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11

 

목표하고 온 국가계획위원회청사가 저만치 보이자 신복은 저도 모르게 길옆으로 조금 나서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옳게 행동하고있는가를 다시한번 판단해보았다. 오면서의 생각이 그랬던것처럼 결코 잘못하는 행동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째선지 문득 정상을 넘어선 불손한 행실처럼 여겨지면서 단념하고싶은 생각이 순간에도 몇번씩 일어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단념하고 돌아서자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였다. 그러니 어찌해야 하는가. 이왕 떠나온 길을 그냥 내짚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도대체 진정할수 없었다.

그는 왼손에 쥔 가방을 당겨올려 가슴에 소중히 품어안는다. 가방안에는 어버이수령님께 올리려고 눈물속에 쓴 편지가 있다.

…신복이 평북도파견장을 받은 다음날 남편이 또 해임과 함께 파견장을 받아가지고 들어왔다. 역시 평북도에 가서 배치받으라는것이였다. 처가 지방에 가게 되였으니 남편도 응당 그러리라 예견은 했었지만 정작 부닥치고보니 신복은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두번째까지는 직무를 임명받아가지고 지방으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부부가 다 도에 가서 배치받으라니 우리를 이렇게 취급하는 리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사업상과오도 범하지 않았다. 품성이 나쁘다고 비판받은적도 없다. 만나는 간부들마다 말은 하나같다, 당의 조치다, 당의 조치니 그리 알고 가서 일을 잘하라.그렇다면 왜 나를 직무도 없이 쫓아버리듯 도에 내려보내는가, 왜? 왜? 왜?… 아무리 리해하려고 애써도 납득이 안되였다.

신복은 어머니와 아이들이 있는것도 상관하지 않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도 돌아앉아 울고 아이들도 울었다. 침통한 낯빛으로 줄담배만 빨고있던 남편이 보다못해 그의 손을 잡아끌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여보, 이러지 마오. 물론 이번에 우리가 평북도로 내려가게 된데는 분명 까닭이 있소. 어디서 무슨 오해가 생겼든가 아니면 우리의 경력에서 무슨 문제가 생겼든가… 난 그렇게 보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당신이 이런 태도로 나와서야 되겠소?

우리는 당원들이요. 일단 당에서 가라고 했으면 두말말고 가는게 옳소. 시간이 문제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기마련이요. 그건 생활의 법칙이요.》

남편의 타이름에 신복은 리성을 되찾으며 마음을 진정했다.

《신복이, 생각해보라구. 인생의 막바지에서 사람대접을 못 받으며 살던 우리가 김일성장군님의 은덕으로 나라의 첫 종합대학생이 되지 않았소. 당신은 대학시절부터 오늘까지 수령님의 신임과 사랑을 얼마나 많이 받았소. 당신이 함북도에 두번씩이나 내려갔다가 어떻게 다시 올라왔소. 수령님덕분이 아니요. 말하자면 당신은 우리 수령님께서 알고계시는 사람이요, 수령님께서… 그러면 됐지 무얼 더 바라는거요. 웬 투정질이냐 말이요!》

《…》

《당신은 꼭 평양에서 간부를 해야만 하겠소? 아니요. 우리는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 수령님의 은덕을 잊지 말고 당적량심이 시키는대로 성실하게 일해야 하오. 당신이나 나나 어려서부터 로동에 단련된 사람들이니 무슨 일을 시켜도 두려울것이 없소. 자, 기운을 내오. 우리 마음을 크게 먹고 웃으면서 평양을 떠나기요.》

남편의 타이름을 들으니 신복은 가슴에 두텁게 얼어붙었던 얼음장이 다 녹아내리는듯싶었다. 아니, 머리우에 무겁게 드리워 우뢰를 터뜨리고 번개치던 먹구름이 차츰 밀려가고 맑게 개이며 해빛이 쏟아지는 하늘을 바라볼 때처럼 마음이 개운해졌다.

신복은 눈물을 거두고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어머니, 너무 상심마세요. 그리고 얘들아, 울지들 말아. 우리가 사람 못살 곳으로 가는건 아니다. 알겠니? 우리 나라 어디나 다 살기 좋은 고장이다. 그러니 우리 가서 더 행복한 생활을 꾸리자. 아버지, 엄마는 일을 더 잘하고 너희들은 공부에 더 열중하고…》

남편도 아이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주었다. 어머니도 눈물을 거두고 짐을 쌀 준비를 하였다. 이왕지사 갈 길인데 지체하지 말고 빨리 수속해서 떠나자고 의논도 되였다.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것은 어버이수령님께 인사도 안 올리고 훌쩍 떠난다면 그것이 어찌 남다른 사랑을 받아온 전사된 도리이랴 하는 송구스런 생각이였다. 한편 나라의 천만가지 크고작은 일을 다 돌보시기에 몹시 바쁘신 어버이수령님께 사사로이 편지를 올린다는것도 외람된 행위같아 용단을 내릴수 없었다.

남편은 깊이 생각해보고나서 《자식이 부모슬하를 떠나면서 하직인사를 드리는것은 조상전래의 법도요. 내 생각엔 편지라도 올리고 떠나는게 옳을것 같소.》라고 고무해주는것이였다.

신복은 펜과 종이를 준비해가지고 웃방에 올라가 문을 잠그자 옷매무시를 바로하고 펜을 들었다.

《꿈결에도 다시 뵙고싶은 어버이수령님!》

갑자기 후두둑 하고 눈물방울이 종이우에 비오듯 떨어졌다. 신복은 수건을 꺼내 눈굽을 누른채 입술을 씹으며 마음을 진정하려고 애썼다. 눈물로 얼룩진 첫장을 번져놓고 새 종이에 펜을 달렸다. 그런데 어느새 눈물이 종이를 또 적셔놓았다.

신복은 펜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꾸짖었다. 너는 자기 마음 하나도 걷잡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냐? 어서 진정하고 편지를 써라. 간단히, 간단히 쓰면 될터인데 왜 그리 못나게 노느냐 하고 타이르기도 하면서 더는 울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다시 펜을 들었다.

그러나 도저히 글을 써낼수 없었다. 참아도, 참아도 눈물은 의지의 뚝을 무너뜨리고 그냥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눈물속에 어버이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속에 살아온 나날들이 앞을 다투어 떠올랐다.

김일성종합대학 새 교사준공식날에 어버이수령님께 꽃다발을 드리던 일, 자신을 국제녀성대회 대표로 추천해주시고 고급외투와 양복, 신발 등 갖가지 생활필수품이 든 트렁크를 보내주신 일,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일하던 그를 당중앙위원회에서 일하도록 해주시고 친히 집무실에 불러 사업방향과 방법을 가르쳐주시던 일… 추억의 샘은 끝없이 솟구쳐올랐다.

《어머니, 저녁 잡수세요.》

막냉이의 목소리에 신복은 화닥닥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벌써 그렇게 많이 갔는가. 그는 마음을 다잡고 글줄을 달리였다. 한 문장을 쓰고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한 단어를 쓰고는 또 수건을 눈에 대고 한동안씩 눈물이 잦기를 기다리고 하면서 무진 애를 쓰던 끝에 드디여 편지를 마감할수 있었다.

써놓고보니 내용은 간단하였다.

먼저 인생의 막바지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모진 천대와 학대속에 살던 자신을 해방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할수 있게 해주시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어엿한 경제지도일군으로 키워주신 어버이수령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은덕에 대해 썼다. 그리고 그 대해같은 은덕에 제대로 보답 못하는 죄스럽고 괴로운 마음도 피력하였다. 이어서 몸은 비록 도에 내려가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수령님가까이에 있을것이며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든 수령님의 하늘같은 사랑을 잊지 않고 수령님의 높은 뜻을 꽃피우는 길에서 한생을 살다가 죽으리라는 결의를 썼다.

끝으로 조국의 무궁한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어버이수령님께서 부디 만수무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하였다.

편지는 두장밖에 안되였지만 눈물로 적셔 내놓은 종이는 스무장이 넘었다.

아, 눈물속에 작별의 인사편지를 쓴 이밤, 어버이수령님 생각으로 잠못든 이밤을 신복은 생이 진하는 날까지 잊지 못할것이다!

 

×

 

날이 밝았다. 아침상을 물리고 아이들이 전학증을 떼러 학교로 간뒤 신복은 차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보통문앞으로 내려온 그는 모란봉경기장쪽으로 가는 뻐스에 올랐다. 국가계획위원회청사가 거기 월향동에 있었던것이다.

신복이 지금 국가계획위원회로 가는것은 위원장인 정준택부수상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부수상으로 말하면 신복에게 있어 조국해방전쟁의 준엄한 환경속에서 시작된 첫 사회생활의 상급인 동시에 일을 배워주고 키워준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정준택부수상이 위원장을 겸임하는 국가계획위원회에서 10년가까이 부원으로부터 부과장, 과장을 거쳐 경공업계획국 국장직무까지 맡아수행한바 있다. 그 나날 신복은 정준택으로부터 꾸중보다 칭찬을 많이 받았다. 일솜씨가 깐지다, 일을 책임적으로 한다, 계획사업을 책상머리에서가 아니라 현실에 접근하여 할줄 안다, 당정책을 이악하게 집행하는 일군이다. …

전쟁시기인 1951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12월에 들어서자 국가계획위원회의 모든 부서들이 다음해 계획때문에 긴장한 전투를 벌렸다. 특히 지표가 많은 경공업과가 제일 바빴다. 경공업국이 따로 없었던 관계로 경공업부문의 모든 계획은 과장인 신복이 마감결속을 해야 하였다.

12월 16일은 위원장에게 문건을 제출하는 마감날이였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15일 저녁부터 뜨끔뜨끔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신복은 배안의 아이에게 사정했다.

(제발 하루만 참아주렴, 응? 하루만… 태여나는것이 그리도 급하냐?)

그러나 아이는 참아주지 않았다. 16일, 아직 완전히 마무리를 못했는데 진통이 점점 잦아졌다. 아픔을 참느라고 이마에는 땀이 흥건히 내배였지만 신복은 이를 악물고 일을 계속했다. 드디여 새벽 2시경에 문건을 결속하여 제출하였다. 했으나 그때는 진통이 너무 심하여 제대로 걸을수가 없었다. 보통때면 직장에서 집까지 15분도 안 걸릴 길을 한시간나마 걸려서 왔지만 종시 반토굴집에 들어서지 못한채 마당끝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안에 누워있었다. 온통 눈물범벅이 된 어머니가 반색을 하며 손을 쓰다듬어주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잠귀 밝은 어머니가 갑자기 애기우는 소리에 놀라 뛰여나와보니 자기가 마당가에 쓰러져 해산을 했더라는것이였다.

이 사실이 정준택위원장에게까지 알려졌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사업보고를 올리러 간 기회에 신복이를 기특하게 여겨 그에 대해 말씀드리였다고 한다. 그가 김일성종합대학 1기졸업생이라는것과 전쟁이 일어나자 갓난아이를 떼여놓고 정치공작대로 포항까지 갔다왔으며 지금 과장으로서 일을 아주 잘하고있다고 보고드리면서 집으로 가던 도중에 해산한 사실까지 말씀올렸다.

수령님께서는 《원, 이 한겨울에 아이를 바깥에서 낳게 하다니.… 생사람 둘을 죽일번 했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오.》라고 하시며 정준택을 나무라시였다고 한다.

이 일이 얼마나 기억속에 깊이 자리잡았으면 수령님께서 후날에도 여러 기회에 김신복이를 볼 때마다 전쟁시기 길가에서 아이를 낳은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씀하시군 하였겠는가.

신복은 그런 인연으로 정준택을 만나자고 왔으나 국가계획위원회청사가 보이자 갑자기 발이 땅에 들어붙은것처럼 떨어져주지 않는것이다.

한 15분쯤 그렇게 바재이며 서있었을가? 등뒤 저만치에 있는 제1병원정문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돌아다보니 적위대복차림으로 적십자표식이 새겨진 완장을 팔에 끼고 배낭에, 위생가방에, 담가채에 혹은 각이한 크기의 상자들을 메고 지고 이고 든 대렬이 정문으로 밀려나왔다. 대렬은 가루개를 바라고 달려올라갔다. 유사시를 예견하여 제1병원의사들이 군진훈련을 하는것이였다.

《푸에블로》호사건으로 정세가 긴장해진이래 너무도 많이 보아왔고 어느 단위에서나 하는 훈련이라 새삼스러울것은 없었지만 의사들의 훈련모습은 신복이로 하여금 바재이기를 그만두고 국가계획위원회접수실 문턱을 넘는 결단을 내릴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침 정준택위원장이 사무실에 있고 들여보내라는 지시도 인차 나와 신복은 예견보다 쉽게 위원장서기실에 들어설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 서기실에서 그는 한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원장이 손님과 면담중인데다가 서기실에서도 먼저 온 손님이 대기하고있었다.

무릎우에 펴놓은 무슨 문건을 열심히 뒤적이고있는 대기중의 그 남자손님이 신복은 낯익었다. 기계공업성 부상이였다. 이름은 한승우, 잘 안다고까지는 할수 없으나 지방산업총국에 있을 당시 사업상 몇번 상종할 기회가 있어서 서로 수인사는 나누는 사이였다.

아무래도 뭔가 시원치 않은지 부상은 고개를 저으며 문건을 거두어 가방에 쑤셔넣었다. 그러다가 문득 신복이를 띄여보고 《아, 이게 누구요? 요새 안 보인다 했더니 평양에 있기는 있었구만.》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누가 반가와한다고 같이 반가와할 처지가 못되여 신복은 답례삼아 《그새 피복부문에만 줄곧 박혀있어놔서 못 보셨을겁니다.》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쪽의 반응이 말을 하고싶어하는 기분이 못된다는 느낌이 드는지 부상은 다소 의아해하면서도 말은 더 하지 않았다. 마침 그때 면담이 끝났는지 위원장방에서 손님이 나오는 바람에 어색한 분위기도 끝이 났다.

다행히 한승우부상은 예견했던것보다 위원장방에서 오래 지체하지 않았다. 일도 아주 잘된 모양 밝은 인상으로 나와서는 서기는 물론 신복이와도 인사를 나누고야 등을 감추었다.

《이거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구만, 응? 신복이가 옛정을 잊지 않구 우리한테 왔으니 말이요. 어서 앉소, 앉으라니까. …》

정준택은 온후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여서 감정표현도 부드럽게 하는 사람이지만 신복이가 온것이 진정으로 기쁜듯 환히 웃으며 앞상밑에서 걸상을 꺼내놓고 어깨를 눌러앉히고야 자신도 건너편에 가서 앉았다.

《신복이가 청진에 가있다가 올라와 지방산업총국에서 일한다는것까진 알고있는데 요새도 거기서 일하오?》

부탁하려는바도 있어 신복은 부수상이 일신상문제에 관심해주는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면서 기구개편으로 해임된이래 림시로 종합피복공장 책임자로 일한데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정준택은 신복의 말을 듣더니 그의 개인문제보다 아이들에게 솜옷을 해입힐데 대한 수령님의 교시집행이 어떻게 되고있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돌리였다.

《잘 안되고있습니다.》 직접 겪으며 안타깝게 생각하던 문제여서 신복은 대답이 어렵지 않았다. 《저마끔 걱정들은 하는데 아직 원자재계획도 쪼개 안졌습니다. 거기에 독립채산제라 해서 매 공장들이 저마끔 울타리를 높이 치고 본위주의를 부리기때문에 생산지휘를 통일적으로 해낼수 없습니다.》

《벌써 2월인데 여태 원자재계획조차 서있지 않았으면 야단이구만. 피복관리국에 문제가 있소, 관리국에…》

정준택은 피복관리국장이 누군가고 물었다.

《최도식이라고… 5년전 제가 경공업위원회에 있을 때 지방지도국에서 부원을 하던 사람인데 아마 부수상동지는 잘 모르실겁니다.》

《모르겠소. 이름도 그래… 한데 부원을 하다가 다섯해동안에 관리국장까지 된걸 보면 실력이 있어도 이만저만 있지 않는것 같구만.》

《실력보다도 누가…》

신복은 누가 뒤를 잘 보아준다는 소문이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남의 뒤소리를 하기가 저어되였던것이다. 그러나 더 말하지 않아도 정준택은 리해되는바가 있는듯 생각깊은 표정으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화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이젠 신복이가 왜 왔는지나 들어보기요. 설마 직무를 떼우고 우리한테 부원자리나 하나 알선해달라고 온건 아니겠지?》

물론 롱담이였지만 신복은 이제 털어놓아야 할 사연이 그리 떳떳치 못한 까닭에 은연중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옹송그려졌다. 그는 말라드는 입술에 침부터 발랐다.

《부수상동지, 사실 저는 부수상동지에게 무척 어려운 부탁을 하자고 왔습니다. 그러니 제 말을 들어보시고 들어주기 곤난한 부탁같으면 거절하셔도 일없습니다.

사실 간부동지들에게 이런 사사로운 부탁을 하면 안되는줄 알면서도… 욕을 많이 하십시오.》

《무슨 부탁인데 시작이 그리 힘드오. 어서 말하오. 거절하고 안하는거야 내가 알아서 하지 않으리.》

정준택은 얼굴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아마 이제 신복이가 내놓을 부탁이 무슨 그리 무거운것이랴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신복은 우선 가방안에서 백지로 덧싼 편지부터 꺼내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그 편지의 운명을 점쳐보듯 이윽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부수상동지도 제가 두번씩이나 함북도에 내려갔다가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올라왔던 사실은 아실겁니다.》

《알지 않구. 알아도 너무 잘 아오.》

《그런데 저는 또 지방에 나가게 되였습니다.》

《으-응? 아니, 또?…》

몹시 놀라운지 정준택의 얼굴에서는 금시 미소가 사라지고 낯색이 어두워졌다. 그런 부수상을 마주보기 민망하여 신복은 눈을 내리깐채 지난해 5월 기구개편으로 둘이던 부총국장직제가 하나 없어지는 바람에 해임된이래(없어졌던 그 부총국장직제는 석달만에 다시 생겨났지만 그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임명되였다.) 종합피복공장 림시책임자로 있다가 세번째로 평북도파견장을 받고 수령님께 올리는 편지를 쓰기까지의 신변사를 이야기하였다.

정준택은 고개를 기웃한채 이윽토록 신복이쪽을 건너다보며 말이 없다가 스스로 깨달음이 오는지 《그러니 날더러 그 편지를 수령님께 올려달라는거구만?》라고 하는것이였다.

신복은 그렇다고, 이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한생의 부탁이니 제발 거절하지 말아달라고 말하고싶었지만 차마 입밖에 내놓을수 없어 혀를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 편지를 이리 달라구.》

긴 침묵을 깨치며 마침내 하는 정준택의 말이였다. 그는 편지를 받아쥐고 봉인상태를 알아보듯 이쪽저쪽 살피더니 말했다.

《이런 서신은 당조직을 통해 올리는것이 원칙이지만… 내게 맡기고 가오. 내 가능한껏 수령님께 빨리 올리도록 노력해보겠소.》

《고맙습니다. 부수상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신복은 고마움을 표시하는 다른 말을 배우지 못한것이 한스러웠다. 못하는 마음속 말을 쏟아지는 눈물이 대신해주었다.

신복이 들어가 어서 일을 보시라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정준택은 아래충 현관까지 내려와 바래워주었다. 그는 마감으로 이런 고마운 말까지 해주었다.

《지방에 간다구 딴생각을 하며 맥을 놓아선 안되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구 당조직에 더 튼튼히 의거해야 하오. 일도 물론 더 잘해야지만… 나는 신복이가 어디선가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는데서 크게 모범이라는 소식을 기다리겠소.》

뭉클 젖어오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신복은 명심하겠다고, 일을 잘해서 꼭 좋은 소식을 알리겠노라고 하며 고개를 깊이 숙이고 돌아섰다.

눈물이 앞을 가리여 걸음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그를 접수실녀인이 의아한 눈으로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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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해외 - 학생 -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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