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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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9일 새벽 조선동해 16-21해구는 자욱한 안개속에 잠겨있었다. 대체로 파도가 높을 때는 안개가 그리 끼지 않는것이 상례인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모양은 그대로 나쁘면서도 안개는 안개대로 짙었다.
전투근무중의 구잠함 35호가 탐지기로 바다밑을 감시하면서 중속으로 16-21해구에 들어선것은 밝을녘의 4시 20분경이였다. 그때로부터 벌써 세시간나마 항행하고있지만 날이 밝은지 오랜 지금까지도 안개는 하늘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늘은 고사하고 불과 몇메터앞의 물체도 검스레한 형체로밖에 분별할수 없는 상황이여서 배는 순수 해도와 라침판에만 의거하여 전진하였다. 안개속의 항해규정을 지켜 가끔 고동을 울려 자기의 위치를 알리지만 답신은 없다. 하기야 전투임무가 아닌 이상 어떤 배가 이런 때 바다에 나오랴. 정말 지독한 안개다. 아무리 짙어도 보통 한두시간이면 하늘을 보이기가 일쑤였는데 세시간이 넘도록 걷힐줄 모르는 이런 안개는 겪느니 처음이라고 20년가까운 복무경력을 가진 함장조차 혀를 내둘렀다.
안개만 아니라면 벌써 바다우에 높이 떠오른 해를 볼수 있는 아침 8시반경.
그때쯤 함장과 함께 식사를 하고난 정치부함장 박인철은 무선수를 찾아 무선기를 선수갑판에 내다놓고 중앙방송파장에 맞추고있다가 9. 9절 행사보도가 나오면 알리라고 이른 후 지휘소아래의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엊그제 시작하여 간밤까지 다 읽은 서정시집 《포화속에서 부른 노래》를 탁우에 펼쳐놓고 읽으며 감동이 커서 귀를 접어놓은 시들을 수첩에 옮겨쓰기 시작하였다. 다 옮기려면 며칠 걸려야 할만큼 귀를 접은 페지들이 많았다.
본래 인철은 시보다 소설을 좋아한다. 취미가 그런데다 사람과의 사업을 해야 하는 정치일군으로서의 수양과 책임감이 또한 소설을 필요로 했는데 매 한권한권의 중, 장편소설들을 읽고나면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병사대중과의 사업을 하기도 헐해지는감을 인철은 확실히 느끼고있었다. 그래서만도 더더구나 소설을 열독하는데 까닭에 시인들이 알면 섭섭해하겠지만 이제껏 읽어본 시라면 서사시 《백두산》과 《조선은 싸운다》, 《벌거벗은 아메리카》 외에 불과 몇편 되지 않았다. 대신 소설은 상당히 많이 읽었다. 《땅》, 《두만강》, 《용광로는 숨쉰다》, 《대하는 흐른다》, 《석개울의 새봄》, 《고난의 력사》, 《포화속에서》… 다 꼽자면 손가락이 몇십개라도 모자랄 정도다. 어쨌든 부대도서실에 비치된것은 거의다 읽었다. 그래서 이번의 전투항해에 나오면서 읽을것이 없어 걱정하던중에 도서실주임아주머니가 군인들이 꼭 읽어야 할 시집이라면서 권하길래 받아가지고나왔는데 읽기 바쁘게 심취되여버렸다.
책명그대로 어느것이나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군인들이 발휘한 대중적영웅주의와 필승의 신념, 불굴의 투지를 노래한 시들로서 내가 왜 여직껏 시를 멀리했을가 의문을 가질만큼 하나같이 훌륭한 시편들이였다. 그런중에서도 박인철이 특히 감명을 크게 받은 시가 있었으니 그것은 시초 《전사의 노래》속에 있는 《영원한 전사》였다.
지금은 대오속에 없는, 그러나 저녁점검때마다 중대에서도 첫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리수복영웅을 가리켜 《조국이 정해준 자기 위치에 중사 리수복이 차렷하고 서있다》고 하면서 시인은 이렇게 격조높이 영웅의 위훈을 찬양하고있었다.
…
아아, 불뿜는 원쑤의 화구앞으로
가슴을 내대인 영웅의 나이는
그때 열여덟
지금도 열여덟
…
오오, 크나큰 공훈을 청사에 남긴
영웅은 영원히 제대되지 않노라
젊음을 누구보다 귀중히 여길줄 안
영웅은 나이를 먹지 않노라!
…
지금 바로 그 《영원한 전사》를 첫머리에 쓰면서 인철은 생각한다.
(나도 영웅이다. 중사 리수복과 같은 공화국영웅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리수복영웅과 동렬에, 같은 정신적높이에 서있다고 말할수 있는가? 리수복영웅처럼 열여덟살때 조국을 위해 불을 뿜는 원쑤의 화구앞에 가슴을 내대일 각오가 되여있었던가?…)
인철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 열여덟살때의 나는 조국의 귀중함조차 다 모르는 덜퉁한 햇내기였다. 영웅이 된 지금 역시 영웅으로서의 높은 정신세계에서 조국을
품어안고 산다고
그렇게 리해해야 한다. 그러니 나에게는 영웅임을 자부하거나 자만할 리유란 조금도 없다. 있다면 리수복영웅을 귀감으로 진실로 영웅답게 살기 위한 무한의 헌신과 분투뿐일것이다! 그렇다. 이제부터 내 인생의 과제는 바로 거기에 있음을 언제나 잊지 말고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자!)
그러한 가책과 열망, 결의속에 《동무들, 나를 딛고 앞으로!》와 《나의 총번호》, 《열두전사》, 《직동령에 올라》를 쓰고 조군실영웅의 위훈을 노래한 《천만사람을 결전에로 불러세우며》를 거의 쓰는중에 무선수가 뛰여와 알렸다. 중앙방송에서 정각 9시부터 평양시군중대회와 시위행사보도를 예보했다고…
인철은 시계를 보았다. 7분을 앞둔 9시, 그는 만년필을 놓고 서둘러 일어서며 물었다.
《확성기에 련결했나?》
《련결했습니다.》
《그럼 수뢰수와 포수들, 당직근무가 아닌 성원들을 다 무선실앞에 모엿시키라구.》
《그러지 않아도 벌써 모였습니다.》
나가보니 무선수의 말대로 선수갑판에는 당직근무가 아닌 해병들이 무선기를 둘러싼채 혹은 서고, 혹은 앉아서 행사시작전의 음악을 듣고있었다. 명절이여서 아침에 특식을 푸짐히 먹고난 해병들의 얼굴은 모두 불깃불깃하고 누구라없이 기분들이 흥뜬 상태였다.
드디여 음악이 멎고 남자방송원이 이제부터 공화국창건 20돐경축 평양시군중대회와 30만근로자들의 시위를 실황으로 보도하겠다면서 대회장인
《…지금 광장에는 공화국창건 20돐 경축대회에서 하신
…
대회를 앞둔 이 시각 공화국의 기치아래 걸어온 20년간의 간고하고도 영광스러운 로정을 긍지높이 돌이켜보는 군중들의 얼굴마다에는 온갖 풍파를
몸소 헤치시며 이 땅에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락원을 건설하신
…
그러는 동안에 9시가 되여 환영곡이 울리고 만세의 환호성이 진감하는 가운데
연설이 끝나자 수백발의 축포가 발사되고 뒤따라 장엄한 시위가 시작되였다.
《유격대행진곡》의 힘찬 선률이 낮아지면서 녀성방송원의 격동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금빛 눈부신 공화국국장과 우리 공화국의 력사를 상징하는 1948-1968이라는 표식을 중심으로 오각별 찬연한 공화국기를 바람에 날리며
방송원의 목소리에 심취되였던 박인철이 륙감으로 지금 이 자리에 한영일이 없다는것을 알게 된것이 이때였다. 수뢰분대장인 김중옥에게 물었지만 모르겠다는 대답이였다. 한영일은 수뢰수였다. 워낙은 함상포장탄수였는데 근간 김현주가 해군군관학교에 추천되여간것을 계기로 본인이 희망하여 수뢰수로 돌려놓았다.
말이 난김에 언급한다면 김현주는 기쁨의 눈물속에 해군군관학교로 갔다. 기쁘지 않을수 없었다. 상등병영웅으로 군관학교에 가게 된것도 더없이 기쁜 일이지만 떠나기 바로 며칠전 평양피복종합공장 김신복지배인의 도움으로 이어진, 평안북도 신의주시자동차사업소 직장장 안순필이 보내온 편지를 통해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행방을 확인하게 된것은 기쁨중의 기쁨이였다.
박인철이 선실에 들어섰을 때 한영일은 눈을 감은채 침대끝에 홀로 누워있었다.
인철은 침대머리에 걸터앉으며 이마를 짚어보았다. 열감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낯색이 해쓱한걸 보니 또 멀미가 나는 모양이였다. 해병훈련소를 졸업하고 함에 온지 석달이 넘도록 멀미때문에 고생하며 기를 펴지 못하는 한영일이였다.
비로소 눈을 뜨며 일어나려는 전사를 그냥 누워있으라고 하며 인철은 군복웃주머니에서 인단갑을 꺼내주었다. 누운채로 인단을 갑채로 털어넣은 영일은 눈을 감은채 한동안 우물우물 인단만 녹이더니 불현듯 한숨과 함께 《저- 정치부함장동지.》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어조에 시름이 실려있었다.
《왜? 할말이 있거든 하라구.》
하려는 말이 쉽지 않은지 한영일은 눈을 그냥 감은채 한참 시간을 끌고서야 입을 열었다.
《전… 저때문에 정치부함장동지가 함장동지와 다툰걸 알고있습니다.》
근간 그런 일이 있었다. 함장의 경우는 함이 바다에 나와 파도만 높으면 벌써 멀미를 시작하는 한영일이를 전대대렬과에 제기하여 경비소대든가 아니면 통신초소 같은 륙상초소에 옮겨놓자는 의견이였다. 했지만 인철은 함장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해병훈련소의 최우등졸업생이고 미제무장간첩선을 나포한 영웅함에서 복무하게 된것을 그토록 긍지높이 여기는 해병을 멀미때문에 륙상초소로 돌려놓으면 그것은 그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입히게 될것이다. 게다가 한영일은 사랑하는 처녀 한성희의 동생이였다, 물론 영일이는 아직 그에 대해 모르고있지만… 그래서 함장과 지휘소에서 목소리를 극력 누르며 론쟁을 좀 했는데 본인이 그것을 아는것이였다.
《우리가 다툰걸 안다?- 한데 알면 어쨌다는건가?》
한영일은 또 얼마간 침묵을 흘리다가야 입을 열었다.
《전, 저때문에 정치부함장동지가 딱한 처지에 빠지는걸 바라지 않습니다.》
인철은 내심 긴장되였다.
《그건 무슨 소린가? 혹시 영일인 함에서 내리자는 생각을 한게 아니야?》
《…》
대답대신 불어내는 괴로운 한숨이 그것을 시인하고있었다. 인철은 함장과의 론쟁이 한영일의 귀에 들어갈수 있고 그로 하여 당자가 이런
자포자기에 빠질수 있다는것을 예견 못한
《왜 그런 옹졸한 생각을 하나. 함장동지야 동무가 멀미때문에 고생하는것이 안타까와서 한번 해본 소리고 그럴수록 동무는 동무대로 멀미를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더 해서 기어코 훌륭한 만능해병으로 돼야 할게 아닌가.》
《저도 그러곤싶지만…》
《안돼. 내가 이 함에 정치부함장으로 있는 한 영일인 절대로 어디 못 가. 왜 못 가는가 하는건 차차 알게 될거고 지금은 이겨내야 해. 벌써 많이 나아지질 않았나. 이제 한두달만 더 습관되면 일없어. 제일 어려운 때가 성공에 가장 가깝게 접근했을 때라는 말이 있어. 그걸 알아야 해.》
《…》
《내가 평양에도 알아보고 군의들과도 좀 상론해봤는데 멀미는 피할수 없는게 아니야. 의학적으로 판명된데 의하면 멀미는 부교감신경이 과민하거나 위궤양 혹은 담석증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쉽게 일어나는 생리현상이야. 그러니 이번 항해를 마치고 들어가선 군의소에 가 건강검진을 전면적으로 해보고 원인을 찾아 대책을 세우자구. 전대군의소에서 안되면 중앙병원에 올라가서라두…》
박인철이 말꼬리를 다 맺기 전에 갑자기 선실 확성기에서 함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전체 들으라, 함 〈폭풍!〉 즉시 자기 초소를 차지하고 차후 명령을 기다릴것.》
(적정인가?)
그렇게밖에 달리 판단할수 없는 함장의 명령이였다.
한영일이 언제 멀미로 누워있었던가싶게 벌떡 일어나는것과 때를 같이하여 인철은 선실을 뛰쳐나와 지휘소로 달려올라갔다. 그새 안개가 많이 엷어져서 하늘까지는 아니라도 주변 몇십메터 정도까지는 가려볼수 있었다.
《무슨 정황입니까?》
《앞뒤에 적선이 붙었소. 좌현 0. 3마일상에도 한척 있고… 적들이 안개를 리용해서 매복진을 편것 같소.》
쌍안경으로 시창을 내다보며 하는 함장의 대답이였다. 그제야 인철의 눈에도 선미와 선수쪽 그리고 좌현으로 아직 다 걷히지 않은 안개속에 거뭇한 형체가 드러나는것을 볼수 있었다. 륜곽으로 보아 아군 구잠함보다 더 커보이는, 천톤급이상으로 예상되는 함선들이였다.
《우리 위치는 지금 어딥니까? 적들이 우리 령해에 들어오진 않았습니까?》
《아직은 령해선접속부에 있지만 세척 다 선수를 우리쪽에 두고 포진한것이 수상하오.》
《우리 위친?》
《고성앞바다 해상분계선을 2. 3마일 앞둔 수역이요.》
《잠수함의 움직임은 없습니까?》
《그건 아직 포착되지 않는데 잠수함보다 저것들이 문제요. 내 생각엔 저놈들이 우리를 삼각으로 포위해서 몰이를 하던가 강제로 끌고 해상분계선을 넘자는 수작으로 판단되오.》
인철은 함장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해상분계선을 2. 3마일 앞둔 수역의 안개속에서 적함들이 이런 포진으로 덤벼드는것은 매복으로 나포를 꾀하는것이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었다. 그러한 가설을 사실로 증명하듯 얼마후 선수쪽에 대기하고있는것으로 보아지던 적함이 전진하더니 드디여 령해선을 넘어섰다. 넘어섰을뿐더러 확성기와 기발신호로 기관을 끄고 《정지》할것을 요구해왔다. 이를테면 싸움을 걸어온셈이였다.
《어떻게 대응하잡니까?》
해도에 표시된 적함의 위치를 가늠해보며 인철은 물었다. 함장은 신중한 표정으로 해도탁앞을 몇번 왔다갔다하며 생각을 굴려보고서야 결심을 내놓았다.
《1 대 3이라 화력은 좀 렬세하지만 너죽고 나죽고 해볼판이요. 1포와 2포는 각기 선미와 좌현쪽에 붙은 놈들과 맞서라고 하기요. 뒤쪽 놈들은 고사기관총으로 상대하고… 저것들의 포가 구경이 우리 함보다 더 큰데 만일 함이 침몰되는 경우가 생기면 각자 수뢰를 하나씩 안고 적함에 돌입하자는거요.》
《찬성입니다. 한데 우선은 전대에 정황부터 보고하지 않겠습니까?》
때마침 통신장이 지휘소에 들어섰다.
《저 배들이 미국놈들거요, 아니면 괴뢰들 배요?》
함장이 물었다.
《괴뢰들겁니다.》
《적들이 공개통화를 하오?》
《그렇습니다. 한데 놈들이 우리가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함이라는걸 아는것 같습니다.》
통신장의 말이였다.
《뭐랍데?》
《하느님이 하사한 천번중 한번 기회라면서 무조건 나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푸에블로〉호를 찾아갈수 있다고. …》
함장은 예상했던 일이기라도 한듯 별로 놀라지 않고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구잠함 35호를 적들이 모를리 없다. 알뿐더러 언제 어디서든 만나면 반드시 나포하든가 나포가 정 곤난하면 침몰이라도 시켜야 한다고 미제7함대소속의 모든 함정들과 괴뢰해군에까지 지시한바 있다는 적들이다. 《전대에 공개전문을 보내오.》 함장이 말했다. 《이렇게 치오. 〈전대장 앞. 구잠함 35호 순찰근무중 21해구 북위 38도 53분, 동경 128도 49분 해상에서 괴뢰해군함 3척과 조우. 나포기도가 확인되나 절대 허용하지 않겠음.〉》
통신장을 보낸 함장은 함선마이크를 들고 각 초소장들에게 정황을 알려준데 이어 필요한 전투조직을 하였다. 하여 목표가 지정되고 화력이 분담되였으며 있을수 있는 여러 정황에 따른 임무와 행동방향이 수립되였다.
《나는 포수들과 함께 있겠습니다.》
그런 말을 남기고 지휘소를 나온 인철은 먼저 선수쪽의 1포에 가서 포수들에게 적들의 음흉한 기도를 알려주고
그동안 안개는 많이 걷혀 하늘이 보이고 적함들도 정체를 뚜렷이 드러냈다. 코숭이에 새긴 함선번호까지 육안으로 가려볼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달라진 정황은 벌써 12마일령해선 안쪽으로 퍼그나 옮겨온 삼각의 포위환이 한결 좁아진것이였다.
적함들은 점점 더 조이고들었다. 그러는 적함들을 견제하기 위해 함장의 지시로 지휘소의 신호수가 경고신호를 보내고 무선으로도 알렸다.
《119호선, 119호… 령해밖으로 나가라. 빨리 나가라.》
《24호, 당신들은 우리 령해를 침범했다. 선수를 돌리고 속히 령해선밖으로 나가라.》
《17호, 경고한다. 더이상 접근하면 발포하겠다.》
그러나 수적우세를 믿는 모양 적들은 경고를 듣지 않고 그냥 다가들었다. 이제는 적의 함상포들과 인원들의 움직임도 가려볼수 있었다.
숨가쁜 긴장이 흐르는 속에 다시 함장의 명령으로 하늘로 향했던 포신과 고사기관총 총신들이 수평을 이루며 목표들을 겨누었다. 그와 동시에 포에 포탄이 장탄되고 고사기관총 장탄수도 장탄끈을 당겼다놓았다. 적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경사각을 이루었던 포신들이 내려와 아군쪽을 겨누고 사격제원을 복창하는 포수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한편 적들은 도적이 주인더러 밥잡수 한다더니 확성기로 비린 소리로 줴쳤다.
《공산군, 강약이 부동이다. 살고싶으면 정지하고 순응하라.》
《공산군함장, 우리는 당신의 함이 미국해양연구선 〈푸에블로〉호를 피랍한줄 알고있다. 그러니 엎음갚음이다. 부커(부쳐)함장처럼 반항할 생각을 말고 신사답게 나포되는게 현명하다.》
《
(저 개놈들을 그저!…)
해병들은 격분에 치를 떨었다. 포수들의 경우는 당장 포사격을 퍼부어 적들의 저 더러운 아가리를 짓뭉개버리자며 윽윽하였다. 하지만 인철은 적의에 찬 눈길로 적함을 쏘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불을 토할 때가 아니므로 침착하게 함장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고 포수들을 설복하였다. 그때 수뢰수 한영일이가 그를 찾아왔다. 그는 방금전까지 맥을 잃고 고민하던 병사같지 않게 걸음이 빠르고 얼굴엔 비장한 각오가 비껴있었다.
《정치부함장동지.》
《왜?》
《제 보기엔 말입니다,》 적함을 쏘아보며 다급히 하는 한영일의 말이였다. 《놈들이 포위환을 좁히는것은 수적으로도 많지만 배가 크기때문에 충돌해도 좋다는 심산같습니다. 그러니 충돌을 예견해서 우리도 빨리 준비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어떻게?》
《제 생각엔 함의 앞뒤와 좌우현측에 폭뢰를 여러개 묶어 붙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부딪치는 순간에 폭발하면서 적함도 같이 파선되게… 나는 그것이 개별적으로 적함에 접근하여 폭뢰를 터뜨리는것보다 더 효과적일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인철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영일이를 쳐다보았다. 바다에 나오면 멀미때문에 노상 기가 죽어지내던 전사인데 지금 적들과 조우한 위급한 정황앞에서 얼마나 두려움 모르는 희생적인 자기를 보여주고있는것인가! 인철은 기쁨을 금할수 없었다.
조성된 정황으로 보아 오늘 이 16-21해구에서 하게 되는 적들과의 싸움은 구잠함 35호에 있어서 조국을 위한 최후의 싸움으로 되기가
쉬웠다. 그렇거든 다문 얼마라도 적들에게 더 크고 효과적인 타격을 주어
《그렇단 말이지, 알겠소. 내 함장동지와 토론해보겠소.》
인철은 지휘소에 올라갔다. 해도탁에 엎드려 해도에 시간변화에 따르는 적아함선들의 위치를 기입하고있던 함장은 인철의 설명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영일이가 용쿠만. 아주 좋은 방안이요. 폭뢰를 떠밀고 적함에 가붙는것이 힘들것 같아 걱정하댔는데 그렇게 하면 피값은 하고도 남겠소.》
함장은 즉시 수뢰장을 지휘소에 불러 폭뢰설치를 지시했다. 그리고 자기가 지휘소를 떠날수 없는만큼 인철에게는 적함과의 충돌시 불발하는 경우가 없도록 폭뢰설치를 검토해달라고 부탁하였다. 하여 수뢰수들이 함의 선수와 후미, 좌우현측에 단 한발만으로도 잠수함의 허리를 동강낼수 있는 위력한 폭뢰를 각기 세개씩 묶어서 고정시키고 신관까지 설치하였다.
그에 앞서 구잠함 35호가 날린 전문을 받은 해군전대의 련락에 따라 출동한 추격기편대가 하늘에 비행운을 그리며 서북쪽으로부터 21해구 상공에 나타난것은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도적놈의 귀가 더 밝다고 비행기소리를 먼저 포착한것은 적들인것같았다. 비린청으로 너덜대며 위세를 뽐내던 적들의 확성기가 갑자기 입을 다문다 했는데 이어 적함들은 바삐 포신을 쳐든다, 배머리를 돌린다 하며 부산을 피우더니 미구에 척척이 령해접속선을 넘어 줄행랑을 놓는것이 아닌가. 또 그때쯤 아군어뢰정들도 흰 물갈기를 일으키며 21해구로 질주해왔다.
《흥, 제깟것들이 주제에 누굴 나포해? 장탄했던김에 뒤통수에 한방씩 갈겨줍시다, 젠장!》
《야, 이 비겁한 놈들아! 다시 어리석은 수작했단 다음번엔 상어순대를 만들고말테니 박정희한테 그렇게 일러라!》
《하하하, 저놈들 뿌얘서 내빼는 꼴 좀 보라, 꼭 광에서 반찬 훔치다 들킨 도적괭이들 같구나!》
《핫핫하…》
《핫핫하…》
적들과의 싸움에서 이긴 해병들의 통쾌한 조롱이고 웃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