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39

 

좌석등받이에 관자노리를 붙인채 모로 쪼그리고앉아 잠들었던 김신복은 승용차가 왈칵 들추는 바람에 잠을 깨였다. 녀성본능의 습관으로 머리를 수습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50분이였다.

《여기가 어디예요?》

《금방 함주땅에 들어섰습니다.》

피로가 느껴지는 운전사의 대답에 저쪽으로 곱게 돌아앉아 자는줄 알았던 피복연구소의 처녀연구사 홍연숙이 놀란 목소리로 반응하였다.

《어마, 벌써 함주나요? 함주서 함흥이 고댄데…》

나서 자란 곳은 평양이지만 외가가 함주에 있어 중학시절 방학에 여러번 와봐서 함흥을 잘 안다고 떠나기 전에 말한바있는, 성격이 명랑하기가 방울같은 처녀였다.

《헛참, 벌써라니… 거기선 마치 선교서 중구로 건너온만치나 갑삭하니 말씀합니다려.》

운전사의 불만이였다. 아호비령밑에서 랭각수를 보충하느라고 한번 멎었을뿐 밤새 달려준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것이 섭섭한 모양이였다.

《원, 운전사동지두… 함주래서 외할머니를 만난것 같아 기뻐서 한마디 한걸 타내시네. 참 운전사동지, 찰떡을 좋아하세요?》

《나빠하진 않소다만 왜, 함흥 가서 한그릇 사줄라오?》

《너무 갑삭하게 말씀한 값을 내야지요. 하지만 함흥이 아니라 일을 보고 돌아갈제 여기 함주서 대접하겠어요. 우리 외삼촌어머니가 함주읍농장 관리위원장이예요. 찰떡같은건 한소랭이라도 대접할수 있어요.》

《한소랭이면 쪼꼼 많기는 한데… 좌우간 약속합시다레.》

신복은 두 젊은이의 그런 재담을 귀밖으로 흘리며 이렇게 밤도와 함흥행을 하게 된 경위를 상기해보았다.

어제 오후 4시경의 일이였다. 재봉기전기화를 하느라고 요새야 불이 붙은 동대원피복공장에 나갔던 신복은 거기서 자재과장이 서평양직물도매소에서 걸어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내용이 뜻밖이였다. 도매소에서 아이들의 솜옷생산용천을 3만메터 출고하겠다지만 작년 홍수때 감탕물에 잠겼던 천이여서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자서는 결심하기 어렵다는것이였다.

《무슨 소리예요? 물에 잠겼던 천이라니… 그건 받으면 안돼요. 새천을 달라고 하세요. 수령님의 선물로, 전쟁준비항목으로 나갈 제품을 물에 잠겼던 천으로 만든다는건 말도 되지 않아요.》

신복은 단호히 잘라맸다.

《그건 그렇지만 새 천이 없으니 문제아닙니까?》

《새 천이 왜 없어요? 평방이 왕왕 잘만 돌아가는데…》

《하지만 지배인동무, 여기 도매소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자재과장은 그 《그렇지 못한》 내용을 설명했는데 신복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그의 생각처럼 평양방직공장이 《잘》돌아가는것은 겉보기일뿐이고 작년 홍수때 물에 잠겼던 직포기들이 수백대나 아직 원상회복을 못한데다 이번 장마철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역시 수해후과로 돌아가는 기대들조차 불량품을 너무 내기때문에 생산을 중단하다싶이 하고 벌써 몇주일째 기대정비를 한다는것이였다.

신복은 할말이 없었다. 예견 못한 정황이였다. 송수화기를 놓고 사무실을 나온 그는 곧장 서평양직물도매소로 건너갔다. 가보니 형편은 자재과장이 말하던 그대로였다. 감탕물에 잠겼던, 홍수가 지나간 뒤 평양시내 가두녀인들과 대학생들이 달라붙어 씻고 또 씻어 대동강유보도와 아빠트옥상에 널어 잘 말리우느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생신한 맛을 잃고 휘주근해진 천필들만 무지무지 쌓여있는 도매소창고에 들어가본 신복은 비로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으며 한숨을 불었다. 다른 제품이라면 몰라도 수령님의 배려로 공급될 아이들의 옷을 그런 천으로 만들수는 없었다. 하다못해 천을 어느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한이 있더라도 감탕물에 잠겼던 천으로 솜옷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공급하는것은 수령님의 자애로운 사랑에 그늘을 지우는것으로 되리라는것이 신복의 생각이였다.

그러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가? 무슨 방도가 있을가? 천을 다른 나라에서 사온다 해도 이제는 그럴만한 시간부터 없었다. 공화국창건 20돐까지 솜옷생산을 끝내고 어버이수령님께 자랑찬 보고를 올리자는것이 그들 피복부문 로동계급의 한결같은 결심이다. 그 9. 9절이 앞으로 한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 일을 정말 어찌하면 좋담.…

신복은 다시 승용차에 올라 방직공장으로 건너갔다. 갔지만 거기 역시 직물도매소 소장한테서 들은 그대로였다. 대부분의 직포기들이 분해되여 정비중에 있는가 하면 돌아가는 기대들은 군복천만 생산하고있었는데 공장지배인의 말이 아직 10여일간 더 씨름질해야 생산에 본격적으로 들어갈것 같다는것이였다.

《생산이 10여일후부터나 되면 천이 직기에서 떨어지는족족 재봉기에 물린다 해도 9. 9절에는 완료보고를 올리지 못해요.》

《그러니 열흘에 목이 메는군요.》

《제가 생산에만 쫓겨돌아가느라고 이런 경우를 미처 예견 못한게 잘못이예요.》

그런 말을 주고받다가 방직공장을 나온 신복은 대흥동에 있는 피복관리국으로 들어갔다. 마침 관리국장 최도식이 사무실에서 무슨 통계를 료해하다가 맞아주어서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을수 있었다.

《…예견한들 글쎄 어찌겠소. 방직공장형편이 그렇고 도매소에 여분이 없는데야.》

자기도 안타깝기는 신복이나 다를바 없다는 최도식의 한숨섞인 말이였다.

《하면 국장동진 물에 잠겼던 천으로라도 솜옷을 만들자는겁니까?》

《글쎄 그렇게밖엔 달리 무슨 방도가 없으니 어찌겠소.》

신복은 《어찌겠소.》소리만 할줄 아는 이 사람과 토론해봐야 무슨 방도를 찾기는 글렀다는것을 알면서도 행여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다.

《혹시 도방직공장들에 미처 빼지 못해 차고있는 천들이 있지 않을가요?》

그것은 조금전 방직공장정문을 나오면서 안타까운김에 해본 생각이였다. 그러나 최도식은 고개부터 저었다.

《도방직공장들의 생산능력이라는게 뻔한데 어디에 차고있는 천이 있겠소. 게다가 도들도 나름으로 다 솜옷생산과제를 안고있지 않소.》

《그래도 성에랑 제기해서 좀 알아봐주세요. 국장동지도 물에 잠겼던 천이 어떤지를 아시겠지만 전 정말이지 수령님의 배려로 나갈 솜옷을 그런 천으로 만들지 못하겠어요.》

최도식은 심드렁한 인상으로 입을 쩝쩝 다셨다.

《글쎄 알아는 보기요. 한데 지배인동무는 솜옷생산에 정치를 너무 섞는것 같구만, 년초에 계획조절이 제기됐을 때도 그래.… 몇백만벌의 솜옷을 만드는중에 몇십만벌쯤 물에 잠겼던 천으로 만들었기로서니 그게 무슨 큰 문제라고 그다지나 신경을 쓰오. 누가 책임을 묻고 추궁할 일도 아니지만 설사 그런 경우라도 할말이 얼마든지 있는터에나는 지배인동무가 이 점을 리해했으면 하오.

그리고 이건 내 결심이자 상동지의 뜻이기도 한데 나는 현재 우리 관리국이 처한 형편에선 아무 천으로든 계획과제부터 빨리 수행하여 9. 9절전에 완료보고를 올리는것이 첫째로 중요하다고 보오.》

그런즉 최도식은 물에 잠겼던 천으로 계획을 막기로 이미 작정을 했음이 분명하였다. 아니, 그보다도 관리국장으로서의 최도식의 인간됨을 신복은 비로소 정확히 알게 되는 느낌이였다. 누가 책임을 묻고 추궁해도 할말이 얼마든지 있다? 내가 아무리 눈아래로 보이는 녀자라 해도 어쩜 저런 당치않은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단 말인가. 무섭지도 않은가?

《제가 솜옷생산에 정치를 얼마나 섞었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계획조절에 동의할수 없었던건 80만명의 아이들에게 솜옷을 공급하지 못한것때문에 수령님께서 심려하실 일이 걱정스러워서였어요. 그리고 지금 물에 잠겼던 천을 받지 못하겠다고 하는건 아이들에게 돌려지는 수령님의 사랑에 흠이 갈수 있겠기때문이예요. 이게 초당이라면 그리고 솜옷에 정치를 섞는거로 된다면…》

신복은 뒤말을 삼키며 혀를 깨물었다. 생각을 그대로 내뱉는다면 당신은 대체 어떤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기에 수령님의 뜻과 은덕을 느끼는 마음이 그리도 찬가고 쏘아붙였을것이지만 차마 그러지는 못하고 돌려 말했다.

《성당위원회에 정식 반영하여 조직적인 결론을 받는것이 옳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허허…》 최도식은 허구픈 웃음을 앞세우며 말했다. 《역시 동무는 정치적이구만. 됐소, 그만하기요. 동무하구는 말할 재미부터가 우선 없소.》

말할 재미가 없다는 사람과 무슨 말을 더 하랴. 마당에 나와 승용차에 한발을 올려놓은 신복은 어떻게 할것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어디가 안타까운 소리를 해볼데도 없었다. 희망을 걸어볼데라고는 도방직공장들이였다. 도방직공장들에 없다면 상업성을 뚜지고들어가 백화점창고들이라도 뒤질 결심이였다. 방직공장지배인이 말했듯이 그렇게 해서라도 열흘동안을 메꾸면 그후엔 방직공장에서 천이 나올것이다. 그래, 그러니 지금은 중앙우편국에 가서 도방직공장들에 알아보아야 한다. 관리국장이 저도 알아보겠노라고는 했지만 웬걸, 지금쯤 벌써 감감 잊었거나 생각하고있다 해도 알아보지 않을것이다. 워낙 그런 인간이기도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코코에 훼방을 놓지 못해 앓는 사람이니까.…

중앙우편국 전화대기실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아홉번째 손님으로 신의주시와 사리원, 함흥, 청진시를 신청해놓고 한시간가깝게 기다리니 차례가 되였다. 먼저 나온 곳은 사리원이였다. 그러나 사리원방직공장에는 뽑지 못해 묵고있는 천이 없었다. 다음차례로 나온 신의주방직공장에서는 도매소에 넘기지 못한 안감용갈스프직은 10만메터가량 있지만 겉감천은 없다는 대답이 왔다. 청진방직공장에도 없었다. 다행 반가운 소식은 함흥에서 기다리고있었다. 함흥모방직공장에 격자무늬의 데모직(데트론과 털실을 섞어짠 천)이 10여만메터나 잠겨있다는것이였다. 단색천이 아니고 죄 격자무늬천이라는 점이 좀 구미를 떨구었지만 무늬에 맞게 솜옷형태를 바꾸면 오히려 특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신복은 현지에 가서 확인해보기로 결심하였다. 지금 피복연구소 도안가 홍연숙을 데리고가는것은 그 결심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승용차는 한창 출근시간인 아침 8시경에야 함흥시내에 들어섰다. 홍연숙의 표현을 빌면 함주에서 《고대》인 거리를 그렇게 늦어진것은 외삼촌택에 잠간 들렸다가자는 처녀의 청을 들어주었다가 주인들의 권에 못이겨 조반대접까지 받느라고 지체한 까닭이였다.

모방직공장에서의 일은 오전중에 끝났다. 공장간부들과 인사를 나누고 공장을 돌아보고 면담하고 홍연숙이와 함께 수십종이나 되는 천견본들을 도안에 맞추어보며 접수하고 안할것을 결심하고 화물역까지의 운반과 상하차로력문제를 합의하는데는 오전시간으로도 충분하였다.

오후에는 기차방통을 받기 위해 철도관리국으로 갔다. 가져갈 천들이 자그만치 유개차로 두방통은 잘되였다. 그런데 정작 역장을 만나보니 방통을 받기가 헐치 않았다. 관리국을 통해 철도성에 제기돼야 해결되는데 최소한 일주일은 걸려야 받게 된다는것이였다. 신복은 아연했다. 방통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릴줄은 몰랐었다. 하루가 천금같은데 한주일을 허망하게 잃어버린다는것은 그야말로 통탄할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니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관리국장을 만나볼가? 아니, 이 지령장의 말을 들어보면 관리국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결론권은 철도성에 있다. 하면 평양으로 올라가야 하는가? 여기 함흥에서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가? 하루 한시가 정말 귀한 때인데… 전화를 걸어 피복관리국이나 성에 도와달라고 하면 어떨가? 하지만 거기에는 내가 하는 일이라면 덮어놓고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그래, 그렇다. 김일제1부수상동지에게 전화를 하는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언젠가 말한바도 있지 않는가. 아이들에게 솜옷을 해입히는것은 수령님께서 벌써 여러해전부터 별러오시던 문제이고 또 이제는 중요한 전쟁준비의 하나라고, 그러니 하늘이 무너져도 꼭 해내야 한다면서 걸리는 문제가 있거든 지체없이 제기하라고… 그로부터 한시간이 채 안되여 신복은 도인민위원회 위원장의 방에 앉아있었다.

《그러니 김일제1부수상과 전화를 하겠다는것이요?》

《예. 서기동지를 만나도 됩니다.》

틀이 크면서도 시골농부처럼 푸수해보이는 도인민위원장은 평양종합피복공장 지배인의 신분증을 가진 이 자그마한 녀인이 김일제1부수상을 전화로 만나겠다는것이 발꿈치를 들고 하늘을 만지겠다는것만치나 놀랍게 생각되는지 눈이 어웅해서 쳐다보다 말고 다시 물었다.

《하니 무슨 그럴만한 약조라도 있었던것이요?》

《그런건 없지만 아이들 옷생산과 관련하여 걸리는 문제가 있으면 제때에 알리라는 말씀은 있었습니다.》

도인민위원장은 그제야 리해되는바가 있는지 어느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어 평양을 찾았다. 1부수상 서기와의 통화는 인차 련결되였다. 신복이 미안하단 소리를 앞세우며 사유를 설명하자 서기는 송수화기를 놓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몇분가량 지나 화차를 우선 보장해줄데 대한 지시를 철도성에 떨구었음을 알려왔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도인민위원장의 방을 나온 신복은 그길로 함흥역으로 나갔다. 어디서 지체되는지 역에는 아직 배차지시가 내려와있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 역장실에서 신복은 뜻밖에도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간고처절하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과정을 돌이켜보게 하는 사연과 맞다들게 되였다.

신복이 배차지령을 기다리며 역장과 이야기를 나누는중에 철도제복차림의 나이지숙한 녀인이 들어와 역장에게 신문과 함께 편지 한장을 주고나갔다. 역장은 신문을 밀어놓고 편지부터 뜯어 읽더니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다.

《전쟁이 끝난지 15년이나 됐는데 전쟁의 상처는 여태도 아물지 않고 사람들을 괴롭히고있구만.》

전쟁의 상처라면 신복이에게도 무심히 들을수 없는 피나는 아픔이 있다.

《무슨 불행한 소식인가 보군요.》

《불행이지요. 전쟁때 철도정치공작대로 나간 사람의 소식을 아직도 모른다니 혈육들이야 얼마나 가슴이 터지겠습니까?》

신복은 철도정치공작대로 나간 사람이라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신경을 세우며 무슨 개인적비밀이 아닌 편지면 좀 보여줄수 없겠는가고 하였다. 역장은 비밀일것이 없다고, 이건 오히려 많은 사람이 읽어볼수록 좋은 편지라면서 기꺼이 넘겨주었다. 편지는 길지 않았다.

 

함흥역 역장동지 앞

 

안녕하십니까? 동지의 귀중한 사업에 지장이 될줄 알면서도 널리 리해하고 도와주리라는 믿음과 기대를 안고 한가지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 부대에 고향이 함남도 북청군 북청읍인 아주 똑똑하고 군무생활에 충실한 상등병동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철도정치공작대로 파견되였다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행방불명된 아버지때문에 고민하고있습니다. 부대에서는 전사의 고민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 그의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탁하고싶은것은 귀단위에 전쟁시기 철도정치공작대로 나갔다가 돌아온분이 없는지, 혹은 역원가족들중에라도… 있다면 아래에 쓴것과 같은 사람의 행방을 알아보고 통지해주었으면 하는것입니다.

이름: 김상종(별명:《돈돌라리》)

1950년 당시의 나이 33살. 로동당원

본적지: 함경남도 홍원군 경포리

정치공작대로 파견되기 전 직장직위: 함흥철도관리국 신북청철도영업소 소장

인상특징: 키는 1메터 70정도. 목이 긴축이고 덧이가 나고 테가 둥근 구식안경을 끼였음. 정치공작대로 파견될 당시 인민군대군관복형식의 검은 제복에 군관혁띠를 띠고 권총을 소지하고있었음.

그럼 부탁합니다. 안녕히…

※(회답은 봉함엽서의 우편대호로 보내면 됩니다.)

 

조선인민군 해군군관 상위 박인철

1968년 7월 14일

 

까닭모를 흥분을 느끼며 신복은 김상종이라는 사람의 인상특징을 거퍼 세번이나 읽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역구내쪽으로 난 창문밖의 먼 하늘을 내다보며 어느덧 18년전으로 멀어진 추억의 문을 열었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위대한 수령을 대대로 모시여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또 그 존엄도 제일 빛나는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