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2
박성철은 외무성청사 2층의 자기 사무실에서 문건을 보고있었다. 문건이라야 실은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하여 각국 외교관들이 우리 통역원들과 나는 대화를 종합한 발언자료들이였다.
외무상의 직분에 어울리지 않게 쏘파앞에 끌어다놓은 걸상우에 타자한 자료묶음들과 재털이며 담배갑을 펴놓고 앉은 박성철은 코등으로 흘러내리는 안경을 자주 밀어올리며 묵묵히 내용을 파악하였다. 날자를 무시하고 지역별 혹은 나라별로 종합한 자료여서 산만한감이 없지 않았으나 대신 매 나라 대표부사람들의 정신상태와 립장이 대비되면서 리해하는데서는 도움이 되였다.
…
-인도네시아대사관 1등서기관은 2월 1일 오후 우리 외무성과의 면담준비를 하면서 통역원에게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3차대전이 일어난다. 쏘련, 중국도 전쟁에 참전하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쏘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이 곧 세계대전이고 열핵전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뽈스까대사관 무관은 우리 통역에게 《오늘호신문에 유엔사무총장 우 탄트가 온다는것이 실렸는가? 어디서 들은 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대사가
하는 말이 우 탄트가 조선에 온다고 한다. 만일 그가 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가 파견한 대표가 온다고 한다.》고 하면서 그는 《미국인들을
서뿔리 건드려서는 안된다. 그들은 강력한 무력을 가지고있다. 당신들 혼자서는 강대한 미국에 대항할수 없다. 당신들은 현재 사회주의진영내부에서
일어난 사태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동지의 령도를 받는 조선인민은 용감하다. 그러나 자기의 힘과 적의 력량을 정확히 타산하고 행동하는것이 가장 현명한것이다. 중요한것은 전쟁을 피하는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꾸바대사는 1월 31일 우리 통역원이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 선장이 고백한 내용을 이야기해주자 《보라, 쏘련의 연해변강을 이미 정탐하면서
내려왔는데 쏘련사람들은 너무 〈좋은〉사람들이여서 붙잡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미국인들도 나쁜 사람은 아니다. 우리들사이에는 특별히 나쁜 관계도 없고
호상 좋게 지낸다.〉고 하면서 미국간첩들이 령해를 조사하는것도 다 내버려두었다. 어제 밤 도꾜
영어방송을 들어보니 주쏘 미국대사가 그로믜꼬외무상을 만나 간첩선을 돌려받기 위해 국무장관의 명의로 쏘련에 중재를 제의하였다.
-꾸바무역참사는 2월 3일 우리 무역일군에게 《때는 다가오고있다.
우리가 오늘 조선과 꾸바무역확대를 위해 일하고있지만
-2월 3일 외무성에서는 2월 8일에 즈음하여 천리마문화회관에서 우리 나라 주재 각국 대사관 외교관들과 직원들, 그들의 부인 및 기자들을 위한 영화감상회(《북극성》)를 가졌습니다. 여기에 각 대사관에서 대사, 대리대사를 비롯하여 12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감상회에서 있은 반향의 특징은 영화와 다른 문제들에 대한 론의보다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한 질문과 론의가 위주였습니다.
-마쟈르대사관 무관은 2월 3일 《미제는 제멋대로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것이다. 조선인민은 동원된 태세에 있고 규률적이며 정신상태가 대단히
좋다는것을 우리는 알고있다.》고 하면서 《최근 미제국주의자들의 도발책동과 관련하여
나는 군인으로서, 또 내가 아는 군사지식과 경험으로 판단하건대 전쟁전에 이렇게 잘 준비된 나라를 굴복시키기는 매우 힘들다.》라고 하였습니다.
-꾸바대사관 2등서기관은 《지난 27일에 미제무장간첩선나포와 관련하여 발표한 공화국정부성명은 간단하면서도 명백하고 미제가 입을 벌릴수 없게 답변을 주었다. 매우 훌륭하고 간결하며 혁명적인 성명이다.
조선인민은 글대포를 한방 갈겨 유엔무대에서 너덜대던 미국을 셈세기시켰다. 그들은 아마 유엔이 더는 저들 혼자만의 무대가 아니며 남의 밭에 홍당무우 뽑으러 망탕 가서는 안된다는것을 깨달았을것이다.》
별지: 2월 1일 티라나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에서 보내온 전문.
알바니아인민공화국 외무성 부상 레이즈 말리레는 2월 1일 알바니아주재 우리 나라 특명전권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알바니아당지도부와 정부와 인민은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한 형제적조선인민의 립장과 투쟁을 지지합니다.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령해를 침범한 미국간첩선을 나포한 조치는 전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합니다.
유엔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미제의 침략도구라고 봅니다. 우리는 유엔에 희망을 걸지 않습니다. 유엔은 미국간첩선 〈푸에블로〉호사건과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조선인민은 이번 사건을 통하여 미제에게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자기의 굳센 신념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시말하여 조선에 주인이 있다는것, 그 누구도 조선인민의 운명을 가지고 마음대로 희롱할수 없다는것을 선언하였습니다.
굶은 승냥이 미제가 조선인민에게 으르렁거렸으나 조선인민은 돼지에게 총을 박아주듯이 총으로 대했기때문에, 즉 (손으로 책상을 치면서) 스톱! 하였기때문에 우뜰 놀라 무력행사로 나오고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말마적발악입니다. 당신들도 잘 알겠지만 미제는 손가락을 하나 내놓으면 팔까지 먹겠다고 하는 놈들이며 팔을 하나 보이면 둘을 달라고 하는 놈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인민은 미제와 그 졸개들에게 참으로 용감하게 대했습니다. 미제는 이번에 사실 군사적공갈과 외교적압력으로 조선인민의 맥박을 짚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인민은 그 맥박이 어떤 환자의 맥박이 아니라 아주 건전한 사람의 맥박이라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
알바니아당지도부와 정부는 미국간첩선나포와 그와 관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부의 단호한 조치를 지지하기로 결정하였음을 정식 알려드립니다.》
반향자료에 심취되였던 박성철은 복도에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온 사람은 의례국장이였다. 의례국장은 늘 외국손님들을 맞아들여 사업을 보장하고 보내기까지 해야 하는 직무상 필요에서 언제보나 깨끗한 제낀깃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매지 않는 때가 없는 사람인데 외무성안에서 통하는 별명이 《삼륙오, 넥!》이다. 온 일년을 두고 매일같이 넥타이를 갈아맨다는 뜻도 있고 그럴만큼 넥타이가 많다는 의미도 있는 별명이였다.
《상동지, 쑤다리꼬브대사가 상동지를 만나겠다고 왔습니다.》
《쑤다리꼬브라니, 그 량반이야 엊그제 모스크바에 가지 않았던가?》
자료에 너무 몰두해있은탓에 박성철은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지르며 어슴푸레해진 기억으로 물었다.
《갔다가 지금 비행장에서 곧장 들어오는 길이랍니다. 보아하니 대사관에도 들리지 못한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리 바쁘다오?》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하여 긴급하게 의사를 교환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것 같습니다.》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하여 긴급하게 교환할 의사라면 거절할 까닭이 없었다.
《유럽국에 누가 있소?》
면담에 동석할 쏘련담당외교관이 누가 있는가 하는 소리였다.
《국장동무는 출장가고 문부국장이 있습니다.》
《문부국장이 로어던가?》
《로업니다. 로모노쏘브종합대학에서 로어교원으로 떨어져달라는걸 거절하고 귀국한 사람이니까…》
의례국장의 말대로 문부국장의 로어실력은 실지로 그렇게 높았다. 《그럼 통역을 따로 앉히지 말고 문부국장을 보내오.》
《알겠습니다.》
×
쏘련대사 쑤다리꼬브는 눈빛이 갈색이고 보통사람 둘을 합쳐놓은만 치나 체격이 웅장한 50대의 우크라이나계 로씨야인이였다. 각이 질사한 얼굴생김새라든가 음울한 표정이 사람들에게 그닥 좋은 인상을 주는편은 아니지만 거방한 체격의 덕이라고 할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대함에 있어서 감히 경시할수 없게 위엄을 풍기는 사람이였다. 동행한 1등서기관은 이런저런 기회에 박성철이 여러번 만나본바 있는 사람인데 조선말에 능하고 평양에 주재하는지가 대사보다 썩 오랜 로숙한 외교관이였다.
인사를 나누고 빙 둘러 개인쏘파를 놓은 넓은 등글탁에 마주앉으면서 박성철은 얼핏 지난해 5월엔가 신임장을 봉정할 때 료해한 쑤다리 꼬브의 개인경력을 상기했다.
모스크바법률대학을 졸업한 그는 1930년대와 40년대에는 주로 쏘련법률기관들에서 사업하면서 한때는 모교인 법률대학 학장으로도 일하였다. 그후 《쏘베트국가와 법》잡지사 부주필로 사업하다가 중화인민공화국정부 상급고문으로 외교계에 발을 들여놓은이래 중국주재 대사관공사, 참사로 있었고 60년대에 들어와 쏘련외무성 극동부에서 부부장, 부장의 직무를 수행하다가 지난해에 주조 쏘련대사로 파견되였다.
성격은 비교적 침착한편이고 남에게 싫은소리를 하거나 필요없이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축이였다. 물오리사냥을 즐기며 술과 담배를 몹시 좋아하였다.
역시 담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주인의 례절로 박성철이 담배를 권하자 쑤다리꼬브는 사양치 않고 받아 불을 붙이더니 몇모금 맛을 보고야 사업으로 들어갔다.
《갑자기 면담을 요구해서 미안합니다. 정세로 보아 요즘 퍽 바쁘실텐데…》
례절이 례절인만치 쑤다리꼬브는 담배불을 죽여 재털이에 놓고 손을 깍지껴쥐면서 점잖게 운을 뗐다.
《나는 괜찮습니다만 대사동무가 먼길에 수고많았겠습니다. 브레쥬네브총비서동지와 꼬쉬낀동지는 요새 건강하십니까?》
쑤다리꼬브의 말대로 갑자기 마련된 면담이고 상대방의 심중에 대한 파악이 없는 까닭에 박성철은 맥을 짚어보는 의미로 쏘련지도자들의 건강에 대해 물었다.
《물론 건강합니다. 그러나 〈푸에블로〉호사건으로 조선정세가 긴박해지는것때문에 걱정들이 많습니다.》
기회를 놓칠세라 쑤다리꼬브는 화제를 목적한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쏘련동지들이 진심으로 념려해주어 무척 고맙습니다만… 걱정을 너무 하진 말라고 할걸 그랬습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뭐 별다른 의미가 있는건 아니고 미국인들의 놀음에 지나치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보아서 하는 말입니다.》
문부국장이 부지런히 통역을 했다. 의례국장이 말한대로 그는 과연 로어회화에 능했다. 박성철자신도 로어로 간단한 회화쯤은 어렵지 않게 하는데 부국장은 발음도 그래 쑤다리꼬브에 별로 짝지지 않았다.
《신경을 지나치게 쓰지 말라면… 한즉 외무상동지는 〈푸에블로〉호사건과 관련하여 지금 미행정부가 〈보복〉과 〈징벌〉에 대해 떠드는것이 한갖 놀음밖에 안된다고 보십니까?》
《놀음치고는 좀 큰 놀음이지만 어쨌든 놀음이지 다른건 아닙니다. 내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미국인들이 지금 성난 범처럼 으르렁거리며 무슨 일을 낼것처럼 야단독장을 치지만 〈보복〉이나 〈징벌〉을 쉽게 하진 못합니다. 그러니 놀음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나는 미국인들이 강짜를 부리지 말고 리성적으로 사고하기를 바랄뿐입니다.》
쑤다리꼬브의 갈색눈동자에 놀라움같은것이 비꼈다.
《외무상동지의 락관주의에 나는 경탄하게 됩니다. 그러나 외무상동지, 내가 권고하고싶은건 미국이 말하는 〈보복〉이나 〈징벌〉을 놀음으로만 생각지 말아달라는것입니다. 미국은 력사적으로 자기 배를 남에게 공격당하고 가만있은적이 없습니다.
먼 실례는 말고라도 지난해 중동에서의 6일전쟁때 이스라엘은 어떤 미묘한 리유로 시나이반도의 북쪽 공해상에 떠있던 미해군함 〈리버티〉호를 폭격하여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배까지 침몰시켰습니다.
아시겠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맹우관계에 있습니다. 정계에 유태인 실력자들도 많이 박혀있고…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당장 이스라엘을 징벌해야 한다고 떠들면서 국회결의로 대통령에게 국교단절권까지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그제야 문제의 엄중성을 깨닫고 미국정부와 부상당한 군인들, 유가족들에게 수백만딸라의 보상금을 지불한것도 모자라 국회의원들로 무어진 〈사죄대표단〉까지 가서야 겨우 사태를 무마할수 있었습니다.
〈리버티〉호와 〈푸에블로〉호는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자매선입니다. 그런데 놀음이라니… 미국은 결코 놀음을 노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례로 보아서 미국이 분명 우리한테 〈보복〉한다는겁니까?》
박성철은 명백히 따져물었다.
《나포한 〈푸에블로〉호와 선원들을 미국에 돌려보내면 문제가 달라지겠지만 돌려보내지 않는 경우 미국으로서는 결코 가만있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쑤다리꼬브는 그것을 믿어의심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이 〈푸에블로〉호와 선원들을 돌려받자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립장을 밝힌바도 있지만 사죄가 없이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말에 앞서 쑤다리꼬브는 이마를 찌프리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외무상동지, 그러면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조선이 불리하고 승산이 없습니다. 제가 유격전쟁과 현대전을 다 체험한 백전로장앞에서 안할 소리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전쟁은 최신과학기술이 도입된 군사력과 경제력의 대결입니다. 두 힘의 공통분모는 강철이라고 할수 있는데 미국의 년간 강철생산량은 지금 자그만치 3억톤입니다.》
그러므로 강철생산량이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조선으로서는 미국과 대결하지 말라는것이 속에 있는 말이겠지만 쑤다리꼬브는 이쪽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모양 입밖에 내지 않았다.
박성철은 아까운 시간을 이런 공담으로 잃어버리는것이 내심 화가 나서 실례되는줄 알면서도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반향자료를 그냥 읽었더라면 지금쯤 거의다 읽었을 4시 10분경이였다. 이제라도 시간을 절약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주동적으로 화제를 바꾸었다.
《대사동무의 고견을 숙고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좀 바쁜 일이 기다리고있어서 이제는 그 긴급하다는 기본문제를 론의했으면 합니다.》
쑤다리꼬브는 그러자고 하면서도 선뜻 화제를 내놓지 못하고 여전히 깍지껴 쥔 주먹만 이윽토록 바라보더니 드디여 입을 열었다.
《저는 가능하면 오늘중으로라도 김일성동지를 만나뵈웠으면 합니다.》
그것은 심중한 문제여서 입을 선뜻 열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쑤다리꼬브가 인차 뒤말을 이었다.
《이미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쏘련지도자들은 〈푸에블로〉호사건으로 긴장해진 조선정세때문에 걱정이 많습니다. 한마디로 전쟁을 막자는것이
쏘련지도자들의 견해입니다. 나는 우리 지도부의 그러한 견해를
리해되는바가 있어서 박성철은 고개를 끄덕이는것과 함께 오른손손가락을 구부려 탁상모서리를 자근자근 두드리다말고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중으론 안되겠습니다.
제가 알기에 김일성동지께선 지금 평양에 계시지 않는것 같고 계시는 경우라도 그렇게 빨리는 접견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저도 김일성동지께서 늘 현지지도길에 계시며 매우 분망하시다는걸 압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방향에서 노력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