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30
날이 밝으려면 조금 이른 초여름날의 새벽 4시반경이다.
해돋이를 앞두고 먼 수평선에 검붉은 기운이 서려오르며 하늘과 바다가 자기의 무변한 존재를 드러내는 시각 잔잔한 파도를 가르며 배 한척이 꿈속에서처럼 조용히 연포항에 들어서고있었다.
바다제비를 련상케 하는 좁으면서 긴 날씬한 선체, 중심에서 약간 앞쪽으로 치우친 우뚝 솟은 마스트며 조타실, 선미갑판에 듬직하게 자리잡은 함상포들, 총신이 하늘을 향한 고사기관총, 그물을 씌우고 바줄로 묶어 든든히 고정시킨 수뢰들…
이 배로 말하면 몇달전 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바로 그때문에 미제7함대사령부가 맞다들기만 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나포하든가 불가능하면 침몰이라도 시켜야 한다고 수하 전함들은 물론 남조선괴뢰해군에까지 특별지령을 내린 구잠함 35호이다.
그렇게 적들의 큰 《관심》속에 있지만 아랑곳없이 지난 한주일간 전투근무차로 바다에 나가있다가 이 새벽 귀항길에 오른 함이다.
새벽빛을 지우며 날은 빨리도 밝아왔다. 이제는 부두가에 바투 나와 앉은 편대참모부며 그 뒤쪽으로 산밑에 위치한 전대와 편대지휘부건물들, 선가대 그리고 거기서 서쪽으로 초간히 떨어져 아빠트마냥 경사지를 따라 층층이 들어앉은 단층사택마을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였다. 중속으로 몇분간 더 전진하는 사이에 날은 이미 활짝 밝아 정박장에 띄운 장식기며 부두에 나와있는 전대와 편대지휘관들의 모습도 가려볼수 있었다.
그때쯤 함장이하 해병들모두는 벌써부터 미풍에 실려오는 땅냄새를 페부가득 들이키며 입항준비에 바빴다.
함장의 지시로 계류조가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닻내렷!》지령과 함께 닻이 바다에 떨어졌다. 그러는 동안 반속으로 항구에 들어선 함은 전진방향을 바꾸고 기관을 멈춘 상태에서 타력으로 부두에 접근하여 련락삭을 던지고 가볍게 선미를 정박장에 붙이였다.
함장의 구령에 따라 항해기가 내려지고 정박기가 게양되였다. 선미갑판에 두줄로 마주선 해병들이 정박기를 향해 일제히 거수경례를 붙이자 정박장에 대기하고있던 전대와 편대의 지휘관들이 배에 올랐다.
또 한번 울리는 《차렷!》구령과 함께 입항례식의 분위기음악처럼 《휘- 또로로-》 하고 함선호각소리가 야무지게 울리는 가운데 함장이 전대장에게 항해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왔음을 보고하였다. 마주 거수경례를 붙인채 보고를 받고난 전대장은 만족한 인상으로 항해성과를 축하하고 해병들은 답례로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을 맹세하였다.
전대장이 《쉬엿!》을 지시하며 대렬앞으로 걸어올 때쯤 다시 울린 함선호각소리가 멎고 여운만 감도는 속에 전대와 편대지휘관들이 해병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어깨도 두드려주며 항해성과를 축하하였다.
《참, 기쁜 소식이 하나 있소.》 입항례식을 끝내고 함을 내리다가 문득 생각난듯 함장과 박인철에게 하는 전대장의 말이였다.
《오늘 오후에 훈련소를 졸업한 신입병사들이 도착하오. 다 〈푸에블로〉호사건이 일면서 탄원입대한 동무들이라오. 동무네 함에도 몇이 올텐데 특식이랑 만들구 환영준비를 잘하오.》
《〈푸에블로〉호사건이 일어나서 탄원한 신병들이면 〈게장〉도 다 떼지 못했을텐데 벌써 배치합니까?》
박인철이 물었다. 그가 말하는 《게장》이란 멀미극복훈련이라는 소리였다.
《정세의 긴장에 맞추어서 훈련기일을 단축했다나보오.》
전대와 편대지휘관들이 돌아가자 해병들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기재청소에 달라붙었다. 항해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해병들에게 있어 첫째가는 일은 무기를 비롯한 기재청소다. 항해기간 파도를 들쓰며 소금기가 밴 전투기재들을 제때에 씻어내고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녹이 무섭게 쓸며 기재의 수명을 엄청나게 단축시키기때문이다.
기재정비의 그런 중요성이 몸에 밴 박인철이여서 이전같으면 남먼저 웃동을 벗어붙이고 대원들을 도와 포신강을 닦거나 호스로 물총을 놓으며 갑판청소를 했을것이지만 이즈막에 와서 그는 입항후의 행동방향을 달리했다. 입항례식이 끝나기 바쁘게 전대지휘부에 달려가 기통수에게서 그새 온 편지부터 받고서야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다른 일을 해도 하는것이였다. 편지와 관련해서는 기통수에게 미리 말해두었다. 다 말 못할 어떤 사연으로 전국적으로 내게 편지가 많이 올것이다, 수천통일수도 있고 수만통일수도 있으니 별도로 잘 건사했다가 달라, 한통도 잃어지면 안된다, 그런 부탁과 함께 이 사실을 절대비밀에 붙이여야 한다는걸 당부해둔바가 있었다.
지금도 함장이하 모두가 기재정비에 달라붙었지만 혼자 함을 내려 전대지휘부로 가는것은 그때문인데 머리속에 있느니 그새 편지가 얼마나 왔을가, 제발 그중의 어느 편지에 바라는 소식이 있어주었으면 하는 애모쁜 소망뿐이였다. 전쟁시기에 행방불명된 김현주의 아버지를 찾고저 온 나라 각처에 이미 800여통의 편지를 써보냈다. 그렇게 많이 보냈지만 이번 전투항해를 나가기 전까지 받아본 회답은 고작 200통정도였다. 물론 그 200통이 다 자기 단위에는 철도정치공작대로 파견되였던 사람이 없든가 있어도 찾는 사람은 아니라는 답장이였다. 하지만 인철은 맥을 놓지 않고 끝장을 볼 때까지 계속할 결심이다. 이번 항해에 나가서도 150통의 편지를 써가지고 왔다. 주로 평양시에 보낼것들이다. 문제는 한성희가 빨리 평양시에 있는 기관, 기업소들의 주소를 알려주어야 편지를 띄우겠는데 부탁후 한번 49개 기관의 주소를 보내온후 다시 소식이 없어 몹시 기다리는 이즈막이였다.
전대경비소대 대원인 기통수는 금방 기상하여 잠자리를 정돈하다가 나와 우편실에 가더니 건사했던 편지를 꺼내주었다. 한뭉테기나 되였는데 편지가 많은것도 기뻤지만 특히 기쁜것은 한성희의 편지도 있는것이였다.
한성희의 편지는 《뚱보》였다. 아마 그새 알아낸 기관, 기업소들의 주소명세까지 있으니 그럴것이다.
우편실을 나와 기통수와 헤여지기 바쁘게 인철은 한성희의 편지를 개봉하였다. 아닐세라 편지 두장에 주소명세가 석장이였다.
녀의사 성희 정히 고개숙여 인사를…
안녕하세요?
조국의 바다를 지켜 오늘도 파도세찬 항해길에 계실
요새 봄을 맞으면서 전염이 빠르고 심하면 합병증도 일으키는 접촉성 돌림감기가 도는데 걸리지나 않으셨는지요? 걸리지 않았으면 빨리 마스크를 만들어 끼고 소금물로 양치질을 자주하도록 하세요. 군대에라고 감염자가 없을순 없으니 환자와 환자가 쓰던 물건에 절대 접촉하지 말고 몸단련과 해빛쪼임을 자주하는것도 중요해요. 만일 제 편지가 늦어져서 그새 감기에 걸렸거든 될수록 몸을 따뜻이 하면서 해열, 진정약과 함께 열량이 높고 비타민이 많은 음식물을 섭취하세요. 고려약으로는 패독산, 형개방풍탕, 은개산 등을 쓰고 민간료법으로는 생강 5그람, 파 3대, 마늘 5그람에 사탕가루를 약간 두고 물에 달여서 먹으면 좋으니 참고하세요.
쓰고보니 쥐뿔만큼 아는걸 가지고 소뿔만치 늘어놓았다는 생각이 들어 쑥스러운바가 없지 않지만 동지의 건강을 념려하는 성의로 알고 참고해주시면 저로서는 더없이 기쁘겠어요.
그럼 이젠 평양소식을 전하자요.
그 저주스러운 《푸에블로》호때문에 정세가 의연 긴장하다는것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고있지만 이곳 평양의 거리는 그런 정세가 잘 느껴지지 않을만큼 이전의 평온을 되찾고 활기에 넘쳐있답니다. 저도 포함해서 수도시민들은 아침이면 희열에 넘쳐 직장으로 나가고 저녁이면 하루일을 넘쳐한 만족감속에 웃으며 퇴근하지요. 처녀총각들은 쌍쌍이 극장과 영화관, 대동강유보도를 찾고… 이즘 평양대극장에서는 새로 창조한 민족가극 《해빛을 안고》가 공연되고 국립연극극장에서는 혁명연극 《승리의 기치따라》를 성황리에 공연한답니다. 저는 연극도 가극도 다 좋아해서 이도저도 다 관람했는데 곁에 인철동지가 있어 함께 보았더라면 더없이 기쁘고 행복했으련만 혼자고보니 솔직히 눈물나게 서운했어요.
우리 집 식구들은 다들 건강하여 각자 맡은바 사업과 생활에 분투 열중하고있어요. 한가지 문제라면 전번 편지에도 썼듯이 우리의 관계가 알려진 후로 지금껏 어머니의 얼굴에 낀 구름장이 걷히지 않은것이라고 할지. 그러다 시간이 지나느라면 습관되고 리해도 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군요. 날이 갈수록 오히려 인상이 더 어두워지고 자주 한숨만 꺼지게 내불군 하시니 저도 직장에 나가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고 정말이지 속상해죽겠어요. 하도 안타까와 일전엔 제가 이런 말을 했군요. 《어머니, 정 그리 안심찮으면 그 동무를 평양에 한번 오도록 하겠어요. 그 동물 직접 만나보면 어머니도 생각이 달라질거예요.》 그랬더니 어머니는 화를 벌컥 내면서 《누가 사람이 싫다냐?》 하고는 조금 있다가 사정하는거예요. 《야, 너 정말 그 사람과 헤여지질 못하겠니? 네가 말하기 힘들면 내가 품을 놓고가서 대신 말하고 오마, 더 기다리지 말아달라구. …》
제가 무슨 대답을 했을것 같아요? 전 그럴수 없다고, 우린 이미 마음속으로 결혼하나 다름없는 사이여서 우리를 억지로 갈라놓는다면 아주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수도 있기에 두번다시 그런 생각일랑 말라고…
어머닌 말을 더 못하고 우시는거예요. 저도 울었고요.
인철은 가슴이 답답하고 목마름을 느끼며 건침을 꿀꺽 삼켰다. 인연이 수첩 하나로 우연히 맺아지긴 했어도 해를 넘기며 바야흐로 알차게 익어가던 사랑이 이렇게 때이른 서리를 맞게 될줄을 몰랐던 그로서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솔직히 저는 우리의 관계가 어머니를 이렇게 괴롭힐줄을 정말 몰랐어요. 그렇다고 후회하는건 아니지만 어머니가 하도 불만해하시니 저로선 정말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간 동지가 편지를 몹시 기다리실줄 알면서도 회답을 보내지 못한건 다름아니라 집안에 이런 불미한 일이 생겼고
또 제
하지만 인철동지,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그리고 기뻐하세요. 전 고심끝에 해결방도를 찾아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우리 어머니가 찾아낸 방도라고 할수 있겠어요. 문제는 그 방도란것이 동지의 동의를 전제로 하는것인데 전 동지가 충분히 리해하고 동의하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으면서 이제 그것을 알리려고 해요.
인철동지, 어머니의 생각은 동지의 복무초소를 여기 평양가까이로, 다시말하여 해군사령부 직속부대 같은데로 옮길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거예요. 그러면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기뻐할것이고 나아가서는 동지의 발전에도 좋을것이라는것이 어머니의 생각이자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한바예요.
혹시 동지로서는 너무 뜻밖의 제의여서 놀라실수 있는데 해군군관이라고 꼭 바다초소만 지켜야 한다는 법이야 없지 않을가요? 해병이 천명이면 뭍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못해도 10프로나 20프로는 될거라는것이 이전 해병이였던 할아버지의 추측이고 저의 계산이기도 해요. 그 10프로나 20프로속에 인철동지가 든다고 잘못될것은 없고 부끄러운 일은 더욱 아니라고 저는 확신성있게 말할수 있어요. 하니 인철동지, 그렇게 하시지요? 전 믿고 일을 진척시키겠어요.
소환과 관련해서는 동지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동지도 이름은 들었으리라 보지만 최근 해군사령부의 책임적인 위치에 조동된 오동삼장령은 우리와 친척은 아니지만 친척이상으로 가깝게 지내는분이예요. 저는 큰아버지라 부르고요. 그러니…
다시 씁니다만 문제는 동지의 동의인데 저에 대한 동지의 사랑이 진심인 이상 반대는 아니 하실거라는것이 어머니의 확신이예요.
어느 소설책에서 보니 남자들은 한생에 행운의 기회를 3번 가진다고 썼더군요. 저는 이번 기회가 동지와 나를 위한 한번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
인철은 더 읽고싶지 않아 편지를 대충 접어 봉투와 같이 군복웃주머니에 쑤셔넣고는 터벅터벅 걸음을 내짚었다. 실망감을 금할수 없었다. 아니, 모욕당한 기분이라고 하는것이 더 정확할것이다.
(뭐, 해군군관이라고 꼭 바다초소만 지키라는 법은 없다?… 10프로나 20프로속에 든다고 부끄러울것은 없다? 한번의 기회?… 어쩌면 이런 한심한 생각을 다 한단 말인가. 한성희가 이토록 암둔하고 어리석은 녀자였단 말인가?! 대학공부까지 한 처녀가… 해병의 손녀라면서…)
정말이지 리해되지 않았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복무초소를 바꾸라는 한성희와 그의 어머니의 제안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물론 해군에 그럴수밖에 없는 리유로 바다가 아닌 륙상에서 복무하는 해병들이 적지 않은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것은 군종자체가 임무수행을 위해 그런 초소를 필요로 하고 그에 적합한 준비된 군인들을 선발배치하여 복무케 하는것이다. 그런 원칙에서 그도 조국이 자기의 능력을 고려하여 거기서 복무하라고 명령한다면 아쉽더라도 바다를 떠나 륙상초소를 선택할수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한성희는 어머니가 그걸 바란다고 해서, 어머니와 동조해서 해군군관인 자기에게 바다를 떠날것을 권고하고있었다. 달리 말하면 한 사민처녀와 그의 어머니가 사랑의 이름으로 해군군관인 자기더러 바다초소를 버리고 뭍에 오르라고 꼬드기는것이다.
한성희의 어머니와 관련해서는 리해되는바가 있었다. 그렇다, 수도에서 사는 어느 어머니가 애지중지 키워 대학공부까지 시킨 귀한 딸을 지방에 시집보내는데 선뜻 동의하겠는가. 백이면 백 어머니가 다 고개를 젓기 쉬우며 승낙하는 경우라도 속은 알찌근해할것이다. 까닭에 인철은 그 측면에서는 성희의 어머니에게 미안한감마저 느끼지만 어머니의 뜻이라고 해서 해군군관이며 정치일군이기까지 한 자기에게 바다를 떠날것을 바라는 한성희의 소행은 아무래도 리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니 이젠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한성희를 리해시키고 가정적리기만을 추구하는 그의 어머니를 설복할수 있을것인가? 속에서 고패치는
감정같아서는 당장 평양행을 하여 한성희와 그의 어머니가 잘못 생각하는 점을 바로잡아주고싶었다. 또 가능하면 버티고앉아 올가을이나 늦어 명년
봄쯤으로 결혼날자까지 받아가지고오고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허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처럼 정세가 긴장한 때에, 원산앞바다에 포진하고있던
미군의 기동함대가 일본쪽으로 물러섰다고는 하지만 항공대와 지상무력이 그냥 대기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인민군군관이 개인문제때문에 초소를 떠나는것은
승인되지도 않거니와 설사 승인되는 경우라도 그
(…그래, 가지는 못한다. 하다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것이 방도인가? 아무런 대답도 주지 않고 침묵만 지키고있으면 어찌될가? 동의하지 않는것으로 알고 소환문제를 철회하지 않을가? 아니, 그건 대책이 아니며 오히려 한성희나 그의 어머니를 더 나쁜 길로 떠밀수 있다. 피동에 설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혹시 기계공업성에 있다는 한성희의 아버지든가 아니면 이전 해병인 그의 할아버지에게 편지한다면 풀리지 않을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인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분들의 이름을 모르는것이 문제다. 편지라, 편지… 그렇다면 차라리 한성희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것이 옳다. 이랬든저랬든 그는 내 사람이고 잘못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내가 바로잡아주어야 한다.)
그런 고심속에 정박장에 도착하여 함에 오른 인철은 침실문을 닫아 걸고 쓰기 시작하였다.
보내준 편지를 받았소. 부탁한 기관명을 보내주어서 고맙소. 그리고 나는 한겨울에도 돌림감기 같은건 시시해서 걸리지 않으니 안심하기 바라오.
그런데 성희, 나는 성희의 편지를 받아보고 정말이지 실망을 금할수 없었소. 나는 동무의 어머니가 우리의 관계를 불만해하며 눈물을 흘리는건 그럴수도 있다고보오. 딸이 해군군관과 결혼하여 바다가에 가서 생활하는걸 영리별을 하는것처럼 생각하며 초소를 옮길걸 바라는건 좀 너무한감이 들지만 그래서 어머니가 아니겠소. 그 점에서 나는 동무의 어머니를 리해하며 어머니앞에 미안하고 죄송하기까지 하오. 나는 지금의 이 죄송과 미안함을 장차 성희를 더 위하고 더 뜨겁게 사랑하는것으로 꼭 갚을 결심이요.
그럼 이젠 성희의 편지를 받고 내가 왜 실망했는가를 쓰겠소.
성희, 동무는 어머니가 그런다고 날더러 복무초소를 바꾸는데 동의하라니 어쩌면 그런 〈훌륭한〉 권고를 다 하오. 정말 놀랍소. 하지만 잘 알아두오. 나는 아직 수도가까이에 올라가 일할만 한 자격도 갖추지 못했거니와 거기는 동무가 생각하는 그런 인맥관계로 아무나 소환해다 직무를 주고 작전탁앞에 세우면 전투지휘가 되는데가 아니요.
또한 동무는 이걸 알아야 하오. 내가 지키고있는 바다로 말하면 당과 조국이 해군군관인 나를 신임하여 맡겨준, 준엄한 시각이 오면 생명을
바쳐서라도 기어이 지켜내야 하는 나의 귀중한 혁명초소요. 더구나 우리 함은
그런데 동무는 이 신성하고 책임적인 초소에서 내가 떠나기를 바라니 내가 어떻게 실망하지 않을수 있겠소. 나는 해병이요. 해병의 제1초소는 바다며 조국은 나에게 그 바다를 지키라고 명령하였소. 조국에서 나의 자질을 고려하여 동무가 말하는 〈10프로〉나 〈20프로〉속에 들라고 한다면 몰라도 어떤 개인사정이나 인맥관계로 그런 초소에 서는것을 나는 바라지 않으며 그렇게 할수도 없소. 나는 성희가 이 점을 리해하고 어머니를 설복해주기 바라오.
혼자의 힘이 모자라면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을수도 있다고 보오. 난 그분들을 믿고싶소. 그리고 성희는 더욱 믿소.
건강하여 맡은바 치료사업에서 성과가 있기를 바라면서…
인철
찬찬한 성미여서 다른 때라면 인철은 편지를 읽어보고 부정확한 표현이든가 토 하나라도 잘못 쓴것을 찾아내 고쳤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만한 경황이 없는 까닭에 검토가 없이 제창 봉인해가지고 침실을 나온 그는 마침 눈에 띄우는 김현주를 불러 전대기통수에게 보내고야 얼마간 마음의 안정을 찾을수 있었다.
×
신입병사들은 오후 3시반경이 되여서야 함에 도착하였다. 5명인데 모두 하나같이 키가 크고 나름으로 잘생겼는가 하면 체격들도 좋아서 외모로 보아선 구대원들과 별로 차이가 없었다. 전대에서 《1번》으로 꼽는 구잠함 35호라고 대렬과에서 고르고 또 골라보낸것 같았다.
신병들을 맞을 때면 늘 그러는 행사로 함장이하 해병들전원이 갑판에 나와 함에 오르는 신병들에게 꽃목걸이를 걸어준다, 박수를 치고 꽃보라에 색테프를 던진다 하며 제법 성대한 환영의식을 베풀었다. 이어 함장이 신병들은 물론 구대원들도 잊지 말라는 의미로 대렬을 헤치지 않고 모두의 앞에서 함의 짧지만 자랑스러운 연혁사를 이야기하였다. 그런 뒤에는 신병들만 데리고다니며 함의 무장장비와 선실, 기관실, 취사당번들이 특식을 하느라고 바삐 돌아치는 취사장을 비롯한 생활조건들을 보여주었다. 마감으로 선미갑판에 나가 폭뢰투척기앞에 가서 적의 잠수함이 나타났을 때 발견, 소멸하는 전투방법을 설명한 다음 평소의 좀 랭엄하면서도 거친 성미를 살려 신병들을 받을 때마다 규정처럼 꼭 하군 하는 훈시를 잊지 않고 하였다.
《내 아까도 말했고 지금 다시 말하지만 우리 함은 영명하신
에- 이로부터 얻어지는 결론은 뭔가? 그건 다른게 아니요. 우리 함의 모든 해병들은 누구라없이 일당백의 만능해병이 돼야 하구 적들과 맞다들면 무조건 이길뿐아니라 준엄한 시각이 오면 함과 운명을 같이할 각오가 튼튼히 돼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거요.
그러니 동무들은 저리 잘 생각해보오. 사흘동안 시간을 주겠소. 그동안 자기한테 각오가 좀 투철하지 못하다든가 혹은 일당백만능해병이 될
대답들이 없었다. 소문난 구잠함 35호에 선발배치된것때문에 기분들이 뜨고 긍지감이 어렸던 신병들의 순진한 눈에 대뜸 놀라움이 떠올랐다. 하기는 함에 배치된 첫날에 이런 심각한 문제와 맞다들게 될줄은 몰랐을것이다.
《왜 대답들을 못해? 사흘동안만 생각해선 안될것 같애? 시간을 더 달라나?》
부리부리한 눈으로 신병들을 쓸어보며 함장은 엄엄하게 물었다. 그러자 서로 네가 답변하라는 뜻으로 몰래 팔굽이나 주먹으로 옆구리를 찌르는 움직임이 있더니 일행을 대표하듯 차렷자세를 취하며 입을 여는 대원이 있었다.
《함장동지, 전사 한영일 뭘 좀 말해도 됩니까?》
신병들가운데서 그중 숙성하고 총명해보이는 전사였다.
《말은 하라구. 그러나 앞으론 규정대루 〈전사 한영일, 대답할수 있습니까?〉 해야 돼. 전사 한영일이 뭘 좀 말해도 되는가? 그건 군대언어가 아니야. 알겠소?》
한영일은 약간 무안해하며 알겠다고 하더니 말했다.
《제가 말하자는건 뭐사니, 함장동지의 말씀을 들으니 좀 섭섭하고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함장동진 우릴 너무 수준이하로 보시는데 사실 우린 다 훈련소 최우등졸업생들이고 이 구잠함에도 열렬히 탄원해왔습니다. 당과 조국을 위해 목숨바칠 각오는 물론 든든하고말입니다. 전 함장동지가 이 점을 많이 참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함장은 (이런 당돌한 놈 봤나?) 하는 올곧잖은 눈길로 전사를 찔러보다말고 시선을 돌려 다른 병사들의 생각도 같은지를 알아보았다. 한명한명 찍어 대답을 들어보았는데 출신지방에 따라 말씨들은 각이해도 취지는 한영일이와 다르지 않았다.
《음, 그렇단 말이지. 좋아, 그럼 내가 동무들을 잘못 안것으로치고 〈생각〉해보는 시험은 그만두겠소. 그러나 명심할건 앞으로 일상 군무생활속에서 시험이 계속된다는거요. 해병의 진짜 자격은 뭍에서가 아니라 바다에 나가봐야 알아. 훈련소최우등이 어떤 최우등인가 하는것두 거기서 재판정되구… 알겠소?》
《알았습니다.》
신입병사들은
그렇게 함장이 신입병사들을 독점하고있던 시간에 박인철은 침실에서 편지와 사업하고있었다. 한성희가 편지에 별도로 3페지나 써보낸 평양시의 중앙과 시급기관들만도 자그만치 132개 단위였다. 항해근무에 나가 내용은 150통이나 써가지고 왔기에 문제될것이 없었지만 봉투에 기관명과 주소를 써서 봉인하는데만도 품이 상당히 들었다. 저녁식사준비가 다되였다고 직일병이 알리러 왔을 때쯤은 봉인하고 못한것이 반반가량 되였다.
식사후에는 신입병사들을 만나보았다. 환영특식을 배부르게 먹은 뒤라 혈색들이 좋아진 신병들을 데리고 선수갑판에 나가 적당히 둘러앉은 인철은 우선 자기소개부터 하였다. 그런 다음 정치부함장답게 매 신병들의 이름과 나이로부터 고향과 부모형제, 지어 친척들에 이르기까지 간단한 경력을 차근차근 묻고 들었다. 그러는 과정에 그는 뜻밖의 놀라운 우연과 맞다들게 되였다. 평양외국어대학 2학년에서 공부하다가 탄원입대하였다는 한영일전사가 애인 한성희의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였다. 인철은 한영일이 아버지가 기계공업성에 근무하고 손우 누이는 의사라고 할 때까지도 전혀 그런 짐작을 하지 못했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알자는 의도에서 누이가 어느 병원 의사냐고 물어 전사가 제1인민병원이라고 해서야 한성희를 떠올리고 그의 아버지가 기계공업성에 있다고 하던 기억과 성씨의 같은 점이 그런 놀라운 추측을 이루어냈던것이다.
인철은 즉시 이름을 물어 사실여부를 확인해보고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다른 전사들의 귀도 있거니와 굳이 묻지 않아도 전사의 망울이 크고 꼬리 긴 서느러운 눈매와 선이 곧은 코, 꼭 다물고있으면 웃음을 머금은듯싶은 입모습이 한성희와 너무도 비슷하였던것이다.
(세상일이란 정말 모르겠구나! 한성희의 동생이 우리 함에 오다니… 누가 꾸민다고 이렇듯 묘하게 꾸며낼수 있을가?…)
생각은 그러했지만 인철은 그것을 입밖에 낼수 없었고 또한 이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가 난감하게 생각되였다. 처남, 매부가 한 함에서 복무한다는것이 온 전대에 알려져 웃음거리가 될수 있고 더욱 나쁘기는 갈라질수도 있겠기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