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23
아침 7시가 되여 출근하려고 외투차림으로 신장앞에서 신발을 고르던 신복은 오늘도 사무실에 앉아있을 새가 별로 없으리라고 보아 결국 운동화를 꺼냈다. 그때쯤 저도 학교에 가려고 책가방을 든채 문간으로 나오던 딸 선아가 《아니 엄마, 또 운동활 신으세요?》하며 못마땅해한다.
《운동화를 신는덴 어째서?》
《엄만 우리 학급애들이 뭐라는지 알아요?》
《학급애들이 뭐라게?》
운동화에 발을 넣으며 신복은 무심히 되물었다.
《엄마가 늘 봐야 운동화만 신고다닌다면서 정말 지배인이 옳긴 옳으냐구 해요.》
선아는 학급동무들의 그 말에 몹시 자존심이 깎인 모양이였다. 신복은 발뒤축을 이쪽저쪽 다 운동화안에 몰아넣고 허리를 펴며 말했다.
《하니 지배인이면 응당 멋진 구두를 신어야지 운동화를 신고다녀선 도무지 지배인으로 봐줄수 없다 그거구나, 너네 말은.… 맞니?》
《맞잖음.…》
그러는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함께 걸으며 신복은 타일렀다.
《선아야, 너도 이젠 14살이면 그쯤한건 리해해야 한다. 넌 엄마가 왜 비닐신도 아니고 하필 운동화를 많이 신고다닌다고 생각하니? 그건 17개나 되는 우리 공장이 강건너 선교에서부터 형제산구역 하당동에 이르기까지 온 시내에 널려있어 걸어다니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이다. 넌 이 엄마가 하루에 얼마나 걷는지 아니? 로선뻐스를 타고다니는 거리는 70리나 80리에 가깝고 걷는건 보통 40~50리씩 된다. 그래서 운동화를 신는데 그걸 리해 못하고 애들이 뭐라 한다 해서 자존심이 상하면 그런 비좁은 속통머릴 가지구 이담 커서 시집살이랑 어떻게 하겠니?》
말을 해놓고야 신복은 어린것한테 시집살이소린 하지 말았어야 하는걸 하고 후회했다. 아닐세라 딸애가 당장 발끈해서 종알거린다.
《흥, 그딴 시집 누가 간대나?》
시집 안 가면 처녀로 늙을테냐 하는 소리가 나가는걸 그래야 말이 딴곬으로 흐를것 같아 누르고 신복은 우정 엄한티를 내면서 하던 말을 마저 했다.
《어쨌든 넌 그걸 알아야 한다. 명색이 지배인인데 엄마라구 왜 구두랑 받쳐서 멋있게 차려입구 보란듯이 나다니고싶지 않겠니. 하지만 난 일을 해야 한다. 일하는데만 편리하다면 나는 운동화가 아니라 맨발로라도 뛰여다니겠다. 지배인이 뭘하는 사람이냐? 지배인은 한 기업소를 책임지고 남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다. 다시말해 당의 신입을 더 크고 무겁게 받아안은 사람이라고 할수 있다. 엄마가 이 한겨울에 발이 시리고 남들이 웃어도 운동화를 신고 뛰여다니는건 바로 당에서 받은 그 신임에 보답하기 위해서지 다른게 아니다.》
《…》
《글쎄… 우리 공장형편을 아는 사람이라면 좀 적게 걸으며 사무실에 앉아 전화로 일한다고 크게 나무라진 않을게다. 그러나 난 그렇게 일하고싶지
않고 또 그렇게 할수도 없다. 너도 알지만 이 엄마가 아니, 나만이 아니다. 너도 포함해서 우리 온 가정이
할말이 더 있었지만 저만치 학교쪽으로 갈라지는 길목이 보여서 신복은 타이름을 거두며 리해여부를 따졌다. 선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닮아 꼬리가 약간 치솟을사 한 고운 눈을 착 내리깐채 고집스레 걷기만 하더니 갈림길목에 가서야 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다신…》
《잘못하긴… 알았으면 됐다. 어서 가거라.》
인사를 남기고 돌아서는 딸의 뒤모습을 바라보다말고 신복은 걸음을 옮기며 이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해보았다. 할일이 적지 않았다.
오늘은 월요일이니 우선 부서장모임부터 해야 한다. 모임에서는 지난주 중구피복과 평천피복이 계획을 미달한 문제를 놓고 생산과장과 자재과장에게 좀 싫은 소리를 해야겠다. 모임이 끝나는 차제로 방직공장출하장에 나가 창광피복에 주기로 된 혼방직 3천메터를 왜 내지 못하겠다고 하는지 리유를 따져보고 공장에 현물이 있으면 어떻게든 늘어붙어 뽑아내야 한다. 그러느라면 오전시간이 다 갈것이다.
오후에는 아무 일을 못해도 기료품공장에 가서 재봉기바늘생산실태를 알아봐야겠다. 돌아오면서는 모란피복과 대동강피복에 들려 자재확보와 전시생산준비가 어떻게 되고있는지를 알아보고 대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서성피복과 하당에는 또 못 가겠구나, 전주에도 벼르기만 하다가 종시 못 갔는데.…
그러나 출근길에 그토록 자상히 세운 하루일정이 사무실에 도착하기 바쁘게 헝클어졌다. 간밤에 경비근무를 선 생산부원이 이르기를 오전 10시까지 피복관리국으로 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는것이였다. 신복이 관리국에서 왜 찾는지 까닭을 물었지만 생산부원은 그건 모르겠다며 도착해선 관리국장을 만나라는 소리만 하더라고 했다.
관리국장을 만나라는 소리에 신복은 저도 모르게 이마살을 찌프렸다. 잘못 반영된 리력(신복은 그 잘못된 리력을 반영한 인물이 최도식이라는것을 여태 모르고있다.)때문에 고초를 겪고있던 시기에 최도식이 매일같이 찾아와 집을 빨리 내라고 보채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속에서 피가 듣고 분이 치민다. 그런 덜되고 역스러운 인간을 상급이라고 받들며 일하자니 그 불편과 굴욕감 또한 이겨내기가 헐치 않았다. 감정이 시키는대로면 지배인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평범한 로동자일망정 최도식이 보이지 않는데 가서 마음편히 일하고싶었다. 신복은 그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좀스러운 생각인가 하는것을 모르지 않는다. 또 그런 쓰라린 일이 있었다는자체를 잊기 위해 애도 쓰지만 지금처럼 계기만 생기면 생생히 되살아나 감정을 자극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아무렇든 사업을 해야 하니 별수없이 얼굴을 맞대야 했다.
인원들이 다 출근하기를 기다려 간단한 주총화에 사업포치까지 하고 모임을 끝낸 신복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와 방직공장쪽으로 내려갔다. 피복관리국은 거기 방직공장건너편 대흥동에 있었다.
신복이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관리국장 최도식은 까치다리를 한채 앞상과 이어진 량수책상앞에 거느즉이 앉아 신문을 보고있었다. 그런 자세로 턱만 약간 들고 《어- 왔소?》 하더니 신복이쪽에서 지루감을 느낄만큼 읽던 기사를 마저 읽고야 신문을 놓으며 몸을 당겨 바로앉았다. 말과 행동거지 일체가 어색한가 하면 그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꾸밈이였다.
《거기 앉소. 한데 동무넨 왜 관리국지시를 이렇게 걸써 대하오? 이 문건을 누가 기안했소?》
《웬- 문건 말입니까?》
만나는것이 호상 자연스럽지 못하리라는것은 예견한바지만 이렇듯 첫마디부터 걸고드는 식의 추궁일줄을 몰랐던 신복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것 말이요, 이 조절계획…》 최도식은 쥐고있던 문건을 내흔들어보이다가 그대로 책상우에 탁- 메치며 따지고들었다. 《50만이나 80만벌쯤 떨구라고 했는데 왜 그대로 올려보냈소? 동무네 공장에선 정세가 긴장해지는것이 안 보이고 상부의 지시도 귀에 가닿지 않소?》
신복은 그제야 국장이 신경질을 부리는 까닭이 리해되여 침착하게 설명했다.
《우리라고 왜 긴장한 정세가 안 보이고 상부의 지시가 들리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다 듣고 봅니다. 하지만 우린 정세가 아무렇드래도
종전계획을 그냥 안고 나가겠습니다. 올해중으로 온 나라 아이들모두에게 솜옷과 털모자를 만들어주자는거야
최도식의 얄팍한 입술언저리에 엷은 웃음이 비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인차 랭소로 바뀌면서 눈길이 바늘끝처럼 날카로와졌다.
《지배인동무, 내가, 이 관리국장이 아이들에게 솜옷을 해입히는것이
동문 내각의 지시가 어느 부수상 개인의 결심으로 나오는겐줄 아오? 다
됐소. 더 말할게 없으니 이걸 가지고 내려가 빨리 조절계획을 만들어가지고 오시오, 오후 첫 시간까지.… 동무네때문에 집계가 되지 않아 성에서 독촉하는데도 보고하지 못하고있소.》
최도식은 보기조차 화가 난다는듯 앞에 있던 문건을 쥐여 신복이쪽으로 활 밀어던졌다. 신복은 안타까왔다.
《국장동지, 이러지 마십시오. 우린
《이 동무 정말 언어가 통하지 않게 노누만. 이보 지배인동무, 그 모르면 입다물고 좀 가만있소. 우에서 계획을 조절하라는건 바로 그 자재를 보장할수 없기때문에 취하는 조치요. 지금 무력기관은 더 말할것도 없고 성, 중앙기관들과 도들에서까지 다 일제히 전쟁예비물자조성에 들어갔소. 국가계획위원회 문돌쩌귀가 불이 일 지경이고 방직공장출하장은 텅- 비여 축구공을 찰 형편이요. 제사공장경우는 전시생산기지를 꾸리느라고 기대를 반이나 세워놓고 외부인원들은 공장안에 들여놓지조차 않소. 방직공장도 같구같지만…
형편이 이런데 무슨 자재타령이요? 안되오. 일욕심이 통하는 때가 아니니 괜히 똥고집을 부리지 말구 가서 내가 말한대로 하오. 한 50만벌쯤 콱 잘라버리구… 올해중에 못 입은 애들이야 명년에 타입으면 될게 아니요.》
최도식은 공장측의 결심같은건 내 알바가 아니라는듯 막무가내로 제주장만 내리먹였다. 신복은 관리국장이 그런다고 쉽게 일어설수 없었고 계획조절은 더구나 받아들일수 없었다. 정세가 매우 긴장하고 온 나라가 전쟁준비와 예비물자조성에 들어갔으며 인민경제전반에서 계획조절을 한다는것은 그도 모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는 올해중으로 온 나라 아이들에게 솜옷과 털모자를 꼭 해주자고 하신
하여 지금 신복은 다시 생각해보았다. 물론 정세는 몹시 긴장하다. 하지만 정세가 아무리 긴장키로서니 아이들을 위하시는
그런데 이 관리국장이란 사람은 무작정 계획을 줄이라니 어찌하면 좋을가? 워낙 심보가 고약한 사람이니 계획을 줄이지 않으면 자재를 밀어주지 않고 이모저모로 훼방을 놀며 애를 먹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말 어쩌면 좋을가?
그러한 신복의 안타까운 생각을 동강내며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어디서 온 전화인지 최도식은 송수화기를 귀에 붙이더니 엉뎅이에 불이 달린듯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신복에게 하던 말투와는 판판 달리 비굴에 가까운 어조와 몸가짐으로 《예예, 그렇습니다, 상동지. 예예, 옳습니다. 알겠습니다, 상동지. 예예, 일없습니다. 예예, 예예.》 그렇게 그냥 《예예.》를 련발하더니 이윽고 송수화기를 놓으며 본래의 랭담한 자기로 되돌아갔다.
《그럼 그렇게 하자구. 난 상동지가 찾아서 가봐야겠소.》
적당히 인사를 남기고 국장방을 나온 신복은 접수에서 증명서를 찾아가지고 딱히 어디로 간다는 질정도 없이 발이 가는대로 걸었다. 걸으며 앞을 막아선 문제의 조절계획고개를 어떻게 넘을지 방도를 찾아보았다. 국장의 견해가 저렇고보면 관리국안에서는 해결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면 관리국을 에돌아 성에 부딪쳐보는것이 절차지만 상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거기서도 지지를 받지 못할것 같은 예감에 스스로 고개를 저었다.
성책임일군으로 말하면 김신복이 경공업담당 부부장으로 있을 당시 수하에서 과장을 하던 녀성으로서 대학경제학부 3년후배였다. 실무능력은 보통이나 작은 성과를 크게 만드는 《재주》가 더 있어서 신복이 비판을 몇번 한적이 있는 인물이다. 저쪽은 그것을 감정으로 품고있는지 처지가 바뀐이래 이쪽을 곱게 보는 눈치가 아니였다. 거기에 동향인이라고 전문지식도 없는 일개 부원이던 최도식이를 단 몇해어간에 관리국장으로까지 떠밀어올린것이 상이라는 소문을 념두에 두면 지지는 고사하고 면박이나 당하기 쉬웠다.
(…그러니 어찌해야 할가? 정말 달리 무슨 방법이 없을가?)
신복은 관리국의 요구대로 계획을 조절하여 50만벌이나 80만벌 줄일 생각도 해본다. 정세가 그걸 요구하고 관리국에서 또한 한사코 조절하라니 계획을 줄인다고 누가 탓하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솜옷을 입지 못한것때문에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가? 계획을 떨구고 안 떨구는 문제는 결국 자재를 받고 못 받는 문제에 귀착된다. 그렇다면 차라리 국가계획위원회에
가서 말해보는편이 빠르지 않을가? 계획조절에서 면제시켜달라고… 그게 안되면 조절계획구간이라도 가능한껏 좁혀달라고… 그래, 국가계획위원회에 가서 사정을 설명해보자. 난 아직 정준택위원장동지에게
일단 결심이 서면 우물쭈물하지 않는 김신복이다. 하여 그로부터 한시간도 채 되기 전에 그는 벌써 국가계획위원회 정준택위원장의 방에
앉아있었다. 눈물속에 쓴 편지를
정준택은 자초지종을 듣고나서 생각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앞에 주르르 놓여있는 전화기의 어느 송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돌렸다. 상대가 누구인지(얼핏 짐작으로는 김일제1부수상인것 같았다.) 전화가 련결되자 금방 신복이가 한 말을 보다 함축하여 반복하고 몇마디 의견을 나눈 뒤 송수화기를 놓았다.
《신복동무가 문제를 옳게 봤소.》 손을 깍지껴쥐며 하는 정준택의 말이였다. 《정세와 관련해서 계획조절을 하는건 사실이요. 하지만 그건 기본건설을 비롯해서 현행경제사업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의 조절이지 경공업계획까지 조절하자는건 아니요.
이걸 알아두오. 설사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라도 인민생활과 관련한 계획은 늘이면 늘였지 절대로 떨구지 않는것이 원칙이요. 원칙이 그런데 다른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입힐 솜옷계획을 50만벌이나 깎겠다니 그게 어디 제정신을 가지구 하는 소리요?
안되오. 무조건 다 생산해야 하오. 아이들에게 솜옷과 털모자, 솜신을 해주는건 전쟁준비치고도 아주 중요한 항목에 속하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최근 어느 회의에서 하신
신복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계획조절을 안하게 된것이 우선 기뻤고 더욱 기쁘기는 본래의 생산계획을 그대로 내밀려고 했던
《자재는 어느 정도로 앞세우고있소?》
신복의 설명을 듣고나서 하는 정준택의 물음이였다.
《현재까지는 한 열흘정도로 앞세웠는데 이제부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신복은 관리국장 최도식이한테서 들은, 현재 성, 중앙기관들과 도들에서 전쟁예비물자조성에 일제히 들어가서 방직공장출하장이 텅 비다싶이 되고 제사공장에서 전시생산준비를 하느라고 기대를 많이 세운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것 역시 용납하기 힘든 일인지 정준택은 찌프린 인상으로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정말 답답한 일이요. 예비를 조성하고 전시생산을 준비하라니 현행생산을 줴버리구 저저마끔 경쟁이나 하듯이 더 많이 끌어들여 쌓아 놓을내기를 하오. 사실인진 모르겠는데 어느 성에서는 물자확보목표를 자그만치 5년분으로 눌러놓고 거기 쓸 자금이 모자란대서 내각에 손까지 내밀었다고 하오.
동무넨 제발 그러지 마오.
신복은 알겠다고 하며 일어섰다. 부수상의 귀중한 시간을 더이상 빼앗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앉아있을수 없었던것이다. 마침 전화종이 또
우는데다 정준택
《아이들 솜옷을 다 생산하면
신복은 알겠다고, 기쁜 소식을 가지고 꼭 오겠노라고 하며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