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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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반경, 가루개아래 월향동에 있는 평양시제1인민병원 정문으로 감자주색바탕에 허리아래로 내려가며 점차 커지는 흰 동글무늬원피스차림의 처녀가 나왔다. 손에 자그마한 손가방을 들었다. 녀자치고 보통을 조금 넘을사 한 키, 부하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보기 좋은 몸매, 지성과 신선미가 느껴지는 동그스름한 얼굴… 이 처녀로 말하면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배치된지 몇달 되지 않아서 아직은 종업원들속에서 의술보다 미모와 밝은 인상만으로 론의되는 림상2내과 녀의사 한성희다.

병원정문을 나와 백화점쪽으로 꺾어지면서 성희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1시 5분이다. 시간을 받는것이 힘들어 점심을 먹고나서부터 그냥 어쩔가, 어쩔가 망설이다가 끝내 용단을 내려 과장실문고리를 잡기는 했지만 결국 한시간을 허무히 잃어버린셈으로 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봉창하느라고 그는 부지런히 걸어 백화점앞에서 련못동-평양역행 무궤도전차에 올랐다. 평양역종점에서 다시 팔동교쪽으로 가는 무궤도전차를 바꾸어타고 보통강역앞에서 내렸다. 일이 잘될가본지 늦을세라 무궤도전차가 착착 맞물려주어 다행스러웠는데 역기다림칸에 들어가니 손님도 그리 많지 않아 기차표를 인차 살수 있었다.

성희는 지금 큰아버지를 만나러 남포로 가고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오동삼장령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오늘의 이 남포행을 결심하기까지 그는 지난 10여일간 남모르는 고민을 겪었다. 고민할수밖에 없었던것은 아니아니하면서도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종시 편지를 쓰고야만, 복무초소를 옮기는데 동의하라는 요구에 애인 박인철이 거부하는 회신을 보내왔기때문이였다. 그것도 어떤 거부인가. 문자그대로 고려해볼 여지조차 없다는 전면적인 거절이였다. 이제는 다섯번도 더 읽어보아 뜬금으로도 외울수 있는 그 편지에서 박인철은 성희의 소환요구에 응할수 없는 자기의 심정을 이렇게 썼었다.

또한 동무는 이걸 알아야 하오. 내가 지키고있는 바다로 말하면 당과 조국이 해군군관인 나를 신임하여 맡겨준, 준엄한 시각이 오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지켜내야 하는 나의 귀중한 혁명초소요. 더구나 우리 함은 영명하신 최고사령관 일성원수님의 현지시찰을 받은 영광의 함이요. 나는 이 복무초소를 신성하게 여기며 더없는 긍지를 가지고 사랑하기까지 하오.

그런데 동무는 이 신성하고 책임적인 초소에서 내가 떠나기를 바라니 어떻게 실망하지 않을수 있겠소. 나는 해병이요. 해병의 제1초소는 바다며 조국은 나에게 그 바다를 지키라고 명령하였소. 조국에서 나의 자질을 고려하여 동무가 말하는 10프로20프로속에 들라고 한다면 몰라도 어떤 개인사정이나 인맥관계로 그런 초소에 서는것을 나는 절대 바라지 않으며 그렇게 할수도 없소. …

 

성희는 눈앞이 아뜩하였다. 그때의 심정을 솔직히 표현한다면 넘지 못할 천길벼랑앞에라도 선 느낌이였다.

편지를 부치면서 그는 이런 답장을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기껏 생각했다면 남자된 체면에 애인쪽의 힘을 빌어 소환되는것이 자존심을 좀 상하게 할수는 있겠지만 사랑의 이름이면 그러한 잔 감정쯤 해소되리라고 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편지를 받고 비로소 알게 된바 애인 박인철에게는 단순히 《남자된 체면》만이 아닌, 인민군군관으로서의 드높은 자존심과 책임감이 있었다. 그 책임감과 자존심이 성희 자기를 향해 웨치고있었다. 해병의 제1초소는 바다며 자신은 그 복무초소를 신성하게 여길뿐아니라 어떤 인맥관계로 다른 초소에 서는것을 절대로 바라지 않는다고… 편지의 그 대목을 읽으며 성희는 실망과 좌절을 넘어 무서움까지 느꼈다. 애인으로서 박인철의 존재가 무서운것이 아니라 그가 지니고있는 해군군관으로서의 굳건한 존엄, 현재의 자기로서는 도저히 거기에 도달해볼것 같지 못한 창공처럼 높은 정신세계가 진정 두렵게 여겨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담? 원칙이 이렇게 담벽같으니, 이런 때 량쪽의 상반되는 견해를 적당히 교합시켜 하나로 만드는 명처방은 없을가?…)

성희는 어쩔수없이 고민에 빠졌다.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움속에 입맛을 젖히고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럴수록 신경이 곤두서면서 《너 요새 왜 그리 밥그릇을 비우지 못하니? 어디 아프냐?》하는 어머니의 물음에조차 화를 냈다.

정말 머리가 아팠다. 이제껏 숲속의 샘물이나 한떨기 꽃처럼 아름답고 순수할것으로만 여겼던 사랑의 세계속에 이런 고뇌와 번민이 있을줄을 생각 못한 그였다.

(그러니 어찌하면 좋을가?…) 시도 때도 없이 혼란된 마음속에 그런 물음을 던져놓고 답을 모색했지만 풀이가 되지 않았다.

그는 박인철에게서 거절의 편지가 온 사실을 어머니에게도 알리지 못했다. 알린대야 어머니의 속이나 더 상하게 할뿐이고 그 사람과 관계를 끊으라는 소리나 듣기 쉬웠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집안일치고 어머니를 속인다는것은 불가능한 일이였다.

어느날 저녁 퇴근하여 집에 들어섰는데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던 어머니가 따라들어오더니 꾸중하듯 묻는것이였다.

《너 왜 편지 왔단 소릴 안했니?》

《웬 편지 말이예요?》

팔을 들어 목뒤의 원피스단추를 뽑던 성희는 띠끔한바가 없지 않았으나 태연히 되물었다.

《그 박 뭐인지 하는 사람의 편지 말이다. 림상사전갈피에 있는…》

(어마!) 성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딴에는 깊이 감추느라고 의학서적들로 빼곡 찬 책장의 《림상사전》갈피속에 끼워둔 그 편지를 어머니가 어떻게 찾아낸것이다. 얼핏 짐작이 근간 자기가 번민에 빠져 시무룩해 지낸것이 어머니로 하여금 눈치를 차리게 한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 하는가.

맞춤한 대답을 고르느라고 우정 굼뜬 동작으로 허드레치마를 갈아입은 성희는 방바닥에 무릎을 눕히며 생각을 내놓았다.

《엄마, 난 우리가 그 동무를 소환하려고 한것이 그리 잘한 일같이 생각되지 않아요. 엄마도 편지를 봤으면 알겠지만 그 동문 절대로 소환에 응할 자세가 아니예요.》

성희는 박인철에게 그런 편지를 보낸것자체가 후회된다는 말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오금을 꺾으며 마주앉는 어머니의 눈에 벌써 엄한 기색이 떠올랐던것이다.

《응할 자세가 아니문?》

《어찌겠어요, 단념해야지.》 말끝에 성희는 한숨을 이어놓았다.

《뭐이, 단념?》 어머니는 기가 막히는지 뒤말을 얼른 잇지 못하였다. 큰 눈으로 집어삼킬듯이 흘겨보다말고 드디여 꾸중을 시작하였다. 《햇비둘기 암만 날아두 재를 못 넘는다더니… 야, 너 접때 그 사람한테 편지쓸 땐 뭘 생각하며 썼니? 그 편지 한장으로 감사하니 좋도록 하시우.하는 꿀대답이 올줄 알었니? 군관에 정치일군이기까지 한사람인데… 으응?》

《엄만 뭘 말하자는거예요. 그럼 날더러 편지를 다시 쓰라는거예요?》

성희도 어머니의 완력에 끌리는 자신을 느끼면서도 지려 않고 맞대응을 하였다.

《다시 쓰잖음. 한번으로 안되면 열번, 스무번 써서라도 기어이 소환에 동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백번 찍어 넘어 안지는 나무가 없다구 그사람이 너를 귀애하는게 분명한 이상 어느날엔가는 꼭 동의한다.

너는 귀가 있으면서 이런 말도 못 들어봤니? 세상을 다스리는건 바지입은 남정들이지만 그 남정들을 다스리는건 치마두른 아낙네들이라는… 이게 세상리치다.》

《원, 엄마두.》 성희는 어이없어 어머니를 흘겨보았다.

《어디 가 그런 말 다시 말아요. 그건 세상을 삐뜰써 보는 사이비철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예요.

어쨌든 난 싫어요. 내게도 자존심이 있어요. 만일 내가 두번다시 그런 편지를 하면 그 동문 날 아주 천박하고 미련한 녀자로 알거예요. 난 그런 평가를 받을수 없어요.》

《그건 네 말이 옳다. 결혼도 하기 전에 처녀가 총각한테 미련을 보이면 정나미가 떨어지기마련이다. 그래서 난 방법을 달리하자는거다.》

《?…》

성희는 내심 긴장되였다. 어머니에게는 매사에 무슨 방법이 많기도 하지만 한번 하자꾸나 마음먹으면 결과야 어떻든 우선 행하고 보는 걷잡기 힘든 적극성이 있었다.

《오늘이 화요일이지? 너 이번주내로 남포에 갔다오너라.》

《그건 왜요?》

《가서 큰아버지한테 너희들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그 박 뭐이라는 사람을 평양가까이로 조동시켜달라고 해라. 그러되 그게 할아버지의 의향이라는 소리를 꼭 빼놓지 말고.

난 너희들 일을 그렇게 신사적으로 풀자는거다. 편지질이요, 동의요 하는 놀음은 싹 걷어치우고…》

성희는 어이없어 말이 나가지 않았다. 흔히 하는 비유로 어머니는 《잉크》가 적다. 해방후 성인학교에서 문맹을 퇴치하고 전시에는 자강도의 어느 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일하면서 1년짜리 기능공학교를 다닌것이 학력의 전부다. 하지만 가정사의 난도높은 《고차방정식》은 얼마나 잘 풀어나가는것인지 혀가 내둘리울 지경이다. 그러나 지금 성희는 어머니의 견해에 동조할수 없었다.

《원참, 어머니두. 아니 엄마, 아무리 사위될 사람이라도 동의가 없이 남의 운명문제를 그렇게 망탕 처리할수 있어요?

또 그렇게 뒤공작으로 소환했다가 후에 그가 사실을 알고 도루 내려가겠다고 야단하면 그땐 어떡하겠어요. 편지를 봤지요? 그 동문 충분히 그럴수 있는 사람이예요.》

큰아버지를 납득시키는것은 그리 어려울것이 없다 해도 박인철이와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고 두려워지는것이 그의 솔직한 내심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박인철의 존재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넌 별걱정을 다 하누나. 군대가 상부에서 결정하고 소환해올려다 어디 적당한 자리에 배치했으면 그만이지 제가 내려가긴 어딜 내려간다고 그래, 베잠뱅이사민도 아니면서.

이제 두고봐라, 너의 그 박 뭐이라는 량반 색시 잘 만난 덕에 순풍에 뜬 꼬리연처럼 하늘높은줄 모르고 발전하는걸. 저만 똑똑하면 큰아버지의 도움에 고급군관도 쉬이 되지 않으리.》

어머니의 그 마지막말에 미혹되였다고 할지 아니면 내부에서 잠자던 수도생활에 대한 미련이 눈을 뜬때문이라고 할지 성희는 반박할 말을 찾을수 없었다. 반박은 고사하고 어머니의 주장이 옳을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드는것이였다.

해주-남포행렬차는 초복의 더위가 한숨 꺾인 4시반경에야 남포역에 도착하였다. 대학시절에 실습차로 한번 와보기는 했지만 여러해전 일이라 거리가 낯설어서 몇번 물어서야 큰아버지가 가있는 부대에 당도할수 있었다.

정문을 지켜선 단정한 해병복차림의 보초병앞에 다가간 성희는 증명서를 보이며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인차 팔에 직일관완장을 낀 해군군관이 나와 증명서의 사진과 본인을 대조해보며 용건을 물은 다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희는 녀자처럼 해말쑥하게 생긴 보초병앞에서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찍으며 혹시 큰아버지가 없으면 어쩌랴 걱정했다. 그러나 있는 모양인지 다시 나온 직일관이 증명서를 돌려주며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 안있어 키가 훤칠한 오동삼장령이 반색을 하며 나왔다.

《허, 성희가 그새 더 예뻐졌구나. 대학생티두 이젠 벗구… 욕심내는 총각들이 많겠는걸.》

성희를 이끌고 대기실에 들어간 오동삼은 긴 걸상에 나란히 앉았다.

《할아버진 요즘도 어로전선이냐?》

《물론이지요. 큰 고긴 노상 놓치고 요만한 붕어만 잡아가지고 들어오셔요.》

성희는 웃으며 손가락 두개를 펴보였다.

《놓친 고긴 워낙 다 큰 법이야.》

오동삼은 아버지의 안부도 물었다.

《아버진 출장가신지 두달이 넘었어요. 어느 조선소에서 새형의 어뢰정을 만든다는지어머니말씀이 배를 만들어 수령님께 보고올리기전에는 집에 못 오니 그리 알라고 하시더래요.》

《그거 아주 기쁜 소식이구나. 너의 아버지결심이 그러면 성공은 틀림없을거구 그건 곧 우리 해군이 더욱 강화된다는걸 의미한다.》

장령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기색이였다. 성희도 내심 기뻤다. 아버지의 일군으로서의 능력을 높이 사주는것도 흡족했지만 장령의 기분이 좋으면 좋은만치 자신이 목적하고 온 일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기때문이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 기회에 큰아버지가 자기더러 찾아온 까닭을 물어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오동삼은 성희가 왜 찾아왔는가하는건 내 알바가 아니라는듯 영일이가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함에 배치되였다는 소식이 왔던가, 좋아하던가 하는것으로부터 장차 그 애를 군관학교에 보내 해군정치일군으로 키울 생각이라는 소리에 이어 성희네 1병원의 행정체계며 과구성에 대해 묻고 듣고 하던 끝에 어째선지 갑자기 성희더러 나이를 물었다. 성희가 25살이라고 하니 오동삼의 말이 재미없었다.

《25살이면 딱 맞춤하구나. 좋다, 너의 신랑감은 내가 책임질테니 그리 알고 이제부턴 일체 헤딴 눈 팔지 말아. 알겠니?》

성희는 그만 당황해났다. 화제가 갑자기 이렇게 번질줄을 몰랐거니와 빨리 대책하지 않으면 목적하고 온 문제를 꺼내기가 더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대뜸 용기를 가다듬었다.

《큰아버지, 큰아버진 제가 왜 왔는가 하는건 알고싶지 않으세요?》

《네가 온거?… 그야 할아버지가 무슨 심부름을 보냈겠지. 아니면 뭐랄가. 그래, 해군대학졸업생들중에서 발전성이 있는 멋쟁이신랑감을 하나 골라달라는 청을 하러 왔겠지. 맞나?》

《어마나! 으-음, 큰아버지두.》

성희는 부끄러운 태를 지으면서 눈을 흘겨보였다.

《틀려?… 그럼 뭣때문일가?》

《전… 사실… 제가 온건… 한가지 중요한… 부탁…》

용감성을 발휘하여 기회는 마련해놓았지만 막상 본론을 꺼내자니 얼굴이 달아오르고 혀가 굳어지면서 말이 토막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부탁? 무슨 부탁인데?…》

그래도 부끄러움이 앞서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냥 입술만 씹다가 큰아버지쪽에서 무슨 부탁인데 그리 힘들어하니, 어서 말해보라고 해서야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큰아버지는 커다란 관심을 보이며 아주 재미있게 들었다. 그러나 성희가 마감으로 애인의 소환문제를 꺼내자 오동삼은 잔주름이 진 눈가에서 웃음을 지우고 심중해지더니 당사자인 해군군관의 이름을 물었다.

《박…인철.》

《박인철? 듣던 이름인데… 연포에 있다?… 가만.》 무슨 짚이는 생각이 있는지 오동삼은 일어나 접수실전화기앞에 가더니 송수화기를 들어 누군가를 찾아 물었다. 《구잠함 35호의 정치부함장 박인철이 총각이요?》 하고.

저쪽에서 뭐라는지 알겠다고 하며 송수화기를 놓은 장령은 호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며 걸상에 돌아와앉았다.

《우선 한가지 묻고싶은것이 있는데 솔직히 대답하기 바란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성냥을 탁우에 놓으면서 하는 장령의 말이였다. 《애인을 평양가까이로 소환해달라는 너의 부탁 말이다, 그건 그 박인철이도 동의해서 하는 부탁이냐?》

성희는 대답이 궁했다. 장령이 미리 솔직한 대답을 바란다고 못을 박지 않았던들 자기 편리한대로 말해버렸을지도 모르는 정황이였다.

《그 동문… 동의하지 않았지만…》

알만 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랬을테지!) 하는 의미인지 오동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를 빨았다.

《그러니 저쪽에선 동의 안하지만 내 주장이 이래서 강행한다, 그건데… 내 말이 틀리나?》

《…》

말 못하는 대신 성희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었다.

《그러니 맞는다는 소린데, 그럼 이젠 내가 솔직히 말하자.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로선 너의 부탁을 들어주기 힘들다. 왜 힘든가? 그건 첫째로 그것이 군대의 간부선발원칙에 어긋나고 둘째로는 본인이 동의하지 않기때문이다. 너의 애인 박인철이가…》

《!…》

성희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가슴밑굽에서 어떤 찬기운이 뻗쳐오르면서 심장을 얼구는것 같은 느낌을 체험했을뿐이였다.

《너는 잘못 생각하고있다.》 오동삼은 진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지금 우리 시대가 어떤 시대냐? 사람들모두가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는 벅찬 투쟁의 제1선에 자기를 세우고 삶의 보람과 행복도 거기서 찾으며 또 그 과정에 자신들을 더더욱 훌륭하게 완성해가는 천리마시대가 아니냐?

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시대에 사는 처녀로서 해군군관을 마음에 두었으면 동해나 서해의 어느 바다가에 가서 살 생각을 해야지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큰아버지가 간부라 해서 애인을 평양가까이로 끌어올리려고 한건 아주 잘못한 생각이다.

해군군관이 무엇때문에 있니?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 있는게 아니겠니? 그런 사람더러 바다초소를 버리고 평양으로 오라고 하니 이게 과연 옳은 처사냐? 더구나 정치일군이기까지 한 사람을… 나는 박인철이 너와 같은 생각으로 소환에 동의했더라면 그의 해군군관으로서의 자격을 문제삼아 엄한 처벌을 주든가 혹은 군적에서 제명시키자고 제기했을것이다.》

《!…》

정수리를 겨누고 떨어지는 벼락을 맞는 심정이라고 할가. 성희는 숨도 바로 쉴수 없었다. 일찌기 모르고있은 군기의 엄엄함과 원칙의 랭철성을 새삼스레 알게 되는 순간이였다.

《네가 사람은 아주 잘 만난것 같다.》 다소 너누룩해진 오동삼의 말이였다. 《너도 알고있으리라 본다만 너의 애인 박인철이는 이젠 평범한 해군군관이 아니다. 그는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전투의 위훈자로 전군이 다 아는 사람이 되였다. 우리는…》

《어마!》

성희는 부지중 놀라며 귀를 의심하였다. 박인철이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나포전투에서 위훈을 세운 사람이라는것을 지금껏 모르고있은 그였다.

《왜?… 허허. 그가 여태 알리지 않은 모양이구나.》

성희는 갑자기 가슴을 비트는 수치감에 아프도록 혀를 깨물었다. 적어도 해를 넘기며 사랑을 나누는 사이이고 《푸에블로》호사건이 발생한지 반년이 넘도록 애인이 그 전투참가자인줄조차 모르고있은 자신이 더없이 가련하게 생각되면서 까닭모를 배신감마저 느끼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오동삼은 그 점을 다르게 해석하였다. 《봐라. 박인철이 얼마나 웅심깊은 사내냐. 나라면 천리밖에, 더구나 수도에 두고있는 아름다운 애인처녀가 헛눈을 팔지 않도록 단속하기 위해서라도 좀 뽐내봤을터인데 안 그랬거던.

내 말을 믿어라. 아직은 좀 복잡한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데 이제 사람은 영웅이 될게다, 영웅!… 알겠니?》

하지만 성희의 귀에는 오동삼의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시각 그는 저도 모를 어떤 억울함에 엉엉 소리내여 울고싶었다. 오동삼은 물론이고 애인 박인철이한테서까지도 버림받은 심정이였다.

왜 그런 자기모멸의 감정에 빠져들게 되는지 그것은 자신도 알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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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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