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길

6

 

그 이튿날 영옥은 공장에 출근하여 조간신문을 읽다가 갑자기 긴장되고말았다. 그것은 바로 《마리야녀학교 맹휴사건 일단락》이라는 기사제목이 눈에 띄였기때문이였다.

기사가운데서 《… 변호사 오종호, 지성근은 송청되였고 동교 교원 한숙경과 일부 학생들이 석방되였다. …》라는 구절이 영옥의 가슴을 몹시 흥분케 했다.

영옥은 퇴근시간을 기다려 바로 한숙경의 집을 찾아갔다.

한숙경의 집에는 벌써 찾아온 학부형들이 적지 않게 모여있었다.

마리야녀학교 교장 김치선의 비행을 두고 배척운동을 전개한 학부형회가 경찰의 간섭으로 중지되면서 학부형들이 검속되였고 또 그와 때를 같이하여 일어난 제2차 동맹휴학사건은 제1차 때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검거되고 또 출학, 정학을 당한 뒤에 흐지부지 종식되고말았다.

한숙경은 학부형들과 함께 교장배척운동을 일으켰다는 혐의로 경찰에 구금당한채 3주일이 넘도록 류치장에 불법구금되였다가 검속되였던 일부 학부형들, 학생들과 함께 석방되였던것이였다.

《교장 김치선을 파면시켜라!》

《학부형과 교원, 학생들을 빨리 석방시켜라!》

《출학, 정학처분을 취소하라!》

이러한 격문이 경찰당국과 문교당국에 비발치듯 날아들어갔다.

학부형과 학생들은 물론 일반사회여론의 강한 압력에 눌려 경찰은 변호사 오종호와 지선생만을 송청하고 나머지는 치안재판에서 벌금을 물리거나 뒤구멍으로 돈을 받아먹은 뒤에 슬금슬금 석방시켰던것이였다.

《선생님!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고문에 시달린 흔적이 엿보이는 한선생의 해쓱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영옥은 눈물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얘, 고생이라니. 무슨 나 혼자만 당했니?》

한숙경은 태연스럽게 말했다.

《모든 원인은 저때문이예요. 용서해주세요. 선생님!》

영옥은 죄송스러운듯 얼굴을 가볍게 숙이였다.

《어찌 너때문이냐? 미국놈때문이지.》

한숙경은 명쾌히 말하고나서 영옥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너두 무척 수척해졌구나. 그래 그동안 지낸 이야기나 좀 하렴.》

한숙경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영옥은 그동안 자기 집이 몰락한 이야기며 피신하던 이야기며 홍선생이 부상당한 이야기를 대강 말했다.

《그럼 너, 홍선생님이 지금 어디 계신지 모른단 말이지? 걱정말고 가만 있거라. 내가 다 알아볼테니…》

한숙경은 자신이나 있는듯이 영옥이를 안심시켰다.

《그런데 선생님!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다시 학교에 나가시겠어요?》

영옥은 긴장한 얼굴로 한숙경을 바라보았다.

《얘, 정신없는 소리말아! 그따위 김치선이가 교장으로 있는 이상 어찌 그자밑에서 교원노릇을 하겠니? 또 내가 꺼벅꺼벅 나간다구 그자들이 나를 그대로 교원자리에 붙여둘줄 아니? 그자들은 나를 벌써 파면시켰을게다.》

《그렇지만 그대루 밀려나오시면 안돼요!》

《그자들의 힘이 강한 이상 어떻게 하겠니. 밀려나오는수밖에… 그렇지만 내가 밀려나온다는것은 마리야녀학교가 결국 망해가는 징조밖에 될게 없다.》

한숙경은 여기까지 말하고나서 힘찬 목소리로 《꼭 한두놈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거나 학교에 불을 질러야만 이기는건 아니다. 이번 1차, 2차 맹휴사건은 광범한 사회여론을 일으켰고 또 우리 학생들이 그만큼 미국놈을 반대해나섰다는것을 표시한것만 해도 큰 승리다.》 하고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영옥은 한숙경의 성격이 이렇게 달라진데 은근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제 두고봐라. 싸움이 끝난것은 아니다. 김치선이가 계속 교장으로 붙어있을줄 아니? 지금은 웰톤이 조종하고있는 리사회가 싸주고 문교부가 옹호해주지만 계속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들고일어나봐라. 그때는 제놈이 아무리 그 자리에 그대로 앉고싶어도 미국놈이 안 차버릴줄 아니? 미국놈이 얼마나 교활한 놈들이라구! 사람을 리용할대로 다 해먹고 인기가 떨어지고 비난을 받아 리용가치가 없을 때는 무자비하게 발길로 걷어차는줄도 모르고…》

한숙경은 확신에 넘쳐 큰소리로 힘차게 말했다.

《그럼 선생님!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어요?》

영옥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한숙경을 바라보았다.

《뭐, 걱정할것 있니… 될대루 됐지. 이제는 나두 실직자가 아니냐? 생각해보면 기막힌다. 20여년이상 마리야녀학교에다 내 청춘과 정열을 모두 바친것이 후회된다.》

한숙경의 얼굴에는 쓸쓸한 표정이 피여올랐다.

이윽고 한숙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영옥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난 이번에 결심했다. 난 이제 할 일이라는게 빤하다. 역시 교육사업밖에 더 있겠니. 빈민부락이나 농촌으로 가서 문맹자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 사설학원 같은것은 할수도 없고 놈들이 허가도 안해준다. 그러나 교실에다 사람을 모아놓고 가르쳐야만 반드시 교육이 되는것두 아니니깐…》

한숙경의 얼굴에 굳센 결심이 넘치고있었다.

《선생님! 정말 좋은 결심을 하셨어요. 우리 부락에도 학령 초과아동이 많고 녀자들은 거의다 문맹들이예요. 그러나 선생님! 그것이 그렇게 쉽게 될것 같지는 않아요. 실직자, 무직자, 병자들이 굶주려 신음하고있는 판인데 다짜고짜로 글을 가르치려구 하면 그 사람들이 글을 배우겠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우선 먼저 직업이 필요하고, 밥과 옷이 필요하고 약이 필요할것 같아요.》

영옥은 제법 리지에 넘치는 눈초리로 한숙경을 바라보았다.

《네 말이 옳긴 하다. 그러나 그것두 방법문제야. 자기들이 실직을 당하고 굶주리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져가며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니! 한사람한사람 상대해서 깨우쳐나가는 방법이 제일 가능한 방법일게다.》

한숙경은 자기의 계획을 이렇게 말했다.

《그럼 선생님, 잘 연구하셔서 착수하세요. 저두 선생님을 도와드릴테니요.》

《암, 너희들이 날 도와주어야지 누가 날 도와주겠니. … 그리구 앞으로 싸움을 다시 시작하자꾸나. 이번에는 본때있게 해서 이겨야지. 조선희, 백인자두 아까 낮에 내게 왔다갔다. 너를 찾아가구싶어도 집을 모른다더구나. 너의 집주소를 내게 알리고 가려무나.》

한숙경의 말을 듣던 영옥은 잠간동안 무엇을 깊이 생각하더니 드디여 결심을 하고 자기 집주소를 종이쪽지에 써서 한숙경에게 내주었다.

《선생님, 아무에게나 함부루 알려주지 마세요. 네?》

《오냐, 념려말아. 내가 어린앤줄 아니?》

이윽고 영옥은 한숙경과 작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은 제법 깊었건만 아버지는 안 들어오고 어머니 혼자서 외롭게 기다리고있었다.

《얘, 너 이렇게 늦게 다니지 말아. 만일 밤중에 그 못된 강가놈이라두 만나면 어떡할려구 그러니?》

《괜찮아요. 념려마세요.》

《반장인지 뭔지 오늘두 와서 어서 반적부에 올릴테니 거주를 떼여오라는구나.》

《그래서 뭐라구 하셨어요?》

《그래, 조금 더 기다리라구 그랬다. 우리가 또 다른데루 이사갈는지 모른다구 했다.》

《잘하셨어요. 이 다음 또 그러거든 곧 떼오마구 말해두세요.》

《말루만 그래 되겠니? 구공탄궤짝이라두 들려줘서 입을 씻어야겠다.》

어머니는 이 순간 긴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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