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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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의 포항에서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지시를 받고 인민군대오에 편입된이래 태백산줄기의 험산준령을 넘고넘으며 간고한 행군을 이겨낸 김신복이 평양에 도착한것은 1950년 10월 중순의 어느날 새벽 4시경이였다.

평양, 당중앙위원회가 있고 모교인 김일성종합대학과 사랑하는 어머니와 딸애가 있는 평양으로 살아서 돌아왔다는것이 신복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처럼 험난간고한 후퇴로정이였다.

지팽이에 의지한채 고요한 서문네거리 한복판에 못박힌듯 굳어진 신복은 사위를 둘러보았다. 정치공작대로 떠날 때만 하여도 생활이 충만되여 흐르던 거리에 불빛 한점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쓰리고 아팠다. 조선의 심장인 수도 평양의 거리에 이런 암흑천지를 강요한 원쑤 미제에 대한 증오가 새삼스럽게 끓어올랐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왔다. 아침을 짓는지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여오른다. 페허로 된 도시, 성한 건물 한채 없고 곧바로 서있는 전주대는 물론 길마저 찾을수 없이 파괴된 도시에서 밥짓는 연기를 보니 그런대로 반가왔다.

신복은 절룩거리며 당중앙위원회로 찾아갔다. 사업보고부터 해야 했던것이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당중앙위원회는 3일전에 철수하여 북으로 가고 정문접수에 경비서는 일군밖에 없었다. 신복이 찾아온 사연을 말하니 그 일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포항까지 갔다가 용케 살아돌아왔다고,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며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지금 사리원부근에서 전투가 벌어지고있는만큼 빨리 후퇴하라고, 자강도쪽에 가면 당중앙위원회를 찾을수 있을테니 오늘중으로 평양을 떠나는것이 좋을것이라고 하였다. 신복은 가슴에서 큰 돌뭉치가 떨어지는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한동안 아연해 서있었다. 아무리 후퇴정황이라도 정세가 이토록 엄혹할줄은 짐작 못한 그였다.

신복은 아픈 다리를 간신히 끌고 집으로 향하였다. 그제서야 집이 폭격피해를 입지 않았는지, 어머니와 딸애 영림이는 무사한지, 혹시 어머니가 벌써 아이를 업고 후퇴한것은 아닌지, 영림이 아버지가 소식을 알려오지 않았는지… 집오래가 가까와오자 오만가지 생각이 엇갈려 떠올랐다. 다행히도 집은 그대로 서있었다. 지붕 한켠으로 기와장이 좀 벗겨졌는데 폭풍때문이라고 생각되였다.

집마당에 들어선 신복은 저도 모르게 멈추어섰다. 딸애의 칭얼거리는 소리라도 들을줄 알았는데 빈집처럼 아무 기척이 없었다. 가슴이 섬찍했다.

토방에 올라섰지만 선뜻 문을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여드는 가슴을 가까스로 눅잦히며 조심히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홀로 앉아 바느질을 하다말고 고개를 들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더니 이내 바느질감을 내던지고 허둥지둥 달려와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살아있었구나!…》

신복이도 어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열을 터뜨렸다. 하면서도 그의 눈은 딸애를 찾고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 영림이는 보이지 않았다.

《너한테 면목이 없구나. 그 애를 살리지 못해서…》

행여나 했던 마지막희망마저 사라졌다. 그동안 소젖이나 양젖을 구하면 젖을 먹이고 못 구하면 암죽을 먹여 키우던 딸애는 한달전부터 소화불량으로 먹지 못하고 앓다가 바로 닷새전에 죽었다는것이였다.

신복은 가슴이 터져왔지만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했다.

《됐어요. 어머니, 그만하세요. 전쟁인데 무슨 일인들 없겠어요. 우리보다 더 큰 불행을 당한 집이 얼마나 많다구요.》

그러면서 신복은 어머니에게 앞으로 더이상 영림이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살붙이를 잃은 상처야 영영 아물지 않을것이지만 차라리 덮어두는 편이 나을것이였다.

전투가 사리원에서 벌어지고있는 형편이여서 집에 오래 머무를수 없었다. 아침삼아 점심삼아 끼를 대충 에우고는 짐을 적당히 꾸려가지고 어머니와 같이 집을 나섰으나 신복은 발의 상처가 심해서 걷기 힘들었다. 집을 나선것이 오후 2시쯤이였는데 저녁무렵에야 룡성에 도착할수 있었다.

평양에서 자강도쪽으로 들어가자면 룡성에서 평성과 개천을 거쳐 희천으로 들어가는 길이 제일 빠르다. 까닭에 룡성에서 평성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은 사람들과 자동차가 꽉 차서 그야말로 흘러가는 강물을 련상케 하였다.

어머니는 신복의 발에 약을 갈아붙이며 아무래도 이 발을 가지고는 몇십리 못 가니 산넘어 어느 외딴집에 가 피신해있으면서 발을 치료해가지고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신복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할수 없었다. 가다가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심장이 뛸 때까지는 당중앙위원회를 찾아가는것이 로동당원으로서의 할바였다. 그가 우기니 어머니도 더 만류하지 못하고 후퇴길에 올랐다.

신복은 발이 너무 부어오르고 피고름이 흘러 신발도 신을수 없어 신발은 보따리에 넣고 천으로 발을 둘러감은채 어머니에게 의지해서 간신히 걸었다. 그 정상이 정 가긍해보였던지 그들이 겨우 고개밑에 이른 어둘녘에 지나가던 인민군대수송차가 옆에 와멎더니 가는 곳을 물었다. 차는 군대차지만 운전칸에서 내다보며 묻는 사람은 군대도 아니고 사민도 아닌 깃을 세운 군관복형식의 검은 제복에 어깨띠를 멘 안경낀 남자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쫓기며 신복은 서둘러 발탈이 나게 된 사연과 자강도로 가는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그 검은색군관복차림의 남자는 목을 돌려 적재함우에 있는 같은 제복차림을 한 사람과 몇마디 나누더니 고맙게도 타라고 했다. 그리하여 어머니를 운전칸에 앉히고 신복은 수송차주인들인 두 검은색군관복차림을 한 남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간신히 적재함에 올랐다.

적재함에는 이상한 짐들이 실려있었다. 벌써 어두워서 정확한건 알수 없었지만 발에 밟히고 손에 닿는 촉감으로 기관포 포탄이던가 포탄깍지로 짐작되는 쇠붙이들이였다. 가죽주머니같은것이 달린 둥근 쇠줄테들도 있었다.

수송차는 성능이 좋지 못했다. 신복이 듣기에도 기관소리가 아주 맥없고 불안하였다. 달리는 속도로 말하면 평지인데도 사람이 뛰는것보다 별로 빠르게 느껴지지 않고 전조등빛은 불과 서너발자국앞이나 비칠 정도로 약하였다. 그런 차라도 발이 아프지 않고 편안하니 좋았다.

차가 안깐힘을 쓰며 령등을 오를 때쯤 운전칸에서 올라온 안경쓴 사람이 궁금한지 함경도말씨로 자강도에는 왜 가는가, 어디서부터 오는 길인가고 물었다. 둘중에서 그가 책임자인것으로 짐작되였다.

신복은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포항에서부터 후퇴해오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두 사나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으면서 그간 고생이 많았겠다며 리해를 보이더니 엎음갚음으로 자기들의 신분을 밝혔다. 그들은 적들이 패주하면서 파괴한 남반부해방지역의 철도를 복구할 임무를 띠고 경상북도까지 내려갔다가 영주역에서 전선사령부로부터 후퇴명령을 받고 들어오는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이였다. 그러고보니 임무는 달랐어도 같은 《경북출신》의 정치공작대원들이였다.

《그런데 이건 뭣인데 싣고갑니까?》

수송차가 평성을 지나 다시 안깐힘을 쓰며 올리막길을 톺아오르기 시작하자 신복은 비로소 차에 실은 짐에 관심이 돌아갔다. 이 어려운 후퇴길에 탄약이라면 몰라도 탄피에 더 가까운것으로 짐작되는 물건을 그것도 철도일군들이 운반해가는것이 아무래도 리해되지 않았다.

《기차를 타봤겠는데…》 안경낀 사람의 말이였다. 《이건 기차통표라는건데 이게 없으면 철도가 눈먼 장님이 되지요. 아마 지금쯤 미국놈들과 리승만이 이것때메 골치를 앓을게오다. 당장엔 경부선과 중앙선을 운영하지 못할테니까.》

《경부선과 중앙선이면… 아니, 그럼 이 통표들은 이남철도에서 쓰던것들입니까?》

정치공작대로 파견될 때 강습을 받은데다 공작지에서 많이 들은바도 있어서 신복은 경부선과 중앙선이 서울과 부산을 련결하는 남반부철도의 두갈래 중요간선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갸들거지요.》 역시 안경낀 사람의 대꾸였다. 《후퇴하는 판에 달리 싸울순 없고 그놈들 진격이나 뜨게 만들자 해서 영천, 대구서부터 역들을 훑으며 회수했는데… 갸들로선 한동안 애를 좀 먹을게우다.》

신복은 감심되는바가 없지 않았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자신의 경우에는 포항에서 후퇴명령을 받은이래 지금껏 오로지 후퇴하는데만 몰두했었다. 그러나 이들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은 나름의 투쟁방법을 찾아내여 적들과 싸우면서 승리를 위한 후퇴를 하고있는것이였다. 머리가 숙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순천을 지나고 개천땅에 들어서서 얼마간 달리던 수송차가 무인지경의 산굽이를 돌다가 푸르륵거리더니 마침내 멎어섰다. 고장났던것이다. 고장이 심중해서 장밤 씨름한 끝에 밝을녘에야 퇴치하고 떠났으나 개천읍을 앞두고 다시 멈춰서지 않으면 안되였다. 벌써 날이 활짝 밝아서 미국놈들의 비행기가 달려들 시간이 되였던것이다.

그무렵에는 적기의 공습이 심해서 자동차를 비롯한 기동수단들이 낮에는 은페해있다가 밤에만 달리는것이 원칙이였다.

개천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모롱이에 수송차를 감추고 위장을 끝내자 두 철도정치공작대원은 읍거리에 내려가 먹을것을 구해오겠다고 하였다. 신복은 만류했다. 갔다가 공습이라도 만나면 어쩌겠는가고 하며 자기 배낭과 어머니의 짐보따리속에 쌀이 몇되박 있고 끓일 양재기도 있으니 그걸로 아침마련을 하자고 했다. 차신세를 지는 값을 그렇게라도 갚고싶었다. 그러나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은 신복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안경낀 사람의 경우는 적기의 공습같은건 익숙되여 이젠 대수롭지 않다고, 아직 갈길이 먼데 배낭안의 쌀은 비상용으로 남겨두자고 하면서 히죽이 웃었는데 웃을 때 덧이가 드러나는것을 신복은 똑똑히 보았다.

두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은 서둘러 떠났다. 읍내를 바라고 저만치 산모롱이를 돌아가면서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는데 곡조가 《돈돌라리》였다.

그런데 그렇게 휘파람을 불며 떠난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줄을 어찌 알았으랴. 짐작에 그들 두사람이 읍거리에 들어서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갑자기 남쪽하늘을 긁으며 적비행기가 나타났다. 10여대 잘되는 적기편대는 덮쳐갈 병아리를 찾는 독수리마냥 읍거리상공을 선회하더니 드디여 내리꽂히며 폭탄을 떨구고 기총소사를 해대기 시작하였다. 땅을 뒤흔드는 폭음에 섞여 불기둥과 검은 연기가 타래쳐오르는 개천시내를 내려다보며 신복은 거기에 있을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이 걱정되여 불안을 덜수 없었다.

좋이 한 20~30분쯤 그런 광란을 부리던 끝에 적기들이 물러갔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신복은 어머니와 함께 개천시내로 내려갔다. 읍거리에 들어서니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숱한 집들이 파괴되여 불타고 페허속에서 시체를 끌어내며 통곡하는 참상을 차마 눈뜨고 볼수 없었다.

신복이도 어머니의 부축을 받아가며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을 찾았다. 그러다가 마사져 불타는 어느 단층집마당의 폭탄구뎅이옆에서 검은 제복만으로 겨우 알아볼수 있는 그들의 시체를 찾을수 있었다. 그나마 시체 하나는 하반신만 남아있었는데 그것은 아까 떠날 때 히죽 웃으며 덧이를 드러내보이던 안경쓴 사람의것이였다.

저 귀축같은 미국놈들이 무슨 참변을 빚어냈는가.

신복은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먹을것을 구해오겠다고 떠나는 이들을 끝까지 만류하지 못한것이 몹시도 후회되였다. 하지만 후회나 하고있을 때가 아니였다. 신복은 그런대로 성성한 오륙을 남기고간 사람의 몸에서 당원증주머니와 철도정치공작대로 파견한다는 당중앙위원회신임장을 꺼내 건사하였다. 그리고는 벌써 활동을 시작한 구조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두 철도공작대원들의 시체를 가까운 산기슭에 날라다 안장했다.

신복은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이들에게도 사랑하는 부모처자들이 있겠는데 한사람의 경우는 주소성명도 모르고 사망통지조차 해줄수 없게 되였다. 인생을 절반이나 살았을가말가한 이들, 앞길이 구만리같은 사나이들이 여기 개천땅의 이름없는 산기슭에 묻힌것도 모르고 부모처자들은 이제나저제나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것처럼 아팠다.

이제 와서 신복은 자기의 눈앞에서 하체만으로 개천땅에 묻힌 그 철도정치공작대원이 지금 박인철이라는 해군군관이 찾고있는 《돈돌라리》, 즉 김상종이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인상특징으로 보나 말씨로 보나 틀림없는 그 사람이였다.

통표를 운반한 운전사만 찾으면 확인을 할수 있을것이다.

자초지종을 말하고난 김신복이 한숨을 내쉬였다.

《하지만 그를 어떻게 찾겠습니까? 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향이 신의주라고 하던것밖엔…》

《아, 그거면 되지요.》 역장은 아주 자신만만해하였다. 《신의주바닥이 아무리 너르기로서니 후퇴때 남반부에서 기차통표를 실어온 운전사가 둘이겠소? 하나지… 그 운전사가 전쟁때 전사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군자동차사업소든가 자동차를 가진 어느 기업소에 근무하고있을게오다.》

딴은 그렇기도 하다. 하여 신복은 역장에게서 종이와 만년필을 얻어가지고 그 자리에서 박인철군관에게 회답을 썼다. 그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개천에서 있은 일을 자상히 쓴데 이어 이렇게 계속하였다.

…강계에 도착하는 길로 나는 당중앙위원회에 찾아가 엄탁모라는분의 당원증과 신임장을 바치고 그들 두 철도정치공작대원들의 사망경위와 그들의 애국적소행도 통보했습니다.… 엄탁모동지는 풍산군사람이였습니다. 그의 신원이나 가족관계에서 어떤 단서를 찾으려 한다면 풍산군당이나 군인민위원회에 의뢰하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인철군관동지.

앞에도 썼듯이 나는 그때 개천시내에서 적기의 폭격에 사망하고 내 눈앞에서 엄탁모동지와 같이 묻힌 그 철도정치공작대원이 김상종동지가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동지들은 기차통표를 수집하면서 그들과 동행한 운전사를 찾는데 주력해야 하리라고 봅니다. 나는 그가 고향이 평북 신의주라고, 신의주에서 운전조수를 하다가 전쟁이 일면서 입대했다던 말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러니 신의주시에 의뢰해보십시오. 물론 나도 가능한껏 노력해보겠다는것을 약속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문의할 문제든가 어떤 방조가 필요하면 평양종합피복공장(사무실이 선교구역 선교1동에 있습니다.) 김신복앞으로 편지를 하면 됩니다.

그럼 군관동지.

성스러운 조국보위사업과 김상종동지의 행방을 찾는데서 성과가 있기를 충심으로 바라면서 이만 그칩니다. 안녕히

함흥역 역장실에서

 

그렇게 편지를 마무리한 신복은 운전사를 불러 체신소에 가서 봉투를 한장 사오게 했다. 그리고 봉투를 사오자 주소를 쓰고 봉인하여 다시 운전사에게 주어 등기로 부치게 하였다.

함흥철도관리국을 거쳐 철도성으로부터 배차지령이 내려온것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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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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