음 하고 그걸…》
어머니가 오래동안 두고 아들에게 하고싶던 말이였다. 하자영교수는 S대학에서 정치사를 가르친다.
남편 오원필이 옛날 고향 학원에서 가르친 제자들가운데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다. 사상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어머니가 아들에게 바랄만 한
인물의 표본이였다. 그런데 그 말이 무엇이 어려워서 어머니는 오래동안 벼르고있었는지
큰아들 상백은 8. 15후부터 6. 25까지 투쟁에 참가하는 동안 검거, 테로, 투옥, 무수한 시련과 고난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마음은 아팠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아들의 뒤받침을 해주었을뿐 아들보고 그 일을 그만두라고 말린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금 와서 회고하면 형극(고초와 난관이 가로놓인 상태)의 그 발자국들은 영광스러운 기억으로 가슴에 소생될지언정 후회는 추호도 없었다.
큰아들이 주장하던 일들-
《토지는 밭갈이하는 농민에게!》
《모든 정권은 인민에게!》
《외국군대는 나가라!》
《남북을 통일하자!》
어머니가 기억나는대로 생각해봐도 어느 하나 잘못된것은 없다.
해방후 이 땅의 현실은 그 주장들이 옳았다는걸 날이 갈수록 더 잘 실증해주고있다.
어머니가 큰아들을 훌륭한 자식으로 여기는 심저에는 아들이 지니고있던 그 사상의 진리성이 흐르고있었다. 따라서 큰아들을 믿는 마음은 응당 작은 아들에게도 그 길을 걷도록 요구해야 마땅한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상춘에게 그것을 주저없이 바라지를 못한다. 대학교원을 바랐다. 투쟁이란 하도 험난한 길인줄 알기때문에 아들을 그길로 보내기 어려워하는 어머니들의 인정인가 아니면 몸과 더불어 로쇠한 정신이 일시의 구안을 바라는 안일인가, 또는 자식들의 뒤라면 무조건 봐주기마련인 어머니들의 마음이 아들이 로동을 할 때는 로동자의 어머니로, 공부나 하는 학생일때는 학생의 어머니로 되여버리는 모성애의 풍부한 적응성인가.
상춘은 어머니를 힐끗 쳐다보고나서 조용히 말했다.
《그만한 학자가 될려면 말이예요, 어머니. 학문뿐아니라 기울어가는 나라의 형편을 걱정할줄 알아야 되는거예요. 그렇잖아요? 어머니.》
어머니는 상춘도 하자영교수를
《생각해봐라. 아주멈이 가엾지 않니. 젊은게 남편도 없이 살겠다고 밤낮 말갈데 소갈데 나돌아다니는걸. 그래서 난 네가 대학선생이라도…》
어머니는 어쩐지 목이 메여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참, 아주머니가 요새 몸이 상했어요.》
《제가 몸이 돌덩어림 뭘 하니, 그렇게 고생을 하구야. 그애도 너 학교졸업만 믿고있단다.》
《알았어요. 그만해두세요.》
《넌 벌써 어미말이 듣기 싫은게로구나.》
상춘도 그 말에는 찔리는데가 없지 않았다. 어머니를 어루만지는 눈으로 보다가 싱긋 웃었다.
《걱정마세요. 어머니말씀 다 잘 알겠어요.》
《네가 정말 어미속을 알려면… 내가 너한테 이런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것도 알았어요. 어머니때메 이거 시간 늦겠어요.》
상춘은 책가방을 집어들고 밖으로 나갔다. 상반신을 벌렁 뒤로 젖히고 우쭐우쭐 걷는 걸음걸이가 어찌도 그렇게 젊었을 때의 저의 아버지를 닮았는지 모르겠다. 외모에 따라 마음도 아버지를 닮으려는지 어머니는 기쁨 반 걱정 반으로 아들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뒤로 보는 아들의 잔등은 실팍했으나 어머니눈에는 역시 어린애였다. 찬찬하지 못하고 너무 데면데면한것 같았다. 세상을 너무 쉽게만 보고 어려운줄 모르는것 같다.
대학신문은 일반신문과는 다르다 하는 안심부터가 그러한 표현이다.
어머니는 준호의 이야기를 하려다가 참았다. 준호는 대학신문도 아닌 어떤 토론회에서 자기 의견을 발표했다가 《보안법》에걸려 지금 고생을 하는것이 아닌가. 남북조선을 함께 연구해서 오늘의 현실을 다 알아야 되며 북조선의 좋은 점은 여기에서도 섭취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그의 연구발표가 법에 저촉되였던것이다.
상춘이 그러한 일을 잊어버렸을리가 없다.
대학신문에 글을 싣는것도 까딱 잘못하면 법에 걸리는줄 알면서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걱정없다고 한 말이 아니면 세상을 너무 쉽게만 보는 어린 마음이리라.
그 어린 아들이 지금 무엇인가 어려운 길에 오르고있다. 어머니가 아들에 대해서 은근히 품어보는 희망- 취직에 대한 어머니로서의 미련은 지금 와서는 벌써 바라지도 말아야 하는 지나간 일로 되여간다.
아들은 이미 제갈길을 저 혼자 정하고있는것이다.
어머니는 찬성, 불찬성의 여부가 없었다. 아들이 가는 길이라면 그뒤를 또 봐주어야 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방에 들어가보았다.
어제까지는 한 보통학생이 공부하는 방으로 보아왔지만 아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이상 어머니는 그 방을 무심히 보아넘길수가 없었다.
방에는 책상에 책들이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 그 책들가운데는 남에게 보여서 안될것도 있을지 모른다.
어머니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나하나 펴보았다.
대학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인지 타원형의 도장이 찍힌것은 안심이 되여 책의 키대로 책꽂이에 세워놓았다. 책들은 서양글씨로 쓴것이 많아서 그것도 안심이 되였다.
어머니가 혹시나 하고 념려하는것은 인쇄한 쪽지와 얄팍한 소책자따위였다. 어머니생각으로는 전에 큰아들때 경험으로 보아서 그런것들은 감춰두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책갈피들도 털어보았다. 별로 나오는것이 없었다. 어머니의 과민인가, 혹은 상춘은 제 형과는 다른 방법으로 무슨 일을 하는가, 아들은 어머니 모르는 세계에서 성장하며 무슨 일을 하고있는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