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2 장. 한산대격전 

 

…백잔(백제)과 신라는 옛적에는 속민이였고 그전부터 조공을 바쳐왔던것이다.
그런데 왜가 백제의 꾀임으로 신묘년에 왔기에 패수를 건너서 백잔을 격파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초유하여 신민으로 삼았다.…

(광개토태왕릉비문중에서)

 

1

 

엄혹한 겨울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겨우내 즘즘하였던 삼국관계는 봄을 맞으면서 풀린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각한 대결국면으로 치달아오르기 시작했다.

391년 가을, 고구려의 변경지역을 침범하였다가 예상외의 드센 반격을 받고 물러난 백제는 겨우내 력량을 보강해가지고 또다시 북방전선에 방대한 무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에 벌어진 고구려와 백제의 대규모적인 충돌은 백제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일어난 사태였다.

고구려에서 18살의 젊은 태왕이 즉위하자 백제는 이것을 지경을 북쪽으로 올려밀고 령토를 확장할 절호의 기회로 여기고 기습공격을 들이댔으나 고구려의 지경안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고 참패하여 쫓겨났다.

이 수치를 씻기 위해 백제는 자국의 무력은 물론 가야와 왜까지 끌어들였다.

백제의 요청으로 이또가야국의 대가 김지수가 이끄는 5천명의 왜군이 바다를 건너와 백제땅에서 온 겨울 고구려군에 대항하기 위한 전법을 익혔다.

백제의 보다 발전된 무기로 무장하고 투구와 갑옷, 군마를 일식으로 갖춘 왜군은 어제날의 잡군이 아니였다.

왜군은 륙지싸움에서는 강하지 못했으나 바다싸움에서는 일정한 전투경험을 가지고있어 허술히 여길 상대가 아니였다.

백제의 좌장 진무는 바로 이러한 왜군을 전선에 직접 투입하여 약한 고리를 메꾸어보려는것이였다.

더우기 왜군은 바다건너 멀리에서 싸우러왔기에 일단 싸움에 들어서면 죽기로 싸울것이라는 진무의 타산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것은 왜군이 백제나 가야군에 비해 일단 패하게 되면 물러설 곳이 없기때문이였다.

왜병들은 싸움에서 패해 흩어지면 바다건너 멀리 고향으로 돌아갈 방도가 없게 되는것이다. 하여 진무는 왜군의 이러한 심리를 리용하여 그들을 진두에 세운것이였다.

진무는 또한 가야의 6개국에서 1만명의 대군을 모집하였다.

백제는 고구려군을 기어이 격파하여 대방계선에까지 밀고올라가 령토를 떼여가진 후에 그 형세를 타서 신라를 공격하여 아예 병합할 생각이였다.

한번의 대격전으로 천하의 맹주가 될 야망이 아신과 진무를 비롯한 백제인들의 가슴에서 불길로 타번지고있었다.

백제 역시 아신왕이 즉위하여 얼마 되지 않아 나라의 통치체계가 어수선한 때이지만 모든 국력을 고구려와 대치한 북방전선으로 기울였다.

말그대로 나라의 운명을 건 큰 도박판에 뛰여든것이였다.

승산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다. 백제는 가야-왜군까지 전선에 투입하여 오히려 력량관계에서는 고구려군보다 우세하였다.

그뿐아니라 백제는 북방전선에 석현성 등 크고 견고한 성이 10여개나 있어 공격에도 방어에도 아주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었다.

백제는 일체 보급물자를 석현성 등지에 쌓아놓고 전쟁이 발발하면 여기를 거점으로 전쟁의 규모를 확대할 전략을 세우고있었다.

백제는 석현성 등 북방전선에 배비되여있는 방어선들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꾸리는데 힘을 아끼지 않았었다.

지금 백제의 모든 병권을 한손에 틀어쥐고있는 좌장 진무 역시 이 북방 10여개 성을 보강수축하는 과정에 자기 지반을 더더욱 굳히였다.

그러니 고구려군으로서는 백제와의 대격전이 아주 어려운 싸움으로 될것이였다.

고구려는 백제가 복수전을 부르짖으며 석현성 등지에 무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하자 여러차례에 걸쳐 기병을 동원시켜 찔러보았으나 예상외로 그 방어가 철벽이였다.

심지어 백제군은 여러 방면에서 반격하여 고구려군의 전략물자들을 로획해가지고는 유유히 돌아가기도 하였다.

북방의 전전선에 걸쳐 이러한 소규모의 접전이 자주 벌어졌다.

백제가 이렇듯 승이 부쩍 올라 감히 고구려를 칠 야망을 품게 된것은 고구려의 젊은 태왕이 전쟁을 감당할수 없으리라는 타산때문이였다.

지금 고구려는 백제와의 전선은 말고라도 서북방에서 이민족들과 고전을 치르고있었던것이다.

이미 수개월전에 거란족을 징벌하기 위한 수천의 군사들이 거란땅으로 원정하였으며 료서땅에서는 후연의 강력한 기병집단이 변경지역을 침범하여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끊임없이 벌어지고있었다.

하지만 백제는 가장 중요한것을 놓치고있었다. 그것은 백제가 고구려를 이끌고있는 영락태왕 담덕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것을 모르고있는것이였다. 백제군의 좌장 진무는 고구려의 영락태왕이 오랜 로장이며 싸움마다 련전련승하고 전투경험이 풍부한 자기를 당해내지 못할것이라고 과신하고있었다.

실지로 백제 좌장 진무는 수십여차의 대소격전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다고 명성이 자자했으며 지략과 용맹에서 그 누구에게도 짝지지 않는 백전로장이였다. 고구려의 영락태왕은 나이로 보면 진무의 아들벌밖에 되지 않는 애젊은 홍안의 인물이였다.

진무는 영락태왕이 동시에 3개 방면에서 전쟁을 치른다면 기필코 패망하리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391년 가을에 있은 패전은 영락태왕이 강해서가 아니라 전쟁에서 이길수 있는 조건을 백제가 놓쳤기때문이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다시한번 고구려와 대결하기 위해 나섰던것이다.

영락태왕 담덕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게 되겠는지는 오직 력사만이 시대앞에 증명해보일것이였다.…

사흘동안 따뜻한 남풍이 불었다.

거품을 일구며 흘러내리던 봄시위물소리도 잦아들고 초원의 계곡과 시내물도 이제는 한결 기세가 숙어졌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야 바람이 잦아들어 초원에는 짙은 안개가 끼고 해묵은 나래덤불이 축축하게 젖어 은빛으로 빛나고있었다.

력사의 중견자마냥 우뚝 솟은 고분이며 허물어진 성벽들, 광활한 대지우에 군데군데 뿌리를 박고 서있는 아름드리나무꼭대기는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희끄무레한 연무속에 잠겨있었다.

료서의 북방에 따뜻한 봄이 때늦게 찾아온것이였다.

짙은 안개가 피여오르는 초원의 길로 고구려기마군사들의 행렬이 움직이고있었다.

이 종대의 뒤켠에는 10여개의 수레가 따라섰는데 그우에는 거란인들에게 랍치되였다가 정벌군에 의해 구원된 고구려백성들이 타고있었다.

맨 앞장에서 말을 몰아가며 행렬을 이끄는것은 맹광이였다.

맹광은 지금 비려부를 향해 진격하는중이였다.

수개월에 걸친 원정에서 고구려군은 수많은 거란부락들을 짓밟아버리고 수천명의 거란군을 격멸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의 앞에 큰 난관이 가로막아나섰다.

거란의 부족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부족인 비려부가 정벌군에 정면으로 도전해왔던것이다.

비려부는 강한 기마군사들을 발동하여 고구려 정벌군을 부단히 기습하였다.

계속 이렇게 나가다가는 보복과 공격의 악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될것이였다.

더우기 문제로 되는것은 서로 여러 부족으로 갈라져 물고뜯기만 하던 거란부족들이 비려부에 의해 하나로 통합되는 움직임이 거란땅에서 벌어지고있는것이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것을 막아야만 했다.

지금은 비록 붙잡혀간 고구려백성들을 구출하는데만 그치지만 앞으로는 영락태왕이 대군을 일으켜 거란족을 정복하여 다시는 고구려의 북방에서 백성들이 거란족에 의해 랍치되고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굳게 확신하고있는 맹광이였다.

하여 맹광은 비려부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여 정벌군에 맞설 엄두도 내지 못하게 눌러놓고서 개선하리라 결심하고있었다.

각 방면에 나가있는 부대들에 전령을 띄워 수신이 인솔하는 본대가 자리잡은 《검은 숲》으로 불러들였다.

이곳에서 대오를 정비한 뒤 비려부를 공격할 계책이 이미전에 세워져있었다. 맹광은 한시바삐 본영이 자리잡은 《검은 숲》으로 가기 위해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고있었다.

맹광은 거란땅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소운의 행처를 수소문하였으나 며칠전에야 겨우 소식을 들을수가 있었다.

정벌군이 필사적으로 반항해나서던 거란 우릉부족의 군사를 물리치고 어느 한 부락에 들어섰을 때였다.

이 부락에서 정벌군은 여기에 붙잡혀와있던 수백명의 고구려사람들을 구출하게 되였다.

우릉부족은 작년 가을 신성방면으로 침입한 거란군중에서 주력을 이루고있던 부족으로서 수백명의 고구려백성들을 붙잡아 끌고갔었다.

이번에 구출된 고구려백성들은 거의 모두가 신성관할하의 여러 현과 마을들에서 붙잡혀온 사람들이라 정벌군군사들의 혈육이 많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이렇듯 사지판을 헤쳐 혈육을 구출하기 위해 온것을 알게 되자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맹광이 살던 버드내마을사람들도 여러명이나 구출하였다.

맹광은 구출된 사람들속에서 한집에서 한솥의 밥을 먹으며 의지해살던 풀무령감도 만나게 되였다. 그들은 이곳에서 감격적인 상봉을 하였다.

맹광이 어엿한 정벌군의 장수가 되여 신성의 백성들을 구출하였다는것을 알게 된 고구려의 옛 군사인 풀무령감은 맹광의 손을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풀무령감의 입에서 소운의 소식을 듣게 될줄 어찌 알았겠는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소운이에 대한 소식을 다행히도 풀무령감의 입을 통해 알게 되였으나 그것은 오히려 맹광에게 심한 고통을 더해주었다.

풀무령감과 소운은 여기서 함께 고역을 치르었다는것이였다.

늙은이는 눈물이 글썽하여 소운을 추억했다.

《폭풍이 멎은 후 이틀이나 초원을 헤매였으나 그 어디에서도 소운을 찾을수가 없었네. 거란인들은 이리떼에게 해를 입거나 도적들에게 잡혀갔다고 하네만 난 그 말을 믿을수가 없네. 소운인 절대로 그리 쉽게 죽을 처녀가 아니거던.… 소운인… 하늘이 이 땅에 내려보낸 처녀일세.…》

맹광은 괴로왔다.

거란땅에 원정하는 길에 소운을 찾을수 있으리라 가졌던 기대가 한순간에 깨여져버렸던것이였다. 소운이는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저 멀리 지평선우에 잠간 비꼈다 사라져버리는 신기루처럼 다가갈수록 멀어지고있는것인가.

맹광은 이제라도 광야를 향해 목이 터지도록 소운의 이름을 찾고 부르고싶은 크나큰 욕망을 느꼈다. 맹광은 말발굽소리가 대지를 진동하는것을 느끼고 괴로운 상념에서 깨여났다.

도루가 새까맣게 질린 얼굴로 말을 달려왔다.

《형님, 큰일났소이다. 거란군이 <검은 숲>을 향해 달려가고있소이다.》

맹광은 모든 상념을 털어버리고 랭철하게 리성을 되찾았다.

《무슨 소릴 하는거냐. 첩보에 의하면 이 아근에는 그 어떤 거란부족도 거란군도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저길 보시오이다. 수천의 거란군사들이 <검은 숲> 방향으로 가고있지 않소이까. 저들의 복장으로 보아 비려군이 틀림없소이다.》

맹광이 눈을 들어 도루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아니나다를가 뽀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수천의 기마대가 초원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필경 무슨 낌새를 눈치채고는 고구려군의 집결지를 기습공격하려 군사를 발동시킨 모양이였다.

《어쩌면 좋소이까. 백명도 안되는 병력으로 수천의 적을 막아 싸울수도 없고 그렇다고 적을 앞질러 수신에게 달려가기도 이미 그른것 같소이다.》

《무엇이 두려우냐? 우린 고구려무사들이다. 죽기를 각오한자에게는 살길이 열리기마련이다.》

맹광은 군사들을 향해 돌아섰다.

《적을 이대로 보내면 본진이 위험하다. 우리가 방차대로 나서서 죽기로 싸워 시간을 끌어야 한다. 적을 여기에 잡아두는가 그렇지 못하는가에 따라 원정군의 생사가 결정된다.》

군사들은 창검을 추켜들며 저저마다 렬앞으로 나서서 죽기로 싸울것을 맹약하였다.

맹광은 그들중에서 50여명의 젊고 건장한 군사들을 추려낸 다음 도루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구출해낸 백성들을 데리고 옆길로 먼저 떠나거라. 적이 <검은 숲>에 당도하기 전에 가닿아야 한다. 나는 방차대와 함께 여기 남아 싸움을 벌려 시간을 끌테다.…》

도루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하는것이오이까. 사지판에 장수를 남겨놓고 부하들만 살아돌아갈수가 있소이까?》

맹광은 짐짓 웃음을 지어보이며 도루의 어깨를 떠밀었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떠나거라. 때를 아는 사람은 자기가 있을 곳을 안다. 시간이 없으니 지체말고 떠나거라.》

도루는 흑 흐느끼며 맹광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원정군의 생사가 걸렸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러니 어서 떠나거라.…》

맹광은 도루를 억지로 떼여내여 큰소리로 꾸짖었다.

도루를 떠나보낸 후 맹광은 방차대로 남은 군사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낯선 얼굴은 몇 안되고 거의 모든 군사가 맹광이 옛날 신성에 있을 때부터 함께 싸운 군사들이였다. 맹광은 한 낯선 군사의 얼굴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얼굴이 볕에 타서 꺼멓게 번들거리는 젊은 사람이였다. 이번 원정에서 여러번 대면했었다. 맹광은 그의 무예가 매우 뛰여났다는것을 기억해냈다. 평범한 군사의 무예실력치고는 그 기량이 몹시 높았다. 어떻게 되여 이런 사람이 원정군에 들어오게 되였을가.

얼굴을 보니 전혀 낯이 생소한것이 분명 신성사람이 아닌것만은 틀림없는데…

언제부터 한번 만나서 구체적인 사연을 알아보자고 했었는데 매번 그 기회를 놓쳤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맹광은 그앞에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방…방주라고 하오이다.》

그는 당황한듯 시선을 내리깔더니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맹광은 어쩐지 가슴이 불안으로 떨려옴을 느끼였다.

방주라는자를 대할수록 왜서인지 그 어떤 불길한 예감이 지꿎게 갈마드는것이였다. 맹광은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생사를 가늠할수 없는 싸움을 앞둔 때에 부하들을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된다. 맹광은 곧 방주를 기억에서 지워내고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내 령을 들으라. 지름길로 달려가 매복하고 적을 기다리다가 적이 코앞에 당도하면 곧 공격을 개시하겠다. 죽기로 싸워야 한다. 적의 대렬을 혼란시키면 모두 뿔뿔이 헤쳐져 말을 달려야 한다. 그다음부터는 각자의 길이다. 죽고사는것은 명에 달렸다. 적을 얼마만큼 끌고다녔는가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시작하라!》

맹광은 군사들에게 이런 령을 내리고 말을 힘껏 때려몰았다.

그의 뒤로는 50여명의 고구려군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거란군을 향해 육박하고있었다.

맹광은 거란군의 추격에서 벗어나자 말을 천천히 몰며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고있었다.

아까 거란군을 기습하고 흩어질 때는 분명 50여명이 모두 있었는데 각자가 제각기 헤여지다보니 그 생사가 걱정되였다.

거란군은 맹광의 계책에 말려들어가 사방으로 부대를 헤쳐 고구려기마군사들의 뒤만 쫓기에 급급하였다.

지금쯤이면 도루가 본진에 도착했을것이고 원정군이 반격을 개시했을것이였다. 맹광은 수림을 에돌아 흐르는 시내물앞에 말을 멈추어세웠다. 여기서 잠간 쉬고 길을 재촉하기로 마음먹었다.

혹 헤여졌던 부하들을 다문 한둘이라도 만날지 모른다는 미련도 있었다. 말은 물을 보자 너무 좋아 첨벙첨벙 시내물에 뛰여들어 투레질을 하며 혀로 물을 추겨올렸다.

비록 거란군의 추격에서 벗어는 났으나 결코 안심할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몰랐던것이다.

맹광은 얼른 목을 추기고나서 검을 빼들고는 둔덕우에 올라갔다.

긴장한 시선으로 훤하게 트인 공지를 둘러보았다.

저녁해가 서산마루로 넘어가고 사위는 차츰 어슬어슬해졌다.

맹광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이제는 한결 기력이 왕성해진 군마를 쓸어주며 안장을 바로잡고 배띠끈을 조였다. 등자를 짚고 말등에 오르려던 맹광은 가까이에서 들리는 말발굽소리에 정신을 버쩍 차리고 홱 몸을 돌렸다. 한명의 기마수가 평보로 말을 몰아 다가오고있었다. 어둠속이라 얼굴은 자세히 볼수 없어도 고구려군사인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여차직하면 상대를 단숨에 베여버리려고 장검에 손을 가져갔던 맹광은 안심하고 두손을 내리웠다.

맹광은 다가오는 상대가 방주임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그대가 여긴 어인 일인가. 아까 헤여질 때에는 분명 반대방향으로 말을 달리지 않았느냐?》

방주는 반색하는 기색으로 말등에서 뛰여내렸다.

《장군과 헤여진 후로 줄곧 말을 달려오는 길이오이다. 그런데 저같은 놈이 어찌 동서남북을 분간하겠소이까. 그저 향방없이 헤매이다가 이렇듯 장군과 만나게 된것이오이다.》

맹광은 더 묻지 않고 말등에 올랐다.

이런 인적이 없는 외진 곳에서 방주와 단둘이 만난것이 어쩐지 가슴한구석에 불안감을 던져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지판에서 용케 살아돌아온 부하가 대견해보이였다.

《이젠 본대로 떠나자.》

그들은 말을 타고 시내를 건는 다음 동쪽을 향해 말을 때려몰았다.

방주는 이렇듯 무사히 살아 맹광과 함께 본대로 돌아가는것이 기뻐서인지 줄곧 입을 놀렸다.

《거란놈들이 어찌나 검질기게 따라오는지 소인은 다시는 장군을 뵈옵지 못하는줄 알았소이다. 공격할 때에는 별로 두려움을 몰랐으나 적에게 쫓기우고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는게… 마치 토끼몰이를 당하는 기분이였소이다.》

맹광은 응대할 기분이 나지 않아 묵묵히 말만 몰아가고있었다.

방주는 맹광의 기분같은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수다스럽게 지껄였다.

《제 그래서 이렇게 결심하였소이다. 쫓기우다 죽을바엔 차라리 싸우다 죽자고말이오이다. 말을 거꾸로 돌려 쫓아오는 거란놈들을 향해 맞받아 달렸소이다. 아, 그런데 쫓아을 때엔 그렇게도 영악스럽던 놈들이 제가 죽기로 달려들자 질겁하여 달아나버리는것이 아니겠소이까.

수십명이나 되는 놈들이 꽁지가 빳빳하여 달아나는 꼴이란 참…》

맹광은 고개를 돌려 의아스럽게 방주를 쏘아보았다.

어쩐지 방주의 억양에서 고구려사람의 체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것이다.

갑자기 방주가 탄 말이 비틀거리더니 그가 비명을 지르며 말등에서 굴러떨어졌다.

《웬일이냐?》

맹광이 놀라서 소리쳤으나 방주의 가냘픈 신음소리만 발밑에서 들려왔다. 아마 말이 발을 헛짚는통에 방심하고있다가 말등에서 굴러떨어졌으리라 짐작한 맹광은 말에서 뛰여내려 땅에 누워있는 방주에게로 다가갔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 부축해줄테니 상처부터 처치하자.…》

순간 맹광은 살기가 번뜩이는 방주의 시선을 느꼈다.

삽시에 등골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장검을 잡아쥐였으나 옆구리에 가해지는 예리한 충격에 몸이 땅에 나딩굴었다. 맹광은 자기가 배신자의 칼에 찔리웠음을 깨달았다.

안깐힘을 쓰며 일어서려는데 눈앞에 시꺼먼 그림자가 막아섰다.

《더러운 놈, 내 어리석은탓에 네놈이 자객인줄 모르고있었구나.…》

맹광은 불이 철철 흐르는 시선으로 방주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피묻은 칼을 들고 천천히 다가서던 방주는 맹광이 두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더 이상 접근할 용기가 없어 질겁하여 칼을 떨구고는 뒤걸음쳤다. 그 어떤 공포감에 질려 말등에 뛰여올라서는 황급히 어둠속으로 새여들어갔다.

맹광은 비틀거리면서 걸어갔다. 발을 걸채여 넘어졌다.

귀전에서는 벌떼가 날개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멀어지는 의식속에서 맹광은 소운을 보았다.

환영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분명 환각일것이다. 그런데 소운은 내가 이런 불행을 당했는데도 왜 웃고만 있는것일가. 아니…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맺혀있구나.

소운이, 울지 마오. 나는 죽지 않소.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어찌 명이 끝날수 있겠소.… 그러니 멀리 떨어져있지만 말고 어서 와서 이 손을 잡아주오. 그때처럼 그 부드러운 손으로 상처의 아픔을 씻어주오.…

맹광은 끝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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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 - coder -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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