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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 깊은 밤.
야전렬차는 쏟아지는 눈발속을 헤치며 중부구릉지대를 달리고있었다.
렬차집무실에서 반시간가량 잠드셨던
고요한 차칸에는 가느다란 렬차의 차바퀴소리만이 단조롭게 울렸다.
…병원원장은
《박사선생, 왜 그렇게 버티고섰소? 걸상에 앉으시오. 내 아무리 바빠도 원장선생은 만나고 떠나겠습니다.》
《
원장의 목소리는 안타까움이 슴배여 떨리였다.
《현지지도를 떠나지 말아주십시오. … 이 추운 겨울날에… 가셔선 안됩니다.》
집무실안에 한껏 정적이 서렸다.
《선생, 엊그제 진행한 검사에서는… 별다른 소견이 없지 않았습니까?》
《심장에서 특별한 기질적변화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전에 약간 우려되던 관상동맥의 피흐름장애도 약물치료에 의해 가셔졌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은 그래서
《허, 그랬던가… 그랬지. 내 사실 10월도 바빴지만 11월엔 할일이 더 많았소. 그래서 의사선생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함경남도의 일군들과 로력혁신자들,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신 때로부터 40일 남짓한 날들이 어느 결에 지나가버렸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산처럼 무거운 사업의 중하를 떠메고 수다한 곳들을 다니시며 드바삐 일하다나니 살같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것이 아닌가. 국방공업부문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현지지도에 잇달은 군부대들시찰… 돌가공공장, 개선청년공원유희장, 제35차 군무자예술축전 공연관람… 기억나시는대로 꼽아보아도 줄창 현지에 나가있은셈이니 병원에서 걱정을 할만도 하였다.
《박사선생, 너무 마음쓰지 마시오. 별일 없을겁니다. 내가 이번에 약물치료도 받고 검진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았습니까.》
《
《심장박동이 고르롭지 못하다는거겠지요?》
《그렇습니다. 부정맥의 기외수축현상인데 정상심장박동사이에 나타나는 때아닌 박동을 말합니다. 기외수축은 심장판막장애나 심근염, 고혈압을 비롯하여 심장혈관계통에 질병이 있는 경우에 생기지만 정신적스트레스가 쌓이고 수면부족과 피로한 경우 그리고 술을 마시는 건강한 사람들에게서도 때때로 발생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원장의 진지한 설명을 다 들으시고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그러니 선생의 말대로 하면 나는 그저 일을 하지 않고 침상에 가만히 누워있어야겠구만.》
《정말이지 그래야 하십니다.》
《잘 알겠소. 내 박사선생의 충고를 명심하고 약도 제시간에 먹으면서 주의해서 갔다오겠습니다.》
《
원장은 강인한 어조로 말씀올렸다.
《저희들은… 당앞에… 인민앞에
《박사선생, 어찌겠소. 리해해주시오. 날씨도 추운데 이번엔 밖에 많이 나다니지 않겠소. 함흥에 가서 몇군데 돌아보고는 인츰 돌아서겠습니다.》
《
원장의 어진 두눈에 그렁그렁 고였던 눈물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정말이지… 또 함경남도에… 가셔야 합니까? 안 가면 안되십니까?》
《꼭 가야 합니다. 박사선생, 올해가 경공업발전의 해이고 인민생활향상의 해인데… 내 함남도에서 광업과 화학공업에 힘을 넣다나니 작은 경공업공장, 기업소들은 많이 돌아보지 못했소. 비날론실을 가지고 편직물을 어떻게 짜는지, 구두공장에서 염화비닐을 가지고 신발창이랑 질좋게 만들어내는지 봐야 합니다.》
《
…
약병을 기울여 진정제알약을 꺼내드시였다. 물을 마신지 얼마 안 있어 가슴이 편안해지시였다.
애기주먹같은 눈송이들이 그칠새없이 몰려와 렬차집무실 창유리에 부딪쳤다가는 날려가군 하였다. 눈 녹은 물방울들이 맺히여 창유리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깥창턱의 비좁은 모서리에는 벌써 흰눈이 수북이 덧쌓였다.
떠날 때 책임부관이 습한 함박눈이 계속 쏟아지면 렬차운행에 지장이 있다고 걱정했으나
이 겨울치고는 처음으로 많이 내리는 눈이니 나쁠것이 없었다. 올여름에 비가 적게 내려 농사에 저수지들의 물을 거의나 써버려 바닥이 드러날 정도였다. 산과 들에 눈이 두텁게 덮이면 겨우내 땅이 마르지 않으며 눈 녹은 물이 대지에 스며들어 좋고 저수지물도 얼마간 불어날것이였다.
렬차집무실에는 차바퀴의 끊기지 않는 울림외에는 고즈넉한 정적이 깃들고있었다.
서부지구에 자리잡은 돌가공공장이 맨 먼저 떠오르시였다. 화강석과 대리석, 휘장휘록암, 사문석을 비롯하여 우리 나라에 무진장하게 매장되여있는 아름답고 질좋은 천연석재자원을 캐내여 건축물과 도시미화에 쓰는 고급건재들을 생산하는 돌가공공장은 얼마나 훌륭한가. 원석을 채취하고 석재품을 가공하는 과정에 나오는 부산물들로는 자갈과 모래를 생산하고 보드라운 가루는 미장재와 블로크생산에 리용한다.
그날
중단없이 울리는 렬차의 소음속에서
돈이 아무리 많이 들더라도 현대적인 돌광산과 돌가공공장들을 건설하면 장차 몇십배의 리득을 얻을수 있다. 돌가공이 나라의 번영, 인민의 행복을 위한 애국사업인데 무엇을 아끼겠는가. …
눈보라 이는 한밤중의 대기속에 웅글은 기적소리를 남기며 야전렬차는 경사급하고 구배심한 중부산악지대를 힘겹게 그러나 쉬임없이 달리였다.
서리꽃중대 군인들의 버들피리합주, 탄피종으로 연주하는 특색있는 화선악기음악은 지금도 귀전에 울리는듯싶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불타는 전호가에서 자체로 만든 화선악기를 락천적으로 연주하면서 미제를 타승한 영웅적인민군병사들의 조국수호정신은 오늘도 우리 병사들의 심장속에 뜨겁게 울리고있다.
초소에 까치가 울 때면
야전렬차로 못 가는 령길은 승용차로, 차길이 없으면 걸어서… 눈보라치건 폭우 쏟아지건 병사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찾아가봐야 한다.
새벽 4시경.
눈이불을 흠뻑 들쓴 야전렬차는 눈발이 휘감기는 역구내등이 어슴푸레 비치는 함흥역에 서서히 멎어섰다.
렬차집무실출입문을 열고 책임부관이 들어왔다.
《
《괜찮소. 렬차에 그냥 있기요, 숙소에 가느라 오느라 시간만 허비할텐데. 동문 좀 자라구. 나때문에 밤새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지.》
《함흥시민들이 한창 새벽잠을 곤히 자겠는데 기적소리를 울리지 않도록 하오. 려객렬차운행에 지장이 되지 않게 우리 차를 간선에 세우고 조용히 기다리기요. 내가 왔다는걸 도당책임비서한테랑 미리 알리면 그 동무들이 잠도 설치고 달려나올거요. 절대 법석을 피우지 마시오.》
차디찬 청신한 눈냄새가 함박눈송이들과 함께 차칸에 흘러들었다.
온밤 쏟아지는 눈송이에 정화된 신선한 새벽대기는
차거운 겨울날의 새벽, 잔바람에 수증기같은 생눈보라 이는 아름다운 자연은
×
이틀간의 분망한 현지지도일정을 마치신
황혼이 진 차창밖에서는 희뿌연 구름뭉치들이 땅거미를 몰아오고 낮에 겨우 멎었던 눈꽃이 다시금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스름으로 하여 은회색빛갈을 띤 눈덮인 산야를 바라보시는
피곤은 하시였지만 가슴이 답답한 느낌은 싹 없어지여 원장의 간절한 당부만 아니라면 며칠 더 머물면서 여러 단위들에 찾아가보고싶기도 하시였다. 그러나 이틀동안의 짧은 현지지도로 만족할수밖에 없으시였다.
함흥시 회상지구 협동농장에 새로 건설한
윤정기는
《아, 책임비서가 왔구만.》
창가에 돌아서신
《내 금년에는 함남도에 더 올것 같지 못한데… 헤여지기전에 저녁식사나 한끼 나누자고 불렀소. 책임비서, 그냥 서있지 말구 여기 가까이 와앉소.》
《이번에 눈이 오구 추운데 나를 동행하느라 수고를 했습니다.》
《저는…
《함남도에서는 어델 가보나 일이 잘돼. 함남의 불길창조자들답게 일을 많이 했다는것이 알리거던. 이제는 함남도에 아주 정이 들어 자꾸 오고싶구만.》
《책임비서, 함흥편직공장에서 비날론실로 편직물을 짜내는게 나를 더없이 기쁘게 했소. 수직방사비날론실을 가지구 어른과 아이들이 입을수 있는 보온내의를 많이 생산하니 얼마나 좋은가. 비날론혼방뜨개옷은 녀성들이 즐겨입을수 있지. 이제는 우리 인민이 누구나 값눅은 비날론으로 만든 보온내의를 입고 겨울을 뜨뜻하게 나게 됐소. 흥남구두공장에서 생산하는 신발창도 비날론덕이지?》
《그렇습니다. 염화비닐이 주원료입니다.》
《수지창이 고무바닥 못지 않게 질긴것 같더구만, 가볍구. 이제는 고무원료를 적게 수입해도 온 나라 신발공장들에서 질좋고 값눅은 신발을 얼마든지 생산하게 되였소. 난 비날론이 인민들에게 실지로 덕을 주게 된것을 보고 떠나니… 렬차에서 잠을 푹 잘수 있을거요. 이런것을 두고 행복이라 할수 있지 않겠소. 책임비서, 그렇지 않소?》
《
윤정기는 진정을 담아 말씀올렸다.
《이젠 다 지나간 일이요. 비날론때문에 누가 어떻게 고생했든 우리 인민이 옷을 잘 입고 좋은 신발을 신으면 되는거요. 우리 일군들은 그저 그걸 보며 시름을 덜고 행복을 느끼면 됩니다.》
《흥남구두공장에서 감을 땁니까?》
《예, 오늘 거의 다 땄습니다.
《참, 마음이 지극한 동무들입니다.》
야산기슭에 자리잡은 공장구내의 감나무들에는 기이하게도 무르익은 감알들이 가지마다 휘여지게 주렁져 눈속에 묻혀있는것이였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지금껏 감을 따지 않았소?》
곁에서 윤정기가 사연을 말씀올리라고 용기를 돋궈줘서야 지배인은 점직해서 띄염띄염 이야기했다.
《저희들은… 이른봄부터…
얼마나 그리웠으면 그랬으랴.
봄에는 공장구내의 수백그루나 되는 감나무와 살구, 추리, 복숭아… 과일나무들에 꽃이 피고 향기가 진동했을것이고 록음이 짙은 여름철에는 과일나무들이 푸르싱싱해서 멋있었을것이다. 가을이 되고 락엽이 지는데도 소원을 이루지 못해 안타까왔을것이다.
겨울날의 눈덮인 감나무풍경, 한알한알의 감알들마다 공장종업원들의 애타는 마음, 인민의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실려 아지가 휘늘어지게 열린 아름다운 풍경이였다.
이런 인민의 극진한 마음, 정성에 받들린
책임부관이 정히 싼 꾸레미를 들고 렬차집무실에 들어와 앞차대에 놓았다.
《책임비서동무에게 입히자고 만들어온 솜옷인데 한번 입어보오. 짐작으로 만들다보니 몸에 맞겠는지 모르겠구만.》
《
윤정기는 눈굽이 찡해나
《어서 입어보라구. 몸에 맞는지 내가 봐야 하지 않겠소.》
《고맙습니다.…》
윤정기는 눈물을 흘리며 솜옷소매에 팔을 꿰였다. 솜옷을 입으면서도 그의 눈길은 줄곧
윤정기는 가슴이 미여지게 아파 솜옷을 걸친채 눈물을 삼키며 엉거주춤 섰다.
《쟈크도 닫고 겉단추도 채워보오.》
《맞구만, 꼭 맞아.》
《
윤정기는 목메여 말씀올리며 거친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린애처럼 손등으로 훔치였다.
《솜옷이 맞으니 됐소.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지.》
《재단사가 솜옷치수를 몰라 딱해하는걸 내가 대줬소. 내 함경남도에 와서 동무하고 많이 다녔으니 동무솜옷을 품이며 기장을 어떤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는걸 알거던.》
식탁차림은 무척 검소하였다.
《책임비서, 따끈한 국인데 식사를 많이 하오.》
《윤동무가 10월 하순에 평양에서 만났을 때보다 얼굴이 축갔소. 여러날 앓았다지?》
《감기를 좀 앓았습니다.》
《감기를 우습게 여겨선 안되오. 나이많은 사람은 감기에 걸리지 말아야지 페염을 동반하면 큰일입니다. 감기가 거접하는걸 보면 몸상태가 좋지 않다는걸 말하오.》
《겨울이니 신장염이 도지는게 아니요?》
《일없습니다. 정초에
《요즘도 출근시간에 걸어다니오?》
《아침에 회의나 바쁜 사업이 제기되지 않으면 걷습니다.》
《집에서 도당청사까지 걸으면 몇분 걸리오?》
《한 20분 잘 걸립니다. 걸어서 출근하느라면 길목을 지켜 저를 만나고싶어하는 사람들한테서 여러가지 솔직한 사정이야기를 들을수 있어 좋습니다.》
《도당책임비서는 그렇게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진실을 알고 대책을 세울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12월이고 완전한 겨울입니다. 이제 눈이 멎으면 날씨가 몹시 추워지겠는데 차를 타고 다니는게 좋겠습니다.》
《동무는 건강도 시원치 못한데 수소정제탑제작때처럼 생산현장에 사무실을 정하고 밤을 패면서 무리하게 일하지 말아야겠소. 도당책임비서가 쓰러지면 다요. 함남의 불길이 말해주듯이 일군들이 앞장에 서서 군중을 조직동원하면 경제강국의 목표를 빠른 기간에 점령할수 있습니다. 그런것만큼 도당책임비서는 도내의 전반 공장, 기업소의 일군들, 구체적으로 당비서, 지배인들이 앞장에 서서 송풍기의 역할을 해가며 당의 경제정책을 관철하도록 달구고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
《그래야지… 내가 함경남도를 중시하는데 도당책임비서가 앓지 말고 건강해야 합니다. 이 음식도 드시오.》
《
《난 괜찮소. 요즘 밥맛이 좀 없어 그럴뿐이요.》
윤정기는
《벌써 가겠소? 간단 말이지. …》
《지금 밖에 많은 눈이 내리고있는데 야전렬차를 타고 함께 가기요.》
《
《밤길에 승용차를 타고 가다 미끄러져 사고라도 생기면 어쩌겠소. 다음역이 함흥이니 거기서 내리오.》
야전렬차는 어둠속에서 흰빛을 뿜으며 소리없이 퍼붓는 눈발의 장막을 헤치고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