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5

 

모스크바 마꼬바야거리에 위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의 아침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 아침도 대사관숙소는 식사시간이 되자 부산스러워졌다. 층층에 수십칸씩 되는 방방의 나들문들이 부지런히 여닫기고 한번에 백명 가까운 인원도 식사할수 있는 아래층의 식당홀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찼다. 모두 어제 같이 조국에서 왔거나 아니면 이미 일을 보고 비행기편에 귀국하려는 출장자들이다. 외교일군들만이 아니다. 그들보다 썩 많기는 거개 외국땅을 처음 밟아보는 사람들로서 국가 호상간의 경제문화적교류에 의해 래왕하는 대표단성원들이다. 대서양을 횡단하여 먼 꾸바로 가는 정부대표단, 경공업성대표단, 여기 모스크바를 거쳐 다시 아시아의 동북단 울라지보스또크로 가야 하는 림업 및 수산일군대표단,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일행, 아프리카로 가는 관개대표단, 의료대표단, 국제올림픽위원회 정기회의에 참가했던 체육지도위원회 일군들, 원유수입을 계약하기 위해 중동으로 가는 국가계획위원회대표단… 그 국가계획위원회대표단의 몇사람을 내놓고는 거개 초면인 사람들속에 섞여 통역원 심동무(그는 외무성사람이였다.)와 함께 식사를 하고난 한승우는 침실에 올라오자 짐을 정리하였다. 짐을 정리한대야 입고있던 털쟈케트를 벗어 자그마한 려행용트렁크안에 개여넣고 부친에게 드리자고 산 여름중절모, 《까즈베크》담배 한보루, 딸에게 줄 화장품일식, 외국어대학 2학년생인 아들 영일에게 주자고 산 최신판 로조사전과 세면도구를 다시 조절해넣는것이였다. 맏딸 성희는 의대생인데 졸업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기계공업성 부상인 한승우는 《DU--13》을 비롯하여 국내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몇가지 중요자재수입을 계약하기 위해 한주일전에 여기 모스크바에 왔다. 쏘련측이 의외로 쎄브문제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바람에 합의가 좀 난항을 겪기는 했지만 총체적으로는 계약이 잘되여 오늘 비행기편에 조국으로 돌아가려는것이였다.

트렁크정리를 끝내자 그는 간밤 체육통로로 방영되는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보느라고 거의 새우다싶이 하고도 지금 또 텔레비죤을 마주하고있는 외무성 통역원(그는 축구광이였다.)에게 비행장으로 나가는 뻐스출발시간을 알아보게 하고 자신은 대사를 만나려고 대사관본청사로 건너갔다. 대사관본청사는 숙소와 직원주택구역의 중간쯤 되는 지점에 위치하고있었다.

한승우가 방에 들어섰을 때 대사 정창환은 넥타이를 맨 와이샤쯔차림으로 책상앞에 앉아 통신자료를 읽고있었다.

《어서 앉으시오. 방은 춥지 않습디까?》

통신자료를 밀어놓으며 인사삼아 하는 정창환의 물음에 한승우는 《웬걸요.》하며 앞상밑에서 걸상을 꺼내놓고 앉았다.

《전기화가 역시 위력합니다. 일기예보를 들어보니 새벽기온이 미누스 26도라는데 방안온도는 쁠류스 26돕니다.》

한승우는 경제일군이라 숙소의 그런 난방보장을 위해서도 그렇고 대사관이 쏘련당국으로부터 받아쓰는 총적인 전력량이며 지불하는 값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대사의 대답이 저윽 놀라왔다.

《말그대로 쏘련이야 전기화가 실현된 나라인데 우리 대사관이 쓰는 전기가 얼마라고 값을 론하겠습니까.》

《허, 역시 쏘련사람들이 통이 크구만. 아무리 흔해빠진게 전기라도 외국대사관에서 쓴 전기값을 채근하지 않는다는건 쏘련사람들, 다시말하여 로씨야적인 성격만이 할수 있는 일입니다.》

《쏘련사람들이 성격상 통이 크고 후한데가 있는건 사실이지만 쬐쬐스레 놀 땐 또 얼마나 그런지 모릅니다. 먼 실례를 들것 없이 이번에 쎄브문젤 또 들고나오는걸 보십시오. 그만큼 상대해봤으면 우리 립장이 어떤가 하는걸 알고도 남음이 있겠는데 그냥 유치하게 논단 말입니다.》

벌써 여러해째 쏘련에 주재하고있는 정창환이여서 쏘련사람들의 그런 소행을 적지 않게 겪어본것 같은 말이지만 한승우에게는 그가 쏘련사람들의 결함을 좀 과장하는것 같은 생각이 없지 않았다.

《글쎄… 쏘련사람들이라고 다 완성이야 됐겠습니까만 그렇더라도 경제분야와 과학기술, 문화분야에서 배울 점이 많은건 사실이지요. 나는 쏘련에 몇번 왔지만 이번에 처음 공, 농업전람관과 뜨레찌야꼬브 미술박물관을 참관했는데 정말이지 경탄을 금할수 없습디다. 부럽기도 했구요.》

정창환은 쏘련에 대한 한승우의 과찬에 동감을 표시하고싶지 않은지 잠시 덤덤해 반응이 없다가 비로소 생각난듯 빼람에서 담배갑과 성냥을 꺼내놓으며 물었다.

《한즉 오늘 떠나시렵니까?》

《가야겠습니다. 텔레비죤보도를 들어보니 체스꼬슬로벤스꼬사태가 점점 재미없게 번지는 느낌인데 정세때문에 공작기계수입계약이 튀지 않겠는지 걱정됩니다.》

체스꼬슬로벤스꼬는 기계제작공업이 발전된 나라이고 수출입계약도 여러가지로 되여있기때문에 정세의 변동에 신경을 쓰지 않을수 없는 그였다.

《하지만 조국에 돌아가면 체스꼬슬로벤스꼬문제보다 미국놈들과의 싸움이 더 급선무로 나설지도 모르니 이걸 읽어보고 가십시오.》

대사의 말이였다.

《?!…》

무슨 소린가싶어 한승우가 쳐다보는중에 정창환은 밀어놓았던 통신자료묶음을 뒤번져 몇건 뽑아주었다. 받아 읽어보니 믿어지지 않는 소식이였다. 쏘련의 따스통신사가 미국 에이피통신과 유피아이, 영국의 로이터 등 서방통신들이 날린 중대뉴스라는 전제하에 보도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공해상에서 해양조사중에 있던 미합중국의 해양연구선을 랍치한데 대한 보도기사였다. 통신사나름으로 표현과 문장조직은 조금씩 다르나 이른바 국제법을 위반한 조선의 비행을 규탄하는 론조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승우는 신경이 좀 예민한 축이고 흥분하기 쉬운 성미라 통신자료를 집어던지듯 놓으며 격하여 말했다.

《이건 날조요. 뭐, 공해상에서?… 천만에, 그런 일은 있을수 없습니다. 보아하니 그 미국놈배가 우리 령해에 들어왔다가 붙잡힌 모양인데 그걸 이렇게 외곡보도하는겁니다. 작년 정초에 우리 령해를 침범하여 함포사격까지 해대며 까불다가 인민군 해안포에 얻어맞고 침몰된 경호함사건때도 그랬지요. 저들 경호함이 선량한 마음을 가지고 공해상에서 〈평화적임무〉를 수행하고있는걸 우리가 〈비인도주의적으로〉 사격했다는겁니다.

도발을 하고는 그걸 날조하여 세상을 속이는건 미국놈들의 상투적수법입니다.》

동감이라는듯 정창환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내 생각도 그렇기는 하지만 하더라도 예감은 좋지 않습니다. 일사가 크게 번질것 같은게… 수령님께서 계시니 안심은 되지만 공화국창건 20돐도 있어 할일이 많은 올해에 그때문에 지장을 받을가봐 걱정입니다.》

《미국놈들이 바로 그걸 노려 우정 미끼를 던지며 도발을 걸어온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할건 없다고 봅니다. 남조선괴뢰군의 경호함-56호사건때도 그래, 더 전에 있은 정찰기격추사건때도 그래 당장 무슨 일을 낼것처럼 으르렁거리다가도 결국엔 판문점에서 잘못을 비는것으로 끝났습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이번에도 아마 그렇게 끝날겁니다.》

사건의 전모는 아직 다 알수 없으되 결과만은 그렇게 믿어의심치 않는 한승우였다. 그러나 정창환은 예감이 의연 좋지 않은지 《그건 그렇다 해도 죤슨이란 놈이 재선을 노리는것이 문제거던.》 하고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대사의 말은 죤슨이 《통킹만사건》을 조작하여 윁남전쟁을 확대한 전쟁광이고 대통령재선까지 노리는 작자라 지금 공해상에서의 랍치를 온 세계에 광고하는 《해양연구선》사건을 어디로 끌고갈지 알수 없다는 의미였지만 한승우는 고개를 저었다.

《일없습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죤슨이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윁남전쟁에 발목을 잡힌 사정도 있지만 우리가 이웃의 사회주의나라들과 국경을 접하고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까지 맺고있는데 어디라고 감히 선불질을 한단 말입니까? 만일 미국놈들이 전쟁쪽으로 기울어진다면 우선 쏘련이 가만있자고 하지 않을겁니다.》

《그러니 부상동무는 우리 조선에서 전쟁이 터지면 쏘련이 참전하고 핵무기도 써줄것이라고 보시오?》

《그래서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을 맺은 동맹국이 아니겠습니까?》

한승우의 말에 대사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부상동무는 쏘련에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있는것 같구만. 내 부상동무보담 쏘련을 좀 더 아는 립장에서 진심으로 권고하는데 다른건 몰라도 군사면에서만은 절대 기대를 걸지 마시오. 까리브해위기는 너무 먼 실례라고 하더라도 지금의 윁남전쟁을 보시오. 우리는 많은 무기와 군복(군복은 자그만치 100만벌입니다.), 거기에 의약품은 물론 숱한 비행사들까지 보내 그야말로 한몸을 내대고 피흘리며 같이 싸우고있는데 쏘련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대공무기를 좀 준게 전부지요. 그것도 무상원조가 아니라 후날 형편이 펴이면 값을 물어내야 한다는 조건으로… 그들은 윁남전쟁에 깊이 개입하면 전쟁이 더 확대될수 있다면서 윁남인민의 반미구국항전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라고 립장을 달리할가요? 부상동무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류학을 했으니 말로만 들었겠는데 나는 그때 락동강까지 갔다가 쏘련사람들이 준다, 준다 말만 하면서 무기를 제때에 보내주지 않아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속에서 피가 끓습니다.》

한승우는 정창환이 왜 쏘련사람들에게 기대를 걸지 말라고 하는지 리해되는것 같았다. 그렇다고 쏘련에 대한 그의 배타심에 가까운 편견에는 동감하고싶지 않았다.

까리브해위기때나 오늘의 윁남전쟁에서 쏘련이 좀 견결치 못하고 피동적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랬든저랬든 쏘련은 사회주의건설력사는 더 말할것도 없고 경제규모나 과학기술의 발전수준, 땅덩어리의 크기와 문화발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우리가 따라배워야 할 선진국입니다. 이 점을 지나친 기대로 본다면 나로선 할말이 없지만 따라배울 모범이 없다는것도 좋은 일은 못되지요.》

《…》

《외교에선 영원한 벗도 없지만 영원한 원쑤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쏘련사람들이 우리한테 무기를 제때에 보내주지 않은건 당시 외무상직에 있던 박헌영이란 놈이 일이 그렇게 되도록 암암리에 책동한 결과일수 있다고 내나름으로 생각하고있습니다.》

정창환의 책상우에 있는 전화기가 갑자기 종을 울리는 바람에 론쟁으로 번져가던 그들의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못하였다.

대사가 전화를 받고 송수화기를 놓더니 말했다.

《뻐스출발시간이 됐다고 나오랍니다.》

《아, 그래요.》

한승우는 벗어놓았던 가죽장갑을 쥐며 일어섰다. 정창환도 따라 일어나 옷걸이에서 양복과 외투를 벗겨 어깨에 걸치더니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10시에 꾸즈네쪼브1부상과 면담하기로 약속이 돼서 비행장에 못나가는데 량해하고 잘 다녀가십시오. 상동지에게 내 인사도 전해주고…》

정창환과 기계공업상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같은 사단에서 싸우며 락동강까지 갔다온 전우들이였다.

《알겠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두사람은 방금전까지 아짜아짜할만큼 심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생각은 가뭇 잊고 그렇게 석별의 정을 나누고 헤여졌다.

그로부터 30분가량 지나 한승우는 외무성 통역원 심동무와 같이 모스크바교외에 있는 쉐레메쩨보국제비행장에 당도했고 거기서 《일-29》려객기에 올라 8시간을 비행한 뒤인 오후 3시경 마침내 평양비행장에 내릴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 련락을 하고 떠났기에 비행장에는 성 부국장이 승용차를 가지고나와 기다리고있었다.

《그새 모두 건강들은 하시오?》

승용차가 비행장구내를 빠져나와 평양으로 들어가는 기본도로에 나서자 한승우는 물었다.

《다들 건강합니다. 하긴 뭐 앓을 새도 없긴 하지만.…》

앞좌석에 앉은 부국장의 의미심장한 대답이였다.

《그렇게 바쁘오?》

《바쁩니다. 참, 미국간첩선나포소식은 들었습니까?》

《모스크바에서 떠나기 직전에 에이피와 로이터 같은 서방통신을 되받아 날린 따스통신을 읽었소만 그걸 가지곤 진실을 알수 없더구만. 어찌된거요?》

그러자 부국장이 사건의 전말을 큰 선에서 알아들을만하게 이야기해주더니 마감에 이런 말을 덧다는것이였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지금 미국놈들은 전세계를 상대로 날조된 선전공세를 벌리면서 문제를 유엔에 상정시켰답니다. 이건 외국대사관들에서 나온 소리라는데 유엔에서 우리를 압박하는 무슨 결의라든가, 더 나쁘기는 집단적인 어떤 군사적강제조치가 채택될수 있다고 합니다.》

한승우는 심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외교관들이 말한다는 《집단적인 군사적강제조치》란 지난 1950년대처럼 미국이 유엔을 도용하여 우리를 군사적으로 공격할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한승우는 자신이 모스크바에서 서방통신을 읽고 그것이 날조라고 판단한것은 옳았지만 정창환대사에게 말한것처럼 《해양연구선》나포사건도 이전의 괴뢰군 경호함사건이나 미제정찰기격추사건처럼 궁극엔 미국놈들이 판문점에서 잘못을 시인하는것으로 간단히 끝나리라고 본것은 착오라도 큰 착오였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미국놈들은 그렇게 유엔에까지 문제를 끌고가서 소란을 피우는데 우리는 어떤 대책을 취하고있는것 같소?》

《다는 모르겠는데 엊그제는 당보에 적들이 우리 공화국령해를 침범한데 대한 론평이 나가고 오늘 새벽방송을 들으니 간첩선 함장놈의 진술을 내보냅디다.》

《…》

한승우는 입을 꾹 다문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국놈들이 강력한 보도계를 동원하여 온 세계를 상대로 날조된 선전공세를 펴면서 문제를 유엔에까지 끌고가 소동을 피우는데 비해 우리의 대응책은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은연중 들며 기분이 울적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놈들이 유엔을 업고 어떤 제재안이나 결의따위는 채택해도 결코 전쟁을 일으키지는 못할것이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병진로선에 따라 그새 우리의 국방력이 지난 전쟁때에 비길수 없게 강해진것도 있지만 지정학적요인도 무시할수 없다.

그래, 그렇다. 우리가 이웃의 사회주의국가들과 국경을 접하고 우호조약까지 맺고있는 이상 아무리 제노라하는 미국이라도 불장난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것이다!)

승용차가 짧은 경적을 울렸다. 벌써 련못동로타리에 들어서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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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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