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2 장. 한산대격전

7

 

림진강하류좌안에서 관미성을 향해 뻗은 길은 한곳에서 옛성터의 황무지를 지난 다음엔 갑자기 두갈래로 갈라져 그 한쪽은 강기슭으로 꺾어지며 통나무로 단단하게 만든 정박장에 가닿는다.

가물때는 이 정박장이 통채로 누런 모래와 조약돌들이 반짝이는 강바닥에 내려앉았다가도 장마철에 한소나기 퍼부으면 불어난 비물에 의해 언덕우에 올라앉았다.

그런 날에는 강기슭에 뻗어내린 길자체가 물에 잠기군 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반나절만 지나면 방금전에 강기슭의 버드나무들을 송두리채 뽑아버리던 노한 물도 줄어들었다.

바로 이 정박장주변에 백제군 본영이 들어앉았고 병관좌평 진무가 지휘처를 정하고있었다.

강건너기슭에는 역시 고구려의 영락태왕이 수천의 고구려군으로 진을 쳐놓고 범처럼 도사리고있었다.

하지만 백제군은 고구려군이 기습해올것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있었다. 이미전에 모든 배를 이쪽 기슭에 잡아매두었기때문에 저쪽 고구려군진지에는 변변한 떼목 하나 없었던것이다.

고구려군이 아무리 용맹하다고 해도 날개가 없이는 강을 건너오지 못할것이요, 이쪽에서는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불의에 배를 띄워 기습공격하면 그만인것이였다.

상류를 따라가면서 고구려군이 혹 기마군사들을 도하시킬수 있는 여울목마다에는 백제군이 구멍을 파고 들어앉아서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있었다. 백제군은 주야로 강기슭을 수비하면서 고구려군의 식량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지금까지는 모든것이 진무의 타산대로 흘러가고있었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대안에서 고구려군이 일체 행동을 중지한것이였다. 진무는 영락태왕의 진의도를 알수 없어 골머리를 앓았다.

영락태왕의 불같은 성미에 식량이 떨어져가는 형편에서 그냥 앉아있다는것이 리해되지 않았던것이다.

진무는 조급증에 미칠것만 같았다. 고구려군 진지로 잠입했던 세작들이 고구려군이 비밀리에 떼목을 뭇는다는 첩보를 보내왔기에 대안의 진지를 보강하고 대군을 둔쳐놓았다. 그런데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는것은 렬세한 무력을 가지고있는 고구려군이 갑자기 모두 미쳤는지 백제군이 보란듯이 물깊이가 얕은 곳에 떼목을 띄워놓고 공격할 기세를 보이는것이였다.

담덕이 무슨 속임수를 쓰는것은 아닐가. … 관미성격전때의 수치가 되살아났다.

그때도 방심하며 바다를 비워두었다가 뼈아픈 참패의 수치를 당했던것이다. 싸움에서 로회하고 책략에서 귀신같다고 명성이 자자했던 자신이 왜 매번 아들벌밖에 되지 않는 고구려 영락태왕 담덕에게 참패당하는지 도무지 그 리유를 알수 없었다.

담덕은 매번 로장 진무를 한발 앞지르군 하였다. 인정하기 괴롭지만 담덕은 아무리 로회하고 싸움에 능한 적수라도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주저앉히는 천부적인 군사적재능을 가진 비범한 인물이였다.

진무는 담덕과 맞서싸울 때마다 그의 면전에 온몸을 드러내놓고 나선듯 한 느낌이 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반면에 담덕은 안개속에 가리워진듯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 의도와 전략을 파악할수가 없었던것이다.

지금의 상황도 바로 그러했다. 생각같아서는 한시바삐 배와 떼목을 내여 고구려군진지를 공격하고싶었지만 여러번 그 충동을 이를 악물고 내리눌렀다. 섶을 지고 서뿔리 불속에 뛰여들수는 없는것이였다. 고구려군진지가 혼란되였을 때 불의의 기습을 들이대여야만 했다.

량군이 대치한지 사흘째 되는 날, 진무는 흐리마리해지는 의식속에서 가까스로 자기를 버티여내고있었다.

한낮의 열풍이 기세가 숙어들고 하늘에서는 감색의 노을이 아른히 비껴흘렀다.

진무는 장막안에 단정히 앉아 허리에 찬 장검을 어루만지며 피곤과 안깐힘을 쓰며 싸우고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날이 어두워질것이였다. 진무는 그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티여내려는것이였다.

진무는 졸음을 쫓으려는듯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운 발자국소리로 뒤덮이더니 불쑥 호위장수가 뛰여들어왔다.

장군, 강을 건너보냈던 세작이 돌아왔소이다.》

진무의 충혈된 눈이 그제야 생기를 되찾았다.

《무얼하느냐? 어서 데려오라.》

진무는 탁자우에 상반신을 실으며 소리쳤다.

잠시후 세작으로 보냈던자가 주밋거리며 들어섰다.

세작이 부복하려는것을 진무가 손을 들어 막았다.

《어서 말하라. 저쪽은 지금 어떤가?》

《실상은 별로 알아온것이 없소이다. 고구려인들은 그저 나무를 찍어오고 물을 길어오는 등 한가하게 보내고있을뿐이오이다.》

《그럼 식량은 실어왔단 말이냐?》

《아니오이다. 이미 떨어진지 오래오이다.》

《뭐야?!》

진무는 믿어지지 않는지 아연한 눈길로 한동안 세작의 얼굴만 쳐다보고있었다.

진무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는듯 혼탕된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롭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고구려놈들은 무얼 믿고 버티고있는것인가. 아무리 환장이 되였단들 보급이 끊어졌으니 분명 군영이 혼란되였으리라 믿었는데?…》

세작이 그제야 생각이 난듯 조심히 말을 붙였다.

장군, 오늘 새벽 고구려군사들이 무슨 지랄이 났는지 민가에 흔한 커다란 오지항아리들을 수천개나 실어왔소이다.》

《뭐야?! 고구려놈들이 그 많은 항아리들을 뭣에 쓰려고 군영에 가져왔다는거냐?》

《글쎄올시다. 소인도 그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왜 그런짓을 하는지 통 그 의도를 알수 없었소이다.》

세작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마치 큰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듯 진무의 귀에 바싹 입을 가져갔다.

장군, 이제 멀지 않아 고구려군이 제풀에 물러갈것이오이다.

아무리 천하무적이라고 떠들어대도 제깟놈들이 보급이 끊어져 굶은터에 무슨 수로 싸우겠소이까. 영락태왕이 자기 밥을 덜어서 군영에서 제일 나어린 군사에게 먹여주는 모습을 소인이 직접 이 두눈으로 보았나이다. …》

《뭐야?! 담덕이 자기 밥을 덜어 군사들에게 주었단 말이냐?》

《예, 그렇소이다. 이것은 모름지기 고구려군의 모든 식량이 다 떨어졌다는 유일한 증거라고 생각하오이다.》

진무의 얼굴색이 갑자기 새까맣게 타들었다.

좌우에 서있던 호위무사들이 혼비백산하도록 진무의 큰 몸이 천천히 뒤로 기울어졌다.

급히 부여잡는 호위장의 손을 거칠게 밀어던지며 진무는 제 목소리같지 않은 딴 사람의 목소리로 벼락같이 소리쳤다.

《쓸개빠진 놈… 왜 이제야 그 소리를 하는것이냐. 그게 언제 있은 일이냐?》

《저… 오늘 아침…》

《어서 전령을 각 진영에 띄워보내라. 빨리 본영으로 집결하라고 해라. 고구려군이 본영을 공격해올것이다.》

진무가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자 모두가 어리둥절하여 선뜻 움직이는자가 없었다.

호위장이 머리를 기웃거리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장군, 진정하시오이다. 갑자기 고구려군의 공격이란 무슨 말이오이까?》

진무는 호위장의 멱살을 움켜잡고 바싹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임금이 자기의 밥을 덜어 군사들에게 먹였다면 군사들이 어찌할것 같으냐?》

《그야… 아마 죽기로 싸울것이오이다.》

《그것이다. 담덕이 왜 아직까지 응전하지 않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분명 고구려군은 식량이 떨어져 사기가 저락된것이 아니라 더욱 기세가 왕성할것이다. 담덕이 노리는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 서둘러라. 고구려군이 공격해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좌우의 여러 장수들이 후닥닥 자리를 차고 장막밖으로 뛰여나갔다.

그러나 진무의 이러한 조치는 이미 때가 늦은것이였다.

대안에서 함성이 일어나더니 고구려태왕의 일월기가 불쑥 솟아 휘날렸다. 진무는 절망감에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한순간이 전쟁의 국면을 뒤집어놓았다는 좌절감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진무는 앞에 놓인 탁자를 발로 걷어차고 밖으로 뛰여나갔다.

싸늘한 공포가 삽시에 그의 가슴을 들이찔렀다.

낯색이 새파랗게 공포에 질린 백제군사들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고 진무는 이새로 신음소리를 내였다.

불의의 기습을 당해 군영안에서 뛰여나온 군사들은 갑옷차림을 제대로 갖춘자가 몇 안되였다.

화살이 비발치듯 백제군 본영으로 쏟아지고있었다.

백제군사들은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며 쏟아져내려오는 화살을 피하느라 방패로 머리를 가리우고 돌무지나 목책뒤로 돌아가 저저마다 몸을 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진무의 주위에도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호위무사들이 진무를 둘러싸고 방패로 화살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진무는 그들을 밀어던지고 지휘처로 정한 언덕우로 뛰여올라갔다.

전장을 굽어본 진무는 정신이 아찔하여 땅에 주저앉았다.

하늘땅이 빙글빙글 주위에서 돌아가는듯싶은 환각이 들었다.

지금 자기가 목격하고있는 광경이 꿈이기를 바랄뿐이였다.

림진강의 거치른 물결우에 여러개의 오지항아리들로 무어 만든 떼목들이 무수히 떠서 다가오고있었던것이다.

커다란 오지항아리들을 여러개 묶어놓고 그우에 널판자를 폈는데 고구려군사들이 방패로 몸을 가리우고 타고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무는 영락태왕이 민가에 흔한 오지항아리들로 떼목을 무어 불의에 기습공격을 진행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다.

강 저쪽에서는 궁수들이 주런이 늘어서서 비발치듯 쉴새없이 화살을 쏘아대고있었다. 고래로 고구려사람의 궁력은 천하에 유명한데 수백보의 거리도 거침없이 살을 날려보내는 위력한 활솜씨를 지니고있는자가 헤아릴수 없었다. 활도 그 종류가 수십가지에 이르고 그 위력 또한 천하를 공포에 떨게 하는 무기였던것이다.

한손으로도 능히 다룰수 있는 근거리살상무기인 작은 활로부터 무게가 무려 120근에 이르는 강궁에 이르기까지, 여러대를 순식간에 빠른 속도로 날려보낼수 있는 편전과 단번에 수백대의 살을 날려보내는 거대한 쇠뇌로 무장한 고구려군이였다.

백제군은 넓은 대하의 물결이 가로막고있어 고구려군의 화살을 방심하고있었는데 실지 당해보니 방패를 내리울새가 없이 위력하였다.

위력한 쇠뇌에서 발사된 화살이 하늘을 가리우며 날아와 기슭에서 갈팡질팡하는 백제군사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다.

고구려군의 떼목들이 차례로 기슭에 와닿자 고구려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떼목에서 뛰여내려 혼란된 백제군진지를 공격했다. 백제군은 여러 진지로 분산배치되였기때문에 본영은 거의 비여있다싶이 되여있었다.

치렬한 백병전이 벌어졌다. 싸움은 기슭에서 언덕으로, 언덕에서 군영안으로 번져지고있었다.

백제군은 사기를 잃어 혼란된 반면에 고구려군은 싸울수록 용기백배하였다. 싸움이라기보다 살륙이라 불러야 할 처절한 전투가 전전선에 걸쳐 벌어지고있었다.

진무는 패전을 절감했다. 하지만 이제는 물러설 곳도 또 물러설수도 없는 몸이였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의 정황을 뒤집을수는 없었다.

오직 싸워야만 했다. 그 길만이 유일한 선택이였다. 죽기내기로 싸움을 벌려서라도 군사들에게 싸움의지를 북돋아주어야 하였다.

오랜 로장인 진무는 최후의 격전을 결심하고 수십명의 호위무사들과 함께 전장에 뛰여들었다. 진무는 용맹을 떨쳐 고구려군사들을 닥치는대로 치고 찌르고 베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대세를 바로잡을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날수 없었다. 어느새 고구려군이 겹겹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진무는 숨을 헐떡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과 몇 안되는자들만이 이리 쫓기우고 저리 쫓기우면서 싸우고있을뿐 전군이 처참하게 패해 전선에서 물러서는 모습이였다.

결국 이렇게 또다시 패전하고만단 말인가?!…

진무는 자기의 뜻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값없는 죽음, 패전지장의 치욕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칠것만 같았다.

절망과 고통, 분노와 비애가 진무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장군, 제가 죽기로 혈로를 뚫겠으니 어서 빠져나가시오이다.》

호위장의 웨침이 진무를 또다시 처참한 현실세계에로 끌어내왔다.

진무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한줄금 비껴지나갔다.

《부질없는짓이다. 설사 살아돌아간다고 해도 백제의 백성들이 날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수천수만의 군사들을 무주고혼으로 내버리고 어찌 나 혼자 살아돌아가 그들의 부모처자를 마주하겠느냐?

내가 있을 곳은 여기 전장이다. 부디 너희들중 살아남는자가 있거든 이 진무가 끝까지 싸웠다는것을 전해달라. 하늘이 이 진무를 버렸다는것을 페하께 전해다오. …》

장군…》

호위장의 마지막간청을 뿌리치며 진무는 이런 말을 남기였다.

《마지막으로 내리는 명령이다. 살아남거라. 여기서 벗어나 연우를 찾아가거라. 백제가 지탱하는 마지막기둥이니 주군으로 섬겨야 한다.

연우만이 나의 한을 풀어줄것이다.》

진무는 오래동안 자기를 충실히 따라다닌 부조리라는 호위장을 밀어던지고나서 검을 거꾸로 세워들었다.

두손을 파들파들 떨다가 별안간 한소리 크게 웨치면서 제 목에 검을 힘껏 박았다.

백제의 기둥이라고 일컫는 오랜 로장 진무는 이렇듯 비참한 종말을 고했다. …

395년 8월에 있은 대격전에서 백제군을 전멸시킨 영락태왕은 지체없이 곧 군사를 돌려 북상하여 거란원정에 나섰다.

이미 거란령역을 공격하며 전과를 올리고있는 고구려북방군과 군력을 합쳐 거란족의 통수권을 장악하고있는 비려부로 진격하였다.

비려부는 수만의 대군을 내몰아 고구려군의 앞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아나섰으나 영락태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의 질풍같은 공격에 심대한 패배를 당하였다.

영락태왕 담덕의 행동은 언제나 단호하여 앞길을 막아서는자들은 가차없이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렸다.

당시 거란족은 화룡북쪽 수백리되는 곳에 살고있었는데 8개 부로 세력권이 나누어져있었다. 그 8개 부란 슬만단부, 하대하부, 복불욱부, 우릉부, 일련부, 필혈부, 려부, 토륙우부를 가리킨다.

그중에서 비려(필혈)부가 세력이 제일 강하여 거란족을 지배하고있었던것이다.

비려는 국가체계까지 갖추어놓고 힘을 길러 천하의 주인이 될 야망을 품고있었다.

고구려군의 질풍같은 진격앞에 다른 모든 거란의 부족들은 무릎을 끓고 항복하였으나 유독 비려부만은 죽기내기로 저항하고있었다.

영락태왕은 분노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2만대군을 이끌고 신성에서 멀지 않은 부산을 거쳐 염수가에 이르렀다.

비려가 군사를 내여 염수를 막아서자 영락태왕은 단숨에 그것을 격파하고 비려경내로 진입하였다.

반나절동안 진행된 대격전끝에 비려부의 3개의 큰 부락이 형체도 없이 송두리채 불타버리고 수천명의 거란군이 죽어너부러졌다.

고구려군이 이에 멈추지 않고 계속 진격해오는데 극도로 당황한 비려부의 추장들은 스스로 제 몸을 결박하고 무릎걸음으로 기여나와 영락태왕에게 항복을 하였다.

비려부는 완전히 멸망하고말았다. 어리석게도 고구려의 지경을 넘보며 천하의 주인이 되려는 야망을 품었던 비려부가 비참하게 종말을 고했던것이다.

영락태왕은 비려부의 3개 부락을 격파하고 헤아릴수 없는 정도의 소, 말, 양을 로획하였으며 살아남은 비려부족 500여명을 포로하고 그전에 거란인들에게 랍치되였던 고구려사람 1만명을 전부 되찾았다.

영락태왕은 거란족을 완전복속시킨 후에 남쪽 양평도로 해서 력성, 북풍을 지나 변방을 위엄있게 시찰하고 보무당당히 개선하였다.

고구려를 위협하던 세력중의 하나가 완전히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395년 가을에 있은 고구려의 비려부징벌소식은 동서남북 온 대륙으로 퍼져가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놓았다.

강성한 초원의 유목종족이라 자처하던 거란족을 눈깜빡할사이에 짓밟아버린 고구려의 위력은 그 지경을 넘보던 여러 침략세력들에게 큰 공포를 주었다. 비려부의 남은 세력은 고구려군의 공격으로 멀리 사막으로 쫓겨갔으며 대부분이 항복하여 복종을 맹세하였다.

고구려군은 비려부를 완전히 복속시키고 거란의 일부 지방을 고구려에 배속시키고 여기에 행정구를 내왔으며 관리를 파견하여 거란족을 직접 다스리게 하였다.

395년 거란원정이후 고구려의 지경은 서북방면으로 더 진출하여 다시는 거란족을 비롯한 여러 오랑캐들이 지경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였던것이다.

고구려는 거란에 주둔하고있는 일부 무력을 내놓고는 북방군을 전부 남쪽으로 돌릴수 있게 되였다.

영락태왕은 어전회의에서 일부 조정대신들과 5부귀족들의 반대를 위엄으로 눌러놓고 국토를 통일하기 위해 백제를 전면공격하기 위한 결심을 내렸다.

백제는 392년이후 지금까지 수차에 걸쳐 고구려와 전면전을 벌렸으나 그때마다 매번 패하여 수만의 사상자를 냈고 적지 않은 령토를 떼웠다. 그러나 백제는 무모한 반항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395년 8월에 있은 대격전에서 8천명의 전사자를 낸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도 백제의 아신왕은 제가 직접 수천의 위사대(백제근위대)를 이끌고 복수전에 나섰다. 그때는 영락태왕이 비려부로 원정해가고있을 때라 백제군의 기습공격은 성공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허나 하늘이 백제를 용납하지 않았다. 아신왕이 이끄는 백제군은 청목령에 이르러 큰 눈을 만나 결국 싸워보지도 못하고 되돌아오고말았다.

아신왕은 대세의 추이를 가려보지 못하고있었다.

림진강격전을 계기로 백제의 운명이 이미 기울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무모하게도 복수전만을 부르짖고있었다.

진무이하 전군이 괴멸된 림진강대격전은 백제가 고구려에 도전하면 할수록 패전할수밖에 없다는것을 실증해준 싸움이였다.

그밖에 고구려군은 비려부를 정복하고 거란족을 멀리 사막지대에로 쳐몰아내고 서북방의 완정을 이룩하였으니 그만큼 국력이 배로 강성해졌음을 말해주는것이였다.

고구려가 영락태왕즉위 이전 시기 여러 침략세력과 힘겨운 싸움을 벌리고있는 때라면 모르겠으나 지금같이 승승장구하고있을 때 감히 맞서겠다는것은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는 격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백제는 고구려와 대등한 《천자의 나라》라는 과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천하의 주인이 되겠다는 야망을 버리지 않고있었다.

백성들은 전쟁으로 어떻게 되든 오직 고구려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겠다는 어리석은 야망이 결국은 백제를 멸망에로 떠밀었던것이다.

과연 백제에 아직 고구려와 맞설 력량이 남아있겠는가?

손아래 동맹군으로 끌어들였던 가야군도 이미 철수한 뒤였고 아라가야인들로 무어진 별군만이 겨우 붙어있을뿐이였다.

또한 왜군도 태반이 철군하고말았으니 백제는 지원병력을 받을데도 없었다. 여러번 고구려와 대격전을 치르는 과정에 정예군사들 수만명이나 잃어 고구려군이 대군으로 밀고내려온다면 이것을 막을 도리가 없을것이였다.

물론 궁여지책으로 전국의 장정들을 모두 군사로 징발할수도 있었다.

이러한 군대가 제아무리 수십만의 대군일지라도 어찌 고구려의 정예무력을 막아낼수 있겠는가.

어디서 출로를 찾을것인가?!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군의 공격을 예견하여 한수이북에 겹겹이 방어선을 구축하게 하였다. 그야말로 온 나라의 힘을 모두 기울여 방어전에로 넘어갔던것이다.

이제는 반격같은것은 생각할수도 없게 되였다. 나라를 그대로 보존하는것도 난감한 때에 어찌 반격으로 잃어버린 령토를 되찾겠다는 망상을 할수 있으랴.

그러나 백제의 아신왕은 한가닥 기대감을 가지고있었다. 그것은 아신왕뿐아니라 거의 모든 백제의 대소관료들의 한결같은 희망이였다.

만약 후연이나 북위 또한 그밖의 중원국가들이 고구려를 견제해준다면 어찌될것인가.

두말할것없이 고구려는 백제전선에 집결시켰던 병력을 급히 서북전선으로 돌릴것이다.

때를 타서 국력을 모두 집중해 최후의 반격을 가한다면?!…

하지만 그것은 이룰수 없는 허황한 꿈이였다.

동란의 와중에서 서로 죽기내기로 물고뜯는 북위, 후연 등이 백제나 돕겠다고 무모하게 고구려와 전면전을 벌리지는 않을것이였다.

후연은 고구려와 원쑤의 나라였다. 한때 전연시기 고구려를 위협하는 대국으로 맞섰댔다고는 하나 고구려에 의해 멸망했다가 간신히 다시 일어선 지금에는 옛날과 같은 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비록 료서에서 고구려와 패권을 다투고있지만 멀지 않아 주도권을 빼앗기리라는것은 자명한 리치인것이다.

북위와의 전면전으로 고전을 겪는 후연같은 나라에 기대를 건다는것은 참으로 망녕이 아닐수 없었지만 물에 빠진자 지푸래기에라도 매달리는 격으로 백제통치층은 급히 사신을 바다건너 급파하였으나 변변한 답서조차 받지 못했다.

백제 아신왕에게는 두가지 선택이 남아있었다.

하나는 고구려군과의 전면전이 예상되는 이때 무모하게 싸우다가 나라가 멸망하는 길이요, 다른 하나는 이제라도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복종을 맹세하고 조공하는 길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마지막군사가 남을 때까지 최후의 싸움을 치를것인가, 아니면 지금 당장 나자신이 직접 영락태왕을 찾아가 무릎을 끓고 복종을 맹세하여 나라를 보존할것인가.

첫번째 선택은 최후의 결사전으로 고구려군의 진격을 저지시키자는것인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가.

두번째 선택 역시 그 시기가 다를뿐이지 세월이 흐른 뒤에는 반드시 고구려주도의 통합으로 이어질것이 아닌가?!…

아신왕은 무서웠다. 수백년의 력사를 자랑하며 대국이라 일컫던 백제가 자기 대에 이르러 멸망한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갈라졌던 국토가 하나로 통일되고 흩어진 민족이 합쳐져 살아야 한다는것을 아신도 모르지는 않았다.

그 옛날 광대한 령토에 나라를 세워 수천여년을 내려온 옛 조선이 멸망하고 민족이 여러개로 나뉘여져 이렇듯 대결하고있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서로가 누구 주도하의 통일인가를 다투며 싸우고있는것이기때문이였다.

졸본에서 주몽에 의해 고구려국이 세워져 중원의 침략세력을 장성안으로 몰아넣고 사방의 유목종족을 제압하여 차츰 옛 조선의 땅을 수복하고있을 때 그 그늘밑에서 힘을 키운 백제와 신라, 가야같은 소국들은 어벌이 커져 저마다 천하의 주인이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되였던것이다. 민족을 지켜내고 옛 조선의 위용을 되찾기 위해서 중원과 힘겨운 싸움을 벌리고있는 동족인 고구려를 배신한것이였다.

백제의 배신적인 공격으로 위기에 처하였던 고구려가 영락의 시대를 만나 부흥을 떨치며 일어나서 무자비한 응징을 가했다.

백제는 동족을 향해 창을 겨누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르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백제가 이렇듯 생사기로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고있을 때 고구려는 통일위업을 이루기 위한 마지막결전을 준비하였다.

거란전선에 배비되였던 북방군의 정예무력이 시급히 남부전선으로 집결되고 고구려전역에서 전투력이 강한 부대들을 골라뽑아 타격집단을 무었다.

영락태왕은 수륙군의 협공으로 단숨에 백제를 들이치려는 전략을 세우고있었다.

이제 륙군의 힘으로만 밀고내려가기에는 힘에 부친 일이였다.

의연 백제는 전국의 장정들을 모두 군사로 뽑아서라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할것이기때문이였다.

이러한 때 륙군만 내몰아 싸움을 벌리다가는 량자가 다 많은 피를 흘릴수 있었다.

수륙군의 협공으로 백제가 앞뒤를 돌아볼새없이 타격을 가해 단번에 꺼꾸러뜨려야 희생을 적게 내면서 승전할수 있었다.

영락태왕은 수군을 직접 거느리고 백제를 공격할 생각이였다. 백제가 고구려륙군과 격전을 벌리고있을 때 은밀히 수군무력을 이끌고 배길로 남하하여 그 배후를 찌른다면 승전할수 있었다.

영락태왕은 싸움을 앞두고 평양에서 성대한 무예시합을 벌렸다.

각지에서 집결된 고구려군사들의 사기를 높여줄 의도에서 무예시합을 열었던것이다.

또 이것을 통해 수년전 맹광을 근위군의 장수로 골라뽑아 높이 등용하였던것처럼 유능하고 무예실력이 뛰여난 무사들을 뽑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영락태왕의 참석하에 진행된 무예시합이라 모든 군사들은 사기충천하였다. 이 시합에서 북방군의 장병들이 뛰여난 무예솜씨를 보여주었다.

영락태왕은 그 자리에서 무예시합에서 장원한자들을 등용하였으며 수신을 수군의 선봉장으로 임명하였다. 전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충천하였다. 영락태왕은 이러한 군사를 이끌고 드디여 삼국통일의 한 고리로 백제와의 전면전에 나섰다.

륙군은 3개 방면군으로 갈라 백제전선을 뚫고 한산성으로 진격하게 하였다.

수군은 영락태왕자신이 직접 이끌고 배길로 은밀히 남하하여 한수를 거슬러오른 다음 한산성을 정면공격할것이였다.

말그대로 륙군에 부과된 전투임무는 한산이북을 모조리 틀어쥐여 백제의 수도 한산성을 압박하는것이요, 수군은 한수이남지역을 제압하고 백제의 도성을 앞뒤로 포위하여 백제가 정신을 차릴새없이 두들겨패려는것이였다.

드디여 고구려군은 륙지와 바다에서 동시에 백제에 대한 전면전을 시작했다.

 

이것이 력사에 유명한 396년 한산대격전이였다. …

연우는 1 500여명의 아라-왜군을 거느리고 한산 남쪽으로 진격하였으나 끝내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구려군의 매복에 걸려 심대한 패배를 당했다.

고구려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공격에 수만의 백제군이 패하여 무질서하게 들고뛰는 이 와중속에서 천여명의 군사로 형세를 역전시킨다는것은 부질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하지만 연우는 어떻게 해서든 고구려군의 철통같은 포위를 뚫고 한산으로 들어가 백제 아신왕을 구출해내려고 하였던것이다.

백제가 멸망하면 연우가 흉중에 깊이 묻어두고있던 꿈은 영영 깨여지는것이였다. 백제의 기둥이라던 진무가 전사하고 또 한산성이 함락되면 연우는 어디로 갈것인가.

지금 백제의 도성 한산성은 고구려군의 완전포위에 들었다. 매일 매시각 피의 격전이 끊임없이 벌어지고있었다.

비록 수만명이 성가퀴에 들어박혀 완강하게 저항하고는 있으나 성이 함락되는것은 시간문제였다.

연우는 포위를 뚫고들어가 아신왕을 구출해냄으로써 백제의 멸망을 막고 잃었던 의지할 기둥을 다시 찾으려고 하였으나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멸망으로 줄달음치는 백제를 돌려세울수 없는것이였다.

고립된 성안에서의 롱성은 외부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것이였다.

고구려군과의 수차의 대격전으로 수많은 병력을 잃은 백제는 그 어디에서도 지원무력을 불러올수 없는 처지였다. 전국각지에서 불러올렸던 지방군이 고구려군의 맹공격에 두들겨맞고 뿔뿔이 와해된 판국에서 백제로서는 의지할데가 더는 없었다.

아신왕으로서는 궁여지책으로 오직 연우가 거느리는 아라인별동대 1 500여명에게 기대를 거는수밖에 없게 되였다.

하여 연우는 아신의 요청에 따라 포위된 한산성으로 뚫고들어가려고 갖은 애를 다 썼으나 수백명의 인원을 잃은외에 얻은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고구려군은 상대할수 없는 강군이였던것이다.

연우는 이를 갈았다.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그가 걸었던 기대와 꿈이 너무도 컸던것이다.

모든것을 잃은 지금에 와서 연우 자기가 할수 있는것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빈손으로 아라땅에 들어가야 차례질것은 차디찬 랭대뿐일것이였다.

수천명의 가야인들을 낯설은 백제땅에 무주고혼으로 버려두고 무슨 낯으로 고국으로 찾아가겠는가. 백제가 멸망한다면 연우는 자기도 따라서 죽을 결심이였다.

포위된 한산성에서는 날이 바뀔수록 군사들의 사기가 하루하루 떨어지고 식량마저 동이 났다.

설사 연우가 휘하군사의 태반을 잃으면서 한산성으로 들어가야 무엇을 얻게 된단 말인가. 모든것이 부질없는짓이였다.

연우는 절망감에 미쳐 죽을것만 같았다.

고구려군의 포위를 뚫을수도 없고 또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참담한 처지, 이것이 연우에게 차례진 운명이였다.

연우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시 한산성으로 들어가려고 결심하였을 때 그의 부하들, 특히 왜군의 김지수가 앞을 막아나섰다.

무모한 선택, 섶을 지고 불속에 들어가기보다 차라리 형세를 지켜보면서 때를 기다리자는것이였다. 그러나 연우는 김지수의 권유를 뿌리쳤다. 연우는 김지수와 시마 등 왜군장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지 백여명의 호위무사들만을 휘동하고서 백제의 도성 한산성으로 뚫고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설사 그 길이 다시 돌아올수 없는 길이라고 해도 좋았다.

오직 그 길만이 헤여나올수 없는 수렁에 빠진 자기 인생을 구원할 유일한 선택이라고 연우는 굳게 믿고있었던것이다.

연우는 처절한 죽음이 기다리고있을 전장으로 떠나면서 치희를 왜군의 진중에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울며 간청하는 치희를 시마에게 떼여던지다싶이 맡기고는 말을 채쳐 그곳을 떠났다.

연우는 자기의 이 선택을 두고 가슴을 치며 괴로와했으나 그것은 아직 먼 후날의 일이였다.

이렇게 연우는 치희와 헤여졌다. …

 

아신은 두갈래의 길을 놓고 모대기고있었다.

과연 어느 길을 택해야 하는가?

아신은 수년전 진무의 간청을 받고 어라하의 자리에 오를것인가 아니면 보통인간으로 살것인가를 힘겹게 가늠해보던 그때의 방황을 또다시 겪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였다.

그의 곁에는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지략과 용맹》이 뛰여나다고 하던 외삼촌 진무도 이미전에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니 그 누구에게 자신의 이 괴로운 심정을 털어놓을수 있겠는가.

앞에서는 백제의 만년대계를 곧잘 외우던 조정대신들과 유력한 귀족들마저 저마다 살궁리를 하면서 눈앞에 얼씬도 하지 않는 형편이였다.

아신은 고구려의 도성 국내성을 단숨에 타고앉는다고 늘 호언장담하던 무장들마저 낯색이 질려가지고 성가퀴에 들어박혀 머리조차 내밀지 못하는 꼴에 화가 치밀어 며칠째 궁성안에서 식음을 전페하고있었다.

과연 백제는 어디로 갈것인가?!

수백년 력사국인 백제가 이 아신의 대에 이르러 멸망할것이다.

생각할수록 몸이 떨리고 가슴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는듯 하였다.

끝까지 항전한다는것은 부질없는 헛된 꿈이였다.

사기를 잃은 군사들과 백성들로 어떻게 마지막최후의 싸움을 치르겠는가. 그럼 고구려 영락태왕에게 항복해야 옳은가. …

고구려에 대등한 대국으로 자처하던 백제의 어라하로서 정녕 그런 선택밖에 택할수 없단 말인가.

그것은 아신자신의 치욕뿐아니라 온조대왕이후로 수백여년간 백제가 지켜온 모든것을 스스로 내던지는것으로 될것이였다.

아신은 긴 신음소리를 내며 두눈을 감았다.

한줌으로 졸아든 그의 여윈 얼굴에 절망에 가까운 한스러운 빛이 짙게 내배였다.

아신은 옆구리에 손을 올려 허리에 차고있는 백제의 어라하를 상징하는 신성한 물건인 장검을 피가 배일 정도로 꽉 틀어잡았다.

온조대왕이후로 백제의 어라하들의 수많은 고뇌와 피가 배여있는 신물이였다. 천하를 호령하고 백제의 령토를 크게 확장할 야심이 담겨져있는 신물이라고 할수 있었다.

백제왕의 상징인 이 검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 땅의 백성들이 피흘리며 쓰러졌는가.

동족상쟁의 피바람을 몰아온 이 검의 가치를 놓고 아신은 아직도 헛된 방황을 거듭하고있었던것이다.

마침내 아신은 결심했다. 백제를 살릴수만 있다면 그 어떤 수치라도 달게 감수하기로 작정하였던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신은 홍안의 태자 전지를 남쪽땅으로 떠나보내기로 결심한것이였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마지막 생리별이 될지 어이 알겠는가.

백제가 멸망한다고 해도 반드시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태자를 남쪽으로 보내야 하였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궁성밖을 나서보지도 못한 태자를 삶과 죽음이 수시로 역행하는 기약할수 없는 곳으로 보내야만 하는 아신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그 길은 아신이 가지 못하면 그의 아들이라도 가야 할 길인것이다.

태자 전지는 아신의 최후의 선택을 알고서 깜짝 놀라 옷자락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부왕마마, 제발 생각을 돌려주사이다. 만약 고구려군이 백제의 항복조건으로 부왕마마의 목숨을 요구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생각을 거두시고 소자와 함께 웅진으로 내려가 남아있는 충의의 무리를 불러모아 최후의 싸움을 치르는것만이 옳은 선택인줄 아옵나이다.》

아신은 서글픈 시선으로 태자를 굽어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백제를 살릴수가 있다면 나 하나의 목숨이 무엇이겠느냐. 너는 어서 지체말고 한산성을 떠나거라.》

《페하, 항복은 절대로 아니되옵니다. 그것은 나라의 수치오이다.》

태자 전지가 편전마루를 머리로 쪼으며 울부짖는데 깨진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있었다.

아신은 이를 부드득 갈며 태자를 굽어보다가 갈린 목소리로 웨쳤다.

《왜 이리 어리석으냐. … 내가 널 남쪽으로 내려보내는 진의도를 정말 모르겠느냐? 고구려군이 날 죽이면 네가 살아남아 반드시 원한을 갚고 오늘의 수치를 씻거라.》

아신은 위사대의 무사들에게 령을 내려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태자를 억지로 끌고나가게 하였다.

위사대의 천여명 결사대가 태자 전지를 옹위하여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떠난 뒤 드디여 백제어라하 아신은 고구려의 영락태왕 담덕에게 사신을 보내여 항복의 뜻을 표하였다.

백제를 보존하며 왕의 목숨을 살려만 준다면 그 어떤 가혹한 조건이라도 즐겨 따르겠다고 하였다.

고구려군 진영에서 사신이 돌아왔다.

영락태왕 담덕은 아신의 항복을 너그럽게 받아주었다.

하지만 고구려에서 보내온 항복조건은 백제로서는 몹시 가혹한것이였다.

다시는 백제가 고구려를 반대하는 전투행동을 벌리지 못한다. 군사를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고구려에 그 정형을 일일이 보고해야 한다. 백제의 위사대의 수를 줄일것이며 백제가 고구려의 영원한 속국임을 아신왕이 직접 제 입으로 밝혀야 하며 고구려의 년호를 쓰고 일체 천자의 기발을 람용하지 않고 백관을 꾸미지 못한다. 10여명의 대신들과 왕족의 자제로 볼모를 보내고 조공을 해마다 올려야 한다.

이것중에 단 한가지라도 어길 경우에는 고구려군이 대군을 발동하여 도성으로 내려가 그 죄를 물을것이다.

또한 백제는 고구려군이 점령한 한수이북의 방대한 령토와 크고작은 성 58개, 그 성들에 배속된 700여개의 촌을 고스란히 넘겨주며 그곳을 고구려의 령토임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외에도 남녀노비 1 000명, 가는베 1000필을 고구려군에 전승물자로 바쳐야 한다.

이 모든것을 백제왕이 직접 포박을 지고 고구려군 진영으로 찾아와 제 입으로 밝혀야 한다. …

아신왕은 스스로 결박을 지고 성밖으로 나가 영락태왕의 군막으로 한걸음한걸음 나아갔다.

수만명의 고구려군사들이 삼엄하게 늘어서서 증오의 눈길을 보내는 사이를 고개를 푹 수그리고 비틀거리며 걷는 아신왕의 눈에서는 치욕의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고구려 영락태왕의 웅장한 일월기앞에 무릎을 끓었을 때 아신왕은 과연 무엇을 생각하였는가.

참담한 자신의 모습을 두고 비분에 떨었는가 아니면 그속에서 다시 일어설 백제의 앞날을 그려보았는가?!…

백제는 영락태왕앞에 굴복했다.

력사는 이렇듯 새로운 시대를 열어놓고있었다.

그 한걸음한걸음은 영락태왕 담덕이 검을 들고 개척한 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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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 - coder -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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