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국강상의 전설
제 1 장. 아침노을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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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년 겨울 드디여 백제는 행동을 개시했다.
이또가야국의 왜선봉무력이 신라에 상륙한것을 계기로 류혈적인 전쟁이 발발한것이였다.
왜의 구노국왕 사사히꼬는 왜군의 수장이 되여 백제의 신라병탄전략의 일선에 섰다.
백제의 아신왕은 사사히꼬에게 신라를 점령하면 수백리 령토를 봉지로 주겠다고 약속하고서 그를 이번 전쟁에 끌어들였다.
사사히꼬는 이번 전쟁을 자기의 야망을 실현시킬 좋은 기회로 여기고 적극 동조해나섰다.
백제의 무기로 무장하고 군량을 비롯해서 일체 전쟁물자를 보급받는 왜군은 실제에 있어서 잡군이 아니였고 백제군과 대등한 능력을 가지고있는 정도였다.
더우기 이번 전쟁에 참가하는 왜군과 가야군의 대부분 군사들이 지난 고구려와의 전쟁에도 참가하여 선봉에 섰던자들이기때문에 전투경험이 풍부했다.
백제 아신왕은 신라를 병탄하기 위한 전쟁에 3년간의 공력을 들이였다. 한산의 치욕을 씻겠다는 그의 전쟁광증은 도를 넘어 후연과의 사악한 거래가 이루어졌고 나중에는 바다건너 왜인들까지 끌어들이는 망동도 서슴지 않게 되였다.
아신왕과 백제통치층은 이번 신라와의 전쟁에 저들의 운명을 걸고있었다. 신라를 병탄하고 수중에 거둔 후에 더더욱 커진 국력으로 고구려와 마지막대격전을 치르는것이 아신왕과 백제통치층의 야심이였던것이다.
바야흐로 정세는 백제가 바라는대로 흘러갔다.
중원에서 령토팽창에 미쳐버린 후연이 돌연 고구려와의 국경지대에 무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한것이였다.
물론 후연이 군사를 동원시킨데는 고구려를 공략하려는 모용선비족의 야망이 짙게 깔려있었다.
이무렵 북위와의 전쟁에서 크게 이긴 후연은 이 기회에 고구려를 치려고 료서에 수십만의 대군을 집결시키고있었다.
후연은 고구려와 백제가 전면전을 치르는 경우 전쟁을 일으켜 고구려를 타고앉을 음흉한 흉계를 가슴에 품었던것이다.
고구려의 하늘에 또다시 시련의 불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백제의 통치층은 이것을 자기들이 다시 일어설 좋은 기회로 여기고 드디여 고구려를 공격하기 위한 전쟁의 한 고리로 신라에 대한 불의의 침공을 감행하였다.
아신왕의 전략은 이러했다.
먼저 왜왕 사사히꼬가 이끄는 왜-가야군이 신라의 전선을 돌파하고 곧장 신라도성으로 진격하게 한다. 때를 맞추어 백제 남부지역에서 비밀리에 수년간이나 준비해둔 1만명의 정예병(그 대부분이 가야에서 망명한자들로 무어졌다. )이 좌장 연우의 지휘하에 남부변경지대에로 뚫고들어가 왜군의 진격에 맞추어 신라도성을 공략한다.
신라도성을 공략하면 혼란된 정세를 타서 신라변경연선에 배비되여있는 백제의 3만대군이 총공격을 벌려 신라 전령토를 타고앉는다.
이것이 백제 아신왕이 오래동안 구상한 전략이였다.
백제는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고 믿고있었다.
왜군과 가야군을 앞세워 불의의 침공을 감행한다면 신라군의 전선이 혼란될것이고 도성까지 큰 저항이 없이 진격할수 있다는것이였다.
그것은 신라군의 태반이 고구려와 백제와의 변경지대에나 배비되여 있을뿐 가야의 접경지대에는 소수의 무력만이 방어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신라는 이렇듯 가장 중요한 고리를 놓치고있었다.
백제가 우려하는것은 신라와의 전쟁에 고구려가 개입하는것이였다.
하지만 백제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변경지대에 배비되여있는 무력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고구려도 서뿔리 군사를 신라에 보내지 못할것이라고 타산하고있었다.
더우기 후연과의 전쟁을 눈앞에 둔 때라 아무리 담대한 영락태왕이라고 해도 무력을 돌려 신라를 도와주지 못할것이였다.
왜군과 가야군을 선봉에 내세우면 우선 불의의 침공으로 큰 성과를 이룰수가 있었고 그렇게 되면 백제로서는 크게 피를 흘리지 않고도 야망을 이룰수 있을것이였다.
속국이라 하지만 언제 불복할지 모르는 가야나 왜가 이번 전쟁으로 약화될것이니 전쟁이 끝나서도 백제에 계속 의존할것은 불보듯 명백한것이였다.
아신왕은
불의에 가야방면에서 기습공격을 들이댄 가야-왜군은 련전련승하여 전쟁개시 보름만에 신라의 도성인 서라벌 이백리 남쪽지방까지 진격하였다. 백제남부변경지대에서 전선을 뚫고들어간 백제 좌장 연우가 이끄는 별동대는 불의의 기습과 신라군의 약점을 리용하여 맞다든 신라 남부군의 주력을 섬멸한 뒤 파죽지세로 서라벌을 향해 다가서고있었다.
신라군의 전선은 사실상 붕괴되였다.
그래도 한때는 가야의 수백리 령토를 쟁탈하고 고구려의 강철무기로 군력을 보강하여 강군이라 일컫던 신라군이 이렇듯 수적으로 렬세한 가야-왜군의 공격에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것이였다.
아무리 백제군의 무기로 무장하고 3년간의 은밀한 준비를 거친 강군이라고 해도 가야-왜군이 이렇듯 전쟁을 일으킨지 보름도 못되여 신라도성까지 쳐들어가게 된것은 전적으로 당시 신라조정의 부패와 혼란때문이였다.
신라는 위기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도성의 겹겹한 방어선이 련이어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져내리고 신라군은 싸움마다 련전련패하였다.
전쟁이 개시되여 한달도 못되여 신라의 수도가 위협을 당하게 되자 당황망조한 신라통치층은 곧 왕성의 편전에서 국방회의를 열고 시급한 대책을 론의했다.
우선 도성의 코앞까지 왜군의 선봉부대가 들이닥친것만큼 도성의 방위를 굳게 하고 패주하여 물러선 신라군의 전렬을 정비하여 싸움을 치르어야 했다.
다음 백제변경지대에 배비되여있는 수비군을 도성방위를 위해 불러들이며 백제군의 대규모적인 침공을 예견하여 고구려에 지원병력을 요구하기로 하였다.
신라 나물왕은 청병사신단을 고구려에 급파하는 한편 전령들을 각 방면으로 내보내여 신라의 모든 병력을 도성으로 불러들이였다.
한편으로는 도성 남쪽 백여리되는 곳에 실전배비해놓은 경군에게 전선을 포기하고 도성으로 퇴군하여 방위전을 벌리도록 하였다.
경군의 주력군으로 하여금 도성앞에까지 왜군을 바싹 끌어들여 타격을 가한 뒤에 각지의 증원군과 협동하여 전전선에 걸쳐 반격을 벌리자는것이였다.
신라경군은 신라군의 최정예로서 고구려의 무기로 무장하고있는 무력이였다.
신라경군이 전선에서 물러서자 예측한대로 왜군의 선봉대가 살기등등하여 뒤쫓아왔다.
신라경군은 도성앞까지 왜군을 바싹 끌어들인 후에 곧 죽을둥살둥 모르고 뒤쫓아온 왜군을 사납게 덮쳤다.
선봉에 섰던 구노국왜병들은 천여명의 희생을 내고 패하여 물러섰다.
뒤따라가던 가야-왜군은 전쟁개시후에 있은 첫 패전에 사기를 잃고 진격을 멈추지 않을수 없었다.
승전이후 신라조정내에서는 기세가 바싹 올라 이제는 고구려에 청병사신단을 보낸것자체가 수치스러운것이라는 목소리까지 울려나오게 되였다. 신라귀족들은 이제 신라경군이 각지에서 올라오는 지방군과의 협동하에 가야-왜의 주력군을 섬멸한다면 반드시 전쟁에서 이길것이라고 확신하고있었다.
허나 백제가 주도하는 이번 전쟁에서 주력은 사사히꼬가 이끄는 가야-왜군이 아니라 백제 좌장 연우의 별동대였다.
연우가 이끄는 별동대는 가야-왜군을 신이 나서 뒤쫓고있는 신라의 마지막기둥인 경군의 배후를 향해 조용히 진격을 개시했다.
연우의 행동은 무자비하고 단호했다.
그는 부대를 둘로 갈라 한개 부대는 제가 직접 이끌고 가야-왜군의 선봉대를 압박하는데 여념이 없는 신라경군의 배후를 들이치기로 하였고 다른
한 부대는 전사한 진무
왜군의 선봉부대를 격멸하여 사기충천하였던 신라의 경군은 갑자기 야밤을 타서 배후를 습격해온 연우의 별동대에 의해 괴멸에 가까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별동대는 오랜 세월 연우를 따라다닌 아라출신군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백제군중에서도 가장 전투력이 강한 최정예의 부대였다.
매 군사들은 오직 연우 한사람에게만 복종하고 그 어떤 사리사욕보다 아라를 부흥시킨다는 하나의 광신적인 리념에 충실했다.
그에 비해 신라의 경군은 무장도 좋았고 강군이라는 평판을 들을만치 고구려군의 전법으로 조련을 받았으나 군사들의 준비정도가 아라군사들보다 현저하게 미약했다.
연우가 이끄는 백제별동대의 맹렬한 타격을 견디지 못한 신라경군은 뿔뿔이 와해되였다. 연우의 별동대와 가야-왜의 주력군은 신라의 도성앞에서 서로 합세하였다.
출발지점이 달랐던 백제의 별동대와 가야-왜군이 각기 두개 방면에서 신라군의 방어선을 뚫고 도성의 코앞까지 진격하여오자 신라는 멸망의 문어구에까지 몰리게 되였다.
변경지대에서 불러온 지방군의 주력마저 서라벌로 오던 길에 백제별동대의 매복기습을 받아 큰 손실을 입고 더이상 진군할수가 없었다.
별동대와 가야-왜군이 무력을 모두 합치니 무려 2만의 대군이였다.
신라의 도성은 철통같은 포위속에 들었다.
신라가 그토록 믿었던 최정예의 경군마저 패하여 도성으로 쫓겨들어왔으니 성이 함락되는것은 시간문제였다.
연우는 신라 도성을 공격하는것을 서두르지 않았다.
신라군을 혼란시키고 도성에로 진격하는것이 그에게 부과된 임무인것이였다.
백제가 바라는대로 신라변경지대가 텅 비게 되였으니 이제 아신왕이 직접 3만대군을 이끌고 전 전선에 걸쳐 총공격전을 펼칠것이였다.
연우가 때를 맞추어 도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면 전쟁은 끝나는것이다.
백제는 신라를 수중에 장악하면 령토가 배로 늘어날것이고 가야는 신라에 빼앗겼던 옛땅을 모두 찾고 아라국을 종주국으로 하는 제국을 세울것이였다.
백제의 동족상쟁에 동조하여온 연우에게 있어서 어렵고 힘든 고비가 이제 겨우 끝을 보게 된것이였다. 하지만 연우는 도성을 함락시키고 신라왕의 목을 베기 전에는 결코 안심할수 없었다. 백제의 대군이 진격해올 때까지는 어떻게 하나 지금의 전과를 지켜내야만 했던것이다.
연우는 도성을 포위한지 열흘만에야 왜군병영으로 찾아갔다.
언제부터 왜군의 수장 사사히꼬를 만나 치희의 생사를 따져물으려고 하였으나 지금까지 형편이 여의치 않아 미루어왔다.
어제야 비로소 한산성에서 전령이 당도하였다. 다음달 초엿새에 백제의 3만대군이 진격해오니 그때까지만 신라의 주력을 묶어두라는 아신왕의 전갈을 가지고 왔다.
하여 연우는 제가 직접 가야군과 왜군이 그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도록 신칙하기 위해 돌아보기로 작정한것이였다.
연우가 지금까지 왜군의 수장 사사히꼬와 대면하길 미루어온것은 그가 천성적으로 사나운데다가 교활한 왜인들과 상대하기를 싫어했기때문이였다.
연우가 설사 치희에 대해 따져물어도 사사히꼬가 옳은 대답을 해줄리 만무하였다.
전쟁이 끝나면 직접 배를 타고 왜땅으로 건너가 치희를 찾아볼 결심이였다.
연우가 신라 도성남쪽에 진을 치고있는 왜군병영에 다달은것은 정오가 채 되지 못해서였다.
왜군병영으로 가까이 다가간 연우는 그만 아연실색하였다.
복장으로 보아 구노국의 왜병인듯 한자들이 둘, 셋씩 모여앉아 화토불에 젖은 옷가지들을 말리고있는데 분명 민가에서 략탈해온것이 틀림없었다. 병영주변 야산에서는 다른 한무리의 왜병들이 닭이며 돼지따위의 집짐승들을 도살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거의 대다수의 왜병들이 둘, 셋씩 짝을 지어 이리저리 쏘다니는것이 전쟁을 치르는 군대라기보다 비적들같았다. 이런자들을 선봉에 세우고 전쟁을 치른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이마살이 찌프러졌다.
지금까지 왜군이 이룬 전과가 정녕 하늘이 도운것이지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연우는 무거운 생각에 잠겨 묵묵히 왜군병영으로 말을 몰아갔다.
이때였다.
병영앞 야산의 굽인돌이에서 수백명의 민간인들이 이쪽으로 돌아나오는데 남녀로소가 모두 한겨울인데도 람루한 의복을 걸치고있는 모습들이였다.
아마 겉옷은 왜병들에게 략탈당한듯 하였다.
연우는 아연하여 말을 멈추어세웠다.
수십명의 왜병들이 무지막지하게 신라백성들을 어디론가 몰아가고있었다.
연우는 지나가는 왜병을 붙잡아 저들을 어디로 데려가는가고 물었다.
왜병은 연우의 복장을 흘끔 살펴보고는 주눅이 든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사사히꼬왕의 명령으로 본국에 호송한다고 하였소이다.》
《뭐야?!》
연우의 눈꼬리가 사납게 치째져올라갔다.
《죄없는 백성들을 붙잡아 구노국에 끌고가서는 무엇한단 말이냐?》
왜병이 우물거리는데 화가 치밀어오른 연우는 놈을 거칠게 밀어던지고 급히 앞서간 대렬을 따라잡기 위해 말을 내몰았다.
다급한 말발굽소리에 놀란 대렬은 흠칫 머물러섰다가 다시 천천히 앞으로 움직여나갔다.
《어서 걷지 못해? 꾸물거리는 놈은 목을 벨테다. …》
왜장이 잔뜩 상을 찌프리고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멈칫거리는 포로대렬을 향해 소리쳤다.
《섯거라, 나는 백제
왜장을 따라잡은 연우는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눅잦히며 낮게 말하였다.
《우린 그렇게 못하오. 포로들을 놓아주려면 사사히꼬왕의 승인을 받아오시오.》
연우를 사납게 노려보며 왜장이 거칠게 소리쳤다.
《뭐야?!…》
분노가 치밀어오른 연우가 검을 뽑아들자 왜병들도 맞받아 창을 내대였다.
연우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왜병들을 향해 말을 내몰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그를 제지하였다.
《연우
연우가 뒤돌아보니 작달막한 왜장이 말을 몰아 다가오고있었다.
흉맹하게 이지러진 얼굴의 눈섭우에 붙은 콩알만 한 사마귀가 유표한 왜장이였다.
연우는 그가 수년전에 시마의 집에서 만났던 사사히꼬임을 알아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이시오. 오늘은 또 이렇게 한전장에서 같이 싸우게 됐구려.》
사사히꼬가 이렇게 말을 붙여오며 다가서자 연우는 검을 거두고나서 입을 열었다.
《무엇때문에 죄없는 백성들을 붙잡아가는거요? 모두 제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시오. 》
사사히꼬는 교활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무슨 소릴 하는거요? 백성들을 포로로 붙잡아 왜땅으로 끌고가는것이 무도한 일이 아니란 말인가?…》
사사히꼬는 별안간 표독한 표정으로 돌아가 거칠게 소리쳤다.
《
화가 치밀어오른 연우가 입을 열려는데 별안간 사사히꼬가 이런 말을 던졌다.
《
사사히꼬가 갑자기 꺼낸 이 말들은 이상하게도 연우의 가슴을 찔러 수족을 꼼짝 못하게 묶어놓는것이였다.
연우는 허탈감에 사로잡혀 더이상 대꾸할 힘을 잃었다.
사사히꼬는 차거운 비웃음을 흘리며 손으로 포로대렬을 가리켰다.
《저기 저놈들은 신라인들보다 대부분이 고구려인들이요. 여기 독산가까이에 있는 고구려인마을을 습격하여 붙잡아온것이요.
《우린 모두가 동족이요. 나는 고구려인들과 원쑤가 아니요.》
연우가 격한 어조로 소리치는데 사사히꼬는 여전히 비웃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태연하게 되받았다.
《그럼 무엇때문에 죽기로 싸운단 말이요? 내 알기엔
사사히꼬는 빈정거리듯 말을 내뱉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연우는 가까스로 분노를 참으며 말을 돌려세웠다.
포로행렬이 다시 움직이였다.
연우에게 막연한 기대를 가지였던 고구려사람들은 절망감에 고개를 수그리고나서 터벅터벅 왜인들에게 끌려갔다.
연우는 죄책감에 어서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싶었다.
사사히꼬를 꼼짝 못하게 눌러놓지 못한 자기
옆으로 지나치는 포로행렬속에서 인상깊은 눈매를 가진 처녀가 그의 시선을 꼭 끌어잡았던것이다.
어딘가 치희의 검은 눈을 상기시키는 처녀의 크고 아름다운 눈이 연우의 시선을 끌어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저 처녀를 어디서 보았던가.
치희에 대한 나의 감정이 착각을 일으킨것은 아닌지. …
죄의식과 혼란된 심정으로 묵묵히 말을 몰아가는 연우의 뇌리속에서는 그 처녀의 검은 눈이 줄곧 떠나지 않고있었다.
10여리나 줄곧 채찍을 가하여 그곳을 떠나 말을 달리던 연우가 별안간 말을 멈추어세웠다.
그 처녀다! 산동의 림치성에서 보았던 바로 그 처녀다.
분명 림치의 객관에서 고구려옷을 입고 밤길을 가던 처녀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히 밟혀오는것이였다.
처녀의 곁에는 풍발의 객으로 지낸다던 얼굴에 칼자리가 유표한 고구려사나이가 있었지?…
연우의 생각은 착잡해졌다.
어떻게 되여 그 처녀가 림치를 떠나 고구려땅도 아닌 여기 신라에 오게 되였을가?! 그 어떤 운명이 처녀와 나를 하나로 엮어놓았는지도 모른다. …
연우는 그 처녀가 자기 앞길에 어떤 운명을 드리우게 될것인가를 알지 못한채 괴롭고 쓸쓸한 심정으로 본영을 향해 말을 몰아갔다.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며 감색의 저녁노을이 연우의 머리를 가리웠다. 저녁해는 짧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