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2 장. 한산대격전

5

 

모닥불앞에 남자와 녀자 두사람이 마주앉아있었다.

광야와 마주선 숲속에서부터 불어오는 싸늘한 바람이 그들의 등을 잽싸게 후려치며 기묘한 소리로 휘파람을 불고있었다.

남자는 나이가 거의 쉰에 가까운 장년의 사나이로서 왼쪽볼에 칼자리가 유표했다. 모닥불가운데 적동색으로 타들어간 얼굴은 유표한 칼자리로 하여 험상궂게 보여야겠으나 오히려 따뜻하고 다정한 기색이 떠돌고있었다.

녀인은 두다리를 치마자락밑에 구부려넣고 두손을 무릎우에 얌전히 올려놓았는데 수수한 비단천으로 머리를 감싸고있어 그밑으로 하얀 얼굴이 절반가량 드러나보일뿐이였다.

머리수건의 그늘때문에 두눈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밑으로 매끈한 코마루와 꼭 다문 예쁘장한 입술이 보였다.

모닥불은 간간이 안타깝게 타오르고있었다.

조금전에 사나이가 골짜기에서 삭정이를 한아름 안고와 잘게 쪼개여 불우에 올려놓았으나 나무가 젖어서인지 차츰 기세가 숙어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바람이 점점 더 세차지는것이 그들의 마음에 걸렸다.

이러다가는 이 캄캄한 광야에서 불도 없이 하루밤을 꼬박 새울수 있었던것이다.

《참, 하늘의 조화란 모를 일이다. 네가 결국은 맹광과 나를 살려냈구나. 너는 우릴 구원하려고 하늘이 내려보낸 처녀가 분명해.》

사나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종의 만족감이 어린 표정으로 말을 던지자 녀인은 장기간의 피로와 굶주림에 지친 몸이였지만 얼굴에는 따뜻한 빛을 담았다. 사나이는 삭정이를 하나 들고 모닥불을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무엇인가 굴려내왔다. 크기가 주먹만 한 마 한알이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있었다.

사나이는 흐뭇한 표정으로 잘 구워진 마를 처녀에게 권했다.

《네가 며칠째 굶더니 얼굴이 몹시 축갔구나. 어서 이거라도 맛보아라.》

녀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먼저 드세요. 전 아직 배고픈것을 모르겠어요.》

사나이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지 말아. 어떻게든 이 광야를 지나야 목적지에 가닿을수 있고 맹광을 만날게 아니냐.》

녀인은 힘없이 웃으며 사나이가 억지로 쥐여주는 마를 입에 가져다 댔다. 사나이는 녀인이 구운 마를 박속같은 하얀 이로 조금씩 떼여먹는것을 보면서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내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구나. 넌 그 황량한 무인지경에서 의식이 없는 나를 죽을 고생을 다하며 살려주었는데 명색이 남자라는것이 아직까지 너 하나 배불리 먹여줄수 없구나.》

녀인은 맑은 눈물이 고인 검은 눈을 들었다.

《아저씨, 그만해주세요. 아저씨가 제 마음의 기둥이 되여주지 않았더라면 거란땅에서 도망쳐서 이렇듯 1년이나 버티여내지 못했을거예요. 아저씨는 먼저 세상을 떠나신 제 부모님과 삼촌을 대신하여 절 이끌어주신 은인이예요.》

사나이는 아무말없이 어둠속에서 고요히 숨쉬는 광야를 바라보고있었다. 녀인의 말이 옳았다.

그들 둘은 1년이란 세월을 온갖 고초를 다 겪으며 꿋꿋이 견디여냈던것이다. 거란땅에서 거란의 추격군과 맞다들려 사경에 처했던 하평을 소운이 구원해내였다.

사람의 운명이란 참으로 지꿎은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맹광과 운명의 끈으로 엮어진 소운이와 하평이 이렇듯 거란의 황량한 초원에서 맞다들게 될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처음에 하평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를 구원해낸 소운이란 처녀가 맹광과 운명으로 이어진 처녀인줄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다.

하평은 어느 한 우연한 기회에 처녀가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있는 은장도를 보고 그것이 자기가 맹광과 헤여질 때 쥐여준 그 은장도임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던것이다.

신성군영의 옥을 습격하여 맹광을 탈출시키고 그길로 방랑하던 하평은 그만에야 고구려에 쳐들어온 거란족에 포로로 붙잡히는 몸이 되였다. 수개월간 고초를 겪던 끝에 야음을 타서 포로로 붙잡힌 고구려백성들을 구출하고 도망쳐나오다가 추격병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치렬한 싸움끝에 중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하평을 소운이 구원해내였다. 소운은 하평을 업고서 보름이나 초원을 헤매였다.

굶주림과 맹수들의 부단한 습격을 받으면서도 생명을 건졌다는것은 그자체가 기적이라고 할수 있는것이였다.

다행히 사막을 횡단하는 비단장사군일행의 손에 구원되여 그들과 함께 장성을 넘게 되였다.

물론 그 길은 소운이 목적하고있는 고국과 정 반대의 길이였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료서의 수백리 초원을 지나 고국 고구려로 돌아가기보다 좀 에돌더라도 중원에서 기회를 보다가 배길을 리용하는편이 더 빠를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비단장사군일행은 동란의 시기에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위험한 장사를 벌리고있는 사람들이였다.

수시로 도적떼의 습격을 당하기도 하고 또 정규군이라 하지만 중원국가들의 군대 역시 도적들과 다를바없어 꺼리낌없이 물건을 략탈해갔다. 하지만 잘만 하면 큰 리윤을 남기는 장사이기도 했다.

여러 나라와 세력으로 갈라져 광대한 령토를 차지하느라 혈전을 벌리고있는 동란의 시기라 물건의 교역과 류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비단값이 배로 폭등했던것이다.

이러한 장사는 생명을 내대여야 하는 극히 위험한짓이지만 또 그만큼 돌아오는 리윤도 컸다.

장사군일행은 하평이 고구려출신의 무사임을 알아보고 군말없이 그와 소운일 무리속에 끼워주었다.

언제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를 황량한 초원을 헤매는 장사군들이라 무예가 뛰여난 무사라니 마다할리가 없었다.

하평이나 소운이 역시 둘이 외롭게 야만인들의 지역을 향방없이 헤매일것이 아니라 일정한 세력을 가진 장사군일행에 몸을 담는것이 유리했던것이다. 그들은 거의 1년간이나 중원 각지를 떠돌아다녔다.

가깝게는 하평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유주로부터 시작하여 황하를 건너 중원의 오랜 도시인 장안과 락양에도 가보았다.

이 과정에 중원의 문물과 풍토, 지리 등을 잘 알게 되였으며 많은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고 그들의 도움으로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갈 길도 열리게 된것이였다.

그들은 황하의 물이 서쪽에서 흘러들어 다시 동쪽으로 흘러가는 지점에서 장사군일행과 갈라졌다.

이제는 황하의 흐름을 따라 곧바로 동쪽으로 가면 제(산동)땅에 닿을수 있으며 장안에서 안면을 익혔던 장사군들의 도움을 받아 배길로 황해(서해)를 건너 고구려로 갈수 있었다.

비단장사군일행은 하평과 소운에게 헤여지면서 많은 로자를 내놓았다. 그들은 때가 란세이니만큼 자기들과 함께 부를 축적한 후에 기회를 보아 고구려로 가는것이 좋지 않은가 권고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하평이와 소운은 그들의 제의를 따를수 없었다.

꿈결에도 못 잊는 고국, 나서자란 고향으로 가려는것은 그들이 어느 한시도 잊지 않고있는 갈망인것이였다.

황하의 기슭을 따라 걷고 또 걷던 하평이와 소운의 앞길에 또다시 난관이 가로막았다.

386년, 대지방에서 일어난 북위는 탁발선비족의 섭규가 세운 나라인데 점차 세력을 뻗쳐 후연과 대결하게 되였다.

후연은 전진왕 부견이 전 중원지방을 제패할 야심으로 동진을 공격하다가 비수격전에서 대참패를 당하고 약화된 기회에 모용수가 384년에 세운 나라였다.

모용수는 우선 그 첫시작으로 멸망의 길로 줄달음치는 전진의 령토를 야수와 같이 맹렬하게 물어뜯었다.

이러한 전쟁으로 하여 료서, 료동지방에서는 또다시 혼란과 무정부사태가 계속되였다.

드디여 전진을 멸망시킨 후연은 385년에 중산(오늘날 하북성 안평부근)에 수도를 정하고 북부중국의 광대한 령토를 손에 넣었으며 동방의 고구려의 령토까지 넘보며 수시로 전쟁의 불을 질러댔다.

하여 료서지방은 후연과 고구려의 일대 전초지로 변하고말았던것이다.

한편 386년에 일어난 북위는 후연이 차지한 령토를 노리고 대결에로 뛰여들었으며 그로 하여 두 나라사이에는 충돌과 싸움이 그치지 않고있었다.

그 싸움의 불길이 황하류역에까지 번져져 하평이와 소운은 하는수없이 목적했던 길을 에돌아 이렇듯 곤난을 겪으며 가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였다.

소운이는 지금 침침한 어둠속에서 고요하게 잠자고있는 광야를 바라보며 사람의 한생이 왜 이다지도 모질가 하고 생각하고있었다.

그러는 속에 1년전 맹광과 며칠간 함께 지내던 추억이 떠오르며 언제면 그이와 만나게 되겠는지 하는 야릇한 감정에 젖어들군 하였다.

맹광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있을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있겠는지…

소운이는 차겁고 랭철한 현실세계에로 돌아와 얼굴을 붉혔다.

맹광과 다시 만난다는 담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소운은 맹광과의 상봉을 확신하고있으며 반드시 그를 꼭 다시 만나 끊어졌던 사랑의 샘줄기를 다시 이으리라 열망하고있었다.

소운이의 기색을 곁눈으로 살피던 하평은 부지중 한숨을 내쉬였다.

그는 소운의 마음을 잘 알고있었다.

처녀는 비록 언제 한번 하평의 앞에서 자기 마음을 내색해본적이 없었으나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하평이 어찌 처녀의 속마음을 모르랴.

물론 하평은 맹광을 제 손으로 직접 훌륭한 무사로 키운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다. 맹광이 위험에 처했을 때 한몸으로 막아서서 구출해낸 생명의 은인이며 옳은 길로만 걷도록 이끌어준 스승이였다.

그래서인지 소운이를 대할 때마다 맹광의 얼굴을 노상 머리속에 떠올렸으며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 못 견디게 궁금하였다.

하평은 맹광을 위해서 소운이를 지켜야만 했다. 소운이의 기둥이 되고 지켜주는 방패가 되여야 했던것이다.

그것은 소운이가 자기를 살려준데 대한 단순한 은혜갚음이 아니였다.

하평은 이제 멀지 않아 인생의 황혼기를 바라보는 나이였다.

하평의 미래는 맹광이였다. 그는 자기의 꿈도 리상도 희망도 맹광이에게 걸고 한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이러한 하평이기에 소운에 대한 애정이 더했던것이다.

하평은 소운이 무엇인가 건네주는 바람에 깊은 상념에서 깨여났다.

얼결에 받아드니 손잡이에 물고기를 부각시켜 만든 자그마한 은장도였다.

《언제부터 아저씨에게 돌려드리려고 했었나이다. 아저씨가 유주에서 구출해내지 못한 상이라는 처녀애를 다시 만나면 주려고 수년세월 정히 만든 은장도인줄 알았나이다. 제곁엔 아저씨가 계시니 이걸 도로 받아주시오이다. …》

하평이의 눈꼬리가 치째여올라갔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맹광이 단순한 감정으로 이것을 너에게 주었다고 생각하지 말아. 이것은 자그마한 패물에 불과하지만 여기엔 넋이 깃들어있느니라. 혈육의 감정을 초월한 사람들만이 가질수 있는 순결한 넋이 있다.》

하평은 호흡을 가라앉히고 평상시로 돌아왔다.

고개를 푹 수그리고있는 소운의 하얀 얼굴을 바라보는 하평의 두눈에는 어느새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소운아, 다른 생각은 가지지 말아. 이건 맹광이 네게 준것이다. 친혈육처럼 따뜻한 감정으로 자기를 대해준 너에게 정표를 남긴것이다.

비록 이것은 내가 만들었으나 나 역시 네가 이것을 가지고있으니 정말 기쁘다. 이 자그마한 은장도가 귀해서가 아니다. 맹광의 사람 보는 눈이 뛰여났기에 내 마음이 더욱 기쁜것이다.》

소운의 크고 검은 눈에 맑은 이슬과도 같은 눈물이 반짝이였다.

하평은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이런 말을 소운이에게 해주었다.

《너도 보아 알겠지만 이 은장도의 손잡이에 난 물고기를 새겨넣었다. 내가 왜 부디 칼손잡이에 물고기를 새겨넣었는지 아느냐? 나는 평양지방의 패강기슭에서 태여났다. 태여나 걸음마를 익히기도 전부터 헤염치는 법을 배웠지. … 내가 태여난 패강에는 물고기가 많았다. 온갖 물고기가 다 있었다. 어려서부터 물과 인연을 맺고 살아서인지 난 지금도 물고기들을 사랑한단다. 물고기는 미물에 속하지만 어떤 놈들은 죽을 때 자기가 까난 자리에 와서 죽는것들도 있단다. 그래서 나는 항상 물고기를 새겨넣길 좋아하는것이다.》

이야기라기보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 향수에 절은 애절한 호소였다.

하평은 눈굽이 저려나는지 한동안 말을 끊었다가 담담한 어조로 계속 이어나갔다.

《…유주에 있을 때 맹광이가 계속 진짜 검을 달라고 떼를 쓰기에 나무칼을 만들어주었었다. 그런데 그녀석은 나무칼은 필요없으니 진짜 검을 가지고싶다는것이 아니겠니. … 오히려 얌전하게 앉아있던 다섯살잡이 상이가 나무칼을 몹시 탐냈거던. 그래서 상이에게 그것을 주었다. 적병들의 포위속에서 맹광이를 안고 빠져나올 때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남겨둘것이 없어 나무칼을 손에 쥐여주고 뛰쳐나왔지. 참, 류수같은 세월이다. 맹광이 어엿한 장부로 자라고 또 이렇게 선녀같은 소운이를 마음에 둔줄 누가 알았겠느냐, 허허…》

하평은 짐짓 롱을 하며 웃었지만 웃는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소운이는 벌써 다섯번째로 듣는 이야기였으나 들을 때마다 눈물이 솟구쳐오름을 느꼈다. 맹광이 겪은 불행이 어쩐지 제가 겪은 불행처럼 느껴졌고 그때마다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팠다. 맹광이가 누이동생 상이와 다시 만날 날이 있을가. 소운은 그날을 제 눈으로 본다면 죽어도 한이 없을것 같았다. 맹광이가 곁에 있으면 그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생리별의 응어리를 자기의 사랑으로 다소나마 풀어주고 씻어주고싶었지만 그럴수도 없는 몸이였다.

지금 맹광이가 어디에 있는지 또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모르고있지않는가.

《…진자사가 아들의 이름을 맹광이라고 지은것은 태여났을 때부터 눈빛이 매우 거세여서 아들이 커서 훌륭한 무사가 되길 바라서 지은것이라고 한다. 맹광은 진자사의 뜻과 우리의 기대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것이다. 이름그대로 우리의 마음속을 밝혀주는 빛발이 되겠지. …》

허허탄식하듯 중얼거리는 하평의 말을 들으며 소운은 머리를 들었다.

밤하늘에서는 한줌 보석을 뿌려놓은듯 무수한 별들이 나타나 반짝이고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소운을 손저어부르며 어둠속에서 광명으로 부르는것만 같이 보였다.

바람이 차츰 숙어들고있었다. …

모닥불곁에서 앉은채로 끄덕끄덕 졸고있던 하평은 소스라쳐 일어났다. 어느새 그의 날카로운 눈은 뿌옇게 회백색으로 밝아오는 광야를 노려보고있었고 손은 옆구리에 찬 검을 꽉 틀어잡고있었다.

멀리에서 함성인지 비명소리인지 모를 웅글은 소리가 불협화음으로 작아졌다커졌다 하며 가까이 다가오고있었다.

무수한 말발굽소리에 대지가 가느다랗게 몸을 떨었다.

소운은 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일어서는 서슬에 하평이 어깨우에 씌워주었던 양털덧옷이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분명 그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어떤 두 무장세력이 맞붙어 싸우는 소리였다.

차츰 죽어가는자들의 비명소리와 창검이 부딪치는 아츠러운 소리가 한데 어울려 들려왔다.

하평은 심상치 않은 일이 들이닥치고있음을 느꼈다. 아니, 느꼈다기 보다 오랜 무사로서의 륙감이 그것을 예고해주는것이였다.

발로 흙을 차던져 모닥불에 끼얹었다. 불티가 사방으로 날았다.

한참만에야 모닥불이 숨을 죽이고 흰 연기가 피여올랐다.

하평은 빨리 이 자리를 떠야 한다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무턱대고 발을 내짚을수는 없었다.

어디가 전장이고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던것이다.

자칫하면 전장의 틈사리에 끼워 목숨을 잃을수도 있었다.

하평이 후에 알게 된것이지만 이 거대한 광야 그자체가 하나의 대전장으로 화했었다.

수만의 군사들이 어둠속에서 여러 시간이나 격렬하게 피투성이싸움을 벌렸다.

하평은 누가 누구를 상대로 싸움을 벌리는줄 알수는 없었으나 여기가 제의 땅과 가까운 곳이므로 혹시 북위와 후연이 맞붙어 싸우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어쨌든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이 처절한 싸움판을 벗어나는것이 상책이였다. 어둠속에서 한무리의 군사들이 동쪽을 향해 들고뛰는 모습이 보였다. 하평은 얼른 소운의 어깨를 눌러 바위뒤에 몸을 숨기게 하였다. 대지가 부르르 진동하며 골짜기에서 기마수들의 대집단이 쏟아져나왔다. 다행이랄가 기마군사들은 그들이 숨어있는 곳을 그대로 지나 동쪽을 향해 그냥 질주하고있었다.

슬그머니 바위뒤로 돌아가 상반신을 쳐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하평은 깜짝 놀랐다. 무슨 영문에서인지 한무리의 기마군사들이 이쪽으로 말을 몰아대고있었던것이다.

어느새 기마군사들은 하평과 소운을 한가운데 넣고 빙 둘러쌌다.

하평은 소운을 등뒤에 세우고 재빨리 좌우를 둘러보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자기 한몸은 빠질수 있어도 소운이와 함께 뚫고나갈수는 없었다. 하평은 운명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였다. 하평은 둘러싸고있는자들이 복장을 보아 후연의 기마군사들임을 짐작했다. 고구려사람임을 숨겨야 했다. 만약 하평과 소운이 고구려사람이라는것을 알게 되면 전장에서 횡포할대로 횡포해진 후연의 기마군사들이 무슨짓을 벌릴지 모르는 일이였던것이다. 다행히 하평에게는 비단장사군들이 로자로 쓰라고 준 비단이 여러필 있었다.

비단장사군처럼 차리고서라도 이 사지판을 벗어나야 했다.

후연의 기마군사중에 우두머리로 보이는자가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웬 놈들이냐?》

하평은 짐짓 황송한 태도를 취하며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장안에서 제로 가는 장사군들이온데 그만 일행에서 루락되였소이다.》

《여기는 전장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간자가 아닌지 어이 알겠느냐?》

하평은 얼른 보짐을 풀어보였다.

《짐을 보면 알것이오이다. 여기가 전장인줄 알았으면 어찌 지나갈리 있겠소이까?》

말문이 막힌 그자는 소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저 계집은 누구인가?》

《제 딸이온데 먼길을 함께 하게 되였소이다.》

《혹시 저자들이 적측의 간자일수 있으니 본진으로 끌고가라. 장군께 직접 아뢰고 간자인지 아닌지를 밝혀내야 한다.》

놈은 부하들에게 이런 지시를 내렸다.

《우린 평범한 비단장사군들이요. 당신들과 함께 진영으로 갈 아무런 명분도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요.》

하평은 부질없는짓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소리를 높여 항변했다.

무지막지한 후연의 기마군사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창검을 내대며 하평과 소운을 무작정 내몰아댔다.

하평은 하는수없이 발을 내짚지 않을수 없었다.

주위는 벼랑도 큰 나무숲도 없는 허허벌판이였다.

설사 도망친다고 해도 얼마 못 가서 잡힐것이였다.

하평은 소운을 곁에 바싹 붙여세우고 기마군사들이 내모는대로 종종걸음을 칠수밖에 없었다.

한놈이 곁에 말을 멈추어세우더니 질그릇 깨지는듯 한 소리로 호령하였다.

《가만, 그 검을 이리 내놔. 도중에 딴짓을 꾸몄다가는 재미없을줄 알아라.》

무서운 분노가 온몸을 휩싸안자 하평은 두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그놈을 향해 돌아섰다.

소운이가 붙잡지만 않았어도 그자의 목은 눈깜빡할사이에 날아났을것이였다.

하평은 북받치는 화를 간신히 눌러참으며 검을 떼내여 넘겨주었다.

펑퍼짐한 들에 나서서야 하평은 후연군사들의 수가 방대함을 깨닫게 되였다. 사면팔방으로 수백, 수천의 기마종대가 끊임없이 흘러가고있었다. 어차피 군사들의 밀집서렬을 빠져나가기엔 이미 그른것이고 호송병들의 뒤를 따라야만 했다.

모든 부대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군해갔다.

하평은 소운이와 함께 거의 뛰다싶이 걷지 않으면 안되였다.

10여리쯤 내처 걸으니 림시로 꾸린 군영에 다달을수 있었다.

아마도 북위의 포로병인듯 수백여명이 끓어앉아있는 모습이 바라보였다. 백여명의 후연군사들이 창검을 삼엄하게 들고 포로들을 지키고서있었다. 군영안팎은 군사들로 꽉 들어찼다.

전령들이 분주하게 뛰여다니고있었다.

하평은 소운이와 함께 군영안으로 끌리여들어갔다.

조금전까지 혈전을 벌려서인지 군사들의 얼굴은 모두 하나같이 야수의 모습이였고 충혈된 눈에서는 살기가 번뜩이였다.

《웬 놈들이냐?》

키가 작달막한 후연장수가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호송병들에게 소리쳤다.

호송병이 허리를 굽히고 다가가 그자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탁한 소리로 호령하였다.

《저놈은 저기 포로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고 계집은 내 장막으로 끌고오너라.》

호송병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소운이의 연약한 어깨를 마구 눌러잡았다. 소운이가 공포에 질려 비명소리를 냈다.

하평은 머리속에서 피가 솟는것을 어쩔수가 없어 앞뒤를 재여볼새 없이 한달음에 뛰여가 소운을 잡아끄는 호송병들을 때려눕혔다.

세놈이 허깨비처럼 나가떨어지자 후연장수는 눈이 뒤집혀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뭣들 하느냐? 저놈을 잡아 묶어라.》

10여명이 창을 꼬나잡고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평은 싸워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끝까지 소운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맞아죽는다고 해도 힘이 자라는껏 소운을 지켜야 했던것이다.

맨 앞장서 들어오는자의 창을 덥석 잡고 홱 잡아챘다. 창을 뺏어들고서 사방에서 덤벼드는자들과 맹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멋모르고 들어오는자들을 좌충우돌하며 사정없이 때려눕혔다.

순식간에 10여명이 창대에 얻어맞고 쓰러져 땅에 나딩굴었다.

이번에는 거의 백여명에 달하는 군사들이 우르르 밀려들었다.

하평의 머리우에서 긴 창이 윙윙 소리를 내며 바람개비처럼 돌았다.

후연군사들은 이미전에 뜨끔한 맛을 보았는지라 서뿔리 덤벼들념을 하지 못하고 하평을 겹겹이 에워싼채 기회만을 노리고있었다.

《비켜라. 내가 상대한다.》

제 부하들이 비실비실 물러서는 꼴에 화가 동했는지 키가 작달막한 후연장수가 검을 머리우에 추켜들고 앞으로 뛰여나왔다.

하평은 창을 세워잡고 잠간 숨을 톺았다. 역시 나이는 속일수가 없어 수십명을 상대하다나니 몹시 힘에 부쳤다. 그러나 하평은 고구려의 무사였다.

후연군의 무리속에 홀로 서있는 몸이지만 손에서 무기를 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후연장수가 몸집에 비해 터무니없이 큰소리로 기합을 넣으면서 먼저 공격해들어왔다.

하평은 창대를 꼬리처럼 끌며 물러섰다가 불의의 역습으로 힘껏 내찌르며 상대를 제압했다.

본래 보병창이란 여럿이 공격을 들이댈 때나 또 말우의 적을 제압할 때는 유리하나 검객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법이였다.

비좁은 공간에서 검객과 맞서려면 창법으로 싸울것이 아니라 봉쓰기로 대항해야 한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하평은 어떤 때 공격하며 언제 방어해야 하는가를 정확히 타산하고서 단번에 상대를 꺼꾸러뜨릴 기회만 노리고있었던것이다. 후연장수는 상대가 창으로 일정한 간격을 만들어 진퇴를 거듭하면서 검을 무용지물로 만드는데 화가 동했다.

유능한 검객이라면 상대의 진퇴하는 기회를 리용하여 단 한번의 반격을 가해 쓰러눕힐수 있었으나 후연장수는 그러한 검술이 모자랐던것이다.

후연장수가 악에 받쳐 검을 후리며 맞받아들어오자 하평은 물러설것처럼 창대를 뒤로 끌어당겼다가 손을 바꾸어 봉으로 잡고 밑에서 쳐올렸다. 후연장수는 다리를 걸채여 보기 좋게 나가 넘어졌다.

하평의 상대가 아니였다.

그자는 벌떡 몸을 일으켜서며 악에 받쳐 고함질렀다.

《뭣들 하느냐. 한꺼번에 달려들어 갈기갈기 찢어죽여라.》

상관의 부추김을 받은 백여명의 군사들이 창대를 갈밭처럼 늘여세우고 한꺼번에 달려들려는 순간이였다.

《잠간, 모두 멈추어라.》

벼락치는듯 한 소리가 군사들의 머리우에서 울렸다.

모두 한순간 굳어졌다가 공손히 창대를 세워잡고 물러서기 시작했다.

하평은 여전히 긴장을 늦추지 않고 창을 수평으로 쳐든 상태에서 머리를 들었다.

군사들의 서렬이 갈라지면서 풍채가 의젓한 장수 하나가 말을 타고 천천히 다가왔다. 우람한 몸에는 검은색의 철갑을 입었고 붉은 술이 달린 투구를 깊숙이 눌러쓰고있었다.

나이는 하평이보다 여러살 아래인듯 하나 전란의 풍파에 씻기운 얼굴에서는 젊은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아무말없이 하평의 아래우를 훑어보고는 좀전에 싸우던 그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숙을 보장해야 할 군영에서 무엇때문에 소란을 피우는거냐?》

《저자들은 아까 전장에서 붙잡은자들이옵나이다. 행색이 수상하여 제 부하들이 붙잡아왔는데 순순히 응하지 않아 싸움이 일어나게 된것이오이다.》

장수는 못마땅한듯 혀를 찼다.

《명색이 갑옷입은 장수라는자가 그게 무슨 꼴이냐?》

장수는 이렇게 제 부하를 꾸짖어 물리치고나서 하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긴 어떤 사람이요?》

하평은 창대를 버리고 두손을 길게 마주잡았다.

《일행에서 루락된 장사군들이온데 장군의 부하들이 다짜고짜 여기까지 붙잡아왔소이다. 우린 간자도 렴람군도 아니니 그만 놓아주길 바라나이다.》

《렴탐군이 아닌지는 우리가 확인해보아야 할것이니 내뒤를 따라오시오.》

장수는 이렇게 말끝을 맺고는 말을 돌려세웠다.

그를 따라왔던 두명의 군사가 하평의 좌우에 붙어섰다.

《어서 가소이다.》

《이 처녀는 내 딸이니 나와 함께 가도록 해주시오.》

하평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군사들이 그래도 좋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하평은 소운을 제옆에 세웠다.

《아저씨, 다치지 않으셨어요?》

소운이 걱정되는듯 이렇게 물어보자 하평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네가 옆에 있으니 힘이 나는구나. 하지만 마음을 놓아서는 안된다.》

하평은 호송군사들에게 넌지시 고개를 돌렸다.

《이자 그 장수는 누구요?》

《중위장군 풍발어른이시오.》

오른쪽에 서있는자가 깔막하니 대꾸하였다.

하평은 소운이와 함께 풍발의 장막으로 떠밀려들어갔다.

장막안은 화로불을 피워놓아서인지 몹시 훈훈했는데 한쪽 구석에 휘장을 내리운 침구가 있고 바닥에는 가죽을 두툼히 깔았을뿐 별다른것은 눈에 띄우지 않았다.

풍발은 맨 웃쪽에 범가죽을 씌운 안석우에 앉아 하평이에게 자리를 권했다. 손짓으로 호송병들을 내보낸 후 버릇처럼 허리에 찬 장검을 어루만지며 하평이와 소운을 번갈아 바라보고있었다.

하평은 태연한 눈으로 풍발의 시선을 맞받았으나 속으로 머리를 기웃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어째서 군영안에서 소란을 피운, 더우기는 제 부하들을 쓸어눕힌 자기를 죽일념을 않고 이렇게 친절하게 손님처럼 대우하는것인지 영문을 알수 없었다.

다만 풍발이란 인물이 그 부하들과는 달리 인품이 높은자라는 생각이 들뿐이였다. 하평은 그 자리에서 이 풍발이란 인물이 10여년후에 중원 왕조사의 한페지를 수놓을 인물일줄은 꿈에도 상상할수 없었다.

풍발의 자는 문기이고 어릴적 이름은 걸직벌이라고 하였다. 장락(지금의 베이징일대) 신도사람이였다. 그 조상은 필만이라는 사람으로서 한때 명성이 자자했었다고 한다. 필만의 자손으로 풍향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런것으로 하여 자기의 성을 풍으로 삼았었다.

당시 하층사람들은 성이 없었기때문에 풍향이라는 명인이 배출하자 풍을 성씨로 삼게 되였던것이다.

중원에 동란의 시기가 닥쳐오자 풍씨일족중의 풍화란자가 있어 란세에 몸을 일으켜세웠다. 풍화의 아들 풍안웅은 무예가 뛰여나고 지략이 있어 젊어서 종군하여 서연왕 모용영의 총애를 받아 장군으로까지 출세하였다. 풍발은 바로 풍안웅의 아들이였다.

모용영이 멸망하자 풍발은 동쪽의 화룡지방으로 옮겨가 후연군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그는 전장에서 맹활약을 벌려 무공을 세워 명성이 자자해졌다. 그는 지략이 뛰여나고 용맹이 남달라서 후연에서 맹장으로 일러주는 인물이였다. 중원의 복잡다단한 속에서 후연을 지랭해내는 기둥이라고도 할수 있었다.

하지만 풍발은 은연중 조정에 큰 반감을 품고있었다. 그는 변방을 지켜싸우며 여러번 무공을 세웠지만 자기를 크게 출세시켜주지 않는데 대해 불만이 많았다. 풍발은 비록 후연 변방무력의 일개 장군에 불과 했지만 그의 세력은 무시할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직접 일선에 서서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 굳힌 세력지반이라고 할수 있었다. 또한 변방의 여러 절도사, 도독, 장군들과도 련계가 깊으며 수만의 무력을 직접 손에 틀어쥔 무시할수 없는 존재였던것이다.

하긴 중원의 이러저러한 왕조를 건설한자들은 대개가 이러한 일정한 세력권을 가지고있던 변방무력의 장군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그것은 변방무력을 틀어쥔자가 전쟁을 통해 세력을 구축하고 조정과 별개로 독립적인 지위를 가지기마련이였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이런자들이란 거의 모든 경우 하졸로부터 밟아올라 장군으로 승진한자들이기때문에 군사들속에서 인망이 높았다.

상하가 언제나 신뢰감으로 뭉쳐있기때문에 전투력이 강한 반면에 조정에서 경원시당하는 경우도 많았던것이다.

하여 변방무력의 장수들은 표면상으로는 조정의 령에 고분고분하는것처럼 보였으나 사실상 독립적인 지위를 꿈꾸고있었으며 나아가서는 왕이 될 야심까지 품게 되는것이였다.

풍발은 바로 이런 사람중의 한사람이였다.

먼저 풍발이 무거운 침묵을 깨뜨렸다.

《그래 당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아야 하오?》

《장안에서 제(산동성)까지 오가는 장사군이오이다.》

풍발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떠돌았다.

《그럼 한가지만 묻겠소. 보매 한족은 아닌듯 하니 필경 중원태생도 아니겠는데 출신이 무엇이요?》

그는 허리에 찬 장검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이렇게 물었다.

하평은 잠시 망설이였다. 상대방이 한족이 아니라고 딱 집어 단정하니 구태여 부정하기도 어렵게 되였다.

《어려서부터 사막을 떠돌다나니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오.》

하평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풍발은 안석에서 일어서서 스적스적 다가왔다.

《아니요. 당신은 장사군이 아니라 고구려무사요.》

하평은 놀라는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풍발은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담지 않고 태연히 굽어보고있었다.

풍발은 하평의 반응을 눈여겨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의 몸에서는 장사군과 다른것이 느껴지오. 기풍이랄가… 하여튼 무사의 체취가 강하게 풍기거던. …》

하평이 그의 말허리를 분질렀다.

《내가 고구려사람인줄 어찌 알았소?》

《당신이 싸움을 치르는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았소. 무예의 기량이 독특하더군. 고구려사람만이 그런 무예를 하는 법이요.

내 한때 고구려인들과 싸운적이 있어 첫눈에 당신이 고구려사람임을 알아보게 된것이요.》

하평은 의아한 시선으로 풍발을 한참이나 올려다보았다.

도대체 이자는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을 꺼내는것일가?! 내게 무엇을 바라는걸가?!

하평은 결심이 된듯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풍발과 마주섰다.

《그렇소. 난 고구려사람이요. 하지만 당신네 부하들이 짐작하는 세작이나 렴탐군은 아니요.》

풍발의 시선이 하평이에게서 한쪽 구석에 불안한 얼굴로 앉아있는 소운이에게 건너갔다.

차거운 시선을 소운의 얼굴에서 떼지 않고 하평에게 말을 던졌다.

《이 처년 딸이요?》

《그렇소. 내겐 딸이나 같은 녀인이요.》

풍발은 자기자리로 돌아가앉으며 다시 물었다.

《여긴 무슨 리유로 지나가게 되였소?》

하평은 풍발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제에서 바다를 건너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요.》

《내가 보내지 않는다면?》

《우린 간자도 렴탐군도 아니요. 당신은 우릴 붙잡아둘 리유가 없소.》

하평의 대답을 들은 풍발은 소운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여긴 내 세력권이요. 내가 곧 법이니 내가 가라고 할 때까지 여기 남으시오.》

하평은 노기가 충천하였으나 간신히 눌러 참았다.

《내가 여기에 남아야 할 리유를 한가지만 대시오. 그럼 나도 더 고집하지 않겠소.》

풍발은 입가에 좀전의 그 묘한 웃음을 띄웠다.

《설사 당신이 제로 간다고 해도 고구려로 돌아갈수는 없을것이요. 제땅은 백제의 세력권이라 배를 내기 어려울테니까. … 지금 고구려와 백제는 전면전에 들어갔소. 그러니 백제인들이 교전국의 사람을 순순히 배에 태워보낼수 있겠소?》

하평은 고구려와 백제가 전면전에 들어갔다는 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멀리 중원을 떠돌다나니 고국의 소식은 전혀 몰랐던것이다.

제에서 배편으로 돌아가려는 희망이 산산이 부서져버린것이였다.

《그건 우리를 붙잡아둘 리유로 될수 없소.》

하평은 악에 받친듯 큰소리로 웨쳤다.

로련한 풍발은 함부로 노기를 드러내보이지 않고 눈꼬리가 치째여 올라간 눈으로 하평을 노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 리유는… 당신이 고구려사람이기때문이요. 내겐 당신과 같은 고구려사람이 필요하오. 당신이 여기에 남아준다면 후날 저 처녀와 함께 고구려땅으로 보내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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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ger - - coder - 2019-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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