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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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외무성에서 올라온 조미정부간 판문점 제24차 제25차, 제26차 담판진행정형자료를 료해하고계시였다.

앞서의 조미정부간 담판에서 미국측이 우리가 주동적으로 제시한 사죄문건에 서명할 용의가 있음을 공식표명한 조건에서 이미 진행된 제24차, 제25차 담판에서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인도인수와 관련한 구체적인 절차문제가 토의되였습니다.

이 담판들에서 미국정부대표는 사죄문에 수표하는 날 기자들이 립회하는것을 극력 반대하면서 사진은 담판이 시작되기 전 《특정한 시간에 찍고》 회담은 그다음 시작하자고 주장하였습니다. 적측의 주장은 사죄문에 수표하게 된 막바지에 와서까지 수치와 참패를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얕은 꾀에 지나지 않았으며 우리측으로서는 용납할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하여 우리측 대표는 《…당신측이 무엇때문에 푸에블로호 승무원 인도인수를 공개적으로 하는것을 반대하는지 리해할수 없다. 푸에블로호 승무원문제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져있으며 그들을 비밀리에 미국측에 넘겨보낼 아무런 리유도 없다. 한두명도 아니고 시체 1구와 82명이나 되는 인원들을 어떻게 비밀리에 넘겨보낼수 있겠는가.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이 당신측으로 넘어갈 때 거기에 많은 사람들과 보도관계자들을 참가시켜 인도인수사업을 객관적으로 확인하는것이 타당할것이다.》라고 반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측대표는 《비밀루설》이니, 《이미 이룩한 합의들이 수포로 돌아갈수도 있다》느니 하고 위협까지 해가면서 기자들의 참가와 사진촬영을 한사코 거부해나섰습니다.

결국 제24차 담판은 서로의 주장이 부딪친 상태에서 끝났습니다.

제25차 담판에서 우리측 대표는 우리의 관용과 참을성에도 한도가 있다, 당신측이 그냥 이 구실, 저 구실 붙이며 오그랑수를 쓰려 한다면 우리는 포로들을 군사재판에 넘길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놓은 절차안에 따라 승무원들을 넘겨받을 용의가 있는가, 없는가 하는 점을 명백히 하라고 강하게 들이댔습니다.

최후통첩과도 같은 우리측 대표의 요구에 적측대표는 사죄의 뜻을 표시하면서도 이번에는 수석대표개인의 명의로 사죄문에 수표하겠다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들고나와 흥정에 붙여보려고 하였습니다.

우리측 대표는 적측이 그런 부당한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한 담판을 하지 않을것이라는것을 명백히 하고 주동적으로 퇴장하였습니다. 한편 우리측이 소집하게 되여있는 제26차 담판을 한달이 넘도록 소집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바빠맞은 적측은 12월 7일 비공식적으로 《워싱톤에서 푸에블로호선원문제를 조속히 결착지을데 대한 신호가 왔다, 우리는 당신들측의 요구에 응할 의향》이라는것을 통지하면서 담판을 계속하자는것을 제의해왔습니다.

우리는 적측의 성실성을 확인하면서 그 제의가 있은 때로부터 10여일을 더 끌고야 제26차 담판을 소집하였습니다.

담판이 시작되자 적측대표 우드워드는 미국사람들에게 있어서 크리스마스는 대단히 의의있는 날이라고 하면서 승무원문제를 그전에 해결할 용의가 있다고 언명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우드워드는 두가지 제안을 내놓고 우리더러 그중의 하나를 선택할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첫째 안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가 작성제시한 사죄문건우에 자기들이 승무원들의 인수사항을 덧써넣고 서명하겠다는것이고 둘째 안은 우리가 제시한 사죄문건에 그대로 서명하되 서명에 앞서 서명 리유를 밝히는 발언을 하겠다는것이였습니다.

미국측이 사죄문건에 서명하기에 앞서 인수사항을 덧써넣겠다는것이나 발언을 하겠다는것은 사죄문을 남기는 경우에도 세계여론앞에 그의 법적유효성을 감소시키고 가능한껏 체면을 세워보자는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므로 다음번 담판(27차)에서는 적측의 《2개제안》을 철회시키고 우리가 제시한 사죄문을 그대로 접수시키려고 합니다. …

문건의 마감페지를 덮어 뒤집어놓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내용을 훑으시며 매 담판의 기본론점과 세부들 그리고 궁지에 몰리면서도 체면을 세워보자고 앙버티는 속에 감추어진 죤슨행정부의 의도를 감지해보시였다. 한마디로 담판은 옳게 진행되고있었으며 적들의 경우 우리의 강경하면서도 원칙적인 주장앞에서 퇴각에 퇴각을 거듭하다가 별수없이 흰기를 준비하는 단계에 있었다.

그이께서는 《푸에블로》호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진 미제국주의자들과의 한차례 준엄한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했음을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승리가 명백한 이상 승무원송환과 관련된 문제를 더 끌 필요가 없었다. 더우기 미국측에서 우리가 제시한 사죄문에 서명하겠다는 지금에 와서까지 자자부레한 문제를 가지고 시간을 끌면 적측이 그것을 언질로 우리를 헐뜯을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가 미국측으로부터 사죄문을 똑똑히 받아내는 동시에 사건을 즉시 종결짓는다면 세계의 량심은 조선혁명가들의 결단성과 고상한 인도주의에 대해 찬양할것이며 배우는 바가 없지 않을것이였다.

그러나 간첩행위를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범죄자들을 곱게 돌려보낼수는 없었다. 상대가 제아무리 강대한 미국이라도 조선사람들을 잘못 건드리면 큰 코를 다치며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것을 마감으로 또 한번 똑똑히 알고 교훈을 찾게 할 필요가 있었다.

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들어 외무상 박성철을 찾으시였다. 그리고 인차 전화가 련결되자 말씀하시였다.

《판문점담판상보를 읽어보았는데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것 같구만.》

《예. 빠르면 한번, 늦어 두번만 더 마주앉으면 끝장이 날것으로 봅니다.》

박성철의 자신만만한 대답이였다. 외무상의 견해에 동감하시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책적문제와 관련하여 의견을 피력하시였다.

《적측이 우리가 제시한 문건에 그대로 서명하겠다는것을 명백히 한 이상 이 문제를 더 끌 필요가 없을것 같소. 그러므로 두번째 안을 선택하되 미국측의 발언에 대응하여 우리측 대표도 발언하는것이 좋겠소.》

《알겠습니다.》

푸에블로호사건이 결국 판문점에서 결속되는것만큼 승무원처리문제도 미리 생각해두어야 하오. 내 생각엔 적측이 사죄문에 서명하면 승무원들을 추방하는 형식으로 처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것인데… 그런 방향에서 연구해보시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인도인수에 앞서 외무성대변인 성명과 함께 중앙통신사가 위임에 의한 성명을 내고 우리측 대표가 승무원들을 추방한다는 성명을 랑독하면 미국측으로서는 세계앞에서 최종적으로 한꼴 더 먹는 격으로 될것입니다.》

《옳소, 우리로서는 한번 본때를 더 보이는것으로 되고… 그럼 그렇게 합시다.》

외무상과의 통화를 끝내고 송수화기를 놓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문건을 당겨 펼치시였다. 기계공업성에서 올라온, 수입자재인 《DU-13》대신 국산자재에 의한 어뢰정개발에 성공하고 생산흐름선 설계를 완성했다는 보고였다.

가벼운 문소리와 함께 서기가 집무실문간에 들어선것이 바로 그때였다.

《김일제1부수상동지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내각회의실에 아이들의 겨울옷과 학생들의 교복견본을 전시해놓았는데 짬을 언제 내실수 있겠는지 한번 봐주셨으면 합니다.》

들고 들어온 몇가지 문건을 집무탁우에 놓으며 서기가 말씀드리였다.

《그래? 허허, 오늘은 온통 기쁜 소식뿐이구만. 그런데 하필이면 아이들 옷을 왜 짬시간에 보겠소. 통시간을 내서 온전히 봐야지.》

그이께서는 다른 일을 좀 밀어놓더라도 아이들의 옷부터 보고싶으시였다.

《오후… 가금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오후 3시로 계획했던가?》

《그렇습니다.》

《그 협의회를 다섯시쯤으로 밀고 그 시간에 보는걸로 조직하오. 출장중이 아니거든 정치위원들과 부수상 그리고 상들도 다 와서 보라고 하오.》

《알겠습니다.》

계획하신대로 그이께서는 오후 3시를 조금 앞둔 시간에 내각청사로 가시였다.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김일을 비롯한 당정치위원들과 내각부수상 그리고 상들이 먼저 도착하여 그이를 맞이하였다.

그런데 어째선지 김일의 얼굴색이 그닥 밝은 축이 못되였다. 워낙 건강이 원만치 못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건강보다도 마음속에 무슨 말 못할 근심을 안고있는듯싶은 인상이였다. 까닭은 시간이 얼마간 지나서야 밝혀졌다.

회의실앞쪽으로 걸상들을 치우고 주런이 놓은 책상우에 전시한 아이들의 갖가지 겨울옷앞에서 방직 및 제지공업상의 설명을 듣고계시던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할 한 일군이 없는데 생각이 미치시였다.

《김신복동무가 왜 보이지 않소?》

물음도 그렇거니와 응당 방직 및 제지공업상이 해야 할 대답이였지만 어째선지 그는 말을 못하고 당황한 눈길을 김일에게 주었다. 그래 결국은 김일이 대답했다.

《그 동무가 심중한 과오를 범해서 현재 사상검토를 받는중에 있답니다.》

김일의 인상이 어두웠던것은 바로 그때문이였을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의아함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무슨 소리요? 사상검토라니?… 김신복이가 무슨 과오를 범했기에 사상검토까지 받소? 》

《저도 좀전에야 알았는데 그 동무가 공명에 빠져 독단을 부린 결과로 이번에 공화국창건 20돐을 맞으며 방직 및 제지공업성이 계획했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답니다.》

말하는품이 김일도 구체적인것은 모르고 륜곽만 얼빤히 아는것 같았다.

《난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만. 상동무, 동무가 말해보오. 이번 20돐에 동무네 성에서 무슨 일을 계획했는데 그게 왜 김신복이의 공명과 독단으로 안되였다는거요?》

하여 김일성동지께서 듣게 되신 사유는 이러하였다.

공화국창건 20돐을 높은 정치적열의와 로력적성과로 맞이할데 대한 당중앙위원회호소를 받들고 온 나라가 선물마련으로 들끓는 속에 방직 및 제지공업성에서는 20돐에 드리는 선물로 9. 9절까지 3억 2천만메터의 천을 생산하는것을 목표로 전투를 벌리였다. 년초에 세운 이 선물계획에 4월부터 아이들의 겨울옷생산항목이 첨부되였다. 아이들의 겨울옷생산을 공화국창건 20돐까지 끝낼 결심이므로 그것을 성당총회결정서에 정식 박아달라고 간청한것은 평양피복종합공장 책임일군들, 구체적으로는 지배인 김신복이였다.

현실적가능성보다 욕망에 많이 흐른 계획이여서 처음부터 힘들게 진척되였다. 그런대로 7월까지는 전망이 보였는데 8월부터 부진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원인은 평양방직공장과 제사공장이 장마철에 잡히면서(지난해에 입은 홍수피해영향도 겹쳐서) 생산량이 떨어진것이고 피복종합공장 일군들이 그걸 예견하여 자재보장을 예견성있게 하지 못한것이였다.

그렇다고 옷생산을 죽일수 없어 피복총국에서는 긴급대책으로 지난해 수해때 감탕물에 잠겼던 천으로 생산을 계속하게 하였다. 그러나 피복관리국의 이 긴급대책안을 김신복이 받아물지 않았다. 그는 전쟁준비이며 더구나 당의 배려로 나갈 아이들의 옷을 물에 잠겼던 천으로 만들수 없다고 하면서 함흥모방직공장에서 생산한 격자무늬데트론혼방직천으로 만들것을 주장하였다. 주장했을뿐만아니라 직접 함흥에 내려가 두 화차분의 천을 접수하여 긴급수송체계에 포함시켜 편성된 렬차가 함흥역을 떠나는것까지 보고 올라왔다.

사달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어찌된 까닭인지 천을 실은 화차가 서평양화물역에 도착하지 않았다. 화물렬차는 도착했지만 이상하게도 맨 뒤 꼬리에 달았던 신복이네 방통이 없었던것이다.

이 무슨 기괴한 일인가. 바늘이나 좁쌀알도 아니고 수백개의 천통구리를 실은 기차방통이 없어지다니, 도무지 두줄기 철길우에서 이런 불가사의한 사고도 날수 있는가!

김신복은 물론 온 피복관리국이 역사령과 전화기에 달라붙어 잃어진 기차방통을 찾았다. 물론 철도성도 달라붙었다. 했건만 방통은 어디서 녹아버리기라도 한듯 그냥 행방이 묘연하더니 열이틀만에, 그것도 북방 한끝인 함경북도 경원군의 어느 산간역 대피선에서 발견되였다. 그 화차를 서평양화물역에 끌어오기까지는 또 사흘이 걸려 결국은 옹근 보름을 잃어 그로 하여 생산이 지연된 책임은 고스란히 김신복이 지게 되였던것이였다.

《그런 일이 있었구만. 한데 그걸 왜 김신복이가 책임져야 하오? 철도성이 져야지… 리치가 그렇지 않소?》

방직 및 제지공업상의 긴 설명을 주의깊게 청취하신 김일성동지의 물으심이였다.

《철도성에는 도덕적…》

방직 및 제지공업상의 말이 혀끝에서 얼어붙는다. 철도성에는 도덕적책임이 있고 실질적책임은 자기들, 구체적으로는 김신복에게 있다는 소리를 하고싶겠지만 스스로도 모순이 느껴지는 모양인지 뒤말을 삼켰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잘못된 책임을 남에게 넘겨씌우지 않고 주관에서 찾으려 하는 점은 미덕이라 하겠지만 책임이 정확치 않게 따져지는것은 좋은 일이 못되였다.

《동무들은 그걸 알아야 하오. 책임한계를 잘못 가르면 애꿎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든가 아니면 진짜로 잘못한자가 요행수덕을 보게 되오. 보아하니 지금 동무네가 그런 실책을 범하고있소. 그게 왜 김신복이 잘못이요? 신복이야 제 할바를 다하지 않았소. 물에 잠겼던 천으로 아이들옷을 만드는걸 반대한것이나 함흥에 내려가 천을 접수해 실어보낸것이나… 그건 다 잘한 일이요.

일이 잘못된 책임은 철도성에 있소. 철도에서 천을 제때에 실어다줬으면 김신복이가 왜 옷을 만들지 못했겠소. 듣자니 그 동무의 발기로 이번에 재봉기의 전기화까지 실현했다며?》

김일성동지께서는 철도상을 찾으시였다. 뒤쪽에 있던 희슥희슥한 상고머리의 철도상이 앞으로 나오자 철도에 규률이 어떻게 서있길래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는지에 대해 따져물으시였다.

수령님, 사실 그건… 나쁜 놈들의 음모인걸 저희들이… 제때에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벌써 책임을 깊이 느끼고있는듯 철도상이 힘들게 올리는 대답이였다.

《나쁜 놈들의 음모인것이 확인되였소?》

《예. 바로 어제야 해당 부문에서 밝혀냈습니다. 사건을 아직 다 마무리하진 못했지만 고원역의 한 차갈이공놈이 평양에 있는 어떤 친척되는자의 청부를 받아가지고 행선지를 바꾸어놓은것으로 판명되였습니다.》

《아니, 평양에 있다는 놈이 어떤 놈이기에 아이들 옷을 만드는데 훼방을 논단 말이요?》

《예, 아마 김신복이와 척을 진 놈이 있어 이번 기회에 그를 잡자고 작정한것 같습니다.》

《딴은 그렇구만. 고약한 놈들!》

그이께서는 음모군들에 대한 분노를 쉽게 삭일수 없으시여 한동안 말씀을 못하시였다.

 

×

 

그 시각 김신복은 피복총국 1층의 어느 구석방 낡은 량수책상앞에 앉아서 벌써 네번째인 비판서를 쓰고있었다. 이미 세번을 써서 제출했지만 번번이 본질적결함을 내놓지 않고 수박겉핥기식으로 성실치 못하게 자기비판을 한다는 의견이 나왔던것이다.

신복은 자주 쓰기를 그만두고 눈을 비비였다. 대낮인데도 방안이 몹시 어둡다. 어두울수밖에 없는것이 창문이라고 하나 있기는 하지만 유리에 뼁끼가 희끄무레 발려서 밖에서 빛이 들어오지 못하는가 하면 내다보지도 못한다. 천정에 매달린 전등이 도무지 25촉짜리인데다 전압도 꽤 낮았다.

어두운것은 그런대로 참을수 있었다. 정 견디기 힘든것은 옷이 눅눅해지다못해 쥐여짜면 물이 떨어질 정도로 공기가 습하고 코구멍이 알싸하게 곰팡내가 짙은것이였다. 하기는 한주일전만 해도 청소도구며 회가루포대에 마사진 책걸상이며 하는것들을 넣어두던 기재창고를 갑자기 내고 사람을 붙였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그런데서 김신복은 벌써 한주일가까이 사상검토를 받고있다.

평소에 그는 사상검토란 아주 무서운 뜻을 가진 말이면서도 자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달리 말하여 사상검토는 당과 수령과 사상을 같이하지 않고 뒤에서 딴꿈을 꾸며 쏠라닥거리는 반당분자나 그 련루자들, 혁명의 배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라고 리해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신이 그렇듯 무섭게 여기며 딴 세상의 일처럼 생각하던 사상검토를 받고있는것이다.

공화국창건 20돐을 높은 정치적열의와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할데 대한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결정집행을 총화하는 성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신복은 비판토론을 하던중 관리국장 최도식이로부터 이런 규탄을 받았었다.

《…저 동무, 김신복이를 몇마디로 규정지을것 같으면 그렇습니다. 외형상으로 보면 저 동무는 아주 무던해보이지요. 하지만 함께 일해보면 저 동무같은 초당분자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도 녀자가… 한마디로 저 동무는 초당에 쁘라스한 무서운 공명주의자이고 속에는 거의 환장에 가까운 출세욕을 품고있습니다.

나는 저 녀자가 아이들 옷을 20돐선물에 포함시켜달라고 떼질을 한건 초당적인 공명심의 발로라고 봅니다. 또 총국의 지시를 걷어차고 함흥에 내려가 천을 접수해 부친다, 어쩐다 역사질을 하다가 방통을 분실하여 선물생산을 파탄시킨건 초당과 공명에서 출발한 정치적해독행위라고밖에 달리 분석할수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최도식은 갑자기 격앙되여 《동무!》 하고 팔을 들어 쭉 내뻗치며 손가락으로 김신복을 가리켰다. 《동무, 이 자리에서 똑똑히 말해보라. 내가 그적에 뭐라 했소? 기일을 다투는 선물과제고 전쟁준비품이기때문에 몇십만벌쯤 물에 잠겼던 천으로 해도 일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그냥 초당을 부리며 부득부득 우기더니 일이 어떻게 됐는가? 20돐선물을 파탄시키고 정치위원회결정을 관철하지 못한 이 책임, 이 정치적손실을 무엇으로 메꾸겠는가? 으-응? 동무의 그 돼먹지 않은 초당성때문에 상동지를 비롯해서 방직공업성 일군들이 몽땅 얼굴에 똥칠을 하고 당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았는가? 긴말은 피하겠습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저 동무의 사상상태를 현미경적으로 샅샅이 검토해보고 검토결과에 따라 출당, 철직을 주든가 아니면 법앞에 세우자는걸 정식 제기합니다.》

최도식의 이 섬찍한 제의를 상이 지지하고 곁묻어 성안에서 상의 《메가폰》으로 통하는 몇사람이 응수해나섰다. 문제가 너무 심각하게 번져서인지 혹은 말해봐야 《메가폰》들을 이길 자신이 없다고 보아선지 불만의 표시로 웅성거리기는 해도 정작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하여 회의를 주관한 성당비서의 경우는 견해가 좀 다른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사상검토를 선택했는데 검토는 피복관리국 초급당위원회에서 주관하고 성당위원회는 보고만 받는것으로 결론하였다.

성당비서가 무슨 생각으로 사상검토의 격을 낮추어 관리국당위원회에 일임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김신복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불편했다. 한것은 피복관리국이 최도식의 《천하》인데다 초급당비서가 국장의 드살에 눌리워지내는 인물이라 사상검토에 《최도깨비》(최도식의 별명이다.)의 그림자가 비낄 우려가 있었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초급당부비서가 결원이여서 이틀동안 그 방에서 비판서를 쓰다가 이《쥐동네》로 내려온것도 실은 최도식의 힘이 작용한 결과였다.

사실 말해서 자기비판을 잘한다는 평을 듣기는 쉽지 않다. 본인은 아무리 성실하게 잘하느라 해도 남이 듣고 보기에는 아무래도 불만하고 솔직치 못하게 느껴지는것이 다름아닌 자기비판이다.

요새 김신복이 바로 그런 고충을 체험하고있었다. 출당, 철직에 법앞에 서는것까지 예견하는 심각한 마당의 비판서인 까닭에 자기로서는 진심을 다 쏟아 쓰느라고 했었다. 했지만 검토자는 《본질적결함이 나오지 않았다》느니 《사상적반성이 아니고 실무적라렬》이라느니 《솔직하지 못하다》느니 지어 《동무 대학을 헛다녔구만, 비판서도 온전히 못 쓰는걸 보니…》 하고 모욕까지 해가며 그냥 다시 쓸것을 요구하였다.

솔직히 신복은 그 지적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중에서도 《솔직치 못하다》는 말은 도대체 인정부터 할수 없었다. 성정이 정직하여 누굴 속일줄을 모르거니와 솔직성을 우물에 비긴다면 신복은 그 우물의 바닥까지 퍼내서 이제는 더 퍼낼것이 없을 정도였다. 본의는 아니였지만 당에 큰 손실을 주었기에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음을 명백히 했다. 그 이상 무엇인가 더 솔직히 써서 검토자를 만족시킨다면 그것은 오히려 자살적인 거짓말일것이였다.

비판서를 온전히 쓸줄 모른다는 소리도 그렇다. 스스로 인정하는바 신복은 필력이 그리 없지 않다. 천성적으로 시와 소설을 좋아해서 소녀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일기도 썼으며 처녀시절 한때는 녀류작가가 될 꿈마저 꾸었다. 까닭에 사물현상을 정확히 분별할줄 알고 생각을 글로 옮기는데서도 별로 막히지 않는다. 그런 필력으로 그야말로 당적량심과 인간적성실성을 통채로 기울여 쓴 비판서를 수준이하로 평가하니 답답하지 않을수 없었다.

하지만 사상검토를 받는 립장이고보면 무조건적으로 접수하는것만이 의무요, 옳은 자세였다. 몇시나 되였는지?… 문득 복도를 구르며 누군가의 달려오는듯 급한 발자국소리가 가까와오더니 방앞에 와 멎으며 나들문이 벌컥 열렸다.

《빨리 내 방으로 오시오!… 전화요. 수령님께서… 찾으시오!》

뛰여오느라고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헐떡거리며 하는 초급당비서의 말이였다.

《?!》

신복은 얼결에 일어서기는 했지만 정작 무슨 소린가싶어 복도에서 들여다보는 초급당비서의 얼굴만 멍하니 내다보았다. 방이 어두운데다 눈까지 피로해서 초급당비서의 얼굴이 초점이 흐린 사진처럼 뿌옇게 보였다.

《아니, 뭘하오? 수령님께서 찾으신다는데. 빨리… 수령님께서 지금 전화로 동무를 찾으시오.》

초급당비서의 독촉이였다. 그제야 신복은 이 갑작스러운 찾음이 무엇때문이라는것을 어렴풋이 깨달으며 서둘러 방을 나와 반달음으로 초급당비서를 따라섰다.

초급당비서의 방 책상우에는 송수화기가 내려놓은채로 있었다. 했지만 신복은 선뜻 송수화기를 들지 못하고 얼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초급당비서가 어서 전화를 받으라고 눈짓, 손짓으로 거듭 독촉해서야 격정으로 높뛰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송수화기를 천근인듯 무겁게, 조심히 들어올렸다.

어버이수령님, 안녕하십니까? 피복종합공장 지배인 김신복이 전화를 받습니다.》

그러자 귀에 익은 어버이수령님의 우렁우렁하면서도 자애에 넘치신 음성이 귀전에 울리였다.

《아, 신복동무요? 그새 건강하오?》

신복은 갑자기 온몸이 격정으로 떨리면서 그러지 말자고 무진 애를 썼지만 당장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씹어삼키는 흐느낌을 들으신듯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을 진정하라고 이르시며 말씀하시였다.

《그동안 이래저래 마음고생이 많았지?》

《아닙니다. 수령님께서 다… 보살펴… 주셔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느라고 모지름을 쓰며 신복은 토막말을 하다가 그나마 뒤를 잇지 못하고 흐느끼였다. 수령님께서는 거듭 울지 말라고, 마음을 진정하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더니 당중앙위원회에서 일하다가 첫번째로 지방에 내려간것이 언제였는가고 물으시였다.

신복은 그제야 다소 마음을 다잡을수 있어 1959년 12월이였다고 대답을 올리였다.

《당에 들어왔던건 언젠데?》

수령님의 물으심이였다.

《그 전해 6월이였습니다.》

《그러니 부부장으로 도무지 한해반을 있었구만.》

신복은 그렇다고, 하지만 그 1년반동안 수령님의 직접적인 가르치심을 받으며 많은 일을 배우고 체험도 적지 않게 했노라고 말씀드렸다.

《동무야 워낙 일을 잘했지. 나는 동무가 국가계획위원회에서 경공업국장을 할 때부터 일을 잘한다는걸 알고있었소. 그때 정준택부수상이 동무의 사업에 대해 좋게 평가했고 또 동무가 해방후 우리 대학을 나왔기때문에 나는 동무를 녀성간부로 키우기 위해 당중앙위원회에 소환하도록 했더랬소. 그런데 박금철을 비롯한 나쁜 놈들이 동무를 지방에 내보냈소. 나는 후에야 그걸 알고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에 동무문제를 구체적으로 료해할 과업을 주었더랬소. 부서의 보고에 의하면 동무문제에는 별것이 없었소. 그래서 평양에 소환해올라오게 했는데 후에 알아보니 또 내려갔다지 않겠소.》

세번째로 지방에 나가게 된것도 자신께서 모르게 한 일이고 신복의 편지를 받고야 비로소 알았다고 하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런데 신복동무, 도대체 어찌된 일이요? 누가 자꾸 동무의 가정환경을 시비하며 걸고드오? 전에 당안에 잠입하였던 박금철이네들가운데서 누구를 알고있소?》

진정 안타까우신듯 수령님께서는 곡진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신복은 굳게 닫았던 마음속 문을 열기로 작정하였다. 그것은 이제껏 마음속 그늘깊이에 감추고있던, 천번 우연중 한번이라도 말이 새면 집안이 큰 화를 당할수 있다고 보아 남편한테조차 감추고있던 이름이였다.

수령님, 그들패는 아니지만… 장백현에서 살 때… 최도현부부장과 한동네에서 살았습니다.》

최도현은 간부사업을 책임진 사람이였다.

《최도현이와 한마을에서 살았단 말이요?》 자못 놀라우신듯 수령님께서는 잠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세상이 넓고도 좁다더니 틀리는 말이 아니였구만. 그는 해임되였소. 출신은 장백이지만 암암리에 나쁜 놈들과 련결되여 사람들을 못쓰게 만들었던가보오. 그게 최근에 드러났고…

이제는 알만 하오.

동무문제는 최도현의 작간이였소. 최도현이는 박금철의 손발노릇을 하면서 애꿎은 사람들을 많이 못쓰게 만들었소. 신복이도 그중의 한사람이라 할가? 원래 나쁜 놈들은 남이 잘되는것을 배아파하는 버릇을 체내에 질병처럼 가지고있소.》

신복은 수령님께서 친히 보살펴주시지 않았더라면 자기는 그 나쁜 놈들의 모해로 영영 매장되여 소생하지 못하였을것이라고 말씀드리고싶었다. 허나 입을 열면 오열부터 터질것 같아 차마 말을 못하고 후둑후둑 눈물만 락수처럼 쏟았다.

《동무가 9. 9절까지 아이들의 겨울옷을 생산하겠다고 결의했다가 못한것때문에 검토받는단 소리를 들었소. 하지만 걱정할건 없소. 알아보니 그건 동무의 잘못이 아니고 사상검토를 받아야 할 일은 더욱 아니였소. 그건 암해분자들의 책동으로 빚어진, 책임진다면 철도성에서 책임져야 할 일이였소. 그러니 그 일때문에 조금도 축잡히지 말고 어깨를 펴고 일하오.》

어버이수령님, 고맙습니다. 수령님께 늘 근심만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일을 하느라면 더러 오해를 받는 때도 있는 법이지. 그럼 이만하자구. 일을 잘하기 바라오.》

수령님의 그 말씀을 마감으로 통화가 끝났지만 신복은 그냥 송수화기를 들고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놓았다. 놓고는 치미는 격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듯 책상에 엎드려 참고참던 오열을 터뜨렸다.

밖으로 나갔던 초급당비서가 들어왔다. 그는 책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있는 신복이를 보고 깜짝 놀라서 웬일인가, 수령님으로부터 무슨 책망을 들었는가고 걱정스레 물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래일 다 말씀드리겠어요.》

초급당비서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아래층의 그 방으로 달려내려온 신복은 방금 어버이수령님께서 전화로 하신 말씀을 한마디라도 빠칠세라 부지런히 써나갔다. 비오듯 줄줄줄 흐르는 눈물에 종이장이 얼룩지고 잉크자국이 피는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울면서 쓰고 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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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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