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부. 국강상의 전설

제 1 장. 아침노을은 붉다

5

 

국내성에서 경강을 건너 서쪽길로 이백리를 걸으면 신도현이 있고 신도현을 지나 다시 백여리를 걸으면 소패하(청천강)의 진포나루가 있었다. 진포나루에서 또다시 강을 건너 오른쪽길로 곧바로 내려가면 평양성으로 직통하는 길목이요.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옛날의 옥저땅으로 나가게 된다. 하여 신도현에서 소패하의 진포나루까지는 하루길이요 강을 건너 안성을 통과하여 곧장 내려가면 평양성까지는 사흘길이였다.

그러니 자연히 진포나루는 안성과 가장 가까운 길목이고 또 여기를 통과하여야 평양성으로 통하는 직선길에 나서게 되므로 다른 나루들보다 훨씬 번화하고 행상인들이 들끓었다.

진포나루의 웃쪽에 위치한 신도현은 도성과 가까운것으로 하여 일찌기 상업이 발전한 고구려 대도시들중의 하나였다. 남쪽지방에서 륙로로 들어오는 공물과 장사짐이 신도현을 걸쳤다가 다시 도성을 향해 가는것만큼 옛적부터 상업이 발전하여왔다.

이런 전통이 있어 신도현은 고구려의 교역장으로, 상업도시로 발전하여 문물의 자유로운 류통이 마음껏 실현되게 된것이였다.

전 유주자사 진은 바로 이러한 신도현에서 출생하였었다.

 

진포나루와 강건너편의 신곡포는 장사배들과 행상들의 무리가 사방에서 그칠새없어 풍물과 민심이 언제나 새롭고 활기로왔다.

마침 어제가 추석이여서인지 나루터는 몹시 부산스러웠다.

거기에 신라로 돌아가는 큰 상인행렬까지 들이닥쳐 혼잡을 이루었고 국내성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관리들의 봉물짐들이 강변에 산같이 쌓여 차례를 기다리고있었다.

나라의 신분제도가 몹시 엄한지라 귀족들과 관리들은 저희들끼리 따로 모여앉아 도강을 기다렸다.

아무것도 가릴것 없는 행상인들과 하호들 그리고 말갈족을 비롯한 북방 유목민들은 귀족들보다 썩 아래쪽에 둘러앉아있었는데 제법 큰 저자가 어느새 펼쳐져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귀족들이 다 건너간 다음에야 차례가 될것이니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막걸리라도 한보시기씩 걸쳐야 한다는 생각이 없을수 없는것이였다. 더우기 어제 추석도 쇠였으니 그 기분이 남아있어 곧 흥겨운 술판이 벌어졌다.

저자라고 해야 술장사, 떡장사, 엿장사 같은 허드레음식판이 대부분이였고 눈치빠른 장사치들이 등에 지고있던것을 풀어놓아 잠간사이에 펼쳐진 장마당이였던것이다.

아래사람들이 잘 어울려노는데 귀족들이 그냥 높직이 앉아 이것을 구경만 하고있을리 또한 만무하였다.

기분도 기분이거니와 가을을 맞은 진포나루의 풍경 또한 이채로와 귀족들과 관리들도 하나, 둘 술판을 펴놓기 시작한것이 어느새 온 나루터가 왁작 떠드는 놀음판으로 변해버렸다.

도강이 시작될 때마다 사람들이 번갈아 바뀌면서 신분의 높고낮음이 없이 마구 뒤섞여버렸다.

제법 눈을 굴릴줄 아는자들은 제꺽 멍석을 둘러쳐놓고 남정들속에서 몹시 내우하는 녀인네들을 받아들여 비싼 값으로 허드레음식까지 팔았다. 특히 잔술을 파는 간이술청앞에 사람들이 모여앉아 왁작 떠드는데 여느때없이 많은 사내들이 모여들고있었다.

허드레음식치고는 음식이 맛있고 술맛 또한 좋아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양이였다. 서로 술을 돌려마시며 한담이 오가는데 어깨가 쩍 벌어져 힘꼴이나 쓸것 같은 사나이들이 돗자리를 덥석덥석 밟으며 술자리사이로 들어섰다. 모두해서 셋인데 삿갓을 깊숙이 눌러썼고 허리에 검을 한자루씩 찬것이 살기가 몹시 풍겼다.

《술 좀 주오.》

눈찌가 사납게 번뜩이는 사나이가 주모에게 말을 던지고는 뒤에 선자들에게 돌아섰다.

《모두 여기서 기다리자. 도강을 하려면 어차피 여기 진포나루로 올것이다.》

《뭘 드실려우?》

주모가 범상한 사람같이 보이지 않는 사나이들의 험상궂은 모습에 주눅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 아무것이나 내오게.》

거칠게 말을 던지고는 멍석 한옆에 가 털썩 궁둥이를 붙인 그들은 주모가 내준 술을 한종발씩 들이키고 곁따른 구운 고기를 안주삼아 씹으면서 수군수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래 부하들을 배치하였느냐?》

《예, 어디라 할것없이 이 주변을 물샐틈없이 둘러싸게 했소이다. 맹광이 분명 여기로 나온다면 꼭 걸려들것이오이다.》

《여기서는 이목이 많아 처치하기 곤난하다.》

《헤… 만약을 대비해 강 저쪽에도 무사들을 배치하였지요. 맹광이 강을 건느면 우리도 뒤따라 건너 과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갈밭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하겠소이다.》

우두머리사나이는 아무래도 안심이 안되는지 고개를 저었다.

《실수해서는 안된다. 놈이 무예가 뛰여난데다가 필경 뒤따르는자들도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을게다. 그러니 단번습격으로 일을 마쳐야 한다.》

《여부가 있겠소이까. 그놈에게 망신당한것이 어디라고… 반드시 놈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겠소이다.》

그들은 다름아닌 전 신성태수 마고와 그의 심복부하 아민이였다.

아민은 술 한잔을 더 청하고는 제 주인에게 수군거렸다.

《태수님, 헌데 맹광이놈이 진짜 이곳을 지나가오이까? 혹시 동쪽길로 길을 잡든가 아니면 경강에서 배를 타고 곧장 평양성으로 내려갔다면 어찌하오이까?》

마고는 손에 든 술을 입안에 부어넣고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이런 어리석을데라구야… 왜 그렇게 우둔하냐. 맹광이 누구의 아들이라는것을 벌써 잊었어? 어제가 추석이니 분명 아비의 고향인 신도현을 거쳐 여기로 나올것이다. 놈이 갈데란 여기밖에 없다.》

아민은 어줍게 웃으며 제 상전을 잔뜩 추켜올렸다.

《백전로장이 다르오이다. 그럼 걱정말고 여기 앉아계시오이다. 소인은 부하들을 신칙하고 돌아오겠소이다.》

아민이 몸을 일으켜세우려는것을 마고가 손을 뻗쳐 어깨를 잡았다.

《가만, 네 생각에는 어째서 대가어른이 방주를 내달라고 하였겠느냐?》

《글쎄올시다. 혹여 무예가 뛰여나다는 말을 듣고 호위무사로 쓰려는것이 아니겠는지…》

마고는 얼굴을 이지러뜨리고 급히 도리질을 하였다.

《분명 고부진은 무엇인가 큰일을 획책하고있는것 같다. 여느때없이 맹광을 죽이겠다는 우리의 청을 순순히 받아들인것도 그렇고 이번에 오랑캐출신의 방주란 놈을 우리 손에서 앗아간것을 보면 심상치 않다.》

《맹광을 죽이라고 승낙한것은 맹광이 고추대가어른의 일을 은밀히 조사하고있다는 소문과도 관련되여있을것이오이다. 제가 직접 손을 대는것보다 태수님의 청을 받아들이는것이 더 쉬운 일이 아니겠소이까. 하여 미추가 술좌석에서 얼결에 흘린 기밀을 우리에게 알려준것이라고밖에 달리 생각되지 않소이다.》

아민은 잠시 말을 끊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상전의 귀에 입을 바싹 가져다댔다.

《그것보다도 저는 영무장군의 아들 미추에게 제가회의 수장직을 넘겨준 고추대가어른의 행동이 리해되지 않소이다. 권력과 부귀를 얻기 위해서라면 지금껏 손에 피를 적셔온 고추대가께서 어찌 수장직을 순순히 내놓았는지…》

《흥, 그것이 바로 그 늙은이의 책략이라는것이다. 영락태왕이 즉위하여 제가평의회가 유명무실해지자 명색뿐인 제가회의 수장직을 제꺽 벗어놓은것이지. 이 기회에 일월수호당주 미추를 태왕의 곁에서 떼여내서 제편으로 끌어당기려는거야.》

아민은 그제야 깨도가 된듯 고개를 끄덕이였다.

《확실히 고추대가어른의 술수가 뛰여나오이다. … 이번 인사이동을 통해 왕당군의 장군이 되려던 미추의 꿈을 깨버리고 그가 자기를 밟고 평양성 태수로 승진한 맹광이놈을 미워하도록 만든 늙은이의 수가 참으로 보통이 아니오이다.》

마고는 대수롭지 않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일석이조인셈이지. … 결국 늙은이의 마수에 걸린 미추가 맹광이 평양성 태수가 되여 신도현을 거쳐 평양성에 가는것을 취중에 내뱉게 되고 또 그 일이 빌미가 되여 고추대가의 거미줄에 단단히 걸린셈이 아닌가. 어쨌든 그 덕에 우린 맹광이놈을 처리할수 있게 되였다.》

부하를 손짓으로 물리친 마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제 맹광을 없애치울 벼르고 벼르던 기회가 되였으나 마음은 어쩐지 개운하지 않았던것이다.

따져놓고보면 한때 제 부하로 있었던 맹광을 이를 갈며 미워하게 된 동기는 자신보다 월등한 맹광의 능력때문이였다.

맹광이 높이 등용되여 마고 자기의 머리우에 올라섰다는 단 한가지 리유로 평생의 적이 된것이라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고구려의 북방군을 통솔하는 신성의 태수로 있으면서 온갖 부귀영화와 권력을 쥐고있다가 끝내는 맹광을 모함하려던것이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이렇듯 숨어다니는 가련한 처지에 굴러떨어지고말았다.

랭철한 리성을 가지고 돌이켜보면 결국은 제 손으로 무덤을 판것으로밖에 해석할수 없었다. 허나 마고는 잘못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기보다 내친 걸음이니 원한과 불안의 화근을 제거하는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굳이 이 길을 택했던것이다.

그러나 막상 칼을 든 이 시각 무언가 석연치 않은 생각이 자꾸 갈마드는것이였다. 평소에 부하들에게 몹시 차겁고 린색한 고부진이 어째서 이번에 맹광을 제거하는 일에 그토록 발벗고 나서는지, 그 진의도가 무엇이겠는지…

맹광이 유주자사로 있은 진의 아들이라는 단 하나의 리유때문일가?!

진과 고부진이 수십여년전에 어떤 악마의 인연이 있어 그 아들을 해하려고 한다고밖에 해석할 길이 없었다.

마고가 이렇듯 혼탁된 사색을 더듬고있는데 아민이 헐떡거리며 술청에 들어섰다.

《태수님, 맹광이 나타났소이다.》

진포나루에서 강을 건는 맹광은 밤길을 재촉하여 평양성으로 향한 직통길에 들어섰다. 주변은 끝을 알수 없는 무연한 갈밭이였다.

맹광의 뒤로는 불과 두명의 호위무사만이 간소한 짐을 지고 따를뿐이다. 맹광은 무거운 기분으로 말을 타고 가고있었다.

그는 평양성으로 가기 위한 길을 우정 신도현을 거쳐 내려가는 길을 잡았다. 신도현은 아버지의 고향이였다. 어쩌면 자기자신도 신도현에서 태여났는지도 몰랐다. 하도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어 맹광은 자기가 태여난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 누구도 맹광에게 고향이 어딘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유주에서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행하게 전사한 아버지의 모습을 상기해보려고 애썼으나 뚜렷하게 그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맹광을 자식처럼 키워 내세워준 하평의 말에 의하면 진은 당시 조정의 간신들의 모해로 억울한 루명을 썼다고 했었다.

그것이 진을 죽음으로 몰아간 계기였고 고구려는 수많은 피를 흘려 얻은 유주를 잃었다고 하였다.

맹광은 반드시 아버지가 못다한 일을 이루어야 했다.

자기 손으로 간신들의 모해로 빛을 잃었던 가문의 영광, 부친의 명예를 되찾아야 하였다.

고구려백성들의 가슴속에 아직도 영웅으로 남아있는 떳떳한 아버지를 두고도 굳이 신분을 감추어야만 하는 서러움이 가슴속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잡고있었다.

맹광은 지금까지 진의 아들답게 영락태왕의 웅지를 받들어 수많은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워 명성을 드날렸다.

하지만 아직은 아버지 진의 위치에까지는 올라서지 못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새기고 옛 조선의 땅을 모두 되찾는 길만이 맹광이 진의 아들임을 밝히는 길인것이다.

옛 조선의 땅을 모두 찾고 아버지 진의 령전을 찾아갈 때 반드시 상이와 함께 가야만 했다. 비록 상이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맹광은 자기 눈으로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믿을수가 없었다.

어디에선가 상이가 반드시 살아있을것이라는 한가닥 희망을 가슴에 묻어두고 지금까지 줄곧 달려온 맹광이였다.

맹광은 고구려가 안정을 되찾으면 천하를 발칵 뒤져서라도 누이동생 상이를 꼭 찾을 결심을 가슴속에 품고있었다.

맹광의 일행이 정체불명의 괴한들의 습격을 받은것은 삼경이 지났을무렵이였다.

맹광일행이 안성을 지나 과천을 가까이하였을 때 갑자기 길 량옆의 으슥한 풀숲에서 화살이 수십여대 날아왔다.

앞서가던 호위무사가 온몸에 여러대의 살을 맞아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고 뒤에서 따라오던 무사는 다리에 살을 맞았다.

불의의 공격이라 손쓸 사이가 없었다. 맹광은 어깨에 살을 빗맞자 말등에서 뛰여내렸다.

맹광은 쓰러진 부하에게 달려갔다.

《도독님, 자객의 습격이오이다. 어서 피하시오이다.》

자기를 두고 피하라고 간청하는 부하를 부축하여 일어섰다.

함성이 일어나더니 길 좌우켠에서 무장한 괴한들이 뛰여나왔다.

얼핏 눈여겨보기에도 20여명은 실히 되였다. 달빛에 검날들이 번뜩이였다.

맹광은 부하와 서로 등을 기대고 검을 뽑아들었다.

불의의 습격이 성공해서인지 자객들은 여유작작한 태도로 접어들고있었다.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것은 맹광이네였다.

피를 흘려 맥이 진하기 전에 포위를 뚫고 빠져나가야 했다.

《야-앗!》

맹광이 먼저 자객들을 공격했다. 그는 크게 발걸음을 떼여 뛰여넘기를 거듭한 뒤 맨 처음 맞다든자의 가슴을 베고 량옆에서 동시에 검을 후리는자들의 사이를 허리를 굽혀 빠져나왔다.

부하도 둘을 베고 맹광과 반대켠으로 빠져나갔다.

적의 진영이 두패로 갈라졌다.

맹광은 얼마간 달리다가 급히 몸을 홱 돌리며 헐떡거리며 부딪칠듯 가깝게 뒤따라오는자를 미처 손쓸새없이 베고나서 땅을 차며 몸을 솟구쳤다. 자객들의 머리우를 날아넘어 일정한 거리에 발을 붙이면서 몸을 굴리여 목적한자의 코앞까지 굴러가 검으로 밑에서부터 우로 쑤시면서 뛰쳐일어났다.

무리를 헤치고 빠져나갔던 맹광이 다시 돌아서서 반공격을 해오니 자객들은 급히 량옆으로 헤쳐져버렸다.

부하도 이미 반대켠에서 검을 휘두르며 맹광을 향해 마주 달려왔다.

맹광은 량옆의 적을 베고 정면으로 달려드는자의 가슴을 일직선으로 힘껏 찔러 쓰러뜨린 다음 부하와 다시 등을 맞대고 섰다.

자객들은 순식간에 여덟이나 줄고나니 처음과는 달리 몹시 신중한 태도로 접어들었다.

《조금만 더 견지해라. 이제 한번만 더 놈들의 공격을 격퇴하면 이길수 있다. …》

맹광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채 부하에게 입속말로 속삭였다.

부하는 대답을 못하고 헐떡거리기만 하다가 몸을 지탱하지 못한채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순간 맹광의 가슴은 무너져내리는듯 하였다.

서로 의지하던 부하가 끝내 절명하고말았던것이다.

다리에 살을 맞은데다가 싸움을 치르면서 가슴에 적의 칼을 받은것이였다. 맹광은 이를 으스러지게 악물었다. 어떻게든 싸워이겨야 했다.

맹광은 급히 사방을 둘러보다가 선자리에서 몸을 빙그르 돌리며 거꾸로 잡고있던 검을 바로 쥐고 머리우로 비껴들었다.

공격하기에 아주 좋은 자세였다. 기합을 넣으며 앞으로 달렸다.

맹광이 목적하는 곳은 길 왼쪽에 있는 갈밭이였다.

앞을 정면으로 막아서는자의 배를 베고 뒤에서 달려드는자를 발차기로 차던지고는 갈밭으로 뛰여들었다.

자객들도 함성을 지르며 맹광의 뒤를 따라 잽싸게 흩어져 갈대밭속으로 쫓아들어갔다.

자객들은 갈밭에 들어서서 주춤해버렸다. 맹광의 향방을 알수 없었던것이다.

갈대숲안에서는 오래동안 아무 기척도 없었다.

가을바람에 갈잎이 서로 비벼대며 서걱거리는 소리만이 스산하게 들렸다.

맹광은 서뿔리 움직이지 않고 적이 먼저 움직여오기를 기다렸다.

적은 맹광을 표적으로 삼고있는것만큼 그를 죽이기 위해서라도 먼저 움직일것이였다.

상대적으로 다수인 적과 싸울수록 로출된 위치가 아니라 은페하여 지형지물을 리용하여 싸워야 이길수 있었던것이다.

맹광은 순간적으로 자기를 습격한자들의 정체를 생각해보았다.

고구려왕당의 중리도독인 자기자신을 표적으로 삼았다는것은 상대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도 할수 있었다.

더우기 맹광의 이번 평양행은 그 측근들도 모르는 일이였던것이다.

맹광의 머리에 갑자기 미추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 진과 함께 유주에서 전사하였다는 영무장군의 아들이였다.

영락태왕을 보필하는데서 자기자신과 쌍벽을 이룬다고 믿어왔던 미추가 과연 이 습격사건에 관여했단 말인가.

맹광은 머리속에 자꾸만 불안으로 갈마드는 미추에 대한 의심을 애써 부정했다.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도 미추가 이런 엄청난 사건에 관여할수 있다는 판단이 가지 않았던것이다.

어쨌든 싸워이겨야 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견지하여 적의 정체를 밝혀내야 했던것이다.

갈대가 서걱이는 소리가 들리다가 멎었다. 바람에 불리는 소리는 그 박자가 길고 짧아 불규칙적이지만 사람이 직접 몸으로 헤치는 소리는 걸음과 힘에 맞게 박자가 언제나 규칙적이였다.

맹광의 판단이 옳았다. 코앞에서 땀내가 나더니 검을 잔뜩 겨누어든 자객이 불쑥 솟았다.

이미 노리고있던지라 맹광은 상대가 손쓸새없이 먼저 베고나서 반대방향으로 내뛰였다.

사방에서 부산스레 갈밭을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맹광은 눈결에 번쩍하는것을 본능적으로 허리를 숙여 피하고는 그 방향을 향해 검을 힘껏 후렸다. 부욱하는 소리와 함께 아츠러운 비명이 울렸다. 이어 맹광은 뒤에 나타나 검을 내리치려는자의 급소를 올려차고는 몸을 날려 재빨리 자리를 피하였다.

마고는 비명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무작정 뛰다가 옆에서 누군가의 뛰는 기척이 느껴지자 반사적으로 칼을 들이밀었다.

사람이 쿵 하고 쓰러지는데 멱살을 잡아 쳐들어보니 제 부하였다.

눈에서 불이 일었다. 이제 남은자들이란 불과 몇명 안되였다.

마고는 전술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상대는 하나이고 이쪽은 수가 많으니 갈대밭에서 싸우기에는 아무래도 불리했다.

마고는 움직임을 멈추고 손벽을 쳤다. 그의 주변으로 불쑥불쑥 부하들이 나타났다.

그는 둘을 지정하고 나머지는 아민에게 맡겨 갈밭 저쪽으로 에돌아가 이쪽으로 맹광을 몰아오도록 시켰다.

두명의 부하만 남기고 모두 내보낸 마고는 칼을 쥔 손을 우로 향한 채 먹이감을 향해 다가가는 맹수의 걸음으로 곧장 기여나갔고 다른 두명은 각각 량옆으로 돌아나갔다.

맹광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다렸으나 아무 기척도 없자 자객들이 전술을 바꾸었음을 알았다.

이제는 그냥 앉아서 기다리고있을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함정에 빠진 호랑이마냥 몰이를 당할수 있었다.

맹광은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는 이젠 물러설 곳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칼을 곧추 세운채로 상대편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이윽고 왼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맹광은 꼼짝하지 않고 적이 다가오는데로 칼을 향했다.

그의 팔이 뻗으면 닿을수 있는 곳에서 갈대가 흔들거렸다.

맹광은 몸을 굴리며 상대편이 피하려고 상반신을 훌쩍 일으키려는 찰나에 칼로 아래배를 쑤셨다.

맹광이 벌떡 일어나면서 검을 뽑고 잽싸게 갈대숲을 뛰쳐나가다가 불안한 륙감에 걸음을 멈추는 순간 귀전으로 씽 하며 칼이 스쳐지나갔다. 어떤자가 아마 맹광의 향방을 알수 없어 소리나는쪽을 향해 단검을 던진 모양이였다.

맹광은 땅에 바싹 배를 붙이고 적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순간 정적이 깃들었다. 상대도 근기있게 기다리는 모양이였다.

이미 위치가 탄로났으니 동료들을 기다리는것이였다.

상대가 단검을 능란하게 던지는자이니 서뿔리 접근할수 없기에 맹광은 공지에 검을 꽂아두고 왼쪽으로 조심히 기여갔다.

일은 맹광이 바라는대로 되였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꺼먼 그림자가 불쑥 솟아났다. 량손에 단검을 든자의 모습이였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발볌발볌 소리를 죽여 다가오던 그림자가 문뜩 멎어섰다. 그자가 공지에 꽂혀있는 장검을 보고 잔뜩 긴장했던 손을 떨구는 찰나 뒤에서 벌떡 몸을 솟구친 맹광이 그자의 뒤통수에 떡메같은 주먹타격을 가했다. 맹광의 주먹타격이 어찌나 강했던지 상대의 눈알이 튀여나오고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맹광이 검을 찾아쥐고 일어나는데 댓발자국앞에서 우뚝 일어서는 상대편의 검은 형체가 보였다.

상대는 머리우로 검을 추켜들고 천천히 돌리다가 기합소리를 지르면서 곧장 공격해들어오며 검을 후리였다.

베여진 갈대잎들이 허공에서 날아내려왔다.

맹광은 피하지 않고 곧추 들어오는 칼날을 검으로 막아 흘려보내며 가까와진 상대의 몸을 무릎으로 올려찼다.

쓰러졌다 다시 일어난 상대가 숨을 톺고나서는 다시 재차 공격해들어오며 맹광의 머리를 바라고 검으로 힘껏 후리쳤다.

맹광이 무릎을 꿇는 순간 칼날이 머리우로 지나쳤다.

서로 떨어졌다가 동시에 달려들었다. 갈대가 좌우로 어지럽게 갈라졌다. 상대의 칼이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순간 맹광이 검으로 비스듬히 받아내면서 물러나지 않자 그대로 둘의 몸이 딱 달라붙었다.

서로 맞대고 힘을 주는 칼날에서는 날카로운 쇠소리가 났다. 맹광은 가까운 거리에서 상대방을 노려보다가 그만 깜짝 놀랐다. 적수가 한때 상관으로 있던 신성태수 마고였음을 알아보았던것이다.

《맹광 이놈, 여기가 네 무덤이다. 어디 덤벼봐라.》

맹광은 상대를 알아보자 두눈에서 분노의 섬광을 내뿜으며 재빨리 바꾸어쥔 검으로 마고의 가슴을 찔렀다.

마고가 괴이한 비명을 지르며 비틀거리자 갑자기 맹광의 등뒤에서 갈대들이 술렁거리더니 세명의 자객들이 칼을 휘두르며 뛰여나왔다.

맨 앞장에서 달려드는 아민이 칼로 맹광의 머리를 노리고 힘껏 후려갈기자 맹광은 상체를 휘청 숙여 뒤걸음치면서 거꾸로 쥐고있던 검을 수직으로 홱 돌리면서 내리그었다. 배에서 가슴까지 깊숙이 베여진 아민이 자기가 공격하던 힘에 못이겨 앞으로 기우뚱하는것을 발로 힘껏 내차니 찍짹소리없이 마고를 안고 나가넘어졌다.

맹광의 기상은 맹호를 방불케 했다.

왼쪽에서부터 덤벼드는자의 머리를 발로 힘껏 걷어차면서 뒤에서 덮쳐드는자의 가슴을 검으로 찔렀다.

모두 죽고 더는 달려드는자가 없었다.

《대라. 누가 내 행처를 너에게 알려주었느냐?》

맹광은 죽은 아민을 밀어내고 일어서려는 마고를 발로 밟고 호령했다. 마고는 맹광의 검에 페를 다친 몸이라 괴롭게 딸꾹질을 하면서도 완강하게 머리를 저었다.

《날 죽여라. 죽어 귀신이 되여서라도 반드시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마고가 미친놈처럼 울부짖는 꼴을 조용히 내려다보던 맹광은 그의 가슴에서 발을 내리우고 말하였다.

《그래도 너는 한때 신성의 태수였다. 기회는 없지 않다. 이제라도 개과천선하여 고구려를 위해 몸바쳐싸우겠다면 널 베지 않겠다. …》

마고는 피흐르는 가슴을 부여잡고 악에 받쳐 고함을 질렀다.

《나는 목숨따위는 구걸하지 않겠다. 너와는 정녕 한하늘아래 살수 없으니 어서 베라.》

맹광은 두눈을 감았다. 화살을 맞은 상처에서는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있었다.

밤새껏 치르어낸 싸움에 지칠대로 지친 그였으나 이새로 신음소리를 내고는 검을 번쩍 추켜들어 마고를 힘껏 내리쳤다.

마고는 처절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마지막숨을 톺았다.

맹광은 비틀거리며 갈대들사이를 걷다가 힘이 진하여 그만 쓰러져버렸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아침노을은 유난히 붉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tiger - - coder - 2019-01-04
I will read this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