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길

3

 

새로 옮겨간 미술장치사를 찾기만 하면 그래도 홍선생에 대한 무슨 소식을 알아낼수가 있다고만 생각했던 영옥은 그 일루의 희망까지 수포가 되자 하는수없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옮겨간데를 찾기나 했니?》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오며 영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어두운 표정을 하고 들어오는 영옥의 표정을 보고 어머니는 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네 기색을 보니 또 헛걸음한게로구나. 원, 세상두 무정두 하지. 어쩌면 네가 그렇게 애태우고 찾으러 다녀도 못 찾는단 말이냐?》 하고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영옥은 입을 다문채 명랑치 못한 기분으로 나들이옷을 벗고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헐수 없지 않니. 너때문에 그렇게까지 된 선생이기는 하지만 인사는 헐만큼 했으니깐…》

어머니는 딸의 기분을 풀어주려 했으나 영옥은 그 반대로 갑자기 뾰로통한 기색으로 어조를 높였다.

《표난게 뭐 있어요? 우리가 다른 학부형들처럼 그 선생님 석방운동에 가담했어요? 형무소에 갇혔을 때 차입 하나 했어요? 면회 한번 했어요? 무슨 인사를 할만큼 했다고 그러세요?》

《그렇기는 하지마는 그게 무슨 꼭 표가 나야만 하겠니? 사람이란 의리와 례절을 잊지 않으면 되지… 또 무슨 표나게 할수가 있었니? 우리 집 사정이… 빤히 그런걸 알면서 만만한게 에미라구 퉁명스럽게 대들면 어떡하잔 말이냐? 응?》

어머니의 음성이 약간 높아졌다.

《아니예요, 어머니! 누가 어머니를 원망해요? 사정이 그리 됐으니 말씀이죠.》

영옥은 어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한것만 같아 부드럽게 말했으나 차라리 홍선생이 스틸맨놈의 권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안들은것만 못했다.

그것은 바로 영옥이가 우이동에서 집에 찾아들어온 뒤 여러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어머니의 약을 사려고 충무로에 나갔던 영옥은 우연히 약방에서 자하문밖에 사는 동무를 만나게 되였다.

《아이유, 이게 누구야? 계순이 아니야?》

그는 학비관계로 봄에 중도퇴학을 당하고 나간 동급생이였기때문에 영옥은 반가우면서도 한편 가엾게 생각되였고 자기와 처지가 같게 된데서 자연히 감정이 통하는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계순이는 뭘 해?》

《나? 허기는 뭘 해? 요새 어디 취직할데가 있어?》

계순이는 이렇게 말했으나 영옥은 그가 퇴학당한 이후 얼마 지나 어느 캬바레에서 녀급노릇을 한다는 소문을 학교에서 들은 일이 있어 그의 우아래를 유심히 살피였다. 하지만 옷차림새나 화장한 품이 녀급같이 보이지는 않았기때문에 그노릇을 그만둔것이나 아닌가 생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영옥이! 그러지 않아두 영옥이를 한번 만나면 했었어. 나 퇴학당한 뒤 새로 들어간 미술선생님 계셨지?》

《응, 그래! 계순이두 그 선생님을 알아?》

영옥은 귀가 번쩍 틔여 바싹 다가들며 물었다.

《그럼 알잖구, 그 선생님이 자하문밖에 계시던것두 잘 알아. 그런데 그 선생님이 영옥이를 무척 사랑했다지? 난 다 알아.》

계순이는 방그레 웃으며 영옥이를 놀리였다.

《아이유, 계순이두…》

《그런데 영옥이! 그 선생님 언제 뵈였어?》

《아니, 못 뵈였어. 계순이는 혹 뵈였어?》

《아이유, 밥통! 정말 못 뵈였어? 그럼 그 선생님 소식 몰라?》

《응, 몰라! 계순이는 알아? 좀 가르쳐주어! 얼른, 응?》

영옥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계순에게 애원하였다.

《너두 무척 그 선생님 생각하구 있구나. 그런데 그렇게 소식을 모르구있어? 그럼 내 알려줄께 놀래진 마. 그 선생님이 지금 중상을 당해서 입원을 하고있어.》

《아니, 중상을? 어느 병원이야?》

영옥의 얼굴은 금방 질리고 전신은 바르르 떨리였다.

《아니, 정말 밤중이로구먼. 신문 못 봤어? 신문에는 그 선생님의 본명이 안 나고 <남평>이라구 났어.》

영옥은 계순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계순이로부터 이런 소식을 듣지 않았더라면 그동안 그렇게 몸이 달아 애를 쓰며 장치사로, 신문사로,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찾아다니느라구 헛고생을 하지는 않았을것이 아닌가? 과연 자기의 도리를 다 했다고 어머니가 말하지만 그것을 알아줄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영옥은 암만해도 홍선생이 자기를 의리없고 보잘것 없는 제자라고 생각하고있을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에 기울어진 영옥은 안타까왔으나 자기의 힘으로는 이제는 더 어떻게 홍선생을 찾을 길이 없을것 같았다.

새로 옮겨간 미술장치사에서 처음으로 만난 지용세가 과연 정말로 홍선생의 행방을 모르는것인지? 알면서도 모른다고 잡아떼는것인지? 만일 알고도 잡아뗀것이라면 또다시 가서 물어봤자 아무 효과도 없을것이고 정말로 모른다면 그것은 홍선생이 체포되였거나 그렇지 않다치더라도 피신을 하기 위하여 그곳으로 일부러 련락을 하지 않는것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았다.

영옥은 홍선생을 만나면 앞으로 자기의 전도에 대하여 지도를 받으려 했었으나 이제는 만날 길이 더욱 막연하였다.

자기 운명을 오직 자기의 힘으로 개척해나갈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자 새삼스럽게 외롭고 쓸쓸하였다.

이러한 우울한 분위기속에서 이틀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영옥은 혹시나 하고 또 전날 찾아갔던 미술장치사를 찾아갔으나 밖으로 자물쇠가 채워져있었다. 그길로 조선희와 백인자를 만나러 갔다가 그들도 다 외출하고 없어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밖에서 바삐 들어오며 영옥이를 불렀다.

《얘, 너 지금 당장 리력서 하나 써라!》

《어디 무슨 자리가 있어요?》

《허, 그거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바루 가까운 곳에 적당한 자리가 하나 생겼다. 그러기에 사람이란 발이 넓어야 되고 이놈저놈 많이 알아둬야겠더라.》

《어딘데요? 리력서만 쓰면 돼요? 취직이 그렇게 쉬우면 걱정이 없게요!》

《아따, 그놈 잔소리두 많다. 어쨌든 얼른 써! 지금 서로 들어가지 못해 야단이라더라.》

《뭐예요? 공장이예요? 회사예요? 미국놈이 뒤에서 실권을 잡고있는데 아니예요?》

《아따, 원 계집애두… 왜 그리 잔말이 많으냐? 미국놈이 뒤에서 줄을 잡고있는데 같으면 네게 차례가 올듯싶으냐?》

아버지는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아버지가 어련히 아셔서 하실라구. 그러니 어서 넌 리력서나 쓰려무나. 그리구 당신두 어디라구 속시원하게 말해주시구려. 갑갑하지 않겠어요? 아이들 생각에…》

어머니는 중간에서 량쪽 편을 다 들었다.

《되구나면 자연히 알지. 뭐 네게 로동을 시키거나 어렵고 힘든 일을 시킬가봐 그러니? 그런데가 아니란 말야.》

아버지는 만일을 생각해서 그러는지 장소만은 알려주지 않았다.

영옥은 집에서 따분하게 노는것보다는 적당한 곳이라면 취직하는 편이 집안형편을 위해서라도 나을것만 같아 책상서랍을 열고 종이를 꺼내여 리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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