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2 장. 한산대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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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년 8월, 백제는 조정회의 결정으로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임명하였다.
진무에게는 393년 전쟁과 394년 수곡성대전에서 패한 수치를 씻기 위해 례성강을 건너 고구려의 대방계선까지 진출하여 고구려에 점령당한 령토를 되찾을 임무가 지워졌다.
392년에 있은 관미성대격전에서 연우에 의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진무는 그다음해 8월에 1만명의 정예병을 거느리고 관미성을 회복하기 위한 싸움에 나섰었다.
백제 아신왕은 진무를 전장으로 떠나보내면서 이런 말을 신신당부했었다.
《관미성은 우리 나라 북쪽변경의 관문과 같은 요충지인데 그것이 지금 고구려의 소유로 되였다. 이것을 짐이 통분하게 여기는바이니 그대는 마땅히 힘을 다해 수치를 씻어야 한다.》
아신왕의 이런 당부를 받은 진무는 기어이 관미성을 되찾아 떨어졌던 백제의 위신을 올려세우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진무는 은밀히 진군하여 야밤중에 관미성에 대한 불의의 공격을 진행했다. 백제가 관미성만 되찾는다면 고구려에 점령된 석현성 등 10여개 중요성들을 쉽사리 함락시킬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면 다시한번 힘과 용기를 얻고 일어나 고구려와 천하의 패권을 다툴수 있었다. 그러나 진무의 야망 아니, 백제의 기대는 또다시 물거품처럼 하늘로 날아나고말았다.
진무는 야음을 타서 불의의 공격을 진행하였으나 백제군이 얻은것은 쓰디쓴 참패뿐이였다.
진무는 패하여 물러난 백제군의 서렬을 정비한 후 또다시 솔선 앞장에 서서 관미성을 정면으로 공격하였다.
화살이 비발치듯 쏟아지는 속을 과감히 뚫고들어갔으나 고구려군이 성문을 열고 뜻하지 않은 반격으로 나오는 바람에 수많은 군사들만 잃고 쫓겨났다.
진무는 이렇게 물러설수 없었다.
관미성을 그대로 둔다는것은 백제의 옆구리에 고구려군이 항상 서슬푸른 날창을 내대고있는것이나 마찬가지였기때문이다. 관미성을 근본으로 삼고 발을 뻗친다면 한수 이북은 물먹은 담벽처럼 무너지게 될것이였다. 어떤 막대한 희생을 내면서라도 관미성만은 반드시 되찾아야 백제가 살아날수 있었던것이다.
하지만 진무가 아무리 온갖 지혜와 힘을 깡그리 쏟아부으며 군사를 썼으나 고구려군이 타고앉은 관미성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진무는 이를 갈았지만 끝내는 군사를 뒤로 물릴수밖에 없었다.
관미성을 되찾는다고 호언장담하며 떠났던 진무가 수천의 희생을 내고 패주하자 백제조정에서는 론난이 분분해졌다.
패전의 책임을 묻는 소리가 비발치듯 진무의 머리우에 쏟아졌다.
아신왕은 조정대신들이 모두 들고일어나는 바람에 더이상 외삼촌인 진무를 비호해줄수 없게 되였다.
진무는 조정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 관직을 벗어놓았지만 마음은 항상 자기가 당한 수치를 씻을 야심으로 불태웠다.
웅진으로 내려간 진무는 아신왕의 비밀지시를 받고서 신라전선에 배비하였던 1만명의 군사를 떼여내여 1년간이나 양병하였다.
고구려군에 대항할수 있는 전법을 익혔고 장수들을 로련하고 무예가 뛰여난자들로 바꾸었다. 근 1년간이나 착실히 준비를 갖춘 후에 진무는 아신왕에게 신하가 임금에게 군사를 동원시킬수 있게 요청하는 상주문인 출사표를 올렸다.
고구려군이 관미성에 든든히 발을 붙이고 남쪽으로 힘을 뻗치고있는 조건에서 그냥 둬둘수 없으니 기마군사들을 동원하여 수곡성방면으로 진출하여 불의에 고구려군의 배후를 급습하겠다는것이 출사표의 내용이였다. 아신왕은 곧 진무의 제의를 윤허하였다.
그래도 백제에서는 고구려군의 진출을 막고 나라를 버티여낼수 있는 기둥이 진무밖에 없었던것이다.
진무는 은밀히 수곡성방면으로 진격하였다. 그러나 싸움에서는 백제의 진무보다 고구려의 영락태왕 담덕이 늘 한발 앞섰다.
고구려 왕당군에는 태왕직속의 비밀부대가 있었다.
적측에 대한 정보수집을 기본으로 하는 이 부대의 활약에 의해 백제의 계책은 좌절되고말았다.
백제
백제군은 진무의 군사행동과 별개로 하나의 타격집단을 관미성쪽으로 보내여 고구려남부군 주력을 여기에 못박아놓으려고 하였었다. 하여 고구려군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수곡성방면에서 전선을 깨뜨리고 곧 수만의 군사로 대대적인 반격을 들이댈 전략을 세우고있었던것이다.
1년간이나 백제의 룡수부가 꾸민 이 치밀한 전략이 그만에야 고구려근위군과 세작들의 활약에 의해서 좌절되였던것이다.
고구려군은 첩자들의 보고에 의해 백제군의 전략과 진격로를 정확히 알게 되였지만 정황은 결정적으로 불리하였다. 백제군이 질풍같이 진격해오고있는 형편에서 갑자기 예비군을 어디에서 끌어온단 말인가?!
저 멀리 국내성에 수만명의 대당(고구려 중앙군)의 무력이 집결되여있으나 그들을 전선에 투입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영락태왕은 즉시 결심을 내리였다.
대방계선시찰에 따라온 왕당군의 5천명 개마무사부대를 직접 이끌고 수곡성으로 달려가 백제군과 맞부딪치기로 결심한것이였다. 여러
영락태왕은 자기가 결심한것은 꼭 해내고야마는 성미였다.
고구려군은 백제군의 기도를 정확히 알고있는 유리한 조건이였지만 반대로 백제군보다 병력이 반수도 못되였다.
하지만 영락태왕은 추호의 동요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백제군보다 한발 앞서 수곡성까지 당도한 고구려군은 영락태왕의 령대로 매복진을 폈다.
수곡성아래까지 잠시의 휴식도 없이 먼길을 헐레벌떡 달려온 백제군은 갑자기 사방에서 일어나 맞받아치는 고구려철기군의 매복공격에 넋을 잃었다. 진무는 어떻게 하나 혼란된 군중을 수습해보려고 뛰여다녔으나 이미 기울어진 사태를 역전시킬 그 어떤 기적도 일어날수 없었다. 고구려군은 영락태왕이 직접 진두에 서있었기에 하나가 백을 당하는 기세였다.
온종일 진행된 싸움에서 백제군은 고구려개마무사부대의 위력에 못견디여 5천의 병력을 잃고 무질서하게 패주하였다.
고구려는 백제가 다시는 반격해오지 못하도록 남쪽의 요충지마다에 《국남7성》이라고 일컫는 방어성들을 쌓아놓았다.
국남7성은 례성강 서남지방, 즉 오늘의 황해남도 남부해안지대에 쌓은 성들이였다.
또한 이미전부터 평양지방에 건설하던 아홉개의 사원이 완공됨으로써 고구려는 삼국통일위업을 완수할 의지를 천하에 과시할수 있었다.
백제는 멸망의 낭떠러지를 향해 굴러가고있었다.
한편 392년 10월에 있은 관미성대격전으로 막대한 희생을 낸 가야-왜군은 그 이듬해 5월 백제의 지원을 받아 신라땅으로 쳐들어갔으나 신라군의 반격으로 독산에서 또다시 패전하였다.
가야-왜군은 련이은 패전으로 더는 싸움을 계속할 능력을 잃고 남쪽으로 퇴군해갔다.
그해 가을에 왜군은 일부 부대만이 가야땅에 머물고 전부 왜땅으로 물러갔으며 가야군도 뿔뿔이 자기 고향으로 헤쳐져갔다.
가야에서는 큰 분렬이 일어났다.
백제의 강력한 후원을 기대하여 고구려와의 전쟁에 적극 추종하였던 금관가야국이 자기의 세력지반을 잃고 종주국의 지위에서 굴러떨어진것이였다. 고구려와의 전쟁에 이러저러한 구실을 대고 병력을 보내지 않았던 고령가야국이 힘을 축적하고 일어서서 아라가야와 금관가야국을 누르고 가야의 맹주로 되였다. 새로 가야의 맹주로 일어선 고령가야는 더이상 백제에 동조하다가는 나라가 멸망할수 있다는것을 깨닫고 전쟁에서 발을 뽑기로 결심하였다.
고령가야의 제가평의회에서는 백제에 더는 파병을 하지 않는다는것이 만장일치로 가결되였다.
백제는 가뜩이나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헤여나오기 어려운 수렁속에 깊숙이 빠져든데다가 손아래 동맹자인 가야까지 잃게 되였다.
이제는 고립된 처지에서 홀로 고구려라는 대국과 맞서싸워야 했다.
백제는 어떻게 하나 땅바닥에 떨어진
고구려의 남하를 막고 반격의 기회를 마련한다면 가야도 다시 따라나설것이라고 타산한 백제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광분하였다.
전국각지에서 15살이상의 장정들을 모두 군사로 끌어들이고 조세를 배로 올려 전쟁물자로 충당했으며 군마를 모아들이고 미친듯이 무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준비밑에 백제의 아신왕은 패전의 죄를 쓰고 좌천되였던 진무를 병관좌평으로 다시 임명하고 다시 고구려에 도전하도록 하였다.
아신왕은 진무에게 큰 기대를 걸고있었다.
만약 진무가 또다시 패전하여 돌아온다면 아신왕
나라가 기울어지는것을 더는 수수방관할수 없으니 운명을 걸고서라도 이것을 막아야 했던것이다.
한산성을 떠나는 출정군을 아신왕은 직접 성밖 10리밖에까지 나와 바래워주었다. 아신왕은 7월의 열풍에 쩌들어 누렇게 색이 바랜 언덕우에 말을 세우고서 아래를 지나치는 군사들의 무표정한 얼굴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아신왕의 눈앞으로 전국각지에서 불러올린 군사들이 행군종대를 지어 끊임없이 지나갔다. 아신왕은 랭정한 눈길로 군사들을 굽어보면서 과연 이 길이 승전으로 이어지겠는가 생각해보았다.
사실상 이번 출정은 백제가 고구려와의 전쟁에 마지막으로 내댄 도박밑천이라고 할수 있었다. 하여 아신은 출정군이 승전하기를 빌며 직접 성밖에까지 나왔던것이다.
수하장수들을 휘동하고 언덕우로 올라온 진무가 아신에게 군례를 올리고나서 사뭇 굳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페하, 그럼 신들은 이만 떠나겠소이다.》
아신은 진무를 향해 돌아섰다.
《진무
비록 말은 이렇게 하였으나 아신의 말투에서는 쌀쌀하고 남을 잘 믿지 않는 어조가 짙게 내비치고있었다.
진무는 순간 가슴이 싸늘해졌다.
아무리 자기가 올려앉힌 왕이라고 해도 이따끔 아신을 대할 때면 두려움이 가슴 한구석에서 싹트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고구려군과의 격전에서 매번 패해서인가?
그렇다면 이번 출정에서도 패하는 경우 나는 권력은 물론이고 모든것을 잃게 될것이 아닌가?
진무는 복잡하고도 불안한 심정을 애써 누르며 전장으로 나갔다.
…
얼음장같은 찬 기운을 안은 시꺼먼 구름들이 북쪽으로 서서히 흘러가고있었다. 뽀얗게 먼지를 휩쓸어올린 바람이 회오리치며 언덕아래 행길을 따라 북쪽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백제군의 종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군사들은 기승을 부리는 바람의 세례를 피하느라 짜증난 표정으로 얼굴을 돌리고있었고 기마군사들이 탄 말들은 대가리를 잔뜩 수그린채 마지못해 걸어가고있었다.
한산성을 떠나 북상하는 백제군은 낮과 밤이 따로없이 강행을 들이대고있었다. 이들앞에 부과된 임무는 고구려군의 저지선을 뚫고 례성강을 건너 대방땅에 주둔하고있는 고구려남부군을 포위섬멸하는것이였다. 고구려남부군은 거의 대다수 부대가 료서의 후연군과의 싸움에 출전하였으니 남아있는 주력군이래야 5천명도 안되였다.
절호의 기회였다.
백제군이 대방계선에 뚫고들어가 강력한 타격을 가해 고구려군을 분쇄한다면 이미 빼앗겼던 석현성 등 10여개 성들을 다시 탈환할수 있었다. 하기에 백제 병관좌평 진무는 고구려남부군이 집결하기 전에 짓밟아버리려고 1만명의 정예무력으로 쉴새없이 북상하고있는것이였다.
연로에서 맞다드는 소수의 고구려집단들을 련이어 격파하면서 차츰 례성강을 가까이하고있었다.
한편으로 백제군은 각 전선에서 력량을 보강해가지고 전면적인 공격에로 진입했다.
전전선에 걸쳐 피의 대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원래 고구려는 394년 전쟁이후 일단 전선이 고착되자 모든 력량을 서북에로 돌릴 결심을 내렸다. 392년에 있은 고구려군의 원정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고 한동안 숨을 죽이고있던 거란족이 후연의 힘을 빌어 다시 국력을 회복하고 고구려의 지경을 넘보기 시작했던것이다.
거란족은 유목종족이라 자체로 강철무기를 생산할수 없었다. 이러한것으로 하여 중원과 사막지대를 오고가는 군상들에게서 무기와 전쟁물자들을 사들이지 않으면 전쟁을 치를수 없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고구려군과 거란족과의 전면전이 발발할 징조가 보이자 군상들이 하나같이 거란족과 손을 끊어버리였다.
물론 이러한 때 무기장사를 대대적으로 벌리면 큰 리익을 볼수 있었으나 아무리 장사밖에 모르는 군상들이라 하지만 거란족에 무기를 팔아주고
강국 고구려와 등질 생각은 꼬물만큼도 없었기때문이였다. 더우기 군상들의 우두머리라고 할수 있는 위문이 거란과 손을 끊고
이것은 거란족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하여 거란족은 고구려원정군이 퇴군해가자 패전의 수치를 씻을 일념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적국이나 다름없는 후연에 찾아가 머리를 숙이였다. 후연은 거란족의 간청을 쾌히 받아들였다. 거란족과 고구려가 서로 료서에서 전쟁을 벌려 량자가 다 쇠약해진다면 후연은 그 어부지리를 얻을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당시 후연도 형편이 편안치는 않았다. 료서에서 고구려군과의 대결은 후연의 련이은 참패로 이어지고있어 국력이 차츰 쇠약해지는 결과만을 가져오고있었던것이다.
더우기 새로 일어선 북위가 후연을 표적으로 군사행동을 벌리고있어 처지가 말이 아니였다.
이러한 때 거란족이 고구려를 복수하겠다고 스스로 나서는데야 도움을 아니줄수 있겠는가. 후연은 거란족의 말을 비롯해서 짐승들을 받는 대신에 수만자루의 창, 검과 화살과 같은 무기를 대량적으로 대주었다.
뿐만아니라 앞으로 거란족이 고구려에 쳐들어간다면 고구려군의 배후를 치겠다고 철석같은 약속도 하였다.
후연은 거란족과 고구려가 죽기내기로 싸운다면 그 기회에 수십만명의 대군을 발동하여 불의에 고구려령토를 침공할 야망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거란족은 후연의 지원으로 힘을 얻고 일어서서 고구려령토를 게걸스럽게 물어뜯기 시작했다.
서북방은 거란군과의 싸움으로 소요가 끊기지 않고있었다.
영락태왕은 남부전선에서 전투행동을 중지하고서라도 북쪽으로 원정하여 거란족을 아예 멸망시켜야 한다는것을 절감하였다. 하여 고구려
평양을 떠나 국내성을 거쳐 거란으로 원정하려는 영락태왕의 앞을 백제가 또다시 막아나선것이였다.
영락태왕은 불같은 성미 그대로 평양성에 있는 무력만을 이끌고 곧장 백제군을 맞받아 림진강까지 달려갔다. 한편 간자들의 보고를 통해 영락태왕이 불과 수천명의 무력만을 이끌고 림진강으로 내려오고있다는 소식을 들은 백제 병관좌평 진무는 두눈을 부릅뜨고 이를 갈았다.
그는 이 기회에 기어이 고구려군을 패주시키고 담덕을 사로잡을 야망으로 가슴을 불태웠다. 백제군은 이미 연로의 고구려진들을 련이어 격파하여 그 기세가 왕성하였다.
드디여 량군은 강을 앞에 두고 서로 진을 쳤다.
진무는 오랜 로장답게 고구려군이 치중부대도 없이 여기까지 달려왔음을 어렵지 않게 간파하였다. 실지로 고구려군은 모든 힘을 북방으로 돌리고있어 영락태왕이 이끌고온 병력은 대당의 무력 2천명에 태왕을 호위하는 일월수호당의 근위병들과 평양성 주둔무력의 일부만이였다.
진무는 될수록이면 시간을 끌 작정이였다.
고구려군이 식량이 떨어져 혼란이 일어난다면 그 기회에 강을 도하하여 기습공격할 결심이였다.
이미전에 배란 배는 모두 이쪽 기슭에 잡아두었으니 성공은 문제없을것이였다.
영락태왕 담덕은 두가지 선택을 취할수 있었다.
하나는 식량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급히 강을 건너가 백제군영을 기습하는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제라도 거란으로 원정해간 북방군을 불러들이고 후방물자를 든든히 갖추어 방어전으로 이전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진무는 영락태왕이 이 두가지 선택을 다 취하지 못할것이라고 짐작하고있었다. 그것은 두가지가 다 고구려군에 결정적으로 불리한것이였기때문이였다.
진무는 강대안의 고구려군진을 노려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늘이여, 이제야 절 도우시나이까. 부디 승전을 내려주옵소서!》
지금까지는 모든 전국이 백제에 유리하였다.
…
백제군 본영 맞은편 기슭에 자리잡은 고구려군영에서는 밤이 늦도록
《지금의 형편에서는 주머니전술이 가장 적합하오. 여기서 적이 공격해오길 기다릴것이 아니라 빨리 군사를 뒤로 물려 백제군을 지경안에 더 깊숙이 끌어들인 다음 평양성 방면에서 한창 새로 모집하고있는 군사들과 협공하여 전멸시키는것이 가장 좋은 계책이요.》
대당의
《그대의 주장이야말로 적이 진정 바라는것이요. 고구려의 많은 령토가 백제군의 발밑에 밟혔는데도 그런 주장이 나오는가? 모두들 태왕페하의 말씀을 듣지 못했소? 우리가 여기서 물러서면 빈 공백이 생기게 되고 백제는 그 공백으로 수만의 대군을 들이밀어 전전선에 걸쳐 총공격전에 진입할것이요. 우리는 반드시 이곳에서 죽기로써 싸워 적을 격멸하여야 하오.》
《일월수호당주의 말에도 일리가 있소만 무얼 가지고 싸울테요?
우리 고구려군은 백제군의 반수에도 미치지 못하오. 그것보다 더 심각한것은 치중보급이 끊어졌단 말이요.》
대당주 부연수가 오금을 박듯 말을 꺼내자 미추는 눈섭을 곤두세우고 그와 맞섰다.
《그래 대모달께서는 감히 페하의 명을 거역하겠다는것이요? 좋소이다. 날이 밝으면 페하께 아뢰고나서 내가 직접 선봉에 서서 백제군의 진지를 공격할것이니 그대들은 여기에 남으시오. 고구려사람의 기개가 어떤것인가 그 두눈으로 똑똑히 보시오.》
미추의 장담에 대모달 부연수는 쓰거운듯 웃었다.
《강을 건너야 적과 싸울게 아니요. 날개가 달리지 않은 다음에야 저 넓은 강을 무슨 수로 넘을테요?》
《이미전에 수백척의 떼목을 뭇지 않았소이까. 그 떼목을 타고 불의에 기습공격을 들이댄다면 승산이 있을것이오이다.》
왕당군의 장수 한명이 나서서 은근히 상관인 미추의 편역을 들자 대모달 부연수는 벌컥 화를 내였다.
《이건 뭐요? 모두가 스스로 죽자는건가. 백제군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속에서 대낮에 떼목을 무은것도 모자라 그것을 타고 무모하게 공격하겠다는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들겠다는것과 무엇이 다른가?》
《옳소이다. 백제군 진지에 잠입한 우리 세작들이 보내온 첩보를 잊으셨소? 우리가 떼목을 만들어 띄운 상류의 대안에 백제군이 이동하여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있다고 하오. 정면공격은 절대로 아니되오.》
모두 놀라서 황급히 돌아보니 영락태왕이 장막입구에 우람한 전신을 드러내고 우뚝 서있는 모습이 눈에 뜨이였다.
모든
《짐이 밖에서 들으니 모두가 제각기 일리가 있는 주장들을 하였소.
하지만 전쟁의 승패를 책임진
장막안에 모인
《아니, 그럼 페하께서는 이 밤중에 단신으로 전방진지에 나가셨댔다는 소리가 아니오이까?》
태왕의 신변호위를 책임진 일월수호당주 미추가 사색이 되여 부르짖자 담덕은 태연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짐이 말하지 않았는가.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려면 비좁은 장막안에 있기보다 전방진지에 나가 승전을 위한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짐이 전방진지로 나간 덕분에 승전의 방도를 하나 찾을수가 있었다.》
영락태왕 담덕은 이런 말로 미추를 안심시키고는 밖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오너라.》
담덕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왕당군의 복색을 갖춘 장수가 민가에 흔한 커다란 오지항아리를 안고서 구부정하여 장막안에 들어서는것이였다. 그의 행색은 말이 아니였다. 방금전에 물속에서 건져낸것처럼 온몸에서 아직도 물이 뚝뚝 흘러내리는데 무릎우까지 감탕에 푹 젖어있었다. 그는 맹광의 북방군 현무당의 편장이였던 수신이였다.
맹광은 2차 거란원정의 선봉장이 되여 북방군 현무당을 거느리고 떠날 때 수신을 평양성에 떨구어두었었다.
앞으로 백제의 도성 한산성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수군을 선봉에 세우려는 영락태왕의 전략에 맞게 패수가에서 정예의 수군을 조련시킬 소임을 수신이 맡아안게 되였던것이다. 수신은 이미 관미성 공격전때 모자라는 전함을 대신하여 조세나 실어나르는 조운선에 태왕군을 실어나를 계책을 내놓았으며 유명한 사공출신답게 선단을 지휘하여 제때에 관미성으로 진격해들어가 대군을 상륙시켜 승전을 마련하는데 큰 공을 세운것으로 하여 태왕군, 즉 고구려근위군의 장수로 승진하였던것이다.
패수가에서 수군을 조련시키다가 태왕의 이번 출정에 용약 팔을 걷고 따라온 수신이였다.
《그대들이 이 장막안에서 옥신각신하는 동안 저기 수신은 이 오지항아리를 안고 강을 여러번이나 헤여건느면서 적정을 살피고 수심을 재였으며 도하에 유리한 지형을 찾아헤매였다고 한다. 그대들은 수신의 행동에서 생각되는것이 없는가?》
담덕의 꾸중을 듣고
《페하, 소장은 륙전에 서툴러 전군에 짐이 될가봐 근심하던 끝에 그래도 물귀신이라고 붙은 이름값이라도 하자고 강을 헤여건느면서 적정을 탐지했을뿐이지 페하의 치하를 받을 공을 세우지 못했나이다. …》
수신의 어리숙한 변명에 좌중의 분위기가 한결 밝아졌다.
담덕은 아직도 태왕의 치하를 받는것이 꿈이 아닌가싶어 커다란 오지항아리를 안고 구부정하여 서있는 수신을 바라보고는 호탕하게 웃으며 이런 롱을 하였다.
《그런데 그속에 꿀이라도 들어있는게냐? 무거울텐데 이젠 그만 내려놓거라. 짐이 무엇이 들어있는지 그 속을 한번 들여다봐야겠다.》
담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좌중에는 웃음이 터져올랐다.
수신은 그제서야
태왕의 질책을 받고 기가 질렸던
장막안에 웃음이 가셔지자 수신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가 영락태왕의 앞에 나서서 보고를 하였다.
《페하, 신이 적정을 탐지해본데 의하면 백제군은 이미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고 진을 보강하였나이다. 수심이 얕아 도하에 유리한 곳과 여울목에는 복병이 득실거렸고 우리가 떼목을 만들어 띄운 건너편 기슭에는 백제군의 주력이 이동하여 배비를 끝냈소이다.》
수신의 보고를 들은 좌중의 분위기가 또다시 술렁거리는데 오직 영락태왕 담덕만은 침착한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미 예견했던 정황인데 뭐가 두려워 그러는가. 적의 머리수를 두려워하고 부딪친 난관에 동요하기보다 할수 있는 일은 찾아서 하거라. 전쟁이란 어느 한 장수가 계책을 내고 싸워 이기는것이 아니다.
상하가 일치단결하여 이길수 있는 방도를 하나하나 마련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승전에로 이끌어가는 비결이다.》
담덕은 이렇게
《그런데 이런 오지항아리는 어디서 얻었느냐?》
갑자기 태왕이 말을 바꾸자 수신은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우물거렸다.
《저… 실은 군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오지항아리를 구워내는 옹기쟁이들의 마을이 있소이다. 원래는 말에게 물을 먹이는 물통이 신통치 않아 하나 사온것인데 물에 잘 뜨는 물건이라 소장이 시험삼아 안고서 강을 헤여건너본것이오이다.》
《그럼 그대처럼 물우에서 자란것이 아니라 산골태생으로 물을 두려워하는자들도 이것만 있으면 얼마든지 강을 건늘수 있겠군. …》
태왕의 말이 여기까지 미치자 수신은 성수가 나서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이러한 오지항아리가 여럿되면 사람뿐아니라 말도 태워 건늘수 있소이다.》
담덕이 두눈을 빛내이며 수신에게 한발 다가섰다.
《그 마을에 이러한 항아리가 많은가?》
《옹기쟁이들이 사는 마을이라 수천개는 있을것이오이다.》
《짐이 사람들을 붙여주겠으니 그대는 한시바삐 달려가 그곳 백성들에게 량해를 구하고서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사가지고 날이 밝기 전에 돌아오라.》
태왕의 명령을 직접 받은 수신은 물론이요. 장막안의 모든 장수들이 영문을 몰라 서로 돌아보았다.
《페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 많은 항아리들을 군영에 두고서는 무엇에 쓰시려고 하시나이까?》
대당주 부연수가 조심히 묻는 말에 담덕은 어둠속에 잠긴 적진을 바라보며 낮게 말하였다.
《짐이 말하지 않았소. 승전하기 위한 방도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이 전쟁에서 이기는 과정이라고… 바로 저 항아리가 그 방도중에 한가지가 될것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