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1 장. 391년 여름

 

…왕은 18살에 왕위에 올라 영락태왕이라 일렀는데… 위엄과 무공은 온 세상을 가득 덮었으며 옳지 못한자들을 없애치우고 생업을 편안케 하니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넉넉하며 오곡이 풍요하게 무르익었다. …

(광개토태왕릉비문중에서)

 

1

 

때이른 폭우에 불어났던 강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버드나무가지에서 풍겨나는 달짝지근한 향기가 대기중에 떠돌고있었다.

강기슭에는 검푸르고 무성한 참나무잎들이 설레이는데 둔덕을 덮은 소나무수림의 뾰족뾰족한 잎새들은 훈풍에 가볍게 흔들리고있었다.

이랑진 땅우에서는 한낮의 김이 서려올라오는 속에서 봄파종을 한 곡식들이 힘껏 머리를 쳐들고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대지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있어 낮이면 해빛에 번쩍거렸고 비릿하고 씁쓸한 냄새를 멀리에까지 풍기고있었다.

고구려북방의 관문인 신성관하의 버드내마을에서는 저녁이 가까와오도록 메질소리가 끊기지 않고 울려나오고있었다.

메질소리는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야장간에서 울려나왔다.

커다란 버드나무가 서있는 마을공지 바로 옆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야장간에서 여러명의 사나이들이 웃통을 벗어붙이고 가락맞게 쇠를 벼리고있었던것이다.

울바자안에 녹쓴 쇠쪼박이며 보습이며 깨진 가마따위의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발디딜 자리없이 무지를 이룬 야장간안은 밖에서부터 화끈 단 매캐한 단내와 쇠비린내가 풍기는듯싶었다.

한칸짜리 살림방과 조그마한 부엌에 잇대여 지은 야장간은 진흙을 발라 말리운 세 벽만 가리우고 한쪽 벽은 시원하게 터쳐놓아 너렁청한데 그안에서 메질소리가 세차게 울려나왔다.

울안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부엌문에 창호지가 대충 발라져있고 정돈되여있지 않은것으로 보아 살림이 매우 궁색하고 녀인의 손길이 전혀 가지 않은 집이라는게 대뜸 알리였다.

야장간 주인인듯싶은 구레나릇을 보기 좋게 기른 중년의 사나이가 집게로 벼림쇠덩이를 모루우에서 뒤집자 두명의 젊은이가 승벽이 나서 메질을 해댔다.

《비키게. 그렇게 뚝심만 가지고 할 일이 아닐세.》

보다못해 주인사내가 젊은이들에게 핀잔을 주고는 한명에게서 메를 앗아들고서 제가 직접 나섰다.

숱진 눈섭밑에서 두눈이 날카롭고 이전에 전장에 나간 증거인듯 왼쪽볼에 유표하게 칼자리가 나있었다.

그는 하평이였다.

진의 아들 맹광을 안고 불붙는 유주를 탈출한 때로부터 어언 15년의 세월이 흘러왔다.

여기저기 떠돌다가 신성에 발을 붙이고 맹광을 키우면서 지금껏 가정도 없이 홀몸으로 지낸 하평이였다.

하평은 진의 뜻대로 맹광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여왔다.

맹광을 어엿한 장부로 키워 유주에서 전사한 진과 영무의 령전에 떳떳하게 내세울 오직 한가지 일념으로 험악한 세월을 버티여왔던것이다.

하평이 맹광과 함께 자리잡은 버드내마을은 주로 유기쟁이들과 쇠를 다루는 야장쟁이들이 머물러사는 곳이라 하평도 야장일을 하게 되였다.

다행히도 하평이 원래 야장일이 손에 설지 않고 또 칼만 손에 쥐면 나무를 깎아 무엇이나 척척 만들어내는 남다른 재간이 있는지라 생각보다 쉽게 발을 붙일수 있었던것이다.

하평은 야장일의 그 고달픔속에서도 맹광이 하루가 멀다하게 성장하는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군 했다.

맹광에게 틈틈이 글과 무예를 가르쳐주는 일만은 아무리 바빠도 절대로 소흘히 하지 않았다.

맹광이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워 모함을 입은 부친 진의 명예를 회복하고 가문의 명예를 다시 일떠세운다면 죽어도 원이 없는 하평이였다.

지금 맹광은 신성방위군에서 척후장으로 있었다.

그동안 맹광은 여러 전투들에서 눈부시게 특출한 공적을 세워 고구려 북방군 군사들속에서 명성이 드날리였다.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르는 위험한 전장이지만 하평은 서슴없이 맹광의 등을 떠밀어보내군 하였다.

고구려의 남아들은 전장에 나가 싸우다 죽는것을 영광으로 여기고있었다. 더우기 맹광은 아직도 고구려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웅으로 남아있는 유주자사 진의 아들이였다.

비록 진이 모함을 입어 그의 명예에 치욕의 그림자가 던져졌지만 아들 맹광이 스스로 몸을 일으켜 이 모든것을 떳떳이 밝혀내야 할것이였다.

맹광이 뜻을 이루고 몸을 일으켜세우는것은 바로 유주에서 전사한 영무장군의 의지였고 하평자신의 꿈이기도 했다.

하평은 영무의 부탁대로 맹광을 어엿하게 키운 다음 국내성으로 찾아가 영무의 가족을 만나리라 결심하고있었다.

그동안 수십, 수백번이나 국내성으로 가려고 몸을 일으켰다가 주저앉군 하였던 하평이였다.

영무장군은 맹광이또래의 외아들을 세상에 남겨놓았다.

하평은 차마 홀로 국내성으로 영무의 가족을 찾아갈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하평이 맹광을 앞세우고 국내성으로 올라갈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었던것이다. …

하평은 메질을 마치고나서 다 벼린 쇠덩이를 곁에 있는 물통에 집어넣었다. 물통에서는 단 쇠가 치익- 소리를 내며 흰 김이 물씬 서려올랐다. 한바탕 땀을 쏟은 하평은 수건으로 근육이 울끈불끈 솟은 몸을 뻑뻑 문대였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풀무로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숯불에 바람을 불어넣고있던 늙은이가 이가 빠진 입을 벌리고 감탄하듯 말을 꺼냈다.

《허, 자넨 아직 기운이 장살세. … 자넬 대할 때마다 맹광이가 누굴 닮아 맹호처럼 전장에서 펄펄 뛰는지 잘 알겠구만.》

그로 말하면 마을에서는 다들 풀무령감이라고 부르는 옛날에는 젊고 용감한 무사였는데 전장에 나가 다리를 다쳐 한쪽발을 저는 몸으로 지금껏 가족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오는 늙은이였다.

하평이 이곳에 발을 붙이면서 의지할데 없이 혼자 살고있는 로인의 정상이 딱하여 함께 살게 되였다.

그후로는 하평이 야장간을 열고 쇠를 벼릴 때 훌륭한 조력군이 되였으며 누가 먼저 불렀는지 몰라도 마을사람들은 이름보다 풀무령감이라고 부르군 하였었다.

《아저씨두 이젠 늙었구만요. 왕년에 명성이 자자했던 오랜 무사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다 나오다니요. 하늘아래 이 고구려땅에 나와 같은 무사는 수백수천의 수레에 싣고도 남을거웨다.》

가슴이 후련하게 땀을 쏟은지라 하평은 이렇게 롱을 던지며 크게 웃었다.

《자넨 그렇다고 치세. 하지만 자네 아들 맹광이 같은 인물은 내 평생에 보지 못했네. 인물 잘났겠다, 무예가 뛰여나고 힘이 장사겠다, 거기에 전장에서 여러번 큰 공을 세워 사방 천리밖까지 명성이 자자하니 내게 딸이라도 있으면 당장에 사위라도 삼고싶은 심정일세.》

하평은 맹광에 대한 칭찬에 흐뭇하게 웃으며 불길이 펄펄 이는 숯불속에서 시뻘겋게 단 쇠덩이를 집어내였다.

《쇠는 단김에 두드리라구. 그러나 힘이 능사가 아니니 강약을 잘 조절하며 두드리게. …》

단쇠를 모루우에 올려놓고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신칙하고난 하평은 풀무령감이 잡은 풀무손잡이에 손을 뻗쳤다.

《이젠 좀 쉬시우다. 호미나 몇가락 벼리면 다 끝날듯 하니까…》

《그럼 좀 쉬여볼가. … 하긴 밤새껏 쇠를 벼리였으니 이것이면 온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도 남을게야. …》

풀무령감은 하평에게 자릴 넘겨주고 궁금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요즘은 맹광이가 집에 통 오질 않는구만. 일전에는 다들 맹광이가 전장에서 세운 공적으로 승진할것이라고들 하던데 어찌되였는가?》

풀무령감은 이렇게 물어보다가 하평의 얼굴에 한줄기 비껴지나가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고서 사연을 짐작하였는지 탄식하듯 말하였다.

《그 소문이 옳은게로군. 새로 부임된 태수가 능력있는자들을 멀리하고 아첨군들만 모아들인다더니… 언제부터 우리 고구려가 죽음도 두렴없이 용맹을 떨쳐싸운 사람들을 멀리하게 되였는가? 옛날에는 출신에 관계없이 공적에 따라 등용되군 하였는데 지금은 문벌과 배경만을 따지니 이것을 바로잡아야 하네.》

풀무령감이 제김에 격하여 소리가 높아지는것을 지켜보며 하평은 가볍게 웃으며 만류하였다.

《너무 격해지지 마시우다. 잘못된것이야 바로잡아지겠지요. 조상대대로 내려온 고구려의 전통이야 어디 가겠나요? 맹광이는 반드시 제 힘과 능력으로 몸을 일으켜세울것이우다.》

하평은 풀무령감을 안심시키느라 짐짓 태연하게 말하였지만 사실은 속으로 은근히 걱정되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맹광이가 친아버지인 진을 그대로 빼여닮아 천성이 너무도 고지식하고 대가 발라 지금껏 세운 공적에 비해 승진이 빠르지 못한것이였다. 속이 크고 대범한자들에게는 맹광이 자신을 비추어보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로 되겠지만 속이 좁은 작자들은 항상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왔을것이였다.

새로 부임된 신성태수 마고가 바로 그러한 인물로서 국내성의 유력한 문벌귀족출신이라는 단 하나의 리유로 고구려의 북방관문을 책임진 신성태수의 높은 관직에까지 오른자였다.

마고가 신성태수로 부임되여서부터 신성의 군심과 민심이 혼란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고가 부임되자마자 벌린 정사라는것이 고지식하고 대바른 무장들을 이러저러한 부당한 리유를 붙여 떼여내치고 어디서 무능하고 아첨밖에 모르는 심복들을 데려다 앉혔기때문이였다.

마고를 오래동안 따라다니며 섬긴 덕분에 대바람으로 신성의 병력을 총괄하는 현무당주의 자리에 올라앉은 아민이라는자는 싸움에서 비겁하고 아래사람들에게는 매우 조폭하기 이를데 없는자였다.

이자는 군정을 보살필 생각보다도 치부욕에 눈이 어두워 군사들의 료미(봉급으로 주는 쌀)를 잘라내여 제 배나 채웠고 부임되자마자 군기를 세운다면서 공연한 언질을 잡아 애매한 군사를 형틀에 올려놓고 때려죽인것으로 하여 군심을 흉흉하게 하였다.

능력이 부족한자는 자기의 자질에서 빈 공백을 유능한 부하가 메꾸는것을 항상 경계하기마련이다.

자기보다 뛰여난 부하들을 가지게 되면 트집을 잡아 제거하려고 꾀하는것이 속물과도 같은 인간들의 본성인것이다.

바로 아민을 비롯한 무능력한 인간들이 신성의 군정, 민정을 맡게 되면서 민심이 혼란되고 군기가 해이되였다.

남달리 정의감이 강하고 대가 바른 맹광이 아무리 상관일지라도 아민의 행위를 그냥 보고만 있을리 없었다.

맹광은 아민과 여러번 충돌하였다.

하여 맹광은 모처럼 차례진 승진의 기회를 놓치였으며 나중에는 이일로 하여 신성태수 마고와 그의 심복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맹광이 여러 전투들에서 눈부신 공을 많이 세우고 또 군사들속에서 인망이 높기에 아직까지 군직에 붙어있지만 무능력한자들은 항상 그를 제거하려고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하평이 걱정하는것도 바로 이것이였다.

맹광이 언제 어디서 음모군들의 모해를 받을가봐 단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는 하평이였다.

《아니 이보게, 왜 멍청해있는것인가. 혹시 어디가 아픈게 아닌가. …》

풀무령감의 핀잔에 가까스로 깊은 상념에서 깨여난 하평은 풀무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아저씨, 내 아무래도 신성에 다녀와야 할가보오이다. 래일 아침에나 올지 모르니 그동안 야장간을 좀 봐주시우.》

하평의 말에 풀무령감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갑자기 신성에는 왜 가겠다는건가?》

하평은 늙은이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단칸짜리 살림방에 들어가 수수한 평복으로 갈아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그럼 갔다오겠소이다.》

하평은 야장간에 대고 이 말만 던지고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갔다.

차츰 멀어져가는 하평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풀무령감은 왜 그가 급작스럽게 이런 행동을 하게 되였는지 통 갈피를 잡을수가 없어 고개를 흔들었다.

《참으로 하평이 저 사람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거던. …》

이렇게 중얼거리며 돌아서던 풀무령감의 두눈이 커졌다.

야장간 일군으로 고용된 두 젊은이가 메를 내려놓고 건들거리며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풀무령감의 입에서 대바람에 불호령이 터졌다.

《주인이 자리를 뜬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건달을 부리는것이냐? 어서 메를 들지 못할가.》

왕년에 용맹한 무사였던 꼬장꼬장한 늙은이의 호령에 질겁한 젊은이들이 얼른 메를 다시 들고 나섰다.

짱- 짱- 울리는 메질소리를 들으며 풀무앞에 주저앉은 풀무령감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행길쪽을 바라보다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제발 별다른 일이 없이 래일 아침엔 돌아와주게나.》

동구밖을 나선 하평은 신성을 향해 부지런히 길을 다그쳤다.

행길 왼쪽으로는 저녁노을에 감색으로 물든 강물이 흐르는데 오른쪽 등성이우에선 백학이 날아옜다.

하평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는 손채양을 하고서 멀리 앞쪽을 살펴보았다. 그는 쑥이 무성한 밭뚝우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있는 황소며 그옆에 외로이 서있는 달구지, 하루일을 마치고 호미를 허리춤에 지르고 돌아가는 농부들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하평은 여기서 잠시 왜 자기가 갑자기 야장간을 뛰쳐나와 맹광을 만나기 위해 신성으로 떠났는지 그 리유를 곰곰히 되새겨보았다.

혹시라도 맹광의 신상에 그 무슨 화가 미치지 않았을가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순간적인 충동으로 하평을 떠밀어보냈던것이다.

요새 맹광이 버드내의 야장간집으로 왔다간지도 달포가 넘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지금까지 군무에 바빠 말미를 받을 겨를이 없어 집에 들리지 못했겠거니 무심히 넘겼댔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확실히 그동안 신성에서 무슨 일이 터지지 않았겠는가 하는 불안이 밀물처럼 가슴에 들이찼다.

서산마루에 걸린 저녁해를 올려다보던 하평은 피빛의 마지막노을이 붉게 타는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또다시 걸음을 내짚었다.

밤이 되여 성문이 닫기기 전에 신성에 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점차 사위는 어슬어슬해졌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신성에 들어서려고 거의 뛰다싶이 걸음을 다그치던 하평은 걸음을 멈추었다.

말을 탄 기마수가 쏜살같이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멀리에서 얼핏 보기에도 행장을 갖춘 군사의 모습이였다.

아니라고 도리질하면서도 속으로는 혹시 맹광이 아닐가 하는 기대감에 하평은 행길에 말뚝처럼 서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기마수는 하평의 코앞까지 다달아 급히 말고삐를 잡아챘다.

코앞에서 말이 앞굽을 들고일어서는것이 말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였다.

하평이 한걸음 물러서는데 기마수가 말등에서 뛰여내렸다.

나이는 이제 열댓살쯤 되여보이는 애된 얼굴에 비록 몸에 갑옷은 걸쳤어도 아직 솜털이 보시시한 애숭이군사였다.

애어린 군사의 얼굴을 쳐다본 하평은 깜짝 놀랐다.

그는 도루라는 이름을 가진 맹광이 거느리는 척후부대의 가장 나어린 막내군사였던것이다.

도루는 3년전 후연군사들의 신성침입때 부모를 잃은 의지가지할데없는 고아였다.

도루는 후연기병들의 기습공격으로 죽은 부모들의 원쑤를 갚겠다고 북방군에 들어오기를 여러번 자원하였으나 나이가 어린것으로 하여 매번 거절당하였다.

이러한 도루의 사정을 알게 된 맹광이 그를 동정하여 수중에 거두었던것이다.

맹광은 도루를 하평에게 보내여 야장간일을 도와주면서 짬짬이 무예를 익히도록 하다가 나이가 15살이 되자 정식으로 군에 받아들여 전령으로 써주었다.

하평과 맹광에게서 무예를 배운 도루는 어린 나이에 무예실력이 웬만한 무사들보다 훨씬 나았다.

특히 어려서부터 말다루기에서는 귀신같아 특출한 기마수들이 많이 배출된 북방군의 수만군사들속에서도 가장 뛰여난 기마수라는 평판을 듣고있었다.

자기가 은근히 맹광이 못지 않게 아들처럼 대해주고 사랑해주던 도루의 허둥지둥하는 모습은 하평의 피를 얼구듯 싸늘한 불안감을 몰아왔다.

도루는 새까맣게 질린 얼굴로 달려와 다짜고짜 하평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 아저씨… 큰… 큰일났소이다. 오… 오늘 아침 맹광형님이 옥… 옥에 갇혔소이다.》

순간 하평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머리를 한대 맞은것처럼 저도 모르게 비칠거렸다.

《맹광이 무슨 일로 옥에 같혔단 말이냐?》

도루는 죄스러운듯 머리를 떨구고있다가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두 제탓이예요. 저만 없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련만…》

어느새 도루의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하평은 도루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었다.

《바로 대라. 무슨 일로 옥에 갇혔다는거냐?》

하평의 거듭되는 물음에 자신을 다잡은 도루가 전후사연을 들려주었다.

척후장의 소임을 맡은 맹광은 얼마전부터 병기고에 보관된 병쟁기가 누군가에 의해 계속 성밖으로 새여나가고있다는 단서를 잡을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 하도 은밀하게 진행되고있는지라 정황뿐이였지 직접적인 증거는 잡을수가 없었다.

더우기 군영의 병기고는 태수의 허락이 없이는 절대로 열수 없기때문에 어떤 종류의 병쟁기가 얼마만큼 분실되였는지조차 조사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맹광은 속수무책으로 있을수는 없다고 스스로 결정짓고 은밀히 조사를 계속했다.

병쟁기가 새여나가는것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그것이 지경밖 적들의 손에 넘어갈수 있었기때문이였다.

한오리 실마리를 붙잡고 근기있게 추적한 보람이 있어 군영 병기고에서 무기를 몰래 꺼내여 비법적으로 팔아 제 배를 불리우는자들의 정체가 차츰 드러나기 시작했다.

맹광은 송사리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그 배후가 누구인지를 밝혀내는데 힘을 기울이였다.

드디여 배후를 밝혀내는데 성공할수 있었으나 그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맹광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군영 병기고의 병쟁기도난사건의 배후가 바로 맹광의 상관이며 북방군 현무당주로 있는 아민이였던것이다.

맹광은 대노하였다.

고구려 북방군의 중요한 소임을 맡은자가 치부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감히 군영의 병기고에까지 손을 대는 행동을 그냥 보고만 있을수 없었던것이다.

맹광은 자기의 행동이 어떤 화를 불러올것인가를 예측하지 못한바는 아니였으나 모든 증거물들을 가지고 신성태수 마고를 찾아갔다.

생각같아서는 제 손으로 아민을 베여버리고싶었지만 군직에 매인 몸으로 상관을 마음대로 처형할수 없기에 신성태수를 찾아가게 된것이였다. 맹광은 아민이 신성태수 마고의 심복인줄 잘 알고있었지만 아민의 죄행을 밝혀내자면 다른 방도가 없었던것이다.

맹광에게서 모든 증거물들과 증언 등을 받아든 신성태수 마고는 생각과는 달리 펄펄 뛰며 당장 아민을 붙잡아들여 사실을 밝혀 군법에 의해 처형하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곧 아민을 붙잡으려 순군이 풀려나가고 온 성안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미리 이런 일이 있으리라 예견하였는지 아민은 날래게 종적을 감추어 그의 행방을 전혀 찾을길이 없었다.

아민을 찾지 못한것으로 하여 사건은 이것으로 일단 결속되였다.

그 일이 있은지 며칠이 지난 어제 저녁, 신성태수가 보낸 사람들이라면서 전혀 낯이 생소한 사나이들이 맹광의 처소로 찾아왔다.

맹광은 지경을 순찰하기 위해 성밖으로 나가있었고 그곳에는 도루를 비롯한 군사 몇명만 남아있었을뿐이였다.

생면부지의 사나이들이 신성태수가 보낸 선사품을 가지고왔다는 소리에 도루는 별 생각이 없이 잘 알아보지 않고 그들을 맹광의 처소로 들여놓았다.

그들은 맹광의 처소에 자기들이 들고온 큰 함을 내려놓고는 간다온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일은 바로 이렇게 시작된것이였다.

오늘 새벽 지경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맹광은 갑자기 성문에 들어서자바람으로 신성태수가 보낸 무지막지한 순군들에게 붙잡혔다.

영문을 모르고 체포되여 군문으로 끌려간 맹광은 신성태수에게서 직접 문초를 받게 되였다.

그런데 죄책이라는것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것이여서 맹광은 기가 막혔다. 그것은 사실 군영의 병기고에서 병쟁기를 빼내여 병기장사군들에게 팔아넘긴것이 현무당주 아민이 아니라 맹광이라는것이였다.

맹광이 증거가 밝혀질가 두려워 이전부터 사이가 앙숙인 현무당주 아민에게 죄를 들씌웠다는것이였다.

맹광이 너무도 기가 막혀 한사코 이것을 부인하자 이번에는 그의 처소에서 밝혀진 증거라면서 봉인한 큰 함을 문초장으로 들여왔는데 안을 열어보니 강철로 만든 병쟁기가 가득하였다.

뒤늦게야 이 사실을 알게 된 도루를 비롯한 맹광의 부하들이 달려와 사실을 까밝히려고 항의하였으나 순군들에 의해 저지당하여 군문안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하고 쫓겨났던것이다.

이렇게 맹광은 군영병기고의 도난사건의 주모자라는 루명과 상관을 모해한 죄까지 쓰고 군영옥에 갇히게 되였던것이다.

도루에게서 이런 전후사연을 다 들은 하평은 이를 사려물었다.

절대로 맹광을 그냥 내버려둘수 없다. 그냥 내버려두면 상관을 해친 죄명을 쓰고 처형될수도 있다.

하평은 평상시의 그 침착한 태도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불안하던 마음이 이상하게 안정되고 젊은 시절처럼 피가 끓어올랐다.

《군영옥에 정비는 어떠하냐?》

《옥이래야 서너명이 지킬뿐이오이다.》

《그럼 됐다. 네 검과 말을 좀 빌려다오.》

도루의 얼굴이 삽시에 밝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군사들이 모두 분노하고있소이다. 맹광형님을 구하자고 하면 모두 따라나설거예요.》

하평은 대번에 머리를 저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만약 군사들이 무리지어 달려가 옥을 부시면 이것은 반란행위나 마찬가지로 인정된다.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 너희들은 일체 움직이지 말거라.》

《아저씨 혼자의 힘으로는 힘들것이오이다. 설사 맹광형님을 구한다고 해도 대신 아저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겠나요?》

하평은 도루를 안심시키려고 웃어보였다.

《걱정말아. 맹광이만 무사하다면 난 지옥의 불속이라도 웃으며 들어가겠다.》

하평은 곧 도루가 준 검을 들고 말에 뛰여올랐다.

하평은 15년을 발붙이고 살아온 정든 산천을 영원히 새겨안으려는듯 찬찬히 둘러보고는 박차를 질러 말을 몰았다.

하평은 말을 몰아가면서 15년전 유주에서 맹광을 구원하던 때를 돌이켜보았다.

온 성안을 불태우는 화염, 진나라군사들의 야생적인 고함소리…

맹광을 안고 불의 바다, 피의 바다를 헤치던 그때의 정경이 눈앞에 서려왔다.

영무의 부탁을 받고 피눈물을 뿌리며 달려가던 자신의 모습!

그때 내가 생각한것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자기 주인에 대한 의리인가 아니면 모함을 입고서도 마지막까지 최후의 격전을 치르고 전사한 진을 위해서였던가.

영무는 하평의 생명의 은인이였고 또 새로운 삶을 누리도록 해준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이였다.

치양격전때 그 참담한 정황속에서 자기를 구원해준 그때의 영무를 어찌 세월이 지났다고 잊을수가 있겠는가.

어렸을 때 종으로 팔려가는 하평을 구하여 무사로서 떳떳하게 살도록 이끌어준 은인인 영무인것이다.

이런 영무가 최후를 앞두고 부탁한 맹광이였다.

하평은 불타는 유주에서 맹광을 살려냈지만 상이는 구원하지 못했었다.

이것이 아직까지도 가슴속 한구석에 상처로 남아 고통을 더해주고있었다.

맹광이 살아야 헤여졌던 누이동생 상이를 찾을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전사한 영무장군의 령전앞에 더욱 떳떳해질수가 있었다.

하평은 말을 몰아가면서 급히 품속을 더듬어 한뽐길이의 은장도를 꺼내들었다. 역시 손잡이에 물고기를 솜씨있게 부각한 칼이였다.

유주에서 상이를 두고 떠날 때 나무로 깎아만든 나무칼을 손에 쥐여주고왔는데 그때 일이 아직까지도 계속 마음에 걸려있어 대장간 일을 보는 여가에 틈틈이 은을 모아 은장도를 벼리였던것이다.

제 손으로 직접 상이에게 주려고 여태껏 간수해왔으나 이제는 맹광이에게 물려주기로 결심을 하였다.

드디여 신성이 눈앞에 길게 자태를 나타내였다.

어느덧 캄캄한 밤하늘에 하나, 둘 별들이 나타나 반짝이였다.

어둠속에 묻혀 마치 거대한 짐승의 아가리인듯 스산하게 보이는 성문안으로 하평은 말을 때려몰며 뛰여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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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 - coder -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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