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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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짐을 몇개 고쳐꾸린 뒤 늦은저녁을 해먹고 설겆이를 하느라고 신복은 10시가 넘어서야 부엌에서 나왔다. 직장에 출근할 때는 물론 엊그제까지만도 부엌관리는 어머니가 했었지만 이 며칠간 신복은 그
관리권을 자기가 넘겨받아가지고 착실한 주부답게 하루 세끼 식사를 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신복은 아들들의 방에 들어가보았다. 그들 여섯식구는 세칸방을 둘씩 갈라져 차지하고있는데 부엌옆의 남향방에는 딸 선아가 할머니와 같이 있고 총각들인 맏이와 막냉이는 복도건너 서쪽방에 있었다.
키가 벌써 아버지를 거의 따라잡은 16살난 맏이(전쟁때 길바닥에서 낳은 아들)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쓴채 곯아떨어지고 아버지처럼 커서 신문기자가 되는것이 희망인 막내 역시 이불밑에 엎드려 일기를 쓰다말고 일기장에 볼을 붙인채 꿈나라에 가있었다.
맏이의 머리에서 이불깃을 제껴주고 막냉이를 바로눕힌 신복은 아들의 쓰다만 일기를 읽어보았다.
2월 3일. 토요일. 맑은 날씨. 그리 춥지 않다.
(오늘은 일기가 아니라 기행문을 쓰려고 함.)
2월의 모란봉을 찾아서
2월이면 아직 겨울이기때문에 산보하는 계절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모란봉에 가서 산보를 했다. 우리라는것은 어머니와 형님 그리고 누나와 나를 말한다. 할머니는 무릎이 아파서 모란봉에 올라갈것 같지 못하니 너들이나 가라면서 집에 남고 아버지는 이사짐을 실을 차때문에 신문사에 나가서 할수없이 우리만 가게 되였다.
우리는 돌범이와 시내의 전설이 깃들어있는 칠성문으로 들어가 문루에 올라갔다. 거기서 길건너편에 있는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 천리마
그런데 이상하였다. 전에는 을밀대우에서 시내를 둘러보면 우리 평양이 정말 멋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막 고무풍선처럼 부푸는것 같고 기분도 붕- 떴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촌으로 이사를 가게 되고 모란봉에도 다시 올라와볼수 없기때문인지 보이는것이 다 쓸쓸한 감정을 자아내고 막 울고싶은 기분이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평양에서 살지 못하고 평북도로 이사가는걸가? 형님의 말이 우리는 벌써 두번…
그뒤로 몇자 더 있었지만 졸면서 쓴 글이라 읽어낼수 없었다.
신복은 아들의 일기장을 무릎우에 놓으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깊이 불었다. 철없는 12살 막냉이의 기분이 이렇듯 쓸쓸하고 울고싶은것이였으니 맏이나 선아의 마음은 또 얼마나 서글펐을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모란봉으로 산보를 나간것이 저으기 후회되였다.
아침이였다. 이제는 퇴거를 비롯하여 필요한 일체의 수속과 이사준비는 물론 친지들과 작별인사까지 다 나누고 인차 평양을 떠나야 하기에 신복은 아침밥을 먹고나서 말했다.
《얘들아, 오늘은 이 엄마하고 모란봉에 산보 가자.》
신복은 모란봉 아니, 평양과도 작별인사를 나누고싶었다. 하지만 딸 선아가 약간 의아한 눈길로 보았을뿐 맏이와 막냉이는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롱담을 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신복은 여태 한번도 아이들과 산보라는것을 해보지 못했다. 산보는 고사하고 늘 일에 볶이우느라 언제한번 아이들을 살뜰히 안아주어본 기억도 별로 없다. 있다면 막냉이가 두살잡혔을 때인가 출장을 갔다와서 안아주려고 하니 울음을 터치며 할머니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아 종시 안아주지 못한 기억이라고 할지.
아이들은 신복이 차비하는것을 보고서야 좋아하며 교복을 갈아입는다, 외투를 입는다 하며 부산스레 돌아갔다.
신복은 둘째와 셋째의 손을 쥐고 서문거리로 넘어와 예로부터 《행복의 문》으로 일러오는 칠성문을 거쳐 을밀대로 올라갔다.
을밀대루정에 올라서니 평양시가 한눈에 바라보였다. 신복은 마음속으로 정다운 이름을 불러본다.
혁명의 수도 평양! 얼마나 따뜻한 울림으로 가슴속을 흔들며 정을 자아내는 이름인가. 눈길이 미치는 곳마다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웃으며 손저어 불러주는것만 같았다.
대학시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선포에 대한 소식을 듣고 격동되여 호실동무들과 함께 단숨에 여기 모란봉극장 국기게양대앞까지 달려오던 일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맑고 푸른 9월의 하늘높이 펄럭이는 람홍색공화국기를 보면서 기쁨의 눈물로 볼을 적시던 그날도 어언 20년전으로 물러갔다.
어느해인가 보름달이 삼라만상을 밝게 비치던 밤 관서팔경의 하나인 부벽루의 달맞이를 보자고 동무들과 함께 왔다가 달밤의 신비한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가는줄 모르던 일도 잊혀지지 않는다. 추억만이 아니다. 웅장화려하게 일떠서는 평양의 모습은 오늘따라 더더욱 가슴뜨거운 정회를 자아낸다. 불과 열다섯해전만 하여도 성한 집 한채 없이 재가루만 날리던 평양이 말그대로 천지개벽을 하였다. 수도의 그 변천속에는 젊은 시절에 바친 신복의 땀과 노력도 깃들어있다.
최승대에 올라가니 김일성종합대학의 위엄있는 웅자가 한눈에 안겨왔다. 거기서 흘러간 청춘시절의 환희로운 나날들이 어제일처럼 눈앞에 바투 다가선다. 종합대학은 신복이에게 지식을 준 요람이고 평양은 그를 자래운 고향이다.
사람들이 간혹 고향이 어딘가고 물으면 신복은 평양이라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태여난 곳은 장백현이지만 헐벗고 굶주리고 고역스럽던 추억밖에
없는 그곳을 어찌 고향이라 하랴.
그런데 이제 그 고향을 다시 떠난다고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신복은 얼른 손수건을 꺼내 눈으로 가져갔다. 참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샘솟듯 하는 눈물을 아이들에게 보이지 말자고 한동안 수건을 눈에서 떼지 않았다. 했지만 딸애가 눈치채고 《어머니, 왜 우시나요?》 한다.
《아니다, 눈에 티가 들어가서 그런다.》
《그럼 내가 불어줄게. 내 눈에 티가 들어갔을 때 할머니가 눈을 벌리고 불어주면 인차 나왔어.》하며 딸애는 한사코 눈을 보자고 다가 든다.
신복은 딸애에게 눈물을 보이고싶지 않아서 이젠 일없으니 가자고 하며 걸음을 내짚었다. 그리고 다시 정든 평양을 둘러보았다. 그 어디에 눈길을 주어도 창조와 건설로 들끓으며 희열과 활기가 차넘치는 평양, 이제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다는 괴로운 생각을 애써 누르며 평양의 모습을 뇌리에 새기고 또 새기였다.
신복은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모란봉을 내리였다. 문득 학교시절에 외웠던 시구절이 떠오른다.
역적은 살아서도 돌아 못 오고
영웅은 죽어서도 돌아오는 곳
…
잘있거라 평양아, 나의 사랑하는 고향아. 내 몸은 비록 너를 떠난다만 그 어디에 가든 너를 안고살리라. 너의 무궁한 번영을 빌면서 언제나, 언제나.… 신복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평양과 작별하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막급한 후회속에 아이들에게 사죄한다.
(얘들아, 미안하다. 이 엄마가 제 생각만 하면서 너희들이 가슴아파할 생각을 못했구나.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
밤이 깊어가고있었다.
그들부부가 거처하는 방에 들어선 신복은 남편이 깰세라 전등도 켜지 않고 조심히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남편은 자고있지 않았다.
신복이 누운지 2~3분쯤 되였을가, 자는줄 알았던 남편이 끙- 일어나더니 어둠속에서 담배통을 더듬어찾아가지고 담배를 피웠다. 남편이 별다른 말은 안하지만 마음속 고민이 크구나 하는 생각에 신복은 가슴이 아팠다. 결국 자기때문에 또 지방에 가게 되였으니 미안하기 그지없었다. 방안에 연기가 차도록 말없이 줄담배를 태우던 남편이 문득 침묵을 깨쳤다.
《암만 생각해도 내 보기엔 당신의 리력에 무슨 문제가 있는것 같소.》
신복은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전등을 켰다. 그리고는 이불깃을 당겨 무릎을 덮고앉으며 항의하듯 남편에게 따져물었다.
《그건 웬 소리예요? 내 리력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거예요? 나에겐 아무 문제될것이 없다고 봐요.》
《없다면 왜 빈번히 이런 일이 생기는가 말이요, 응? 벌써 몇번째요. 혹시 당신은 내 리력을 의심하는게 아니요?》
남편의 목소리에서는 얼음장같은 랭정이 풍기였다. 그렇다고 신복이쪽도 수긍할수 없어 단호히 부인했다.
《난 선아 아버지 리력을 의심하지 않지만 내 리력에도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런건 있을수 없어요. 선아 아버진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지 못했어요? 그게 내 리력이예요.》
신복은 본적지가 평안남도 평원군 덕포리다. 부모들은 그곳 농촌에서 소작살이를 하다가 소작땅을 떼우고 류랑걸식하면서 장백으로 건너갔다. 발을 붙인 곳이 신복에게는 큰아버지가 되고 아버지에게는 사촌 형님벌 되는 친척이 사는 장백현 작은절골이라는 마을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거기서 탁가성을 가진 중국인지주의 땅을 얻어 소작살이를 하였다. 땅이 척박한데 비해 소작료가 퍼그나 비싸서 생활이 몹시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신복이 아홉살때 아버지가 불치의 병으로 사망하였다. 졸지에 홀몸이 된 어머니는 두 딸자식을 키우느라고 온갖 고생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큰집에서 좀 도와주기는 했지만 가물에 한줄금 비 겪기였다.
해방후도 그렇다. 일제의 패망과 함께 징용으로 끌려갔던 방직공장에서 돌아온 신복은 로독을 풀고 일어나자 공청사업에 뛰여들었다. 당시
장백현일대는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민주주의 새 조국건설에 적극 참가하자는 민족의
이듬해 봄 조국땅 삼수에 이사를 나와서는 얼마간 삼수면소학교 교원을 하다가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여 공부하였으며 2학년때 당에 입당하였다. 졸업을 앞두고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정치공작대로 경상북도 포항까지 갔다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강계에 들어와 국가계획위원회에 배치되였다. 이후 신복은 거기서 국장사업까지 하다가 1958년에 국가계획위원회를 떠나서부터는 경공업부문의 여러 직책을 전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나의 리력에 어째서 검은 딱지가 붙는단 말인가.
신복은 과거를 샅샅이 들추며 남편과 긴긴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다. 어느새 창문이 훤히 밝아왔다. 한밤을 꼬박 새웠으나 피곤하기는커녕 도리여 정신이 말똥말똥하였다.
선아와 어머니가 아침상을 챙기였다. 방금 식사를 끝냈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일요일 아침에 누가 왔을가 하는 의문을 앞세우며 나가 문을 여니 피복관리국장 최도식이 서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신복은 눈에서 불이 일었다.
최도식은 어떻게 알았는지 신복이가 평북도파견장을 받은 이튿날부터 집에 매일 찾아왔다. 처음에는 짐을 싸는데 사람이 필요하지 않는가, 마대나 노끈 같은것이 요구되지 않는가 하고 관심해주기에 퍼그나 고맙게 생각했다. 신복이네 이사짐은 간단했다. 지방에 두번이나 갔다오고보니 큰 가구가 없고 이부자리 몇채와 부엌세간, 옷가지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주어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 그런데 다음날에 다시 와서 언제 떠나려는가, 화물차가 필요하면 말하라고 하며 보채기 시작하였다. 그는 집에 들어와 방방에 다 들어가보고 세면장, 부엌은 물론 창고문까지 열어보았다. 신복은 그제서야 최도식이 집이 탐나서 빨리 떠나기를 바란다는것을 알고 수속이 끝나는 차제로 인차 떠나겠으니 너무 걱정말라고 했다. 했건만 아무래도 안심치 않았던지 이 일요일 아침에 또 찾아온것이였다.
《아직도 안 떠났소?》
짜증도 다소 느껴지는 최도식의 물음이였다. 신복은 입에서 맵짠 소리가 나가려는것을 단속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래일 떠나기로 했으니 오늘만 참아주면 되겠어요. 정 급하면 이제라도 한방 내주겠으니 이사짐을 가져다놓도록 하세요.》
할말이 없는지 최도식은 입만 쩝쩝 다시다가 돌아갔다. 물에 빠진 사람 꼭뒤를 누른다더니 바로 저런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속에서 피가 끓었다. 남편은 분기를 참느라고 숨을 거칠게 쉬며 애꿎은 담배만 태웠다.
최도식이 돌아간지 한시간쯤 되였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 났다. 순간 신복은 저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최도식이 다시 왔든가 아니면 이 집이 탐나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또 온것이 틀림없다고 여겨 거칠게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이목구비가 번듯하고 차림새가 단정한 처음 보는 중년사나이가 서있었다. 그 낯선 사람은 당중앙위원회에서 왔다고 하면서 김신복동무가 맞는가고 묻더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신복은 어안이 벙벙했다. 래일이면 평북도로 내려가겠는데 중앙당에서 왜 나를 찾는것인가. 게다가 오늘은 휴식일이 아닌가? 이런 예상 못한 정황에 부닥치면 사람이 나쁜 경우부터 먼저 생각하게 되는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파고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혹시 그새 나의 당원자격이 론의된것은 아닐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런 엄청난 생각이 떠오르자 어째선지 마음속이 텅 비며 스스로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되는것이였다.
방에 들어가 외출복을 갈아입고 나온 신복은 불안에 휩싸인 식구들을 뒤에 남겨둔채 당중앙위원회 일군을 따라나섰다.
당중앙위원회청사에 도착하여 그는 한 책임일군의 방에 안내되였다. 이제 여기서
그런데 예상외로 그 일군은 웃는 얼굴로 맞아주며 자리를 권하는것이였다. 신복은 앉지 않고 그냥 서있었다. 그 일군이 앉으라고 거듭 권해서야 마지못해 걸상끝에 앉았다.
이윽고 그 일군은 선채로 책상우에서 붉은 표지를 씌운 학습장을 찾아쥐고 몸가짐을 바로하더니 정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신복동무를 부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예-에?! …》
신복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혹시 잘못 듣지나 않았는가 하여 귀를 의심하며 당중앙위원회 일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지만 잘못 들은것이 아니였다.
《신복동무가 올린 편지를 받아보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밤 늦도록 해당 일군들을 부르시여 동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외곡된 리력도 다 해명해주시였습니다.》
아!-
신복은
신복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는듯 그 일군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신복은 다시 걸상에 무너져앉으며 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앞상에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며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썼지만 눈물은 줄줄줄 락수물처럼 그냥 흘러내렸다.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물고뿌를 가져다주며 그만하라고, 자기들이 일을 잘못해서 그렇게 되였으니 량해해달라고 사죄하였으나 눈물을 거둘수 없었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신복은 진정할수 있었다. 그러기를 기다려 당중앙위원회 일군은 앞으로 무슨 일을 했으면 좋겠는지 희망을 말하라고 했다. 신복은 당에서 시키는대로 일하겠다고 대답했다. 겸손을 보이느라고 하는 대답이 아니였다. 그새 너무도 오래동안 직무에 임명받지 못하고 지내다보니 아무 직무에나 배치해주면 그것으로 만족할것 같았다. 그러나 당중앙위원회 일군은 거듭 희망을 말하라고, 사람이 제 하고싶은 일을 해야 마음도 편하고 성과도 더 나는 법이니 가서 후회하지 말고 저리 잘 생각해보라는것이였다. 신복은 그제야 생각이 바로 잡히며 결심도 새로이 섰다.
《저는 평북도파견장을 받기 전까지 림시로 평양피복종합공장 책임자로 있었는데 그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습니다.》
《왜 피복공장 림시책임자정도요? 동무야 지방산업총국 부총국장직무도 수행하지 않았소.》
희망의 날개가 너무 작다고 생각되는지 중앙당 일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피복종합공장에서 그냥 일하겠다고 하는건… 지금 피복부문에는
피복공장을 떠나지 않으려는 신복의 심정이 리해되는듯 당중앙위원회일군은 감심한 표정으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렇다면 생각을 아주 잘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담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신복은
2월의 눈부신 해빛이 온 방안에 가득 비쳐들었다. 점심시간이 지난지 오랬건만 식구들은 시장함을 잊고 감격에 목메여
저녁밥상에 마주앉은 막냉이가 숟가락목이 부러지게 밥을 퍼먹다말고 불쑥 물었다.
《엄마, 그럼 전학증을 학교에 도로 갖다줘도 되나?》
《되지 않음. 모두 래일 아침 전학증을 교장선생님에게 가져다드리고 그냥 공부를 하도록 해라.》
아이들은 너무 좋아 얼굴들이 환해져가지고 입들을 다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