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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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참모장 겸 10국장이라는 책임적인 직무를 여러해 수행하는 과정에 붙은 습관이랄가, 다음날에 중요한 사업이 예견되면 강선태는 퇴근을 단념하고 늦도록 일하다가 그냥 사무실에서 자고는 제창 새날의 사업에 달라붙는것을 어길수 없는 원칙처럼 지켰다.

그러한 생활관습에 따라 간밤도 사무실에서 자고 아침 6시가 되자 청사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올라온 강선태는 양복차림에 넥타이까지 맸다. 오전중에는 국사업이 아니라 9. 9절 경축행사에 온 세계 여러 나라 기자들과 국내기자들 그리고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선원들이 참가하는 기자회견을 보장해야 했던것이다. 김정일동지의 지도밑에 총참모부 10국에서 주관하는 오늘의 국내외기자회견은 단순히 외국손님들이 많이 참가한다는 의미에서만 중시되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께서도 크게 중시하시는, 《푸에블로》호사건이 발생한이래 9개월째 끌어오는 조미간의 대결에서 결정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해 최후의 전환점을 마련하는것과도 같은 회합이였다. 이번의 기자회견만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지금 벼랑끝에 몰리워 허둥거리면서도 항복하지 않고 앙버티는 죤슨행정부의 마지막지지점을 허물어버리는 결과로 될것이라는것이 김정일동지의 예언이시였다.

하지만 오늘의 기자회견에는 불안요소가 없지 않았으니 료해한데 의하면 70여명을 헤아리는 외국기자들속에는 경향이 나쁜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 행사기간 우리 안내원들에게 시종 까다로운 질문만 들이대면서 촬영기를 둘러메고 뒤골목의 어지러운 곳을 찾자고 무던히도 애쓴것이 일본공산당대표단을 따라온 일본보도계의 기자들만이 아니였다. 또 그런가 하면 함장 로이드 마크 부쳐와 장교들을 포함하여 20명가량 참가시킬것으로 계획한 《푸에블로》호 선원들이 기자회견장에서 어떤 돌발적인 행위로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하는것도 현재로서는 예측할수 없는 일이였다.

강선태가 기자회견장소에 도착한것은 회견참가자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7시경이였다.

오늘의 기자회견을 보장하기 위해 동원된 관련부문의 실무일군들과 함께 기자들이며 선원들의 좌석배치로부터 마이크와 록음설비, 기록영화촬영조건과 음료보장 등 모든 필요사항들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다시 검토, 확인한 강선태는 전화로 정일동지께 보고드렸다. 기자회견준비에 이상이 없으며 계획한대로 회견을 9시에 시작하겠다고…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기자들만이 아니라 정계, 사회계 인사들의 요청까지 들어왔으면 참가자들이 많이 불었겠는데 모두 몇명이나 됩니까?》

《20명의 선원들까지 계산하면 135명입니다.》

《135명이면 기자회견치고도 아주 큰 회견입니다. 미흡한 점은 없습니까?》

《미흡한 점은 없지만 포로병들이 무슨 엉뚱한짓을 하지 않겠는지 좀 불안합니다.》

《포로병들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들도 여덟달가까이 우리 밥을 먹으며 교양도 일정하게 받았으니 깨달은바가 있을거고 엉뚱한짓을 해야 좋을것이 없다는걸 알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미국에서 온 《가디언》지 기자한테서는 무슨 반영이 제기되지 않았는가를 문의하시였다.

《아직까진 말없이 관찰만 하는데 질문을 신청했으니 오늘은 무슨 반응이 있을것 같습니다.》

《회견은 몇시간쯤 걸릴것으로 예견합니까?》

《질문신청자가 많아서 오전시간이 다 걸릴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질문을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질문이 많을수록 진실이 더 적라라하게 밝혀질테니까…

그럼 기자회견이 끝난 다음 다시 만납시다.》

기자회견참가자들은 7시 30분쯤 되여서야 오기 시작하였다.

회견에 앞서 참가자들은 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의 범죄행위를 보여주는 자료전시장으로 안내되였다. 거기에는 《푸에블로》호 선원들전원의 사진과 무장간첩선의 기구체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 침입한 경로와 침범위치를 기입한 지도들, 그것의 정확성을 립증하는 항해기록부, 로란기록부, 함장을 비롯한 선원들의 자백서, 공동사죄문, 미국대통령에게 보낸 선원들의 공개서한 등이 원문 혹은 복사되여 사진과 같이 전시되여있었다.

각국 기자들과 정계, 사회계 인사들은 커다란 관심속에 전시된 자료들을 돌아보았으며 소감을 피력하였다. 그것이 안내원들을 통해 즉시즉시 강선태에게 보고되였다. 첫 반영은 칠레공산당기관지 《시글로》 기자가 친구인 베네수엘라민족해방전선대표와 주고받은 대화였다.

《나는 어제 저녁 안내원아가씨에게 다른 참관은 못해도 좋으니 푸에블로호사건을 다루는 오늘 회견에만은 꼭 참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잘한 일같구만.》

《물론 잘했지. 푸에블로호사건을 다루는 기자회견에 참가하여 이런 귀중한 반증자료까지 보게 되는건 한생에 두번 있기 힘든 기회라고 할수 있네. 그런 의미에서만도 우리는 이번에 조선을 방문한 소득이 아주 크네.》

그러는 사이에 9시가 되여 모두 회견장에 들어가 자리잡고 앉았다. 함장 로이드 마크 부쳐를 비롯한 《푸에블로》호 선원들은 피고들처럼 객석앞 왼쪽으로 간첩선침입경로를 보여주는 직관도를 비스듬히 마주하고 두줄로 앉아있었다.

사회자인 외무성국장이 9. 9절 경축행사에 온 세계 여러 나라 기자들과 정계, 사회계 인사들의 요청으로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선원들과의 회견을 조직했음을 밝히고 개회를 선언한데 이어 함장 로이드 마크 부쳐가 직관도앞에 나와 기본발언을 했다.

부쳐는 미륙군소속의 낡은 화물보급선이던 《푸에블로》호가 수십억딸라의 연구비를 들이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정교한 현대적설비를 갖춘 전자정보선으로 변신되였고 작년(1967) 1월 취역한이래 미해군의 《핑크루트작전-1》계획에 따라 태평양연안 나라들, 특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사비밀을 탐지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갖추었는가를 설명하면서 지난 12월초 일본 요꼬스까항에 도착하여 주일미군사령관으로부터 받은 지령을 공개하였다.

《…우리가 받은 임무는 첫째로, 조선인민군의 해군활동을 탐지확인하며 둘째로, 조선인민군이 송신하는 일체의 전자신호를 도청하며 셋째로, 푸에블로호와 같은 간첩선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반응을 판정하며 넷째로, 군사적관심사로 될수 있는 모든 새로운것의 발견에 대한 수집이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발견당할수 있는 경우를 제외한 조건으로 가치있는 정탐자료를 입수할 전망이 확실하면 언제든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자주권이 행사되는 령해에 들어가도 좋다는 권리도 부여받았습니다. 지령에 따라 우리는 외형상 해양전자연구선으로 위장하고 1월 10일 일본 사세보항을 떠나 쏘련연해변강일대에까지 올라갔다가 1월 13일 기본작전수역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연해에 내려왔습니다. 그때로부터 23일까지의 기간 우리는 임무에 지적된 청진, 김책, 마양도 및 원산수역들에서 필요한 정탐활동을 시작하여 일정한 소득을 보았습니다.

주일미해군사령관 프랭크 엘 죤슨소장의 지령중에는 조선인민군의 미싸일함정들이 있을것으로 예견되는 지점들에서 정탐을 특히 구체화할데 대한 임무도 포함되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시까지 미싸일함정관련전파와는 전혀 접촉하지 못했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볼 작정으로 우리는 1월 23일 새벽 짙은 안개를 리용하여 원산항의 관문 려도근처에까지 깊이 침입했으며 거기서 조선인민군해군 순찰함에 의해 발견되였습니다. 발견되여 나포될 당시 우리 함은 려도로부터 7. 6마일(북위 39도 17. 4분, 동경 127도 46. 9분)지점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 있었습니다.

인민군해병들은 정지하여 조사에 응할것을 요구하였지만 우리는 인민군어뢰정을 향해 일방적으로 대구경기관총을 란사하여 인민군어뢰정의 접근을 불허하면서 도주를 꾀하였습니다. 그럴수밖에 없었던것은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포되여서는 안된다는 주일미해군사령관 죤슨소장의 명령을 받았기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인민군해병들은 도주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인민군순찰함의 위력한 함상포사격을 받아 사상자를 내고야 도주를 단념하고 나포되였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는 미합중국의 정탐선 푸에블로호의 범죄행로는 대략 이렇습니다.

부언하건대 푸에블로호는 단순한 정탐선이기 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반대하여 미행정부가 파견한 침략척후선이며 우리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조직하고 파견한 장본인 역시 미행정부입니다. 그러므로 죤슨행정부는 불순한 목적으로 자기가 주권을 침해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공식사죄하고 하루빨리 우리들이 부모처자들에게로 돌아가도록 힘쓰는것이 옳바른 처사라고 봅니다.》

질문이 시작되였다. 이미 신청하여 승인된 한계내에서 맨먼저 질문한것은 로므니아공산당기관지 《쓰끈떼아》 기자였다.

문: 몇가지 묻겠다. 지금 세계여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당신들의 범죄적정탐행위의 진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를 원하고있다. 당신은 무장정탐선의 함장이니만큼 그에 대해 책임적인 답변을 할수 있으리라고 본다.

당신은 언제부터 《푸에블로》호의 함장으로 있었는가?

답: 1967년 1월부터입니다. 그전 나의 경력을 말하면 이미 1954년부터 잠수함에서 보급장교로 있었으며 다른 함대에서 병기장교, 보조작전장교로도 근무하였습니다.

문: 《푸에블로》호의 함적, 다시말하여 소속은 어디인가?

답: 미태평양함대에 소속되여있습니다. 그러나 작전상으로는 주일미해군사령관의 지시를 받고 행정상의 상관은 태평양함대 제3근무전단 사령관이며 수집된 정보자료는 미중앙정보국과 국가안전청에 보고합니다.

문: 정탐선의 성원구성과 장비상특성을 말해주기 바란다.

답: 우리 함의 인원은 모두 83명입니다. 분류한다면 나 함장을 포함하여 장교가 6명이고 사관 2명, 사병 73명(1명은 나포당시 사살되였습니다.) 그리고 2명의 사민으로 구성되여있습니다.

장비… 장비와 관련해서는 슈마커장교의 설명이 더 구체적일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전장교 슈마커가 일어났다. 그는 버쩍 마른 체구에 함장 부쳐보다 키가 목 하나는 더 커보이는 40대의 사나이였다.

답: 《푸에블로》호는 전문적인 정보수집활동을 하는것만큼 그에 필요한 최신식정탐기구들을 장비하고있습니다. 함의 통신실에는 쏘련도 아직 가지고있지 못한 최첨단암호해독기 《KW-7》과 최근에 개발된 세계 1류급의 《KIW-1》도청수신기가 설치되여있습니다.

함장님도 말씀했지만 30년을 운용한 미륙군소속의 낡은 보급선을 개조하는데 수십억딸라를 들인것은 바로 그러한 최신전자설비를 장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에짚트공보대표단 단장 싸미르 파흐 마까람이였다.

문: 두가지만 묻겠는데 장교들중에서 누가 답변해주었으면 한다. 방금 함장 부쳐씨는 《푸에블로》호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 깊이 침투하여 정탐행위를 하였다고 자인했다. 당신들 선원들은 그것이 주권국가에 대한 적대행위라는것을 명백히 인정하는가?

그와 관련해서는 레스링선수처럼 몸이 오달지고 눈매가 의뭉스러워 보이는 연구장교 스테본 아르 해리스가 답변하였다.

답: 예, 인정합니다. 우리의 정탐행위는 로골적인 침략행위이며 초보적인 국제법마저 위반한 명실상부한 범죄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문: 그것을 인정한다면 연구장교인 당신이 《푸에블로》호의 정탐행위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 바란다.

답: 부쳐함장이 이미 말한바와 같이 우리 함이 쏘련의 극동해역에서 정보수집을 하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연해에 내려온것은 1월 13일이였습니다.

이미전에 우리는 쏘련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사회주의나라 령해에 침입하여 정탐행위를 한바 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연해에 접근하여서는 처음부터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조선인민군의 해안방어가 치밀하고 특히 해군순찰함정들이 매우 경각성있게 바다를 지키는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군인들이고 우리뒤에는 강력하고 부유한 미합중국이 있다는 믿음 그리고 지난 150여년동안 평화시기에 미국함선이 다른 나라에 나포되여본적이 없다는 자부심이 공포를 이겨낼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청진과 김책, 원산해역에서 조선령해를 17번이나 침범하여 130여개의 레이다신호를 도청하고 수십척의 상선과 해군함선을 촬영하였으며 해안지대에 배치된 여러가지 군사대상물, 항구들의 수용능력, 잠수함작전을 위한 해양자료로서 조선연해의 수심, 조류, 해온, 염도, 투명도 등 그야말로 샅샅이 정탐하였습니다. 그 과정에 《푸에블로》호가 공화국령해를 침범한 중요지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청진북쪽 갈단으로부터 9. 8마일

2. 어랑단으로부터 10. 75마일

3. 성진동쪽 란도로부터 10. 75마일과 11. 3마일

4. 마양도수역에서 안성갑으로부터 8. 2마일과 9. 1마일

5. 원산수역의 려도로부터 7. 6마일

우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가 하는것은 륙지의 조선마을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까지 볼수 있었다는 사실이 잘 말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스테본 아르 해리스가 앉기를 기다려 일본 《아사히신붕》 기자 쯔보다 사까에가 질문하였다. 30전후의 아담하게 생겼으면서도 눈언저리에 매몰찬 기운이 서려있는 장발의 녀자였다.

문: 부쳐함장님께 부탁하겠어요. 《푸에블로》호가 인민군순찰함에 의해 나포되던 과정을 좀 더 세부적으로 듣고싶군요.

답: 인민군 순찰함이 감시로부터 검속을 목적으로 우리 함에 정식 접근해온것은 오전 11시경이였습니다.

당초 《해양연구선》을 표방하고있었던만큼 국적을 밝히라는 인민군순찰함의 요구에 우리는 선뜻 응하지 않았습니다. 거듭 요구해서야 성조기를, 그것도 휴일이나 명절때 올리는 제일 큰것으로 게양했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지시한것은 인민군해병들로 하여금 상대가 다름아닌 미합중국함선임을 명확히 알아보고 위압되여 조용히 물러가라는 속심이 있었기때문이였습니다. 그러나 인민군해병들은 물러가지 않고 기관을 정지하고 단속에 응할것을 거듭 요구하면서 증강된 고속정(어뢰정)으로 승선을 시도하였습니다.

나는 함장으로서 정황이 돌려세울수 없게 나쁜것을 판단하고 통신기사 리치에게 공개전문을 날려 요꼬스까에 구원을 요청케 하는 한편 문건소각과 기재파괴 그리고 시간벌이로 기관총사격을 지시하였습니다. 하여 얼마후 기관총(2정)이 인민군어뢰정을 향해 울부짖고 문건들이 타는 연기가 선실과 통로에 가득찼습니다. 미처 태울수 없는 문건들은 찢어 바다에 내버려서 《푸에블로》호가 지나간 자리에는 종이장들이 어지럽게 떠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건대 그날 오전 예상보다 안개가 빨리 걷히고 뒤따라 인민군순찰정이 나타난것은 신이 우리의 죄행을 더는 보고만 있을수 없어 내린 벌이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엄하게도 신의 뜻을 거역하고 선불질을 하면서 도주를 꾀했던겁니다.

거역의 대가는 컸습니다. 소방병이며 기관총수인 웨인디 하제스는 무기고앞에서 포탄에 맞아 내장을 쏟으며 즉사하고 해병대 하사인 치카와 소방병 호지스, 무전수 그랜이 각기 파편상을 당했던것입니다.

그때 시간은 이미 오후 1시를 넘은 때였습니다.

문: (쯔보다 사까에) 오전 11시에 발견되여 오후 1시 30분경에 나포되였으면 2시간반이라는 여유가 있었고 또 일본기지에 SOS도 날렸는데 왜 구원받지 못했는가요?

내가 알기에는 일본 미사와공군기지에 있는 미군의 《F-14》기로 조선반도중부까지 날아오는데 1시간 15분~1시간 20분이면 충분해요.

답: 시간은 충분했어도 구원받지 못한것은 바로 우리가 조선령해를 침범했기때문입니다. 이건 나 개인의 추측이면서 거의 확신하는바이지만 기지에서 전문을 받고도 출격을 명령하지 않은건 우리 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령해에 있는것이 분명한 이상 구원할 가능성도 없거니와 잘못하면 더 난처한 일이 발생할수 있다고 판단했기때문일것입니다. 다른 리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다음 질문한것은 알제리 에 뻬 에스통신사 기자였다.

문: 당신네 정탐선에 민간인이 2명 포함되여있다고 하는데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얼마간 동안을 끌다가 막달찬 임신부마냥 아래배가 불뚝 나온 보급장교 왈리스가 헤작이 웃으며 일어섰다.

답: 사실대로 말하면 그들은 해양학자로 위장하고 군사정탐임무를 수행하고있는 특수정탐가들이지요. 한명은 성명이 리챠드 터크, 다른 한명은 해리 아이레데입니다.

그들은 작년 12월에 우리 함에 왔지요. 《푸에블로》호에 오기 전에는 우리 함과 자매관계에 있는 인디아양담당의 《배너》호에 있었다고 하는데 함에 올 때 그들은 형식상 해군성 근해부장의 명령서를 가지고왔습니다.

다음질문은 이딸리아공산당기관지 《우니따》기자 자루이 에밀리오가 하였다.

문: 당신은 당신들을 정탐활동으로 내몬 배후조종자들의 흉계가 무엇인지 알고있는가?

답: 다는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해서 아시아, 특히는 조선에서 새로운 침략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준비를 다그치는데 목적이 있다고 봅니다. 바로 그 전쟁준비와 관련하여 죤슨행정부가 수십억딸라를 들여 《푸에블로》호를 정탐선으로 개조했고 우리들에게 조선과 쏘련령해에 들어가 범죄를 저지르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미국방성이 조선과 윁남을 두개 전선으로 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습니다. 특히 최근 남조선과 윁남에서 정세가 미국에 더욱 불리하게 됨에 따라 우리의 임무는 그만큼 촉박성을 띠게 되였습니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던 문답은 낮 12시를 가까이해서야 결속단계에 들어갔다. 마지막질문은 미국 《가디언》신문사 기자 라이오넬 마르틴이 하였다.

문: 3등하사 스트라노씨가 대답해주기 바란다. 범죄적인 정탐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8개월가까이 생활한 지금 당신의 소감이 어떤지를 알고싶다.

답: 지난 8개월간의 체험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명백한것은 우리 선원들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우가 매우 인도주의적이였다는것입니다.

아시다싶이 우리는 로골적인 정탐행위를 감행한 극히 엄중한 범죄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포된이래 현재까지 시종 인간적인 취급과 좋은 대우를 보장받고있으며 자유를 제외하고는 생활상 아무런 불편도 없이 건강한 몸으로 지내고있습니다. 당신으로선 혹시 믿어지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빵이나 우유, 치즈 같은 미국음식을 먹으며 병이 나면 치료도 받습니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우리 숙소에 오십시오. 나포될 당시 산탄에 맞아 중상을 당했던 치카와 호지스, 무전수 그랜이 수술을 받고 회복되여 배구를 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문: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척, 친우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없는가?

답: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내가 아직까지는 무사히 있으며 건강하다는것을 전하고싶습니다. 나와 우리 선원들에게는 엄중한 범죄를 저질렀으니만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형법에 따른 응당한 처벌이 기다리고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자신들이 돈과 명예에 유혹되여 스스로 자기를 좌초한것입니다.

나의 최대의 소원은 이 죄많은 아들을 기다려 눈물짓고있을 고향의 부모님들에게 돌아갈수 있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가 제발 관대히 용서해달라는것입니다.

 

3등하사 스트라노의 그 말을 마감으로 기자회견이 끝났다.

그런데 강선태도 미처 예견 못한 뜻밖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회자가 회견이 끝났음을 선포하고 참가자들이 막 자리를 뜨는 때였다.

함장 부쳐가 황급히 일어나 기자들을 향해 큰소리로 《여러분!》 하고 크게 소리친것이였다. 했으나 모두 나가려고 웅성거리는 상황이여서 그의 목소리는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러자 부쳐는 앉았던 의자우에 뛰여올라 재차 《여러분! 할말이 있습니다.》 하고 목청껏 소리쳤다. 장내는 그제야 수습되면서 영화촬영가들과 기자들의 사진기렌즈, 록음마이크들이 그에게 집중되였다. 나가던 사람들도 돌아섰다.

그들을 향해 부쳐가 말했다. 아니, 말한것이 아니라 흥분하여 몸을 떨며 분노를 터쳤다.

《군인은 국가의 몸이고 군인의 운명은 해당 나라의 정부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합니다. 미합중국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명령을 집행하는 군대내 군인들의 행동에 대해 도덕적책임을 져야 할 우리 정부가 그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기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에 따라 군사재판에 회부될것입니다. 우리들중 나를 포함한 일부는 사형을, 나머지는 장기징역형에 처하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나포된지도 이제는 8개월이 되였습니다. 8개월이면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우리를 귀국시키는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처지는 8개월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부쳐의 목소리는 울분으로 떨렸다. 그것은 자기들을 간첩으로 만들어 부려먹다가 붙잡히자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돌아다보지 않는 상부에 대한 분노이고 저주였다.

《…죤슨행정부는 위선의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 사죄하는것이 옳은 선택입니다.

여러분, 가장 존경하는 기자제씨들, 나를 아니,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벌써 260여일간 자유없는 생활을 하고있습니다. 우리들의 잘못은 간첩이 되여 상부의 명령을 집행한것뿐이고 우리를 범죄로 떠민 장본인은 백악관입니다.

존경하여마지않는 기자제씨들,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해주십시오. 당신들의 펜으로 죤슨행정부에 압력을 가하여 그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에 사죄하고 우리를 데려가게 해주십시오.

제발 부탁합니다. 아니, 빕니다. 우리들의 소망은 하루속히 고향에 돌아가 그리운 부모처자들을 만나는것입니다.》

함장 부쳐의 그런 눈물겨운 부탁을 받은 뒤 기자회견참가자들은 《푸에블로》호선원숙소에 안내되여 선원들과 담화도 하고 그들의 생활조건도 료해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손님들은 회견장에서 더러 듣기는 했지만 포로들의 생활조건이 의외로 좋은데 저마끔 놀라며 많은 말을 했다.

그것이 안내원들을 통해 종합되여 강선태에게 들어온것은 오후 4시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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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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