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장

 

고구려 장수왕 3년인 415년 10월 어느날 밤이였다.

동쪽에서 세찬 돌풍이 불어왔다. 모래섞인 먼지의 검붉은 구름이 지평선을 뒤덮고있었다. 끝간데없이 펼쳐진 황야의 상공에는 자욱한 안개가 드리워졌다.

높이 타래쳐오르는 먼지구름에 가리워 밤하늘의 초생달마저도 흔적을 볼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 남쪽의 황야에 거연히 솟아오른 사상최대의 릉비만은 뚜렷이 자태를 드러내놓고 서있었다.

이것은 영락태왕의 눈부신 업적을 찬양하여 력사가 세운 릉비였다.

영락태왕의 릉묘곁에 우뚝 솟아 무려 6. 34m의 높이에 1. 43~1. 9m의 사각석주를 이루고 1 800여자의 명문을 새긴 천하에 둘도 없는 최대의 릉비였다.

영락태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거련태왕(영락태왕의 아들 장수왕)은 영락태왕에게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성왕》 (평양을 중심으로 광대한 국토를 개척하고 천하를 평안하게 한 성스러운 태왕)이라는 시호를 올리고 릉과 릉비를 사상최대로 건설하도록 하였다.

바로 이것이 오늘의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광개토태왕릉과 릉비이다.

실로 영락태왕은 20여년간의 통치기간 고구려를 동방의 최강국으로 만들었고 배나 되는 령토를 개척하였으며 그 누구도 감히 넘겨다볼수 없는 강력한 국력을 마련하여 후세에 물려주었다.

삼국통일의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여놓았고 중원을 굴복시켜 나라의 령토완정을 이룩한 고구려의 태왕이였다.

하여 영락태왕 담덕은 광개토태왕이란 이름으로 력사에 자취를 남기게 되였던것이다.

바람은 여전히 기세가 숙어들지 않고 사납게 황야를 휩쓸었다.

하지만 그 어떤 초자연적인 힘도 력사의 증견자로 솟아난 광개토태왕릉비만은 감히 건드릴수 없었다.

국강상(나라의 성스러운 언덕이라는 뜻으로 평양을 가리키는 말)에 민족의 꿈이 실린 전설을 남기고 력사의 새 아침을 불러온 광개토태왕의 릉비는 거연히 이 땅우에 솟아 세기와 세기를 굽어보고있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이밤, 광개토태왕릉비곁에는 한명의 사나이가 발에 뿌리라도 내린듯 서있었다.

그는 맹광이였다. 류수와 같은 세월속에 그의 나이도 이제는 쉰줄을 가까이하고있었다.

10여년전 료서대격전에서 당한 심한 부상으로 군직에서 물러난지도 이미 오래였다.

력사에 남을 큰 공을 세워 나라에서 주는 영광의 단상도 마다하고 영락태왕이 세상을 떠난 후 깊은 산중에 은신한 맹광이였다.

영락태왕의 둘도 없는 충신인 맹광은 비록 군직에서 물러난 몸이지만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영락태왕의 곁을 지킬 생각으로 자주 이곳을 찾았다.

고구려는 영락의 시대를 만나 동방의 최강국으로 삼국통일의 확고한 대로를 닦아 민족의 부강과 존엄을 제일로 여기는 겨레의 꿈을 이루었다.

후연의 거듭되는 침공을 물리치고 령토완정을 이룩하였을뿐아니라 백제-가야와 바다건너 왜를 꿈쩍 못하게 눌러놓고서 삼국통일의 길로 당당히 나아갔다.

404년 대방지경에 침입한 왜적의 무리를 영락태왕이 직접 근위군을 이끌고 나가 민간인들로 이루어진 의병과의 협공하에 한놈도 남김없이 무찔러버리고 407년에 고구려에 반기를 들려고 획책하는 백제를 5만대군으로 징벌함으로써 다시는 고구려를 반대하는 군사행동을 벌리지 못하게 하였다.

409년 중원에서는 큰 사변이 일어났다.

후연에서 고구려출신의 고운이 중위장군 풍발과 함께 정변을 단행하여 모용씨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왕조를 세웠던것이다.

고운과 풍발은 후연땅에 정착하고있는 고구려세력의 힘을 빌려 끝내는 력사의 흐름을 바꿀수 있었다.

그후 얼마 안 있어 고운은 선비족출신 부하들의 반란으로 불행을 당했지만 풍발이 고운의 뜻을 이어 고구려세력의 힘을 빌려서 왕위를 계승하였다.

풍발은 새로운 왕조를 세우자바람으로 오른팔처럼 가까이에 두고있는 고구려사람인 모사 하평을 고구려에 보내여 영락태왕에게 화평의 뜻을 전하고 고구려와 형제의 맹약을 맺고 화친을 도모할것을 맹세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서북방에서 고구려를 적대시하던 세력이 완전히 구축되고 나라는 새로운 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의 완강한 정신력앞에 침략에 미쳐날뛰던 세력들이 완전히 굴복하고만것이였다.

새로 나라를 세운 풍발은 그후로 고구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적극적인 교류를 진행하였다.

402년에 신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른 실성이 고구려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원해준 일을 잊지 않고 의리를 다함으로써 신라는 고구려의 지원으로 실성의 시기에 나라의 부강과 발전을 이룩하는 시대를 열게 되였다.

405년에 백제에서는 아신왕이 병으로 죽고 그 왕위를 노려 왕족들사이에 피비린내나는 혈투가 벌어졌다.

아신왕의 아들 전지가 왜땅에서 돌아와 왕위에 오름으로써 일단 권력싸움이 끝났지만 고구려와의 승산없는 싸움과 왕족내부에서의 권력싸움은 백제를 다시 일어설수 없게 쇠퇴몰락시켰다.

백제는 끝내 고구려에 무릎을 꿇고 다시는 동족을 반대하여 칼을 빼들지 못하게 되였다.

410년에 영락태왕은 반기를 들고 항거해나선 동부여를 대군을 발동하여 들이침으로써 64개 성과 1 400개 촌락을 점령하였다.

속국의 지위에 있던 동부여를 완전히 고구려에 복속시킴으로써 나라의 령토는 영락태왕의 즉위 이전의 두배이상으로 확장되였고 고구려의 국력은 배로 장성되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시대는 영락태왕이 가는 앞길을 막지 못했으나 병마는 그를 가로막았다. …

맹광은 깊은 상념에서 깨여난듯 가물가물 타오르는 홰를 들어 릉비에 새겨진 글을 한자한자 읽어나갔다.

영락태왕과 함께 말을 달리며 력사의 광풍을 맞받아나간 이 고구려의 옛 군사는 지금 환희의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추억하고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수천리 고구려의 광대한 령토가 펼쳐져 살아 숨쉬고있었고 귀전에는 싸움의 함성이 끊기지 않고 울리는것만 같았다. …

마침내 맹광은 살아있는 영락태왕에게 아뢰이는듯 입을 열었다.

《페하, 신은 지금까지 페하의 곁을 지키는것만이 진짜 충신의 삶이라고 여기고있었나이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되였음을 늦게나마 깨닫고 떠나기에 앞서 이렇게 페하를 찾아왔나이다.

페하께서는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미흡한 신을 아끼시였고 또 영락18년에는 이제 국도로 일떠설 평양성 남쪽고을 덕흥땅에 신의 아버지인 진자사의 릉까지 세워주시였사옵는데 신은 페하의 거듭되는 그 은총에 보답하지 못하였나이다. 페하, 새로 등극하신 거련태왕께서 불미한 소신을 찾는다 하오이다. 신은 이 한몸이 전장에서 고구려를 위해 언제나 페하의 검으로, 부루장군의 부하로 살겠다는것을 맹약하옵나이다.》

뒤에서 말발굽소리가 울렸으나 맹광의 귀가에는 영락태왕을 따라 천하를 종횡무진하던 그날의 함성만이 울리고있었다.

거련태왕과 함께 광개토태왕의 릉을 찾은 근위군의 조의두대형 도루는 태왕이 손짓하는 바람에 맹광을 찾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거련태왕은 말등에서 내려 한참이나 맹광이 영락태왕과 심장으로 나누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어린시절 거련태왕은 왕당군의 중리도독인 맹광에게서 검술을 배우며 성장했었다.

맹광이 비록 부상을 당해 군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고 해도 그는 거련태왕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다.

맹광이 말을 마치고 머리를 숙이는것을 본 도루가 거련태왕의 곁으로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

《페하, 신이 맹광장군에게 페하께서 그를 찾아 여기까지 오신것을 알리겠나이다. …》

도루가 발을 떼려는데 거련태왕이 그의 손을 억세게 붙잡아세웠다.

《쉿! 가만 있거라. 그대는 저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도루가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맹광은 한창 고구려의 군가를 부르고있었다.

우- 우- 사납게 울부짖는 바람결사이로 우렁찬 군가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

    숲이여, 머리를 숙여라

    산이여, 길을 비켜라

    …

    고구려기마군사 달려간다

    …

 

도루는 저도 모르게 군가를 따라부르고있는 자신을 의식했다.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목젖이 거칠게 뛰놀았다.

용감하고 씩씩한 자유로운 고구려사람들의 넋이 담겨진 군가는 거치른 바람을 쳐몰아내며 끝없이 광야로 울려퍼지고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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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 - coder -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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