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1 장. 391년 여름
3
왕성이라 불리우는 고구려의 도성인 국내성은 류리명왕22년(A. D. 3년) 10월에 수도로 정해진 후로 400년간을 내려왔다.
고구려가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긴데 대한 재미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류리명왕21년 봄에 있은 일이라고 한다.
고구려왕실의 제사에 쓸 짐승을 맡은 관리인 장생 설지는 왕의 어명을 받고 하늘에 지내는 제사에 쓸 돼지를 골라내여 잡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장생들이 헛눈을 파는 사이에 제사용돼지가 그만에야 달아나버리고말았었다. 설지를 비롯한 장생들은 낯색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제사에 쓸 돼지를 놓쳤다가는 자칫하면 목이 날아날판이였다.
설지는 제가 직접 돼지를 찾아나섰다.
도망치는 돼지를 쫓아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금의 국내성 위나암까지 따라갔다.
도망치던 돼지는 위나암에 이르자 척 배를 땅에 대고 엎디는것이였다.
설지는 제사에 쓸 돼지를 찾았다는 기쁨에 좋아서 춤까지 추었다.
돼지를 붙잡고 돌아서던 설지는 이곳의 지형지세를 둘러보고는 감탄하여 혀를 내둘렀다.
위나암지방은 산세가 깊고 험하여 바깥에서는 선뜻 발을 들여놓기 힘든 곳인데다 기름진 땅을 감돌아흐르는 수정같이 맑은 물이며 사슴, 물고기, 자라 등 물산이 풍족하기 이를데 없었던것이였다.
설지는 돼지를 끌고 돌아오면서 생각을 굴리지 않을수 없었다.
어째서 제사에 쓸 돼지가 도망치게 되였으며 왜 하필이면 위나암까지 가서 엎디였겠는가. 혹시 이것이 하늘이 이 땅에 무엇인가 계시를 내려보내는것은 아닐가?!
설지는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지에게서 전후사연을 다 들은 류리명왕은 한번 위나암이라는 곳에 가보고싶어졌다.
지금의 수도인 졸본성은 산천이 협소하고 큰 평야를 끼고있지 못하여 수도로서는 그리 적합치 못한 곳이였던것이다.
사방으로 길이 뻗어있지 못해 통행이 불리했으며 국토가 늘어남에 따라 나라의 중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였다.
졸본은 고구려시조왕 주몽이 나라를 세울 때 처음으로 수도로 정했던 곳인지라 고구려사람들은 이곳을 성지처럼 여기여 천도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류리명왕은 즉위하면서부터 졸본보다 더 훌륭한 땅에 천도할 결심을 가지고있었다.
나라를 세운지도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국가의 체모에 맞게 수도를 옮길 때가 온것이다.
류리명왕은 그해 9월에 직접 위나암지방에 가서 지세를 돌아보고는 수도로 정하기에 나무랄데 없다고 보고 이듬해 10월에는 정식으로 천도하여 위나암성을 쌓고 궁성을 웅장화려하게 건설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은 도성을 가리켜 부루나(밝은 땅, 평야를 가리키는 고유조선말) 또는 불내라고 불렀다. 말그대로 해가 밝게 비치는 성스러운 땅이라는 뜻이였다. 이때로부터 국내성(부루나, 불내)은 대고구려의 수도로 일대 전성기를 맞게 되였다.
국내성을 지키는 위성인 위나암성을 내놓고라도 북쪽, 서북쪽, 서남쪽에도 차단성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섰다.
옛 수도성인 졸본성과 그 주변 방위성들은 국내성을 지키는 훌륭한 요새로 전변되였다.
국내성은 경강(오늘의 압록강)중류일대의 무연한 기름진 벌을 끼고있고 또한 경강을 리용하여 물우에서의 수송을 발전시켜 변성기를 맞이했다. 국내성은 수십여개의 크고작은 견고한 방위성들과 험준한 산들에 의해 둘러막혀 그야말로 금성탕지로 불리웠다.
원래 국내성은 고구려의 행정체계에서 중심적위치를 차지하고있던 계루(과루)부에 위치한 곳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고구려 류리명왕이 계루부의 지위나 높이자고 수도를 천도한것은 결코 아니였다. 오히려 수도를 옮겨 이 기회에 왕권을 강화하고 5부의 세력지반을 약화시키는데 그 목적을 둔것이였다.
5부귀족들의 반발과 조정안의 여론을 눅잦히기 위해 류포시킨것이 바로 제사에 쓸 돼지가 위나암으로 도망쳐갔다는 이야기인것이다.
류리명왕은 설지라는 장생을 시켜 이런 이야기를 꾸며내게 하여 5부 귀족들의 반발을 눌러앉히고 단호하게 천도를 진행하였다.
고구려가 수도를 옮겼으니 어차피 5부의 중심지도 옮겨지기마련이였다. 5부귀족들과 부로들은 하는수없이 국내성으로 터전을 옮길수밖에 없었다. 류리명왕의 타산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고 할수 있었다.
수도를 옮기면서부터 지반을 잃은 5부귀족들의 세력은 한층 쇠약해졌고 왕권은 비할바없이 강해졌다.
왕권을 중심으로 한 통치질서가 바로잡혀나가면서 중앙관청들이 대폭 늘어나고 지방에서 새로 일어나는 신진귀족세력이 국내성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차츰 5부의 귀족세력을 밀어내버렸다.
수도로 정해진지 불과 몇해사이에 국내성은 인구가 수십만으로 늘어났고 교역의 중심지, 륙로, 수로의 요충지로 발전하게 되였다.
하여 문인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가며 《경강의 검푸른 물결우에 일월이 찬연히 빛을 뿜고 오곡백과 무르익어 백성들은 넉넉하니 주옥을 다듬어 성벽을 만들고 금기와로 지붕을 이어 천하에 부강하고 부유한 곳이 또 어디 있으랴》고 국내성을 노래했다.
말그대로 동방최고의 도시로 문명을 꽃피우게 된것이였다.
이것이 대고구려의 왕성 국내성의 력사였다. …
국내성 남쪽 경강기슭에 왕실전용의 사냥터가 있는데 여기서 력사상 류례없는 큰 무술시합이 벌어졌다.
때는 391년 여름, 고구려태자 담덕이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지 한달만이였다.
당시 고구려는 시련을 겪고있었다.
아무리 강대하고 부유함을 자랑하는 고구려라고 해도 여기서 주저앉으면 멸망할수 있었다.
서쪽에서는 새로 일어선 후연이 전진을 밀어내고 령토팽창에 미친 나머지 고구려의 지경을 엿보고 여러번 쳐들어오기도 했다.
거란을 비롯한 북방유목민들은 수시로 지경을 넘어와 사람들을 살륙하고 노예로 끌어갔으며 닥치는대로 략탈해갔다.
오랜 전쟁으로 땅이 황페화되고 생업을 잃은 백성들이 난민이 되여 떠돌았다. 옛 조선의 땅을 다시 찾으려는 고구려의 서진정책이 큰 난관에 직면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엄중한것은 피를 나눈 동족인 백제와의 대결이였다. 갈라지고 흘어진 겨레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일하려는 고구려의 성업에 백제는 필사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백제는 고구려에서 갈라져나온 나라였다.
이러한 백제였기에 자연히 고구려의 문물과 관직제도 등을 그대로 모방하여 국정을 운영해나갔으며 수도에 고구려시조왕 주몽의 사당을 크게 건설하고 해마다 제를 지냈다.
종주국이였던 마한을 병탄한 이후에도 정식으로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여 동족의 나라임을 인정받고 복종을 맹세했다.
역시 고구려와 한갈래로 자처하는 백제였기에 세월이 흘렀어도 그 자손임을 잊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이러한것은 남쪽나라들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옛 진한지역에서 일어선 신라는 고구려의 발전된 문물을 넘겨받고 속국으로 자처해나섰으며 먼 남단에 위치한 가야국에서도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여 나라를 인정받았다.
이렇게 세기를 두고 공존하던 삼국관계에 큰 균렬이 가기 시작했다.
고구려에서 갈라져나온 비류와 온조가 세운 소국시절에 비할바없이 령토가 넓어지고 마한을 삼켜 국력이 강화된 백제가 차츰 천하를 제패할 야망을 품기 시작한것이였다.
고구려가 모용선비족이 세운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난관을 겪게 되자 백제는 그 그늘밑에서 힘을 키워 고구려기반에서 벗어날 준비를 착실히 갖추고있었다.
동쪽으로는 신라를 압박하여 령토를 넓혔고 남쪽으로 발을 뻗쳐 6가야를 손아래 끌어들이였다.
6가야라는것은 금관가야, 아라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 소가야 등 6개의 소국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을 통털어 가야국이라 불렀다. 이밖에도 가야국에는 수십여개의 소국들이 존재했다.
가야국은 이렇듯 소국 및 종족련합체로서 자기의 존재를 유지하고있었다. 가야국이 백제에 굽어들게 된것은 이웃하고있는 신라와의 관계때문이였다. 진한의 사로소국에서부터 출발한 신라 역시 백제와 마찬가지로 국력을 강화하여 령토를 넓혔으며 나중에는 가야국의 지경까지 넘보게 되였다.
가야국은 비록 소국련합체로서 존재를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북방의 고구려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신라에 비해 국력이 터무니없이 약했다.
자칫하면 신라에 의해 나라가 멸망한다고 타산한 가야는 끝내 백제와 동맹을 맺고 자기의 존재를 유지해보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백제는 가야를 손아래로 끌어들여 많은 리익을 보았다.
신라를 서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압박할수 있었으며 바다건너 멀리 왜땅의 가야세력까지 통제할수 있었기때문이다.
이리하여 백제는 가야세력뿐아니라 멀리 바다건너 왜땅에까지 손을 뻗친 다음 고구려와의 종속관계를 깨뜨려버리고 마침내 반기를 들게 되였다. 백제는 동란을 맞이한 증원의 정세를 리용하여 바다를 건너가 료서와 산동의 땅을 빼앗고 군, 현을 두었으며 군사와 백성을 이주시키기까지 하였다.
동족간의 류혈참극은 해를 두고 거듭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대지는 황페화되였다.
새로 즉위한 고구려태왕 담덕에게는 부닥친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고 대고구려의 영광을 떨칠 무겁고도 어려운 짐이 어깨에 지워지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리유로 담덕은 즉위한지 한달도 못되여 국내성에서 큰 무술시합을 벌려 조정과 고구려백성들의 의기를 높여주려고 하였다.
무술시합에서 장원하여 태왕 담덕의 의지를 받들어나갈 인재는 과연 누구이겠는가?!
시합장의 분위기는 실로 랑만적이고 장소 또한 무예를 겨루기에 아주 안성맞춤이였다.
숲이 끝나는 곳에 파란 잔디가 뒤덮인 무연한 공지가 펼쳐져있고 바닥은 일부러 무예시합을 위해 만들어놓은것처럼 사방에서 밋밋하게 경사져내려오다가 가운데 와서는 평평하게 다져져있었다.
이곳에 정방형으로 든든한 울타리를 쳐놓아 구경군들이 시합장안에 제 마음대로 들어갈수 없도록 해놓았다.
출입구를 내놓고는 왕당군으로 불리우는 근위군의 군사들이 울타리를 따라 빙 둘러서있고 남쪽에는 수십명의 취타수가 울긋불긋한 색동옷을 입고 자못 긴장하게 서있었다.
시합장의 동, 서, 남, 북에는 각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을 형상한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기치가 높이 솟아 기세차게 나붓기고있었다.
북쪽과 남쪽에 각각 설치된 출입구곁에는 전령관이 여러명의 전령들을 데리고 엄한 기색으로 서있는데 시합에 참가할 무사들을 통제할 권한이 그에게 지워져있었다.
출입구곁에는 무사들이 대기하는 장막이 솟아있고 그 주위에도 역시 왕당군사들이 잡인들의 출입을 금할 목적으로 둘러서있었다.
시합장밖 밋밋하게 흘러내린 둔덕을 따라가며 벼슬관직에 따르는 관람석을 림시로 만들어놓았다.
거기에는 귀족이나 부로들을 위한 비단방석이 놓여있었고 둔덕아래 울타리를 가까이하는 곳에는 일반백성들이 서서 구경하게 해놓았다.
그들보다 신분이 낮은자들, 이를테면 귀족의 하인이나 종들은 시합장에서 멀리 떨어진 둔덕우에 주저앉아 먼발치에서 구경해야만 했다.
그러나 일단 시합이 시작되면 질서가 잡힌듯 하던 관람규률이 종종 깨지기가 일쑤였다.
국내성만도 인구가 무려 20만을 헤아리는데다가 수도부근의 모든 백성들이 시합을 구경하려고 물밀듯이 밀려오기마련이였다.
그중에서 5부의 귀족들과 그 가족들만 해도 1만여명이라니 그들만 가지고도 시합장이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시합은 사흘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날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위주로 하는 사냥경기요, 둘째날은 전국각지에서 올라온 무사들이 제비뽑기를 하여 날이 없는 무기를 가지고 승자전으로 겨루기를 진행하여 이기는 자가 다음날 시합에 참가하도록 하였다.
이렇듯 첫날과 두번째날 이틀간에 진행된 시합에서 선발된자들이 마지막 세번째날에 서로 치렬한 대결을 벌려 고구려최고의 무사를 뽑는것이였다.
단연 장원하는자는 왕당군의 장수로 승진할수 있었다.
두번째 날에 선발되기만 해도 정식으로 왕당군에 입대하여 군직을 맡게 되지만 시합에 참가하는 무사들은 너도나도 누구나 마지막시합까지 잘 치르어 최고무사의 영광을 받아안길 고대하고있는것이였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시합날에는 여느때보다 몇배나 되는 사람들이 밀려들어 이것을 통제해야 할 왕당군사들이 줄땀을 흘리고있었다.
오늘은 세번째 날이였다.
이른새벽부터 밀려드는 구경군들의 물결은 해가 높이 떠서 중낮이 가까와오도록 끊기지 않았다.
시합장에는 심지어 내우가 심한 녀인들도 가득 밀려왔는데 귀족녀인들은 해볕에 얼굴이 탈가봐 면의라고 불리우는 화려한 얼굴가리개를 쓰고있었고 평민들은 그들대로 명절날처럼 색천으로 만든 머리쓰개를 썼다.
고구려사나이들속에서 최고무사를 뽑는 무술시합이라 장원자의 얼굴을 한번 보겠다는 호기심에 남정들보다 오히려 녀인들이 더 많이 모여든것만 같았다.
날이 찌는듯이 무더웠지만 남녀가 다 자기 신분에 맞게 화려하고도 색갈고운 명절옷들을 떨쳐입어 온 시합장이 울긋불긋하게 단장되여있었다. 귀족들은 귀족들대로, 평민들은 평민들끼리 제 신분에 알맞는 자리에 모여앉아 시합이 시작되기를 흥분속에 기다리고있었다.
시합장과 정면으로 마주한 둔덕우에 황색일산이 솟아있고 그 주변에 장막을 둘러쳐 여기서 태왕과 수행원들이 시합을 지켜보도록 할 모양이였다.
시합은 그 대결의 치렬함과 규모에 있어서 실전을 방불케 하는것으로서 해마다 진행되는 3월 삼짇날 무예행사에 비할바가 아닌 시합이였다.
왕당-근위군은 하늘아래 대적할자가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고구려의 가장 정예한 무력이며 태왕이 직접 인솔하는 친위군이였다.
왕당은 태왕의 호위를 맡은 근위대와 개마무사부대라고 일컫는 철기군을 통털어 가리키는 말이였다.
왕당군이 고구려중앙군과 별개로 존재하면서 태왕군 또는 태왕친위군으로 불리우는것은 전쟁이 일어나면 태왕이 직접 왕당군을 이끌고 출전하여 전쟁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오랜 전통이 존재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고구려의 태왕은 나라의 통치자로서 고구려군의 총수이기도 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태왕이 직접 전선에 나가 최전방에서 전군을 지휘하여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는것이였다.
바로 이러한 독특하고 오랜 전통이 존재하고있기에 고구려남아라면 왕당군에 들어가 공을 세우기를 열망하는것이였다.
건국이후로 수백여년의 세월속에 력사에 남을 대공을 세운 수많은 영웅들중에는 고구려의 근위군인 왕당출신의 인물들이 많았다.
고구려건국공신 부분노도 왕당의 장수였고 동천왕시기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한 밀우와 뉴유도 근위군의 군사들이였다.
처음 건국초기에는 왕당군을 5부귀족의 자제들로 꾸리는것을 기본원칙으로 삼았다.
그것은 중앙정계에서 영향력이 강한 5부귀족들을 배제할수 없어 귀족자제들로 충당해넣은것이였다. 또한 귀족자제들 역시 왕당에 복무하는것을 최고의 영예로 간주하고있었다.
예로부터 고구려 수도에 태학(고구려의 최고교육기관)이 있어 귀족자제들에게 글과 무술을 가르치고 태왕에 대한 충성심을 키워주었다.
하여 태학출신의 귀족자제들은 왕당군에 정식 입대하여 군공을 세워야 조정에 발을 들여놓을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면서부터 출신에 관계없이 실전경험이 풍부하고 싸움에서 로련하며 무예가 뛰여난자들로 왕당군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때로부터 왕당군의 정예함은 배로 강성해졌다.
고구려의 대무신왕은 고구려를 강국의 지위에 올려세우고 령토를 확장하는데 큰 기여를 한 태왕이였다.
대무신왕은 수시로 군사를 이끌고 전선에 나가야 할 필요성으로부터 수백에 불과하던 왕당의 병력을 근 2천명으로 늘구었고 개마무사로 볼리우는 철기군 수천을 여기에 배속시켰다.
이후 동천왕시기 위나라와의 전쟁을 겪어 왕당군이 실지로 전쟁의 운명을 결정할수 있다는것을 절감한 고구려태왕들은 왕당군을 신변호위나 수도방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강력한 공격력량으로, 침략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최정예의 강군으로 만들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고구려의 남자로 태여났다면 평민이건 귀족자제이건간에 군적에 오른 모든 남자들이 왕당군에 입대하여 태왕을 모시고 싸우는것을 제일 큰 영광으로 여기는것이였다.
그러니 오늘 진행되는 무술시합의 규모와 여기에 참가하는 무사들의 야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것이다.
또한 왕당군의 근위대는 여러개의 당(부대)으로 나뉘여져있는데 태왕의 신변을 지키는 일월수호당, 태왕의 행차를 호위하고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의장병들로 꾸린 의장금당, 주로 궁성의 경비를 담당한 숙위금당,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고 다루는 특수병종인 신기금당 등이 있었다. 이밖에 태왕을 따라 전쟁터에 나가 전군의 선봉에 서서 싸우는 강력한 철갑기병군단인 개마무사부대가 도성주변에서 항시적으로 말을 달리며 무술을 련마하고있었다.
이밖에 왕당군안에는 태왕이 직접 다루는 비밀부대가 있어 안으로는 조정의 대소관리들과 5부귀족들을 감찰하고 통제하였으며 밖으로는 적국에 세작들을 들여보내여 유사시에 제때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하여 고구려의 이웃나라들에서는 왕당군의 무력만 가지고서도 옹근 하나의 전쟁을 치를수 있는 태왕군을 가장 두려워하였다.
시합장에 모여든 군중은 태왕이 나와 무술시합의 시작을 선포하기를 기다리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판을 벌려놓았다.
아무것도 꺼릴게 없는 평민들이 모여든 곳마다에서는 큰소리로 왁작 웃고 떠드는것이 온 시합장이 떠나갈것만 같았다.
나이든 축들은 자기들이 젊었을 때 참가하였던 전쟁에서 겪은 일들을 즐겨 이야기했고 젊은 축들은 또 저들대로 이번 시합에 장원자가 누구인가 내기까지 걸며 열이 잔뜩 올라있었다.
실로 자칫하면 패를 갈라 싸움판이 벌어질 정도로 열이 오른 분위기였다.
그러나 5부의 귀족들이 앉은쪽에서만은 어찌된 일인지 시합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싸늘한 기운이 떠돌다 사라지군 하였다.
담덕이 태왕으로 된 후 누가 류포시켰는지 몰라도 태왕이 젊은 혈기에 무모한 전쟁으로 나라를 기울게 할것이라는 말들이 5부귀족들속에서 슬그머니 떠돌았던것이다.
건국이후 수백년동안 광대한 토지와 수많은 노비를 점유하고 루거만의 재산을 쌓아놓은 배부른 귀족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별로 달갑지 않은 소리였던것이다.
만약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이웃나라들과 화친하는 외교정책을 편 이련태왕의 그늘밑에서 안일하게 살아온자들이 환영할 사태가 아니였기때문이였다.
그뿐만아니라 관례로 내려온 태왕즉위식을 통해 백성들의 세금을 올리고 여러가지 명색의 물품을 걷어들여 배를 채우고 치부를 하던자들이 이번 무술시합을 통해 많은 손해를 본것도 그 원인이 있었다.
담덕은 5부귀족들이 제가평의회에서 결정한 성대한 태왕즉위식을 그만두고 대신 무술시합을 벌려 인재를 뽑는다고 공포하고서 거기에 드는 일체 경비와 물자들을 일반백성들이 아니라 5부의 귀족들에게 모두 부담시켰던것이다.
이러한 리유로 5부의 귀족들은 감히 앞에서는 불만을 터놓지 못하고 뒤에 돌아앉아 태왕이 나이가 어려 무모하다고 헐뜯었다.
소수림태왕시기부터 고국양왕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내려오는 오랜 신하들과 귀족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정치를 한다고 뒤에서 수군거리고있었다. 한마디로 늙고 부패한 귀족들에게 있어서 젊은 태왕의 출현은 별로 달갑지 않은것이였다.
하지만 몇몇 귀족들의 우려와 불만은 시합장의 뜨거운 열기에 의해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군중은 여전히 출신별, 지방별로 모여앉아 어느 지방에서 온 무사는 힘은 세지만 무예실력이 못하다느니 또 어느 고을출신 무사는 말을 잘 타지만 힘이 약해질것이라는 등등으로 의견을 엇갈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기가 사는 지방출신의 무사들이 이길것이라고 편역을 들기까지 하였다. 나중에는 이러한 론의가 젊은 축들을 벗어나 나이많은 로인들에게까지 넘어가고 다시 평민들에게서 귀족들의 좌석에로 번져갔다. 젊은이들보다는 그래도 여러차례 싸움에 참가해본 로인들인지라 비교적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듯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서둘러 이 시합의 장원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경험에 따라 예상을 뒤집는 일이 시합장에서 종종 일어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로인들의 예측은 한결같이 이번 시합에서는 타지방에서 올라온 무사들이 도성안의 귀족출신 무사들을 당해내지 못한다는것이였다. 그것은 소수림태왕시기 태학이라고 명명한 태왕직속의 학교출신 귀족자제들의 무술실력이 대단한 사정과 관련되였다.
일반 평민들보다 재력이 풍부하고 무예를 닦을 여가가 많은 귀족자제들은 왕당군에 입대하는것을 목적으로 수년간 실력을 닦았다.
전례로 보아 왕당을 거쳐 조정에 발을 들여놓는것이 가장 빠른 승진의 길이였던것이다. 더우기 고구려에는 국가가 장악하고있는 조의라는 무사집단이 존재하고있는데 이것은 고구려군과는 별개의 무사집단으로서 평소에는 무리를 지어 사냥이나 다니면서 무예를 수련하다가 일단유사시에는 전쟁에 나가 군대의 선봉에 서서 싸웠다.
이들 역시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워 벼슬길에 오르는것을 목적으로 무술을 닦기때문에 도성출신의 사람들이 무리의 태반을 이루고있었다.
이밖에 각 지방에서 올라온 지방귀족들의 자제들인 선인들이 또한 야심만만하여 무술시합의 치렬성이 군중의 상상을 초월하게 벌어질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거기에 지금 고구려에서 최고의 무사로 자자한 왕당군의 두대형 미추가 이 시합에 참가할것이라는 소문까지 돌고있어 타지방에서 올라온 무사들의 예기를 꺾고있었다.
미추는 태왕으로 즉위한 담덕의 시위무사로서 소수림태왕시기 왕당주로 있은 영무
그의 아버지인 영무가 15년전 유주로 내려갔다가 불행하게 전사하였으므로 소수림태왕이 가엾게 여겨 궁성에 데려다가 키웠다.
그후 장성하여 태학에 들어가 글과 무예를 익히고 왕당의 장수가 되였다가 3년전부터 담덕의 시위무사로 발탁되였던것이다.
영무를 닮아 체격이 우람하고 힘이 셌으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당주가 될 야심으로 꾸준히 무술을 닦아 그 실력이 뭇장병을 릉가했다.
이러한 미추가 시합장에 나가면 판이 완전히 기울것이라고 군중은 한결같이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소문뿐이였지 왕당군의 두대형 미추가 어째서 시합장에 나간다는것인지 그 소문을 들고다니는 사람들도 잘 몰랐다.
지금까지 시합에서 을문을 비롯한 5부귀족의 자제들이 판을 치고있어 그러한 억측이 나돌고있는지도 몰랐다.
갑자기 뿔나팔소리가 시합장에 울려퍼졌다.
취타수들이 북과 나팔을 요란스럽게 울리고 전령들이 말을 타고 시합장을 돌며 소리쳤다.
《모두 정숙하라. 일체 잡인의 출입을 금할지어다. 태왕페하께서 나오신다!》
순간 군중은 와 함성을 울리며 새로 등극한 태왕의 얼굴을 먼발치에서라도 한번 보려는듯 힘껏 발돋움을 하였다.
수십명의 수행원들에게 둘러싸인채 자주색의 복장을 떨쳐입은 영락태왕(담덕이 즉위하여 년호를 영락이라 제정하여 고구려백성들은 그를 영락태왕이라고 불렀다. )이 천천히 장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누구에게도 짝지지 않을 장대한 체격에서는
어느모로 둘러보나 18살 홍안의 태왕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당당한 모습이였다.
군중은 바로 이러한 영락태왕의 웅장한 기상과 위엄에서 대고구려의 무한한 힘과 앞날을 내다보게 되였다.
영락태왕이 시합을 시작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전령관이 군중을 둘러보며 목청껏 웨친다.
《이제부터 무예시합을 시작한다!》
수백의 북이 두리둥둥 대지를 진동하였다.
오늘 시합에 참가할 백명의 무사들이 시합장에 나와 영락태왕을 향해 군례를 올리고나서 말을 달리며 환호하는 군중에게 답례를 보냈다.
무사들은 말을 타고 시합장안을 한바퀴 돌았다.
군중은 자기가 사는 지방의 무사가 지나칠 때마다 자리를 차고 일어나 큰소리로 환호하였다. 역시 도성의 군중이 대다수를 이루는것만큼 도성출신 무사들이 제일 많은 환호를 받았다.
무사들이 모두 제정된 위치에로 돌아가자 전령관이 엄숙한 기색으로 시합장안에 나와섰다.
그의 뒤를 해와 달이 새겨져있는 태왕의 기발인 황색일월기를 든 왕당의 근위병들이 뒤따르고있었다.
오늘 시합을 통제할 일체 권한을 부여받은 전령관이라 그 기색이 매우 엄엄했고 행동거지가 틀스러웠다.
전령관이 근위병에게서 태왕의 일월기를 받아들고 좌우로 휘두르자 시합장은 물뿌린듯 조용해졌다.
그의 명령에 따라 한명의 근위병이 시합의 규정과 규칙을 적은것을 펼쳐들고 내려읽기 시작한다.
먼저 5명씩 조를 무어 대전을 진행한다.
시합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봉으로 승부를 가르게 되여있었다.
봉의 끝에 가죽주머니를 씌우고 거기에 먹물을 묻혀 서로 겨루되 상대의 급소를 먼저 맞힌쪽을 승자로 보고 급소에 먹물이 찍힌쪽을 패자로 본다.
또한 봉을 빼앗겼거나 말에서 떨어진쪽도 패로 여기며 패한자는 시합장에서 내보내게 되여있었다.
이렇게 백명의 무사들중에서 승자들을 골라내며 다시 승자들끼리 대전하여 고구려최고의 무사를 선출하는것이다.
무술시합에서 장원하는자는 품계를 뛰여넘어 두대형으로 승진하며 태왕에게서 근위군의 장수로 임명받을수 있었다.
처음 대전에서 패하지 않고 견디기만 해도 근위병이 될수 있었으나 시합장에 나선 무사들은 하나같이 고구려최고의 무사로 인정받으려는 야심에 차있었다.
근위병이 규칙을 알려주고 제자리로 돌아간 후 전령관이 울타리곁에 설치된 장대우에 올라 일월기를 높이 들고 큰소리로 웨쳤다.
《시합을 시작하라!》
그의 구령이 끝나기 바쁘게 첫 조의 10명무사가 말을 타고 시합장으로 들어섰다.
5명씩 갈라 출발점에 나와섰다.
서로가
무사들은 각이한 차림새를 갖추고있었다.
꿩깃이 꽂힌 절풍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족출신의 무사가 보이는가하면 아마도 전쟁터에 나갔던적이 있는지 규정대로 투구에 갑옷차림을 갖춘 무사도 있었고 사냥군인듯 가죽옷에 두건을 쓴자도 눈에 띄웠고 그럴 능력이 없는 평민출신의 무사들은 평상복에 맨머리바람으로 나와 섰다. 그들이 탄 말도 부루말, 공골말, 가라말 등 여러가지였고 어떤자는 위세를 돋구느라 개마무사들처럼 말머리에 못이 삐죽 솟은 투구까지 씌우고있었다.
신호가 올랐다.
순간 말발굽을 감아올리며 일어난 모래먼지가 삽시에 시합장을 뽀얗게 가리웠다. 10명의 무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제각기 상대방을 향해 육박한것이다. 군중은 전쟁터에 나선듯 서로가 흥분으로 몸을 부르르 떨며 긴장한 시선으로 시합장만을 정신없이 쳐다보았다.
말울음소리, 비명소리, 군중의 환호성으로 시합장은 떠나갈것만 같았다. 먼지구름이 걷혀지자 군중은 3명의 기수만이 말을 달리고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7명은 첫 접전때 부딪쳐 말등에서 떨어졌던것이였다. 3명중의 한명은 가슴에 먹물이 찍혀 패자로 인정되여 결국은 두명만이 선발되여 다음시합에 참가할 자격을 얻었다.
군중은 흥분되여 열기에 차서 소리를 질러댔다.
보기엔 간단한것처럼 보이지만 이 시합은 높은 기예와 힘을 요구하는것이였다. 우선 말을 귀신처럼 다루어야 했고 일격에 상대방의 급소를 쳐야 하는 뛰여난 무술을 소유해야 했다.
역시 자기처럼 움직이는 상대방을 그것도 무예가 뛰여나고 말을 잘 타는 기수를 일격에 급소를 찔러 떨어뜨리는것은 최고의 기량을 필요로 하는것이다. 실수란 허용되지 않았다. 만약 전장이라면 자그마한 실수도 목숨으로 보상해야 하는것이기때문이였다.
이런 식으로 20개 조의 승부겨루기가 모두 끝났다.
24명의 무사가 선출되였다.
그들은 일정한 사이를 두고 울리는 북소리에 맞추어 천천히 말을 몰아 시합장안을 돌았다.
군중의 예상대로 24명의 무사들중 대부분이 도성출신의 무사들이였다. 타지방에서 올라온 무사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첫 시합에서 선출된 무사들이 군례를 올리며 태왕의 장막앞을 지날 때 담덕은 좌우의 중신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들은 모두 군직을 가지고있는 고구려의 중신들인것만큼 저들중에 누가 장원할것인가 짐작이라도 해볼수 있지 않겠소?》
담덕의 이런 갑작스러운 물음에 중신들이 당황하여 서로 돌아보았다.
중신들중 5부귀족들속에서 영향력이 강한 왕족의 성원인 고추대가 고부진이 한발 나섰다.
《페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신이 보기에는 저기 맨앞에서 말을 달리는 동부출신의 무사가 장원할것 같소이다.》
《동부의 태대형 을소의 아들 을문을 말하는거요?》
고부진은 담덕이 웃으며 묻는 말에 깜짝 놀랐다.
《페하께서 어찌 을문을 아시오이까?》
《7년전 삼월 삼짇날 사냥대회때 을문이 곰을 잡아 사람들을 놀래웠던 일을 짐이 어찌 모르겠소?》
담덕이 좌중을 가볍게 해주자 중신들은 모두 신이 나서 한마디씩 아뢰였다.
《페하, 신은 동부무사 을문이 아니라 저기 북부에서 온 추소가 이길것이라 생각하옵니다.》 라고 말하는것은 북부 절노부출신의 대모달 부연수였다.
《아니옵니다. 페하, 뭐니뭐니해도 말다루기에서 귀신같다고 소문난 연수로가 장원할것은 불보듯 뻔한것이오이다.》
이렇게 국상 연구흠까지 나서서 은근히 자기 가문에서 배출된 무사의 편역을 드는것을 보고 영락태왕은 호탕하게 웃었다.
《모든 중신들이 제각기 안면이 있는 무사들이 이길것이라고 의견을 내놓고있는데 이러다가는 무술시합이 여러 중신들의 시합으로 될것 같소그려.》
영락태왕의 롱담에 힘을 얻은 한 중신이 나서서 조심히 입을 열었다.
《그럼 페하께서는 저들중에 누가 우승할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나이까?》
《글쎄… 전쟁에서의 승패를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것처럼 짐도 저기 무사들중 누가 장원할수 있으리라 단정지을수는 없을것이요. 하지만 구태여 누군가를 선출하라면 저기 맨 뒤에 서있는 무사에게 기대를 걸고싶소.》
모든 중신들의 시선이 담덕이 가리킨 무사에게 집중되였다.
수수한 평복차림에 체격도 그리 크지 않은 평범한 무사였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아도 그 무사의 어디에서 태왕이 비범함을 엿보았는지 알수가 없어 중신들은 어리둥절해진 기색으로 서로 돌아보았다.
《시합이 끝나면 짐이 왜 저 무사를 짚게 되였는지 잘 알게 될것이요.》
영락태왕 담덕은 입가에 웃음을 담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두번째 시합이 시작됨을 알리는 뿔나팔소리가 울려퍼졌다.
먼저 제비뽑기가 진행되였다.
맨 처음 패쪽을 가진자는 두번째 패쪽을 뽑은자와 대전하게 되여있었다. 여기서 이긴자는 세번째, 네번째 패쪽을 뽑은 두명을 동시에 상대한다. 두명을 상대해서 이기면 다음은 세명을 상대하고 여기서도 이기면 선발되는것이다. 이렇게 다섯이상을 이기고 선발된자가 여럿 되면 왕당군의 장수들이 나와 대전하여 마지막까지 견디여낸 한명의 무사, 고구려최고의 무사를 선출하게 되는것이다.
아주 어렵고 힘든 시합으로서 무예실력이 뛰여나다고 해서 될일도 아니였다. 실전경험이 풍부하고 영민하고 슬기로운 두뇌와 강한 의지와 용맹을 겸비하고있어야 가능한 시합이였다.
과연 이 대전의 첫번째로 출전할 무사는 누구일가?!
군중은 마치 나라의 운명이 실린 전장을 주시하는것처럼 숨을 죽이였다.
태왕을 모시고 좌우에 시립하고있는 중신들도 군중과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고 누가 과연 이 시합의 장원자가 될것인가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지켜보고있었다.
대다수 중신들은 자기 가문, 자기 출신지방의 무사들이 이번 시합에서 장원하여 승진하기를 바라마지않았으며 또한 새로 즉위한 태왕의 면전에서 사람 보는 안목이 있는 현명한자로 인정받길 간절히 바라고있었다. 드디여 북소리가 요란한 속에 출입문이 열렸다.
군중은 와 함성을 지르며 맨 처음으로 패를 뽑은 무사의 얼굴을 보겠다고 한껏 발돋움을 하였다.
기마수가 박차를 질러 시합장가운데로 뛰여나왔다.
수수한 평복차림에 체격도 그리 크지 않은 타지방에서 올라온 젊은 무사, 태왕이 장원자로 기대를 걸겠다고 한 바로 그 무사였다.
처음과는 달리 군중은 열기가 식어버렸다.
시합장안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커졌다.
이런 시합장에 나선 무사라면 기골이 장대하고 첫눈에 적을 제압하는 위엄이 있어야겠는데 맨 처음 대전에 나온자는 너무도 평범한 체격에 얼굴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사였던것이다.
두번째 뿔나팔소리가 울리자 처음 나온 무사와 상대하게 될 무사가 천천히 말을 몰아 시합장으로 나왔다.
군중은 와- 함성을 지르며 두번째로 나온 무사를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두번째로 나온 무사는 동부지역의 대귀족가문출신의 무사로서 이미 도성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무사였다.
그는 왕족이며 제가평의회를 주관할 큰 권한을 쥐고있는 고추대가 고부진의 심복인 태대형 을소의 아들 을문이였다.
해마다 진행되는 3월 삼짇날 무예행사때마다 매번 장원을 놓지 않고 많은 상을 타군 하여 도성안의 귀족들과 백성들중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치 유명한 무사였다.
거의 대다수 군중이 앞서나온자가 을문과 맞서 한합도 치르어보지 못하고 패할것이라고 떠들어댔다.
고추대가 고부진 역시 입가에 비웃음을 담고 젊은 태왕이 앉은쪽을 곁눈질하고있었다.
고부진은 한때 중병으로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소수림태왕을 대신하여 국정을 맡아본적이 있는 유력한 인물이였다.
고추대가는 관직이 아니라 일종의 명예직이라고 할수 있었다.
고구려왕족의 성원이나 5부귀족중에 영향력이 높은자들에게 제수하는 직책이였다.
고추대가는 때에 따라 국가의 중요관직을 맡을수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그냥 문벌귀족의 특혜만을 누리며 명예직으로 끝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관직을 맡았든 명예직에만 머물러있든 고구려의 고추대가라면 광대한 토지를 점유하고 수백, 수천의 하호(하층농민)와 노비를 거느리고있는 일대 세력자였다.
따라서 붙어있는 무리 또한 이루 헤아릴수없이 많았고 조정과 문벌귀족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마련이였다.
고구려에서 차츰 태왕의 전제권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고추대가들의 권한을 계속 약화시켰지만 의연 대를 물려온 그들의 권한은 매우 컸던것이다.
소수림태왕의 사촌동생이며 담덕의 숙부벌 되는 고부진은 젊은 태왕이 즉위하자바람으로 왕족들과 문벌귀족들의 특권을 제한하고 제가평의회의 결정까지 무시하는데 대해 속으로 불만이 많았다.
지금 고부진은 제 심복인 을문이 어디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촌놈을 일격에 쓰러뜨려 태왕의 위세가 보기 좋게 무너질 시각만을 고대하고있었다. 하지만 담덕은 전혀 걱정되지 않는듯 태연한 기색으로 시합장을 주시하고있었다.
대전을 앞두고 군중도 역시 누가 이길것인가 론의가 분분했다.
개중에는 첫번째 패를 뽑고 시합장에 나선 무사의 록록치 않은 기품을 가려보며 이길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전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전쟁에서 실전을 겪어본 늙은 축들이였다.
《비록 체격은 그리 크지 않지만 록록치 않은 태도에 눈매가 매의 눈처럼 날카롭고 몸동작이 빠른것이 그리 쉽사리 패하지는 않을걸세. …》
《범잡아먹는 담비가 있다지 않소. 체격이 크고 황소같아서는 무얼 하겠소. 기본은 실력에 있는것이지. 저 무사의 기세를 보니 강자앞에서도 꺾이지 않을 의지가 차넘치는것이 내 생각엔 저 무사가 동부출신의 무사를 이길것 같소그려.》
전쟁을 겪어본 늙은 축들은 이런 말로 타지방 무사를 옹호했다.
하지만 군중은 거의 대다수가 모두 동부지역 무사 을문을 승자로 꼽고있었다.
첫번째로 패를 뽑고 나선 무사는 다름아닌 맹광이였다.
맹광은 출발지점에 서서 상대방의 움직임을 주시하고있었다.
상대는 봉을 땅과 수평이 되게 쳐들고 맹광을 노려보고있는데 아주
맹광은 봉을 머리우로 쳐들었다.
그는 상대를 정면으로 공격할것이 아니라 그 힘을 리용하여 꺼꾸러뜨리기로 마음먹고있었다.
보매 상대는 힘을 많이 믿고있는듯 하였다. 그러니 정면으로 공격해올것은 자명한 리치요, 여기에 말려들지 않고 그 힘에 편승하여 상대를 꺼꾸려뜨려야 하는것이였다.
시작구령이 울리였다.
맹광은 박차를 질러 상대를 표적으로 말을 내몰았다.
상대도 역시 맹광을 단숨에 박살낼 기세로 풍우같이 맞받아 달려나왔다. 맹광은 왼손으로는 고삐를 잡고 말을 몰며 오른손으로는 봉의 중간을 잡고 머리우에 쳐든 상태였다.
상대로 하여금 공격방향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자세였다.
둘이 서로 부딪칠듯 가까와오자 맹광은 힘껏 몸을 틀며 고삐를 조종하여 말을 상대의 왼쪽으로 내몰았다.
맹광이 오른쪽으로 말을 지나칠줄 알고 정면으로 봉을 내지르던 상대는 뜻밖에도 공격목표가 반대로 도는 바람에 당황해졌다.
봉을 오른손에 든 상태에서 어깨너머로 맹광을 쳐야겠는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맹광은 바로 이것을 노렸던것이다. 상대가 허둥지둥하며 자세를 바꾸려는 순간 맹광은 등자를 밟고 일어서며 바람같이 지나가는 상대의 머리를 봉으로 힘껏 들이쳤다.
동부무사는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말등에서 굴러떨어졌다.
이번 시합의 우승자가 될것이라고 그렇게도 소문이 자자한 을문을 눈에 잘 띄우지도 않는 동작 하나로 가볍게 물리친 맹광의 무술에 군중은 넋을 잃었다. 환성은 중신들속에서도 일어났다.
그 누구도 주의를 돌리지 않던 이름도 모를 타지방출신의 무사가 비범한 무술실력을 지니고있음을 첫눈에 알아본 태왕의 안목에 대한 찬탄의 목소리들이 연방 터져나왔다.
고추대가 고부진은 자기가 장원을 장담한 무사가 기운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지자 얼굴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이번에는 두명이 동시에 뛰여나와 재빠르게 량옆으로 갈라서며 맹광이 숨돌릴 틈도 없이 앞뒤로 공격을 들이댔다. 맹광은 그들이 번개같이 내지르는 봉의 타격을 간신히 피하였다.
그들은 마치 세마리의 룡이 여의주를 가지고 다투듯이 맹렬하게 싸웠다. 일단 두명의 공격에서 벗어난 맹광은 울타리를 등지고 상대방 무사들이 다시 공격해오기를 기다렸다.
두명이 동시에 봉을 후리며 덤벼들었다. 왼쪽무사는 봉을 세워가지고 들어오다가 맹광의 머리를 바라고 곧바로 내리쳤고 오른쪽무사는 수평이 되게 휘익 돌려서 후리쳤다.
위기일발의 순간 맹광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군중은 처음에 상대방 무사들의 공격으로 맹광이 말등에서 굴러떨어진줄로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고 공격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말과 함께 땅에 나딩굴었다.
일은 이렇게 된것이였다. 왼쪽과 오른쪽에서 동시에 봉이 들어오자 맹광이 눈깜박할 사이에 말의 배밑에 가붙으며 상대방 무사들의 드러난 몸을 봉으로 찔렀던것이다.
맹광이 자세를 바로하고 다시 말등에 올라 시합장을 질주하자 여기저기에서 찬탄의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뿔나팔소리가 울리며 환호하는 군중의 환성을 삼켜버렸다.
세명의 기수가 천천히 시합장안으로 들어섰다. 이들만 이기면 맹광은 선발되는것이였다.
맹광은 호흡을 가라앉히고 흥분되여 날뛰는 말을 다독여주며 제어했다. 맹광은 이 순간 소운의 희고 갸름한 얼굴을 눈앞에 떠올렸다.
순진하고 깨끗한 소운이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지 않겠는가. 맹광은 오늘시합에 자기의 운명뿐아니라 소운의 앞날도 걸었던것이다. 시합에서 장원으로 선발되는 길만이 뜻을 이루고 소운의 원한, 나아가서는 나라를 위해 가문의 영광을 떨칠수 있는것이였다. 맹광은 봉을 잡은 손에 지그시 힘을 넣으며 자기와 상대할 무사들을 날카롭게 휘둘러보았다.
셋이 천천히 맹광을 싸고돌며 일격에 꺼꾸러뜨릴 기회를 엿보고있었다.
드디여 맹광은 목표를 정했다. 정면으로 마주선 무사의 기마술이 그리 능하지 못함을 간파하고 먼저 그 약한 고리부터 뚫기로 작정한것이였다. 채찍으로 말을 때려 노하게 하니 말이 비호같이 내달렸다.
먼저 공격한자의 예봉을 꺾기는 어려운 법!
눈깜박할 사이에 눈앞에 뛰여드는 맹광의 맹공격에 상대는 방어하려고 손을 올렸으나 급소를 맞고 안장에서 튕겨났다.
맹광은 재빨리 그 장소를 떠나 말을 달렸다.
그때에야 정신을 차린 남은 두명이 이를 악물고 등뒤에까지 쫓아와 머리를 겨누고 힘껏 내질렀다. 그러나 맹광의 기마술이 어찌나 능란한지 그들은 매번 헛찌르며 기운만 빼군 하였다.
군중들속에서 야유의 웃음이 터져나오자 두 무사는 아예 두눈이 뒤집혀 맹광을 박살낼 기세로 맹렬히 돌진하였다. 이번에도 맹광이 재치있게 빠져나가자 두 무사는 성이 독같이 났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니 량쪽으로 갈라져 행동을 개시했다. 한명은 맹광을 빠질수 없는 곳으로 몰아가고 다른 한명은 앞을 막으면서 쉽사리 옆으로 빠지지 못하게 하였다. 앞을 막은 무사는 아예 말을 멈추고 봉을 정면으로 세워들고서 맹광이 가까이 다가오기만을 잔뜩 노리고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무사도 말을 맹렬히 내몰아 육박해오고있었다.
그들 셋이 부딪쳐 땅에 나딩굴든가 아니면 두 무사가 휘두르는 봉에 맞고 맹광이 넘어질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맹광은 순간적으로 고삐를 잡아채며 등자를 힘껏 밟았다.
말을 급작스레 멈추어세우며 몸을 한쪽으로 비트니 뒤에서 맹렬히 육박해오던 무사가 공격하던 힘을 멈추지 못하고 앞에 버티고 서있는 자기 짝패무사에게 고스란히 덮쳐들었다. 두 무사는 서로 부딪쳐 말과 함께 바닥에 나딩굴었다.
이때까지 숨을 죽이고 시합을 구경하던 군중이 떨쳐일어나 목청껏 환성을 질렀다.
황색일산밑에 앉아있던 영락태왕이하 중신들모두가 일어서서 실전에 못지 않게 힘껏 싸워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맹광에게 경의를 표했다.
맹광은 기쁨의 흥분으로 해쓱하게 질린 얼굴을 들고 환성의 격류에 휩싸인 군중을 둘러보았다.
마침내 맹광은 이겼다.
고추대가 고부진은 가깝게 부리는 심복인 대당(고구려의 중앙군)의 대형 장대가 갑자기 나타나 황급히 눈짓하는것을 보고 시합도중에 태왕의 장막을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무슨 일이냐?》
《신성태수 마고가 보낸자가 시합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곳에 도착하였소이다.》
가뜩이나 젊은 태왕의 면전에서 망신하여 속이 좋지 않은 때에 이렇듯 별치 않은 일로 심복이 찾아와 달달 보채니 고부진의 꼬일대로 꼬인 성미가 확 터졌다.
《신성에서 사람이 찾아왔으면 집에 보내여 곱게 기다리게 할노릇이지 왜 이곳까지 데리고와서 성가시게 구는것이냐?》
장대는 상전이 약이 올라 노발대발하는데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소장도 대인어른께서 태왕을 수행중이라 댁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 아민이라는자는 참으로 안하무인이였소이다. …》
장대는 말이 여기까지 이르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인적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상전의 귀에 입을 바짝 가져다댔다.
심복이 소곤거리는 말을 들으며 고부진의 뱁새눈이 차츰 휘둥그래지기 시작했다.
《뭐야? 마고는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수하들에게 발각되였단 말이냐? 군옥에서 탈옥한자는 어찌되였느냐?》
《그래서 말씀드리는것이 아니오이까. 추격병이 인차 꼬리를 물었으나 탈옥한 놈이 원래 무예가 뛰여난자라 놓쳤다는것이였소이다. …》
고부진은 입이 쓰거운지 입만 다셨다.
《그래 신성태수가 날 보고 그자를 잡아달라는것이냐?》
고부진이 쓰겁게 묻는 말에 장대는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
《탈옥한 놈이 여기에 나타났다고 하오이다.》
《그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무슨 배포에서인지 오늘 무술시합에 버젓이 참가하였다고 하더이다.》
순간 고부진의 뇌리에 뭔가 번개처럼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그는 갑자기 심복의 멱살을 잡아 바짝 끄당겼다.
《좀전에 을문을 말에서 떨군 놈이 아니더냐?》
《대인어른께서 어찌 그것까지 아시오이까?》
고부진은 교활하게 눈을 굴리며 장대를 노려보았다.
《좋다, 너는 아민이란자를 당장 신성으로 돌려보내거라. 혹시라도 다른 정황이 생길수 있으니 마고더러 이젠 거란놈들에게 무기를 팔아 넘기는짓을 그만두라고 내 말로 단단히 신칙하거라.》
《알겠소이다. 그런데 을문을 패하게 한 놈은 어찌하시려는지요? 만약 그놈이 장원이라도 하게 되면 우릴 찌를 칼이 될지도 모를것이온데…》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너는 빨리 신성쪽의 일이나 마무리하거라.》
장대의 우려를 태연하게 받는 고부진의 입가에 삵의 웃음이 소리없이 비꼈다가 사라져버렸다. …
시합은 전부 끝났다.
무술시합의 장원은 맹광이였다.
전국각지에서 올라온 무사들과 도성의 무사들가운데서 그 누구도 무예가 맹광이에게 미치지 못했던것이다.
시합의 규칙대로 하면 6명의 상대를 쓰러뜨리고 선발된자가 여럿이 되면 왕당군의 장수들이 대적하여 마지막까지 싸워 이긴자를 장원으로 뽑게 되여있으나 맹광을 내놓고는 그 누구도 6명의 상대를 이기지 못했던것이다. 하여 맹광은 하루종일 진행된 대전끝에 끝내 장원할수 있었던것이다.
시합장에는 신성에서 올라온 무사 맹광이 장원하였다는 전령들의 선포가 울려퍼졌다.
맹광은 영락태왕 담덕의 부름을 받고 당상으로 올라갔다.
맹광은 신성 버드내마을 야장쟁이 하평의 아들이라고 큰소리로 밝히고나서 태왕의 앞에 나섰다.
맹광이 이렇듯 가까이에서 영락태왕을 보는것은 처음이였다.
홍안의 영락태왕은 범가죽을 씌운 안석우에 우람한 몸을 깊숙이 묻고있는데 그의 좌우에는 국상 연구흠과 고추대가 고부진이 서있었고 고위급관료들이 엄엄한 자세를 하고있어 전쟁을 겪어본 맹광이지만 흥분과 격정에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과시 천자다운 위풍이였다.
력대적으로 고구려태왕은 천자로 일러왔다.
고구려태왕은 태학을 직접 운영하고 천하의 백성을 《하늘의 뜻에 따라 다스리면서 백성의 부모》가 되여 나라를 이끌어가고있었다.
중원에서 유교가 전파되기 훨씬 이전부터 고구려에서는 《해와 달》의 아들이라 일컬으는 시조왕 동명성왕의 사당을 크게 건설하여 정기적으로 큰 행사를 진행하여왔으며 변방의 주성들마다 시조왕의 투구, 갑옷, 창 등을 보관하여 전쟁의 승리를 념원하군 하였다.
이밖에도 전국각지의 주, 군, 현, 성의 매 부락들마다에 경당이라고 이름가진 민간의 학교가 있어 백성들이 나라와 고향을 지키기 위해 무예를 수련하고 글을 배웠다.
당시에 이렇듯 정연한 체계를 갖춘 나라는 동서방을 통털어 천하에 오직 고구려 하나뿐이였다.
물론 백제나 신라의 경우에도 문벌귀족들의 자제들을 모아 국가가 글과 무예를 가르치고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배양해주는 체계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백제의 무도, 신라의 화랑인 경우는 고구려에 비해 근본이 전혀 달랐다.
리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고구려가 천자의 나라이기때문이였다.
고구려시조왕 주몽은 《해와 달의 아들》로서 주, 후, 군, 광 등의 칭호를 지니고있는 제후왕들을 수하에 가지고있은것이였다.
이렇듯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는 천자의 나라 고구려인지라 다른 나라와 민족에 비할바없는 질서정연한 체계를 일찍부터 갖추고있었다.
이러한 천자앞에 나선것으로 하여 전쟁터에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맹광이지만 흥분과 격정에 얼굴색이 창백하게 질린것이였다.
맹광은 영락태왕앞에 나아가 군례로써 절을 하였다.
《태왕페하의 은총으로 장원의 영광을 지니는 기쁨을 얻었소이다.》
담덕은 흡족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장하다! 그대는 오늘 고구려무사의 굴하지 않는 기백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짐과 시합장에 모인 백성들앞에서 고구려사람의 힘을 과시했다.》
《영광이로소이다!》
담덕은 체격은 그리 크지 않으나 강철같이 단단한 맹광의 몸을 아래우로 훑어보다가 불쑥 이렇게 입을 열었다.
《짐이 시합을 치르는 그대의 모습을 보니 분명 전쟁에서 실전으로 다진 무예이다. 오늘 시합에 참가한 무사들의 대부분이 무술실력이 대단하였지만 그대가 모두 물리치고 단연 장원할수 있은것은 전쟁을 겪으며 실전을 통해 무예를 익혔기때문이다. 그래 어느 전쟁에 참가하였는가?》
맹광은 한순간 흠칫했다가 곧
《실은 신성에서 5년동안 군직에 몸을 담고 지냈나이다. 그때 페하를 모시고 싸운적이 있소이다.》
담덕은 몹시 흥미가 동하는 모양이였다.
《짐과 함께 싸웠다?! 료동전선에서 싸웠는가?》
《연군의 료서침공때 페하를 모시고 싸웠나이다. 신은 그때 그러한 대격전에 처음으로 참가했나이다. 부루
번쩍번쩍 빛나는 투구에 적의 피로 물든 전포를 입으신 페하께서 말을 달리는 모습을 뵈올 때마다 우린 부루
담덕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맹광의 머리너머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뼈가 부서지고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전장의 참혹하고 비참한 모습을 그려보는듯 했다. 고구려를 지켜 서슴없이 목숨바쳐 싸운 수천수만의 군사들을 생각하는지…
마침내 담덕은 안석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스적스적 다가가 부복하고있는 맹광을 일으켜세웠다.
《짐이 하나 물을것이 있다. 한달전 신성 개마현의 이름없는 산골짜기에서 그대를 구원해준 무사를 알아볼수 있겠는가?》
맹광은 소스라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영락태왕의 부리부리한 두눈이 자기를 지그시 응시하고있었다.
맹광은 그제서야 그때 자기를 구원해준 구원자가 바로 영락태왕인줄 알수 있었다.
구원자의 성함을 묻는 맹광에게 국내성으로 찾아오라고 하던 그 목소리!…
맹광은 당황하여 태왕앞에 무릎을 끓었다.
《페하! 감히 페하를 알아뵙지 못하고 무례를 범한 소장을 용서해주시오이다.》
담덕은 호탕하게 웃으며 맹광을 일으켜세웠다.
《짐이 그대에게 국내성으로 찾아오라고 한 말을 기억하느냐?
짐은 그때 그대가 끝까지 굴하지 않고 싸우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짐의 한팔이 될 인재가 될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였다.》
《황송하오이다.》
《헌데 어인 일로 야밤중에 무인지경에서 자객들의 공격을 받게 되였느냐?》
영락태왕의 물음에 맹광이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는것을 보고 때는 지금이라고 생각한 고추대가 고부진이 한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페하! 그 대답은 신이 감히 올리겠나이다. 맹광이라는자는 무엄하게도 페하와 고구려의 백성들을 속이고 오늘의 시합장에 나온자인줄 아오이다. 저자는 신성 현무당의 척후장으로 있다가 군문에 죄를 짓고 도망친자라 하옵니다.》
고추대가 고부진의 이 말은 잔잔한 물면에 큰 돌을 던진것처럼 삽시에 중신들속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무엄할지고… 어찌 수배받는자가 신성한 무술시합에 참가한단 말인가?》
《페하를 감히 속이고 조정백관들을 릉멸한 죄를 중벌로 다스려야 할줄 아오.》
중신돌과 5부귀족들이 술렁거리면서 서로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내 검을 가져오라!》
마침내 영락태왕 담덕이 뒤에 서있는 근위군의 장수 미추에게 소리쳤다.
기골이 장대하고 눈이 감때사나운 미추가 급히 뛰여와 태왕의 검을 공손한 태도로 받들어올렸다.
영락태왕 담덕이 서리발이 돋는 검을 뽑아들며 불길이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지금까지 피대를 돋구던 모든 중신돌이 공포에 질려 입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맹광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과연 영락태왕은 어떤 결정을 내릴것인가.
아버지의 유업을 이룰수 있겠는가 없겠는가 하는것은 이 시각 영락태왕의 의지에 따라 결정될것이였다.
《어떤것이 명검이라고 생각하느냐?》
맹광은 영락태왕의 뜻밖의 말에 놀라 고개를 들고 시선을 맞받았다.
담덕은 웅글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였다.
《세가지 검이 있다. 천자의 손에 쥐여진 검, 장수의 검, 필부의 검이 있다. … 천자의 검이란 인의로 천하를 다스리는것이고 장수의 검은 지략으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것이다. 필부는 용맹으로 무기를 삼지. … 짐이 지금 손에 든 검은 사람을 죽이자고 든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자고 든것이다.》
담덕은 손에 든 검을 집에 넣어 맹광에게 내밀었다.
《그대는 오늘 짐과 조정백관들 그리고 짐의 백성들앞에서 고구려무사의 기개를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짐은 과거에 그대가 무엇을 했으며 어떤 인물이였는지 알고싶지 않다. 지금 눈앞에 있는 그대만을 보고있을뿐이니 지금처럼 언제나 짐의 곁에 있거라.》
맹광은 태왕의 검을 받아들며 격정에 북받쳐 이렇게 웨쳤다.
《페하! 신은 페하의 검으로만 살며 죽어 한줌 흙이 될지언정 오직 페하와 대고구려를 받들어나가겠나이다.》
영락태왕은 이어
불길이 이글거리는듯싶은 태왕의 시선이 지나칠 때마다 조정중신들과 5부귀족들의 몸이 한줌으로 줄어드는것 같았다.
이어 태왕은 전장에서 백만의 적병을 제압하던 위엄있는 목소리로 온 시합장이 쩌렁쩌렁 울리게 웨쳤다.
《조정의 중신들중 많은 사람들이 이웃나라들과 화친하여야 전쟁을 막고 우리 고구려가 잘살수 있으리라고 주장하고있다.
그러나 오늘은 짐이 그 대답을 주겠다. 나약하게 남에게 머리를 숙여 살것이 아니라 강자가 되겠다. 대고구려를 강국으로 세워 그 누구도 감히 이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겠다.
옛 조선의 땅을 모두 찾고 갈라지고 흘어진 겨레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그날까지 짐은 멈추어서지 않을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무술시합을 통해 조정대신들과 백성들 모두에게 해줄수 있는 짐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