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길

2

 

젊은 녀성이 나가고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보퉁이를 하나 든 젊은 녀자가 점포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바로 지은숙이였다.

《아저씨!》

《아니, 너 어째서 온다는 소식도 없이 이렇게 오니? 응?》

지용세는 깜짝 놀라며 반가이 맞았다.

《아저씨 편지받던 날 바루 떠났지만 이렇게 늦어졌어요.》

은숙은 보퉁이를 방바닥에 놓고 의자에 앉았다.

《아니, 왜?》

《도중에 비상경계에 걸렸어요.》

《음, 참 이번에 신문을 보니 그 근방 농촌이 아주 시끄럽더구나. 그래 어디서 걸렸단 말이냐?》

《바루 정거장에서 표를 사가지고 차를 타려구 하는데 읍경찰대가 와서 무작정 휩쓸어 태워가는통에 걸려 읍에까지 갔다가 겨우 사흘만에야 빠져나왔어요.》

지은숙은 오다가 고생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런데 아버님 병은 좀 어떠신가요?》 하고 불안스럽게 물었다.

《어제 겨우 약을 사들여보냈다만… 암만해두 기소될것만 같다.》

지용세는 걱정스럽게 말하고는 《그런데 참! 너 인제의원에 가봤니?》 하고 물었다.

은숙으로부터 찬수의 소식을 알게 된 지용세는 한편 마음이 놓이고 궁금증이 풀리였으나 아까 그의 소식을 알려고 찾아왔던 이름모를 젊은 녀성이 몇시간만 늦게 왔더라도 알고 갔을것이라는 생각에 저으기 안타까왔다.

그는 은숙이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그래, 그동안 무슨 딴 일은 없었니?》 하고 물으며 빙긋이 웃었다.

《딴 일이라니요?》

《혹시 결혼상대자라두 발견했느냐 말이다.》

《아이구, 아저씨두! 그런것 생각할 환경이였는줄 아세요?》

《왜?》

《정말이지 농촌에선 살수 없어요. 더구나 농촌에서 교원생활을 한다는것은 큰죄를 짓는 일이예요. 아이들이 불쌍해서 볼수 없어요. 쫓기고 매맞고 헐벗고 굶주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은숙은 자기가 겪은 쓰라린 교원생활을 회상하면서 용세를 바라보았다.

《서울이나 도시두 마찬가지란다. 어쨌든 네가 이번에 잘 올라왔다. 그러지 않아두 지금 너를 불러올릴 작정을 하고있었다.》

지용세는 잠간동안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계속하였다.

《사실은 네가 그 알량한 교원생활을 그만두고 서울에 와있었어야 할 일이야. 너의 아버지는 내 권고도 듣지 않으신다. 이제 무슨 귀찮게 녀편네를 얻겠는가 하시지만 사실 홀애비로 서울서 하숙생활을 하시는 너의 아버지꼴을 보면 딱해서 보기 민망할 때가 많다. 이제는 네가 아버지를 돌봐드려야 할게다.》

은숙은 용세의 말을 귀담아듣고나서 《내가 서울에 있게만 되면 자연히 아버님을 모시구있어야죠. 그러나 만일 기소되여 형무소로 넘어가시면 어떡해요?》 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마주 바라보았다.

《넘어가두 빤하다. 사건성질이 불기소 아니면 기소유예, 그렇지 않으면 집행유예감밖에 안되니깐…》

용세는 별로 걱정없는 태도로 은숙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다시 은숙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그래, 지난번에 아버지가 내려가셨을 때 네게 무슨 말이 없었니?》 하고 은근히 물었다.

《무슨 말인데요? 뭐, 별루 없었어요.》

《너의 아버지는 지금 네 결혼문제때문에 상당히 머리를 앓고계신다. …》

지용세는 먼저 이렇게 운을 떼고나서 다시 말을 계속했다.

《너의 아버지가 얼마전에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구나. 참고로 들어두는게 좋을게다. 뭔고 하니 사위감을 택하는데 첫째로 자기가 잘 아는 청년을 골라야 하고, 둘째로 본인인 네가 잘 아는 인물이라야 하고… 그러면서 명확히 이름을 찍어 말하시지는 않았지만 벌써 너의 아버지는 어느 정도 자기 마음속에 그 누구를 지정해두신것 같더라. 너의 아버지가 선정한 인물이라면야 틀림이야 있겠니…》

지용세는 이렇게 말하면서 그의 아버지와 자기가 은숙의 결혼문제에 대하여 단편적인 의견을 교환하던 일을 회상했다.

그때는 찬수가 장치사에 갓 취직했을 때였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되나? 난 아직 본인의 의사는 타진해보지 않았지만 찬수가 맘에 든단 말야. 자네 생각은 어떤가?》

《글쎄요, 그야 어렸을 때 친히 가르쳐보셨을테니깐… 틀림없겠지요.》

지용세는 찬수에 대해서 당시로서는 백지상태나 다름없었으나 그후 별장벽화사건때 비로소 그의 름름한 풍모를 느낄수 있었고 따라서 은숙이 아버지가 사람은 잘 보았다고 확신한것이였다.

그러나 그후 다시 만나지 못하는 바람에 본인에게 의사를 물어보지 못했고 또 은숙이의 생각을 타진하지도 못했던것이다.

《그런데 너, 하나 물어보자! 정말 그동안 교원생활중에 뭐 없었니? 교제한 사람이… 있으면 있다구 아주 솔직히 말해라. 부끄러울것 조금도 없다.》

지용세는 빙긋이 웃으며 은숙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이구, 참 아저씨두! 있긴 뭐가 있다구 자꾸 물으세요.》

은숙은 부끄러운듯 부정을 하였으나 이윽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해올라 고개를 가볍게 숙이였다. 그는 어느덧 고향마을에서 교원생활을 하던 때의 일이 머리에 번개처럼 떠올랐다.

사귄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고향마을에서 평판이 높은 인제의원의 젊은 의사 리준호가 어딘지 남자답고 믿음직스럽게 생각되면서부터 앞으로 결혼을 한다면 그런 남성과 하리라고 생각해온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은숙이 개인의 일방적인 생각이였지 상대방인 리준호의 의사는 잘 알수 없었다.

지용세는 은숙이가 부정하고 나서는데 대하여 전적으로 미덥지는 않았으나 황페한 농촌에서 생활해온 소박한 그에게 아직 어떤 누구와의 련애관계라거나 약혼문제 같은것이 있는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되였다.

《그래, 너 이번에 홍찬수씨를 만나니까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나드냐?》

지용세는 불쑥 이렇게 말하면서 은숙의 눈치를 떠보았다.

은숙은 갑자기 가슴이 설레였다.

지용세의 그 물음이 결코 우연한 질문이 아닌것만 같았기때문이였다.

《…》

은숙은 뭐라구 대답했으면 좋을지 그저 잠잠히 고개만 숙이고 방그레 웃기만 하였다.

《그래, 홍씨의 인상이 어떻더냐?》

지용세는 정색하며 또 물었다.

《아이유, 아저씨두! 그건 왜 물으세요?》

은숙은 다시 방긋 웃으며 대답을 피해버렸다.

그는 찬수가 그날 밤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것 그리고 침착하고 지성이 넘치는 태도를 보여주던것… 그리고 어린시절 그의 등에 업혀 개천을 건느던 일들이 회상되자 고개를 숙이고말았다.

《자, 우리 그 문제는 더 충분히 연구하고 생각하자. 그리구 어서 집으로 가자. 래일부터 나는 하늘의 별따기지만 우선 네 취직운동을 해야겠다.》

지용세는 책상우를 대강 치워놓고 은숙을 데리고 점포를 나와 집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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