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35

 

총참모부작전실.

천정에서 둥근 갓을 씌운 전등무리가 내려다보는 아래로 사방 벽면들에 휘장으로 가리운 지도들이 걸려있고 목타일을 깐 바닥 중간에는 대형사판과 둘레에 작전탁들이 놓여있는 널직한 방이다.

지금 여기서는 김일성동지의 참석하에 최근 적들이 또다시 심상치 않은 군사적움직임을 보이면서 정세를 격화시키고있는것과 관련하여 그 기도를 정확히 판단하고 대응책을 세우기 위한 작전회의가 진행되고있다.

김일성동지를 중심으로 최광을 비롯한 총참모부성원들과 민족보위성의 책임일군들이 부채살모양으로 갈라져앉은 앞에서 작전국장 김철만이 지시봉으로 지도를 짚어가면서 적정을 보고하였다. 중장의 설명에 의하면 적들이 이번 무력기동에서 특징을 보이는것은 앞서에 비해 현상적으로 매우 고압적이고 포괄적이라는 점이였다. 첫 움직임은 지난 3월말경에 일본쪽으로 물러났던 72기동함대가 밤도적마냥 심야기동으로 다시 울릉도해상에 포진하고 항공모함 《코랄씨》호를 기함으로 한선발진이 원산앞바다에 나타난것이였다. 나타났을뿐아니라 종전의 15마일계선을 넘어 12마일령해접속선 바투까지 접근하여 봐란듯이 함재기 리착륙훈련을 맹렬히 진행하고있었다. 한편 포항에서는 미해병대가 상륙훈련에 진입했는데 훈련지로 포항이 선택된것은 그곳 해안지형이 원산과 비슷하기때문이였다.

실전을 가상한 그런 실동훈련과 함께 적들은 일본 사세보항에서 수리정비를 끝낸 7함대소속 핵동력로케트순양함 《아링톤》호와 핵잠수함 2척을 72기동함대에 배속시켰다. 때를 같이하여 남조선, 미국 《합동사령부》가 오끼나와에 비축하고있던 상륙정과 도하기재 등 중장비들을 일본자위대의 보급함으로 남조선에 실어나를 계획을 발표하고 현실적으로 방위청 해상막료부와 협상하고있었다.

적들은 하늘에서도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괌도에 있던 《AC-130》대지상공격기와 《F-15》전투폭격기 2개 대대를 5공군관할하에 넘기고 오산과 수원, 군산비행장에서 리륙한 전투기들이 매일같이 분계선상공을 횡단비행하면서 습격과 폭격, 교차착륙훈련을 하고있는것이 그 실례였다.

《…군사분계선에서도 적들은 도발의 도수를 높이고있습니다.》 작전국장은 서울 이북의 분계선남쪽지대를 지시봉으로 짚으며 설명을 계속하였다. 《오늘 새벽에만도 여기 경기도 련천군 고왕리와 장학리, 남강원도 철원군 률리, 학사, 개야, 양구군 잔바우일대에서 진지를 차지하고 우리 초소들을 향해 수만발의 기관총사격을 가해왔습니다.

어제 오전과 오후에는 파주군 방축리, 련천군 갈현리, 철원군 주파리와 양구군 건솔리일대의 비무장지대안에 중무기들인 박격포와 무반동포를 끌어들인것이 우리 민경의 감시에 포착되였습니다.》

작전국장은 지도를 등지고 돌아서며 설명을 계속하였다.

《정찰자료에 의하면 적들은 야전체계로 되여있던 괴뢰군의 무력구조를 군단중심의 공격체계로 전환시키고 그에 따르는 병력과 장비보완에 들어갔으며 미국본토에 있던 지상무력을 남조선에 투입할 기도도 드러내고있습니다.

이상의 적정과 예견되는 적들의 보복타격, 더 엄중하게는 지역전쟁까지를 가상하여 총참모부는 다음과 같은 대응책을 강구하려고 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국장이 렬거하는 총참모부의 결심을 주의깊게 들으시였다. 들으시며 그 매개의 대책들이 나라의 방위와 정치는 물론 경제사업과 인민생활, 대외사업분야 등 국가활동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또 그 영향으로 어떤 국가적리득과 손실이 나겠는가를 일일이 분석판단해보시였다. 그리고 작전국장이 할 말을 다 하고 지시봉을 세워짚으며 돌아서기를 기다려 말씀하시였다.

《우선 몇가지 물읍시다. 보아하니 미국이 이번에는 진짜로 무슨 일을 낼 잡도리를 한것 같은데 작전국에서는 어떻게 보고있소? 적들의 저 요란한 기동이나 무력증강이 실지 보복이나 전쟁을 목적한 기동이고 증파인것 같소?》

나라의 운명이 걸려있는 심중한 물으심이여서 작전국장은 가지고있는 견해의 과학성을 재삼 음미해보는듯 얼마간 동안을 흘리고야 말씀드리였다.

《저희들은 그렇게 보고있습니다. 적들의 경우 대기상태에 있는 지상무력과 최근에 투입한 해, 공군력이면 보복타격은 물론 국부전쟁도 능히 치를수 있습니다. 현재로서 꼭 실전이다 하고 확정지을수 없는 조건은 예비무력을 다치지 않고 일본쪽이 조용한것입니다.》

실전을 결심했으면 적들로서는 괴뢰군예비사단들을 현역사단으로 개편해야 하며 민간무력과 함께 일본자위대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했다. 그러나 차후에는 어쩔지 몰라도 현재까지는 정찰이 그러한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하고있었다.

《괴뢰군예비무력은 얼마나 되오?》

《11개 사단에 인원은 17만가량 됩니다.》

《17만… 정규무력 75만에 4만의 미군을 합치면 100만이 좀 곯는구만. 최근에 박정희가 조직했다는 향토예비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요?》

《적들이 제 입으론 300만이 넘는다고 떠드는데 실지는 270만정도 되는것으로 보고있습니다.》

《미국본토에 있는 지상군을 남조선에 투입한다는 정찰자료, 그건 확인된 정보요?》

그이의 견해로서는 잘 믿어지시지 않는 사실이였다. 작전국장의 눈길을 받고 부총참모장 강선태가 일어섰다.

《펜타곤에서 나온 정보여서 신빙성이 있다고 보아 확인해보지 않았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시였다.

《확인해보시오. 미국이 윁남전선에 50만의 대병력을 투입한것도 모자라 애먹고있는 형편인데 본토의 지상군을 조선전선에 또 투입하겠다는건 어딘가 모순되는데가 있소.》

《확인하겠습니다.》

부총참모장더러 앉으라고 하신 그이께서는 《그건 그렇고…》라고 하시며 다시 작전국장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동무들은 적들이 일단 물러섰다가 이제 와서 다시 저렇게 무력증강에 매달리는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오?》

그와 관련하여 견해가 없으신건 아니였지만 작전국에서 하고있는 판단의 정확성을 알아보시려는 의도적인 물으심이였다.

《그 리유를 저희들은 두가지로 보았습니다.》 작전국장은 주저않고 즉시 대답올렸다. 《적들이 3월말에 일단 물러섰던것은 보복에도 전면전쟁에도 다 준비되여있다는 우리의 선언과 적극적인 대기동훈련 그리고 미싸일공개에 놀랐기때문입니다. 이건 적들 자신의 인정입니다. 그러나 미행정부와 군부는 그 물리섬으로 하여 현재 국회보수계와 공화당으로부터 하느님이 선사한 미국의 위신을 땅바닥에 내던졌다는 맹비난을 받고있습니다. 죤슨이나 클리포드로서는 그 비난을 막지 않을수 없는 곤경에 처해있는데 이것이 첫째 리유입니다.》

《두번째는?》

《두번째 리유는 죤슨의 정치적야심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죤슨은 대통령재선을 꿈꾸지만 윁남전쟁에 겹쳐 푸에블로호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것때문에 민주당후보지명을 앞둔 지금 상당히 불리한 처지에 빠져있습니다. 그 불리를 수습하는 방도로 죤슨은 다시한번 군사적모험의 길을 선택했다고 보아집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작전국장의 견해에 동감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옳소. 명분이 좀 너절하기는 해도 리유라면 그게 리유요. 거기에 한가지 보탤수 있다면 미국이 아직도 우리한테 사죄를 하지 않고 힘으로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찾아가려는 망상을 버리지 않은것이요.》

말씀과 함께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장령들도 따라 일어섰다.

《결국 죤슨은 일석삼조를 노리고 모험을 하는셈인데 동무들 생각은 어떻소? 정전이 된지 벌써 15년이 지났고 그동안 우리도 국방력을 다질만큼 다졌소. 만일 적들이 전쟁을 정 하겠다면 이번 기회에 판을 갈라서 통일된 조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것이 옳지 않겠소?》

그이의 말씀에 공감하여 장령들이 약속이나 한듯 《옳습니다, 결판을 냅시다!》 하는 뜻으로 눈을 번쩍이며 가슴들을 쭉 펴는 속에 총참모장 최광이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여 말씀드리였다.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전군이 하늘, 땅, 바다초소에서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만 기다리고있습니다.

해군에서는 육탄이 되여서라도 항공모함을 까부시겠다면서 저저마다 결사대에 탄원하고 어뢰정들이 선수에 폭약을 장진하였으며 비행사들은 돌아올 연유대신 폭탄을 더 실어달라고 합니다.》

《나도 우리 인민군장병들의 그런 결사의 의지를 느끼고있소. 좋소, 정치위원회에서 토론해보겠소. 그러니 동무들은 장병들을 그러한 방향에서 준비시키시오!》

작전국의 대책안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의견이 없고 하나 있다면 일시적이기는 해도 공장, 기업소의 로농적위대를 상비화하는것은 그만두어야겠다고 하시면서 김일성동지께서는 리유를 밝히시였다.

《…지금 인민경제 각 부문에서는 공화국창건 20돐을 목표한 충정의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없이 긴장한 투쟁을 벌리고있소. 그런데 정세가 긴장하다고 해서 청장년로력을 일터에서 떼내 군사훈련과 진지굴설만 시키면 기대는 누가 다루고 생산은 어떻게 되겠소?

안되오. 현상태에서 우리는 전쟁준비도 해야 하지만 9. 9절을 성대히 맞기 위한 생산전투도 못지 않게 잘해야 하오.》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며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그이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우리는 죤슨의 저 무력증강을 단순히 보복이나 전쟁만을 위한것으로 보아선 안되오. 그놈들이 어떤 놈들이라고 그렇게 단순하겠소. 아니요, 죤슨은 담이 약한 대신 타산이 밝은 놈이요. 어쩌면 그는 보복이나 전쟁보다도 9. 9절을 앞두고 할일이 많은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들어 그걸 주패장으로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손쉽게 찾아갈 궁냥을 하는지도 모르오. 그러므로 정찰을 강화하여 적들의 기도를 정확히 판단해야 하며 절대로 흉계에 말려들지 말아야 하오.》

말씀을 끝내시기 앞서 두번이나 운 전화종이 그때쯤 다시 울렸다. 부총참모장 강선태가 구석의 원탁앞에 다가가 전화를 받더니 송수화기를 쥔채 돌아섰다.

《총정치국장동무가 보고드릴 문제가 있답니다.》

작전회의의 중요성을 알아도 잘 아는 총정치국장이 회의중에 꼭 보고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가 무엇이겠는가를 짐작해보셨지만 짚지 못하고 송수화기를 드신 그이께서는 총정치국장의 말에 그만 놀라시였다. 전신 3도의 화상으로 중앙병원에 입원해있던 315군부대 부대장 김준소장이 사망했다는 비보였다.

《무슨 유언같은건 남긴게 없다오?》

《있습니다. 17시 13분경에… 손시늉으로 쓸것을 달라더랍니다. 그래 종이와 만년필을 주었는데 최고사령관동지, 불초 전사 김준 통일성업 죄송이라고 쓰고는 운명했답니다.》

그러니 김준은 최고사령관의 전사로서 조국통일의 위업을 이루지 못한 한을 남기고 대오를 떠난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도 고개를 깊이 떨구고 눈을 감으신채 이윽토록 전화기앞에 서계시였다.

괴로움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인민군대의 장령치고 누가 다르랴만 김준 역시 그이께서 매우 신임하고 사랑하시던 유능한 군사지휘관이다.

그이께서 김준을 처음 아신것은 해방후 첫 땅크부대가 조직되던 때였다.

그무렵 어느날 그이께서는 현지지도차로 정주에 주둔하고있던 제2보병사단지휘부에 나가시였다. 그런데 부대형편을 료해하시던중 그이께서는 사단장으로부터 뜻밖의 사실을 아시게 되였다. 중앙보안간부학교를 갓 졸업하고 배치된 3련대의 한 소대장이 자기는 땅크부대에 가야 할 사람이 보병에 잘못 왔다면서 소대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말썽을 부린다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소대장을 불러다 만나보시였다.

말썽군이기는 해도 큰 키에 이목구비가 널직널직 박히고 성격도 헌걸차보이는 호감이 가는 젊은이였다. 조국보위초소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초소가 따로 없는데 왜 굳이 땅크부대로 가려는가고 물으시니 대답이 이러했다. 자기는 12살때부터 흥남비료공장 공무반에서 발동기수리를 많이 했기때문에 아무리 복잡한 기계라도 한번만 보면 눈을 싸매고도 해체하고 조립할수 있다는것, 땅크기관이라고 다르지 않다는것, 그런 발동기박사인 자기를 땅크부대에 보내지 않고 보병에서 썩이는건 배짱에도 안 맞거니와 우선 군대의 전투력강화에 큰 손해를 본다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왜 중앙보안간부학교를 졸업하고 배치받을 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느냐는 물으심에는 그적에도 의견을 제기하지 않은건 아니지만 교무부에서 도무지 제 말을 믿어주지 않더라는것이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믿고싶으시였다. 눈을 싸매고 발동기를 해체, 조립할수 있다는 소리가 설사 사실이 아니고 허풍이 좀 섞였다 해도 땅크부대지휘관이 되려는 그의 열망이 대견하여 조동을 성사시켜주시였다.

그런 연고로 땅크부대에 간 김준은 류경수의 손탁에서 전쟁전에 벌써 중대장이 되였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땅크대대를 지휘하여 서울, 대전해방전투와 락동강도하전투, 청천강하구계선에서의 방어전을 비롯한 많은 중요전투들에서 최고사령부의 작전적의도를 책임적으로 관철하였다.

전쟁과정에 보여준 군사지휘관으로서의 높은 자질 그리고 당과 조국에 대한 충실성으로 하여 그는 전후에 여러 군단급참모부들에서 일하다가 몇해전에는 전선서부의 부대장으로 임명되였다.

《푸에블로》호사건이 터지고 정세가 긴장해진이래 김준은 줄곧 최전연지휘감시소에 나가있었다. 그러던중 지난 6월초 어느날 방어전연에서 뜻밖의 비상정황이 발생하였다. 오전내 불던 북서풍이 오후부터 갑자기 남동풍으로 바뀐 기회에 적들이 방어전연 군사분계선의 무성한 잡관목숲에 불을 지른것이였다. 이른바 《푸에블로》호나포에 따른 《화공보복》이였다.

불길은 남동풍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우리의 민경초소들로 달려들었다. 위험에 처한것은 민경초소만이 아니였다. 감시소아래 아카시아숲속에는 유사시를 예견한 1제대 포탄창고가 있었는데 불길이 그쪽으로도 접근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작전부장에게 주변 구분대를 총동원시킬것을 지시한 김준은 련락병을 데리고 포탄창고로 달려내려갔다. 그가 도착했을 때 포탄창고는 이미 몽몽한 연기속에 잠겨있었다. 경비소대군인들이 다가오는 불길을 차단하기 위해 나무를 찍어넘긴다, 차단도랑을 판다 하며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있었다.

김준은 그들을 지휘하는 한편 전사들과 같이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찍고 단숨을 불며 차단홈도 팠다. 그러나 바람세를 탄 불길은 그들이 나무를 찍어넘기고 차단선을 만드는 속도보다 빨랐다. 벌써 연기에 질식되거나 불길에 휩싸여 쓰러지는 군인들이 속출되였다. 김준도 군복자락에 불이 달린채로 쓰러진 전사를 안아들고 내달리다가 마주 덮쳐드는 불길을 온몸에 들쓰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작전부장의 지시를 받고 뒤계선의 보병대대군인들이 달려온것이 그로부터 얼마후였다.

불길을 진압하고 포탄창고는 무사히 지켜냈지만 손실이 엄중하였다. 경비소대군인들의 병실과 정비장을 비롯한 부속건물들이 죄다 불타버린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쳐도 2명의 군인이 현장에서 희생되고 김준도 포함하여 전신 3도이상의 화상을 입은 군인만도 9명이나 되였다. 그들 9명중 제일 심하게 화상당한것이 김준이였다. 그는 긴급출동하여 날아온 직승기에 실려갈 때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보고를 받으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적들의 야만행위에 분노를 금치 못하시며 유능한 군의들로 치료조를 무어 비상치료전투를 벌리도록 대책하시였다. 했으나 끝내 김준을 소생시키지 못한것이였다.

《315군부대 부대장이 사망하였소.》

전화기앞을 떠나 장령들앞으로 돌아오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비감에 젖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는 해방후부터 인민군대에 복무하면서 많은 일을 하고 공로도 많이 세운 사람인데 장의식을 잘해주어야겠소. 총정치국에서는 정세가 긴장하기때문에 군부대에서 간소하게 하자는 의향이지만 왜 간소하게 하겠소. 정세가 아무리 긴장해도 김준동무의 장의식은 평양에서, 민족보위성의 명의로 크게 해야 하오. 그래야 군부대의 장병들이 서운해하지 않고 훌륭한 지휘관과 함께 복무했다는 긍지를 오래오래 간직할수 있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장의위원회구성과 인민군신문에 내는 부고를 잘쓰는 문제 등 장의식과 관련한 방향을 주시면서 이런 말씀으로 끝을 맺으시였다.

《…고인의 유가족들도 잘 돌봐주어야겠소. 내가 알기엔 김준소장한테 자식들이 여렷이던것 같은데 학원에 갈 나이가 된 아이들은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 아버지의 뒤를 잇게 하고 다른 아이들도 공부를 시켜 다 일군으로 키워야 하오.

그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실무적문제는 총정치국에서 맡아 처리하도록 하시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위대한 수령을 대대로 모시여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또 그 존엄도 제일 빛나는 나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