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부. 영락
제 2 장. 한산대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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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군이 석현성 등에 방어력량을 강화하고 영락태왕이 평양방면으로 퇴군해가자 관미성에 들어박힌 백제, 가야, 왜군은 서로가 전쟁의 패배를 가지고 아웅다웅 다투었다.
수천의 정예병력이 소멸되고 방대한 령토와 견고한 방어성들을 빼앗겼을뿐아니라 수년간 애써 마련한 군사기재와 군마, 군량들을 고구려군에게 빼앗기는 수치를 당했는지라 서로가 전쟁의 패전원인을 넘겨씌우기에 피눈이 되였던것이다.
백제는 종주국으로서의 위엄으로 가야, 왜군을 내리눌렀고 또 가야인들은 그들대로 이번 전쟁의 패전원인은 백제가 전략을 잘못세웠기때문이라고 뿔을 세웠다. 하지만 가야, 왜군이 아무리 뿔을 세워보았자 백제군의 주장을 물리칠수 없는것이였다. 오만방자한 백제군 장수들의 태도를 심히 아니꼽게 생각하고있는 가야군의 일부 급진적인 장수들은 모두가 남을 위해서 피를 흘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주장을 폈다.
가야군의 총수 김지록은 왕족의 한사람으로서 실질적인 가야의 실권자였다. 그는 고구려와의 이번 싸움에서 된맛을 톡톡히 보았는지라 더이상 싸움을 치르어봤댔자 희생만 낼뿐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하여 그는 본국의 의향도 물어보지 않고 자기 결심으로 군사를 돌렸다. 당시 금관가야는 가야국의 맹주였고 김지록은 금관가야국의 실권자였다. 금관가야는 아홉개의 씨족으로 갈래가 이루어졌다.
가야국은 왕의 전제권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고 아홉씨족 우두머리들로 구성된 평의회가 국사를 좌우지하였다.
국가라고 하는 정치방식이 가야인들의 머리우에 들씌워지기 훨씬 이전 고대시기부터 금관가야땅에 오랜 뿌리를 두고있는 아홉씨족은 자기들나름의 생활방식과 영향력으로 세력권을 폈으며 외부로부터 자기를 지키고 내부에서 땅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며 생활하여왔었다.
이 아홉씨족에서 배출한 김수로에 의해 국가라는 기틀이 생겨나고 그 세력권안에 들어가 복종하면서도 씨족의 우두머리들은 자기들의 영향력을 잃지 않았다. 이 아홉개의 씨족들은 매 개개의 씨족이 촌락공동체로 굳게 뭉쳐있어 국가권력이 쉽사리 침투하기 힘들었던 사정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국가권력을 유지하는것은 법과 사상이였다. 수로왕 이후로 가야국은 법이라는 끈으로 매 가야인의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으려 했으며 사상이라는 도구로 그들의 정신을 복종시키려고 하였으나 수백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국가권력이 구석구석까지 먹어들어가지 못했다. 금관가야뿐아니라 다른 가야국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씨족적인 촌락단위 또는 촌락공동체로 형성된 소국들은 자기나름의 독자성을 가지고 향촌을 지켜왔으며 스스로의 법을 지어내여 준수해왔던것이다. 가야는 이러한 세력권의 그물로 뒤덮인 나라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였다.
가야인들은 타국의 공격으로 자기들이 나서자란 고향땅을 빼앗기게 되면 가야땅의 다른 지방으로 이주하는것이 아니라 아예 멀리 바다를 건너 왜땅으로 건너가든가 백제와 같은 나라들로 넘어가는것이였다. 같은 가야인이라도 씨족이 다르면 이국인처럼 생각하는 낡은 관습에서였다. 가야인들은 저희들끼리 결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국가에 대한 의식보다 나서자란 향촌에 더 큰 애착심을 가지고있었다.
이런 풍습은 금관가야뿐아니라 다른 모든 가야국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야국은 서로 명색상 힘이 강한 종주국을 섬기면서도 잘 복종하려는 의식이 부족했고 또 그 내부에서도 여러개의 씨족이 자기나름의 세력권과 영향력으로 촌민들을 얽어매고 서로가 다투어왔다.
가야국의 고질적이며 락후한 관습은 이 땅을 호시탐탐 노리며 령토팽창에 피눈이 된 신라에 있어서 유리한것이 아닐수 없었다.
신라는 가야에 대한 전면전을 피하고 하나하나의 촌락 또는 씨족공동체를 병합하는 방법으로 령토를 넓혀나갔다.
사실상 가야는 내부가 단결되고 국가권력이 제구실을 한다면 결코 신라보다 국력이나 인구에 있어서 짝지지 않을 나라였다.
향촌에 대한 가야인의 애착심은 거의 광적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는데 강한 힘을 가진자가 이러한 가야인들을 하나로 포섭하여 단결시킨다면 얼마든지 땅을 지켜낼수 있고 발전할수 있는것이였다.
그러나 불행이랄가 가야국에는 그러한 인물이 없었다.
하여 신라의 교활한 령토팽창정책에 말려들어가 수많은 가야인들이 땅을 빼앗기고 왜땅으로 이주하게 되였으며 나라의 령토는 하루하루 줄어만 들었던것이다. 가야는 보다 힘이 강한자에게 머리를 숙여서라도 이러한 멸망을 막아야 했다. 금관가야국의 대가들은 평의회를 거듭한 끝에 끝내는 백제와 손잡고 령토보존의 길을 찾으려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이 다른 가야국에서도 찬성을 받아 마침내 백제-가야동맹이 이루어졌고 천하의 패권을 쥐려는 야망에 미친 백제의 령토팽창정책에 동조하게 된것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가야가 백제의 조공국으로 살며 피를 적지 않게 흘렸어도 얻은것이란 하나도 없었다.
백제는 백제대로 가야를 손아래에 끌어들여 고구려와의 전면전에 리용하려는 야심만 있었지 진정으로 도와줄 생각은 꼬물도 없었던것이다. 다만 맹주가 되여 신라를 병합하고 가야를 속국으로 두고 나아가서는 고구려를 멀리 북쪽으로 내쫓아 광대한 령토를 차지할 야망에만 미쳐있었던것이다. 이번 석현성대전을 통해 고구려의 위력을 뼈저리게 절감한 가야인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서기로 하였다.
백제가 약화된 기회에 본국으로 돌아가 자체의 국력을 일으켜세울 작정을 하기에 이르렀던것이다. 허나 아직까지는 가야의 이러한 생각은 공리공담에나 이를 타산에 불과하였다.
금관가야국의 김지록을 비롯한 일부 급진적인 장수들만 그러한 생각을 할뿐 다른 가야국의 세력자들은 아직까지 백제를 대국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남아있었던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가야가 백제의 영향력밑에서 떨어져나온다고 해도 자체의 힘으로 신라를 물리치고 령토를 보존하며 자기들보다 국력이 비할바없이 강한 백제를 견제할 력량이 없었기때문이였다.
어차피 가야는 끝까지 백제의 야망에 동조하여 명맥을 유지하든가 아니면 단신으로 신라와 맞설수밖에 없게 되였다.
하지만 백제의 도움이 없이 신라와 맞선다는것은 자멸하는 길이였다.
내부의 단결을 이룩하고 매 가야인을 한사람, 한사람 묶어세우지 않는한 신라와의 대결, 독자적인 가야의 길이란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백제 좌장 진무는 가야의 처사를 두고 대노하였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전하여 령토를 내놓고 물러서서 가뜩이나 민심이 흉흉한 때에 동맹국인 가야군의 이러한 행동은 백제를 격분하게 하였던것이다. 물론 가야군이 물러난다고 해도 전선에 큰 공백이 생기는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언제 고구려군의 타격이 가해지겠는지 모를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생겼다는것은 엄중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생각같아서는 대군을 발동하여 퇴군하는 가야군을 따라잡아 전멸시키고싶었으나 그것도 제마음대로 할수 없었다.
우선 관미성계선을 비워두어서도 안되고 또 백제군이 동맹국 가야군을 공격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 어찌되겠는가.
여러번 전령을 보내여 되게 추궁하였으나 가야군의 총수 김지록은 애매한 대답만 보내여왔다. 완전히 퇴군하는것이 아니고 력량을 재수습할 목적으로 남하하고있으니 량해해달라는것이였다.
진무는 이를 갈았다. 가야군을 어떻게 해서라도 돌려세워 전선의 빈공백을 메꾸어야만 했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 일에는 누가 적임자일가. 아예 이 기회에 김지록을 없애치우고 가야군을 백제군에 완전편입시키는것이 제일 좋은 수다. 그러자면 백제사람이 전면에 나설것이 아니라 가야사람을 내세워야 한다. 가야에 영향력이 강하고 일정한 세력지반이 있는자를 내세워 김지록을 대신하도록 하자. 누가 그걸 할수 있을가?!…
한순간 진무는 무릎을 치며 뛰쳐일어났다.
(그렇지, 연우… 연우를 내세워 김지록을 제거하고 가야인들을 끌어당기자. 연우는 아라가야의 왕족출신으로 아라사람들속에서 인망이 높다. 또한 그는 금관가야국의 김씨일족과 원쑤나 다름없으니 김지록을 제거하라면 거절하지 않을것이다. 연우에게 아라가야를 가야국의 맹주로 삼겠다고 제의하면 그도 망설이지 않겠지?!)
진무는 그길로 연우를 찾아떠났다.
연우는 관미성의 서쪽 성문앞에서 아라인들로 무어진 부대를 조련시키고있었다. 연우가 거느리는 아라인들은 흔히 대개 수병이라 불리웠는데 백제에 이주한 아라계통의 사람들로 무어진 부대였다.
그들이 수병으로 불리우는것은 대개 백제의 리익을 위해 싸우는 군사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말그대로 가야사람으로서 백제의 번견노릇을 한다는 뜻이 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오직 연우에게만 배속되여있고 또 그의 령만을 듣는 가병비슷한 존재로서 인원은 약 수천명에 이르렀다.
가야국군대와 별개의 존재였다.
진사왕이 죽은 후 백제의 권력싸움에서 아신왕을 즉위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연우의 아라인부대는 백제군 내부에서도 무시할수 없는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있었다. 무예에 뛰여난 무사들도 많아 전투력이 강하고 용맹한 부대로서 싸움마당에선 늘 선봉에 서는 부대였다.
진무는 조련장가까이에 말을 세우고 연우가 부대를 조련시키는 모습을 한참이나 눈여겨보았다. 진무는 그동안 연우가 사나운 맹호로 자랐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10여년전 아라가야국의 정쟁에서 밀려나 자기에게 몸을 의탁하였던 아라의 애어린 소년이 지금은 그 누구도 건드릴수 없는 강자로 자란것이였다. 확실히 연우는 남다른 기질을 소유한 강의한 사나이였다.
무예와 지략이 남달리 뛰여났고 자기의 야심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해낼수 있는자였다.
진무는 연우를 어렸을 때부터 맡아 키웠으나 차츰 성장하는것을 지켜보는 과정에 어쩐지 두려운 생각이 머리속에 지꿎게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연우는 큰 야심을 가지고있다. 야심이 큰것만큼 목적하고있는것도 크기마련이다. 연우를 손에 휘여잡고 잘 부리자면 큼직한 미끼를 물려야 한다.
진무가 이런 생각에 골똘하고있을 때 군사들을 직접 훈련주고있던 연우가 그를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어인 일로
진무는 생각에서 깨여나 버릇처럼 이마살을 찌프렸다.
《가야군이 제멋대로 군사를 뒤로 돌렸다. 왜군도 그뒤를 따르고있다. 너도 알고있느냐?》
연우는 어두워진 기색으로 잠자코 침묵을 지켰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그냥 보고만 있는것이 옳은 처사이냐?》
진무는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연우를 노려보며 차겁게 물었다.
연우는 진무가 대답을 거듭 재촉해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백제의 리익을 위해서라면 김지록을 죽여서라도 가야군을 돌려세워야겠지요. …》
《그럼 네가 그 일을 맡아라.》
진무의 말을 들은 연우는 깜짝 놀란듯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노기가 서려올랐다.
《
진무는 벌컥 성을 내며 연우를 질책하였다.
《무슨 잠꼬대같은 소릴 하는것이냐. 이번 일에 너와 나의 운명이 달려있다. 리해관계의 공통성이 없으면 행동과 목적의 통일도 없는것이다. … 하지만 우리 둘은 한배에 올라 노를 젓고있는 몸이 아니더냐. 명심하거라. 너와 나는 하나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연우는 창백한 얼굴로 힘들게 진무의 말을 막았다.
《지금형편에서는 내 혼자의 힘으로 김지록을 제거할수 없소이다.
백제의 리익을 지키자고 또다시 새로운 피의 력사를 만들수는 없소이다.》
진무는 야즐거리며 코웃음을 쳤다.
《초왕 항우를 아느냐?》
《…》
진무는 허리에 찬 검을 어루만지며 계속 이어나갔다.
《항우는 복종을 거역하는자에게 항상 무자비했다.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수십만의 동족일지라도 가차없이 죽여버리군 했지.
무사에게 있어서 동정은 금물이다. 검을 든 손이 인정에 흔들리게 되면 그것은 곧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너는 무예와 지략이 출중한 반면에 인정이 너무 무른게 탈이다. 네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자비하거라. 네 앞길을 막는자는 누구든 사정을 두면 안된다. 난 네 꿈을 잘 알고있다. 이번 일만 내 뜻대로 바로잡아준다면 널 아라의 왕이 되도록 뒤를 받쳐주겠다는것을 약속한다. 아라를 가야의 맹주로 내세워주겠다. 너는 내가 할수 없는 일을 맡아라. 네가 할수 없는 일은 내가 하겠다.》
한수(한강)의 호젓한 밤의 정적을 말발굽소리가 무참히 깨뜨렸다.
수백명의 기마수가 말을 몰아 강변을 달리고있었다. 그들은 가야군의 총수 김지록과 그의 수하 호위무사들이였다.
김지록은 지금 연우의 추동으로 제멋대로 백제군영을 향해 떠난 아라군을 따라잡으려고 서두르는것이였다.
아라군을 따라 왜군도 동요를 일으키고있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가야군은 분렬되고 나아가서는 가야국자체가 붕괴될수 있었던것이다.
갑자기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지더니 함성이 일어났다.
무수한 홰불들이 일어나며 주위를 밝혔다. 김지록은 말을 멈추어세우고 앞을 노려보았다. 수백명의 기마수들이 홰불을 쳐들고 천천히 마주오고있었다. 김지록은 맨 앞장에서 말을 달려오는자를 알아보고는 이를 갈았다.
《연우 이놈, 동족을 백제에 팔아먹고도 모자라 이제는 아라인들까지 돌려세웠느냐?》
《대세를 가려볼줄 모르는 당신의 어리석은 행동때문에 벌어질 류혈을 막자고 아라사람들을 돌려세웠을뿐이요. 그러니 이제라도 마음을 돌리는것이 좋을것이요.》
연우는 쓴 웃음을 담고 이렇게 말했다.
김지록은 성이 독같이 나서 고함질렀다.
《그래, 내가 돌아서지 않으면 어쩔테냐?》
연우는 아무 대꾸도 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김지록도 악에 받쳐 앞뒤를 가려볼새없이 창을 꼬나들고 연우를 향해 말을 몰았다.
그들이 막 말을 어울리려는데 갑자기 뒤켠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잠간만, 둘다 멈추시오. 내 할말이 있소.》
연우와 김지록은 손을 내리우고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수백여명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있는데 복장으로 보아 이또가야국의 왜군이 틀림없었다.
앞장서 달려오는자가 김지수라는것을 알아본 김지록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김지수는 금관가야계통의 이또가야국 대가였다.
그가 위급한 시기에 달려와 한손 거들어준다고 생각하니 기운이 부쩍 솟았다. 세곳의 군사가 서로 뒤섞이였다.
김지수는 연우와 지록의 곁으로 다가섰다.
《무엇때문에 가야군이 서로 싸우는거요?》
《때맞침 와주어 고맙소. 저 배신자를 베려고 여기까지 쫓아온 길이요.》
김지록은 연우를 잡아먹을듯이 노려보며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배신자는 바로 너다. 가야군을 혼란시켜 리속이나 얻으려는 너의 그 죄가 얼마나 큰지 내 이제 알게 해주마.》
연우가 검으로 지록의 머리를 견주며 소리쳤다.
김지수는 량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 그대들이 죽기로 싸울 결심이라면 내 말을 듣소. 지록
김지록은 김지수를 노려보다가 이새로 으르렁거렸다.
《너는 명색이 금관가야의 족속으로 아라놈의 편역을 들셈이로구나. 좋다, 내 연우를 베고나서 다시 회계하겠다.》
연우는 아무말없이 박차를 질러 지록을 향해 말을 내몰았다.
지록도 만만치 않았다. 창을 윙윙 소리가 나게 휘두르며 맞받아나왔다. 창과 검이 마주쳐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어둠속에서 불꽃을 튕기였다.
연우가 수평이 되게 검을 쳐들어 썩 베는데 지록은 상반신을 눕혀 검을 지나보내고 연우의 가슴팍을 창으로 냅다 찔렀다.
연우는 몸을 틀어 창을 피하면서 옆구리로 흐르는 창대를 손을 놀려 꽉 틀어잡았다. 하지만 힘에서는 지록이 연우보다 훨씬 세였다.
연우가 지록의 힘을 당하지 못해 질질 끌리는 정도였다.
연우는 창대를 놓고 말등에서 뛰여내렸다. 지록이도 창을 버리고 검을 빼든 다음 뒤따라 내려섰다.
그들 둘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로 빙빙 돌며 공격할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동시에 발을 떼고 상대방을 향해 검을 겨누고서 공격해 들어갔다. 연우는 검을 들어 머리우에 떨어지는 칼날을 막아낸 다음 달리는 기세를 멈추지 않고 지나가며 지록의 몸을 베였다.
지록은 옆구리에 손을 대보고서 상처를 입은것을 깨닫고는 맹수처럼 울부짖으며 연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연우는 첫 타격을 피해 물러서다가 그만 발을 걸채여 넘어졌다.
몸을 굴리여 물러서서 간격을 두려는데 지록은 사이를 주지 않으려는듯 연방 검으로 내리찍었다.
연우의 머리우로 검이 떨어지려는 위급한 순간이였다.
휘익- 대기를 째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고 가야
그의 목에는 한뽐길이의 예리한 단검이 꽂혀있었다.
위급한 순간에 치희가 단검을 던져 연우의 생명을 구원하였던것이다.
지록의 죽음을 목격한 수하부하들이 검을 빼들고 달려들려는 순간 갑자기 김지수가 벼락치듯 고함을 질렀다.
《모두 멈추라. 가야의 김지록
《어찌된 영문이오이까. 사연을 말해주시오이다.》
김지수는 연우가 재우쳐묻는데도 아무 대꾸도 없이 물기가 맺히기 시작한 검을 흰 비단천으로 정히 닦고있었다. 그는 마치 연우라는 존재가 안중에 없는듯이 검에만 정신을 쏟고있었다. 연우의 자제력은 마지막보뚝이 무너져버리는듯싶었다. 김지수의 손에서 검이 튕겨 날아났다.
연우는 김지수의 팔목을 으스러지게 틀어잡고 으르렁거렸다.
《어떻게 되여 그 시각에 나타났는가 말해보시오이다.》
김지수는 몸을 일으켜 연우와 마주섰다.
《꼭 알고싶다면 이야기해줄수도 있네. 자네가 죽여버린 김지록은… 내 배다른 동생일세.》
연우는 놀라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배가 다른 동생이라도 피줄은 피줄이 아닌가? 그러한 지록을 처참하게 죽이고도 저렇듯 태연할수 있겠는가?! 연우는 점점 머리가 더 혼탕되는감을 느꼈다.
김지수는 태연한 기색으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아마 믿어지지 않을수 있네. 지록은 내 배다른 동생일세. 나의 부친이 돌아가시여 가문의 정통을 이을 문제가 나섰는데 그만에야 나는 음모군들의 모해에 말려들게 되였네. 지록의 어미는 제 아들을 내세우느라 간사한자들과 작당하여 피비린내나는 싸움을 벌렸네. 내 친동생과 누이가 한날한시에 자객의 손에 죽고 나 홀로 간신히 사지에서 벗어날수 있었네. 난 그길로 수하사람들을 거느리고 이또가야국으로 건너갈 결심을 내렸네. 더이상 금관가야땅에는 있고픈 생각이 없고 있을수도 없었지. … 그로부터 20여년의 세월이 흘렀군. 지금도 내 눈엔 피를 흘리며 무참히 숨진 친동생들의 얼굴이 삼삼하네.
우리에게는 힘이 있어야 하네. 난 지금까지 내가 가야에서 쫓겨나 이또가야의 왜인이 된것은 이붓어미가 벌린 권력다툼때문이라고 단순하게만 생각했었네. 하지만 이젠 알았네. 가야국이 대국으로 일어서지 못하면 동족간의 참극이 계속될것이라는것을 말일세. 난 가야가 대국으로 일어서는것을 본다면 죽어도 원이 없네. … 신라를 병합하고 백제와 어깨를 겨루는 대국으로 일어서기까지는 남에게 머리를 숙여서라도 힘을 키워야 하네. 난 자네가 이 일에 적임자라고 생각하네. 가야국을 부흥시킬 인물은 자네 한사람일세. …》
《대인어른이 그렇게까지 날 높이 사주니 고맙소이다. 하지만 살아있는것 그자체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오이다. 전 이날까지 백제의 진무를 따라다니며 공들여 탑을 쌓았소이다. 그런데 고구려의 담덕이 이것을 일조에 무너뜨릴줄은 생각도 못했소이다. 새로운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될것이라는 예감이 드오이다.》
김지수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며 연우의 말에 공감을 표시했다.
《자네 말에 그른데가 하나도 없네. 담덕은 시대를 풍미하는 인물일세. 백제의 진무가 아무리 영웅의 기상이 있다고 해도 적수가 될수 없지. 하지만 구태여 조건을 조성하느라 애쓰느니 있는 조건을 최대한 리용하는자가 더 현명한 법일세. 백제가 고구려의 드센 공격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맞설 력량이 있거던. 중요한것은 최대한 백제를 리용하여 우리가 딛고설 발판을 굳건히 하는걸세. …》
김지수는 잠시 말을 끊고 연우의 반응을 살폈다. 연우는 김지수의 말을 들으면서 공허한 눈으로 먼 산만 바라보고있었다.
김지수는 또박또박 그루를 쪼아박듯 말끝을 맺었다.
《이걸 명심해주게. 진무를 리용하여 자네가 반드시 가야의 왕이 되여야 하네.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으로 위기에 직면한 이때를 놓쳤다가는 후날을 기약하기 어려울걸세. 가야를 부흥시키는 길은 이 길뿐이네. …》
그들이 한창 열이 올라 이야기를 주고받는 때에 갑자기 장막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전령이 불쑥 뛰여들어왔다.
《모두 여기 계셨군요. 진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느냐?》
김지수가 눈을 흘기며 성급하게 물었다.
《고구려놈들이 불의에 관미성을 공격하기 시작했소이다.》
김지수와 연우는 깜짝 놀라 얼결에 시선을 마주쳤다.
《그럴수 없다. 석현성을 비워두고 그런 무모한 공격을 들이댈 영락태왕이 아닐텐데?!》
《석현성에 주둔한 무력이 아니오이다. 적정에 의하면 고구려북방군의 한개 부대가 료동방면에서 은밀히 배길로 남하하였다고 하는데 바로 그
부대인것 같소이다. 은밀히 상륙하여 갑자기 들이덮치는 바람에 많은 사상자를 냈소이다. 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