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16

 

한승우는 밤 1시가까이 되여서야 책상우에 수북이 펴놓았던 설계며 문건들을 거두어 철함에 넣고 퇴근길에 올랐다.

군수생산용강재보장문제때문에 오후내껏 국가계획위원회며 금속공업성에 가있다가 저녁무렵에 돌아와서는 내부사업에 파묻혀 지금껏 시장한줄도 모르고있었는데 이제야 위가 쓰려오며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공업성의 퇴근시간은 원래 저녁 10시다. 그러니 자그만치 3시간을 더 일한셈인데 그렇게 일하고도 할일을 다했다고 떳떳이 말할수 없을만큼 일이 많은데가 그가 담당한 부문이였다.

1960년대 중반기에 들어서면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당의 로선이 강력히 추진되고있는 현실은 기계공업성, 그중에서도 어뢰정을 비롯한 군함건조부문에는 그야말로 일감이 산더미로 쌓여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거기에 선박공업과 관련해서는 일부 중요자재와 기계류들을 수입해다 쓰지 않으면 안되는데 주로 쏘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에서 들여오고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 동유럽나라들의 정치정세가 복잡해지면서 경제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조짐을 보이더니 요새는 날로 심각해지는 《푸에블로》호사건에 겹쳐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의 정치정세 또한 재미없게 번져지고있었다.

금방 읽어본 오늘호 참고통신에 의하면 뽈스까에서는 수도 와르샤와와 지방도시 크라꼬브에서 대학생들이 이른바 자유에 대한 기본권리를 요구하여 시위를 벌리고있었다. 한편 체스꼬슬로벤스꼬에서는 현대수정주의를 받아들인 공산당지도부의 개혁파가 보수계를 구축하고 맑스주의와 서방식 《자유》를 량립시키는 소위 실험을 시도하고있었다. 두나라에서의 이러한 혼잡에 대해 서방은 《민주주의의 봄맞이》로 묘사하면서 박수갈채를 보내고있었다.

자신이 류학시절을 보낸 나라라는 잠재의식의 발로라고 할지, 한승우는 뽈스까도 뽈스까지만 체스꼬슬로벤스꼬의 정치정세가 나쁘게 번지는것이 더 마음에 쓰이였다. 그것도 얼마나 엄중한 방향으로 나가고있는가. 당지도부와 정부를 장악한 둡체크개혁파들의 주장을 보면 사회주의적원칙을 줴버리고 사회생활의 일체에서 자본주의제도를 복귀하는것을 목적하고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은 벌써 명색만의 공산당이고 그 《지도자》들은 이른바 민족주의의 간판을 목에 건 공산주의의 사상적배신자들이였다.

한승우가 류학하던 1950년대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던 사태였다. 당시의 체스꼬슬로벤스꼬는 공산당의 옳바른 령도밑에 사회주의적리념에 충실한 나라였다. 튼튼한 금속공업에 토대한 발전된 기계제작공업과 사회주의적경제체제를 가진 나라로서 사회적안정과 근로자들의 물질문화생활수준이 잘 보장되였음은 물론 사회주의나라로서의 국제적의무에도 매우 성실하였다.

그렇던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있는가. 맑스주의와 서방식 《자유》를 량립시킨다구? 서방식 《자유》란 부르죠아자유를 의미한다. 하거늘 명색이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체제안에서 맑스주의에 부르죠아자유를 결합시킨다고 하니 이런 가소롭고 해괴한 정치만화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정녕 어이없고 기가 막힌 일이였다.

한마디로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는 세계의 면전에서 아름답던 사회주의영상에 먹칠을 하고있었다. 이 불미스러운 사태를 시급히 바로잡자면 결정적인 무슨 대책이 있어야 했다. 그것은 《푸에블로》호사건으로 나날이 긴장해지며 전쟁에로 치닫고있는 조선정세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지극히 필요하였다.

한승우는 그 대책이 무엇이겠는가를 나름으로 생각해보았다. 뽈스까의 경우는 학생아이들의 소요니 크게 문제될것이 없다쳐도 체스꼬슬로벤스꼬가 문제였다. 당지도부의 과오고 로선상의 탈선인 까닭에 그만큼 바로잡기도 힘들것이였다. 그렇게 중병이 들고 심각한 체스꼬슬로벤스꼬문제인만큼 주변의 사회주의나라들이 다 달라붙어 풀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쏘련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그렇다. 일부에서 말한다는것처럼 쏘련이 개입해야 한다. 체스꼬슬로벤스꼬나 뽈스까가 혼란에 빠진것은 쏘련, 구체적으로는 수정주의자 흐루쑈브의 책임도 없지 않다. 정치무대에서 이미 축출되기는 했지만 동유럽의 일부 나라들이 겪는 오늘의 혼란은 그가 퍼뜨린 수정주의사상에 뿌리를 둔것이다. 흐루쑈브가 땅크와 대포를 용광로에 넣어 녹이면서 제국주의와의 《평화적공존》과 계급투쟁의 불필요를 떠들지 않았다면, 그가 《쏘련에서는 미싸일을 꼴바싸처럼 꽝꽝 만들어내며 그것으로 우주공간에 날아다니는 파리새끼도 명중할수 있다.》고 허풍을 치며 서방의 날라리풍조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것이다. 그러니 쏘련의 현 지도부가 책임을 깨닫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정세를 안정시키는것은 응당하다. 론리와 권고로 해결 안되면 강권을 발동해서라도 탈선을 막아야 한다.)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진 옥류교를 건너 동대원동에 있는 집에 당도할 때까지 한승우는 그러한 생각에 옴해있었다.

그런데 집에서는 집대로 뜻밖의 놀라운 소식이 기다리고있었다. 7월에 가야 21살이 되는, 외국어대학 로어학부 2학년생인 아들 영일이가 인민군대에 입대한다는것이였다.

《…신체검산 오늘 벌써 했고 랠은 담화를 한다나 봐요.》

시장할 남편을 생각해선지 한승우가 식사를 끝내고 숭늉을 마실 때쯤 되여서야 하는, 어딘가 산란한 내심이 느껴지는 안해의 말이였다.

《아니, 그게 정말이요?》

한승우는 놀라운바가 없지 않아서 입에 물었던 숭늉을 급히 넘기며 부릅뜬 눈으로 안해를 보았다.

《정말 아니문… 정세가 정세니만치 담화가 끝나는 차제루 제창 랠중에라도 군복을 입게 될지 모른대요.》

전혀 예상 못한 갑작스러운 일이라 한승우는 어떻다고 선뜻 마음을 질정할수 없었다. 부모들의 사랑속에 근심걱정을 모르고 곱게만 자란 아이여서 군대에 나가 고생을 해보면서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고 복무과정에 당원도 될수 있으리라는 측면으로 생각하면 기쁘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나간다면 그렇지 않을수도 있겠지만 영일이는 한창 배움에 익숙된 대학 2학년생이였다. 대학, 그것도 꼭 외국어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품을 들이고 왼심도 크게 써온 아들인가. 아들딸 셋을 낳아키우며 한승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맏아들이 자기처럼 외국류학을 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들이 탁아소에 다닐적부터 우리 말과 로어를 함께 배워주었고 소학교시절부터는 집에 들어와 아버지와의 대화일체를 로어로만 하는 가혹하다 할만큼 엄격한 질서를 세워놓고 어기지 않았다. 그렇게 키운 아들이 목적한 외국어대학 로어학부에 입학했을 때 한승우는 기쁜 나머지 믿어지질 않아서 대학에 찾아가 제 눈으로 입학자명단을 확인하고 그것도 미흡해서 렴치를 무릅쓰고 교무부에 찾아들어가 다시 확인하고서야 안심한것이 불과 두해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인민군대에 나간다는것이였다.

《갸가 지금 뭘하오? 자더라도 깨우오.》

아들이 왜 갑자기 인민군대에 입대할 결심을 했는지 사유라도 듣지 않고는 자리에 누워야 잠들것 같지 못했다.

아들은 자지 않던 모양 눈이 초롱초롱해서 들어왔다. 하기는 생각을 많이 하고 결심했겠지만 하더라도 인생이 크게 전환하는 마당이니 마음이 번거로와 잠자기가 쉽지 않을것이였다.

《엊저녁에도 아무 소리 없더니 갑자기 어떻게 된거냐?》

아들이 앞에 앉기를 기다려 안해가 상을 들고 나가자 한승우는 물었다. 어째선지 목소리에 감정이 실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영일은 고개를 약간 들어 장판바닥을 내려다보다말고 눈을 들었다.

《아버지도 잘 아시겠지만 푸에블로호사건때문에 지금 정세가 얼마나 긴장합니까? 미국놈들이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벌써 동원령을 내렸답니다. 조국이 위험에 처했는데 사로청원으로서 어찌 책상에 마주앉아 공부만 하고있겠습니까? 엇그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탄원모임이 있었고 오늘은 우리 대학에서도 했습니다. 전 학년을 대표해서 토론까지 했구요. 그렇게 된겁니다.》

한승우는 리해되는바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 리해때문이랄지 이번에는 목소리에 감정을 싣게 되지 않았다.

《그래 너희 대학에선 몇명이나 탄원했니?》

《탄원이야 누구나 다 했지만 1차적으로는 30명이 나가기로 했습니다, 저도 1차지만. …》

한승우는 준엄한 정세에 대처하여 조국보위의 성스러운 의무를 자각하고 결연히 학업을 중단한 아들의 결단이 대견하게 생각되였다. 하면서도 어째선지 장하다고 칭찬하게는 되지 않는것이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일이 그렇게 된거라면… 나는 네가 결심을 옳게 했다고 생각한다. 할아버지를 내놓고는 우리 집안에 군사복무를 한 사람이 없어 더러 부끄러울 때도 있었는데 네가 집안의 그 허점을 메꿔주니 아버지로선 감사한바가 없지 않다.》

《…》

《하면서도 좀 섭섭하게 생각되는것은 네가 이 아버지와 토론도 않고 군사복무를 선택한것이다. 물론 정세는 매우 긴장하다. 네 말대로 죤슨이란 놈이 이미 군대에 비상동원령을 내렸고 현실적으로 적함선집단이 우리 나라 동해로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러나 알아야 할건 전쟁이 그리 쉽사리 일어나지는 않는다는것이다. 미국놈들이 얼마나 타산에 밝은 놈들이라고 우리 이웃에 쏘련이나 중국 같은 형제의 나라들이 있는데 서뿔리 전쟁을 일으키겠니. 게다가 미국놈들은 지금 윁남전쟁에서 골탕을 먹을내기 조선에 전쟁판을 펴놓을 경황도 없고 여력도 다 없는줄로 안다. 이건 내 혼자의 생각이라기보다 객관적인 군사정치정세고 지정학적요인으로부터 얻어지는 결론이다.》

《하니 아버진 뭘 말씀하자는겁니까?》 묵묵히 듣고만 있던 아들이 문득 따지고들었다. 전에 없던 일이였다. 《정세가 암만 긴장해야 전쟁은 일어나지 않기에 제가 대학공부를 그만두고 군대에 입대하는것이 너무 서두른 행동이였다, 그 맡씀입니까?》

아들이 너무 정통을 찌르고 들어오는 바람에 한승우는 당황해지는바가 없지 않았다.

《아 아니, 그런건 아니다. 난 다만 네가 너의 리상이라 할지, 인생목표라 할지 그게 꺾이는것 같아서 그런다. 솔직히 말하면 그 측면에선 아쉬운바가 노상 없지는 않다. 그러니 군사복무를 하더라도 이걸 잊지 말어라, 너의 길은 외국어에 있고 최종목표는 외국류학이라는걸.… 군대에 나가는 너에게 이런 말을 하기가 나로선 별나다만 난 네가 리해하리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저의 당면한 목표는 군대에 나가 훌륭한 병사가 되는것입니다. 중학시절에 전 어느 시집에선가 병사시절이라는 시를 외웠던적이 있습니다. 더러 잊어버렸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것은 조국을 생각하며 깨여나고 조국에 대한 생각으로 꿈속에 드는것이 병사라고 하면서 병사시절을 가장 보람차고 가장 자랑차고 당과 수령을 받들어 가장 값있는 영원한 청춘시절이라고 한 대목입니다. 저의 가슴속에는 아직 조국에 대한 개념이 똑똑히 서있지 않습니다. 저는 우선 군대에 나가 조국을 배우고 그다음 돌아와서 다시 외국어를 배우겠습니다. 전 그것이 순차라고 생각합니다.》

《!…》

한승우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하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방금전까지 아이로만 생각했던 내 아들이 이렇게 어른으로 성장했는가싶으면서 갑자기 대하기 어렵고 말이 서슴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버지가 된이래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고 체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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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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