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국강상의 전설
제 2 장. 국강상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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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사촉을 받은 가야-왜군이 신라로 침입해들어가 전쟁이 발발한 무렵, 고구려가 나라의 남부지역으로 힘을 집중하고있을 때 불의에 배신적으로 고구려지경을 넘어 쳐들어왔던 후연은 영락태왕이 이끄는 징벌군의 타격에 만신창이 되도록 얻어맞고 황급히 퇴각하여 물러섰다.
영락태왕은 적을 격퇴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곧 대군을 발동하여 료서까지 진출하여 료서땅의 대부분을 평정하는 커다란 승리를 이룩하였다.
후연은 말그대로 자는 범의 수염을 건드리는 격이 되고말았다.
그 이후 후연은 고구려에 점령당한 령토를 되찾는다는 구실밑에 다시금 침략전쟁을 일으키려고 전쟁준비에 미친듯이 달라붙었다.
그러나 내부분렬로 취약해질대로 취약해지고 권력싸움으로 썩을대로 썩은 후연이 어찌 동방의 대강국으로 위용을 떨치고있는 고구려의 의지를 꺾을수 있겠는가.
고구려는 400년에 있은 남방원정이 성과적으로 결속되자 곧 북방으로 모든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고구려는 드디여 영락태왕 12년인 402년에 5만명의 대군으로 후연의 변방을 짓뭉개버리고 곧바로 유주, 평주계선을 향해 총공격전을 개시했다.
극도로 당황망조한 후연은 곧 전국에 총동원령을 내리고 10여만의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군의 진격을 막아나섰다.
고구려군이 평주를 점령하고 장성을 돌파하여 유주계선으로 진출한다면 후연은 자기 존재를 마칠수 있었던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중원의 여러 소국들과의 싸움에서 전력을 모두 허비한 후연으로서는 고구려군과의 이번 전쟁이 나라를 멸망에로 이끌어나가는 전쟁으로 될수 있었기때문이였다.
후연은 평주의 소재지이며 장성으로 통하는 요충지인 숙군성에 수만명의 대군을 둔쳐놓고 평주자사 모용귀로 하여금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곳을 지켜내라고 명령하였다.
숙군성이 고구려군의 손에 함락되는 경우 장성의 방어선이 돌파되게 되고 고구려군은 유주까지 거침없이 들어오게 될것이였다.
후연은 숙군성에 수만명의 정예군사들을 배비하였을뿐아니라 잇닿은 산들마다에 예비군사들을 두었고 때에 따라 장성방어군의 10만대군으로 우익을 삼게 하였다.
나라의 지경을 넘어들어왔던 침략군을 격멸하고 패주하는 적을 뒤쫓아 평주로 진출하고있는 징벌군은 영락태왕이 직접 이끌고있었다.
후연은 숙군성의 주둔무력 4만명에 평주 요로에 둔쳐놓은 군사가 근 3만명에 달하였다.
이밖에도 장성방어군이 10만에 이르렀고 만일에 대비하여 평주 가까운 곳에 집결시킨 유주수비병의 무력까지 도합 20여만의 대군이였다.
옛 조선의 땅을 모두 수복하려는 고구려의 최후의 진격을 막아나선 후연의 마지막몸부림이였다.
…
후연의 중위
풍발이 실각되게 된 근본원인은 직접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것만이 아니였다. 그와 결탁관계를 이루고있는 고운이 태자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조정의 정쟁에서 밀려난것이 기본원인으로 된것이였다.
명색으로나마 고운을 양아들로 삼았던 연왕 모용보가 죽고 모용성이 왕위에 오르자 고운은 반역의 혐의를 받고 머나먼 외지로 류배갔고 그의 심복들은 모두 벼슬자리에서 밀려나버렸다.
바로 이러한 때 후연내부에서는 화성교의 나머지 무리인 동부, 실위라는 무장들의 반란음모가 적발되였다. 반란은 미연에 진압되였고 이것을 계기로 곧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졌다.
화성교는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있는 비밀결사였다.
사막의 모용선비족이 장성을 넘어 하북땅을 타고앉아 나라를 세우자 그의 지배하에서 신음하고있는 한족내부에서 조직된것이 바로 화성교였다.
화성교는 후연군대의 한족출신 군사들속에 침투하여 자기 영향력을 확대하였는데 화성교의 목적은 모용씨를 멀리 북방으로 내쫓고 하북에 한족의 국가를 세우는것이였다.
주로 군인들속에서만 전파되다보니 화성교는 백성들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고 초기에는 그 인원도 불과 수백명뿐이였다.
화성교의 계률은 매우 엄격하여 하층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 우로 올라갈수록 매우 강하였다.
수천년 중원의 력사는 바로 이러한 민간결사조직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흘러왔다.
우로는 한나라 말기에 있은 장각의 황건농민폭동도 실상은 《태평도》라는 비밀결사로부터 출발한것이며 그 이후시기에 발생된 대농민전쟁의 리면들에는 화성교와 같은 종교의 외피를 쓴 민간비밀결사단체들이 있었던것이다.
이 비밀결사들을 모체로 수십수백만 민중의 집결이 이루어져 나중에는 대농민전쟁으로 발발하게 되는 경우가 드문했다.
화성교는 이렇듯 처음부터 백성들속에 깊이 들어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몇몇 군인들속에만 한한것으로 하여 별로 큰일을 해보지 못하고 자기 존재를 마치고말았던것이다.
그러나 화성교가 제창한 교리의 생명력만은 검질긴것이여서 몇 안되는 숭배자들이 깊숙이 민간에 숨어 포교사업을 진행하였다.
화성교도 처음에는 불교에서 갈라져나온 류파로서 주로 깊고 외진 곳에 자리잡고있는 사원들에서만 이따금 새것을 열망하는 젊은 승려들에 의해 불꽃이 지펴올랐다가 꺼져버리군 하였다.
그런데 이후로 화성교성원들속에 고구려사람들의 후손들이 망라되기 시작하였다.
이민족을 내쫓고 한족의 국가를 세운다는 뚜렷한 목적을 교리로 내세워도 한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있는 화성교안에 고구려사람들의 후손들이 들어오는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당시 하북에 거주하고있는 고구려사람들의 후손들이란 고구려에서 연나라에 포로로 붙잡혀온 그 자손들과 고구려 옛 유주지역에 거주하고있는 사람들 혹은 고구려에서 죄를 짓고 피신해간자들의 후손들이였다.
아마도 고구려의 후손들은 고구려와 적대관계에 있으며 자기들의 처지를 무참히 짓밟은 연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화성교에 동조하였을수 있었다.
하여튼 그들이 가입하면서부터 화성교는 두개의 류파로 갈라져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그 하나는 한족의 정통성을 내세우는 한족위주의 화성교와 다른 하나는 고구려사람들의 자결을 지지하는 류파였다.
이번에 고구려와의 전쟁때 혼란된 내부모순을 리용하여 반란을 일으킨것은 거의 모두 고구려사람들의 후손들이였다.
동부와 실위 두사람 다 고구려출신 무장들로서 연나라가 료서에서 고구려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리고있는 소용돌이속에 수하의 무력을 발동하여 반기를 들었던것이였다.
반란은 불행하게도 측근부하들의 변절로 진압되였다.
그리하여 동부는 반기를 든 그 전장에서 죽고 실위는 북위로 도망쳐갔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후연의 조정내부가 발칵 뒤집히고 나중에는 그 여파가 고구려사람의 후손인 고운에게까지 닥쳐왔다.
그렇지 않아도 세력균형이 아침저녁으로 뒤바뀌는 후연의 조정이라 고운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고 멀리 외진 곳으로 류배길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런 형세에서 고운과 친교가 깊고 그의 수족처럼 지내던 풍발도 례외가 될수 없었다.
하여 풍발은 병권을 내놓고 업군태수로 내려가게 된것이였다.
업성은 전연시기에 수도성으로 한때 번성했던 대도시였다.
그러던것이 세기를 이어오면서 전쟁의 참화를 입어 황페해졌었다.
후연국과 더불어 재건되여 도시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그 황량함을 모두 털어버린것은 아니였다.
그래도 한때는 전연의 수도로 위엄을 떨치던 곳이라 교통이 발달되여있고 황하의 지류를 끼고있어 풍발에게는 업성이 전혀 절망할 고장은 아니였다.
가슴속에 커다란 야망을 잠재우고있는 풍발로서는 업성이 때를 기다리는데는 안성맞춤한 곳이기도 했다.
고구려와 전면전에 들어간것만큼 후연은 모든것이 어수선했다.
전국각지에서 군사들을 긁어모아 평주, 유주계선으로 진출시킨것으로 하여 치안이 약화되고 도처에서 비적들이 들끓었다.
거의 해마다 진행되는 전쟁으로 령락할대로 령락해진 백성들은 류랑민이 되여 무리로 떠돌았고 가물에 흉년이 들어 들에는 아무리 휩쓸어도 먹을것이란 찾아볼래야 찾아볼수가 없었다.
거기에 역병까지 때없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죽고 병들어죽고 비적들에게 맞아죽었다.
어디라 할것없이 길에는 죽은 사람들의 시체들로 차넘쳐 발들여놓을 자리조차 없었으며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는 나날이 더해만 갔다.
후연의 백성들은 2중3중으로 가해지는 수탈에 빈껍데기만 남았다.
원래 이민족인 모용선비족의 가혹한 착취와 략탈을 항시적으로 겪고있는데다가 국가기구라는 거대한 치차가 끊임없이 돌아가며 악착하게 고혈을 짜내고 또 짜내고있었던것이다.
거기에 빈번히 일어나는 전쟁은 차마 눈뜨고 바라보기 어려운 비참한 현상을 만들어내군 하였다.
더는 살래야 살수가 없는 백성들은 무리를 지어 들고일어났다. 말그대로 후연은 멸망을 눈앞에 두고 허덕이고있었다.
조정내부의 권력싸움은 또한 후연의 멸망을 가일층 앞당기고있었다.
업군태수 풍발은 지금 관사에서 부하들의 보고를 받고있었다.
업군 각지에로 내보냈던 부하들이 민심의 동향을 수집해다 풍발에게 보고하고있었다.
풍발은 본래 무관인지라 정치란 식자를 으시대는 선비출신의 문관들이 붓장난이나 하는것으로 여기고있었다.
사나이라면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 죽백에 남는 큰 공을 세워야 한다고 단순하게만 생각해왔었다.
어려서부터 군무에 종사하며 수십여년간 혈전장을 수없이 헤쳐온 풍발로서는 별로 무리가 아닌 생각이였다.
그러나 이번에 조정의 정쟁에 휘말려 병권을 내놓고 업군태수로 내려오면서 풍발은 관내 백성들의 생활상을 직접 보게 되자 세상을 대하는 인식이 달라지게 되였다.
정사를 잘하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 일은 단순한 붓장난이 아니라 백성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굶주림을 자기의 굶주림으로 여길줄 아는 청백한 관리만이 할수 있는것이라고 생각하게 된것이였다.
백성이야 어찌되든
착한 정치를 펴면 착한 백성이 있기마련이며 백성이 배부르면 나라가 흥한다.
병권을 내놓고 업군태수의 직을 맡게 되면서부터 풍발은 차츰 다른 인간으로 변모되기 시작했다.
풍발은 업군태수가 되여 세상을 밑바닥부터 들여다보는 법을 배웠던것이다. …
《이젠 다들 물러가거라. 혼자서 쉬고싶구나. …》
이런 말로 부하들을 물리치고는 몹시 피곤한듯 안석에 몸을 깊이 묻으며 두눈을 감았던 풍발은 한참만에야 고개를 쳐들고 눈을 떴다.
다들 물러가버린줄 알았는데 운가라는 충실한 심복부하가 여전히 한본새로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꼈다.
《물러가라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풍발이 짜증을 내는데도 운가는 쉽게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상전의 령을 거역하면서까지 남아있는것으로 보아 긴히 할 말이 있는 모양이였다.
방안에는 그들외에 딴 사람이 없건만 운가는 마치 누가 엿듣지나 않는가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상전에게 바싹 다가서며 소곤거렸다.
《
밤새껏 문초를 들이대여 오늘 새벽녘에야 토설을 받아냈소이다. …》
운가가 이런 놀라운 소리를 전하는데도 풍발은 글을 읽는 선비처럼 아무 동요도 없이 태연히 듣기만 하였다.
운가는 상전의 귀에 입을 가져다댔다.
《…그자들의 토설에 의하면 승상이
《그게 뭐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그러느냐. 내가 병권을 내놓았으니 그자들의 눈초리도 좀 늦구어지겠지. …》
말은 태연하게 하였으나 풍발의 두눈은 무섭게 번뜩이고있었다.
《그래서 말씀올리는것인데 태자전하께서 요구하신 일은 당분간 뒤로 미루어두셨으면 하오이다.》
《태자전하의 요구란 화성교의 힘을 빌려 조정안의 간신들을 쓸어버리자는것이겠지?…》
《예, 물론 화성교의 힘이 지금 깊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여 그 힘을 빌리면 태자전하의 뜻을 이룰수는 있으나 그 무리의 대부분이 고구려사람들의 후손이라 자칫하면 우리 연나라가 고구려의 손에 넘어갈수도 있소이다.》
풍발은 부하의 말을 들으며 허리에 찬 장검을 버릇처럼 어루만지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전에 만났던 수뢰음사의 주지 말이다. 지광대사라고 불렀던가?…
태자전하를 돕는 대신 자기들은 바라는것이 없다고 그가 말하지 않았는가. 고구려를 반대하지 않는 정권만 선다면 무엇이든 적극 도와나서겠다고 말이다. …》
《그자의 감언리설에 속아넘어가서는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연나라와 고구려는 백년숙적이 아니오이까?》
운가가 상전의 태도에 와뜰 놀라 이렇게 부르짖는데 풍발은 혀를 끌끌 찼다.
《왜 이리 어리석으냐. 리해관계만 맞는다면 어제날에 칼을 겨눈 적수라도 손을 잡아야 하느니라. … 지금 우리가 처한 형편에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히 판단해야 한다.》
《
화성교에 잠입한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진은 유주에 뜻을 두고있다고 하오이다.》
운가는 여전히 제 생각만 고집했다.
《유주자사로 있다가 진나라에 의해 그 땅을 빼앗기고 두눈까지 잃었다니 그로서는 그럴수밖에…
하여튼 이 일은 서둘러 결정할 일이 아닌것 같구나. 네 뜻을 헤아려 생각을 좀 해보겠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풍발은 이런 말로 부하를 물리치고는 깊은 생각에 잠기였다.
과연 고구려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가? 아니면 운가의 말대로 이일을 뒤로 미루어야 하는가. …
운가의 우려도 전혀 그른것은 아니였다.
만일 고구려사람들이 깊이 침투한 화성교의 힘을 빌어 정변을 단행한다면 그들이 조정을 장악한 다음에 무엇을 요구할지 모르는 일이였다.
풍발은 고구려사람들과 직접 칼을 맞대고 싸워본 사람이였다. 그 과정에 죽을지언정 꺾이지 않는 그들의 기질을 잘 알게 되였으며 고구려사람들의 용맹과 기개에 탄복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풍발이 하평을 수중에 거둔것도 바로 이러한 리유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군사를 일으켜 부패한 조정을 뒤집어엎고 고운을 내세워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고 작정하니 우려되는것도 없지 않아있었다.
풍발의 깊은 사색을 부하가 들어와서 깨뜨렸다.
《
풍발의 기색은 어느새 사납게 이지러졌다.
병권을 빼앗고 업군으로 쫓아버리다싶이 내려보낸것이 불과 1년도 못되는데 무슨 일이 있어 조정에서 칙사를 내려보냈단 말인가?!
풍발이 명색상으로나마 칙사를 맞으려 평복을 관복으로 갈아입는데 칙사일행이 안에 들어섰다.
칙사를 맞이한 풍발은 그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조정에서 칙사로 내려온자는 후연왕족의 한 성원이며 북방전선의 총지휘자인 평주자사 모용귀의 동생 모용선이였다.
더우기 모용선은 고운, 풍발과 대립된 승상 모용가의 심복으로서 풍발과는 지금까지 전혀 상종이 없었던것이다.
풍발은 짐짓 태연한 기색으로 모용선일행을 맞아들였다.
《미리 전갈을 띄웠더라면 지경밖까지 마중나가는건데 이렇게 관사에서 맞아들인다고 욕많이 해주시오.》
모용선은 거만하게 고개를 젖히고 풍발이 권하는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천하를 종횡무진하던
《뭐 별로 하는 일이 없으니 갑갑하기도 하오. 허나 이렇듯 몸이 편안하니 별로 속을 쓸 일도 없고 해서 슬슬 사냥이나 나다니고있을뿐이요.》
풍발의 무뚝뚝한 대답에 모용선은 랭소를 흘렸다.
풍발은 모용선의 거만한 태도에 화가 치밀었으나 내색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을 붙였다.
《헌데 여기 업군에는 어인 일이요?》
모용선은 뒤에 있는 심복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모용선의 심복이 누런 비단으로 싼 물건을 들고 다가와 탁우에 조심히 내려놓고 물러가버렸다.
《풀어보시오.》
모용선이 거듭 재촉해서야 마지못해 비단보자기를 헤치던 풍발의 손이 떡 굳어져버렸다.
전선
《이… 이건 무슨 뜻이요?》
《조정에서는
풍발은 모용선의 피둥피둥 살찐 낯짝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보나마나 고구려군의 진격에 평주가 위험하니 자기를 다시 등용하여 전선에 내몰려는것이였다.
필요할 때는 살이라도 베여줄듯 하다가도 필요없다고 생각하면 가차없이 제거해버리는것이 조정에 틀고앉아있는 권력자들의 심리인것이다.
풍발은 이가 갈리는듯 하여 저절로 주먹을 부르쥐였다.
풍발의 속마음을 알리 없는 모용선이 흡족한듯 입을 가볍게 놀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평주로 밀고들어오는 고구려군을 격퇴하고 고구려태왕을 사로잡는다면 천하를 놀래우게 될것이요. …》
《하하하!…》
갑자기 풍발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조정에서 이렇게까지 날 신임해주는줄 미처 몰랐소그려. …》
영문도 모르고 따라웃던 모용선은 풍발의 기색이 차츰 험악해지자 곧 입을 다물었다.
《언제는 고구려와 내통했다는 감투를 씌우더니 전선이 위태해지니 이젠 날 거기에 밀어넣어?》
풍발은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벼락같이 소리쳤다.
모용선은 풍발의 기세에 밀려나 뒤걸음치며 두서없이 중얼거렸다.
《조… 조정의 명령을 받았으니 이달중에 군사를 일으키길 바라오.
모용선은 이런 말을 내뱉고는 혼빠진 놈처럼 달아나버렸다.
풍발은 침울해진 낯색으로 돌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에는 모용선이 두고간
풍발은 노호하여 검과 인장이 놓여있는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조정의 령대로 고구려군과 싸우러 출전할것인가, 아니면 조정의 명령에 불복하여 벼슬을 내놓고 물러설것인가?!…
풍발은 신음소리를 내며 두눈을 꾹 감았다.
이때 풍발의 심복인 운가가 또다시 들어왔다.
《
《난 지금 너의 보고를 들을 경황이 못되니 밖에 나가있거라.》
풍발은 지친듯 한 어조로 괴롭게 중얼거렸다.
운가는 머뭇거리다가 풍발의 귀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풍발이 자리를 차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하… 하평이 돌아왔단 말이냐?》
운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한순간의 놀라움이 사라져버리자 풍발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고운을 따라간 하평이 어떻게 업성에 나타났는가.
그때 고운이 하평을 곁에 두겠다고 하기에 풍발은 더 거절하지 못하고 물러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림치에서 헤여진 이후로는 감감 무소식이더니 불쑥 눈앞에 나타난것이다.
소문에는 하평이 화성교 성원들과 래왕이 잦다고 하였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고구려사람인 하평이 화성교에 무관심하지 않을것이였다.
고운의 실각과 함께 자취를 감춘 하평이 난데없이 업성에 나타난것을 어떻게 대할것인가?!
풍발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무릎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뜻밖에도 하평이가 업성에 나타난 원인을 깨달았던것이다.
하평은 고구려의 유주자사였던 진을 찾아 업성에 온것이였다.
…
한낮이 되여 업성에 들어선 하평은 사뭇 긴장을 늦추지 않은채 사방을 날카롭게 둘러보며 천천히 걷고있었다.
그는 이미 업군의 태수가 풍발임을 잘 알고있었다.
하평의 이번 행적은 풍발이 알아서는 안되는것이였다.
하평은 그동안 진의 행적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진을 만나 아들 맹광의 소식이나 전해주자던 생각이 점차 후연에 있는 고구려사람들과 손잡고 옛 조선의 땅을 수복한다는 의지로 굳어졌다. 하여 하평은 3년세월 동분서주하며 유주-평주지역에 고구려사람의 후손들로 이루어진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고구려군의 진격에 맞추어 후연의 통치지반을 뒤엎을 많은 일을 해놓았다.
그 과정에 전 유주자사 진의 화성교 성원들과도 줄이 닿아 이렇듯 업성으로 찾아오게 되였던것이다.
하평은 혹시 풍발의 수하에서 안면을 익힌자들과 맞다들가싶어 삿갓을 깊숙이 눌러쓴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길을 걸었다.
한낮의 더위로 축축하게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는 저자로 통한 큰길우에 올라섰다.
역시 한때 대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라 이런 흉년에도 사람들은 넘쳐날듯 붐비였다.
큰길로는 손수레를 끌고 달려가는 인부들이 길을 메웠는데 각이한 민족, 종족들이 터져나갈듯 비비며 이 속을 오가고있었다.
아직 저자거리에 미치지도 못했는데도 길 량옆에는 사창가들이 쭉 늘어서서 목청을 돋구며 손님들을 청하고있었다.
흉년으로 하여 길가에 버려진 아이들이 수두룩하다보니 매매가 흥하여 사창가에 팔아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대낮에도 공공연히 부모가 자기 딸의 머리에 꽃을 꽂고 길가에 나와 서있는 판이였다.
심지어 쌀 한되, 호떡 여라문개에 사람이 사고팔리기도 하였다.
이통에 살고난것이 바로 노예상인들과 사창가의 뚜쟁이들이였다.
대체로 땅을 잃고 류랑하는 농민들이 떼를 지어 이런 도시들에 밀려들기마련이라 그들에게서 헐값으로 자녀들을 사서는 아직 나이도 차지 않은 아이들에게 노예로동과 매춘을 강요하고있었다.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것은 관리들의 폭정이요, 관리들의 폭정뒤에는 항상 이런 부류의 인간쓰레기들이 붙어다니기마련인것이다.
하평은 사창가주변에서 서성거리는 거지아이들과 머리에 꽃을 꽂고있는 연약한 처녀애들의 병색이 도는 얼굴들을 둘러보며 괴롭게 한숨을 내쉬였다.
지난날에도 늘 보아오던 광경이지만 왜서인지 이번에는 한숨이 저절로 나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던것이다.
언제면 후연백성들도 안정된 생업을 하며 근심걱정없이 살 날이 올것인가.
저자거리에 못미처 오른쪽사창가옆 골목길로 접어든 하평은 한참만에야 출입문을 찰흙으로 누렇게 칠한 집앞에 멎어섰다.
열려진 문안으로 자그마한 마당이 들여다보이는데 코잔등털이 기다랗고 눈섭이 누런 수개가 벌떡 일어나서 영악스레 짖어댔다.
안마당으로 향한 문이 바시시 열리더니 아낙네의 까만 눈이 반짝이다가 사라져버렸다.
잠시후에 기골이 장대한 중년의 사나이가 주인다운 걸음새로 나와섰다. 그는 손짓으로 개를 쫓고나서 하평의 차림새를 의아한듯 아래우로 훑어보았다.
《누굴 찾으시우?》
하평은 주인인듯싶은 사나이의 퉁명스러운 물음에 대답도 않고 성큼성큼 다가서더니 소매안에서 자그마한 단검을 꺼내여 보여주었다.
주인사나이는 짐짓 선하품을 하며 하평의 손에 든 물건을 슬쩍 곁눈질하고는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어디에서 오시는 길이요?》
《유주에서부터 오는 길이네.》
그제서야 주인은 하평을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해빛이 들지 않아 침침한 방안에는 이미 두명의 사나이가 앉아있었다.
하평은 웃자리에 앉은 사나이가 중의 복색을 갖추고있는것에 눈길을 보내였다.
나이는 하평과 비슷해보이는데 눈매가 날카로와 례사 중같아보이지 않았다. 그의 곁에 앉아있던 젊은 무사풍의 사나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허리에 찬 장검에 손을 얹고 어느새 하평의 뒤에 붙어섰다.
집주인이 중차림새의 사나이에게 귀속말로 무어라고 속살거리자 그자는 알았다는듯 시선을 들어 하평을 훑어보았다.
《유주에서부터 이미전에 연통이 있었소. 그런데 지광대사를 만나서는 무얼하시려우?》
《한사람을 찾고있소.》
하평이 무뚝뚝하게 말하였다.
《그대가 고구려사람이란 말을 들었는데 어째서 화성교에 들어오라는 권고를 뿌리쳤소?》
중은 두눈을 감고 념주를 매만지다가 이렇게 물었다.
《난 그러한것에 흥미가 없소. 단지 지광대사가 옛 유주의 연군태수 자형이란 말을 듣고 그를 찾아왔을뿐이요.》
중은 날카로운 눈을 들어 슬쩍 하평을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광대사를 만나서는 어찌하려우?》
하평이 응대가 없이 묵묵부답이자 중은 처음으로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직접 만나서 말하겠다?… 그럼 하나만 더 물읍시다. 지광대사를 만나보면 알아보시겠소?》
하평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였다.
중은 그제서야 끙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하평과 마주섰다.
앉아있을 때는 미처 몰랐으나 이렇게 마주하고보니 체격이 우람한것이 하평이보다 더욱 기골이 장대해보이였다.
중은 하평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고는 뜻밖에도 이런 말을 내비치는것이였다.
《이제 보니 그대의 얼굴을 잘 알겠군. 내가 바로 지광이요. 아, 참 그때는 연군태수 자형이였지. 난 그대가 예전에 영무
…
밤이 깊어 하평은 지광대사로 불리우는 고구려의 전 연군태수 자형의 뒤를 따라 수뢰음사라는 산속의 절로 올라갈수 있었다.
수뢰음사는 산골짜기의 절치고는 하평이 보기에도 몹시 큰 사원이였다. 이렇게 깊고 외진 산골짜기에 큰 사원이 자리잡고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하평이였던것이다.
7세기 이전에 중원땅과 고구려 등에 전파된 불교는 소승불교였다.
이 시기에는 아직까지 불교의 영향력이 그리 크지 못하여 넓고넓은 중원땅에서도 불교를 믿는 사람이 불과 수십만명정도밖에 못미치고있었다.
비록 중원을 거쳐 고구려에 전파된 불교이지만 신자수에 있어서는 고구려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것은 영락태왕의 아버지인 고국양왕이 독실한 불교신자였다는 사정에도 기인되는것이였다.
고국양왕은 불교를 국교로까지 선포하려다가 병으로 죽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었다.
고국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영락태왕은 불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아버지의 유업을 지켜 전국각지에 사원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불교를 국교로까지 내세우려던 부왕과는 달리 영락태왕은 고구려의 토착신앙을 더 숭배해왔지만 한편 당시 많은 백성들의 의식속에 뿌리박은 불교교리를 리용하여 통일위업을 한층더 앞당기려는 생각으로 불교를 장려하였다.
우선 그 일환으로 수도인 국내성에 왕실전용의 대사원을 건축하였을뿐아니라 지금 새로운 수도성으로 일떠서고있는 평양에 통일성업을 바라는 9개의 대사원을 건설하게 한것이였다.
고구려뿐아니라 백제와 신라에도 불교가 널리 전파되여 수많은 사원을 가지고있었다.
당시 중들은 맹목적인 포교뿐아니라 많은 인원이 국가권력안에 침투되여있거나 또한 학문과 무예를 깊이 습득하여 명성을 떨치기도 하였다.
삼국시기에는 일부 중들이 황실과 유력한 조정귀족들속에 뚫고들어가 국사에까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와 반면에 고구려, 백제-가야, 신라보다 인구수에 있어서나 령토가 방대하기 그지없는 중원에서는 새로운 교리가 빨리 침투되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이러저러한 교리들과 결합되여 다른 종교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일단 이러한 방벽을 뚫고들어가 향촌의 토착신앙과 결합된 불교교리는 그것을 포교하는자의 활동에 따라 수많은 류파로 갈라지기도 하면서 검질기게 생명력을 부지하기도 했다.
하도 령토가 광대하고 각 지방마다 언어와 풍습이 다른데다가 동란을 맞을 때마다 각이한 종족, 민족들이 서로 뒤섞여 혼잡을 일으키는 중원의 정세는 이루 헤아릴수 없는 각종 토착신앙과 종교교리가 혼탕된 잡교들을 배출하군 하였다.
이보다 후세시기에는 불교가 한족사람들뿐아니라 중원이라는 대륙에서 살고있는 수많은 다민족성원들에게 정신령역에서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지만 4세기말~5세기초의 중원에서는 불교뿐아니라 갖가지 혼탕된 수백, 수천개의 교리가 서로 보이지 않는 혈전을 치르고있었다.
또한 불교교리가 전파되는 과정에 그것이 차츰 토착화되고 부단히 변모되면서 각이한 류파를 낳았고 여러 류파들사이에 정통성을 내세우는 싸움까지 벌어지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러한 사정으로 하여 인적없는 깊은 산골에 웅장하게 일떠선 대사원을 보고 하평이 놀라는것도 무리가 아닌것이였다.
수뢰음사에 들어선 하평은 이곳 중들의 차림새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례사 중들과는 달리 승복우에 갑옷을 걸쳤고 무예조련을 하는 모양인듯 손에 창검을 들고있는것이 살기가 풍겼던것이다.
겉모양만 중의 차림새를 하였을뿐 전란을 겪은 무사들이나 다름없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교리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형색이였다.
하평의 의혹을 지광대사가 가셔주었다.
《저들은 모두 고구려사람들이요. 수뢰음사에만 해도 수백을 헤아리지. … 하북에는 이 비슷한 곳이 여러개나 되는데 우린 앞으로의 모든 일들과 거사를 위해 수십여년간 준비해왔던것이요.》
《그 거사라는것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선의 옛땅을 고구려에 되돌리는것이요. … 자, 가십시다. 진자사가 기다리고있을거요.》
지광대사는 하평의 의혹어린 물음에 시무룩이 웃고나서 돌아서며 범상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들은 불당을 두개나 에돌아 사원뒤마당에 나섰다. 하평은 자형이 연군태수답게 진을 도와 이 모든것을 준비한것에 대해 속으로 감탄하였다.
하평은 죽은줄로만 알았던 유주자사 진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였다.
하평은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라앉히고나서 앞서가는 자형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말해주시오이다. 진자사님이 어떻게 그 사지판에서 구출되셨소이까?》
자형은 하평의 물음에 한참동안 한마디 말도 없이 하늘만 바라보고섰다가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불타는 유주에서 적의 창검에 두눈을 잃은 진을 구출해낸것은 자형이였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진을 업고 간신히 유주를 빠져나온 자형은 갈곳이 없어 여기저기 헤매이다가 하북지방에 끌려와있는 고구려의 후손들의 도움을 받아 업군에 발을 붙이게 되였다.
업군은 일찌기 도성으로 번창한 곳이라 포로로 붙잡혀온 고구려사람들의 후손이 많이 살고있었다.
자형은 진과 함께 고구려로 돌아가고싶었으나 그럴 처지가 못되여 하는수없이 업성 가까운 산속 절에 은거할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진이 조정의 간신들의 모함을 입고있는 처지였기때문이였다.
또한 자형의 지극한 정성으로 의식이 돌아선 진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은 리유도 있었다.
진은 유주를 잃었을뿐아니라
자기를 보증할수 있는 영무를 잃었고 삶의 기둥인 아들과 딸마저 생사가 묘연했다. 그에게서 남은것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육체는 이미 두눈을 잃은 페인의 몸이 되였고 수십여년간 고구려를 위해 혈전장을 달리며 쌓아올렸던 그 모든 자부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던것이다.
진에게 남은것이란 오직 죽음앞에서도 꺾이지 않는 강철같은 의지와 굴하지 않는 고구려사람의 정신력이였다.
진은 비록 페인의 몸이였지만
자형은 진의 의지에 감복하여
진의 의지는 드팀이 없었다.
그것은 고구려가 조선의 옛땅을 모두 되찾도록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싸우는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한다는것은 가능보다 불가능이 더 우세했다.
멸망한 동진을 대신하여 다시 일어선 후연이 고구려를 타고앉으려고 련이어 침략의 불을 질렀던것이였다.
또한 백제가 대국이 되려는 야심밑에 고구려를 배반하고 반기를 들었으며 이 기회를 노려 거란을 비롯한 서북방의 유목종족들도 고구려의 령토를 엿보게 되였다. 고구려는 말그대로 적에게 사방으로 포위되였다.
하지만 진은 포기할수 없었다.
반드시 고구려가 다시한번 대지를 박차고 일어나 사면팔방에서 덤벼드는 적을 단매에 족치고 조선의 옛땅을 모두 되찾으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안고 한치한치 목적을 향해 힘겹게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때 진에게 밝은 서광이 비쳐들었다.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영락태왕이 천하를 종횡무진하며 고구려의 하늘에 일시 드리웠던 시련의 검은구름을 헤쳐버리고 대고구려의 영광을 떨치고있었던것이다.
고구려에 침략의 발을 들여놓은 여러 나라와 민족들이 영락태왕의 위엄앞에 련이어 굴복하고있는 소식을 대할 때마다 진은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이제 얼마 안 있어 영락태왕은 옛 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마지막발걸음을 내짚을것인즉 진은 그때를 앉아서 기다릴수 없었다.
그동안 아글타글 애써 마련한 력량을 가지고 료서로 진격해오는 영락태왕을 맞이하리라 결심하였다.
비록 페인의 몸이 되였지만 진은 자형의 도움으로 고구려의 사내대장부답게 강한 의지가 비껴있는 정신력 하나로 많은 일을 해놓았었다.
자형과 함께 침략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해 화성교라는 한족의 비밀결사를 리용하여 후연의 통치를 뒤집어엎을 기반을 마련해놓았다.
또한 현재 후연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있는 여러 세력들과 줄을 맺고 변방의 여러 무장들과도 기맥이 통하게 되였다.
진의 목적은 드팀이 없었다. 그는 고구려가 옛 조선의 땅을 모두 수복할뿐아니라 적국인 후연을 뒤집어엎음으로써 서북의 영원한 완정을 이루려는것이였다.
자형의 이야기를 듣고 하평은 진의 완강한 정신력과 억센 신념에 머리가 숙어졌다.
어느덧 그의 눈앞에는 20년전 불타던 유주가 떠올랐다.
불과 몇 안되는 군사들과 함께 어깨겯고 적을 향해 맞받아나가는 유주자사 진과 영무
불바다, 피바다를 헤치며 진의 아들 맹광을 안고 유주를 탈출하던 그때가 떠오른것이였다.
그런데 이렇듯 죽지 않고 살아있는 진을 만나 름름하게 성장한 아들 소식을 알려줄수 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섰다.
하평은 진의 앞에서 떳떳하였다. …
하늘은 비구름에 덮였다. 이어 채로 친것 같은 보드라운 보슬비가 뿌려졌다. 한치 앞도 가려보기 힘든 어둠속에서 간신히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바위들을 용케 발더듬하며 수뢰음사까지 다달은 풍발은 거칠게 숨을 톺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와삭와삭 풀덤불을 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운가와 두명의 무사가 튀여나왔다.
《어찌 되였느냐?》
《예견했던바 그대로 하평은 지광과 함께 절안으로 들어갔소이다.》
《네 수하에 있는 무사가 몇이냐?》
풍발은 거밋거밋하게 륜곽만 드러내고있는 아아한 절벽우를 올려다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자들의 뒤를 은밀히 따르느라 다섯밖에는…》
운가는 의아한 시선으로 풍발을 바라보았다.
《그럼 됐다. 모두 데리고 내려가거라. 절대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되겠다.》
운가는 수뢰음사대문쪽으로 발을 내짚은 풍발의 앞을 두팔로 벌리고 막아섰다.
《아니되옵니다. 여긴 수상쩍은자들이 작당하고 모여있는 곳이라 혼자서는 위험하오이다. 내 수하들을 시켜 모시겠으니 우선 병력을 불러올린 후에 들어가는것이 어떠하오이까?》
풍발은 히쭉 웃고나서 운가의 어깨를 두드렸다.
《걱정할게 없다. 누가 뭐 싸운다더냐. 하평이는 수년전 단신으로 내 진영에 들어와서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설사 저곳이 백만군사의 진영 한복판이라도 내 두려워하겠느냐.》
풍발이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자 운가는 놀라서 사색이 되여버렸다.
《그럼
풍발은 앞을 막아선 운가를 가볍게 물리쳤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을 맞히겠는지 빗나가겠는지는 두고보아야 할것이다.》
한편 지광의 뒤를 따라 진이 거처하고있는 암자를 찾은 하평은 다 낡아빠진 암자를 둘러보며 지광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분명 여기가 유주자사님이 거처하고있는 곳이요?》
지광은 아무 대꾸도 없이 불상 하나를 밀어내였다.
사람의 선키보다 두배는 됨즉한 큰 불상이 가볍게 움직이더니 그 자리에 비밀굴이 나타났다.
작은 홰를 하나 찾아든 지광이 허리를 굽히면서 먼저 굴속으로 들어갔다. 지광을 따라들어간 하평은 불빛이 번지르르 비치는 동굴벽을 주의깊게 둘러보았다.
예상했던과는 달리 굴속은 건조해보이는데 점점 더 나아갈수록 좁아지는것이 아니라 주위가 넓어지고있었다.
하평의 의혹을 지광이 가셔주었다.
《수뢰음사는 이 자연동굴과 뒤산으로 통하게 되여있소. 이곳은 유사시 승려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준비해둔것이요.》
《그럼 진자사님은 이 굴속에 계시는것이오이까?》
《계속 가보면 알것이요.》
갑자기 그들의 앞이 환하게 드러났다.
하평은 자기가 굴을 빠져나온줄 그제서야 알았다.
동굴밖에 자그마한 공지가 펼쳐졌는데 그 공지 한가운데 암자가 솟아있었다. 공지 좌우켠은 깎아지른듯 한 벼랑이였다.
그들은 암자안으로 들어섰다.
하평은 불상을 마주하고앉은 사나이의 뒤모습을 보았다.
하얗게 세여버린 머리가 어깨를 덮었는데 쇠약해진 등과 어깨를 보니 도무지 유주자사 진이라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광이 공손히 합장한채로 머리를 숙여보이자 사나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음산한 어조로 속삭였다.
《데려왔는가?》
《예, 그때 영무
지광의 대답을 들은 사나이는 마치 깊은 동굴속에서 메아리로 울려나오는듯싶은 웅글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하평이라면 내가 모를리 없지. … 그때 나를 포박했던 무사일게야. 얼굴에 칼자리가 있었던 기억이 남아있네.》
《정말 진자사가 옳소이까. 저는 이날 이때까지도 진자사가 최후의 싸움을 치르던 모습을 잊을수 없소이다.》
하평은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넨 설사 한낮에 나와 마주하고있다 해도 알아볼수 없을것이네. 나의 육체는 이미 20여년전 유주에서 죽어버렸네. 남아있는것이란 오직 령혼 하나뿐이지. … 넋이 남아서 유주로 부르고있을뿐이네.》
진은 여전히 담담하고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영무
《스스로 괴롭히지 말아주소이다. 누가
하평은 격하여 소리치듯 말하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지광으로 자처하는 옛 연군태수 자형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버려 암자안에는 두사람의 숨소리만 높아갔다.
마침내 하평은 호흡을 가라앉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한참만에야 진은 꿈에서 깨여난듯 탄식조로 입을 열었다.
《참으로 원통하오. 민족의 꿈을 이루는 대격전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듯 괴롭소. 이미 사그라져가는 육체인지라 영락태왕의 성업을 받들지 못하는것이 안타깝소.》
《어찌 진자사님은
하평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자사님의 아들 맹광이 살아있소이다. 살아있을뿐아니라 천하가 다 아는 장수로 자랐소이다. 저도 얼마전에야 들었는데 맹광이 고구려의
선봉부대를 이끌고 연나라를 공격하고있다고 하오이다.
하평은 백발이 내리드리운 진의 어깨가 소리없이 잔물결치는것을 보고는 뒤로 물러서버렸다.
꿈에서도 바라지 못했던 충격을 받은 고구려의 옛 군사가 격정의 눈물을 흘리며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비가 그쳐버렸는지 밖에서는 풀벌레의 단조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듬성듬성 널려있는 비구름사이로 점점이 새벽별들이 나타나 반짝이였다.
하평은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지광대사가 암자로 들어와 진의 등뒤로 다가가 무어라고 속삭이는것이였다.
진은 이젠 자기를 완전히 다잡은듯 례의 차겁고 바위같은 자세로 돌아가버렸다.
《들여보내게.》
지광이 돌아서서 손짓하자 몸집이 우람한 사나이가 천천히 불당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불당안에 옛 유주자사 진의 웅글은 목소리가 음산하게 울려퍼졌다.
《내가 그대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부른것은 중대사를 론하기 위해서요. 모두에게 부합되는 일이니 서로가 의심하지 말기를 바라오.》
찰나에 방금 불당으로 들어선 사나이와 하평의 시선이 동시에 부딪쳤다.
하평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상대는 수년전에 헤여졌던 후연의 중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