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1 장. 391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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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년 9월 거란족이 멀리 신성방면에서 불의에 기습공격을 진행하여 수백명의 고구려사람들을 포로로 붙잡아갔다는 보고가 국내성으로 올라왔다.

신성관할하의 개마현과 석성현, 고부자성이 거란군의 기습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고 10여개 부락들이 황페화되였다.

거란족은 본래 의무려산 서쪽의 넓은 초원지역에 널려사는 유목종족이였다. 그중 비려부가 세력이 제일 강하여 전 거란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있었다.

거란족은 고구려가 적극적인 서진정책으로 유주에까지 진출하자 여기에 큰 위구심을 느끼게 되였다.

하여 그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고구려의 국토회복을 위한 싸움이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군사를 발동하여 그 지경을 넘어 들어오군하였다. 이번에 진행된 거란족의 기습공격은 고구려에 있어서 엄중한 도전에 부딪친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 침입로를 멀리 신성쪽으로 에돌아잡은것이며 그 규모 또한 수만명의 침략무력인것만큼 이때까지 있었던 소소한 분쟁에 그칠것이 못되였다. 그만큼 거란족이 크게 장성하여 고구려에 큰 위험세력으로 자랐다는것을 말해주고있었다.

거란족이 감히 이번에 불의에 고구려의 변방을 들이치고 략탈을 감행한것은 고구려가 정벌군을 동원시킬수 없다는 타산에서였다.

고구려가 백제와의 공방전으로 북방에 힘을 제대로 돌릴수 없는 기회를 리용하여 배신적인 공격을 진행하였던것이다.

고구려는 남쪽의 백제뿐아니라 료서에서 후연과도 대결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형세를 리용하여 거란족이 지경을 넘어들어와 사람들을 랍치해갔던것이다.

곧 국내성에서 중신들과 5부귀족들이 모두 참가한 제가평의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내려지는 결정이 차후 고구려의 행동을 결정하게 될것이였다. 여러가지 론난이 분분했지만 대체로 의논은 두가지로 흘렀다.

하나는 거란족과 후연과는 충돌하지 말고 땅을 떼여주고서라도 변방수비에만 충실하자는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백제를 어루만져 령토를 일시 사양하고 거기에 배비된 남부전선의 무력을 서북방에 돌리자는것이였다. 어느덧 조정안은 두갈래로 세력이 갈라져 서로가 자기주장만을 고집했다.

《지금 남쪽의 정세가 심상치 않소. 첩보에 의하면 백제에서는 아신왕이 즉위하여 변경가까이에 수만의 정예무력을 집결시키고 조련을 다그치며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있다고 하오. 그러니 거란과 후연에 일시적으로라도 땅을 떼여주더라도 서북전선에 배비된 군사를 시급히 물리는것이 좋을것이요. 다시는 치양의 치욕을 겪어서는 아니될것이요.》 라고 열변을 토하는것은 고구려의 중앙군인 대당의 대모달 부연수였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소만 그것은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치는 격이 될것이요. 내 의견은 이렇소. 거란족이 후연의 사촉을 받아 또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백제와의 변경지역에 배비된 남부전선의 무력을 시급히 서북방으로 돌려 나라의 안전을 기하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오.》

이런 제안을 내놓는것은 제가평의회의 수장인 고추대가 고부진이였다.

《아니, 그럼 고추대가는 백제전선을 비워두자는 말씀이요?》

대모달 부연수가 두눈을 부릅뜨고 거칠게 따지고들자 고부진은 지시손가락을 세워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내 생각은 이렇소. 아신이 왕으로 즉위한지 얼마 안되니 내부를 안정시키느라 당장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것이요. 그러니 우린 백제의 접경지대에서 대방계선까지 물러나 굳건한 성들에 의거하여 무력을 다시 배비한다면 전쟁도 막을수 있고 또 서북방의 변방지대로 보낼 병력의 여유도 얻을수 있으니 좋은 계책이라 할수 있을것이요.》

《그건 또 무슨 황당한 소리요? 남부전선에서 대방계선까지 물러난다면 그게 나라의 수백리 령토를 포기하겠다는 소리와 무엇이 다르오?》

고추대가 고부진은 자기를 지지하는 5부귀족들이 앉은쪽을 슬쩍 건너다보고는 대모달 부연수에게 여유작작한 태도로 말을 꺼냈다.

《우리 고구려 역시 태왕페하께서 갓 즉위하시여 내부가 편안치 않으니 우선은 이것부터 수습하는것이 만년지책으로 될것이요. 그까짓 남쪽의 땅을 수백리 떼여주고라도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서북방의 화를 면한 다음 다시 군사를 내여 령토를 회복하는 길만이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방책인것이요.》

고부진의 말에 맞춰 일부 5부의 귀족들이 일어나 저마끔 떠들어댔다.

《옳은 말씀이요. 지금은 전쟁을 벌려 혼란을 가져올것이 아니라 변경수비를 철통같이 다지고 내부의 안정부터 기하는것이 급선무올시다.》

《그렇지 않구요. 무모한 전쟁을 피하고 백성들의 생업을 안정시키는것만이 국력을 키우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길인것이요.》

대모달 부연수는 5부귀족들이 제각기 피대를 돋구는 꼴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백성들의 생업을 잘도 걱정하시는군.… 백성들을 위한다는분네들이 루거만의 재산을 가지고도 저들이 내야 할 군비를 명색없는 백성들에게 덮어씌우고 나라의 조세를 가지고 고리대를 벌려 치부를 하는것이요? 말로는 나라를 가장 위하는체 하면서 수중에 있는 가병들을 단 한명도 변경방위에 돌리지 않는 그대들의 행동은 뭐라고 해야 옳은것이요?》

대모달 부연수가 이렇게 5부귀족들의 치부를 까밝혀놓자 갑자기 좌중이 어색해졌다.

제 심복들이 창피를 당하는 꼴을 보다못해 고추대가 고부진이 점잖게 웃으며 한발 나섰다.

《다들 격해지지 말고 빨리 견해를 하나로 모으시지요. 의견이 하나로 모아져야 제가평의회의 결정을 태왕페하께 올릴것이 아니겠소이까.…》

그는 잠시 말을 끊고 태연하게 좌중을 둘러보더니 은근히 누르는 조로 말을 꺼냈다.

《그리고 부연수장군은 말씀이 너무 심하시오. 5부의 귀족들이 가병을 가지고있는것은 이미 시조태왕이신 동명성왕님때부터 만들어진 이 나라의 전통이 아니오? 고구려의 태왕도 수중에 수천의 근위병을 거느리고 태왕군이라 일컫는데 고구려를 받드는 5부의 귀족들이 수백의 가병을 거느리지 못한다는 법이야 없지 않소? 그건 바로 이 나라의 근간인 우리 귀족들이…》

《아니요, 대고구려의 근간은 시조 동명성왕님의 자손들모두인것이요.》

제가평의회에 참가한 중신들과 5부귀족들은 벼락치듯 대청안에 울려퍼지는 우렁우렁한 목소리에 와뜰 놀라 소리가 나는쪽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당상우에 영락태왕 담덕이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고 모두 놀라서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담덕의 출현에 제일 기가 질린것은 제가평의회의 수장인 고추대가 고부진이였다. 설마하니 젊은 태왕이 제가평의회에 나올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고부진이였다.

《페하께서 어찌 이… 이곳까지 나오셨소이까?》

《짐은 이곳에 나오면 안된다는것이요?》

담덕의 이런 반문에 당황해난 고부진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옵니다. 그저… 지금까지의 전례를 따르면 태왕페하께는 제가평의회의 결정만을 상주하게 되여있사옵기에…》

《언제까지 전례가 어떻소, 정해진 규칙이 어떻소 하며 옛것만을 고집하시려오? 무엇이든 새로운것을 위해 비약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살아있다고 할수 없으며 살아있지 않은것은 사멸되기마련이요.》

영락태왕은 이런 말로 고부진을 꿈쩍 못하게 눌러놓고는 부리부리한 두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대들이 대책 하나 내놓는것이 너무 오래여 기다리기에 지쳐서 나와본것이요. 이미 이곳에 들어서던 길에 중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게 되였소. 그러니 이제는 짐이 결정할 차례가 되지 않았소?》

영락태왕 담덕의 이런 물음에 제가평의회장은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담덕은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좌중을 굽어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대들의 의견은 우선 그 뿌리부터 잘못되였다고 할수 있소.

여기 모인 중신들중에 어느 누구도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있소.

하여 그대들에게 짐의 결심을 알려주자고 우정 이곳까지 오게 된것이요.》

조정대신들과 5부귀족들은 모두 얼나간 사람의 표정이 되여 젊은 태왕의 입만을 지켜보고있었다.

《짐의 결심은 이렇소. 짐은 고구려의 백성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것을 모두 짓밟아버리자는것이요.》

제가평의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영락태왕의 말을 듣고 모두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선뜻 믿어지지 않는지 입만 크게 벌리고 영락태왕 담덕의 얼굴만을 정신없이 올려다보았다.

제가평의회의 첫시작부터 태왕이 참석한 지금까지 줄곧 침묵만을 지켜오던 만조백관의 우두머리인 국상 연구흠이 헛기침을 깇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페하, 무리한 결심인듯싶소이다.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일년지계는 곡식을 심는데 있고 십년지계는 나무를 심는데 있으며 백년지계는 덕을 닦는데 있다고 했는데 서서히 힘을 길러 령토를 보존하면서 만년지계를 강구하는것이 어떠하올는지…》

《물론 국상의 의견에도 일리는 있소. 하지만 후날을 기약하기 위해 힘을 서서히 길러나가자는것은 옛책에나 써있는 말이고 오늘의 현실에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말이요. 지금 사방에서 고구려의 원쑤들이 칼을 갈고있는데 그냥 속수무책으로 있을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소?》

담덕은 잠시 말을 끊고 바싹 긴장되여있는 중신들과 귀족들의 모습을 둘러보고는 부지중 입가에 가벼운 웃음을 담았다.

《그대들의 의견대로라면 강도가 칼을 들고 집에 뛰여드는데도 안에서 문만 닫고 앉아있으면 피할수 있으리라 헛된 기대를 가지는것과 마찬가지요. 여기 모인 중신들의 생각은 그럴지 몰라도 짐은 제때에 뛰여나가 강도와 죽기로 싸우지 결코 문만 닫고 방안에 숨어있지 않을테요.》

담덕의 이 말에 무겁기만 하던 대청안이 삽시에 가벼워지고 활기가 돌았다.

담덕은 무거운 분위기를 짐짓 롱말로 가벼이하고는 곧 정색하여 좌중을 둘러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모두 해내야 하오. 그러면 래일엔 한걸음 더 힘있게 내짚을수 있을것이요. 짐은 제가평의회가 열렸다고 하기에 수백명의 고구려백성들을 붙잡아간 거란족을 치기 위한 정벌군의 편성에 대해 론하는줄 알았소. 그런데 이렇게 공리공담으로 세월을 보낼줄은 정말 뜻밖이요.》

담덕의 이런 질책에 중신들과 귀족들은 기가 질려 고개들을 떨구었다.

고추대가 고부진이 납작해진 제가평의회의 체면을 세우고 나이값을 하느라고 용기를 내서 한발 나섰다.

《페하, 그럼 페하께서는 거란족을 정벌하기 위한 정벌군을 출동시킬 작정이시오이까?》

《그렇소.》

《그럼 전쟁이오이다. 페하께서도 아시는바와 같이 우리 고구려는 앞뒤로 강적들과 맞서고있소이다. 이러한 때 군사를 내여 거란족을 치는것은 무모한 선택인줄로 아오이다.…》

《그러면 짐의 백성들은?!… 거란족에 포로로 붙잡혀간 수백명의 대고구려백성들은 어찌하겠다는것이요? 지금까지 수십여년간 거란족에 의해 랍치되여 붙잡혀간 고구려의 백성들의 수가 만여명에 달한다고 하오. 짐은 반드시 거란족을 정벌하여 고구려백성들의 원한을 씻어버릴 생각이요. 고구려를 그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강국으로 일떠세우려는것이 짐의 뜻이자 이 나라 백성들이 바라는바인것이요.》

제가평의회에 이어 왕성에서는 영락태왕 담덕이 주도하는 국방회의가 열렸다. 여기에는 고구려의 중신들과 5부의 귀족들, 병부의 장군들이 모두 모였다. 회의의 첫 의제는 지금까지 특권을 누려오며 조세를 바치지 않고 군비를 내는데서 루락되였던 5부의 귀족들로 하여금 백성들과 똑같이 세금을 부과하고 몇명의 호위무사를 내놓고는 모든 가병을 고구려중앙군인 대당에 배속시켜 군사제도를 새롭게 정비하는것이였다.

그리고 변경지역에 배비된 무력을 정예한 군사로 보강하여 그 방비를 더욱 엄하게 하며 출신과 문벌만을 따지면서 높이 등용된 무능한 장수들을 실전경험이 풍부한 유능한 무장들로 교체하도록 하였다.

역참과 봉수제도를 다시 정비하여 변경지역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움직임까지도 제때에 국내성으로 전달되게 하였으며 전국의 주, 군, 현의 상비군을 량적, 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하여 매 성과 마을마다 세워져있는 경당들을 병부가 통일적으로 장악하도록 하였다.

령락된 백성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로 귀족들이 힘없는자들의 토지를 강탈하지 못하게 법으로 엄금했으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면 그가 아무리 높은 문벌의 귀족이고 국가에 큰 공적을 세운자라고 해도 사정없이 처형한다고 공포하였다.

군적에 올릴 사람들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하여 평시에는 산천을 유람하며 사냥을 하고 무술만을 닦던 조의, 선인들을 모두 군적에 이름을 올리도록 하였으며 모든 군호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군비를 바치도록 하고서 일단 유사시에는 태왕군에 배속되여 전쟁에 나가도록 결정하였다.

이렇게 나라의 군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취한 영락태왕 담덕은 거란을 정벌하는 정벌군의 편성을 선포하였다.

북방전선에 배비된 변방수비부대들로 정벌군을 편성할줄 알았던 모든 중신들과 5부귀족들, 병부의 장군들은 태왕이 고구려의 최정예무력인 왕당군의 군사들을 모체로 정벌군을 편성하려는 결심을 알게 되자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도 수십, 수백명의 정도가 아니라 1천명을 동원시키려는것이다.

여기에 고구려 북방군중에 전투력이 강하기로 소문난 신성주둔군의 주력인 현무당의 군사 2천이 배속되며 이밖에 신성부근에서 2천명의 자원병을 더 모집하도록 결정하였던것이다.

이렇게 편성이 결정된 정벌군의 명칭을 북방수호신의 이름을 따서 현무당이라고 부르게 하였고 그 당주, 다시말하여 거란정벌군의 수장으로 무술시합에서 장원하여 근위군의 조의두대형(3품벼슬)이 된 맹광을 임명하였다.

영락태왕의 의지와 결심이 확고하다는것을 알게 된 조정안의 모든 중신들과 귀족들은 감히 이 결정을 반대해나서지 못하였다.

이 결정이 발표된 후 사흘만에 맹광은 현무당의 주력이 될 천명의 근위병을 거느리고 신성을 향해 국내성을 떠났다.

지금까지의 모든 관례를 깨버리고 영락태왕이 직접 국내성 100리밖까지 바래주러 나와 맹광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그대에게 고구려 북방의 안전을 맡기는바이니 힘껏 싸워주길 바라노라. 짐은 그대가 이번 원정에 무술시합장에서 보여주었던 고구려사람의 기개를 다시 떨치리라 굳게 확신한다.

거란족에 고구려의 본때를 보여주고 포로로 붙잡혀간 짐의 백성들을 찾아오라. 그리고… 반드시 짐의 곁으로 살아서 돌아오라.》

맹광은 개마현 가마지골의 자그마한 둔덕우에 서서 기울어가는 마지막석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맹광의 눈에서는 무사의 억센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영락태왕의 특별한 신임으로 거란정벌군의 수장으로 임명되여 신성으로 가던중 이렇듯 소운이를 찾아 개마현 가마지골에 들린 길이였다.

그러나 맹광을 기다린것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운이의 모습이 아니라 황량한 재더미뿐이였다. 소운이와의 그 모든 소중한 추억이 한줌 재가 되여 맹광을 쓸쓸히 맞이하였던것이다.

가슴을 찢는듯 한 고통과 하늘땅이 동시에 무너져내리는듯 한 환각에 비칠거리며 주저앉았던 맹광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마지골사람들에게서 소운이가 겪은 불행에 대해서 전해듣고서야 간신히 자기자신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불의에 고구려의 지경을 넘어선 거란족의 말발굽은 여기 인적이 드문 외진 산골에도 미쳤다.

그때 거란놈들은 외롭고 불행한 처녀가 수년세월 피땀으로 마련한 모든것을 야수와 같이 짓밟고 불태웠으며 나중에는 소운이마저 끌고갔다고 한다. 맹광은 이를 갈았다. 사납게 부릅뜬 그의 눈에서는 복수의 불꽃이 튀였다. 반드시 거란놈들을 징벌하여 가슴에 쌓인 한을 풀고 소운을 찾아오리라!

그는 이미 소문을 들어 자기가 어린시절을 보낸 신성의 버드내마을도 거란놈들에게 불타버려 재더미만 남았다는 사실을 전해들었었다.

결국 맹광에게는 소중한것을 추억할만 한것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것이였다.

오직 남은것은 복수의 화신이 되여 거란으로 원정가서 가슴에 쌓인 한을 풀고 소운을 비롯한 고구려의 백성들을 반드시 찾아오겠다는 일념뿐이였다. 군마가 앞굽을 들고 일어서며 크게 울었다.

맹광이 고삐를 잡고 끌었지만 고개를 휘휘 저으며 뒤발로 재무지를 파헤쳤다. 맹광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다시한번 뼈아픈 고통을 느꼈다. 소운이가 망아지때부터 정성들여 키운 말이였다.

무술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는 맹광 자기에게 따뜻한 제 마음을 통채로 실어보낸 말이였던것이다.

맹광은 말목을 어루만지면서 쏟아지는 눈물을 이를 악물며 간신히 참고참았다.

이렇게 비분에만 사로잡혀있을 때가 아니다. 뒤를 돌아보며 슬픔을 추억할것이 아니라 앞을 보며 단호하게 행동할 때이다.

맹광은 말등에 뛰여올라 박차를 질렀다.

신성이 차츰 가깝게 다가오고있었다.…

신성태수 마고는 원래 신성과 같은 변방의 주요관문을 맡을 인물이 못되였다.

다만 그의 출신이 높은 문벌귀족출신이고 유력한 인물인 고추대가 고부진의 비호를 받는 몸이라 이렇듯 제 능력에는 맞지 않는 신성태수의 높은 관직에 오를수 있었던것이였다.

그가 신성태수로 부임하여 해놓은 일이란 아민과 같은 무능력한 속물들을 심복으로 끌어들여 군기를 흐려놓고 맹광같이 뛰여난 장수들을 제거한것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하여 북방군의 주력인 현무당이 유명무실한 존재로 되여버리고 변경방위에 큰 공백이 생겨 거란족이 무인지경처럼 쳐들어오는 사태를 가져오게 된것이였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신성태수 마고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 치부의 수단으로 삼은것이 바로 무기장사라는데 있었다.

국내성에서는 신성이 북방의 주요관문인것만큼 그 방비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강철무기를 비롯한 많은 병기들을 보내주었었다.

마고는 심복 아민과 짜고서 이러한 무기들을 거란놈들에게 팔아먹어 큰 치부를 할수 있었다.

그의 이러한 역적행위로 하여 고구려의 발전된 무기로 무장한 거란족이 불의에 고구려를 기습공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랍치해가는 사태가 벌어졌고 외적격멸의 자랑찬 전통을 가진 고구려의 북방군이 거란족에게 어이없이 격파당하는 수치를 당했던것이다.

조정에서는 곧 사람을 파하여 진상을 조사하던 끝에 신성태수 마고의 역적행위를 알고는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고 그를 붙잡도록 하였다.

하지만 신성태수 마고는 그보다 먼저 고추대가 고부진이 보낸자에 의해 자기가 처한 상황을 전해듣고는 심복들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던것이다.

맹광이 거란정벌군의 주력이 될 왕당의 군사를 이끌고 신성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전 신성태수 마고도, 그의 심복인 아민도 자취없이 사라져버린 후였다.

맹광이 거란정벌군을 이끌고 신성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군사들과 백성들은 모두 환호로 그를 맞이하였다.

그중에서도 수년간이나 맹광과 한지에서 창대를 베고 같이 자며 한솥의 밥을 나누어먹던 현무당 군사들의 기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것이였다.

포악하고 무능력한 놈의 수하에서 울분만 묵새기고있다가 어이없게 거란놈들에게 변경까지 열어주고 나중에는 부모처자까지 붙잡혀가는 수치를 당한 신성의 군사들과 백성들이였던것이다.

맹광에게서 이번 거란원정은 거란에 포로로 붙잡혀간 고구려의 백성들을 찾아오고 고구려사람의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영락태왕이 직접 조직하고 결정한것이라는것을 전해들은 신성의 군사와 백성들은 환호를 올리며 너도나도 정벌군에 들어가길 자원해나섰다.

모두가 태왕의 뜻을 받들어 고구려사람의 기개를 떨칠 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웠던것이다.

맹광은 새로 임명된 태수가 내려올 때를 한가하게 기다린것이 아니라 한시라도 빨리 태왕의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정벌군의 보급과 편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놓치는 구석이 없이 완벽하게 하려고 밤낮으로 쉼없이 뛰여다녔다.

그가 애쓴 보람이 있어 신성으로 내려온지 열흘도 못되여 정예의 정벌군이 편성되여 거란땅으로 진격해갈 모든 준비를 끝마칠수 있었다.

하지만 맹광은 가까운 곳에서 어떤 위험한 음모가 꾸며지고있는지 전혀 상상을 못하고있었다.

 

전 신성태수 마고는 신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귀족의 집에 숨어있었다. 수배받는 몸이라 어디 나다닐수도 없고 하여 심복들을 통해서만 문밖의 정세를 귀동냥하는 처지가 되였다.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여 맹광이 거란정벌군의 수장이 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마고는 이를 갈았다.

기회를 엿보아 맹광을 제거하고 다시 권력을 쥐려는 야심으로 온몸을 불태웠지만 그것은 마음뿐이였지 수배받는 처지에서는 무엇을 어느 하나도 할수가 없었던것이다.

고구려의 북방군을 수중에 두고 신성의 모든 군정, 민정을 좌우지하던 막강한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그는 자기가 저지른 일은 생각지도 않고 맹광때문에 수배받는 처지라도 된것처럼 증오로 이를 갈고있었던것이다.

이제 정벌군이 출동하여 거란을 치고 붙잡혀간 백성들을 찾아가지고 개선한다면 맹광은 더 높이 등용될것이고 자기는 더이상 다시 일어날 기회를 영영 잃고말것이였다.

그때 가서는 부귀영화는커녕 실오리처럼 간신히 이어오던 목숨마저 잃어버릴수 있었다.

이러한 상념으로 괴롭게 모대기던 마고는 저도 모르게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살아야 한다, 살아서 모든 부귀와 권력을 지켜야 한다.

이 마고가 살기 위해서는 맹광을 죽여야 한다. 권력은 어차피 창칼이 죽인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기마련이다.

권력을 지켜내고 목숨을 부지할수 있다면 그깟 맹광이의 목숨따위가 무엇이겠는가. 손이 떨리지 말아야 한다. 목적을 달성하자면 그 어떤 비렬한짓이라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마고는 등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심복부하 아민이 밤고양이처럼 두리번거리는 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국내성에서는 무슨 소식이 없느냐?》

마고의 성급한 물음에 아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비렬한 놈. 제 배를 채우기 위해 일은 나에게 시켜놓고 자기는 꼬리를 사려?! 내 언제든 너의 그 위선을 까밝혀놓고말테다.》

마고가 함정에 빠진 맹수마냥 으르렁거리며 상전인 고부진을 욕하는데 아민이 삵의 웃음을 지으며 가깝게 다가섰다.

《태수님, 고정하시오이다. 고추대가어른은 이번 일로 자기에게 불찌가 튈가봐 도마뱀 꼬리 자르는 식으로 몸을 뺐지만 태수님이 맹광만 처리한다면 언제든 기회를 보아 다시 등용할것이라고 생각되오이다.》

심복의 말에 마고는 못마땅한듯 얼굴을 찡그렸다.

《그게 말이 쉽지 태왕의 명령을 받고 내려온 근위군의 장수를 해치려다가 탄로되면 대역부도죄를 쓰고 멸문지화를 당해야 하는거야.》

《이판사판이오이다. 그래서 내가 맹광을 처치할 알맞춤한 놈을 물색해놓았으니 마음놓으시오이다.》

아민이 마고에게 바싹 다가서며 속삭이는것이였다.

《흥! 나서지 말고 그냥 엎드려있거라. 네 주위에 있는자들을 내가 모르겠느냐? 그자들은 맹광을 당하지 못한다.》

아민은 상전의 로골적인 무시를 받고서 얼굴이 애고추처럼 달아올랐다.

《아무렴 내가 목숨을 걸고 벌리는 일인데 허술히 할리가 있겠소이까. 걱정마소이다. 검 하나만은 귀신처럼 다루는 놈이니 맹광을 처치하는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것이오이다.》

《네 부하들중 그런자가 있었다면 내가 왜 그동안 몰랐단 말이냐?》

《저… 실은 연나라의 세작이오이다. 군영옥에 갇혀 처형이 결정된것을 소장이 구해내여 지금껏 곁에 숨겨두고있었소이다.》

마고는 깜짝 놀라 두눈을 크게 떴다.

《연나라의 세작을 자객으로 하여 맹광을 처치하겠다는 소리냐?…》

이 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가슴을 후드득 떨었다.

《태수님, 세작이고 뭐고 무얼 주저하시오이까. 소장은 목적만 달성된다면 아빌 죽인 원쑤라도 손을 잡고싶은 심정이오이다.》

이를 갈며 쏟아내는 아민의 말을 들으며 마고는 자기를 다잡고 재빨리 속으로 생각을 굴리였다.

하긴 지금의 처지에서 무얼 더 주저하겠는가.

이미 자기자신은 갈데까지 간 처지였다.

드디여 결심을 굳힌 마고는 심복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일은 어찌 꾸미겠느냐?》

《그자를 정벌군에 잠입시켜 맹광을 따라보낼 생각이오이다. 전장에서 기회를 보아 맹광의 목을 치게 하겠소이다.》

아민은 상전이 결심을 내린것을 보고 성수가 나서 주어섬겼다.

그제서야 마고는 찬성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알겠다. 연나라의 세작이든 거란족의 첩자이든 개의치 않겠으니 맹광의 목을 내앞에 가져오너라.…》

《그럼 태수님께서 한번 그자를 직접 보시오이다.》

아민이 이렇게 말하고 문밖에 대고 신호하자 체격이 우람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나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이 볕에 타서 새까맣게 번들거리는데 나이는 30대 초엽의 젊은 사나이였다.

그자는 들어서자바람으로 마고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태수님께 문안드리나이다. 방주라고 불러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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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 - coder -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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