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27

 

《어서 앉으십시오. 무슨 문제가 제기됩니까?》

송수화기를 놓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박성철에게 자리를 권하며 물으시였다.

《모스크바에서 별스런 일이 발생했습니다.》 우선 그렇게 전제한 박성철은 앞상밑에서 걸상을 꺼내놓고앉아 가방에서 귀를 집은 얍슬한 타자문건을 꺼내며 말씀드리였다. 《어제호 괴뢰 서울신문조간에서 발취한것이라는데 판문점에서 박준국동무가 12차담판상보와 같이 보내왔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박성철이 올리는 발취문을 읽어보시였다.

 

- 문제의 《푸에블로》호사건의 뒤면 -

모스크바에는 봄이 늦게 찾아온다. 한울님의 섭리가 올봄이라고 다를리 없어 3월도 중순을 지나 하순목에 접힌 지금에도 여기 모스크바의 기온은 의연 랭랭하다. 하지만 랭한에도 아랑곳없이 열풍이 불어치며 열심히 뉴스를 출산하는 곳은 다른 어데 아닌 바로 모스크바의 외교가라 하겠다.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쏘련외무상이 모스크바주재 북조선대사를 또 호출하였다. 《또》라는 의미속에는 쏘련외무상이 요새 세계를 들썩케 하는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해서 북조선대사를 루차 불러 《조언》한 내용이 있다. 《조언》이란 다름아닌 북조선해군이 국제법을 어기고 공해상에서 나포한 《푸에블로》호를 미합중국에 곱게 양도하여 있을수 있는 미국의 징벌을 피하라는, 말하자면 《체제적벗》으로서의 권고이다. 물론 그것은 백악관의 뜻이자 청탁이기도 하다. 허나 권고는 북조선대사에 의해 번마다 거절되였다. 쏘련외무상은 자존심이 상했고 북조선대사의 그 오만불손한 태도를 따지기 위해 외무성제1부상 꾸즈네쪼브씨가 직접 승용차를 몰아 마꼬바야거리 북조선대사관으로 달려갔다.

국제외교관례상 주재국의 외무성부상이 몸소 대사관을 방문하면 어느 나라라도 대사나 부대사가, 그들이 부재중이면 하다못해 참사관이라도 나와서 영접하는것이 례의일것이다.

그날 북조선대사관에는 대사이하 공사, 참사 그리고 각 등급의 서기관들이 다 있었다. 그런데 정작 꾸즈네쪼브부상을 현관에서 맞이한 사람은 대사도 아니고 1등서기관도 아닌 서렬상 최하직의 3등서기관이였다.

쏘련외무성 부상의 분노는 하늘에 닿았다.

아래로 몇줄 더 있었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더 읽어볼 필요를 느끼시지 않고 타자본을 덮어 밀어놓으며 사실여부를 물으시였다. 박성철의 대답이 전신을 날려 확인해본 결과 지난주에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것이였다.

《허허, 락동강까지 갔다온 사람이 역시 다르구만, 배짱이.…》

쏘련주재 특명전권대사 정창환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시였다. 정창환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박성철이 사단장으로 있던 제15보병사단에서 문화부련대장으로 락동강을 건너가 대구 팔공산전투에까지 참가한 사람이라는것을 그이께서도 알고계시였다.

그러나 박성철에게는 외무상으로서의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정창환동무의 그 배짱이 전에 림춘추동무가 벌가리아에서 겪은것 같은 외교분쟁을 빚어낼가봐 걱정됩니다.》

1962년 8월경에 있은 일이였다. 그무렵 벌가리아의 수도 쏘피아에 있는 조선류학생숙소에서는 매우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였다. 어느날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이 우리 류학생기숙사에 나타나 졸업을 앞둔 류학생들에게 망명을 선전하였다. 조국이라는게 뭐 별것인가. 어린 당신들을 데려다 근 10년을 먹여주고 공부시켜주었으니 이 나라가 곧 《조국》이다. 돌아갈 생각을 아예 말고 여기에 영주하라. 자유롭고 풍족한 생활이 당신들을 행복하게 해줄것이다.… 격분한 우리 류학생들은 즉시 그자들을 쫓아내고 사실을 대사관에 통보하였다.

당시 벌가리아주재 대사였던 림춘추는 발생한 사건이 단순히 몇몇 망나니들의 망동인것이 아니라 정치적모략이라는것을 대뜸 간파하였다. 그때 수정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에서 가끔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군 하였다.

그는 당장 류학생들을 대사관으로 데려오게 한 다음 그 나라 외무성에 항의하고 내무기관에 대책을 세워줄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런데 주재국 해당 기관에서는 뜻밖의 놀라운 태도로 나왔다. 조선류학생들이 자기네 《공민》이기때문에 당신측의 요구는 《내정간섭》이나 같으므로 더 상관하지 말라는것이였다.

림춘추는 아연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주재국 당총비서와의 접견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를 만나준것은 총비서가 아니라 사상담당비서라는 사람이였다.

《최근에 있은 류학생사건을 당신도 알리라고 봅니다.》

간단한 외교적인사말을 주고받자 림춘추는 들이댔다.

《통보를 받았습니다.》

《귀국에서는 우리 류학생들을 자기네 공민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들이 당신네 공민으로 되는 법률적근거가 무엇입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나이 18살이면 누구나 다 공민권을 가집니다. 10년전 미성년으로 온 그들이 우리 나라에서 성인으로 자랐으니 명백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더는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순간 《꽝!》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림춘추가 책상우에 있던 유리재털이를 들었다가 힘껏 내리쳤던것이다. 그 바람에 와뜰 놀라는 상대를 쏘아보며 림춘추는 추상같이 꾸짖었다.

《이 철면피한… 당신도 공산주의자인가? 그들은 우리가 어려운 전쟁을 겪을 때 당신들이 돌봐주겠다고 요구해서 보낸 전재고아들이요. 그렇다면 전쟁이 끝난지 여러해가 지난 조건에서 학업이 끝나는 차례로 돌려보내야 옳은 처사지 언제 우리가 그들을 당신네 나라 사람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소? 그래 이것이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에 맞는가. 당신들이 이렇게 후안무치한줄 알았으면 우리는 풀뿌리를 씹으면서라도 그때 아이들을 애당초 여기에 보내지도 않았을것이요. 인륜도 모르고 도덕도 없는 너절한것들!》

림춘추는 문을 차고 사상비서의 방을 나오고말았다.

벌가리아당국은 더 할소리가 없었던지라 조선대사가 《외교관으로서 무례하다.》고 시비질을 하다가 드디여 《추방》령을 내렸다. 저쪽의 그러한 횡포에 부득불 우리 외무성에서도 그에 대응하여 그 나라 대사를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수 없었다.

당시 수나롭던 두 나라의 관계가 그 지경으로 된것은 배후에 흐루쑈브수정주의자들의 책동이 있었기때문이였음은 두말할것도 없지만 사회주의나라들간의 외교사에 있어서는 어쨌든 하나의 오점이였다.

지금 박성철은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 발생할가봐 우려하는것이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달리 생각되시는바가 있었던것이다.

《까짓 뭐랍니까? 그들이 간첩선을 미국에 돌려주지 않는다고 정창환동무를 보내면 우리도 쑤다리꼬브를 추방합시다.

그러나 별일없을겁니다. 그런 추방놀음을 해봐야 망신밖엔 할게 없다는걸 쏘련사람들도 모르진 않을테니까요.》

《다른 한가지 문제는》 박성철의 말이였다. 《수령님을 접견하게 해달라고 쑤다리꼬브대사가 또 각서를 보내왔습니다.》

《아니, 또?…》

그이께서는 내심 놀라시였다.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하여 쏘련대사가 이제는 조선이 미국을 톡톡히 망신시키고 승리한것이나 같으므로 배를 공해상으로 추방하는것이 어떠냐 하는 의견을 제기했다가 사죄도 받지 않고 그렇게 싱겁게 처리할수 없다고, 그것은 우리가 항복한것이나 같아서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고 수령님께서 립장을 명백히 밝혀 보낸것이 불과 며칠전인데 또 접견을 요구한다니 놀라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모스크바에서 또 무슨 지령이 온것 같습니다.》

모스크바의 지령이라면 이제는 거부감부터 앞서는바가 없지 않으시여 김정일동지께서는 화제를 돌려 판문점에서 오늘 진행된 12차담판상보나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담판을 하기는 3시간씩이나 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습니다.》

그렇게 결과부터 밝히면서 박성철은 오전에 진행된 담판과정을 설명하여드렸다. 과연 신통치 않은 담판이였다. 적측이 범죄사실을 《공정》하게 《조사, 확인》하기 전에는 사죄와 재발담보를 할수 없다는 종전의 립장을 되풀이하면서 《푸에블로》호사건을 그 테두리안에서 처리하자고 생억지를 부린것이 담판의 주되는 내용이였다.

적들의 그런 억지주장에 대해 우리 수석대표가 된타격을 가하자 미국측 대표는 승무원들을 즉각적으로 석방할수 있는 《명확한 제안》을 우리측에서 제시해주면 저들이 그것을 《심중히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모호한 소리를 하였는데 이것은 사건처리와 관련한 우리의 의도를 알아내자는 시도였다. 담판후 미국측 대표의 동향이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는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위스위원에게 중립국감독위원회 위원들이 《사적인 자격으로써 난관에 부닥친 푸에블로호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어떤 방안을 모색할수 없겠는가?》고 하면서 그것을 감독위원회의 다른 위원들에게 건의해보라고 하였던것이다.

《적측대표가 확실히 교활한 놈입니다. 우리가 범죄행위를 인정하고 사죄할걸 요구하는줄 뻔히 알면서도 다른 대답을 받아낼가 해서 잔꾀를 쓰고있습니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아마 적측은 아직 담판장에서 몇번 더 그렇게 잔꾀를 부리며 앙탈질을 할겁니다.》

《문제는 적들이 자꾸 헛소문을 돌리면서 우리를 허는겁니다. 오늘 인디아총령사가 보내온 전문에 의하면 요새 뉴델리보도계에서 우리가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학대한다거니, 지어 82명선원들을 먹이기 곤난해서 굶긴다는 소문까지 돌아간다고 하는데아마 미중앙정보국의 장난인것 같습니다.》

안타까운지 박성철은 침통한 낯빛으로 말끝에 한숨을 불었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는 그것이 새삼스러운 소식이 아니였다.

《요새 국제부에서 들어온 자료에도 그러루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유럽쪽에서는 미국이 우리한테 1억딸라를 주고 선원들을 찾아가려고 한다는 여론까지 돌아간답니다. 하지만 그까짓 헛소문때문에 골을 앓을건 없습니다. 그건 적들이 우리한테 미끼를 던져보는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심을 가지십시오. 강선태동무네가 조직한 대외선전사업이 지금 아주 잘되고있습니다. 인차 좋은 반향이 일어날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근에 보고된 대외선전사업성과를 알려주시면서 자신의 결심을 피력하시였다.

《…그리고 이건 지금 외무상동무와 이야기하면서 떠오른 생각인데 그 동무들의 사업을 지원하는 의미에서도 그렇고 판문점담판을 위해서도 그렇고 짭짤한 론평을 하나 내보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적들의 범죄행위와 어리석은 기도를 폭로단죄하는… 짐승은 먹이로 길들인다지만 강경으로 다스려야 말을 듣는게 미국입니다.》

《그럼 그 론평초안을 우리 외무성에서 준비하겠습니다.》

박성철의 견해에 동의를 주시면서 그이께서는 론평에 꼭 들어가야 할 내용과 문제점들을 찍어주시고 마감으로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론평을 집필하는 동무들에게 내 말을 이르십시오, 이번 론평은 공화국정부성명 못지 않게 무게가 있으면서도 론조가 강해야 하며 띄우지 말고 사건에 발을 딱 붙여 써야 한다고. …》

말씀에 이어 김정일동지께서는 다른 제기되는 문제들이 없는지를 알아보시였다.

《국제적십자사를 비롯한 일부 국제기구들에서 푸에블로호 선원들을 만나볼걸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오고있는데 거절하려고 합니다.》

《그건 옳습니다. 국제기구들이 간첩들을 만나보겠다는건 미국의 청탁일수 있고 무슨 부당한 주장이나 모략을 꾸미는 조건을 제공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쑤다리꼬브대사의 요청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어찌겠습니까, 자꾸 보채니.제가 수령님께 말씀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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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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