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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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대동강상류의 어느 산골짜기다. 해발고가 100메터 내외로 보이는 뾰족산이 북쪽에 솟아있고 그 산이 남쪽을 향해 팔을 벌리듯 길둥그렇게 갈라지면서 동서를 둘러막아 꼭 품에 안기운 큼직한 바가지를 련상시키는 골안이다.
이 골안으로 말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기계공업성이 들어와 전시생산을 지휘하면서 생활하게 될 곳이다. 까닭에 전주부터 온 성이 매 부서에 부서장들만 남겨놓다싶이 하고 산하단위들에서까지 인원들을 빨아올려다 건설을 벌려놓았는데 성당위원회의 결정으로 총책임은 한승우부상이 지고있었다. 한승우부상으로 말하면 손탁도 드세지만 무얼 《끌어들이》는데서는 당할 사람이 흔치 않다고 할만큼 수완이 뛰여난 사람이였다. 함흥의 어느 큰 기업소에서 기사장사업을 하다가 성에 소환된지 두해남짓해서 그는 아직 내각은 물론 성, 중앙기관 일군들과의 안면도 그리 넓지 못했다. 하지만 자재일군들도 끌어들이지 못하는 물자를 그가 《내가 한번 뚫러보기요.》 하고 나서면 십중팔구는 《구멍》이 나는것이였다.
《기계공업성에 필요한것치고 그것이 내각산하 어디엔가 있는것이 확실하다면 그건 한승우부상의 손에 들어온것이나 같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이것은 성안에서 돌아가는, 한승우의 《뚫는》솜씨와 실적을 아는 사람들이 롱담삼아 진담으로 하는 말인데 재미있기는 부상
《원, 재주라니. 그런 말 마오. 비는덴 무쇠도 녹는다구 난 그저 문턱에서부터 코를 끌며 들어가 저편의 아래도리를 끌어안고 〈제발 도와줍소, 당신들이 모른다면 우린 죽는 목숨이요.〉하며 늘어붙는게 전술이라면 전술이요. 외교로 치면 〈완전저자세외교〉라 할지… 사실 좀 유치한 방법이요.》
겸손해서 하는 말만이 아닌, 실지로 그런 《머리숙임》과 《끈덕》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고 목적을 이루는 한승우이기도 하였다. 그러는 과정에 터득한 남모르는 비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직위가 일정하게 있는 사람일수록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면 겸손하는만치 얻는바가 크다는것이였다.
오전 10시경.
적재함에 쇠트라스며 철판이며 각목이며 따치까며 세멘트포대며 하는 건설자재들과 가마니로 포장한 물자퉁구리 혹은 마대며 지함들을 골박아 실은 6대의 크고작은 화물자동차행렬을 이끌고 《뽀베다》가 골안어귀로 들어오고있었다. 범이 제 소리를 하면 온다고 꼭 물매미처럼 생긴 진회색 《뽀베다》 앞좌석에는 물이 날은 수수한 외투차림의 한승우부상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길이 워낙 서덜인데다 올리막이기까지 해서 벌벌 기다싶이 힘들게 막바지까지 올라온 자동차행렬은 한발 앞서 도착한 한승우부상의 지휘에 따라
지붕이 있는 두채의 건물마당에 석대씩 갈라져 들어가 멈춰섰다. 이어 보수작업을 하던 인원들이 일손을 놓고 떨쳐나 짐부리기에 달라붙었다. 현장에서 건물보수와 인원들을 통솔하는 책임자가 있었지만 한승우는
하차작업도 자기가 직접 지휘했다. 한것은 누구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운반해온 건설자재며 기타 물자들이 다 그가 《뚫》어서 마련한것들이고
쓰임새를 제일 잘 아는것도 바로 그
《트라스는 저기다 눕혀놓고 각목들은 이쪽에 쌓아놓소. 그 가마니로 싼것들은 다 생활필수품들이니 저리 창고앞에 갖다부리게.》
《세멘트포대는 창고에 넣지 마오. 갱도안이 지금은 건조한것 같지만 땅이 녹기 시작하면 인차 습도가 올라가오. 그러니 여기 부리웠다가 차를 뺀 다음 건물안에 들여다 쌓아놓소.》
《오늘 실어온건 다 예비로 건사해야겠소. 철판과 삽, 못도 그래… 동무들이 알아야 할건 지금 이것저것 뭐이 좀 있다 해서 풍청거려선 안된다는거요. 우리가 이 골안에 소개지를 꾸리는 목적이 뭐이요, 전쟁을 예견해서가 아니겠소. 그러니 첫째도 예비, 둘째도 저축… 지금은 물자들을 다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하오.》
이런 말, 저런 소리 부지런히 해가면서 일을 다그친탓에 점심시간을 얼마간 침범한 대신 6개의 적재함을 말짱 비울수 있었다.
오면서의 계획은 짐을 부리는 차제로 인차 돌아서는것이였는데 책임자의 권고도 있고하여 운전사들과 함께 현장식당에서 늦점심을 먹고난 한승우는 떠나기에 앞서 현장책임자를 앞세우고 물자창고를 돌아보았다.
현장책임자한테서 손전지를 받아쥔채 바닥에서 조금 띄워 량쪽으로 죽 들여세웠거나 쌓아놓기도 한 각종 물자들을 살피며 걷느라니 한승우는
흡족한바가 없지 않았다. 그 모든것은 거의다 한승우
《그새 정말 많이 끌어들였습니다.》
뒤에서 따라오며 하는 현장책임자의 말이였다. 한승우도 적게 끌어 들인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물었다.
《오늘 들어온것까지 합쳐 우리 성이 소비하면 대략 얼마쯤 견딜수 있을가?》
《이 많은걸 한해엔 다 쓰진 못할게고… 한 3년쯤은 견딜수 있을것 같습니다.》
《3년분을 가지고선 안돼. 못해도 4~5년분은 깔고있어야지.》
말만이 아니라 실지로 그렇게 잡도리를 하고 물자확보에 달라붙은 한승우였다.
《현대전은 속전속결하는 원칙이라는데 4~5년이면 전쟁을 너무 오래 끈다고 볼수 있지 않을가요? 짐작이라쳐두…》
한승우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외국에 나가 류학을 한 경력이 있어 전쟁체험이 없다는것을 잘 아는 현장책임자여선지 조심스럽게 생각을 내비쳤다. 그러나 한승우에게도 나름의 전쟁에 대한 견해가 있었다.
《전쟁상대가 무장장비나 경제력에서 내노라고 하는 미국놈들인데 붙으면 속전속결이 그리 쉽게 될가? 아-니, 이번에 붙으면 쌍방이 그야말로 사생결단을 해야 하기때문에 최소한 4~5년은 예견해야 되오. 전쟁이란 일기는 쉬워도 끄기가 힘든 불가사의한 재난이라는걸 알아야 하오.》
그러는 사이에 벽으로 막혀있는 끝에까지 갔다가 되짚어 굴밖에 나오니 벌써 2시반이였다.
그로부터 세시간도 더 지난 저녁 6시경에야 한승우는 성에 도착하였다. 차로 한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그렇게 늦어진것은 고비탄광에서 자동차들에 무연탄을 싣고 장수원협동농장에 들려서는 강냉이오사리벗기는기계를 만들어주는 조건으로 가마니 3백장을 해결하느라고 지체되였기때문이였다. 가마니는 성청사정문에 건설하는 바리케드공사에 쓸것이였다.
그런데 어찌된셈인지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할 성청사정문은 조용하고 바리케드공사는 중지된 상태였다. 아침에 떠날 때 공사에 동원된 성원들을 모여놓고 오늘은 밤이 열이라도 아홉돌기까지는 쌓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네돌기째도 도중에 그만둔것이였다. 이럴수가 있나?!… 차에서 내려 공사장을 둘러본 한승우는 저도 모르게 화가 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청사정문에 화물자동차나 겨우 통과할 너비를 내놓고 울타리도 얼마간 잡으면서 10여메터가량되는 길이로 흙가마니를 쌓아올려 만드는(총안까지 예견하고있었다.) 이 바리케드공사는 상과 성당비서가 기연미연하는것을 그가 《현대전의 안목》으로 기안하고 우겨서 추진하는것이였다.
《전쟁이 일어나고 미국놈들이 달려들면 방공호에만 들어박혀있겠습니까? 맞서 싸워야지… 바리케드를 쌓읍시다. 우리 성 정무원들이
그가 이렇게 주장하니 상도 당비서도 더 어쩌지 못하고 동의한것이 닷새전이였다.
그때 마침 바리케드공사에 동원된 일군들중의 한사람인 대상설비처 부처장이 옆구리에 가방을 낀채 정문으로 나와서 한승우는 그를 붙들어세워놓고 일을 벌써 끝낸 까닭을 물었다.
《상동지의 지시가 있었다나봅니다.》 대상설비부처장의 대답이였다.
《상동지가 무슨 지시를 했게?》
《정확한건 모르겠는데 내각에서 무슨 신호가 왔다는 소리도 있구…》
종작없는 소리였지만 내각에서 어떤 신호가 왔다는 소리와 상의 지시가 있었다는 말을 련결시켜보니 무슨 까닭이 있은것으로 짐작되였다.
설비부처장과 헤여진 한승우는 상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상은 없고 코날개옆에 기미가 박혀있어 마주하면 눈길이 우선 거기부터 가는 상서기가 무슨 글을 쓰다가 맞아주었다.
《상동진 어디 가셨소?》
《연회에 갔습니다.》
《웬 연회 말이요?》
한승우는 어리둥절한바가 없지 않았다. 전쟁이 눈앞에 박두해와 소개지를 꾸리고 청사정문에 바리케드까지 쌓는 긴박한 정세에 연회란 너무 상반되는 개념이여서 의미가 실감으로 오지 않았다.
《오늘이야 정규적혁명무력건설기념일이 아닙니까. 내각의 명의로 옥류관에서 경축연회를 한답니다.》
《그러니 오늘이 벌써 8일인가?… 그렇구만. 원, 요샌 하두 바삐 돌아치다나니 날이 어떻게 가는지도 통 모르겠구만.》
《그나저나 요새 부상동지레 수고많습니다. 전시예비물자를 벌써 거의다 끌어들였다면서요?》
예비물자를 거의다 끌어들였다는 서기의 말이 사실과 맞지 않거니와 손아래사람의 반지빠른 치사를 듣기도 뭣하여 한승우는 혹시 알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으로 화제를 돌려 물었다, 정문바리케드공사를 상동지가 중지시켰다는데 사실인가고.… 그런데 서기의 대답인즉 사실일뿐더러 상이 그런 지시를 한건 내각제1부수상 김일동지한테서 한바탕 꾸중을 들었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1부수상동지가 막 욕설을 퍼붓더라지요. 지금 일각이 천금같은 때에 동무네 한가하게 무슨짓거리를 하고있는가? 청사정문에 바리케드를 쌓아놓고 시가전을 벌릴셈인가? 그따위 어처구니없는 놀음 싹 걷어치우고 생산지도나 똑똑히 하라.… 일인즉 그렇게 된겁니다.》
《?! …》
한승우는 할말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드센 손에 뺨따귀를 얻어맞은 기분이였다. 하기야 내각제1부수상에 정치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그의 비판에 무슨 할말이 있으랴. 그러나 서기와 헤여져 사무실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비판이 잘 접수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체물처럼 속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것은 김일제1부수상이 바리케드공사를 한가해서 하는짓거리고 어처구니없는 놀음이라고 일축해내뜨린것이였다. 한승우는 울화가 치밀어 제풀에 엇서보았다. 1부수상은 너무 독선적이다. 바리케드를 쌓는것이 왜 소일로 하는짓이고 어처구니없는 놀음으로 되는가?
청사정문에 바리케드를 쌓아놓고 시가전을 벌릴셈이냐고 했다는 소리도 그랬다. 김일제1부수상이 유격전에는 박사라고 하겠지만 현대전은 잘 모르는것 같다. 현대전에 림하자면 별의별 경우를 다 예견해야한다. 정의의 전쟁을 한다고 반드시 공격만을 하게 되는것은 아니며 방어할 때도 있다. 전쟁에서 승패가 병가상사라는 말은 그래서 생기고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한것이 그 실례다. 물론 이제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그때같은 일은 결코 없을것이지만 절대적으로 없다고 장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새 우리의 국방력이 크게 강화된만큼 미국놈들도 가만있지는 않았을것이다. 침략이 본성이고 경제력이 우세하니 전쟁수단이 오히려 더 무섭게 발전했을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꼭 만약을 생각해두어야 한다. 그 《만약》과 《절대》의 경우도 예견해서 바리케드를 쌓는것인데 김일부수상은 한가해서 하는짓이고 어처구니없는 놀음이라며 싹 걷어치우라니 이거야말로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게 억울함과 자기 변호도 합쳐 울분을 쏟으며 담배연기만 피워올리고있던 한승우는 정적을 들부시는 전화종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전화를 걸어온것은 뜻밖에도 딸 성희였다. 정 급한 일이 아니고는 집식구들이 직장에 전화질을 못하게 질서를 세웠지만 성희만은 욕벌이를 하면서도 그냥 질서를 어기는 까닭에 이제는 어지간히 습관된데다 기분도 그렇고 해서 별소리 없이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야단났어요.》
《뭐가?》
《오늘 고대하고고대하던 배치를 드디여 받았는데…》
한승우는 딸의 말을 다 들어보지도 않고 시까슬렀다.
《배치받았으면 기쁜 일이지 야단은 웬 야단이냐?》
《희망대로 안됐으니까 그런거지요.》
딸의 토라진 대꾸였다. 의대 기초의학부를 나온 성희의 희망은 의학과학원 내분비연구소에 가서 할머니가 한뉘 그때문에 고생하다가 일찍 사망한 질병인 당뇨병을 연구하면서 박사학위를 받는것이였다.
《어디냐?》
《하나…》
제1병원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잘됐구나. 1병원이야 워낙 림상이 기본 아니냐?》
《그건 그렇지만 환자들한테 볶이우다나면 연구는 어느짬에 하고 학위는 언제 받아보겠어요?》
물론 응석이겠지만 들뜬 심리도 느껴져 한승우는 이 기회에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떼는 딸을 신칙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건 잘못하는 생각이다. 희망이 아무리 연구사업이고 박사가 되는거라도 당에서 공부를 시켜 일단 의사로 배치했으면 이제부터 너의 본분은 첫째도 둘째도 환자들과의 사업이다. 연구나 학위는 그담 일이고… 그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명심은 하겠지만… 참, 아버지?》
《왜?》
《영일이를 또 좀 도와주어야 할것 같애요.》
《영일이를 돕다니?》
《영일이한테서 편지가 왔는데요, 〈푸에블로〉호를 붙잡은 부대에 가야겠는데 힘들것 같대요, 입대할 때처럼.… 그 대목을 읽어드릴테니 들어보세요.
에- 에헴. 누나, 물론 아직은 군인선서도 못한 신병이지만 희망하던 해병이 된것만으로도 나는 지금 더없는 기쁨을 느끼고있어. 단지 걱정은 앞으로 신병훈련을 마치고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영웅함에 꼭 갈수 있겠는가 하는거야. 입대할 때만 해도 난 아무렇게 우겨서든 갈수 있을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댔어. 그런데 정작 훈련소에 와보니 신병들모두가 다 그 부대, 그 함에 가겠다고 윽윽하는 판이야. 글쎄 밤에 자면서 〈35, 35〉하면서 잠꼬대까지 하는 친구들까지 있다니까. 〈35〉라는건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영웅구잠함을 의미해. 그러니 그런다고 누구나 다 그 함에 갈수 없는건 뻔한 일이고…
좌우간 이제 배치경쟁이 어쩌면 대학입학시험보다 더 치렬할것으로 예견돼. 정세가 긴장하기때문에 신병훈련을 단축한다는 소리가…》
《됐다. 알겠으니 그만해라.》
송수화기를 놓고 담배에 불을 붙인 한승우는 아들의 희망을 두고 생각에 잠겼다. 자식들을 제힘으로 제 앞길을 개척해나갈줄 아는 자립성이 강한 인간으로 엄하게 키우는것은 한씨집안의 가풍이다. 지금 칠십고개에 들어선 해군상좌이던 부친이 한승우를 그렇게 키웠고 한승우 또한 성희와 영일이형제를 그렇게 키웠다. 달랐다면 해방전 부친은 낡은 신문지를 사다 아홉살난 아들이 제 손으로 공책을 매서 여백에 쓰게 하고 아버지가 된 그 아들은 자식들이 걸음마를 타면서 엎어져도 절대로 일쿼세워주지 못하게 하고 소학교에 다니면서는 반드시 연필을 제손으로 깎아쓰도록 한것이였다. 아이들이 커서 대학에 갈 때도 그랬다. 딸 성희가 함흥의학대학에 입학할 당시 그는 함흥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른다고 하지 않는 큰 기업소기사장으로서 도인민회의 대의원이기도 했고 영일이가 외국어대학입학시험을 칠 때는 부상으로 소환된 직후였다. 그런 직위에 있었지만 그는 맏이나 둘째나 다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기쁜김에 대학에 가 확인해본것이 전부였다.
이번에 아들이 입대문제를 제 혼자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것도 실은 긴장한 정세의 요구도 요구지만 그렇게 자립정신으로 키운 결과가 때를 만나 자기 존재를 보인것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입대는 그렇게 할수 있었지만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김군옥영웅과 함께 주문진해상전투에서 중순양함 《볼티모》호를 격침시킨 할아버지처럼 해병이 되려는 희망은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입대를 탄원하는 청년들은 수만이지만 해군초모계획은 극히 적어서 운수조차 바랄 형편이 못되여 아들은 울상이 되여 돌아갔다.
아들의 그 고충을 한승우가 풀어주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들은 《푸에블로》호를 나포한 부대도 아니고 바로 그 함에 배치되고싶어한다니 입대문제와 달라서 당장에는 풀어줄 방책도 없거니와 풀어주는것이 옳은지 아닌지를 한승우는 가늠할수 없었다.
아들을 도와주는것자체가 어릴적부터 심어준 자립정신에 어긋나는것은 다른 문제로 치고라도 우선 군대의 일이였다. 군복을 입은 일개 병사의 희망이 이러니 실현되도록 힘써주시오 하고 누구에게 손을 내미는것도 잘하는 일이 아니지만 그 요구에 누가 응하는것은 더구나 잘하는 일이라고 볼수 없었다. 선서는 하지 못했어도 군복을 입었으면 희망은 아무렇든 군률이 시키는대로 하는것이 어느모로 보나 옳았다.
그러나… 그러나 한승우는 아들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말을 타면 견마를 잡히고싶다고 일단 해병복을 입으니 이제는 영웅이 되고싶어하는것이다. 다시말하여 아들은 위훈을 갈망하고있었다. 이 갈망을 과연 나쁘다고 보며 억눌러야 하겠는가? 물론 아직은 방장한 혈기만의 설익은 욕망일수도 있었다. 하더라도 그 뜻이야 얼마나 장하고 찬양할만 한것인가! 그렇다. 그건 군률에는 어긋날지 모르나 비난할것은 못된다. 다른 일도 아니고 미국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붙잡은 함정에 꼭 가고싶다는것은 단순한 욕망만이 아닌 영웅들의 대오에 서고싶다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영웅들의 대오.… 그래, 그렇게 풀이하는것이 옳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러 한승우는 재털이에 담배를 비벼던지고 급히 송수화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옛 부하로서 해군사령부의 책임적인 직위에 있는 오동삼장령이 생각났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